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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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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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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10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7.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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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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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전쟁 10

DUMMY

“으음···”


일순간이나마 분명히 압도당했다. 과연 성자라는것은 이름값뿐만이 아니라는건가. 레너 왕은 침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성자의 눈초리는 여러가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애도한다고···했나요?”


그녀가 다시 묻는 말에 대답해줄 말은 없다.

그 성기사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여긴건 사실이었다. 분명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몰아넣은것은 누구인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실행범이 아니라고 그렇게 잡아떼고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왕은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흉신악살의 살인마의 것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또 그녀가 마음먹는다면 자신의 목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꺾이겠지.

물론 그럴리는 없을것이다.

모렉 공작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있는데, 그럴리가 없었다.


“분명 그랬소.”


레너 왕의 대답에 성자는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얽히고 얼마나 지났을까? 자연스레 세번은 눈을 감았을 시점에 에르네스 메르실은 입술을 짓씹고 고개를 내렸다. 어떻게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실, 에르네스 메르실 그녀라면 레너 왕을 지금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다. 모렉 공작이 걸린다한들 병상의 그를 상대로라면 신성을 사용한다면 그를 무시하고 레너 왕을 처치할 수 있으리라.


“······.”


얽히고 섥힌 복잡한 감정이다.

분명 그는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원수였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복수하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

분명 그것은 자신의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칠것이다. 왕이 시해된다면 아르미안의 화살은 코아티르에서 교국으로 향할것이다. 교국은 비난을 사는것을 막지 못할것이고, 성자라는 이름값은 땅에 떨어지겠지.

명예에 연연하는게 아니다.

다만 아버지인 대주교, 인자한 교황, 추기경, 사제들, 성기사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과 리드, 마셸 경.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교국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것들이 산산이 부숴질지도 모른다. 그 많은것들이 망가질지도 모르고 변질될지도 몰랐다.

에르네스 메르실은 화를 삭여야했다.


“···성자라. 과연.”


레너 왕은 그녀를 보며 실소했다. 신의 자식이라고까지 불리는 성자이나 그녀 또한 사람이니만큼 감정을 완전히 조절할 수는 없는듯 보였다. 이번엔 그녀가 아니라 레너 왕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보았다.


“그래서 할 말이 무엇이오? 이 바쁜 시기에 굳이 찾아와 하실 말씀이라도?”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숨을 몰아쉬는 에르네스 메르실을 보며 안되겠다 여겼는지 마셸이 한 걸음 나섰다. 그러나 에르네스 메르실은 팔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제가 직접 말하겠어요. 하쉬 경의 죽음··· 그에 대한 일을 꾸미셨다면 푸른 악마에 대한걸 분명 알고계시겠죠.”


“물론이오.”


레너 왕의 표정이 굳었다. 모렉 공작에게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푸른 악마는 곧 악마신봉자들의 신과 마찬가지인 악마. 푸른 악마를 언급했으니 그에 관련된 일일 터.

악마신봉자가 남아있다는 얘기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거겠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악마신봉자가 남아있다고 말하고싶은거요?”


과연, 모렉 공작의 예상대로인 말이 나왔다. 레너 왕의 표정이 절로 굳어있었다. 적어도 장내에 있는 인물들은 그런 레너 왕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들은 모렉 공작으로부터 레너 왕의 과거에 대해 들었으니까.


“···정확히는 ‘악마’ 가 있어요.”


악마.

레너 왕은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면서도 모렉 공작과 마셸의 표정을 빠르게 살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것을 보아하니 사전에 얘기가 된 듯 했다.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악마라···’


레너 왕 자신은 악마신봉자들을 보았을 뿐, 정작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실제로 만나본적도 없었고 말이다.


“악마. 계속해보시오.”


“그 악마는 푸른 악마를 부활시키려고해요.”


푸른 악마.

그래. 레너 왕이 알고있는 유일한 악마였다. 마찬가지로 본 적은 없지만, 거대한 키에 미노타우루스를 닮은 외형에 박쥐와 같은 날개가 붙어있으며 푸른 불꽃이 전신을 휘감고 있는, 그야말로 상상하기 어려운 괴물이라했던가.


