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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라 님의 서재입니다.

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템페라
작품등록일 :
2019.04.08 05:27
최근연재일 :
2019.06.0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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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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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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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DUMMY

왕국의 최북단 이라 하면 왕국 사람들은 보통 강하를 떠올렸다. 관도가 있기는 했지만 그곳은 커다란 관문이나 위성도시 같은 것이었다. 강하는 처음에는 다른 소도시들처럼 평범한 시골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영주, 크로울리 공이 부임한 후, 그 초라한 변경의 시골도시는 대변혁을 맞이했다. 수완이 좋았던 크로울리 공은 강하가 제국과의 중계무역의 거점이 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하는 평원지역에 자리해 도로를 깔기도 좋고, 다른 도시들의 중심에 위치해 이동이 용이했다. 땅이 튼튼해 창고와 같은 건물들을 짓기도 좋았다. 단하나, 아쉬운 부분이라면 제국을 잇는 길이 없었다는 것뿐이었다. 뭐 길이 없으면 어떤가. 눈앞에 저 아름다운 녹하가 있는데. 거기에 수도 없이 배를 띄워 길을 만들면 그 걸로도 훌륭한 길이다. 영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 대의 배를 엮어 임시가교를 만든 뒤 예상보다도 더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크로울리 공은 이 훌륭한 땅을 왜 지금까지 놀려두고 있었던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전에는 제국의 상인이었던 크로울리 공은 제국의 연줄을 이용해 주변의 각종 산물들을 제국에 좋은 가격에 팔고, 좋은 가격에 제국의 귀한 물건들을 들여왔다.


크로울리 공의 장려 속에서 상업은 빠르게 발전했고 도로가 새로 들어섰다. 저 유명한 관도의 두 개의 다리는 크로울리 공의 큰 업적 중 하나였다. 중계무역으로 발전한 변경의 소도시는 이내 다른 소도시들을 집어삼키고 대도시화를 반복해, 이제는 왕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크고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이상이 ‘훌륭한’ 크로울리 공의 업적이었다.


길리안은 그 유명한 대영주가 차려준 식사 자리 앞에 앉아 불안한 듯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다리가 떨릴 정도로 크로울리 공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없이 불안할 뿐. 덕분에 크로울리 공이 친히 초대한 훌륭한 점심 식사 자리에도 길리안은 거의 식기를 드는 듯 마는 듯이었다.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소?”


성품이 어질기로 유명한 영주는 얼굴에서도 그 넉넉한 인품이 드러났다. 툼툼하고 후덕한 얼굴로 인자한 미소를 띠며 묻는 크로울리 공의 물음에 길리안은 움찔하고 몸을 떨더니 미소를 지으며 얼른 음식을 한 점 집어먹었다.


“이야- 좋은 식재료를 쓰신다는 게 확 와 닿는군요!”


긴장한 탓에 음식의 맛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건만 길리안은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그 말은 크로울리 공을 꽤나 흡족하게 한 모양이었다.


“허허, 알겠소? 나는 이 근방에서 나는 식재만으로 요리를 한다오. 강하는 좋은 땅이지. 산에서 들에서, 강에서. 어디서 나는 것도 품질이 나쁜 것이 없다오.”


넉넉하게 접힌 턱을 매만지며 말하는 크로울리 공의 말에 길리안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오기로 한 시간이 한참을 지났건만. 길리안은 흘끗 크로울리 공의 뒤에 있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영지의 부유함을 나타내듯 훌륭한 나무로 만들어진 시계는 반들반들 빛나며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길리안은 오지 않는 동료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스런 마음에도 다리를 떨랴, 음식을 먹으랴, 크로울리 공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 듯 문이 벌컥 열리더니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애들 두 명 시키신 분!”


“시키긴 누가 시켜!”


안 그래도 늦은 주제에 유쾌하게 웃으며 등장하는 기사의 말에 발끈하며 길리안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뒤늦게 앗차, 하고 길리안이 크로울리 공을 바라보았지만 크로울리 공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니, 신경을 안 쓰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허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요.”


크로울리 공의 말에 길리안은 꿀이라도 먹은 듯 조용해져 당황한 눈으로 크로울리 공을 바라보았다. 분명 시켰다면 시킨 게 맞았지만, 대 영주님께 이런 말버릇이라니. 다른 귀족이었다면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상황이었다.


