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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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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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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51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7.1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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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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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전쟁 2

DUMMY

“······.”


전쟁이란 단어는 언제나 비극을 불러온다. ‘내’ 기억속의 전쟁에는 더 끔찍한 것들이 몇개나 있었지만, 역시 직접 눈으로 보는것과는 달랐다.

눈앞의 참상에 정신이 멀어졌다. 코를 찌르는 혈향이 그 정신을 다시 붙잡았다. 마치 이 광경을 직시하라는 듯했다.


‘너무하잖아···!’


이를 악물고 그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아직도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전장의 열기와 혈기가 채 식지도 않았다는걸 알겠다. 주검들이 대지를 거멓게 덮고 있는데도 수습도 못하고 있었다.

전쟁이 왜 벌어지는지 알고있다. 국가는 개인과 입장이 전혀 다르다는것도 알고있다. 커다란 짐승이 함부로 도망치지 않는것처럼 국가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단것도 알고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그래도 이건 아니다. 사람끼리 이래서는 안 된다. 조금 더 먹겠다고, 잘 입고 잘 살고 편해지겠다고 이래서는 안 되는게 아닌가!


“반드시 막겠어.”


이 참혹한 전쟁, 아니 참사는 이 두손으로 직접 막으리라.

이전이라면 불가능했을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속이고 위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쟁을 막겠어.”


더 이상의 사상자는 없게하겠다. 지금 내게는 그럴 힘이 있으니까. 서로를 향해 휘두르는 창칼의 폭력을 모두 받아내고 부숴뜨릴 힘이 있으니까.

내가 전쟁을 억제하리라.


“복수도 하겠어.”


한센 남작으로부터 진실을 들었다. 하쉬의 죽음의 판을 깐것은 다름 아닌 레너 왕이라고. 그의 죽음에 개입했다면 설사 일국의 왕이라해도 가만둘 생각은 없었다.

가로막는다면 모조리 부숴버릴 뿐. 그게 ‘누구라해도’ 말이다.


“부활도 막겠어.”


사상자를 내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네임리스라한들 푸른 악마를 부활시키는건 불가능하다. 영혼의 힘이 없는 한, 푸른 악마는 부활할 수 없다.

따라서, 전쟁을 막는다면 부활 또한 막는 셈이다.


“더 이상 휘둘리지만은 않을거야.”


나는 결의했다.

이제는 그럴 힘이 이 두 주먹에 넘칠만큼 있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휘두를 차례였다.




***




“오랜 세월,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고마님.”


언제나 강건하고 굳세게 세계를 수호해왔던 영웅의 끝이었다. 소년에게는 아무렇지않은척 했지만, 더 견딜 시간도 없었다.


“···그래. 너희에게는 항상 미안했다.”


그 말에 탈리아의 눈빛이 떨렸다. 그녀의 가문은 그림자속에 숨어 일만년이란 시간동안 세상을 지켜왔음에도 누구에게도 이름을 드러낼 수 없었다. 수호자들은 그림자처럼 누구에게도 의식되지 않은채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었다.

일만년이란 역사를 누가 단 한줄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 그녀의 가문과 고마 사이에는 얽히고 섥혀 풀어낼 수 없을만큼 복잡한 거미줄같은 애증의 관계가 있을것이다.

탈리아는 지금 이 순간 그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영웅의 한 마디에 모두 보상받은것만 같았다.


“너흰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었지. 하지만, 발로그가 소멸한다면 이제 그럴 필요는 없을거다.”


남자는 마지막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를 영웅으로 만든것은 그의 힘이 아니라, 강철보다도 단단한 의지였으니.


“고마웠다.”


“······!”


“이제 자유롭게 살아가라. 너희는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니···”


“···고마님.”


목이 메였다. 탈리아는 물 한잔이 절실했지만 고마에겐 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으로 소년을 조금만 더 인도해다오. 오직 너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니··· ‘그것’과 더불어 새로운 영웅을 부탁한다.”


어느새 뺨을 타고 눈물 한 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탈리아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전해지는 감각에 볼을 쓸었다. 어찌됐건 탈리아는 태어나 평생을 고마와 함께 살아간 몸이다. 그의 죽음을 쉽게 납득할 순 없었다.

예견된 죽음이었지만, 그건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고마님!”


탈리아는 숨 쉬지 않는 고마의 위에 엎어져 울었다.

영웅은 누구에게도 알리지않았고, 세상을 수호했음에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일만년이나 변치않은 그의 마음을 도대체 누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런 영웅의 죽음이라기엔 너무나 허무하고 또 덧없었다. 가장 안타까운것은 고마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 말이 네임리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세상은 끝장일테니.

고마의 고독을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아하하. 아하하하.”


소년은 영웅이 분명하다.

영웅의 자질을 증명하고, 시련을 통과했다. 또 고마님이 보증했고, 고마님의 힘을 이었다.

