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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화 님의 서재입니다.

과학고 천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소소화
작품등록일 :
2019.06.27 21:17
최근연재일 :
2019.11.18 11:1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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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25

작성
19.10.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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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007 - 그거 그렇게 푸는 거 아닌데 (2)

DUMMY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직 안 늦었다. 지금이라면 무마할 수 있다. 그냥 재밌는 농담이었다고.


“푸하하하.”

“···?”

“아, 미안, 미안. 이게 제일 어려운 문제였어서.”


김민철이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본다. 이건 도발이다. 내가 말하게 하려는 거다. 도망칠 길을 없앤 거다.

저 말에는 제일 어려운 문제였는데 네가 어떻게 풀었겠냐, 라는 저의가 깔려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깊은 확신도.

김민철은 이세아와 신예은 앞에서 나를 망신 주려는 속셈이다.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모습을 보여주며, 이런 애를 너희는 팀으로 받은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제껏 내가 자기 말을 무시하면서 대답도 안 하고 먹는 거에만 집중하고 있다가, 건수를 잡아 신난 모습.


고개를 들어보니 테이블의 애들이 하나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뭐라도 말하길 기다리면서.

나를 보는 김병학의 무표정한 얼굴도 보인다. 낮의 ‘수준을 모르는 건 좋은데, 너무 나대지는 마라.’라고 내게 했던 말이 그 얼굴 위에서 오버랩된다.


‘왜일까.’


과거의 내가 얼마나 은연중에 무시당했을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김병학이고, 김민철이고, 왜 하나같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그 깊은 내면의 이유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것 같다.

여기서 더 참으면 호구가 되는 거라는 것. 10년이나 전으로 돌아와서까지 당하고만 있긴 싫다.


“그래, 이 문제는 선행이랑도 관련 없는 문제고. 저항 합성하는 정도는 중학교 때도 배우잖아? 키르히호프 법칙 같은 건 아무리 선행을 안 했다 해도 알 거고.”

“그러고 보니 이 문제야말로 이해우가 풀 수 있는 문제였겠네.”

“배워도 못 푸는 거일 수 있는데 ‘안 배웠으니까’로 다 용서되잖아. 이른바 명예로운 죽음을 당한 거지.”

“하하하!”


김민철의 패거리가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며 부추긴다. 선행 안 해도 풀 수 있다곤 하지만. 본인들도 못 푼걸, 내가 어떻게 풀었겠느냐는 말이 그 저변에 깔려있다.

그런데 그 말이 딱 맞다.

이 새끼들아, 이게 내가 자신 있게 풀은 유일한 문제다.


나는 전생에 거의 과학고 전교 꼴등에서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내가 종래에는 카이스트에 입학하며 과학고를 졸업했다. 그건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구성원 모두가 노력하는 과학고라는 사회에서는.

이건 내 지식 같은 게 아니다.

내 실력이다.

이 문제는 딱 하나의 아이디어면 충분하다. 아주 간단한.


“두 지점 사이의 전압이 0이 되는 곳을 찾아보면 돼.”

“응? 아하하!”


내 대답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기껏 생각해낸 게 그 정도였냐는 듯 김민철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자 그 패거리들도 소리 내어 같이 웃기 시작했다.


“아, 새로운 해석이야. 우리가 너무 그쪽으로만 접근하긴 했네. 사실 원론적인 쪽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지.”


흘깃 주위를 보니 고요한과 신예은, 그리고 김병학- 천재 삼인방의 얼굴만 굳어져 있다. 역시 천재들은 눈치가 빠르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신예은이 입을 열었다.


“···회로를 상당히 많이 없앨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위가 같은 지점 사이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으니까. 아까 우리가 토론한 대로 문제에서 제시한 회로와 대응되는 3차원 회로를 만들었으니 이해우 말처럼 전위가 같은 지점을 찾는 게 더 쉬워질 것 아니야? 경로를 한 변씩 나가면서 맞춰보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순간 애들은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신예은을 바라보기만 했다. 좌중이 고요해졌다.


그 고요한 침묵을 깨고 고요한이 말했다.


“맞네. 그렇게 풀면 되네. 간단했네. 이걸 왜 생각 못 했지?”

“······.”


신예은과 고요한의 말이 지나간 후로도 몇 초 동안 여전히, 주위에선 아무 말이 없었다.

솔직히 아직 다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두 지점 사이의 전압이 0이 되는 곳을 찾아보면 돼.’라는 겨우 한마디밖에 안 했고, 신예은의 말은 워낙 속사포처럼 빠르게 지나갔기 때문이다.


다만 중학생 때부터 이미 천재라고 불리며 명성이 자자한, 그 고요한이 긍정을 했기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쟤들은 다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어쭙잖게 먼저 말을 꺼내면 괜히 망신을 당할까봐.


그게 바로 수준의 차이다.

저 둘은 내가 흘린 조금의 말로 바로 문제의 풀이를 이해했다. 게다가 신예은은 내 말을 길게 풀어 나름의 설명까지 붙였다.

반면 이들은 그 설명까지 듣고도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과학고 속에서도 천재와 범인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김민철이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낸다.

보아하니 그래도 나름 이해를 마친 표정이다. 동시에 나에 대한 의구심이 만연한 표정이다.

내가 생각 없이 말한 것에 우연히 얻어걸린 게 분명하다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믿고 있겠지.


