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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츄샤 님의 서재입니다.

밀리터리 마니아가 이세계의 전쟁영웅이 되기까지 (1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전쟁·밀리터리

카츄샤
작품등록일 :
2020.04.22 04:51
최근연재일 :
2022.03.08 11:44
연재수 :
119 회
조회수 :
17,340
추천수 :
200
글자수 :
565,196

작성
21.10.10 09:00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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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91)90화.[추락한 에이스](2)

DUMMY

그렇게 크레모아의 탈주극으로 이미 파국으로 치닫은 원탁회의는 뜻하지 않은 해산 분위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마틸다에 대해 좀 더 알아내기 위해 일부러 장교단 기숙사로 찾아가 무작정 크레모아의 방 앞에서 기다렸고, 내 예상대로 마틸다는 저녁 즈음 방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4시간이나 걸릴 줄은 몰랐지만.


방 앞에서 마주친 마틸다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이따 한번 더 얘기해봐야 할것 같아요. 이불 뒤집어쓰고 펑펑 울기만 하던 걸요."


다 니가 자초한 일이잖아. 아련한 미소 같은 거 짓지 마.


여하튼, 나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고자 운을 띄웠다.


"그나저나 너, 이대로면 별 문제 없이 조만간에 왕실 기병대로 편성 완료될거야. 이제 네 마지막 결정만 남았어. 갈지 말지."


이럴 땐 빙빙 돌려 말하는 게 아니라 직설 화법이 최고지. 애초에 질질 끄는 건 내 성미에도 안 맞고.


뭐어, 대답은 당연히 Yes겠지만 말이다. 그렇게나 목을 매었으니 한시라도 빨리 편입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터.


"...중대장님,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하지만 예상 외로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조금 뜬금없는 데이트 신청이었다.


-------------------------------------------------------------------------------------------


"아, 아직 있네."


그녀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캠퍼스 뒤쪽에 위치한 야트막한 언덕. 사실 야트막하다고 하기엔 경사도랑 높이가 꽤 되는 것 같지만...


"헉...허억..."


아니, 존나 되는 것 같지만.


때 아닌 달밤의 등산에 복장이 뒤집히는 기분이었지만, 스포츠를 했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닌지 너무나도 가벼운 걸음으로 뒷짐을 진 채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후후, 그러지 마시고 평소의 좀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셔요."


야 이 자식아. 태생적인 실압근으로 벌크업된 엘프랑 방구석에서 살크업한 나랑 같냐?


F 워딩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어딘가 신비롭고도 처연한 분위기를 띄는 그녀의 모습 때문에 나는 뭔가 있구나 하며 점잖게, 아니 간신히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여기에요. 자아, 제 옆에 앉으시겠어요?"


언덕 정상에는 나무가 없는 마치 공터같은 풀밭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이 뻥 뚫린 듯 잘 보였고, 아래로는 넓디 넓은 캠퍼스가 한 눈에 들여다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 높이를 질질 끌고 올라왔단 말이지, 이 자식이.


뭐어, 어쨋든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 풀밭의 거의 중심에 있는, 딱 하나 버려지듯 놓인 벤치와 작은 가로등.


그녀는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켜는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벤치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을 걷어내더니 곧바로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 제가 좋아하는 곳이랍니다. 하늘정원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확실히. 어째서 여기 이런 장소가 존재하는지도, 어떻게 찾아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네이밍 센스 하나만큼은 탁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꼭 무슨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웠으니까. 어릴 적 양부모님과 누나들과 손잡고 놀러간 천문대가 기억나는 풍경이랄까...


"라이트."


-딱!


그녀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다 녹슬어 청록빛을 띄는 가로등의 누런 유리볼 안에 환한 불빛이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이 녀석 마법도 쓸 줄 알았지. 썩어도 엘프는 엘프구나.


"이건 등대라고 이름붙였죠. 언제부터 있었는지는...저도 잘 모르겠네요."


마틸다가 생긋 웃었다.


그럼,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왜 나를 이런 곳에 데려왔는지.


"이유라...사실 별 것 없어요. 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공유해 주는 비밀 기지같은 느낌이랄까요?"


뭐야 그게. 못내 피식 웃자 그녀가 장난스레 혀를 내밀어 보였다.


"날이 선선하긴 하지만 오래 묶어두는 것도 실례겠죠. 으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이렇게 판 깔아주면 또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니까요, 헤헤."


그렇게 횡설수설하며 꺼내든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하지만... 있어선 안 될 이야기었다.


