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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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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746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7.30 00:03
조회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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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전쟁 12

DUMMY

“······.”


무아지경無我之境.

지금 내 상태를 말하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잊고, 싸우는데만 전념한다. 상처가 없을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큰 상처는 없었다.

감각이 뻗어나갔다. 스멀스멀, 전투를 거듭할때마다 열기속에서 집중력이 커져만갔다. 이윽고는 보지 않고도 사방의 모든걸 느끼게 되었다.

공기가 밀려서 바람이 일어난다. 그 미세한 바람으로부터 나를 찔러들어오는 창의 궤적을 읽는다. 창뿐만이 아니라, 검, 화살, 단순한 주먹질에 이르기까지 혹은 발을 끄는 움직임같은 작은것도 놓치지 않았다.

내 감각은 지금 날카롭게 벼려진 한 자루의 칼날과 같았다.

또, 이 감각은 나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감각은 뻗어나갔다고 했지않은가? 결국에는 일대의 모든것을 느끼게 되었다.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 일대의 모든것을 느낀다는것을?

투박한 군화소리와 그 군화소리 아래에 개미가 밟혀죽는 소리. 창과 방패가 맞붙으며 울리는 쇳소리와 긁히는 마찰소리. 누군가의 무기에 찔려 내뱉는 단말마. 거친 호흡소리와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소리.

한참을 달려 지쳐버린 말이 쓰러져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 그 흙먼지 속에 섞여있는 흙 한알한알이 바닥에 떨어지며 타닥거리는 미세한 소리까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순간에 수천, 수만, 수억의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들이 어떤 소리인지 분석해낼 수 있었다. 아마 사람에게는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이라고 부르기 힘든 존재이기에 가능했다.

모르는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이 방대한 정보를 이해한다는것을.


‘미쳐버릴지도.’


핏방울이 튀었다. 남의 것인가했더니 내 것이었다. 여러가지를 느낀다는것은 반대로 한가지에 소홀해진다는 것이기도 했다. 주변의 모든것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건 내 오만이었던것이다.

이렇게나 많은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있는데도.


‘······.’


아픔은 없었다.

나는 다시 감각을 좁혔다. 좁히면 좁힐수록, 더욱 자세하게 알게되었다. 웃기게도 이런 난전속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은것이다.

더 발전할 단초를 찾은것이다.


“괴물같은 놈!”


병사들로는 안된다고 생각한건지 어느새 내 주위는 기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제국군의 기사들이었다. 뛰어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력자들. 제국의 드넓은 땅에서 그 수많은 인원들 중에서도 손꼽혀서 기사가 된 것이다. 분명, 아르미안의 기사들보다 그 실력이 높을 터.


‘···빨라!’


기사답게 힘으로 밀어붙인다거나 하는 멍청한 방법은 쓰지 않았다. 확실하게 절제된 기술은 그 연습량을 쉽사리 짐작케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상대하기 어려운가?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삼 초만 있다면 한 명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일대일의 상황이라면 말이다.

이곳은 난전이 펼쳐지는 전장이었고, 내 편은 없었다.

오로지 혼자.

나를 둘러싼 기사들의 숫자만해도 일곱명에 뒤쪽으로는 코아티르의 전사들이 그만큼 몇줄이나 있었다.

제아무리 나라고해도 쉽사리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길!’


악력으로 무구를 부술 수도 있었다. 그게 어렵진 않은데 어째서인지 칼을 몸으로 맞으면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다는게 문제였다. 아니, 그게 정상이긴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높게 뛰었다. 그들의 실력이니만큼 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고 당황하거나 서로를 찌르는 일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아군’ 만 이 자리에 있는건 아니었다. 여기는 난전이 벌어지는 전장! 제국군 기사들의 반대편, 즉 내 뒤쪽에는 코아티르의 전사들이 있었다.

그렇게 되자 나를 노리러 들어오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보는 상황이 벌어진것이다. 한숨돌릴 수 있었다.


“이 놈!”


