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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라 님의 서재입니다.

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템페라
작품등록일 :
2019.04.08 05:27
최근연재일 :
2019.06.01 22:46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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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글자수 :
17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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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4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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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DUMMY

‘큭, 아래쪽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오닉은 기사의 검을 밀쳐내기 위해 팔에 힘을 바짝 주며 산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산 아래쪽에선 이제 벌써 서너 번째의 굉음이 터져 오르고 있었다. 오닉은 애가 닳은 표정으로 기사를 서둘러 떨쳐내기 위해 일단 뒷걸음질을 쳐 물러났다. 한 번에 몰아쳐서 쓰러뜨리리라.


“응?”


검을 물린 오닉은 금세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검 끝에 기사의 회백 빛 검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오닉은 헛것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자신의 검 끝에 매달린 검을 바라보았다.


검을 떨쳐내기 위해 밀기도 하고 당겨보기도 하였지만 회백 빛의 검은 유령처럼 자연스레 딸려왔다. ‘자연스럽게.’라고는 하지만 오닉은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은 처음이었다. 눈앞에 기사가 있지 않았더라면 오닉은 검만이 달라붙어 따라오는 줄 알았으리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하자, 서늘한 기운이 오닉의 목덜미 끝에서부터 천천히 솟구쳐 올랐다. 피가 차갑게 식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어수룩하게만 보았던 기사의 검 끝이 마치 거대한 독사의 눈처럼 오닉을 주시하는 듯했다.


‘이.. 이건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이냐. 마치 수면 밑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다.’


단 한 합이었을 뿐이었다. 단 한 합으로 검이 맞부딪혔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흐름을 빼앗긴 것이다. 오닉은 필사적으로 검을 흔들었지만 검은 흐물흐물 마치 바닷속의 해초처럼 허우적 거릴 뿐 이었다.


오닉은 자신의 움직임마저도 기사의 검 끝에 달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오닉은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움직임부터 호흡까지 모든 것을 통제 당하는 느낌이었다.


오닉의 손 안에 잡힌 검이 땀으로 미끄럽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오닉은 검을 놓을 수가 없었다. 송글송글 맺힌 땀이 차갑게 식어 오닉의 뾰족한 수염 끝에 매달렸다. 몇 분? 아니면 몇 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시간을 싸운 것처럼 근육이 떨려왔다.


기사는 그런 오닉을 가지고 놀 듯 검을 휘저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두 사람은 격렬하게 검을 부딪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허나 그런 격렬한 결투에서 의례 따르는 검이 부딪히는 소리도, 튀어 오르는 불똥조차 없었다.


“그.. 그만..”


안색이 파리하게 변한 오닉이 간신히 짜내듯 목소리를 내었다. 그 목소리와 함께 기사의 검이 드디어 떨어졌다. 오닉은 무거운 철추라도 든 듯 검을 든 팔을 지면으로 늘어뜨리곤 비오듯 땀을 떨구었다.


“벌써 끝입니까? 고작 한 합이었는데요?”


기사의 말에 오닉은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검을 떨구고 무릎을 땅에 대며 기사의 앞에 엎드렸다.


“허억.. 허억.. 사, 살려만 주시오.. 기사.. 나으리..”


도적이라곤 하나 두목으로써의 자존심이 있었다. 오닉은 살며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앞에서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토록 큰 차이가 있는 상대를 앞에 두고 뭘 어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엎드려 빌 수밖에.


죽기를 각오하고 덤빌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봤자 개죽음이란 것도 금세 알았다. 그리고 두목인 오닉인 개죽음을 당한다면 그리 똘똘치 못한 부하들은 어떻게 되는가. 오닉은 자존심과 산적단의 존속 중 후자를 택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기사의 자비가 오닉에게 내릴 때의 이야기였지만.


오닉은 대답이 없는 기사를 흘끗 올려보았다. 기사는 뭔가를 생각하는 눈으로 오닉을 내려 보고 있었다. 생사여탈을 저울에 재고 있는 것인가. 오닉은 자신의 운명이 그 손에 담겨있음을 알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다면..”