하지만 그 강대한 힘을 소년은 다룰 수 없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익숙해지는데만도 오랜세월이 걸리리라.


“리드 군···”


탈리아는 고마님의 죽음에 온전히 슬퍼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동시에, 고마님이 어째서 자신에게 소년의 인도를 부탁했는지를 알았다.


“···아하하. 아하하하. 너무하잖아요. 고마님.”


소녀는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




새벽이 밝고, 보초병들의 노고가 쓸모없었다고 느낄 즈음에 코아티르의 전사들이 천막을 접는게 보였다.

천막을 접는다는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더 이상 여기서 머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즉, 회군回軍하는게 아니라면 오늘 반드시 끝을 내겠다는 의지표현이었다.


“오늘만 견디면 된다.”


아르고는 이제 반밖에 남지 않은 병사들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우린 백배나 많은 적과 싸웠다. 그리고 우리보다 많은 숫자를 죽였지. 오늘은 더 죽이는거다! 저 들개놈들이 감히 아르미안을 넘보지 못하도록!”


“오우!”


병사들이 창을 올려댔다. 절반이 죽었다는걸 다들 알고있다. 분명 오늘은 견디지 못할거란것도 알고있다. 여기서 있는건 그야말로 개죽음이란것도 알고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하루 전만해도 같이 술을 마시던 동료들의 반이 시체가 되었다.

진짜 남자라면 도망칠리가 없다.

병사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죽음이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각자의 두 눈에 담겨있었다.


“준비, 됐나?”


그 준비란게 죽을 준비란걸 모를리가 없다. 그런데 여전히 동요는 없다.


“물론입니다!”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그와 거의 비슷하게 코아티르의 전사들은 천막을 모두 걷었다. 이제 다시 한바탕 싸움을 시작하게 된단 뜻이다.

화살을 장전하고, 시위에 걸었다. 잘 쏠 필요는 없다. 그냥 대충 쏘기만 해도 어지간해서는 맞게된다. 그만큼 많다는 소리였다.


“···와라!”


다만 남아있는 화살이 별로 없···?

쿠웅!

갑작스레 달려드는 코아티르의 전사들과 아르미안의 병사들 사이, 성벽 아래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높은곳에서 돌이라도 떨어진걸까? 와이번이 추락하기라도 한걸까? 곧 사라진 흙먼지속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아직 앳되보이는 소년이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아르고가 병사들을 밀치고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착각이 아니었다. 몇번이고 눈을 비벼도 그 자리엔 소년 한 명이 굳건히 서 있을 뿐이다.

즉, 흙먼지를 일으킨 장본인이 저 소년이라는 소리.


“···사람인가?”


수만의 대군이 일순 움찔할정도로 거대한 폭음과 대량의 흙먼지였다. 그걸 개인이 피어올렸다는게 믿기 힘들었다.


“···누구냐! 함부로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외인이라면 물러나라!”


어린 소년의 외형이었지만, 코아티르의 병사들조차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굶주린 전사들이기에 알고있는것이다. 저 소년이 강하다는것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본래라면 당장에라도 목을 베었을테지만, 저런 말을 하는것이다.


“지금부터.”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분명 성벽 위까지 들릴리가 없건만, 똑똑히 들리는것에 아르고는 온 몸에 소름이 올라오는것을 느꼈다.


“모든 싸움을 금지하겠어.”


그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있었다.

의지나 신념같은게 아니라 정말로 ‘힘’ 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 정체를 알기 힘든 미증유의 힘이 소년의 목소리에 가득 담겨있었다.

힘이 담긴 목소리는 그 자체로 무기요, 마법이요, 언령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전신이 마비된듯 착각에 빠져버렸다.

몇 명도 아니고, 몇 십명도 아니고, 몇 백명도 아니었다.

천이라는 단위조차 우스운. 이십만에 달하는 모든 인원들이.


“정체를 밝혀라! 네놈은 누구냐!”


다만, 그건 일반 병사와 전사들에 한했다. 아르고나 코아티르 왕 같이 무예가 일정 수준 이상에 있는 자들은 굳지 않았던 것이다.


“···영웅.”


미친 자의 말이라고, 평소라면 판단했을것이다. 그러나 소년의 기세와 그 등장이 범상치 않았기에 함부로 반박할 수 없었다.

아무도 말을 않자 소년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이 전쟁은 내가 끝내겠어.”


누구라도 서로의 피를 보겠다면 자신을 넘어라!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미치도록 광오한 말이었다.

제아무리 강하다고 하나 일개 개인.

이십만에 달하는 군사를 상대로 싸우는건 무모를 넘어 불가능했다.


“미친거냐! 더 이상 그 입을 벌리지 못하게 해주마!”


성큼성큼 나서는 코아티르의 어느 전사. 곰가죽 옷을 입은 그는 전사중에서도 전사라는 대전사大戰士의 위치에 있는 자였다. 코아티르 전체에서도 열 명이 넘어가지 않는 대전사. 즉, 그는 코아티르에서 열 손가락안에 꼽히는 강자라는 소리였다.


