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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곰의 서재입니당

리드리스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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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농곰
작품등록일 :
2018.01.26 10:19
최근연재일 :
2018.09.30 17:30
연재수 :
206 회
조회수 :
67,712
추천수 :
957
글자수 :
1,177,611

작성
18.08.0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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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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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전쟁 14

DUMMY

“일발장전!”


지휘관의 말에 석궁부대는 화살을 장전했다.

석궁, 현재는 제국에서밖에 사용하지 않는 무기였다. 압도적인 위력과 속도를 가지고 있지만 쓰이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사정거리가 짧아서였던가.’


석궁은, 화살에 비해 사거리가 짧았던것이다. 실제 백병전에서 보병이 진격한다면 사정거리 내에서 겨우 한열이나 쓰러뜨릴 수 있을까?

반대로 화살은 석궁에 비해서 파괴력도 속도도 떨어지지만 몇배나 더 긴 거리를 갈 수 있었다. 또한, 또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는 성벽 너머까지도 화살이 닿았으니 비교적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는 석궁에 비해서 범용성이 좋았던것이다.


‘그런데···’


사장되다시피한 석궁을 제국에서는 사용한다.

단점을 극복한건 아니었다. 오히려 제국에서는 반대로 사거리를 줄여버렸다. 다만 석궁의 장점을 극대화시켰을 뿐이었다.

사거리를 줄이고, 속도와 파괴력을 압도적으로 높인것이다. 그리함으로써 갑옷을 입은 병사마저고 ‘관통’시켜버리는 힘을 가진것이다.


‘저건 나라도 위험해.’


제아무리 나라도 화살촉이 꽂히지 않는것은 아니었다. 또한, 저 특제 석궁이 한두발이라면 모르되 수십 수백발이나 되는걸 피할 자신은 제아무리 나라도 없었다.


“사격 준비!”


석궁의 도르래를 끌어 현을 팽팽하게 당긴다. 당장이라도 끊어질듯이 V자를 그린 현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 말만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쏴버리겠지.


‘피해야해!’


팽팽해진 현을 놓으려한다. 화살을 보고 피해서는 안 된다.


‘미친. 진짜로 지금 쏜다고?’


나는 제국군의 진열 안에 있었다. 지금 쏘면 나머지 석궁들은 같은 제국군들이 맞게 되는건데 망설임없이 쏴버려하는것이다


“핫!”


이미 수십명의 지휘관들을 쓰러뜨려버렸기 때문일까. 아마도 제국의 현재 명령체계는 엉망일것이다. 가장 윗대가리들은 얼마 처리하지 못했지만, 중간은 확실하게 끊어냈다. 그럼에도 한참 남았을테지만 내가 걸림돌이라고 판단한 듯 싶었다.


“사···”


“···멈춰라!”


그 소리가 들리자 사격하려던 손길이 우뚝 멈춰섰다. 석궁병 두 세명이 실수로 현을 놓기는 했으나, 그건 내게 닿지 않았다.

나는 내심 안도의 숨을 쉬었다. 수백이나 되는 석궁을 제대로 피할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를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꿩의 깃털을 단 정도가 아니라 그냥 가장 높은사람이겠거니 싶었다. 은색 갑옷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있는 남자였다. 그가 소리치자, 부관들이 소리쳤고 그 외침을 들은 각 부대의 지휘관들이 소리치고, 그 소리는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모든 병사들이 어정쩡하게 손을 멈췄고, 전사들은 그 틈을 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석궁부대의 지휘관만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가, 각하!”


“폐하의 명이시다. 아르미안과 우리 비어드 제국은 이 전쟁을 멈추기로 했다.”


“어째서입니까! 코아티르는 이미 벼랑끝입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인다면!”


싸늘한 눈빛과 함께 남자가 허리춤을 건드렸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 말을 붙였던 사내가 우뚝 멈춰서야했다.


“두번 말하게 하지말게.”


