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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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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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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7.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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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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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전쟁

DUMMY

“저들을 보라!”


전쟁 선포로부터 23일째. 코아티르 왕은 어느새 코아티르와 아르미안의 국경이 마주하고 있는 자리에서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아티르와는 전혀 다른 넓고도 울창한 평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비록 붉은 숲이라는 미개척지가 있지만, 그를 제외하고도 드넓고 가능성이 넘쳐 흐른다. 황금처럼 빛나는 곡창지대는 코아티르가 무엇보다도 탐내는 것이었다.


“저 아르미안의 돼지새끼들을 보란 말이다! 멍청한것들아!”


왕의 호령소리에 군병들이 깜짝놀라 왕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수만의 병력이 손가락 끝을 따라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숨막힐듯한 압박감에 성벽위의 병사들은 꼴깍 침을 삼켜야만했다.


“도대체 얼마나 몰려온거야···”


피골이 상접한 모습인 자가 많았다. 비쩍마른 자는 많으나 살이 얼굴을 덮고 있는 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자가 수두룩하다는 소리였다.

반대로 아르미안은 풍족한 편이었다. 코아티르의 병사들이 보건대, 그들의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는것이 여간 잘 먹는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들의 왕이 말한것처럼 그들의 황금빛 곡창지대는 그들의 살을 불려놓은것이다.


“저 돼지새끼들이 얼마나 잘 먹어왔는지, 너희는 상상이 가느냐!”


“오오! 오오!”


“너희도 저리 배불리 쳐먹고싶지 않더냐! 좋은 옷을 입고싶지 않더냐!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지 않더냐!”


“오! 오오오!”


병사들의 불규칙한 호응소리에 코아티르 왕은 목청을 높였다. 전사출신의 왕은 지금 이 순간 왕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울부짖어라! 코아티르의 늑대들아! 저 살찐 돼지새끼들을 그냥 놔두지 마라! 폭행? 약탈? 강도? 살인? 강간? 그 모든 행위를 너희의 왕이 허가하겠다!”


“우오오오오오오오!”


“가라! 늑대놈들아! 모조리 물어 뜯어라!”


크게 함성지르는 모습이 아르미안들에겐 흡사 ‘늑대’처럼 보이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목에 닿자 아르미안의 병사들이 움찔거렸다. 날붙이가 목에 닿은것처럼 섬뜩했기 때문이다.


“대장님! 어찌, 어찌해야합니까!?”


아르미안의 인물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코아티르와의 국경을 지키는 국경 수비대 대장인 아르고 헤르토는 성벽 주변에 둥그렇게 해자를 파 놓기는 했다. 물을 채워넣었더라면 좋았을테지만 그만큼의 물을 쉽게 길어올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쉬운대로 땅구덩이만 파둔 셈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제법 도움은 되리라.


“기다려라! 어차피 저들은 늑대들이다. 짐승들이 공성전에 능할리가 없지않느냐!”


아르고 헤르토는 거대한 신장을 가진 중년인이었다. 그 험상궂은 얼굴에 어울리게 강직한 성품과 무예 실력은 그를 ‘철벽의 아르고’ 라고까지 불리우게 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의 머릿속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다.

눈 앞에 있는 적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 게다가 그 숫자 또한 몇 배가 아니라 몇 십배가 넘게 많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쉽게 생각난다면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을터였다.

아직 다 추산하지도 못한 코아티르의 총 병력을 아르고는 대략 이십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십만이라고 하니 간단해보이지만 끝도 없이 지평선 너머까지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는 정도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여기까지 오는데만 23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릴법도 한것이다.


‘어찌해야 좋은가?’


침중한 눈빛으로 아르고는 전방을 바라본다. 국경을 지키고 있는 이곳의 수비병력은 결코 작지않았다. 총합 이천에 이른다.

하지만, 이천과 이십만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백배의 차이였다. 수성과 공성의 차이점에서 비롯되는 수성의 유리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만한 인원수라면 오래가지 못할것이다.


“······이틀! 이틀을 견뎌야한다! 우리가 이틀을 버텨야만 살 수 있다!”


이틀만 있다면 이곳에 분명 지원병력이 도착할것이라고 아르고는 목청을 높였지만 사실 그 스스로도 부정적이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려면 진작 왔겠지! 23일 동안 가만히 있었는데 지금 허겁지겁 올 리가 없지않느냐!’


즉, 국경은 버리는 패라는 소리였다. 지원 병력이 올 시간은 충분하고도 넘쳤었으니까. 아르고는 허리춤의 칼을 거세게 쥐었다.