“그 하쉬 경이 쓰러뜨린 푸른 악마말이오?”


“그래요. 하지만 쓰러뜨렸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어요.”


“어폐라···”


“푸른 악마를 쓰러뜨리지 못했단소리에요.”


“그건 이상하구려. 허면 그 악마를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소리는 그 악마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소리요?”


레너 왕의 말에 에르네스 메르실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부드럽게 고개젓는 그 모습조차 아름다웠지만, 레너 왕은 여전히 서늘함밖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다는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렇기도하고, 아니기도해요. 정확히는 그 악마가 ‘봉인’ 되었다는거죠.”


“봉인이라···”


레너 왕은 팔걸이를 두드렸다. 여전히 모렉 공작과 마셸 경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래요. 그 날, 다섯명의 사람들은 푸른 악마와 맞닥뜨렸어요. 하지만 전혀 상대가 되질 않았어요. 교국 최강의 성기사라는 하쉬 경조차 말이에요. 믿기어려운 일이지만 그야말로 악마라는 이름에 부합했죠. 푸른 악마는 모든것을 파괴할 기세로 날뛰었고, 일행들은 당장이라도 전멸할것처럼 휘둘리고만 있었어요.”


“···계속해보시오.”


“그 때, 우연찮게 봉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거죠. 정말로 봉인할 수 있었던건 우연에 불과했어요. 하쉬 경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봉인을 위해 아주 잠깐의 시간을 끌어주었을 뿐이죠.”


약혼자의 죽음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에르네스 메르실조차 그 장면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곁에 있는 마셸은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조차도 뇌리에서 땅속에서 기어올라온 지옥의 목소리가 들리는것만 같았다.


-파멸이 너희를 찾아가리라!


파멸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곤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지금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푸른 악마는 십만의 영혼을 취하는순간, 부활할거에요.”


“···부활한다라. 십만의 영혼이라···”


“이번에 부활한다면 정말 막을 수 없을거에요.”


그에 레너 왕은 웃어보였다.


“좋소. 정말로 그런존재가 존재한다고 칩시다. 그 하쉬 경조차 상대할 수 없었던 괴물이 있다고 치는거요. 아니, 분명 있기야하겠지. 하지만 설령 부활하더라도 다시 봉인할 수 있지않겠소?”


“···다른 악마가 있다고 했을거에요.”


“다른 악마라. 그 악마 또한 푸른 악마처럼 강한것이오?”


“그래요. 비록 푸른 악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요. 악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직접 만나본듯하군.”


“그는 무척이나 강했어요. 그를 직접 본건, 나와 리드뿐이겠죠. 분명히 말하겠어요. 그는 ‘네크로맨서’ 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악마가 직접 나선다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게 아니오?”


레너 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에르네스 메르실, 성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도저히 그런 괴물을 막을 방법은 없어보였다. 그 네크로맨서만 해도 왕국에 지대한 피해를 입혔고 끝내 모렉 공작이 나섰으나 목숨을 잃을뻔한 중상을 입었는데.


“그래요. 다만 그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모르겠어요.”


연결되지 않는 한 조각의 퍼즐.

그들은 ‘수호자’ 라는 존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호자와 고마, 그 퍼즐을 알고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수호자와 고마에 대해서 알 방법은 전무했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것은 알겠군.”


성자는 모든것을 얘기했던 것이다. ‘십만’ 의 영혼이 있다면 푸른 악마가 부활할것이며, 푸른 악마가 부활한다면 모든게 끝이노라고.

그렇다면 ‘십만’ 의 인간들이 죽지 않게끔 하기 위해 자신에게 찾아왔다. 그만한 사람들이 갑자기 죽을일은 없다.

그래. 전쟁만 아니라면.


“전쟁을··· 멈춰달라는 것이오?”


“그래요!”


“······.”


본래 레너 왕은 아무리 그럴싸하다고 하나 증거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자 에르네스 메르실의 감정이 너무 절절하게 전해져왔고, 모렉 공작의 굳은 표정이 맘에 걸렸다.


