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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 천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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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화
작품등록일 :
2019.06.2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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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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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 라그랑주 역학 (2)

DUMMY

라그랑주 역학(Lagrangian mechanics).

라그랑주 역학은 분명 고등과정에서 나오는 개념이 아니다. 그렇기에 ‘라그랑주 역학으로만 풀리는 문제’ 같은 건 출제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이단이다. 고등 역학의 입장으로 보면 단점만 많겠지. 단순하고 직관적인 뉴턴역학보다야 복잡하니까. 유도하기도 힘들뿐더러, 미분이며 적분이며 하는 개념들이 듬뿍 들어가니까.


‘하지만 단 하나의 장점이 있지.’


뉴턴역학은 어찌 되었든 3차원상에서의 벡터 개념. 그러나 라그랑지안은 스칼라양이다. 그렇기에 그 차이에서 오는 계산의 편리함이 때때로 빛을 발한다.

바로 지금의 이중진자 문제에서처럼. 나는 바로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기술한 뒤···

그때 신예은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갑자기 웬 운동에너지랑 위치에너지? 이거 에너지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

“라그랑지안 쓸 거야.”

“라그랑지안···?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경시대회 문제에서도 잘 안 쓰는 건데?”

“예전에 해본 적이 있어.”

“해봤다고? 학원도 안 다니고, 선행도 안 했다며···?”

“난 선행을 안 했다고 한 적은 없어. 나 혼자 독학으로 조금 했다고 했지.”

“그렇다고 해도 적당해야지. 이건 진도가 너무 나간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관심이 있어서 따로 찾아봤었어.”

“아니 그래도···”

“신예은.”


나는 신예은의 말을 잘랐다. 신예은은 아마도, 내게 놀라고 있었다. 사실 나조차도 나한테 놀라고 있었다. 나는 김마루의 발표 이후로 쭈욱, 마음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느끼고 있었다. 내 눈은 분명 차갑고, 무미건조할 거다. 그러니 신예은 입장에선 헤실헤실 웃던, 늘 보아왔던 모습의 내가 아니니까 낯설고, 당황스럽겠지.


“지금 이럴 시간 없어.”

“뭐?”

“요 며칠 동안 나, 네 말 잘 따라줬지.”

“······.”

“그러니까 너도 한 번만 내 말 좀 들어주자.”

“알···았어.”


다시 집중했다. 어두운 방을 손으로 더듬어 가는 것처럼, 답답하고, 이 길이 맞는 건가 하는 두려움,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안개 속을 헤집는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면, 하는 불안감.

그렇게 애써서 건져 올린 것들을 적어냈다. 그리고 그 확신을 신예은에게서 확인받았다. 얘는 분명 내가 준 것들을 구현할 수 있다. 내가 식을 건네면, 그게 수학적으로 맞는지 확인해준다. 철저한 분업이다.


“너 어떻게 하는.. 아니, 아니다.”

“감으로.”

“감으로 한다고? 이렇게 복잡한데? 네가 할 수 있는···”


네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 말을 하려던 신예은이 흡, 하고 말을 삼켰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이게 순수 수학이었다면.


“안 복잡해. 물리잖아. 고등물리에서 쓰는 적분 같은 거야 다 편법수준이지. 테크닉만 빌려오는 거잖아. 엄밀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니까 그 테크닉을 어떻게 이해하지 않고 외울 수 있냐고.”

“이해했었어.”

“...?”


“진자가 움직이는 각도 theta가 작다면 ‘삼각함수의 근사’를 통해 sin(theta) = theta = x/l 처럼 단순화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문제에서 각도에 대한 제약 조건을 제공했을 때의 얘기고, 지금처럼 따로 언급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게 아쉬운 부분이죠.


이 와중에도 김민철은 발표하고 있었다. 벌써 풀이가 절반은 넘어선 것 같다. 그 얼굴을, 그리고 시간을, 보면서 빠르게 손과 머리를 움직였다. 저 발표가 끝나기 전에 나도 풀이를 완성해야만 했다.


어쨌든 우리는 과학고생이었고, 그랬기에 분명 흥분하고 있었다. 신예은은 이런 문제를 자기 손으로 계산해서, 라그랑주 역학을 이용해 이색적으로, 우아하게 풀어냈다는 사실에. 나는 과거를 재현해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됐다, 답도 쟤들이랑 똑같이 나왔어.”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손을 들려고 하는 신예은. 치켜 올라가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직 아니야.”

