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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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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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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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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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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방관자 (7)

DUMMY

“내가 알려주는 게 너희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너희가 늙어 죽을 때까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을 수 있어. 술법의 정립은 굉장히 힘드니까. 그냥 이런 게 있다고만 알아둬.”


기대에 부풀었던 일행은 실망했다.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게 아니었다.


“우선 자료 좀 볼까.”


남자는 어느새 옆에 놓인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흠··· 그렇군. 그래도 현자가 노력은 많이 했어. 각 종족이 다루기 편한 쪽으로 방향을 잡아놓기는 했네. 그 후에 자기 특성에 변화한 부분도 있지만.”


남자는 종이를 여성에게 주고 엘르에게 말했다.


“우선 엘프부터 시작하지.”


“전 혼혈인데요?”


“혼혈이면 뭐 어때? 그리고 원래 가장 훌륭한 종은 잡종이야. 순혈주의는 유전병이나 키우는 방식이지. 무엇보다 넌 엘프의 특성을 정말 강하게 이어받았네. 원래 엘프들보다도 더.”


“크하하하! 대단하구나! 선조를 뛰어넘었다니!”


“우선 엘프의 특징부터 이야기하지.”


엘프에게 엘프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묘한 상황이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잘 들어.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아야 서로를 돕기도 편할 테니까. 엘프의 가장 큰 강점은 공간지각능력이야.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건 없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거리감이지.”


“거리를 제대로 파악 못하는 사람도 있나?”


카를은 그게 왜 강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거리 감각이 없는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이상하네. 카를,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냐?”


“음··· 제 손크기로 하면···”


카를은 손을 펴보더니 눈대중으로 한 칸 한 칸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걸 남자는 막았다.


“네 손 크기가 몇 cm인데?”


“그건 잘···”


재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엘르,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186cm요.”


“들었지?”


“저게 맞아요?”


“그래. 정확해. 엘르라면 단순히 눈대중만으로도 mm단위까지 측정 가능하겠지. km 단위로 떨어진 곳이라고 해도. 엘르가 공간 능력을 사용해서 본다면, 그것보다도 훨씬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테고.”


“너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흐응? 뭔가 말이 이상한데? 생각보다?”


남자는 둘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런 거리감은 공각지각능력의 가장 큰 특징이지.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아니야. 엘프들이 특히 강할 뿐이지. 그렇기에 엘프들은 원거리 무기를 굉장히 잘 다룬다. 무기의 속도를 거리로 환산해서 몇 초 뒤에 목표물에 도달할지 아는 것은,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능력이지만, 다른 자들이 노력을 통해서 이루는 것을 엘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넌 최악이야.”


카를은 반박하지 못했다. 미숙하다 못해, 다른 사람들이 말릴 정도로 투척을 못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던 사실이니까.


“이런 공간지각능력을 토대로 엘프들의 능력은 발달한다. 정보처리가 뛰어나다면, 주변의 모든 것을 시야 안에 넣은 다음, 눈을 감고 숲을 전력질주할 수도 있지. 그 모든 거리가 계산될 테니까.”


“엘르, 넌 저거 돼?”


“물론.”


“꼬마야, 엘르라면 숲을 보면서 실제 거리와 똑같은 지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거야. 나뭇가지와 나뭇가지의 거리는 물론, 땅에 튀어나와있는 뿌리들도 전부. 엘르, 네 초능력은 공간 자체를 만진다기보다는 공간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거든.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번호를 매겨서 그것들을 술법으로 세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할 수 있겠지만, 공간 자체를 찢거나 공간 이동을 하는 것은 힘들 거야. 사실 너와 다른 엘프들의 차이는 크게 없다. 다만, 공간을 단순히 지각하느냐, 인식까지 가능하느냐의 차이지. 너에게 공간이란 눈 앞에 있는 돌조각처럼 확연하게 보일 테지.”


