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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츄샤 님의 서재입니다.

밀리터리 마니아가 이세계의 전쟁영웅이 되기까지 (1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전쟁·밀리터리

카츄샤
작품등록일 :
2020.04.22 04:51
최근연재일 :
2022.03.08 11:44
연재수 :
119 회
조회수 :
17,333
추천수 :
200
글자수 :
565,196

작성
21.09.06 07:40
조회
65
추천
1
글자
8쪽

(84)83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2)

DUMMY

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는 그 유수한 역사에 걸맞게 하나같이 걸출한 인재들을 다수 배출해 낸 아르티아군 장교단의 성전이자 요람이다. 실제로 이곳을 거쳐간 대부분의 장교들은 비교적 왕실과 가까운 이른바 '상위 티어' 부대에 배치되는 게 자연스러운 관례일 정도니까.


다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끝으로, 앞으로의 전장을 이끌어갈 여러분에게 여왕 페하의 가호가 있기를. 질문 있으신 분께서는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설을 끝마친 나는 고개를 들어 청중들을 한번 슥 둘러보았다.


"질문이 없으시다면, 이상으로-"


-촤락!


그때, 생도들로 가득 찬 강당 내에 마치 들으라는 듯 요란하게 펼쳐지는 부채 소리가 뚝 하고 내 말을 끊었다.


소리가 난 곳. 그러니까 내가 서 있는 연단 바로 앞에서, 하얀 깃털 장식이 달린 부채로 반쯤 얼굴을 가린 채 고고하게 다리를 꼰 여자 하나가 도발적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고ㅡ,


"휴우... 저희가, 그런 상투적인 연설이나 듣고자 바쁜 시간을 내어 이곳에 모였단 말입니까? 이런 이런..."


어라, 밥 시간이네.


"에에ㅡ, 질문 없으시면 여기서ㅡ"


"무시하지 말아주시지요?!"


쯧.


'이 악물고 무시하기' 스킬이 무효화되자 살짝 짜증이 난 나는 미간을 짚으며 그녀의 긴 한숨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하아... 그래서, 뭔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 롤빵머리."


저놈의 헤어스타일은 뭐 유행인가. 마틸다도 저러고 다니더만.


"로, 롤빠...!? 제, 제게는 필리페. 마리아. 드. 클레이시어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답니다!"


알바냐.


"그래, 그래. 클레이시어인지 크레모아인지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빠딱 질문하렴."


확 그냥 크레모아 후폭풍으로 폭탄머리 만들어버리기 전에.


"하..! 당신, 왕립 사관학교 연설대에 오른다는 게 얼마나 큰 영예인지 알기나 하는 건가요?"


나는 그대로 연설문을 건네준 무능한 한랴...아니, 국무장관을 바라보았고, 리안은...눈을 피했다.


사실 연설 따윈 날 여기 데리고 오기 위한 겉치레였으니 설마 저런 질문을 받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개자식.


에예. 그래~ 결국 다 알아서 하라 이거지?


내 언젠가 전차를 몰고 가서 국무부 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든가 해야지 원...


궁시렁거리며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린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크레모아 앞으로 서면화 된 연설문을 툭 떨궜다.


파라라락!


마치 드라마에서 보듯 사방팔방으로 날리는 종이에 그녀가 불쾌감을 드러내듯 눈을 가늘게 떴고,


"좋아. 상투적인 연설이 아니면 뭐가 듣고 싶은데? 의지 있는 학생의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해 주는 게 어른이자 경험자로써의 의무지."


나는 귀찮아하던 자세를 고쳐잡고 분위기를 바꿔 다시금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참고로 앞에 앉은 친구들은 대부분 스물을 넘겼다. 일단은 대학이니까.


뭐어, 약간 농담이 섞이긴 했지만 어쨌든 내 말은 진심이다. 진짜로 장교 후보생으로써 전쟁영웅에게서 노하우나 무언가를 얻고 싶었는데 내 뻔하고 상투적인 연설에 불만을 느낀 거라면 그들이 투자한 시간을 위해서라도 뒤늦게나마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게 맞는 일이니까.


하지만, 내가 말했지? 이 학교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족보도 없는 천것이 폐하의 은혜를 업고 기고만장해져서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대사지? 응, 그래. 너희가 생각하는 걔네 맞아.


여기를 먼저 졸업한 기사단장과 중대장 자매의 초반 태도를 보면 알겠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똑같이 배우고 자란 후배란 것들이 멀쩡할 리가 없지. 그녀는 그저 연설대에 선 나를 찍어누른 채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성가셔하는 거고.


실제로 난 지금도 평온하니까.


다만 조금 갑갑할 뿐.


아무리 명분이 필요하다 한들, 리안이 날 여기에까지 세운 이유를 아직까지도 난 모르겠다. 그냥 오는 김에 정치적 욕받이로써 써먹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런 내게도 할 말은 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전투복 상의와 셔츠를 벗어던졌다.


갑작스러운 스트립쇼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지만, 그런 반응은 곧 내가 마지막 남은 러닝셔츠마저 벗어던지자,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이걸 보고도, 할 말 있어?"


아린이나 누나들에겐 보여주지 않은, 아니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흉터.


아무리 마법의 힘을 빌렸다고는 해도 조각났던 내 몸이 한순간에 완치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도 늘 욱신거리는 통증과 피로를 이끌고 다니니까.


