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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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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연재수 :
195 회
조회수 :
18,199
추천수 :
333
글자수 :
1,020,566

작성
23.09.25 18:05
조회
86
추천
3
글자
11쪽

기억과 길 (1)

DUMMY

이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자 새카만 무언가가 스멀스멀 일어났다.

그것은 그림자였고, 김윤이었다.

새카맣게 물든 또 다른 김윤이 김윤에게 속삭였다.


“또 너 때문에 죽었네?”


김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멸망을 눈에 담았다.


사방에서 솟구치는 푸른 섬광이 그날, 지구를 집어삼킨 빛을 연상시켰다.

사방에서 피어나는 핏물의 꽃이 그날의 죽음을 연상시켰다.


퍼엉!


가까운 곳에서 또다시 푸른 섬광과 붉은 꽃이 피어났다.

그리고 그 잔해는 김윤의 뺨에 달라붙었다.

핏방울이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따뜻한 온도.

김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보았고, 그 이후로도 수없이 보아온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감히 이겨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의 이 광경은 그것은 불가능하다 소리치는 듯했다.

또다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만 가고 있었다.


“사, 살려줘······!”

“그, 그만!”


마력이 폭주하고, 환각으로 서로를 해친다.

만약 그것으로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콰아앙!


거대한 실바 크라켄의 다리가 마무리를 지어주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김윤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지금의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우, 우진 씨는······? 현민이는?”


설마 이 연무를 들이킨 것은 아닐까.

아니면 폭주하는 이들에게 살해된 것은 아닐까.


김윤이 발밑에 가득한 연무를 바라보았다.


“뛰어내리려고?”


그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그림자로 이루어진 새카만 김윤이 물었다.


“뭐 좋지. 드디어 죽을 생각이 든 거구나? 하긴 가장 좋은 속죄는 그거긴 해. 안 그래?”


저곳에 들어선다면 그는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버틴다고 해도 문제다.

그렇게 된다면 무고한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해치게 될 테니 말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지키려는 이들을 해칠지도 몰랐다.


김윤이 장갑을 낀 두 손을 바라보았다.


“아, 아니지. 너는 죽는 건 또 싫었지?”


그림자가 속삭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잖아. 꾸역꾸역, 다른 이들의 피를 봐가면서. 그날의 목숨들론 부족했지?”

“아니야······.”

“그러니까 또 이런 선택을 내린 거잖아. 봐봐!”


그림자가 소리치며 김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있는 풍경을 가리켰다.


거대한 실바 크라켄의 다리가 대지를 내리찍었다.


“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늘의 판단이 내린 이 죄악감은 뭐로 속죄할 거지? 응? 또다시 도시의 균형이라는 명목하에 다른 놈들을 죽일 건가? 지도 제작자? 웃기고 있군. 너는 그저 학살자에 불과해.”

“나, 나는······.”


김윤이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거대한 실바 크라켄의 다리 중 하나가 그를 노리고 다가왔다.

이혜진의 짓이었다.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나 실바 크라켄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준 김윤.

그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기에 지금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걱!


그녀의 공격은 수포로 돌아갔다.


허우진의 일격 덕분이었다.

허우진이 휘두른 검이 거대한 실바 크라켄의 다리를 반듯이 갈랐다.

마치 무조건 갈라져야 했다는 듯이, 저 한 없이 작은 검이 단 일격에 갈라버렸다.


“사, 사장님!”


그리고 그런 일격을 보여준 이의 등에 업혀있던 이.

최현민이 김윤의 곁에 내려앉았다.


“혀, 현민이······? 무사했구나.”

“그, 그럼요. 우진이 형이 구해줬어요. 그리고 제 능력이 이 안개 같은 거에도 통하고요.”

“그렇습니다.”


허우진이 자신이 방금 휘둘렀던 검을 털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연무로 인해 몬스터들 역시 폭주해 대다수 죽었습니다.”


이 뜻은 실바 크라켄은 이제 재생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이혜진이 부여한 증폭과 마력초를 이용한 각성.

이것이 마지막 상태라는 것이었다.

즉, 이번에만 쓰러뜨리면 확실하게 끝난다.


“남은 다리는 여섯 개입니다.”


허우진이 멀리서 거대한 다리, 나무줄기를 물어뜯는 흑호를 가리켰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화, 환각이 있는 사람들은 제가 다 풀어드렸어요.”


언제부터였을까 다시 제정신을 되찾은 수많은 리터너가 나무줄기, 실바 크라켄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 그게 아니라도 폭주하지 못하게 어, 억누를 수 있어요. 초반에는 제, 제가 당황해서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사장님. 아직 구할 수 있습니다.”


김윤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를 구했던 것처럼. 그리고 현민이를 구해주었던 것처럼. 그간 수많은 리터너를 구했던 것처럼.”


그의 서로 다른 빛의 눈동자가 김윤을 직시했다.


“길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가 만들어준 길은 옳지 못했다.

김지아를 떠올렸다.

섬광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저곳에 죽어간 이들을 보아라.


그가 만든 길은 실패였다.

그는 잘못된 길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도랍시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 길을 택한 건 그들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그들의 삶입니다. 사장님은 지도 제작자지 그들의 보모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가 알려준 그 길이 틀렸다면······?”