엘르는 남자의 말을 경청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공간을 찢거나, 공간 이동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다시 돌아가서, 엘프들의 술법은 여기서 상상력이 더해진다. 현실에 있는 모든 물질을 정확히 파악 가능한 능력은, 심상에도 크나큰 영향을 주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상상만으로 정확한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자가 엘프들에게는 많아. 종합적인 감각으로 따지면 엘프가 인간 중에서 가장 상위 종족이야. 자, 그렇기에 엘프들의 술법은 보통 이런 식으로 발달하지.”


남자는 손을 들었다. 손 위에는 빛무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리고 남자가 눈을 감자, 빛무리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빛무리는 빠르게 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어떤 것은 안쪽으로, 어떤 것은 바깥쪽으로. 그리고 마침내 꼭대기에서 만난 빛무리들은 서로 뭉쳐 빛을 발한다.


“어때?”


일행은 가까이 가서 남자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남자의 손에 있는 것은 고층 건물이었다. 그것도 층마다 나뉘어져있고, 계단은 물론, 숨겨진 길도 있고, 방 안에 책상과 의자까지 모두 배치되어 있다. 각 방 앞에는 무슨 방인지, 방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도 적혀있다.


“술법을 설계하는 것이 엘프들의 특징이라는 게 아니야. 설계 없이 힘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효율도 떨어지고 난잡해지지. 당연하게도 다른 모든 종족들도 설계를 통해 힘을 사용한다. 그러나 엘프들은 이 설계를 공간감각과 상상력으로 한다. 그렇기에 엘프들의 술법은 굉장히 완성 속도가 빠르지. 별다른 준비도 필요 없다 보니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술법에도 능해. 즉, 엘프들의 술법은 공간감각에 의거해서 상상 속에 형태와 구조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발달된다. 형상화라고도 하지.”


“형상화···”


엘르는 중얼거렸다.


‘지금까지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네.’


“나중에 기회되면, 기하학을 배워봐. 남들보다 훨씬 쉽게 배울걸? 그리고 드워프는-”


‘응? 벌써 끝? 귀띔만 해준다더니 진짜였어? 게다가 기하학이 뭐야? 기침소리?’


남자는 스트라를 바라보았다.


“수치에 익숙하지. 엘프들이 상상으로 인한 설계 능력이 준수하다면, 드워프는 구현 능력이 준수하다. 정확히는 수치에 의한 구현이지. 엘프들의 설계는 사실, 본인 말고는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감각이니까. 그러나 드워프는 수치를 통해 설계를 해. 자, 이걸 봐.”


남자가 들고 있던 빛무리 건물에 무언가 추가된다.


“이건 숫자?”


건물의 옆에는 각 층의 높이, 그리고 계단의 높이, 계단의 폭, 건물의 넓이 같은 것들이 적혀있다.


“그래. 이게 드워프들의 방식이다. 엘프들이 상상으로 형태를 잡고 거기에 힘을 쏟아붓는다면, 드워프들은 수치를 파악한 다음, 힘을 부어서 형태를 만든다.”


“뭔 소리지?”


“크하하하! 나도 모르겠다.”


카를과 퇴기는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서 거기로 보였다.


‘사실 나도 내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어. 이 육체는 평범한 사람이라.’


“실시간으로 비교해주면 이렇게 되겠군.”


남자의 손에 있던 건물이 사라지고, 다시 처음과 같은 빛무리들이 손바닥에 모여있다. 다만 이번에는 양손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빛무리들보다 더 위에, 걸쭉한 액체가 생성된다.


곧 걸쭉한 액체가 쏟아지며, 빛무리들이 움직인다.


한쪽의 빛무리는 이미 건물의 형태가 잡혀있다. 그리고 그곳에 액체가 부어진다. 액체는 빛무리의 형태에 따라 천천히 건물을 완성해나간다.


반대쪽의 빛무리는 전혀 움직임이 다르다. 빛무리는 액체를 일정 크기와 모양으로 자르더니, 그 조각으로 건물을 짓고 있다. 바닥면을 깔고, 기둥을 세우고, 계단을 한층 한층 쌓고, 각 층을 제작한다.


완성된 두 건물의 생김새는 완벽하게 똑같다.


“자, 어떤 차이인지 알겠어?”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퇴기와 카를도 우선 끄덕이고 봤다.


