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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라 님의 서재입니다.

황금 기사의 병단과 마법의 갑옷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F

템페라
작품등록일 :
2019.04.08 05:27
최근연재일 :
2019.06.01 22:46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659
추천수 :
66
글자수 :
174,507

작성
19.04.10 20:15
조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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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DUMMY

‘위대한 정복왕이셨던 아르케니우스 대제께서 과거 남부 대륙으로 영토 확장을 시도하였을 때에, 그분을 막아섰던 것이 남북을 잇는 하나의 산이었지. 지금에는 적산이라 불리우는 그 산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대장벽 가운데 유일하게 완만하고, 대군이 지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어. 하지만 완만하다고는 해도 산은 산. 평원 지역을 주로 달리던 우리 제국군에게는 버거운 곳이었지..’


기사는 언젠가 친구가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던 제국 전쟁사의 한 부분이 머릿속에 어째서 맴도는 걸까 생각하며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철갑으로 이루어진 부츠는 무겁게 발목을 붙잡았고, 견갑은 어깨를 짓눌렀다. 기사는 흉갑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기듯이 터덜터덜 가도를 오르다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듯 평평하게 깎여있는 바위를 발견하곤 기쁨에 찬 얼굴로 서둘러 바위로 향했다.


‘벤치같이 평평한 바위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주막이 있습니다. 적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일박을 보내곤 하죠.’


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여관주인이 한말을 떠올리며 기사는 바위 위로 엉덩이를 붙였다.


“하아..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주막으로 가면 되겠군.”


겨울바람에 차갑게 식어있는 바위는 불편한 장비와 함께한 등산으로 땀에 흠뻑 젖은 기사의 몸에 불쾌한 한기를 전달하였다. 덕분에 급속도로 식어가는 엉덩이와 거기에 질척질척 들러붙는 천의 감촉에 기사는 잠시 뒤척거렸지만 녹아내린 듯 풀어진 다리에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기사는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은 철갑 부츠를 원망스레 바라보며 무릎을 두드렸다. ‘부츠만 없었더라도.’ (물론 부츠가 없었더라면 다른 장비를 탓했겠지만.) 기사는 괜스레 부츠의 탓을 하며 고된 등산의 원망을 쏟아부었다.


하긴, 왕국에서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장비는 여비와 교체되거나, 혹은 가벼운 장비들로 계속해서 바뀌었기에 제법 긴 체류기간 동안 기사와 쭉 함께였던 장비는 이것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애착 같이 생길 법도 하였기에 기사는 부츠와의 긴 여행길을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부츠와의 긴 인연이 늘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던 매몰찬 장비점의 말과 함께였던 것이 생각나자 기사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생각을 중단했다.


‘발 냄새 같은 건 그냥 용광로에 넣어버리면 없어지지 않나? 애초에 발 냄새 같은 건.. 나려나..’


기사는 물끄러미 자신의 부츠를 내려보다, 조심스레 부츠를 벗어 들어올렸다. 자신의 열기로 후끈 거리는 부츠의 속은 암흑물질이라도 채운 듯 새카맣게 가려져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그 속을 바라보던 기사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곤 아무도 없는 걸 확인 한 뒤 코 가까이로 부츠를 가져다 대었다.


‘음.. 약간.. 나려나..’


부츠 안에 남은 체온의 후끈 후끈한 느낌이 냄새보다 더 먼저 느껴지자, 기사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부츠를 조금 더 얼굴 가까이로 가져대었다.


“킁..”


심호흡 후에 길게 숨을 들이쉬려던 기사는 문 듯 산 아래에서 일렁이는 그림자에 흠칫하며 부츠를 서둘러 내려놓았다.


터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염이 삐죽삐죽 고슴도치처럼 자란 남자였다. 키가 크지는 않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에 세월을 정통으로 받은 듯 굳은 얼굴은 험상이었다.


등 뒤에 짐이 한 가득인 지게를 짊어지고 올라오곤 있었지만 행상같지는 않은 모습에 기사는 주막의 관계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아, 부츠.’