비록 국가의 명운에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꿀리지 않는 한 귀족가의 셋째 딸로 태어난 마틸다 로렌은 가문 역사에 대대로 남을 대업이라 할 수 있는 왕실 기병대에 입단한 언니들을 따라 당연하게도 기병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적성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는지, 마음만 먹으면 저 하늘의 은하수를 호령할 것 같은 명문가 자제들을 보란 듯이 제끼고 쟁취해낸 학생회장직도, 전교의 내로라하는 진또배기 수재들을 밀어내고 얻어낸 전교 1등의 자리도, 사교 클럽과 스포츠 동아리도, 그 모든 것이 노력에 비례해 구름 속에서 순항 중인 것처럼 보였다.


말을 사랑하며, 그렇기에 그 듬직한 등에 올라 번쩍이는 갑주를 두르고 세 척은 되는 기다란 창을 휘둘러 자웅을 겨루는, 여느 소녀나 동경할 법한 동화 속 기사님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녀는 그렇게, 자신의 가슴 속 작은 소망을 나날이 현실로 이루어 가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3년이 흐르고ㅡ


불과 졸업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네에?! 웨스트 포인트...말씀이신지요?"


왕립 사관학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유례 없는 명성을 쌓아 올린 또 다른 아르티아 최고의 사관학교, USMA.


한창 졸업 분열식을 준비하던 중 느닷없이 교장실로 호출된 그녀는 학교장으로부터 경악을 금치 못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특별 전학. 말이야 좋지만 이전에는 유례가 없었던, 사실상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진 허울 좋은 강제 전학이었던 것이다.


학교장이라곤 해도 엄연한 사관생도의 상사, 청천벽력같은 명령에 그녀의 입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하...학교장님, 외람되지만 이제 일주일 뒤면 예비 임관식이란 걸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째서..."


"상부의 지시일세. 어서 가서 더플백에 짐 싸도록 하게."


딱 잘라 말하곤 뒤돌아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는 학교장의 모습에 절망하면서도, 그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 어찌되었든 내 병과는 기병이고, 웨스트 포인트와 같이 다른 사관학교로 간다 한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분명 그곳에서도 내 경력을 인정해 주리라.


그리고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예비 임관식 때 그녀의 카라장 맨 앞에는 두 개의 황금색 세이버가 교차한 기병 휘장이 부착되었다. 비록 입고 있는 교복은 바뀌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제 정식 장교가 된 것이다.


부랴부랴 쓴 부대 지원서에도 늘 꿈에 그리던 왕실 기병대를 제 1 순위로 써 두었으니, 아니. 솔직히 2, 3지망은 아예 공백으로 써서 냈을 정도이니 분명, 분명 내 경력대로라면 나는 당당히 왕실 기병대에 배속되리라.


하지만ㅡ


"...제 22 실험 독립 기병중대?"


이번엔 종이를 받아든 그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최종 임관을 위한 견습 실무지로 배정된 부대는 살아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부대였던 것이다.


일단 이름에 '실험' 이란 두 글자가 붙은 점에서부터 무언가 수상한 냄새를 풍겼다. 실험이라니, 혹시 새로 개량한 품종마를 실험하는 부대인 걸까? 아니면 왕실 기병대에서 쓰이는 신형 플레이트 갑옷을 실험하는? 그것도 아니라면... 이젠 낡아 빠진 기병 전술을 그나마 현대전에 맞추어 개량하는, 그런 부대인 걸까?


이상할 정도로 처음의 목표에서 무언가가 많이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심지어 여타 사단 신병교육대와 같이 대부분 장교 후보생의 견습 실무지는 곧 자신의 자대가 될 확률이 거진 90퍼센트 이상이니, 사실상 그 부대에서 첫 군생활을 내딛을 거란 낙인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내 목표는 오로지 말에 오르는 것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며 소녀는 더욱 작아진 목표를 억지로 외면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마침내 자대로 배출되는 날, 기차에서 우연히 같은 자리에 앉게 된 미아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실 이야기꽃이라기보단 나 스스로 떠든 것에 가깝긴 하지만, 그녀는 묵묵히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단편적이고 짤막한 대답만을 이어갔을 뿐.


기차에서 내리자 인솔자로 보이는 한 병사가 서 있었다. 성격 좋아보이는 그 모습에 길을 걸어가며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귀여운 말들 밥 줄 생각에 신이 난다는 나를 그녀는 어딘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심 뭘까 하면서도 나름 기대에 부풀어 발걸음을 옮긴 나는, 뭔가 이상한 부대의 분위기에 정문에서 발을 멈추게 되었다.