“이 차이를 사람들마다 다르게 부르기도 해. 조각가와 건축가의 차이라던지, 그래픽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의 차이라던지. 뭐, 애초에 같은 종족이라도 서로 차이가 크다 보니 한 가지로 딱 정의 내리긴 힘들어. 그저 평균적으로 이렇다 정도니까. 그렇게 참고해둬.”


“그런데 이러면 드워프의 술법이 너무 나쁜데요? 엘프 쪽 건물이 훨씬 빠르게 지어졌는데.”


카를의 말대로, 두 건물의 생김새는 같았지만, 완성된 속도는 엘프 쪽이 훨씬 빨랐다.


“그렇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엘프는 머리에 형상을 그저 떠올리기만 하면 되니까, 완성 속도는 비할 바가 안 되지. 그러나 아주 단순한 형상이라면 드워프의 속도가 오히려 엘프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 그래봤자 아주 미세한 차이겠지만, 드워프의 장점은 이런 거에 있지 않아. 만약 같은 경지라면 아마 둘의 설계는 이렇게 되겠지.”


드워프 쪽의 건물이 생김새가 변해간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꼬인다. 건물 사이사이에 관들이 이어지고, 그 관들이 서로를 교차하거나, 지나쳐간다. 어느새 건물 안에는 관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더군다나 어떤 관은 세모 모양이고, 어떤 관은 네모 모양이다.


“엘프는 상상의 능력이기 때문에 빠르지만, 상상이 한 번에 완성되는 수준의 술법만 발휘할 수 있다. 엘르, 넌 이 건물을 한 번에 상상할 수 있겠냐?”


엘르가 건물을 천천히 살펴본다.


“파악은 돼요. 상상도 가능해요. 그런데 솔직히 중간에 까먹을 것 같은데요.”


“그래. 그렇게 되면 건물에는 구멍이 생기겠지.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그것은 치명적이다.”


“그럼 드워프들은 이런 것을 한 번에 완성할 수 있다는 건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지.”


‘뭐야···’


“다만, 천천히라도 완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엘프들이 상상력으로 즉시 발동하는 술법을 주로 사용했다면, 드워프들은 반대로 수치를 기반으로 우선 설계도를 만든 다음에 술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아주 큰 차이를 만들지. 둘 모두 맨몸으로 전투를 한다면 분명 엘프가 유리할 것은 자명해. 그러나, 시간이 주어진다면?”


“드워프가 더 높은 수준의 술법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래. 둘 모두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술법을 준비한다는 가정 하라면, 결국 상상력은 삐걱대기 마련이지. 하지만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근데 그것은 결국 미리 준비해와야 한다는 말 아닌가요?”


“맞아. 실제로 그래서 과거에는 무언가 즉각적으로 하는 일은 엘프들이 더 잘했지만, 긴 시간에 걸쳐서 무언가 제작을 하는 것은 드워프들이 더 잘했어. 무엇보다 일회용 술법인 엘프들과는 다르게, 드워프들은 수치를 남겨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었어. 이 차이는 굉장히 크지. 드워프하면 떠오르는 게 뭔지 생각하면, 아마 충분히 이해될 거야.”


“수염.”


엘르가 말했다.


“크하하하! 역시 드워프하면 맥주 아닌가!”


퇴기가 말했다.


“두꺼운 몸.”


시미가 말했다.


“키...는 안 되겠네.”


카를은 말하다 말았다. 옆에 있는 시미를 보고 키를 떠올리기에는 그녀에 비해 스트라가 너무 크다.


스트라는 조용히 있었다.


“제작 능력 말이군요.”


하스트만이 제대로 된 답을 했다.


