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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 지도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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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플폴풀
작품등록일 :
2023.08.07 15:17
최근연재일 :
2024.08.07 20:00
연재수 :
195 회
조회수 :
18,192
추천수 :
333
글자수 :
1,020,566

작성
23.09.13 18:05
조회
130
추천
4
글자
12쪽

돌아온 기억 (3)

DUMMY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기억을 지웠던 이들이 기억이 돌아와 행패를 부리는 일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처럼 정도를 넘어선 것은 없었다.


‘그것도 그렇고 타이밍이 참 애매하군.’


하필이면 주은서의 고유 스킬을 푼 날에 행해진 횡포.

누군가 그녀에게 지시한 것은 아닐까.

김윤은 그러한 의문을 품으며 무기를 당겨 쥐었다.


“일단 대화로 해결하시죠. 그 망치는 내려두시고. 기억을 돌려달라고 하셨나요?”

“······그래.”


그녀가 여전히 망치를 겨눈 채 답했다.

그녀는 그것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당장 내 기억을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이곳을 다 부숴버리겠어.”

“이미 가게는 다 부서졌지만요.”


김윤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분명 상품을 판매하기 전에 미리 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당신이 지울 기억이 너무도 뿌리 깊게 자리 잡아 기억이 돌아올 수 있다고.”

“그래서 되찾으러 온 거잖아? 기억이 돌아와 버렸으니까.”

“그게 가게를 날려버릴 이유가 되나요? 조금만 기다리셨으면 대화로 해결이 가능했을 텐데······.”


김윤이 불길이 잦아들고 있는 가게를 가리켰다.

황금빛 구체가 가게를 휘감아 불을 연소시키고 있는 덕분이었다.


“너희가 기억을 돌려주지 않으니까. 나는 한시가 급해.”


김지아가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당장 내놔!”


이어 붉게 타오르는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김윤은 몸을 틀어 망치를 피한 후, 주먹을 휘둘렀다.


“커헉!”


김지아의 복부를 파고드는 주먹.

여러 강화가 뒤섞인 주먹이었기에 리터너인 그녀도 기절을 면치 못했다.


‘상당히 무방비하군.’


물론 평상시 상태라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상태는 무언가 이상했다.


‘아무리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렇게 될 일은 없을 텐데.’


지웠던 기억이 돌아오게 되는 경우는 보통 지웠던 그 기억과 관련된 것을 접촉하는 경우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 한 번으로 돌아오지 않고, 수시로 반복을 해야만 뒤엉킨 기억의 뿌리가 자극을 받아 기억을 되살렸다.


‘기억의 뿌리가 자주 자극받을 일이 있었나?’


김윤은 그녀를 바닥에 눕히며 상태를 살폈다.

가까이서 보니 낡은 무기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수많은 상처.


‘리터너.’


그녀는 리터너였다.

아공간을 벗어나 지구를 다시금 개척하며 되찾는 이들.

그리고 그녀는 기억을 지운 후에도 그 행위를 멈추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가.’


하지만 오직 그것만으로는 이렇게 될 리가 없었다.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리터너로 활동하는 그녀의 단단한 의지가 엿보였다.


“사장님.”


김윤이 그녀의 상태를 살피던 중, 누군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서로 다른 두 눈동자를 지닌 길잡이의 직원, 허우진이었다.


“아, 우진씨.”


허우진이 김윤과 김지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반사적으로 코를 가렸다.


“이건······.”


무언가 자극적인 냄새가 그의 코를 파고들었다.


“왜 그래요?”

“마력초입니다. 이 여자에게 그 냄새가 나는군요.”


그가 보랏빛 눈동자가 담긴 눈을 찡그렸다.


마력초, 그것은 일종의 마약과 다름없었다.

마석 대재해를 겪고 전체적으로 강화된 인간의 신체.

그것은 평범한 약의 침투마저 이겨낼 정도가 되었다.

그 때문에 웬만한 약에도 큰 자극을 받지 않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멸망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도피할 곳이 필요했다.

김윤이 만들어내는 지도처럼.