이윽고 입을 연 기사는 검을 맞대기 전처럼 어리숙한 표정이었다. 기사는 검면을 오닉의 머리 위로 툭, 내려놓았다. 그 서늘한 기운이 정수리에 닿자, 오닉은 날이 닿은 듯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이제 도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이 에스폴리크 앞에 맹세해 주세요.”


“아.. 암요.. 이, 이제는 도적질을 하지 않겠소..”


오닉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러나 기사의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 대답은 맹세가 될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이토록 차가운 색의 황금을 본 적이 있었던가. 금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오닉이었지만, 기사의 눈동자에 담긴 이 차가운 황금은 도저히 좋아질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기사는 마법을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기사의 그 검 자체가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닉은 그 한 합으로 이미 자신이 기사에게 굴복하고야 말았음을 깨달았다. 기사의 차가운 검이 정수리에서 떨어지고, 조금 더 가까워진 굉음에도 기사는 일단락이라는 듯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오닉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저는 상황을 살피러 내려가 보겠습니다.”


산책이라도 가겠다는 듯이 선선히 말하는 기사의 모습에 오닉은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으리.. 이 몸도 같이 내려가도.. 되겠소?”


한 집단의 장으로써 부하가 걱정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심스레 묻는 오닉의 물음에 기사는 안될 게 뭐가 있냐는 듯, 아니, 그 이전에 검을 맞부딪힌 적도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죠.”


-


시간을 조금 되돌려, 르네 일행을 쫓아 산 아래로 내려간 길리안은 다행스럽게도 다른 산적들보다 조금 앞서 일행과 만날 수 있었다. 뒤쪽에서 다급히 달려오는 발소리에 경계의 눈으로 뒤를 살피고 있던 쟝은 적이 아닌 길리안이 모습을 드러내자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길리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겁니까?”


“하아, 하아.. 기사.. 로크가 대신 시간을 벌어주기로 했어.”


호흡을 재정돈 하기도 전에 수풀 너머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길리안은 입안에 고인 침을 땅으로 퉤, 뱉어내며 산적들과 맞붙어 싸울 준비를 했다. 쟝도 그 소리가 심상치 않은 수임을 깨닫고는 르네와 아이들을 자신의 큰 몸으로 가리고 섰다.


“꼬리가 제법 길군요, 길리안.”


농담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내뱉는 쟝에게 길리안은 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쟝, 길리안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하얀 가루 같은 촉매를 자신과 아이들의 주변으로 둥글게 뿌리며 르네가 말했다. 르네가 방어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을 눈치 챈 길리안은 쟝과 함께 르네의 벽이 되듯 섰다. 르네는 눈짓으로 감사를 표하며 천천히 영창을 하며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대기를 이루는 공기의 정령이여-”


마법의 3요소 중 촉매와 달리 주문과 영창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었다. 수인은 올바른 동작. 영창은 노래하듯 정확한 높낮이. 때문에 마법을 모르는 이가 있다면 르네의 모습은 노래를 하며 춤을 추는 듯 보이기도 했다.


마법은 여러 종류가 있었고, 모두가 누군가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형식을 취하였다. 때문에 힘을 주는 누군가가 좋아하는 물질, 춤, 노래로 그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흡족하다면 마법이라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르네가 뿌린 마법 촉매가 반짝반짝 빛나며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천천히 반짝이는 투명한 막을 만들었다. 동시에 산적들이 하나 둘 수풀을 헤치며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이 완성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마법을 경계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르네가 사용한 마법은 자신과 아이들의 몸을 지키기 위한 방어마법이었고, 덕분에 길리안은 서둘러 달려오느라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할 수 있었다.


“산적치고는 겁이 많으신 분들 이구만! 쟝! 서로의 방향만 확실히 지키자!”