“그래. 드워프들이 가장 유명한 것은 그 손재주로 인한 제작 능력에 있지. 일설에는 무언가 파내는 것을 좋아하던 놈들이, 파낸 걸로 뭘 할까 고민하다 손재주가 뛰어나졌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넘어가자. 어찌 되었든 드워프는 제작에 능해. 그건 술법도 예외가 아니지. 아니, 오히려 술법이 먼저 발달했어. 무언가 발사하는 술법을 사용한다면, 엘프는 술법을 완성하면서, 적과의 거리를 파악한 후, 그 거리에 맞춰 술법을 발사하겠지. 그러나 드워프는 달랐어. 그들은 먼저 술법을 완성해놓는다. 단, 거리만 빼놓은 상태로. 드워프는 술법을 사용할 때가 되면, 거리를 재는 술법을 먼저 사용한다. 그리고 그 수치를 발사의 술법에 도입시키겠지.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엘프보다 드워프의 속도가 훨씬 빠르게 완성되겠군요.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방법 아닙니까? 술법을 품고 있어야 한다니.”


“확실히 위험하지. 그렇기에 드워프들은 술법을 조각화했다. 조각 하나로는 도저히 술법을 완성할 수 없지만, 수많은 조각을 만들고, 조각들을 서로 상호작용하게 만들었어. 그 상호작용으로 인한 값으로 상위의 조각들을 가동할 수도 있다. 하나의 술법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따로 동작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마지막 하나의 조각이 없다면, 절대 발동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구조적인 안정성이 커질수록, 드워프 술법의 위력은 커지지.”


‘드워프들이 만들었다기보다, 원본인 룬마법을 개량한 거지만.’


스트라는 남자의 말을 자세히 들었다.


“크하하하! 대단하군! 예전 드워프들은 정말 굉장한 술사들이었군!”


하지만 하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장점이 큰만큼 단점도 뚜렷해. 술법을 저장한다는 말은 좋지만, 그렇다고 무한정으로 가지고 다닐 수도 없어. 결국 정해진 몇 개만을 가지고 다니겠지. 그렇다면 정해진 상황 말고는 대처할 수가 없어.”


“정확해. 그게 단점이지. 안정성이 클수록 재활용도 쉬워지고, 여러 번 술법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즉각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수준에 비해 몇 단계 떨어지는 것들뿐. 그래서 드워프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지.”


“도구군요.”


“크하하하! 도구는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도구에 술법을 거는 거야. 술법을 단단하게 고정시켜놓고, 한 조각이면 발동할 수 있도록. 평소에 발동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꽤 오래 지속될 거야.”


“맞아. 그렇기에 발달한 것이 부여 술법이지. 드워프의 제작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부여야. 한 때, 드워프의 강함은 얼마나 강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느냐, 얼마나 많은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느냐였을 정도였어. 아무리 부여된 장비라고 해도, 본인의 능력이 달리면 사용하기가 힘드니까.”


“확실히 엘프와 드워프는 완전히 다른 술법을 사용했군요. 어떻게 보면 엘프는 내부의 세계에, 드워프는 외부의 세계와 접촉하는군요.”


“재밌는 표현이군.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저기요, 그런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스트라가 드디어 말을 꺼낸다.


“그건 지금까지 배운 술법이랑 너무 다릅니다. 근본부터 무너진다고 해야 할지··· 솔직히 엘프들의 술법이 더 가슴에 와 닿아요.”


“그렇겠지. 이건 지금 세계에 남아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아까 말했잖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이 술법 체계가 정립되지 않을 수 있다고. 특히 너와는 더 안 맞겠지. 조각화와 전혀 안 어울리는 방사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네 초능력과 같이 쓰면, 분명히 조각은 깨질걸?”


“그, 그럼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어차피 지금 되지도 않는 거 뭐하러 고민해? 넌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돼.”


“불의 자연력을 더 잘 다루라는 말인가요?”


“방사 능력이 모양새가 열이 퍼지는 것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네 능력은 그게 끝이 아니야. 시범을 보여주지.”


남자의 손에 있던 건물들이 무너지고, 화염이 생겨난다.


“넌 보통 이렇게 사용했을 거야.”


화염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화염이 아니면, 자연력을 사방으로 흩어놓던지 했겠지.”


“네. 맞아요. 방사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요? 중심에서 사방으로 흩어놓는 거?”


“맞아. 그런데 흩어놓는 게 꼭 자연력이나 화염일 필요는 없지.”


“그렇다면?”


남자의 손에서 다시 무언가 흩어진다.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 흩어졌다는 느낌만 받았다.