“아, 아니.. 그, 그렇기야 합니다만.. 어어.. 괜찮습니까?”


행여 심기를 거스르진 않았을까 길리안은 더듬더듬 횡설수설이었다. 허나 기사는 그리 개의치 않는 듯 유쾌한 미소를 유지한 채 아이들을 놓아주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쇼!”


척, 경례와 윙크를 날리며 기사는 나갔다. 길리안은 멍하니 문을 바라보다 쭈뼛쭈뼛 서있는 아이들과, 여전히 손을 든 채 앉아있는 크로울리 공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해야할까. 이 광경을. 인상적인 이상가족 상봉?


길리안이 기사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작게 신음을 흘리자, 크로울리 공은 손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아이들에게 손을 뻗었다.


“어서 오렴.”


크로울리 공의 말에 아이들은 쭈뼛쭈뼛 서 있다가 크로울리 공에게 가까이 다가와 공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조심스러운 반응이었지만 결코 무서워서는 아닌 듯했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아이가 크로울리 공을 올려보며 말했다.


“다..녀 왔습니다.. 아버지..”


크로울리 공이 자애로운 미소로 아이들을 반겼다. 몸이 좋지 않아 아이들을 안아 올리진 못했지만 머리를 토닥이는 것으로 공은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길리안은 후,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뭐, 그래도 보람이 느껴지는 모습이군.’


길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피로도, 법으로도 이어지지 않았지만, 가족은 가족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노예였고, 그 아비를 자처하는 자는 대귀족이었지만 서로를 저토록 위하고 있었다. 노예를 인간 취급해주지 않는 이 왕국에서, 그 관계는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견랑鵑郞. 아이들을 구해줘서 고맙소.”


크로울리 공은 최대한의 감사를 말에 담으며 고개를 숙였다. 길리안은 당황해 손을 흔들며 얼른 크로울리 공의 손을 잡아 그의 고개를 들게 했다.


“평소하던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감사받을 일도 아니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고초를 치르시지 않으셨소.”


크로울리 공의 말에 길리안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그래도 크로울리 공같은 대귀족이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일도 왕왕 있는 법이지요.”


“하지만..”


크로울리 공은 말끝을 흐리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아이들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일까. 고민하듯 그 후덕한 얼굴을 흐리는 크로울리 공의 모습에 길리안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공, 슬슬 배가 찬 듯하니 잠시 아이들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게하고 산책을 가시는 건 어떨는지요.”


길리안의 말에 크로울리 공은 고개를 끄덕이곤 뒤쪽에 대기하고 있는 사용인에게 손짓을 해 자신의 지팡이를 받아들었다.


“얘들아. 아빠는 잠시 견랑과 대화를 좀 나누고 올 테니, 식사를 좀 하고 있거라. 밤새 오느라 배고프지?”


아이들은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것인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곤 의자에 올라앉았다. 작은 아이가 팔이 닿지 않는 듯 허우적거리는 것을 번쩍 들어 의자에 앉혀주곤 길리안은 머리를 토닥이며 바깥으로 나섰다.


“아이들을 납치한 자, 사역인 이었다고 하셨지요.”


크로울리 공이 나와 식당 문을 닫는 소리를 들으며 길리안이 몸을 돌려 크로울리 공을 부축했다.


“그렇소. 라스가의 사주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오.”


“쯧, 또 라스가로군요.”


길리안은 불만스레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날 쟝과 길리안의 신병을 인도 받은 자 또한 라스가의 사람이었다. 데니안 라스. 현 라스가의 수장인 그가 직접 올 줄은 몰랐지만.


크로울리 공은 몇 걸음을 걷지 못하곤 멈춰 서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었다. 고작 몇 걸음으로도 지친 기색이었다. 걱정스레 바라보는 길리안에게 크로울리 공은 잠시 숨을 고르곤 괜찮다는 듯 손을 들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견랑, 선왕께서 승하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데니안 라스에게서 들었습니다.”


“데니안 라스!”


길리안의 말에 크로울리 공은 탄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선왕의 외척인 라스가문은 선왕과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왕비, 마가레타 라스를 배출한 가문답지 못하게 탐욕스런 가문이었다. 3년 전 ‘모루 만국회의’ 이후 선왕이 퇴위를 선언하며 동시에 세를 급격히 키운 라스가는 이젠 명실상부한 국가 권력의 중심이었다.


“그를 어찌?”