길리안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쟝은 이미 자신 쪽으로 온 적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쳐서 날리고 있었다. 길리안은 그 모습에 합이 참 안 맞는 친구라고 생각하며 자신 쪽으로 오는 산적의 칼을 받아내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산 속에 불꽃이 튀어 올랐다. 다음 마법을 결정한 듯 다시금 들려오는 르네의 영창소리에 산적들이 움찔, 하고 굳는 틈을 놓치지 않고 길리안은 앞선 적을 베어넘겼다.


“으악!”


비명을 지으며 피가 튀었지만 길리안은 손의 느낌이 그리 좋지 않았음을 깨닫곤 곧이어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산적들은 그저 산적들이라고 하기엔 제법 조직적인 면이 있었다. 상처 입은 동료를 보조하듯 길리안의 어깨를 노리고 검이 찔러 들어왔다.


“으윽!”


길리안은 자신의 검을 서둘러 회수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든 검을 튕겨내었다. 어둠을 틈타 슬금슬금 늘어난 적들은 르네가 영창을 마치기 전에 르네를 공격하려는 듯 공세가 두터워져만 갔다.


길리안은 제법 실력이 좋은 검사였다. 그 두터워져가는 공세 속에서도 아직도 상처 하나 없었다. 하지만 쟝은 그렇지 못했다. 길리안의 실력이 조금 더 나은 점도 있었지만 노예 검투사 출신인 쟝의 싸움법도 좋지 않았다.


“우오오오오!”


야수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산적들의 칼을 손과 칼로 쳐내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칼을 휘두르는 쟝은 몸을 아끼지 않는 광전사에 가까웠다. 쟝의 몸에 상처가 점점 아로새겨지는 것과 더불어 길리안 또한 자신의 체력이 넉넉하지는 않음을 알았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다시금 도망쳐야만 했다.


“두 사람! 눈 감아!”


그 순간 들려온 날카로운 르네의 목소리에 길리안과 쟝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앞쪽에서 환한 빛이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르네가 준비하던 마법이 발동된 모양이었다.


“눈, 눈이!”


어두운 동굴 등을 탐사할 때 사용되곤 하는 동그란 빛의 구가 길리안의 눈앞에 떠올랐다. 위력은 전혀 없었지만 그 환한 빛은 일순간 적들의 눈을 멀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 틈을 타 한 손으로 산적의 다리를 잡아챈 쟝은 마치 곤봉이라도 휘두르듯 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악!”


“물러나! 물러나라!”


쟝이 휘두르는 동료의 몸에 산적들이 부딪히고 나뒹굴기 시작했다. 눈을 당한 자들도, 그렇지 않은 자들도 그 기세에 눌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비단 쟝 때문만은 아니었다. 쟝과 길리안 뒤에 숨은 마법사의 마법이 드디어 두려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르네의 마법 중에 공격 마법은 없지만 말이야.’


길리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쟝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정도면 쉽사리 다시 쫓지는 못하리라.


“쟝, 그쯤하면 됐어! 도망치자!”


쟝은 길리안의 말에 잡고 있던 산적을 산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던졌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던져진 동료에 부딪혀 서로의 몸이 뒤엉켜 쓰러지는 산적들을 뒤로 하고 도망치려던 길리안은 순간 나무 너머로 들려오는,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길리안의 목소리와 동시에 나무 너머에게 두 개의 빛이 길리안들을 덮쳐왔다.


“지금부터 산적 소탕 작업을 시작한다!”


들려온 목소리에 길리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많은 비평, 쓴소리 환영입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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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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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27 2 13쪽
15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34 3 7쪽
14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1 3 10쪽
13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5 2 10쪽
12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6 2 11쪽
11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9 2 9쪽
10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7 56 2 9쪽
9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6 54 2 8쪽
»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4 61 3 11쪽
7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4 67 2 9쪽
6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73 2 8쪽
5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94 3 7쪽
4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2 105 2 8쪽
3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141 3 7쪽
2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214 3 11쪽
1 0. 황금의 기사와 시작의 이야기 19.04.08 37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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