“여기에 손 넣어봐.”


스트라는 남자의 말에 따라 남자의 손 위로 손을 뻗었다.


“엇?”


그리고 깜짝 놀라며 손을 다시 뺏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감각이었다.


“어때?”


“차가워요. 그런데 어떻게? 냉기의 자연력을 넣은 것도 아닌데?”


“하하하. 냉기의 자연력은 자연력의 특징 때문에 생긴 거야. 자연력은 물질이 아니야. 정확히는 물리적인 게 아니지. 사실 원래 이 세계에 냉기라는 건 없었어. 오직 열만 있었지.”


“그럼 아까 흩어진 건?”


“열이야. 열을 조금 방사했지. 온도가 내려간다는 건 결국 열의 부재거든. 그래서 냉기의 자연력은 결국 일정 온도까지 내려가게 만든다는 자연력에 가까워. 그리고 어떻게든 피부로 느껴서 개념화할 수 있던 냉기와는 다르게, 그저 보이지 않는다는 암흑은, 관찰로도 술법으로 만들기가 힘들지. 암흑 또한 그저 빛의 부재거든. 안 그래, 하스트? 만들기 힘들지?”


하스트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거의 모든 속성을 다루는 하스트도, 어둠의 술법은 없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암흑을 만들려면 빛을 움직여 그 공간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빛의 술법이지. 그런데 그건 차라리 빛을 움직이는 것보다 다른 것을 움직여 빛을 방해하는 게 더 쉬워. 아무튼 너의 능력도 어둠을 만드는 게 가능하지.”


남자의 손 위가 점점 밝아진다. 마치 빛으로 무언가를 감싼 것 같은 느낌이다.


“아, 방향을 꺾어야지.”


그러자 남자의 손 위에 빛으로 감싸인 어둠이 모습을 드러낸다. 허공에 구멍이 뚫린듯한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초능력의 쓰임새는 생각보다 많아. 능력이 물질에 관련된 게 아니라, 운동, 개념에 관련된 거라면 더욱더.”


“대단해요. 이런 거라면 파괴자도 흩어버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시미의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하스트만 제외하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물론 가능하지. 특히 다른 식으로 접근하기 힘든 물질이면 방어하기도 힘들어. 중력을 흩어놓는다던지, 반대로 물질 자체를 흩어버릴 수도 있지. 하지만 가능해?”


남자의 물음에 스트라는 자신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방사 능력은 있지만, 무엇을 방사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몇 가지 안 된다.


“확실히 이런 초능력이 굉장해 보이겠지. 편리하고, 강해 보이고. 하지만 잊지 마. 초능력도 하나의 능력일 뿐이야. 아무리 상대가 대응하기 힘들다 해도, 상대가 에테르 100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초능력도 그에 걸맞은 힘을 사용해야 해. 무엇보다 초능력을 사용하려면 대가가 필요하지. 정신력. 아니면 마나나 에테르. 정신력만으로 초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정도면 이미 인간이 아니지.”


“그럼 저희가 쓸 수 있는 건 결국 자연력 아닌가요? 그러면 술법과 다를 것도 없는데요?”


“맞아. 마나와 에테르가 만능이라고 불리는 것도 그것 때문이지. 충분히 초능력의 영역까지 손을 뻗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술법으로 그것을 구현하려면 한 가지 공정을 더 넣어야 해. 게다가 개념 같은 거면 이해하기도 힘들뿐더러, 접근하기도 힘들지. 즉, 초능력의 장점은 접근성이야. 다른 사람이라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쉽게 사용 가능하지. 그래서 오히려 술법을 아예 배우지 않고, 그리고 에너지를 가공도 하지 않은 채로 보관만 하는 녀석들도 있었어. 무속성이라고 해도 충분히 연료가 되니까. 그렇게 하면 초능력만 사용할 수 있지만, 에테르의 최대치에만 신경 쓰면 되니 편리하기도 하지. 반대로 초능력에 대해 익숙해지다 보면, 결국 그 능력을 술법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져. 그 개념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너희가 아마 그런 식일 거야. 술법으로 조금씩 보조하겠지.”