“···죽이진 않을거야.”


곰가죽 옷을 입은 전사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 아닌가? 감히 코아티르의 대전사를 상대로 ‘죽이지는 않겠다?’ 라니!


“나는 네놈을 씹어먹어주겠다!”


으르렁 거리는 얼굴이 흡사 맹수였다. 그 중에서도 곰가죽을 입었으니만큼 곰에 가까운 기상이 있었다. 등에 맨 거대한 도끼는 트롤조차 베어본 적이 있는 거병巨兵. 어지간한 장사가 아니라면 드는것조차 불가능하다.


“음··· 배틀엑스의 일종인가? 저런 크기를 다룰 순 있는건가?”


아르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것이 그 도끼는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걸 들고있는 사내의 체구도 어지간히 컸지만, 그 도끼는 사내보다도 컸다.

자신보다 큰 거병을 다루는게 과연 가능할까?


“당신, 그거 제대로 휘두를 수는 있는거야?”


소년이 묻자 곰가죽 전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직! 우리의 왕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나의 실력을 의심하지 못한다! 네놈의 목이 떨어지고 나서야 후회할것이다!”


멀리서 코아티르 왕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아티르 왕국 제일의 전사인 왕은 알고있다. 저 사내야말로 대전사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자라는것을. 모렉 공작이 아니고서야 이 아르미안 땅에 그를 상대할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묘한 불안감이 드는것은.


“···으음!”


전사로서의 코아티르 왕이라면 절대로 자신의 촉을 무시하지 않았을터이나, 지금의 그는 ‘왕’이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몸.

코아티르 왕은 침묵하며 그 싸움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어진것은 싸움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폭력’ 일 뿐이었다.




***




똑똑히 보인다.

그의 실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아마도 네크로맨서를 막 쫒기 시작하던, 볼드 남작령의 참사를 겪을즈음의 나와 비등 혹은 그 이상이었다. 이전의 나였더라면 얼마 가지 않아 무릎을 꿇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나는 그가 내뻗은 도끼를 맨손으로 잡아챘다. 묵직한 느낌에 손목이 시큰했다. 거대한 도끼의 무게에 더불어 회전까지 실었으니 그 충격이 보통이 아닐 터.

그런데 시큰한 정도로 끝났다.

나는 새삼 내가 정말로 괴물이 되었다는걸 실감했다.


‘아. 영웅이던가?’


아무렴 어떠랴?


“이, 이걸 맨손으로?”


곰옷의 사내가 당황한 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 보일것은 더 놀라운 일일것이다. 나는 손에 힘을주었다. 그러자 마치 유리조각처럼 거대한 도끼가 산산이 부숴진다.

악력만으로 거병을 부순것이다.


“······!”


“당신이 제법 강해서 다행이야.”


본보기가 되어줄 수 있을 터. 주먹을 쥐는것도 필요없었다. 파리를 쫒는것처럼 그를 손바닥으로 후려치자 저 멀리까지 날아간다.

지금의 나는 모렉 공작이나 ‘네크로맨서’ 조차도 우습게 여길만큼 강해져있었다.


“···대, 대전사가!”


성벽위의 중년의 기사가 당황하는게 느껴졌다. 대전사라. 거창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전사라는 거창한 이름에서 유추하건데 그는 분명 이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그를 제대로 되지도 않은 일격으로 꺾었다. 충분한 본보기가 되었으리라.


“다시 말하겠어.”


한번 더 경고하자.


“더 이상, 싸움은 용납하지 않아.”


조용한 경고는 모두를 침묵하게끔 만들었다.


작가의말

추천,선작,조회,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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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드리우는 암운 2 18.08.13 158 4 13쪽
169 드리우는 암운 18.08.10 200 4 12쪽
168 제국으로 5 18.08.09 174 4 11쪽
167 제국으로 4 18.08.08 171 5 12쪽
166 제국으로 3 18.08.07 151 4 12쪽
165 제국으로 2 18.08.06 174 4 11쪽
164 제국으로 18.08.03 399 5 12쪽
163 밝혀지는 것들 18.08.02 411 4 11쪽
162 전쟁 14 18.08.01 170 5 12쪽
161 전쟁 13 18.07.31 166 5 12쪽
160 전쟁 12 18.07.30 176 5 12쪽
159 전쟁 11 18.07.27 184 4 13쪽
158 전쟁 10 18.07.26 17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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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전쟁 8 18.07.23 166 4 12쪽
154 전쟁 7 18.07.20 167 5 17쪽
153 전쟁 6 18.07.19 187 5 13쪽
152 전쟁 5 18.07.18 414 5 11쪽
151 전쟁 4 18.07.17 200 4 12쪽
150 전쟁 3 18.07.16 435 4 12쪽
» 전쟁 2 18.07.13 172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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