기사는 발아래로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흙바닥의 느낌에 서둘러 발을 털며 부츠를 신었다. 흘끗 남자를 보자, 남자는 못 본 것인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무심한 얼굴로 기사의 앞까지 다가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괜스레 머쓱하게 먼저 인사를 한 기사의 목소리에 지게를 짊어지고 올라오던 남자는 허허로이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웃음을 짓자 험상궂게만 보이던 표정이 조금은 넉넉해졌다.


“아, 반갑소. 여행자이신가.”


“네, 원래 제국 출신인데 잠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이제 돌아가는 길이죠. 하하.”


기사는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묻지 않은 얘기까지 술술 털어놓고는 남자의 등 뒤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지게는 왕국에 체류할 때 몇 번 보긴 했지만, 등 뒤에 짚에 쌓인 짊어진 묘한 향이 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등 뒤에 짊어지신 건.. 뭡니까?”


호기심이 서린 눈으로 지게를 바라보는 기사의 모습에 남자는 잠시 지게를 내려놓고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뿌드득 하는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 지 기사는 남자의 허리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으그그.. 이게, 누룩이라고. 술 만들 때 쓰는 겝니다.”


“오.. 그 탁주.. 말이지요?”


“예. 제국에서는 발포주를 자주 드시니까, 잘 못 보실 게요.”


가벼운 스트레칭을 마치고 남자는 누룩을 가볍게 쓸어 만지며 말했다. 기사는 ‘호오’하고 호기심 어린 탄성을 내고는 지게 뒤쪽으로 향했다. 코를 가져다 대며 남자를 흘끗 바라보는 기사의 모습에 남자가 개의치 않는 듯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을 보곤, 기사는 조심스레 냄새를 맡아 보았다.


향을 잘 모르는 제향사가 이런 저런 향수를 마구 섞어서 내놓은 듯 무언가 썩은 듯도 하고 향기로운 듯 느껴지기도 하는 냄새에 기사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코를 매만졌다.


“탁주는 몇 번 마셔 봤습니다만.. 이 냄새는.. 잘 모르겠군요.”


“술 만드는 사람도 못 맡는 사람이 있는 걸, 제국 분께서도 익숙치 않을 만 하지요.”


껄껄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한 남자는 몇 모금 더 연기를 빨아들이곤 담배의 끝부분을 잡아 불을 꺼뜨렸다. 꺼뜨린 담배를 앞주머니에 집어넣는 남자의 앞주머니에는 그런 식으로 넣어둔 담배가 몇 까치 정도가 더 보였지만, ‘어이쿠, 피우다만 게 좀 있었구먼.’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매번 넣어두기만 하고 잊어버리는 모양이었다.


“케이스에 넣어두시지요.”


넌지시 충고를 하는 기사의 말에 남자가 어깨를 풀다 기사를 보며 다시금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같은 서민이 무슨 케이스 같은 게 있겠소. 그냥 주머니가 케이스지.”


남자는 다시금 지게를 짊어지며 일어섰다. 기사는 남자의 앞주머니에 진 그을음을 흘끗 바라보며 위생적으로 나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굳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기사 나으리도 주막으로 가시는 게지요? 제국에서 건너오실 때도 들러보셨소?”


가도를 오르기 시작하며 묻는 남자의 말에 기사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올 때는 야영을 했습니다. 듣자하니 길에서 약간 안쪽에 있다는 거 같던데요.”


“아, 그래. 초행이면 못 발견하는 분들도 제법 있다오. 안내 해줄 테니 함께 갑시다.”


남자의 친절한 제의에 기사는 처음부터 그럴 셈이었지만 굳이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헤매지 않아도 되겠군요, 하하!”


너스레를 떨 듯 말하는 기사를 보며 남자는 슬쩍 미소를 짓더니 얼마가지 않아 나타난 샛길에서 몸을 틀었다.


“여기서 들어가야 된다오.”