“뭐?”


제일 완벽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기가 잘 익었다고 흥분해서 달려들면 안 돼. 레스팅(resting)을 거쳐야 비로소 맛있는 고기가 되는 것이다. 밥이 다 지어진 후 뜸을 들이는 것처럼, 육즙이 천천히, 골고루 퍼지기까지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제일 맛있는 상태가 완성되었을 때.

그때 덮친다.


만약 이게 정말 건설적인 의도를 가진 질문이었다면. 스쳐 지나가듯이, 아, 저희도 생각해봤는데 이런 풀이도 있는 것 같아요~ 해도 좋았겠지. 그럼 저쪽에서 아 그러네요~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하하.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피차 하하호호 웃으면서 말이야.


만약 김민철이 김마루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풀이를 기억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떠올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 아마.


역겹다. 선생님에게 말할 용기가 없어서 내게 화풀이하고. 그에 이어 상관없는 우리 팀원까지.

나를 모욕하는 건 상관없었다. 그런데 나 때문에 내 주변인까지 괴롭히는 건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김민철은 내가 정한 선을 넘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철저하게, 김민철에게 모욕을 줄 생각이다.


그때 김민철의 발표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저쪽은 신예은 원맨팀인 우리와 다르게 김병학 혼자만 잘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김민철이 채워둔 칠판이 빼곡하다. 보통 저렇게 풀이가 길어지면 더러워지고 중구난방으로 난잡해지기 마련인데, 나름 깔끔하게 정리했다.


“여기까지만 보셨다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당황하실지도 몰라요. 제한조건도 없고, 변수는 많은데 식은 부족하고. 저희는 여기, 문제에 숨겨져 있는, 줄의 길이가 일정하다는 제한조건을 이용했던 겁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 정리를 통해 조건식을 얻는 거죠. 이게 핵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아이들의 박수 소리.


“상당히 잘 풀었네요. 꽤 더러워질 수 있었는데, 풀이 순서나 정리한 방법이 아주 깔끔하네요. 노련하다고 할까. 게다가 쓸 수 있는 제한조건과 없는 제한조건을 구분해서 설명해준 것도 정말 좋았구요. 복잡한 문제였는데 잘 풀었습니다.”


백기현 선생님은 김민철 조의 풀이에 대해 거듭 칭찬을 했다. 나는 선생님의 그 입을 유심히 본다. 그 모든 칭찬이 끝나는 순간.


지금이다. 행복감이 최고로 올랐을 때,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푸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나요? 아주 열심히 푸셨던 것 같은데.”


김민철은 내 말에 희미하게 담긴 비아냥거림을 눈치채고 답했다. 나와 같은 어조로.


“음? 시간은 뭐, 부족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조의 발표 때까지 넘기지도 않았고. 충분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만.”

“혼자 풀었다면 그랬겠죠. 그쪽 4명이 다 달려들어서 푸는 것 같던데요.”


그것도 그 뛰어난 김병학까지 포함해서 말야.

김민철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이번 시간은 원래 다 같이 푸는 시간이고, 제한 시간도 맞췄습니다. 저희는 주어진 조건 하에 제대로 했습니다만.”

“아시겠지만, 오늘 저희가 푼 문제들은 대학교 수시 심층 면접 문제들을 겨냥한 류의 문제였죠. 이게 시험이었다면, 저 풀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풀이일까요? 만약에 입시에 나왔다면요.”

“···?”

“면접 직전에 문제 풀 시간은 약 10~15분, 짧게는 5분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출제 의도가 정말 저 풀이일까요? 면접관들의 의도가요.”


왜냐? 대학교 입시에서는 고등학교 물리를 넘어선 과정, 즉 뉴턴역학으로 풀 수 없는 방식을 절대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 없다. 그러니 ‘간접적’으로 물어보는 거다. ‘야야, 좀 더 고급 방식이지만 이걸 쓰면 더 쉬운데. 혹시 알고 있니? 아 오해는 말고. 절대로 선행한 거 물어보는 건 아니고.’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이쯤 되니 저쪽에서 오히려 비웃는다.