“그 역시 그들의 선택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던 길이었고, 당신은 그것에 대한 지도를 그려줬을 뿐이니.”


허우진이 검에 마력을 실었다.

그러자 그의 검이 푸르게 타올랐다.


“그 길의 끝은 그 누구도 모르는 법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살던 지구가 아니고, 당신이 만드는 지도 역시 지구의 지도가 아니니 말입니다.”


허우진이 도약했다.

저 거대한 실바 크라켄의 다리를 향해서 말이다.


“마, 맞아요. 길은 늘 새로 생기는 법이니까요. 아, 제 말은 틀린 지도라도 고치면 된다는 말이에요. 아, 아니, 이, 이게 아닌데.”


최현민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설명했다.


“기, 길은 늘 새로 생기니 지도는 벼, 변하는 법이잖아요······? 그, 그리고 우진이 형의 말이 맞아요. 모든 게 사장님 탓은 아니잖아요. 모두가 선택해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저, 저도 그렇고요.”

“······그래.”


김윤이 그런 최현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새카만 그림자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의 속죄가 끝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조금 이기적으로 되는 것.


모든 것을 그가 책임질 수 없다.

그야 그는 한 명의 사람에 불과하니 말이다.


물론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한 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 그의 망설임 그것으로 일어난 결과.

그것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그러한 것은 도망이라고.

또다시 모두를 죽게 만들 것이라고.


그러나 도망이 어떠한가.

살다 보면 도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그는 이미 도망치고 있었다.


과거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가 만든 길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이라는 명목하에 그가 만든 길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곳에 있었고, 리터너가 아닌 지도 제작자였다.

아니, 도망자였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이제 돌아올 것이다.

그간 열심히 도망쳤으니 이제는 진정으로 마주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기적이게.

그리고 확실하게.


김윤이 마력을 일으켰다.


“속죄하려면 일단 마주하기부터 해야 했네. 안 그래?”


김윤이 최현민을 보고 싱긋 웃었다.


“네?”

“아니야, 그냥 지금 할 일이 생겨서 그것부터 해야겠다고.”


이어 몸을 날렸다.

그의 전신을 뒤덮은 마력의 발현이 푸른 궤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길이 되었다.


허공에 떠오른 김윤이 장갑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뺨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자신의 손으로 말이다.


피는 이미 식었다.

그러나 그 특유의 점도는 남아있었다.


그의 손등에 피가 묻어났다.

손이 벌벌 떨렸다.

하지만 마주해야 했다.


그러자 새카만 어둠이 다시금 그를 휘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김윤은 그 속삭임을 향해 답했다.

조금은 이기적이게.


“아니, 그들의 선택이야.”


그리고 확실하게.


김윤이 푸른 마력을 휘감은 손가락을 자신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뽑아낸 후 허공에 흩뿌렸다.

그것은 자신의 기억이었다.


그가 마주하기 두려워하던 기억.

그렇기에 뽑아서 지우지도 못하던 기억.

하지만 이제 마주할 시간이었다.


쩌어억!


허공에 포탈이 열렸다.

그의 기억이 재현한 것이었다.

김윤은 곧장 그것을 향해 돌진했다.


포탈을 탈 때 일어나는 특유의 울렁거림이 그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트라우마를, 기억을 끌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마주할 것이다.

확실하게 하기로 했으니까.


포탈의 울렁거림이 멎어갔다.

목표한 곳에 도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면 모두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실바 크라켄의 몸통 위, 그곳에 포탈이 하나 생겨났다.


“뭐야 이건?”


이혜진은 의문을 품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포탈인 이상 그것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니 말이다.

공격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포탈이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점점 흐려져 가는 결계 내부.

그 안에 수많은 포탈이 생겨났다.


“이게 무슨······?”


처음부터 트라우마를 완전히 이겨낼 수는 없다.

그저 차츰 극복해 나갈 뿐.


지금 이 수많은 포탈은 그것의 영향이었다.

폭주의 전조.


김윤의 트라우마가, 기억이 이곳에 수많은 포탈을 불러왔다.

이대로 가면 결국 폭주해 그날처럼 되고 말 것이다.

아름 바깥에 있는 새로운 풍경, 그날의 지옥처럼.


그 증거로 수많은 포탈이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토해낼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것들에게서 방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폭주를 일으키지 않았다.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혜진의 바로 앞에 있는 포탈에서 김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폭주의 억제를 증명하듯이 말이다.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김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폭주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는 마주했다.

그의 기억을, 죄악감을.


정신력을 한계까지 짜냈다.

물론 이것이 옳은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택한 길이었다.

그간 선택이라는 명목하에 택하는 도망의 길이 아닌, 진정으로 나아가는 길.


그는 자신이 만든 길에 발을 디딘 것이었다.

그것을 기억이라는 것에 기록하기 위해.

자신이라는 세계를 담은 지도로 남기기 위해.


“언제까지 도망만 칠 거냐! 김윤-!!”


김윤이 자신의 기억을 뽑아내며 크게 휘둘렀다.


화아아아악!


그것은 그날의 기억, 마석 대재해의 섬광이 담긴 일격이었다.

푸른 섬광이 그의 기억을 통해 재현되며 전방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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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헛수고 (1) 23.09.28 7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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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기억과 길 (2) 23.09.26 7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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