아니, 그보다 더욱 강한 것으로 지금의 절망을 잊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마력초였다.

약제사와 연금술사들이 포션, 회복 약을 만들다가 만들어낸 부산물.

리터너에게도 강한 쾌락과 황홀감 및 정신적 각성을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걸 통해 억누르며 리터너의 일을 한 건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한계를 맞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듯합니다. 최근에 이 때문에 문제가 많은 듯하더군요.”


허우진이 자신의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잘 동봉된 편지 봉투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의뢰가 둘 들어 왔습니다.”


김윤은 그것을 건네받은 후, 하나씩 펼쳐 내용을 살폈다.


우선 첫 번째 편지.

그것에 담긴 내용은 마력초를 제작하는 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마력초를 제작, 유통하는 이들을 찾았다라······.”

“그래서 그들을 막아달라는 정부의 의뢰입니다.”

“이런 건 정부가 직접 나서도 되지 않나?”


김윤이 그 편지를 도로접은 후 다른 편지를 펼쳤다.

이것 역시 마력초와 관련된 의뢰였다.

정확히는.


“마력초로 인해 망가진 리터너들을 위한 의뢰로군.”


제3차 재건 원정.

그날 이후 더 많은 리터너들이 마력초에 의존하며 망가져 간다는 내용이 가득 담긴 편지.

때문에 그들의 기억을 건드려달라는 길드들의 의뢰였다.


“전자는 암살과 방해를, 후자는 기억을 요구했습니다.”

“바쁘네, 바빠······.”


김윤이 섬광으로 미르의 의뢰를 끝낸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다음 의뢰가 두 개나 생긴 것이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3차 원정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일단 이분 좀 챙겨주세요.”


김윤이 편지를 고이 접어 인벤토리로 집어넣은 후 창고로 향했다.


“기억을 돌려주실 생각이군요.”

“그래야죠.”


김윤이 그녀를 흘끔 바라본 후, 창고 내부로 들어섰다.

지도를 찾는 것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어디에 누구의 지도를 보관해두었는지 전부 기록해두었을뿐더러 그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김윤은 김지아의 기억들이 담긴 지도를 챙긴 후 창고를 빠져나왔다.


“깨어나면 건네주세요.”

“사장님은 어디 가십니까?”

“아, 가게 복원은 가능한지 좀 물어보고 오려고요.”


김윤이 불이 꺼진 가게를 바라보았다.

불은 꺼졌으나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야 폭발에 휩쓸린 상태였으니 말이다.


“의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걸 가게 복원 쪽으로 물어보려고요.”


김윤이 미소 지은 후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럼 다녀올 테니까 애들 좀 부탁드릴게요.”


이어 바닥을 박차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김윤이 제일 먼저 향한 곳, 그곳은 다름 아닌 미르 길드였다.


“여기 길드장님 좀 뵈러 왔는데요.”


김윤이 미르 정문을 가로막은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그야 그가 이곳에서 의뢰를 수행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히 일부였으니 말이다.

또한 리터너 중 대다수의 시선은 시민의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도망자.

겁쟁이.

세상을 등진 자.

시민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그들이 김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길드장님은 네놈 같은 도망자가 뵐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미르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리터너가 검을 뽑아 겨누었다.


“흐음······.”

“살려줄 테니 꺼져라!”


그의 외침에 다른 이들도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김윤은 그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발을 딛었다.

그리고 코를 킁킁거렸다.


‘여기도 마력초 냄새가 섞여 있군.’


인지하고 나니 알 수 있었다.

곳곳에 섞인 마력초 특유의 물비린내와 비슷한 냄새가 느껴졌다.


“괜히 의뢰한 게 아닌가 보군.”


김윤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뭐가 중얼거리는 거냐. 그 이상 움직이면 베겠다.”


갑옷을 입은 이가 검을 당겨쥐며 자세를 취했다.

그의 전신에서 마력이 발현되며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은 기세를 뿜어냈다.


“들여보내라.”


그때였다.

미르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르의 길드장, 박건영은 아니었다.