살 속에 파묻혀 옹이구멍 같던 눈이 크게 뜨여져 길리안을 바라보았다. 길리안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이 껄끄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전하의 은총으로 말소되었던 낙인이 다시 되살아났더군요. 그 낙인을 추적해왔습니다.”


“낙인이? 아아.. 그래.. 견랑은 원래..”


크로울리 공은 뒷말을 삼키며 지팡이에 몸을 기대었다. 콜로세움에서 왕의 눈에 띄어 한 순간에 검노에서 천검의 일원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긴 했지만, 길리안은 본래는 노예출신이었다.


길리안을 배려하듯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크로울리 공의 모습에 길리안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 그 과거 덕에 분에 맞지 않은 은총을 얻었으니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저의 현재는 모두 과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길리안의 말에도 크로울리 공은 여전히 마음이 쓰이는 표정이었다.


“그래, 그렇지.. 견랑.. 그럼.. 데니안 라스가 뭔가 위해를 끼치진 않았소?”


“아, 잠시 결박당해 창고에 좀.. 하하..”


길리안은 걱정을 해주는 크로울리 공의 말에 머쓱하게 웃다 문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하군요. 라스가의 위세가 전보다 더 해졌다곤 하나, 아직 아버님께 도전할 정도는 아닐 텐데.”


왕의 은총으로 자유민이 된 길리안은 곧 전하의 쓰임을 받게 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왕의 오른팔인 휴이 공의 양자가 되었다. 나라에서 단 두 명만이 하사받은 공작위를 지닌 휴이공은 아무리 위세가 좋다고 한들 후작위에 머물러 있는 라스가가 정면으로 대결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헌대도 길리안의 낙인을 되살려 그 치욕을 주다니. 뭔가 믿는 뒷배라도 있단 말인가. 길리안은 고민스레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제국의 귀족과 교류가 많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아무리 제국이라고 한들 왕국의 주위에 5대국이 버티고 있는 한 직접적인 행동을 나설 수는 없을 터였다.


“일단은 경고를 하려고 한 게 아닐까하오.”


“우리의 일을 눈치 채고 있다. 라는 얘기를 거칠게 보여준 거로군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는 길리안의 말에 크로울리 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왕은 ‘모루 평화회의’ 이후 퇴위 전 마지막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였다. 다양한 출신의 젊은 천검들을 모아 ‘천견대(天見隊)’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그들을 전국에 파견해 나라의 여러 부정들을 감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일이었고, 천견대가 진실로 하는 일은 귀족들이 소유한 노예들을 해외로 도망시키거나, 신분을 세탁하여 노예를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노예 해방은 한 나라의 신분제의 밑바닥을 헤집는 동시에 백성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이었다. 선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헤른 왕 또한 선왕의 의지를 이어가곤 있었지만, 대비의 외척의 위세에 짓눌려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선왕이 벌인 사업을 왕이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발각 된다면 폐위를 면치 못하리라.


“전하께서 내리신 대업, 제가 반드시 이뤄드릴 겁니다.”


길리안이 각오를 다지듯 말하자, 크로울리 공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길리안의 손을 잡았다.


“견랑, 전하께 같은 명을 받은 동지끼리, 함께 힘을 내봅시다.”


하고 크로울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오늘은 푹 쉬시오. 밤새 힘써 주시지 않으셨소.”


“공의 호의, 감사히 받겠습니다.”


크로울리의 넉넉한 미소에 길리안은 밤새 날카롭게 서있던 신경이 흐물흐물하게 풀리는 것을 느끼며 작게 하품을 했다. 뒤늦게 입을 가리긴 했지만 공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길리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며 뒤따라오던 집사에게 손짓했다.


“견랑을 방으로 안내해 주게. 나는 아이들과 있겠네.”


크로울리 공이 설레는 듯한 표정으로 식당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길리안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집사를 따라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많은 비평, 쓴소리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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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28 2 13쪽
15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34 3 7쪽
14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2 3 10쪽
13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5 2 10쪽
12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7 2 11쪽
11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9 2 9쪽
10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7 57 2 9쪽
9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6 54 2 8쪽
8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4 61 3 11쪽
7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4 67 2 9쪽
6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73 2 8쪽
5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94 3 7쪽
4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2 105 2 8쪽
3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141 3 7쪽
2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215 3 11쪽
1 0. 황금의 기사와 시작의 이야기 19.04.08 37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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