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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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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747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8.06 00:17
조회
173
추천
4
글자
11쪽

제국으로 2

DUMMY

사흘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슬슬 봄에서 계절이 바뀌어 완연한 여름이 되고 있었다. 대륙의 기온은 달궈진 후라이펜처럼 어디서든 열기가 치솟게 되었다.


“올해는 장난아니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절로 나는 엄청난 무더위에 상인 안델은 소매로 땀을 훔쳤다. 그러나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흐르기만한다. 시원한 얼음이라도 있다면 좋을것이나, 그런 돈이 있다면 발품을 팔고 보부상 노릇을 하진 않았을것이다.

당장에라도 배낭을 벗고 싶었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게되리라.


“빨리 팔아야 되겠는데···”


전쟁이 벌어지자, 식량과 무기값이 폭등했다. 난을 겪을만한 큰 전쟁은 아니었지만, 국가에서는 보급이 필요하다며 국고를 풀었다. 자연, 사람들은 불안해져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고 수요가 많아지자 가격은 뛰어오른것이다.

안델은 그 소식을 빠르게 접했고 식량을 배낭 한가득 꾹꾹 눌러담아 이곳저곳에 팔아 한 몫을 챙긴것이다.

한 몫을 단단히 챙긴것에서 만족했으면 좋겠지만 안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 상인다운 욕심을 냈다. 설마 누가 전쟁이 몇달도 가지 않고 끝나리라 예상이나 했겠는가?

한 몫을 챙긴 돈으로 그대로 다시 식량을 사 팔려했으나, 전쟁은 허무하게도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직은 반신반의하며 식량을 꾹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정말로 끝났다는걸 알게된다면 금세 식량값은 떨어질것이었다.


“이보시오! 식량 사실생각 없으시오?”


안델은 지나가는 사람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 사람의 행색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흙먼지로 덮어씐 로브를 입고 걸어가는 작은 체구의 성별도 알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그 로브는 제법 비싼것으로 보였기에 어쩌면 돈은 있는데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여행객··· 그런 사람처럼 보인것이다.


‘여행객이라면 식량을 살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에서였다. 먼 길을 가는 여행객이라면 식량이 필수품이니까.


“네?”


그러나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안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오랜만이네요.”


나는 그에게 인삿말을 건넸다. 무척이나 어색했다. 5년, 아니 그보다 더 긴 시간동안 본 적이 없어서일까? 우리 사이의 거리가 무척이나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여기서 넓다는건 방이 넓어진것처럼 좋은 뜻으로 쓰이는게 아니었다.


“아, 음. 오랜만이구나.”


어색하니 마주 인사를 하는 그의 이름은 안델. 물건을 파는것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년 전에는 견습 상인으로 막 상인일을 시작했던 초짜였지만, 이제는 제법 상인스러운 태가 보였다.


“보부상 일은 잘 되고있나요?”


“그럭저럭이지. ···그, 이야기는 들었다. 하쉬 경이 돌아가셨다고?”


“그래요.”


담담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고 말고할 것도 없이, 하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나는 그것을 진작에 받아들였으니까. 이제는 슬픔도 느끼지 않는다. 아주 약간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잘 큰걸 보니 기쁘다. 하쉬 경도 같은 마음이실게야.”


“저도 그럭저럭이죠. 아저씨는 그래도 열심히 산 모양이네요. 얼굴이 제법 늙었는걸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사이의 대화는 뚝 하고 끊겨버렸다. 그와의 인연은 오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하쉬와 내가 처음 만나 한센 남작령으로부터 하쉬와 함께 떠났던 얼마 안되는 시간, 화촌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동안 만났던 사람이었다.

그와는 재밌게도 ‘괴짜마법사 로토’ 와 함께 넷이서 어느 사슴을 쫒은 적이 있었다.


“흠흠! 그러냐? 그래도 이젠 돌아가면 결혼할 내자도 있다고?”


“오, 그건 대단한걸요?”


그럼 얼른 돌아가지 않고 무얼 하는거냐 물으려다가 그가 내 어깨를 잡고 물었던 말이 떠올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식량··· 안 팔릴텐데.’


상계에 조예가 있는건 아니었지만, 수요와 공급의 단순한 원리 정도는 알고있었다. 전쟁이 시작될 즈음에는 폭등했겠지만, 이제 다시 폭락하리라.


‘···저 배낭 한가득?’


등을 완전히 덮고도 남을만한 큰 가방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메지도 못할텐데, 보부상 노릇을 하던 만큼 체력은 있는 모양인지 안델씨는 끙끙대면서도 가방을 놓지 않는다.


“대단하시네요.”


나는 그 말까지만 하고 슬슬 찢어지자고 말할까 생각했다. 어차피 더 할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직 이곳, 브라헴 자유무역도시에 있는것은 비행선의 티켓은 끊었으나 출발은 내일이었기 때문으로 마음은 이미 제국에 도착해 있는 상태다.


“흐흠! 미안하지만 조금 도와주지 않겠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가 내게 말했다. 여름날씨에 자기 몸뚱아리만한 커다란 배낭을 매는건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닐것이다. 하물며 그 같은 일반인에겐.

나는 잠깐 그의 이마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




브라헴 자유무역도시.

사람들의 왕래와 여행객들이 가장 많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가장 먼저 입에 오르는 지역일것이다.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위치해 지리적 위치도 안전하며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고, 도시로서 존재하는 자유도시!

그러나 그 곳은 그렇게 낭만적이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또? 하아.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되겠어?”