휘두른 검이 어느새 그의 목을 간질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줄기 혈선이 주륵 흐르는것에 그는 온몸을 떨었다.


‘전쟁을 멈춘다고?’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비어드 제국과 아르미안이 전쟁을 멈춘다고 각하라 불린 남자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있다가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다가, 내게 입술을 달싹였다.


“거기 소년. 그대의 이름은?”


그 남자의 물음에 나는 뭐라 말할까 망설이다가 이내 대답했다.


“리드리스.”


“···리드리스. 그대가 그 소년이군. 전쟁을 끝마친 소년··· 이야깃속에나 등장할법한 영웅이다. 하지만 소속없는 자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 기억해두겠다. 곧 잊혀지겠지만.”


“당신의 이름은?”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는 등을 돌려 내 말을 무시하는듯 걸어가다가 흘리듯 말했다.


“아라넨 아르쿠잔이다.”


“······?!”


···아르쿠잔?




***




“좋네. 전쟁을 멈춰 주겠네.”


레너 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한걸.”


탈리아는 자신의 감상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왕의 앞에서, 하물며 왕궁의 안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것은 오직 그녀뿐이리라.

진정한 강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악마신봉자··· 그것들이 신봉하는 것이 다시 부활하는건 나 또한 원하지 않으니까.”


레너 왕은 그렇게 말했다. 개인적인 사유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여러가지 계산이 깔려있었으리라. 레너 왕은 저울을 기울이다가 기운 쪽에 그저 배팅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조건?”


수호자 탈리아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 모습조차 아름다웠지만, 심기가 불편하다는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조건을 걸 입장이 아닐거야.”


원한다면 이 자리의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는 그녀였다.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것이다. 하지만 레너 왕은 주눅들지 않았다. 그럴 능력이 있다고 하나, 그럴 수 없음은 알고있으니까.


“글쎄. 그대가 스스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내게 찾아오지 않았겠지.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전쟁을 막을 순 없을것이고 그대와 저들의 말대로라면 푸른 악마는 부활하게되는거겠지. 그걸 원하는것인가?”


교묘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판단이기도 했다. 탈리아는 일단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였다.


“어렵지 않네. 다만 한가지 부탁을 들어줬음 할 뿐이지.”


“그러니까 그 부탁이 뭔데?”


건방진 태도였으나 그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렉 공작조차도 입을 꾹 다물고 탈리아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당장에라도 칼을 뽑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억누르고 있는것이었다.


“내가 원할때,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는 것. 이게 조건일세.”


“···내가 거짓으로 말할거라곤 생각하지 않는거야? 당신의 어느것도 날 속박할 순 없을거야.”


레너 왕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런말을 하는 사람은 꼭 자신의 말을 어기지 못하는 법이지. 어겨도 좋네. 어려운 일도 아닐테니까. 다만, 그대가 가능한 일이라면 들어줬음하는것이지.”


탈리아는 레너 왕의 말을 곱씹었다.

내용도 모르는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는것은 상당히 마음에 짐이 되는 일이었다. 걸리기도 하는 일이었지만, 거절해도 좋다라.

어찌되었건,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는것이다. 전쟁을 멈출 수 있는것은 레너 왕밖엔 없었으니까.


“알겠어. 그럼 전쟁은 어떻게 멈춰줄 생각이지?”


“후후.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레너 왕은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수정구 하나가 도르르 굴러나오더니 그의 손 위에 얹혔다.


“······.”


한참 수정구를 향해 말을 하더니 이내 레너 왕은 수정구를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자, 전쟁은 멈출걸세.”


“···믿어도 되는거겠지?”


“누가 그대를 막을 수 있겠나? 후후.”


탈리아는 차게 식은 눈으로 레너 왕을 바라보았다. 레너 왕의 말은 즉, 거짓이라면 다시 자신을 찾아오면 되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확실히 수호자 탈리아라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게 사실이긴 했다.