‘제길! 여기가 내 무덤인가!’


벗어날 수 없는 죽음.

항복하더라도 코아티르는 받아주지 않을것이다. 항복을 받아주는 척 하면서 성문을 열면 그대로 들어와 이곳에 지옥도가 펼쳐질거란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자신들을 버린 왕국을 원망하면서도 항복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딱했다.


‘끝까지 싸운다!’


아르고는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래. 아직 지원이 오지 않았을뿐이다. 모든건 내 억측에 불과하고 지원병력이 모종의 사정으로 조금 늦어질지도 몰라. 조금만, 조금만 더 견딘다면 괜찮을거야. 병사들과 함께 조금만 더 여기를 지킨다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코아티르의 늑대들이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그 생각은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땅구덩이 속에서 사다리를 성벽에 짚고 죽음도 불사하고 달려드는 전사들은 보는 것만으로 기가 질리기 충분했다.


“······!”


공성전에 익숙하지 않다고? 그게 뭐 어쨌단말인가? 어차피 아르미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잘한 영지전 정도야 있었지만, 그건 국경 수비대가 겪을 일은 아니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된 평화가 알게모르게 아르미안 병사들의 정신을 모조리 갉아먹어버린 것이다. 코아티르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정말 도축장에 끌려가서도 죽을걸 모르는 돼지처럼 눈만 멀뚱히 뜨고 있다.

그들이 사다리를 놓아 기어오는 꼴을 보고만 있다. 그야말로 통탄할 노릇이라 할 것이다. 당장 이 순간까지 들이닥쳤는데도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아르고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타오르는듯 싶었다. 답답함과 함께 타오른 그게 무엇인지 채 알기도전에 급히 명령을 내렸다.


“사다리를 밀쳐라! 올라오지 못하게끔하라! 궁수들은 뭣들하는가! 얼른 화살을 쏘지 않고서?!”


그제서야 하나 둘 시위를 당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듯 시위를 걸어 활을 쏜다. 평화가 오래 지속했다해도 궁수들의 실력이 어디가는건 아닌지라 그들의 날카로운 화살이 코아티르의 전사들에게 적중했다.

사실, 워낙에 밀려드는 바람에 아무렇게나 쏴도 빗나갈 염려가 없기는 했다. 화살이 닿으면 픽픽 전사들이 쓰러지곤 했지만 그들은 결코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들개들이 올라오게두지마라!”


아르고는 검을 뽑아 그들을 지휘했다. 국경 수비대 대장이란 지위는 도박으로 타낸것이 아닌지라 그 실력이 출중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할 재간은 없었다.


“돌! 돌을 굴려라! 사다리가 닿으면 밀쳐!”


코아티르의 전사들은 척박하고 차가운 땅에서 살아왔다. 그들 대부분이 공성전에는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했지만, 산악과 절벽을 오르는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건 성벽이라해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성벽 위로 하나둘 올라오는 코아티르 전사들! 막상 성벽 위에 서자 일반병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병사 서넛이 달려들어야 전사 하나를 제압하는 형국이거늘, 이곳 수비대의 인원은 2000에 불과했다.


“사다리를 밀쳐내는데 집중하라! 올라오면 더 힘들어진다!”


사다리를 몇개나 넘어뜨렸건만, 세워지는 사다리의 수가 더욱 많았다. 아르고는 지휘관의 위치에서도 쉴새없이 뛰어다녔다.

기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삽시간에 목숨을 잃고 쓰러졌는데도 늑대들은 멈출줄을 몰랐다.


‘저것들에게 공성병기가 없는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이곳이 뚫린다면 어찌한다?’


전사들의 기량은 놀라웠다. 만약 수성의 이점 없이 평지에서 맞섰더라면 그들은 한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으리라.

철벽이라 불리우는 아르고조차 숨을 헐떡이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다르겠는가? 땀을 뻘뻘 흘리고 피로 칠갑을 하며 저항하고 있었다.

확실한건 이곳이 뚫리면 아르미안은 패망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친구 지인 가족들이 노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평생 이룬것들은 약탈당하거나 불속에서 타버려 한 줌 재가 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국경 수비대의 표정이 표독하게 변해갔다.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듯이 투지를 불사른다.


“아르미안을 위하여!”


두려운 생각이 차마 항복같은걸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네들에게 비겁자라 손가락질받고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겠다! 도망칠 자는 가라!”


잡지 않겠다 말했음에도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죽음이 코앞인데도.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것은 그들이 남았다는것이다.

아르고의 입가에 알듯말듯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면 함께 발버둥쳐보자! 들개들에게 아르미안을 침공한것이 얼마나 멍청한짓인지를 가르쳐주는것이다!”