“즉 그럼 이거보다 더 간단하게 풀 수 있다는 겁니까?”

“네.”

“하하하, 어디 한번 나와서 보여주세요, 그럼.”


마지막 대답은 빨랐다. 망설임도 없이. 저 복잡한 풀이를 자신들이 최대한 간략화 시켰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나가도 망신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나는 앞으로 천천히 나가서, 칠판을 가득 채운 김민철 조의 옆의 작은 칠판에 내 풀이를 썼다. 그림도 설명도 없이.

나는 하나, 둘, 셋, 넷, ···아홉 줄. 저쪽은 어디 보자, 하나, 둘, ···스물아홉 줄.


“아, 참고로 λ가 장력입니다.”


조용해졌다. 고요한, 김병학, 김민철 정도는 놀란 표정이지만, 대부분은 멀뚱히 앉아서 나를 보고 있다. 내가 맞았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고요한이 속한 3조의 모둠에서, ‘쟤 뭐한 거야?’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고요한이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이는 것도 보인다. 그러자 곧 ‘아~ 라그랑지안?’ 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러자 그쯤 되서야 다른 조에서도 ‘뭔가 있긴 있는 건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우리 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신예은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듣더니, 이세아와 김마루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벌써 입학한 뒤로 며칠이 지났지만 이렇게 앞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풀죽어 있었던 김마루의 얼굴이 환하게 개어있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반면 김민철의 얼굴은 형편없이 일그러져있다.

사실 김민철의 상황도 다른 애들과 별반 다르지는 않다. ‘라그랑지안’이라는 것의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다. 한두 번 정도는 직접 보기도 했겠지. 하지만 이 정도의 문제를 직접 풀어본 적은 아마 없을 거다.

그 표정이 모든 생각을 말해준다.

‘저 새끼가 도대체 어떻게···!’


“흥미롭네.”


조금씩 소란스러워지는 주변을 환기시키며 백기현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설명 한 번 해줄래? 식만 보고서는 아직 이해 못 하는 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왜 더 간단하게 풀렸는지에 대해서.”


“단진자 운동에서의 뉴턴역학과 라그랑주 역학을 보면, 비교할 것도 없이 뉴턴 역학이 더 간단합니다. 그리고 더 직관적이죠.

하지만 지금 같은 이중진자 문제는 뉴턴역학으로 접근하려고 할 시 피타고라스 정리 같은 제약조건을 이용하여 '풀' 수는 있지만, 수많은 조건식과 변수에 대해 상당한 계산량을 들여 풀어내야 했겠죠. 그러나 라그랑주 역학은 정의 자체가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에서 출발합니다. 즉 에너지, '스칼라' 적으로 접근하는 관점을 통해 이렇게 더 간단히 풀리게 되는 겁니다.”


나의 긴 설명이 지나갔다.

소란스러웠던 교실이 조용해진 상태로, 다들 눈만 깜빡거리고 있다.


“이건 누구의 생각이었죠?”


분명 백기현 선생님의 저 질문은 신예은이 풀은 게 맞냐고, 확인차 던지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의 나에게는 왜인지 내가 푼 거냐고, 그렇게 묻는 것처럼 들렸다.


“접니다.”


백기현 선생님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며 거듭 묻는다.


“다른 조 도움도 없이?”

“네.”

“발표 도중에 신예은 학생이 옆에서 막 끄적이던데, 그건 뭐죠?”

“그건 제가 푼 것에서 계산적으로 실수가 없었는지 검산을 받은 겁니다.”

“확실히 대단하네요. 틀린 부분도 없고. 출제자의 의도도 이거였다고 봐야겠죠. 대학 입시도 고등학교 입시와 마찬가지로, 정책상으로 앞선 진도의 부분을 물을 수 없게 되면서 이런 식으로 꼬아서 의도를 숨겨놓으니까요.”


백기현 선생님의 말에 김민철 쪽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럼 본인이 사용한 라그랑주 역학을 유도할 수는 있어야겠죠?”

“···!”


유도는 준비 안 했다. 설마하니 그것까지 시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자 김민철 쪽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반대로 신예은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유도까지 하지는 못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고요한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날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이 모든 모습을 보고서도 ‘헤헤, 그거까진 못하겠는걸요.’ 하면서 자리로 돌아갈 순 없잖아. 그러니까,


“···해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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