“너의 생각이 신선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방금 신예은이 구체적으로 설명한 풀이가 정말 네가 푼 것과 동일한지는 모르잖아? 네가 그렇게 풀었단 증거는···”

“답이 얼마가 나왔는지를 물어보면 되겠지. 이해우가 여기서 지금 신예은의 말을 듣고 풀이를 이해해서 그 복잡한 회로를 암산해서 풀 정도로 똑똑한 게 아니라면, 시험 칠 당시에 푼 거겠지.”


김병학이 김민철의 옆에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얼씨구, 쟤가 나를 도와주네.


“그... 그렇겠네!”

“그래, 이해우. 답은 얼마였어?”

“19/34.”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병학은 김민철이 가방에서 꺼내 들고 있던 시험지를 낚아채 슥삭슥삭 무언가를 종이에 적어나갔다.

그리고는 자기도 신기하다는 듯, 실소하며 말했다.


“···맞네?”


그쯤 되니 이제 모두가 ‘풀이를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이해우가 푼 게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주변의 반응이 볼만했다.

김민철 패거리는 아직도 못 믿겠다는 듯 경악에 가득 찬 얼굴이었고, 김병학은 여전히 감정 없는 강렬한 표정으로 날 지긋이 보고 있다.

신예은은 눈썹을 세우며 날 노려보고 있다. 방금 화학 시간에 아무것도 몰랐던, 바보1이었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이 맞는지 의심하고 있겠지.

이세아는 옆에서 ‘역시 물천! 물천!’ 하고 조용히 속삭이며 날 띄워주고 있다. 물론 그 표정을 보니 아직 이해를 못 한 것 같긴 하다만.

김민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리고는 못 믿겠다는 듯,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선행도 안 했다면서, 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안 거냐?”

“안 했다곤 안 했지. 독학으로 조금 했다고 했잖아. 게다가,”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너희 말대로 전위가 같으면 전류가 안 흐른다는 건, 중학교 때 배우는 거잖아?”


그리고 김민철은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을 찡그리며 감았다.

화가 나겠지.

많은 사람, 특히 여자들 앞에서 날 보란 듯이 망신 주고 싶었는데 실패했으니.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날 오히려 띄워주는 꼴만 되어버렸으니.


그런데 나도 화가 난다. 네가 잘 보이려고 억지로 가방에서 시험지까지 꺼내느라 내 버팔로윙이 떨어졌잖아.


“...좋은 풀이 고맙다. 나도 자습실에 올라가서 다시 풀어봐야겠군.”


그리고는 그대로 식판을 들고 일어섰고, 그 뒤를 이어 그의 팀원들도 이때다 싶어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애들이 다 떠나고 넓은 식당에 우리만 남았다. 애초에 한 조였던, 신예은, 김마루, 이세아, 그리고 우리 조는 아니지만 고요한까지.

이세아는 그제야 저가 원하는 편안한 분위기가 된 듯 해맑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어떻게 푸는 거라고?”



#



“어떻게 그걸 의심할 수 있었어?”

“뭐가?”

“네가 말한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 말이야.”

“너무 복잡했어.”

“복잡했다.”

“복잡한 회로 같은 경우는, 아니면 규칙적인 무한저항 회로 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특수한 테크닉을 통해 풀 수 있게 만든다···고 알고 있어. 그런데 얘는 반복되는 규칙이 안 보였어. 그러니 이걸 단순히 합성할 수 있을 리가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다른 풀이법을 찾아보려 한 거지.”


나는 이세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중간중간 찔러오는 신예은의 의심의 눈빛에 말끝을 조금씩 흐리면서.

저항을 합성하거나 규칙을 찾는 것만 생각했지, 누구도 이런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신예은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게 아니라 답만 찾아내려고 한 거고, 김병학은 3차원 회로에 대응시키는 창의성까진 좋았지만, 그 뒤까지 닿지 못했다.

솔직히 스스로도 조금 뿌듯했다. 과거에 그토록 내가 우러러봤었던 천재들, 그들이 못 풀었던 문제를 내가 보란 듯이 풀다니.


김마루는 자기네를 두고 바보클럽-신예은이 우리 조를 보고 지어준 명칭-을 탈출하면 안 된다는 둥 하며 헛소리를 하고 있다.

이세아는 아직도 낑낑대며 고요한이 건네준 시험지를 다시 혼자 풀고 있다.


그때 문득 섬찟한 느낌에 등을 돌리자 한 선생님이 우리 뒤의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턱을 괸 채로,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분명 물리과의 백기현 선생님이다. 뭐야, 언제부터 저기에 계셨던 거지?

내 시선의 방향을 보고 이세아도 뒤늦게 선생님을 발견하곤 인사를 했다.


“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직도 안 가시고 뭐하세요?”

“어, 그냥.”

“흠..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누군가 ‘그냥’이라고 말할 땐 보통 그냥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랬어요.”

“하하, 현명한 어머니시네.”

“기회가 되면 어머니께 전해드릴게요. 그런데 정말 왜 오신 건데요?”

“그냥 궁금해서, 너흰 안 나가는지.”

“네? 어딜요?”

“자습실.”

“자습실은 왜요? 이거 먹고 저희끼리 매점도 가려고 했는데. 저녁 시간 많이 남았잖아요.”

“왜긴.”


빙글빙글 웃고 있는 저 얼굴이 어쩐지 불안하다.


“1차 시험 성적, 나왔다.”


작가의말

오늘은 9분 정도 늦었네요 하하

9분이 90분이 되고 9시간이 되고....가 안 되게 조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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