그렇게 공중에서 내가 착지한 곳은 또 다른 전장이었다. 일대가 완전히 전장이 된 것이다. 한두번 뛰었다고 벗어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곳엔 거대한 덩치의 중년인이 있었다. 복장이 거친걸 보니 아무래도 제국군이나 아르미안의 기사가 아니라 전사인듯했는데 그는 나를 보자마자 경계태세를 표했다.


“그 어린 꼬마 놈이다! 조심해라!”


코아티르 특유의 거친 억양. 전사는 나를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것과 동시에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코아티르의 전사들이 도끼를 선호하는데 반해 그는 검을 사용했는데, 사실 별다를것도 없는것이 그 검이 농담이 아니라 성인남성보다도 거대했다.

성인 남성이 셋이 들어도 힘들법한걸 거세게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지만, 그렇게 거대한 무기는 자연스럽게 궤도가 한정되어 있었다.

옆으로 휘두르던가, 아래로 내리찍던가. 두 개 뿐이다.


“저 꼬마놈을 잡아라!”


저런 무기는 어느 수준을 벗어나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조금 다른것 같았다. 그의 방식도 옆으로 휘두르던가 아래로 내리찍던가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그게 평범하지가 않았던것이다.

쿠구구구구!

공기를 송두리째 짓누른다.

중검重劍이라. 압박감은 실제로 느껴지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라 공기가 짓눌려지니 그 기압만큼 나 또한 눌러지는것이다. 그의 힘이 또 하나의 중력으로 작용한것이다.


“······!”


“애송이 놈아! 유언도 남기지 못하게끔 이 자리에서 바로 뼛가루로 만들어주마!”


그의 의기양양한 외침. 그것과는 다르게 나는 몸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전사들을 밀치며 그 속으로 파고든다. 자연스레 그의 검은 멈추게 된 것이다.


“어떻게?!”


“당신의 검은 무거워. 그리고 놀라워. 그건 인정하지.”


한순간 전사들을 헤집어 놓은 나는 그들의 사이로 들어가···


“하지만 그것뿐이야!”


힘만이 있는 검은 소용없는것이다. 중요한것은 균형. 힘과 속도, 기술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만했다.

나는 그의 검에 올라탔다. 나를 들어올리려했지만, 나는 이미 검을 타고 그의 머리쪽에 있었다. 그는 뒤늦게 검을 버리려고했지만 그 판단이 조금 더 빨랐어야했다.


“네가 뭘 안다고 떠드느냐!”


“당신의 왕보단 강하거든!”


내 주먹이 그의 왼쪽볼을 스쳤다. 일부로 스치게한것이었다. 얼굴을 제대로 친다면 그대로 사망에 이를테니까. 아무리 터프한 남자라고해도 골통이 산산조각나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속도는 곧 힘이었다. 그의 검에 일말의 위협을 느낀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만큼 속도를 내야했다. 힘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었으므로 볼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듯했다.

빠드드득-


“···솜털같구나!”


터프하게도 남자는 스쳤다고는 하나 내 주먹을 견딘것이다. 바위라도 부숴버릴 주먹일텐데.


“주먹은 이렇게 치는것이다!”


그는 이미 검을 놓았다. 나는 약간이지만 공중에 떠 있었고, 주변에는 전사들까지 있었다. 노려오는 검의 궤적들을 피하자 그의 주먹만이 남았다. 이것만큼은 나라도 피하지 못했다. 원래라면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었을텐데.


“큭!”


인중 어림이 축축했다. 코뼈를 두드려 맞았는데 아무래도 코피가 난 모양이었다. 애들 싸움도 아니고 코피가 조금 난게 쪽팔리지는 않았다.


“당신 주먹도, 별 것 아니군!”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나는 발을 뻗은채로 몸을 한바퀴 돌렸다. 누군가는 회축이라고 부르는 동작이었다. 전사들을 단번에 휩쓸고 난 후, 그의 뻗어오는 주먹을 잡아챘다. 손목을 잡아채 세우고 아래로 힘을줘 나를 받치게끔했다. 나는 몸을 띄우고 쥐불놀이라도 하는 움직임으로 내 몸을 움직여 발로 그의 머리를 타격했다.


