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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이다

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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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연재수 :
195 회
조회수 :
18,195
추천수 :
333
글자수 :
1,020,566

작성
23.09.27 18:05
조회
88
추천
3
글자
11쪽

기억과 길 (3)

DUMMY

창이 정확히 이혜진의 심장을 꿰뚫었다.

확실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곧장 죽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마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심장이 파괴되며 그것에 담겨 있던 마력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 때문에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그녀가 잠시 생체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말이다.


“쿨럭······!”


그녀가 피를 게워냈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저 창이 빨아들이고 있는 피에 비하면 그러했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리터너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다양했다.

다양했으나 다 합쳐도 다른 한 가지의 양을 이기진 못했다.

무표정.


그들 중 대다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악인일뿐더러 그들에겐 죽음이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심장을 꿰뚫었군요.”


신윤아가 피로 물든 창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생포해 정보를 얻으려고 했으나 무산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느끼는 것은 딱 그 정도뿐이었다.


반면 김윤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은 지금 각성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일대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정확히는 한 사람이 보고 있는 주마등이 김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것은 이혜진의 삶이었다.

그녀의 기구한 삶이 김윤에게 스며들었다.


그로 인해 그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동정심을 품을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한 행위가 올바르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김윤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들었다.

기억이 새겨지지 않은 지도였다.


이혜진이 그 모습을 감기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에는 증오와 혐오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김윤은 개의치 않았다.


“기억했다.”


그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그의 손이 피로 물든 창에 닿았다.

끈적한 피가, 뜨거운 피가 손에 맞닿았다.

그 감촉이 김윤에게 구역질을 일으켰다.

그러나 억눌렀다.


지금까지 잘 참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넘길 것이다.


김윤은 손이 맞닿은 창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모두 이곳에서 떨어지세요.”

“네? 음······. 알겠어요.”


신윤아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 나머지 리터너들과 함께 실바 크라켄의 몸에서 내려갔다.

그들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김윤은 다시금 일대의 기억을 읽었다.

그리고 재현했다.


‘지금이라면 가능해.’


그가 평소엔 할 수 없던 기억의 사용법.

이 무기에 깃든 모든 기억을 일시적으로 그의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변화를 일으킨다.


숲의 주인, 그것이 자신의 주인인 이혜진이 아닌 김윤의 손에서 발동되었다.

그것은 그녀를 꿰뚫은 식물의 창과 실바 크라켄을 타고 펼쳐졌다.


그들은 하나로 이어졌고, 하나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무였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나무.


실바 크라켄의 몸통이 부풀어 오르더니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김윤과 이혜진이 있는 곳을 휘감으며 몸통을 이루었다.


그 끝자락에는 나뭇가지가 자라났고, 잎사귀가 피어났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잎사귀 중 일부가 쏟아졌다.

그것은 바닥에 잔뜩 깔린 식물형 몬스터들과 맞닿았고, 나무로 변했다.

하나의 숲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김윤이 과거 멸망의 기억을 이 공간에 새긴 것처럼.

지금 이곳에 숲이 새겨지고 있었다.

김윤이 가진 기억을 통해, 이혜진이 가진 기억을 통해.


이어 김윤은 새하얀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그곳에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가 보게 된 한 사람의 생애가 그곳에 담겼다.


“이혜진······.”


김윤은 이혜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것에는 증오 따위가 담겨 있지 않았다.

생명조차 담겨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생애의 주인은 이미 길의 끝자락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기에 완성된 지도였다.


김윤은 그 지도를 바닥에 펼쳐두었다.

지금 이 나무 안쪽의 공간은 꽤 넓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이어 그는 뒤를 돌아 자그마한 나무 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그러자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길을 열었고, 김윤을 바깥으로 내보내 주었다.


김윤이 바깥으로 나가자 그것은 곧바로 그 입구를 닫아버렸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나무줄기가 그 내부를 메우기 시작했다.

저것은 무덤이었다.


“옳지는 않았지만 이해했다.”


그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도망쳤기에 일어난 일이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진작에 마주했다면.

이 힘을 제대로 활용했다면, 정말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돌아가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었을 것이다.


김윤이 하나의 숲을, 무덤을 바라보았다.


멸망 전에도, 멸망 후에도 행복하지 못했던 그녀를 위한 무덤.

이 망가진 세상을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사람을 위한 무덤.

하지만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무덤.


“······이 나무들은 문제가 없을 거예요.”


김윤이 주변을 장악한 숲을 가리켰다.

이것은 그저 평범한 숲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공간에서는 볼 수 없던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운 풍경이네요.”


신윤아가 마력을 거두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리터너가 그러했다.

이제 이곳에서의 일은 끝났으니 말이다.

그래, 끝났다.


김윤 역시 그것을 인지했다.

그러자.


“우웨에엑!”


기다렸다는 듯이 속을 게워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넘어 타인의 트라우마까지 접했던 그였다.

이제 몸과 정신, 그 모든 것이 한계였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의 기억이 스며들었다.


트라우마란 그렇게 쉽게 나아지는 것이 아니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마주하기로 했을 뿐.

그렇기에 참으며 한계를 넘어섰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그를 찾아왔다.


트라우마로 넝마가 된 정신.

증폭된 마력초로 인해 망가진 몸.


김윤이 비틀거리며 근처 나무에 몸을 기댔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그조차도 버거워했다.