"이게, 은혜같아? 진심으로?"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조각났던 몸 이곳저곳에 난 잔상처들과 함께 아직 채 아물지 못한 마법수술 자국들이 빛을 발하며 온 몸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붉은 선으로 이곳저곳 기워낸 듯한 핏덩어리 이음매는 곧 도축될 돼지의 신체 부위에 그려진 부위별 표시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합죽이가 된 장내를 한번 응시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외모에서 짐작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나는 본디 이곳 사람이 아냐. 너희 여왕 폐하께서 도움을 청해 이곳에 불려 왔고, 실제로 한번 죽어가면서까지 여왕님을 지켜냈지."


나는 뒤에서 애써 딴청을 피우고 있는 국무장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 지금 눈앞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잖아? 여왕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옥좌에 앉아계시고, 함께 있던 식충... 아니, 국무장관도, 나도 이 자리에 있지. 물론... 함께 돌아오지 못한 부하들도 있지만."


아직도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한 두 병사의 얼굴이 간간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의 가망 없는 전투를 치러 적을 격퇴하고도 사상자가 둘 뿐이었다는 말도 된다.


그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자기위로를 하고 있다.


그렇게 안 하면 못 버틸 것 같거든.


물론, 내 능력이라기보단 무슨 동원훈련 온 예비군 아저씨들마냥 힘을 숨기고 있던 내 부대원들의 역량이 생각 외로 뛰어났던 점이 크긴 했지만.


병신같았던 적도 한몫 했고.


걘 돌아가서 총살당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여튼 뒤가 켕길 게 없었던 나는 보란듯이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대단하다는 게 아냐. 추켜세워 달라는 건 더더욱 아니고!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너희가 야전에 배치되어 직무를 수행할 때, 또다시 나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어! 더군다나 너희는 학교 특성 상 페하의 안위와 직결되는 부대에 배치될 테니 더더욱 그렇겠지!"


내가 몰아세우자 크레모아도 할 말을 잃은 듯 롤빵 머리를 손으로 말며 슬쩍 시선을 피하려 했다.


"강함은 정신에서 깨어나고, 정신은 뿌리에서 탄생하지. ...너희는 나와는 달리 이런 좋은 뿌리에서 양분을 얻었으니, 부디 나처럼 되지는 말기 바란다."


마지막 말은 솔직히 무책임한 말이다. 전우나 보호해야 할 대상, 심지어 나조차도 내 바람에 따라 살고 죽는 것은 아니기에.


하지만 내 말을 듣고 저마다 느끼는 무언가는 있을 터, 배우지 못한 무능한 장교에 불과한 나로선 나는 그저 그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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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5)104화.[해바라기](3) 22.01.10 122 1 7쪽
105 (104)103화.[해바라기](2) 22.01.08 139 1 11쪽
104 (103)102화.[해바라기] +2 21.12.31 79 1 7쪽
103 (102)101화.[세 자매의 약속] +2 21.12.24 63 1 12쪽
102 (101)100화.[꽃이 진 후에](4) +2 21.12.19 76 1 9쪽
101 (100)99화.[꽃이 진 후에](3) +4 21.12.12 69 1 8쪽
100 (99)98화.[꽃이 진 후에](2) +4 21.12.05 73 1 8쪽
99 (98)97화.[꽃이 진 후에](1) +2 21.11.26 68 1 7쪽
98 (97)96화.[꽃이 지기 전에](5) +2 21.11.18 86 1 6쪽
97 (96)95화.[꽃이 지기 전에](4) +2 21.11.11 138 1 6쪽
96 (95)94화.[꽃이 지기 전에](3) +2 21.11.04 133 1 7쪽
95 (94)93화.[꽃이 지기 전에](2) +4 21.10.27 103 1 8쪽
94 (93)92화.[꽃이 지기 전에] +4 21.10.22 107 1 13쪽
93 (92)91화.[추락한 에이스](3) +4 21.10.16 70 1 8쪽
92 (91)90화.[추락한 에이스](2) +2 21.10.10 68 1 11쪽
91 (90)89화.[추락한 에이스](1) +4 21.10.04 73 1 9쪽
90 (89)88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7) +2 21.09.29 65 1 5쪽
89 (88)87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6) +2 21.09.23 64 1 6쪽
88 (87)86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5) +2 21.09.20 59 1 8쪽
87 (86)85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4) +2 21.09.16 59 1 9쪽
86 (85)84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3) +6 21.09.12 69 1 7쪽
» (84)83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2) +2 21.09.06 66 1 8쪽
84 (83)82화.[아르티아 왕립 사관학교](1) +4 21.09.02 75 1 4쪽
83 (82)81화.[Broken heart](4) +2 21.08.28 77 1 7쪽
82 (81)80화.[Broken heart](3) +3 21.08.24 71 1 7쪽
81 (80)79화.[Broken heart](2) +2 21.08.20 74 1 4쪽
80 (79)78화.[Broken heart](1) +2 21.08.15 93 1 5쪽
79 (78)77화.[여우놀음](3) +2 21.08.13 105 1 4쪽
78 (77)76화.[여우놀음](2) +2 21.08.11 100 1 6쪽
77 (76)75화.[여우 놀음](1) +2 21.08.07 97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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