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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라 님의 서재입니다.

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템페라
작품등록일 :
2019.04.08 05:27
최근연재일 :
2019.06.01 22:46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657
추천수 :
66
글자수 :
174,507

작성
19.04.14 03:18
조회
66
추천
2
글자
9쪽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DUMMY

“쫓지 않는군.”


차갑게 말하는 길리안의 말에 오닉은 지금까지 질겅거리던 담배를 퉤, 땅으로 뱉으며 불이라도 끄듯 그것을 지르밟았다.


“그래, 그쪽이야 말로 쫓아가보지 않아도 되겠나? 의적씨.”


길리안의 의심에 확신을 심어주듯 말투마저 바꾼 오닉은 여유를 부리며 앞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들었다. 불을 빼앗겼다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 기사가 놀란 눈으로 성냥을 바라보자, 오닉은 비웃음서린 눈으로 기사를 바라보곤 새로운 담배를 물었다.


굳이 기사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까지 불붙이길 기다린 것은 과시적인 욕망이었던 것일까. 기사는 어째서 이전의 담배에는 불을 붙이지 않았던 것인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치익- 소매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오닉은 새롭게 꺼내 문 담배에 불씨를 피워 올리곤 길게 연기를 뿜어 올렸다. 길리안은 오닉이 두 번째 연기를 뻐끔 올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뭘 확인하고 싶은 거였지?”


길리안의 물음에 오닉은 끌끌 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담뱃재를 털어내었다. 담배의 쌈지 끝으로 담뱃불이 발갛게 익었다가 흐린 재와 함께 흩날렸다. 오닉은 길리안의 말을 무시하곤 기사에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쟝인가. 그 남자에게 칼을 쥐어준 건 잘 한 거야. 기사 나으리.”


하지만 그것은 길리안의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였다. 오닉의 의중을 파악한 듯 길리안의 동공이 확대되었다가 고민의 색으로 흐려졌다.


오닉은 마법사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법은 위협적인 존재고, 마법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마법으로 수많은 동료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 오닉은 그것을 경계해 순순히 따라오길 택했으리라.


그리고 준비된 장소에서 마각을 드러냄으로써 마법사가 누군지 파악한 것이다. 마법사는 검을 들지 않으니 검의 행방에 주목해 술사를 판단하려 한 것이리라. 이렇게, 길리안 일행이 두 조각으로 찢어졌을 때, 누가 검을 드는가를 주시함으로써.


기사가 남는 것까지 계산했을지는 불명이었지만, 그것까지 계산했다면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생각이 길구만. 길만도 하지.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수 만은 없으니, 슬슬 시작하지.”


오닉은 불이 붙은 담배의 끝을 손가락으로 쥐어 끄곤 뒤쪽으로 손짓을 했다. 그 손짓에 따라 수풀 너머에서 칼이 날아들어 바닥에 꽂히는 것을 길리안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에 둘러 싸였단 말인가. 처음부터? 아니면 자신이 지나치게 지체했던 걸까.


“생각이 깊은 건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 건 좋지 않아. 무조건 적당한 게 좋은거야.”


오닉은 검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손이 어느새 검을 잡아채었다.


“에스폴리크! 하아! 하아아아! 좋은 기름을 쓰시는 군요오!”


기사였다. 오닉은 제법 칼 밥 좀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움직임으로 검을 뺏어든 기사를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만곡도를 받아들었을 때처럼 묻은 흙을 털어내고 검의 냄새를 맡거나 끌어안고 볼을 부비는 기사의 모습에 오닉은 얼떨떨한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이건 또 다른 종류의 에스폴리크네요! 곡도 형도 좋지만 이런 직검도 좋죠. 이 철은 왕국산이 아닌데.. 아, 5대 왕국 중 하나인 흑석국의 철이 섞인 겁니까! 햐아- 그래서 이런 광택이 나는 군요..”


“다, 다른 칼.. 이리 내.”


끊임없이 떠벌이며 회백 빛의 직검에 자신의 거친 숨결을 묻히고 있는 기사의 모습에 오닉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수풀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오닉은 제법 묵직한 검의 무게가 손에 실리자, 턱짓으로 길리안의 뒤편을 가리켰다.


“이제, 쫓아라.”


“기, 기다려!”


오닉의 말은 나직했지만 길리안에게 충분히 들릴 정도였다. 길리안은 어떻게든 해보려 앞으로 나서긴 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리더로써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머리를 명민하게 굴려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제야 쫓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면 아래쪽에 복병이 있지는 않은 듯했다. 쟝은 뛰어난 전사이긴 했지만 아이를 포함해 셋이나 지키며 홀로 싸우기는 벅찰 것이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상황을 유리하게 굴리려면 자신이 내려가야 했지만, 그렇다고 오닉에게 등을 보이기에는 불안한 면이 있었다.


길리안의 불안한 마음을 안 것인지, 앞으로 나선 것은 기사였다. 방금 손에 넣은 회백 빛의 검을 느릿하게 휘두르며 앞으로 나온 기사는 나직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로 길리안을 돌아보며 읊조렸다.