아름다운 붉은 머리칼의 여성. 보일듯 말듯 주름이 제법 있기는 했지만 세월이 빗겨간듯이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였다. 왕년에는 말을 걸기조차 힘든 미인이었으리라. 그런 그녀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비켜! 비키라고! 그 자식, 그 자식은!”


분노에 차서 눈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만큼 한이 맺혔다는 소리이리라. 여성은 그런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이제는 복수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을텐데도.

오히려 그래서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아주 불가능해져버렸으니까. 그 악몽속에서 헤어나올 가능성조차 사라졌으니까. 그저 외면하고 살아야만하니까.


“그 자식은 내가 죽여버려야한다고! 그 자식만, 그 자식만!”


“비루! 제발 그만해!”


“그 자식만!”


남자, 비루는 터덜히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을 감싸쥐며 오열하고 말았다. 이번이 도대체 몇번째란말인가. 그 자신도 셀 수 없고, 지쳤다. 곁에 있어주는 안젤라야 오죽하랴.


“···미안하다고.”


한쪽팔은 없는데다가 그나마 있는 한쪽팔까지 다시 무기를 쥘 순 없게 되었다. 일반인으로서는 둘째치고 용병이나 무인으로서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인 상태. 폐인이 되어버린 비루는 이따금씩 이렇게 발작을 일으키고는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 이제 그만 잊어도 되잖아. 비루.”


“하지만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러고 싶은데···”


비루는 손을 움직였다. 굳어버려서 잘 움직이지도 않는 손이다. 몇십년간 창을 쥐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 손이다.

부상은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극복했다. 이건 불가능하다.


“하하하. 잠깐, 나갔다오겠다고.”


“같이 가줄까?”


안젤라의 권유에 비루는 고개를 저었다. 안젤라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비루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발작은 멈춘 듯 싶으니 혼자 둔다고 큰 일은 없으리라 여긴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잊혀지는것이기는 했다.

처음 비루는 자살기도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 조심히 다녀와.”


안젤라의 마중을 받으며 비루는 터덜터덜 힘 없이 걸었다. 브라헴 자유무역도시에는 여행객과 각국의 인물들이 많은만큼 범죄가 성행하기도 했다. 치안이 좋은편이라 떠드는 것들은 죄다 그 뒷모습을 모르는 것이거나 숨겨주는 자들이겠지.

손이 부숴졌지만 감각은 되려 예민해졌다. 뒷골목의 소리가 낱낱이 들리고 있었다. 심한경우에는 인신매매를 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비루의 알 바는 아니었다.


“흐흐···”


비루가 밖으로 나온 이유. 그것은 오직 자신의 화풀이를 위해서였다. 적당한 먹잇감을 물색해 싸움을 걸고 반죽여버리는 것. 그게 최근의 비루의 일과였다. 악인을 응징하니뭐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비루는 스스로의 행동을 포장하지 않았다.

단순한 화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이. 거기.”


비루가 부르자 뒷골목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험상궂은 얼굴에 칼자국까지 나있는것이 보통 인상은 아니었지만 평생을 용병으로 굴러먹은 비루와 비교할 순 없었다.


“뭐야? 외팔이잖아. 끼어들면 죽여버린다. 보내줄 때 가라.”


비루의 외팔을 보고 입꼬리를 한껏 비틀며 비웃는 남자. 주먹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있었다. 멱살을 잡힌 사내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는것을 보아하니 그 피가 누구것인지는 뻔한 것이리라.

비루의 외팔을 보고 불쌍한 놈이라고 생각한건지 답지않게 선심을 쓰는 듯 했다. 그러나 비루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닥쳐.”


발을 들어올려서 상대를 까버렸다. 그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뒷골목의 사내는 채 반응하지도 못했다.


“이 외팔이 새끼가!”


엉덩방아를 찧고서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면서 벌떡 일어났다. 비루의 멱살이라도 잡아채려는 듯이 이리저리 손을 휘두르지만 잡히지 않았다. 비루가 망가진건 양손일 뿐이다. 무기를 못 잡는것이지 발재간을 못 쓰는것도, 감각을 잃은것도 아니었다. 두 팔을 봉인했다고해도 뒷골목의 왈패와는 비교하는게 미안한 실력자.

싸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것의 승패는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비루의 아래에 깔려 숨을 헐떡이게 된 뒷골목의 사내. 그러면서도 그 사내에게 맞은 남자에게는 일절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개같은 자식. 개 같은 자식!”


뒷골목의 사내의 얼굴 위로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보인다. 체격도, 외모도, 직업도 성별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것이 하나 없었지만.


“네놈 탓이야! 네놈 탓이라고!”


소름끼칠 정도로 분노를 토하며 폭력을 행사하던 비루는 웃어버렸다. 분명 안젤라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있으리라. 그런데도 보내주었다. 그 여자도 어지간히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같으면 진작에 떠났을것이다.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붙어있는지 모르겠다. 비루도 사람인지라 미인인데다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헌신하는 안젤라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레너! 레너! 레너 왕!’


레너 왕에 대한 증오가 너무나 컸다.

여자에게 고개를 돌릴 여유조차 없을정도로 말이다. 비루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사내에게 맞고 있던 남자는 언제 도망쳤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정신도 맑아졌겠다, 제법 기분도 풀렸겠다.

슬슬 돌아갈까 싶을 즈음, 비루가 고개를 돌렸다.


“···비루 씨?”


“······넌.”


어쩌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과 우연찮게 조우하고 말았던것이다.


작가의말

추천,선작,조회,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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