“···대전사님!”


그 또한 대전사였던 모양이다.

안타까운건 이거였다. 그의 실력보다 내 실력이 뛰어났다는 점.


“터프하지만 그게 끝이야!”


다시 한번 나의 발이 그의 낭심어림을 가격했다.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충격이 상당했으리라. 얼굴을 들어올릴 수 있다면 게거품을 물고있을지도 몰랐다.


“코아티르와 무슨 원한이 있나!”


전사들이 이를 악물고 도끼를 휘둘러댔다. 나는 그 도끼들을 꺾어버리고 자리를 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것이다.


‘내가 원하는건 싸움이 아니야. 전쟁을 멈추는거지!’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뜨릴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 효과적인것은 윗대가리들을 꺾는것이다.


‘대전사를 꺾은건 우연이었지만, 좋았어.’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코아티르가 휘청이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제국군과 아르미안이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주변의 전사들이 후퇴하고 있다는것은 나쁘지 않은 징조였다.


‘그러면 아르미안과 제국군의 인물들도 처리하면 되겠어.’


굳이 교국을 빼놓은것은 어차피 교국에는 500의 성기사밖에 없으니 우선순위가 밀리거니와 그 웃대가리는 내 스승이기도 한 대주교 영감님이 아닌가.


‘······.’


친분도 친분이지만, 대주교 영감님은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지금의 나라면 분명 어렵지않게 승리를 쟁취하겠지만, 시간이 걸린다. 비교적 손해를 보는것이다.


‘아르미안? 제국군?’


어느쪽을 처치하는게 좋을까? 고민은 있었지만 곧 제국군 쪽이 나으리라고 여겨졌다.


‘제국군이 있으니까 아르미안이 코아티르를 칠 수 있는거야. 제국군이 없다면 그럴 수 없을거야. 그러면···’


반대로 아르미안이 없다면 물론 제국군도 멈출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피해가 좀 더 생기겠지.

모든것은, 사실 내 잘못이기도 했다.


‘내가··· 조금 더 힘이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네임리스를 막을 수 있었을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쟁은 그래도 일어났을거야. 제길.’


네임리스가 전쟁을 일으킨건 아니었다. 결국 일어날 전쟁이라면 어떻게든 막아야했다. 푸른 악마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죽는게 바람직할 리가 없는것이다.


‘지휘관은 어딨지?’


보통 지휘관들은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복장으로 제국군과 아르미안 그리고 코아티르를 구분할 수 있었으니 제국군쪽으로 간다면 그들의 지휘관을 찾을 수 있으리라.


‘안 보여.’


삼국을 다 합치면 오십만이 넘는 인원이었다. 쉽게 찾을 수 있는게 이상한것이다. 나는 재빠르게 제국군쪽으로 전진했다. 병사들이 너무 많았기에 쉽진 않았지만, 공중에서 사람들을 발판삼아 달렸다.

내 전속력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어지간한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는 빨랐다.


‘제길! 많기도하군.’


그러다가 가끔 투구가 다른 자들은 발 힘을 강하게 밟았다. 투구 위나 방패 위였지만 내 실력과 능력이라면 밟는것만 해도 충분.


“백인장님!”


백인장님.

즉, 투구가 다른 자들이 백인장이라는 뜻이었다. 이 수많은 인원들 중에서 백인장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단순한 계산으로 그들만 모아놓아도 이천명에 달하는 백인장들이 나올테니까.


‘하지만 의미있어.’


분명 이 난전속에서도 줄이 있을것이다. 난전이 심해서 화살은 쏘고있지 않지만, 분명 후위를 맡기로 한 자들과 전위를 맡기로 한 부대들이 따로 있을것이란 소리다.


‘백인장들이 여기있단건 이 자들이 앞을 맡는 자들.’


뒤를 맡는 자들이 있을것이다. 이건 당연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부대 배치방향이 어떻게 되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방향을 조금 꺾어서 달렸다.

그들의 조금 다른 색깔의 투구가 비교적 보이지 않는 방향을 향해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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