“길리안. 악인이 정체를 드러내고, 에스폴리크가 이 손에 들어왔으니. 황제께서 내리신 명예로운 사명에 따라, 정의의 기사가 활약할 때입니다. 그대는 그대의 임무를.”


하늘을 엄숙한 표정으로 우러러 보는 기사의 모습은 이제야 제법 기사다운 태가 났지만 그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길리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길리안은 황제가 내린 사명이 이런 곳에까지 적용되는 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알지 못했고, 자처해서 위험을 막아준다니 고마울 일일 따름이었다.


“고, 고맙습니다!”


길리안이 비로소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여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가는 동시에 주변의 수풀 속에서도 그를 쫓듯 발소리들이 잇달아 산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기사는 스쳐지나가는 인기척들에 둘러쌓여 자신의 에스폴리크(-라 부르는 본디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회백 빛의 직검)을 양손으로 그러쥐었다.


“후, 오닉. 사실 산채에서부터 당신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오닉이 정체를 드러내고 나서야 ‘그러고보니-’하고 조각난 퍼즐을 맞춰낸 것이었지만 기사는 일단 그렇게 내뱉고 보았다. 기사라 불리는 이들이 싸우기 전에 흔히 하는 허세였다.


전장에서 흔히 보던 허례허식이었기에 오닉은 그러려니 하고 자신의 두터운 곡도를 어깨에 툭툭 두드리며 기사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본래 기사들의 말은 서론 본론 결론으로 딱딱 나뉘어져선 서론 이후엔 본론이, 본론 이후엔 결론이 튀어나오곤 했다.


“허나!”


‘역시나.’ 하고 오닉은 담배를 한 대 더 물까 생각하며 앞주머니를 두드렸다.


“의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믿는 일이란 것은 중요한 것이기에!”


기사의 말에 오닉은 허어.. 하고 어디 더 지껄여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역시나 기사는 기사다운 자세로 연설을 꼭 하고야 말겠다는 표정이었다. 예상했던 반응이 예상대로 흘러나오자 오닉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기 위해 담뱃불을 붙였다.


“인간이 인간을 믿는 것이란 얼마나 중한가! 명예로운 삶에 있어 신뢰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그것을 모르는 그대, 산적들이란 얼마나 불쌍한 자들인가아!”


‘내참, 기사 나부랭이들이란.’


그 호령으로 시작된 기사의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신뢰에 대한 기나긴 역설에 오닉은 용병으로 떠돌던 시절을 떠올렸다.


기사나 장교라는 자들은 늘 상 그랬다. 전장에서 서로를 향해 고상한 말씨로 욕 같지도 않은 욕을 일장연설로 떠들어대며 몇 시간이나 서있다, 저녁놀이 붉게 타오를 무렵이면 칼 한번 휘둘러보지 않고 회군을 하던 것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젊은 놈이라도 장교는 장교로구만.’


담배의 불씨가 입가에 바짝 다가올 정도로 타들어갈 동안 끝나지 않는 입담에 오닉은 불을 손가락으로 잡아 끄고는 칼을 제대로 쥐었다.


“..해서.. 내가 어렸을 적엔..”


“그만! 기사 나으리, 그 쪽의 어린 시절 얘기까지 들어줄 생각은 없어! 가만히 듣고 있어주려니까 끝이 없구만! 애초에 젊은 놈이 어린 시절까지 들먹이면서 할 얘기가 뭐가..”


오닉이 몇 마디를 채 내뱉지도 않았을 때, 기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으며 오닉의 말을 끊어내었다.


“혀가 길군요! 도적 놈 주제에!”


기사의 적반하장에 오닉은 억울한 표정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얘기를 할 때에는 그리 신나게 떠벌이더니, 자신이 몇 마디나 했다고 혀가 길다느니 하며 말을 자른단 말인가.


“에이, 남자라면 칼끝으로 말 하시죠!”


“오, 오냐! 거기 딱 서 있거라!”


한술 더 떠서 훈계하듯 외치는 기사의 말에 오닉은 거의 수 페이지에 걸쳐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던 자신에 대한 예의를 쌈 싸먹은 기사에게 단죄의 칼을 높이 들었다. 추켜올려진 칼날이 기사의 회백 빛의 검과 맞닿아 강렬한 섬광이 튀어 오른 순간, 하늘이 흐려지더니 천둥이라도 치듯 요란한 소리가 산 아래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응?”


“뭐냐!”


자신들의 검에서 난 소리가 아니란 것을 두 사람이 깨닫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을 때, 다시금 큰 굉음과 함께 산 아래쪽에서 흙과 나무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비평, 쓴소리 환영입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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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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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27 2 13쪽
15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34 3 7쪽
14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1 3 10쪽
13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5 2 10쪽
12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6 2 11쪽
11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9 2 9쪽
10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7 56 2 9쪽
9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6 54 2 8쪽
8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4 60 3 11쪽
»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4 67 2 9쪽
6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72 2 8쪽
5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94 3 7쪽
4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2 104 2 8쪽
3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139 3 7쪽
2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212 3 11쪽
1 0. 황금의 기사와 시작의 이야기 19.04.08 37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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