‘멈춰야하는것인가.’


이대로간다면 분명 코아티르의 들개들은 처치할 수 있을것이다. 더 이상 서대륙에서 들개들을 볼 일은 없겠지. 하지만···


‘제국이 걱정이긴 했지.’


고심하는 두 번째 이유였다.

만약에 코아티르를 처치하고 제국이 등을 돌려 변심한다면 어떨까? 제국이 생각만 바꾼다면 그 즉시 서대륙을 통일할 수 있을것이다. 레너 왕 자신이라면 분명 그렇게 할 것이고. 약간의 비난으로 앞으로의 위험을 모조리 제거할 수 있다면, 통일국이 될 수 있다면 바라마지않으리라.


‘···하지만 코아티르를 둔다면 호시탐탐 위협하겠지.’


어느쪽이던 나쁘지않다. 반대로 어느쪽이던 마음에 들진 않았다. 이대로 끌려가는건 레너 왕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후후. 좋소.”


그렇다면 자신이 할 것은 이도저도 아닌 제 3의 제안.


“전쟁을 멈춰주겠소.”


“······!”


에르네스 메르실, 성자의 눈에 처음으로 자신에게 보이는 좋은 감정이 미약하게나마 떠올랐다. 하지만 그 감정은 곧 바뀌게되리라.


“단,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고 밝혀진다면.”


“···제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하시는 건가요?”


약간의 불쾌감이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마셸 또한 그 감정을 숨기지 못했는데, 레너 왕은 둘을 유심히 바라보다 고개저었다.


“믿소. 그렇기에 말하는것이오. 어찌되었건 짐은 일국의 왕. 가벼이 움직일 수는 없는 위치라는것이오.”


“······.”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왕이 팔랑귀라 남들의 말에 이리저리 쉽게 흔들린다면 그 아래에 있는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을 무어라 생각할까.

마셸과 에르네스 메르실은 그에 대해서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좋소. 그 증거를 내게 가져오시오. 그런 강대한 존재가 있다는 증거를!”


“······.”


어떻게 그걸 증명할 수 있을까.

네임리스를 직접 잡아오기라도 해야하는걸까? 그건 불가능한데. 아니면 푸른 악마의 봉인이라도 보여주어야할까? 붉은 숲으로 들어가서? 레너 왕의 요구는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둘의 머릿속이 헝클어질 무렵, 레너 왕의 속내는 이러했다.


‘증명할 순 없겠지. 이건 단지 시간벌기다.’


세상이 멸망한다면 레너 왕 자신에게도 좋을건 없었다. 하물며 악마신봉자를 도와주는 꼴이라니?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건 싫었다.

단지 레너 왕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생색내기일 뿐이었다. 교국에게서 유리한 조건을 하나 받아먹으려는 것 뿐이다. 혹은 빚을 지워두려는것 뿐이었다.

염치없고 뻔뻔한 짓이지만 국가라는 단위가 된다면 이건 통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왕은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소. 설령 악마가 부활한다해도.”


레너 왕은 슬며시 미소지었다. 초초해하는건 어디까지나 저들이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렉 공작은 그 모습을 보며 살짝 한숨쉬었다.


‘종전이라··· 정말 악마신봉자들이 코아티르를 도와주는것 같이 보이는군. 이 내가 죽으면 저 들개들이 언제건 다시 쳐들어올 터···’


모두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때, 한줄기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


곧 대전의 문이 다시한번 열렸다. 병사들이 제지하려는듯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허사로 돌아가고말았다. 마치 허깨비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단숨에 그 앞까지 이동했던것이다.

병사들은 그에 놀랐고 모렉 공작은 경악했다. 그 움직임을 자신조차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증명해주겠어.”


모습을 드러낸건 작은 소녀.

그 소녀야말로 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당대의 수호자였다.


작가의말

추천,선작,조회,코멘트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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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전쟁 5 18.07.18 414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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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전쟁 3 18.07.16 43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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