“···알겠어.”


나가려 몸을 돌린 탈리아는 우뚝 멈춰섰다. 좌중의 마셸, 모렉 공작, 에르네스 메르실의 얼굴을 한 차례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걸음을 옮긴다.


“당신들도 부디 조심하길 바랄게. 악마의 마수가 어디까지 뻗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




전쟁은 끝났다.

총 삼만명의 목숨이 덧없이 스러지고 어떠한 결과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코아티르가 멸망한 것도 아니고 아르미안이 멸망한 것도 아니었다. 그 삼만명의 죽음은 의미없다고 할 것이다.


“흐흐··· 결국 이렇게 되었단말인가.”


이미 모든게 끝나있었다. 전쟁은 끝나있었고, 코아티르는 패배했다. 국경을 뚫지 못한 시점에서 코아티르가 패배하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교국과 제국군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십만에 이르던 전사들이 십팔만으로 폭삭 줄어버렸다.

반대로, 아르미안과 제국은 합쳐도 일만명이 죽지 않았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란 말인가!


“아르미안의! 아르미안의 돼지새끼들을 쓸어버릴 최고의 기회가 아니었단말이더냐!”


콰앙!

코아티르 왕의 팔이 휘둘러지자 천막이 쓰러졌다. 어설프게 만든 천막이 무너져 머리 위를 덮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신하들은 우물쭈물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놈 때문이다!’


코아티르 왕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광기狂氣. 광기에 물든 눈빛은 보는 그 자체로 섬뜩한 느낌을 주었고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천막이 무너져 그 혼자있다는게 오히려 다행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 어린 놈!”


‘죽일 생각은 없어. 더 이상의 살생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잘난듯이 말했던 소년의 얼굴을 기억한다.

금색의 머리칼과 녹색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오똑한 콧날과 아직 다 빠지지 않은 볼살을 기억한다.

놈은 감히 자신의 대전사를 쓰러뜨렸고, 끝내 코아티르 왕 자신마저 쓰러뜨렸다. 서리 폭풍과 붉은 격노로 싸웠음에도 소년에게는 변변히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이기지 못했다. 이기지 못했단말이다···!’


쿵! 쿵! 쿵!


“그 놈 때문이다.”


그 어린놈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것이다. 한번만 더 싸울 기회가 주어진더라면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이때는 이렇게 휘둘렀을텐데.

천생이 전사인 코아티르 왕 답게 어느새 싸움을 복기하고 있었다. 가슴속에는 증오와 격노가 소용돌이치고있는데 머리로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있는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스러져간 이만의 전사들의 영혼은 도대체 누가 달래준단 말인가?

코아티르 왕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어째서 그 어린놈은 그렇게 강하단말인가!’


다시 싸운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서리 폭풍을 잃은 지금이라면 승산은 0에 한없이 가깝겠지.


‘무슨 수를 썼음이 틀림없다.’


코아티르 왕은 전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전사였다. 재능없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으며 누구보다 노력했고 누구보다 많은 사선을 넘었다. 이 대륙에 모렉 공작만 아니라면 감히 자신을 감당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교국의 하쉬라는 성기사도, 제국의 벤터스 아르쿠잔이라는 무인도 자신과 맞붙으면 최고나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못할거라 믿었다.

그런 코아티르 왕이 고작 자신의 절반도 살지 못한, 채 성인이 되지도 않은 어린애한테 박살이 난 것이다.

이게 정상이란말인가?


‘나도. 나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네놈만큼은 반드시!’


리드리스!

증오스러운 이름! 반드시 그 목을 꺾어버리고 말리라!

코아티르 왕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공포감에 젖어드는건 자신의 병사들과 신하들이었다.


“리드리스으으으으!”


본의아니게 리드리스라는 이름은 모렉 공작의 대신으로 아르미안 왕국을 수호하는 이름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추천,조회,코멘트,선작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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