눈을 넘어 코를 덮을 정도로 긴 앞머리와, 목을 타고 흘러내린 뒷머리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최, 최현 리터너님. 하, 하지만!”

“내가 들여보내라고 했다.”


머리칼에 가려진 눈동자가 푸른 빛을 토해냈다.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 마력이 뒤섞인 위압감이 쏟아졌다.


“흐음······.”


그 마력을 맞이하자 김윤은 그가 누군지 깨달았다.

한 번 마주한 적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것도 길잡이에서 말이다.


'최현.'


마력 랭크 A이자 미르 소속의 리터너인 그.

한때 김윤을 찾아온 손님 중 한 명이었다.


“오랜만이군요.”


최현이 미르 건물로 들어서는 김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요.”


김윤이 그가 건넨 손을 붙잡아 악수했다.


“······그 기억은 괜찮으십니까?”


김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최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물론 전부 돌아와 버렸지만요. 아, 그것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최현이 김윤과 나란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는 그 기억이 돌아온 덕분에 오히려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가 자신의 뺨을 긁적거렸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네요.”


김윤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최현 역시 다시금 미소를 지은 후 마력을 일으켰다.

스킬, 비밀 대화였다.


“그래서 이곳에 오신 이유는 마력초 때문이십니까.”


최현이 마력을 통해 목소리가 차단됐는지를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크게 본다면 그렇게 되겠군요. 그나저나 저 앞에 있던 이들도 마력초를 사용하고 있더군요.”

“맞습니다. 요새 마력초에 의존하지 않는 리터너를 찾는 게 어려울 정도라더군요.”

“3차 원정 때문인가요.”

“그럴 겁니다. 물론 저희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마력초를 사용하는 이가 많아 창피할 따름이지만요.”


최현이 잠시 말을 끊었다.

덕분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물론 잠깐이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의뢰를 부탁한 것이 바로 접니다. 기억의 조작. 정확히는 제거겠군요.”

“다른 길드와 함께 의뢰를 넣었던 게 아닌가요?”

“맞습니다. 제가 길드장님께 부탁을 드렸고, 다른 길드 역시 해결이 필요했기에 함께 의뢰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의뢰를 다녀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최현이 김윤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왜, 왜 이러십니까.”

“염치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게 해주셨던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길을 알려주세요.”


김윤이 급히 손사래 쳤다.

그리고 그를 다시 일으켰다.


“모두가 당신을 욕하지만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 알고 있습니다.”


최현이 머리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눈으로 김윤을 응시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김윤이 자신의 장갑 낀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자신의 가족까지도.


그렇기에 속죄하기 위해 힘썼다.

그 행위를 통해 그는 모두를 도와주었다고, 구해주었다고 감히 오만한 생각을 품었었다.

오늘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 손님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그 누구도 구하지 못했었다.

그저 자신이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도망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최현도 마찬가지다.

이 자는 그가 구원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았을 뿐.


‘지도 제작자라······.’


그는 그 누구에게도 길을 알려주지 못했다.

김윤이 두 손을 움켜쥐었다.


그런 자신이 이 의뢰를 받는 것이 맞을까.

모두 자신처럼 도망자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김윤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선 김윤이 바깥에 있는 최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신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로서는 거부할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길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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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본업 (1) 23.10.03 78 2 12쪽
40 헛수고 (2) 23.10.02 75 2 12쪽
39 헛수고 (1) 23.09.28 77 1 12쪽
38 기억과 길 (3) 23.09.27 88 3 11쪽
37 기억과 길 (2) 23.09.26 71 3 12쪽
36 기억과 길 (1) 23.09.25 86 3 11쪽
35 마력초 공장 (4) 23.09.22 84 3 12쪽
34 마력초 공장 (3) 23.09.21 85 3 12쪽
33 마력초 공장 (2) 23.09.20 103 2 12쪽
32 마력초 공장 (1) 23.09.19 97 3 11쪽
31 세 개의 길드 (3) 23.09.18 100 3 12쪽
30 세 개의 길드 (2) +1 23.09.15 10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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