여긴...


딱 봐도, 말 같은 건 없다.


대신 줄 서서 그녀를 기다리던 건 청록색과 황갈색으로 칠해진 괴이한 자동차.


소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전차(戰車), 그동안 말로만 들어 오던 전투 차량이었다.


피륙이 아닌 두터운 장갑으로 무장한 그 몸체는 그 어떤 날붙이로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으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나아간다.


세계대전이 낳은 기계 악마. 지상의 전함. 수많은 이들의 피와 살을 먹어치우며 무시무시할 정도로 세를 넓힌 그것은 이제 와선 그 모체라 할 수 있는 기병의 입지조차 그 시커먼 무한궤도로 짓이겨 밟고 있었다.


대세는 기울었다. 기병의 시대는 이미 진작에 저물었다는 걸 들어서 어렴풋이나마 아는 그녀였지만, 지나가는 자리마다 움직이는 지옥도를 연출해 낸다는 명예도 뭣도 없는 그 끔찍한 살인기계에는 죽어도 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틀어박혔다. 무력한 나에게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이것밖에 없었기에. 그저 가시 세운 하찮은 고슴도치마냥 구석에 웅크려 우는 게 학생회장이자, 학교에서 온갖 명성을 쌓아올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던 것이다.


멀리서는 포탄이 떨어지고 동료가 죽어나간다지만, 말 없는 기사님에게 할 수 있는 건 없잖아.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집에 편지도 보내 봤지만, 이미 예전부터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설마 어머니께 버림받은 건 아니겠지ㅡ.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엄습하는 불길하고 기분 나쁜 상상들에 안 그래도 웅크린 몸이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쓸모 없는 걸까. 왜, 내가, 어째서ㅡ


그때였다.


"마틸다!"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마구간 잔해의 틈 사이로, 한 검은 실루엣이 내 이름을 부르며 먼지 가득한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오늘 처음 만난 나의 상관.


중대장 한영훈 소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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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5)104화.[해바라기](3) 22.01.10 122 1 7쪽
105 (104)103화.[해바라기](2) 22.01.08 139 1 11쪽
104 (103)102화.[해바라기] +2 21.12.31 80 1 7쪽
103 (102)101화.[세 자매의 약속] +2 21.12.24 63 1 12쪽
102 (101)100화.[꽃이 진 후에](4) +2 21.12.19 76 1 9쪽
101 (100)99화.[꽃이 진 후에](3) +4 21.12.12 69 1 8쪽
100 (99)98화.[꽃이 진 후에](2) +4 21.12.05 73 1 8쪽
99 (98)97화.[꽃이 진 후에](1) +2 21.11.26 68 1 7쪽
98 (97)96화.[꽃이 지기 전에](5) +2 21.11.18 87 1 6쪽
97 (96)95화.[꽃이 지기 전에](4) +2 21.11.11 139 1 6쪽
96 (95)94화.[꽃이 지기 전에](3) +2 21.11.04 133 1 7쪽
95 (94)93화.[꽃이 지기 전에](2) +4 21.10.27 103 1 8쪽
94 (93)92화.[꽃이 지기 전에] +4 21.10.22 107 1 13쪽
93 (92)91화.[추락한 에이스](3) +4 21.10.16 70 1 8쪽
» (91)90화.[추락한 에이스](2) +2 21.10.10 69 1 11쪽
91 (90)89화.[추락한 에이스](1) +4 21.10.04 73 1 9쪽
90 (89)88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7) +2 21.09.29 65 1 5쪽
89 (88)87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6) +2 21.09.23 64 1 6쪽
88 (87)86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5) +2 21.09.20 59 1 8쪽
87 (86)85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4) +2 21.09.16 59 1 9쪽
86 (85)84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3) +6 21.09.12 69 1 7쪽
85 (84)83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2) +2 21.09.06 66 1 8쪽
84 (83)82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1) +4 21.09.02 75 1 4쪽
83 (82)81화.[Broken heart](4) +2 21.08.28 77 1 7쪽
82 (81)80화.[Broken heart](3) +3 21.08.24 71 1 7쪽
81 (80)79화.[Broken heart](2) +2 21.08.20 74 1 4쪽
80 (79)78화.[Broken heart](1) +2 21.08.15 93 1 5쪽
79 (78)77화.[여우놀음](3) +2 21.08.13 105 1 4쪽
78 (77)76화.[여우놀음](2) +2 21.08.11 101 1 6쪽
77 (76)75화.[여우 놀음](1) +2 21.08.07 9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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