“오오오오!”


밤이 되고, 횃불이 전장 곳곳을 밝혔다. 성벽 근처는 이미 붉지 않은곳이 없을 정도였다.


“킁! 내 이곳에 군막을 펼쳐야할줄은 상상도 못했다.”


코아티르 왕이 언짢은 기색으로 코를 씰룩였다. 눈이 붉은것이 어지간히도 심기가 좋지 못한듯 보였다.


“생각보다도 강군입니다. 돼지들 주제에 항복같은건 않는듯 싶습니다.”


곰가죽처럼 보이는 털옷. 봄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덥지도 않은지 그걸 입고있는데다가 여기저기의 흉터와 녹슨 도끼를 메고 있는것으로 보아 그 또한 전사임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하루를 버티는게 고작이지. 그래. 얼마나 죽었는가?”


“···삼천입니다.”


곰가죽 옷의 사내가 얼굴을 푹 숙였다. 삼천의 전사들이 숨을 거뒀다는 소리에 코아티르 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작부터 삼천이라? 그래가지곤 아르미안을 점령하는건 요원하다! 먼저 우리가 전멸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걱정마십시오. 이 국경만 넘는다면, 고난은 끝입니다. 이 뒤로는 모두 평야지대입니다. 성벽이 있다고는 하나, 작은 영지들일 뿐입니다!”


호언장담과 같은 말에 코아티르 왕의 안색이 조금은 나아졌다. 코아티르 왕 또한 알고있는것이다. 평지에서 싸운다면 아르미안의 돼지새끼들에게 질 이유가 하등 없다는것을!


“내일까지 국경을 점령하라! 그런 다음엔 내 도끼에도 피 맛을 보여줘야겠다!”


“이미 저들은 만신창이입니다. 분명 내일까진 점령할 수 있을것입니다!”


충직하고 험상궂은 전사들의 말에 코아티르 왕이 흡족한 웃음을 보일때, 대신들은 입을 꾹 다물고 한탄했다.


‘그 꾀 많은 레너 왕이 국경의 중요함을 모를까! 그들이 어찌 국경을 내버려두는지 생각하지는 않고···!’




***




“그래. 연락은 있었나?”


레너 왕은 슬슬 교국의 조사가 끝마쳤을즈음이라고 판단했다. 실제로, 교국은 적당한 타이밍에 조사를 끝마쳤다.


“예. 전하. 교국은 참전의 뜻을 밝혔사옵니다.”


물론 코아티르의 첩자들은 네크로맨서와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다만, 레너 왕이 그렇게 되도록 꾸몄다. 정황으로서는 너무나 완벽했다. 모렉 공작의 행선지를 알아낸것과 더불어 전쟁의 타이밍까지 말이다.

마치 그들에게는 이 모든 사태를 덮으려고, 혹은 악마신봉자들의 복수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것처럼 보이겠지.

사실, 심증만으로 국가간의 전쟁에 끼어든다는것은 미친짓이다. 하지만 한 국가가 초토화될 위기에 처해있는데 가만히 있는것도 이상했다. 원래, 중재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코아티르는 조금 지탄을 받았을지 몰라도.

그런데 전쟁을 선포해버린 이상 그런건 없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했다. 먼저 아르미안을 친 코아티르가 전쟁까지 일으켰다면 제국과 교국에서 참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명분을 저쪽에서 만들어줬다면, 제국은 좋아라하고 숟가락을 꽂을것이다.


‘···국경은 버려야했지만.’


국경을 버려야했던 이유도 있다.

조금쯤은 엄살을 부려줘야 교국과 제국이 서두를테니까. 국경이 무너졌다는것은 국가의 존속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악마신봉자들과 손잡은 자들에게서 서대륙을 수호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그들 스스로 쓰려하지는 않겠지.

하기사, 타국만 믿고 있는건 너무나 멍청한 짓거리긴 하다. 적어도 레너 왕은 그런 머저리가 아니었다.

적의 왕이 친정했으니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 국경이 무너지는순간, 진짜 전쟁이 시작되는거지.”


레너 왕은 자신의 폰을 미끼로 쓰고서 상대방의 킹을 유도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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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드리우는 암운 2 18.08.13 15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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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전쟁 14 18.08.01 170 5 12쪽
161 전쟁 13 18.07.31 16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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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전쟁 5 18.07.18 414 5 11쪽
151 전쟁 4 18.07.17 200 4 12쪽
150 전쟁 3 18.07.16 434 4 12쪽
149 전쟁 2 18.07.13 171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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