의식이 흐려졌다.


‘아, 안··· 돼······.’


아직 이대로 쓰러져서는 안 됐다.

이제 이곳에서의 일이 끝난 것뿐인데.


‘기억을 통해 알게 된 걸 전해야 하는데······.’


하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김윤의 눈이 감겼다.


털썩.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



한편 수뇌부 추적에 나선 미르와 정부.

주요 리터너는 미르 측 최현과 정부 측 신민우였다.


“신민우 리터너께서도 함께하십니까? 아,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함께해서 든든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신민우가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회귀 대신 제가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신민우가 짤막하게 대답하며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기다란 봉이었다.


“최현 리터너는 전선으로 나가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그야 제가 의뢰했던 일이니까요. 제가 해결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그렇죠.”


최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눈앞에 건물을 바라보았다.


“흐음······. 평범한 길드 건물인데 말이죠.”

“이 길드는 정부에 등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음, 요즘 시대에 등록되지 않은 리터너와 그 길드는 무뢰배나 다름없죠.”


최현 역시 자신의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무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런 것이었다.

그저 광물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무기였다.

그의 고유 스킬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고유 스킬, ‘변환’.

자신의 신체와 접촉한 물건에 마력을 흘려 그가 원하는 형태로 바꾸는 것.

그것은 그가 원한다면, 질량이 동일하다면 그 어떠한 것도 제작 가능했다.


그렇기에 이 광물이야말로 그에게 알맞은 무기였다.

크기는 이래도 상당한 질량을 지닌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검 하나와 건틀릿 하나면 되겠군요.”


광물이 그의 마력을 받아먹고는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변환 스킬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그가 바라는 형태가 되었고, 그의 왼손엔 건틀릿이.

오른손엔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그럼 제가 시작을 열겠습니다.”


이어 최현이 검을 꼬나쥐며 자세를 잡았다.

그의 검을 타고 푸른 마력이 피어났다.

마력의 기초 운용, 발현.


그것이 검을 타고 피어나 하나의 스킬을 이루었다.

A급 스킬, 오라.


마법형 리터너의 꽃이 원소 운용이라면 근접형에겐 이 스킬이 있었다.

속성과 스킬의 조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날카롭게 정제된 극한의 마력 통제.

그것이 만들어내는 내구와 절삭력.


그것이 바로 지금 최현이 사용한 스킬, 오라였다.


그의 검이 정교한 일격을 날렸다.

허공을 가르는 검.

하지만 그것은 목표를 가르기에 충분했다.


오라가 일으킨 폭발적인 마력의 흐름의 순환.

그것이 만들어낸 연장된 마력의 칼날.


서걱!


그것은 저러한 건물 정도는 손쉽게 토막 낼 수 있다.


물론 위력이 어마어마하기에 그에 따르는 대가도 커다란 편이었다.

압도적인 마력의 소모량.

하지만 최현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역시 A급 마력을 보유한 이였으니 말이다.


최현의 정교한 검격에 건물에 거대한 사각형 구멍이 생겨났다.

그것은 깔끔하게 벽면만 깎아놨기에 내부에는 아무런 타격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검기라.”


쿠구궁!


바닥으로 추락하는 건물의 파편.

건물 내부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상당히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끽해봐야 30대 초반에 불과해 보이는 얼굴.

그의 머리는 마력의 영향으로 새하얗게 변해있었으며, 눈동자 역시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원래 그랬다는 듯, 잘 어울리는 이국적인 외형.


“백민호.”


신민우가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그와 백민호는 구면이었다.

과거 정부가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작전 때 마주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백화의 보스, 백민호.

전 리터너 출신으로 마력 랭크 A에 달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신민우와는 여러 인연으로 뒤엉켜 있는 자이기도 했다.


욱씬.


저자를 바라보자 얼굴에 난 상처가 통증을 호소했다.

이 상처를 만든 자가 바로 백민호였기 때문이었다.


신민우가 자신의 상처를 쓱 쓰다듬은 후, 무기를 다잡았다.

오늘은 그를 반드시 생포해낼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죽여서라도 데려가겠다.”

“그쪽을 더 원하는 것 같다만.”


신민우의 살기를 느끼며 백민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건물 바깥에 있는 이들을 훑어보았다.


“주요 전력은 최현과 신민우인가.”


그가 턱에서 손을 떼고 그것을 적들을 향해 겨누었다.


“B랭크 이상 둘 정도만 남고 모조리 물러나라.”


백민호가 자신의 뒤에 있던 이들에게 명했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잠깐이면 될 테니.”


그리고는 품에서 새카만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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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헛수고 (2) 23.10.02 75 2 12쪽
39 헛수고 (1) 23.09.28 77 1 12쪽
» 기억과 길 (3) 23.09.27 89 3 11쪽
37 기억과 길 (2) 23.09.26 71 3 12쪽
36 기억과 길 (1) 23.09.25 86 3 11쪽
35 마력초 공장 (4) 23.09.22 84 3 12쪽
34 마력초 공장 (3) 23.09.21 85 3 12쪽
33 마력초 공장 (2) 23.09.20 103 2 12쪽
32 마력초 공장 (1) 23.09.19 97 3 11쪽
31 세 개의 길드 (3) 23.09.18 100 3 12쪽
30 세 개의 길드 (2) +1 23.09.15 10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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