“네. 그렇죠. 하스트도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그래. 그러니까, 딱히 술법에만 집착할 필요 없다는 거야. 네가 드워프라고 해도, 꼭 드워프 술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 힘을 키우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거든. 누군가는 한 가지 속성으로 대성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여러 가지 속성으로 대성할 수도 있지. 누군가는 초능력으로, 누군가는 그저 어떤 술법도 없이 강해지지. 저기 카를을 봐.”


일행의 눈이 그 말에 따라 카를에게로 향한다. 확실히 그렇다. 카를은 술법이 없이 자연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강해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차피 이런 건 개인차도 있으니까 뭐가 딱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나라면 네가 대성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러긴 싫고.”


‘싫으면 왜 말하는 거야? 약 올리는 건가?’


엘르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궁금한 게 생겼기에, 손을 들고 질문한다.


“그럼 혹시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저와 스트라, 그리고 시미의 힘을 합쳐 공간을 방사시켜버리는 거?”


“확실히 스트라가 너의 공간을 인식하려면 시미를 통해 연결해야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해.”


“우와. 그럼 어떻게 돼요?”


“보통 상대는 저항 못하고 그냥 즉사지. 공간 자체가 깨져버리니, 물질이 존재할 수도 없고, 시간도 사라지겠지. 죽는다기보다 허상이 된다고 할까?”


“우와!”


엘르는 여기서 나가면 바로 연습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넌 못해. 공간에 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방사시키려면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한지 알면 까무러칠 거다. 게다가 그건 세계에 대한 도전이야. 시도하려는 순간, 세계에게 살해당할걸?”


“우와···”


엘르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저희 술법은요?”


시미가 깡충깡충 뛰면서 남자에게 질문한다.


“소인족? 에너지에 대한 친화력은 이 세계의 모든 종족 중에서도 최고야. 너희만큼 에테르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종족은 없어.”


“그리고요? 그리고요?”


“게다가 정밀도도 최고지. 워낙 작은 세계에 사니 남들에게 작은 것도 너희에게는 크니까. 술법을 만드는 능력도, 술법을 배우는 속도도, 다른 종족보다 훨씬 빨라. 기본적으로 에테르를 일찍 다루니까.”


“또요? 또요?”


“그런데 그 한계도 뚜렷하지. 아무리 에테르에 질량이나 부피가 없다고 해도,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과한 에너지는 인체를 어지럽히지. 소인족은 작아서 그 영향에서 특히 더 크고. 도깨비와 소인의 술법 완성도가 10배가 차이나도, 정작 술법의 힘은 도깨비가 더 크겠지. 도깨비는 소인보다 10배 이상 크니까.”


방방 뛰던 시미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소인족의 특징은 이런 술법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지. 물론 술법의 효율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니, 간단한 일이라면 소인족만큼 쉽게 할 수 있는 종족은 없어. 하지만 신체 능력은 가장 약해. 이것을 어떻게 메꾸고 있지?”


“그··· 친구들이 도와줘요···”


“그래. 그 작은 몸이야말로 소인족의 최대 약점이자, 최대 장점이야. 너희의 친화력은 에너지에 국한되지 않지. 다른 존재와의 친화력이 있어. 너희가 워낙 약해 보여서 위험을 못 느끼니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실속을 챙길 수 있으면 최고지. 세계의 축복을 가장 크게 받은 종족이랄까? 작지만 않으면 모든 종족 중에서 가장 최고겠지.”


‘작은 게 너무 큰 단점이라 그렇지. 애초에 안 작으면 그 장점들이 전부 사라질 테고.’


남자의 말에 시미는 활짝 웃었다.


하스트는 시미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드워프 왕국에서 벗어나니, 원래의 성격을 되찾아가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해요?”


“너희는 사실 지금 이대로가 최고야.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살아가는 것은 사실 현자가 가르쳐준 것이 아닌, 너희 스스로의 힘이니까. 그 친화력으로 동물들을 키우고, 동물들의 힘을 조절할 수 있지. 너희의 힘으로 동물들을 영물로 만들 수도 있어. 지금도 거의 그 수준이고. 다른 종족이 동물을 못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위에 타고 다니면서 동물들의 힘을 조절해줄 수 있는 것은 너희가 최고야. 다른 존재의 힘을 조절하는 것은 엄청난 정교함이 필요하거든.”