남자의 말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지게를 흘끗거리다, 지게를 아래에서 조금 밀어주듯 들어올렸다. 남자는 한결 편해진 듯 기사를 돌아보곤 감사의 목례를 하며 앞장서서 샛길로 들어섰다.


샛길로 어느정도 걸어 들어갔을까.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이 되어서야 방이 두어 개 정도 있을까 싶은 작은 나무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여깁니까?”


“그래, 기사 나으리께는 별로 좋아보이진 않겠지만 하룻밤 정도는 쉴 만 할게요.”


지게를 집 옆쪽에 내려놓는 남자를 도와 지게를 잡아주며 기사는 집을 살펴보았다. 나무로 대강 지어놓은 듯한 집은 남자의 말대로 그리 훌륭해 보이는 숙소는 아니었다.


울타리가 쳐져 있는 안쪽으로 집과 그리 넓지 않은 마당으로 이뤄진 공간은 폐가를 간신히 면할 정도였다. 나무가 비틀어져 틈이 숭숭 뚫린 사이사이에 붉은 흙을 발라 보강을 해두긴 했지만 가끔 흙이 떨어져 내렸고, 울타리로 둘러쳐진 마당 안쪽에 앉아 쉴 수 있게 만들어둔 넓은 마루는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먼지도 좀 있는 것 같은데.. 손님이 많지 않은가?’


집을 훑어보며 고개를 안쪽으로 길게 빼 안쪽을 기웃거리던 기사는 그래도 야영보다는 낫겠다고 위안하며 어물어물 입을 열었다.


“아.. 벌레랑 같이 동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잠자리죠.”


“하하, 그렇소? 아, 주인장이 왜 이렇게 안 나올까. 잠시 들어갔다 올 테니 저기 앉아서 잠시 기다려 보시오.”


남자는 울타리 밖에서 기웃거리고만 있는 기사의 손을 끌어 마루에 앉히곤 누룩을 들고 안쪽으로 향했다. 기사는 남자가 들어간 방향을 흘끗 바라보다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지붕 사이에 거미줄이 쳐져있고 방문이 조금 삐꺽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기사는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려 애썼다.


“음, 그, 그래. 청소야 뭐 이따 해주겠고.. 방에.. 불은 떼 주겠지? 바람은 이불 좀 뒤집어쓰면 되고.. 아, 돈은 있나?”


기사는 환전해놓은 왕국 화폐의 잔금을 확인해 보려 주머니를 끌러보려다, 솔솔 풍겨오는 이름 모를 나무 냄새에 눈을 끔뻑거리며 눈을 비볐다. 남자가 들어간 안쪽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기사는 안쪽에서 뭔가 하는 건가 싶어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어라, 왠지 졸린데..”


기사는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에 저항하듯 눈을 부볐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몰려오는 졸음은 참지 못할 정도로 달콤했고, 기사는 저항할 의지를 천천히 잃어 마루 위로 길게 몸을 뉘였다.


“잘자라 우리 돈줄~ 금전과 은전 속에~”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이름 모를 향긋한 나무 냄새, 그리고 천천히 가까워오는 굵직한 자장가 소리는 기사의 머릿속에 위험신호를 울렸지만 기사는 수마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곧 안정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렸다.




많은 비평, 쓴소리 환영입니다!


작가의말

2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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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27 2 13쪽
15 3. 황금의 기사와 강 아래의 도시 19.04.28 34 3 7쪽
14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1 3 10쪽
13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6 45 2 10쪽
12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6 2 11쪽
11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25 49 2 9쪽
10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7 56 2 9쪽
9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6 54 2 8쪽
8 2. 황금의 기사와 마법의 갑옷 19.04.14 60 3 11쪽
7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4 67 2 9쪽
6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72 2 8쪽
5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3 94 3 7쪽
4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2 104 2 8쪽
3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140 3 7쪽
» 1. 황금의 기사와 탈출의 밤 19.04.10 213 3 11쪽
1 0. 황금의 기사와 시작의 이야기 19.04.08 370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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