“꺄하하하! 들었지, 하스트? 우리 잘하고 있대!”


“그래, 듣고 있어.”


“그럼 제 능력은요? 동화라고 하셨는데?”


“그래. 그것도 마찬가지. 사실 네 능력은 엘르와 마찬가지로 종족적인 특성이 강하거든. 그리고 엘르와 마찬가지로, 거기서 한 단계 더 앞으로 갔지.”


“한 단계 더?”


“너도 알다시피, 다른 소인들은 자신의 힘을 전해주어 적용시키거나, 반대로 다른 존재에게 힘을 받아 적용하는 것 밖에 안되지. 너는 양쪽 모두가 가능하고 말이야. 결국 넌 남과 자신의 힘을 완벽히 공유하게 할 수도 있지. 자연력을 동화시켜서. 그런데 이미 너의 동화 능력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갔어. 의식의 동화가 가능해. 얼마 전에도 해봤지?”


그 말대로 일행은 나이트를 상대할 때, 그녀의 능력을 똑똑히 느꼈다. 느끼지 못해야 할 엘르의 공간을, 시미를 통해 느끼고,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얹을 수 있었으니까.


“마음 맞는 친구를 다시 사귄다면, 비유가 아니라 한 몸이 될 수 있을 거야.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정신이 깃들 수도 있다는 말이지.”


“정말 강해지면요? 이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 어디까지 가능해요? 제가 못해도 알고 싶어요.”


“하하하. 정말 강해지면 세계와 동화하는 것도 가능하지. 일반 초능력과는 비교도 안되게, 세계의 힘을 빌릴 수 있다. 세계가 너의 편이 되는 거야.”


“우와아~”


“하지만 조심해. 다른 무엇과 동화한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니까. 그 비슷한 일을 얼마 전에 엘르가 했다고 하니까,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물어봐.”


“저기, 어땠어요?”


아무도 지금 물어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엘르는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허락이 떨어지자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확실히 도깨비 마을 근처에서 카를을 도우려고 하다가 그런 일이 있었어. 공간에 있는 것들을 더 확실하게 다루기 위해.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거야. 진짜 정신이 공간에 녹아버리는 줄 알았거든. 조금만 실수했어도, 나 자신을 잊어버렸을 거야.”


엘르는 그때, 시미와 스트라의 역할까지 혼자 도맡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퇴기의 역할은 그와 하스트가 나뉘어 짊어졌다. 퇴기는 다른 역할을 맡았으니까. 하스트는 모자란 자연력을 혼자서 충당했고.


5명의 역할을 3명이서 할 수 있었던 것은, 파괴자를 상대할 때처럼 공격적인 술법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카를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컸다.


“크하하하! 그때 우리는 모두 반죽음 상태가 되었지! 지금 생각하니 왜 5명이 모두 필요한지 알겠군! 안정성이 너무 달랐다!”


“덩치 말대로야. 만약 예언자님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육에 그 술법에 대한 것이 조금만 모자랐어도 분명 실패했을 거야.”


“덕분에 이렇게 내가 살아있네.”


“그래, 고마운 줄 아세요.”


“하하하. 하스트가 너희들의 능력에 간섭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술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술법은 만들어지지도 않았겠지.”


남자의 말대로 하스트는 혼자서도 술법을 완성하는 게 가능하긴 했다. 안정성과 규모가 너무 달랐지만.


“아무튼 엘르 말처럼, 동화 능력은 상당히 위험한 거야. 다른 사람을 나에게 귀속시키는 거라면 상대만 위험하겠지만, 서로에게 다가가서 합쳐지는 거면 양쪽 모두 사라질 수도 있어. 타인을 이해하면서, 무엇보다 강하게 자신을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알겠니?”


“네!”


“좋은 대답이야. 자, 그럼 잠깐 휴식을 취해볼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모두 말해봐.”


일행은 저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다. 늦은 점심 겸 다과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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