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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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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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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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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와 파괴자 (4)

DUMMY

나이트의 쐐기는 거침이 없었다. 어떠한 방해도 받지 못했다.


“이건?”


그래서는 안됐다. 아무리 그래도 방해가 있었어야 정상이다.


“이게 무슨 술법이지? 아니, 술법이긴 한 건가?”


쐐기가 침입하고서야 깨달았다. 특별한 술법인 줄 알았던 그것은 어떠한 술법도 아니었다.


“아쉬운 건 너다, 나이트.”


들리는 목소리는 하스트의 것이다. 그의 눈이 천천히 떠지고 있다.


“지금 아이들에게 있는 자연력은 술법을 위한 게 아니다. 그저 그들에게 잘 맞는 연료일 뿐.”


“웃기지 마라! 이놈만 특이한 거지, 자연력으로만 힘을 발휘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네놈은 잘 알 텐데! 인간은 정령이 아니다!”


나이트는 느꼈다. 하스트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나이트는 윽박질렀다.


“그런데 나를 상대로 그따위 짓을 하겠다고!? 건방 떨지 마라, 하스트! 너와 카를은 몰라도 다른 녀석들은 자연력으로만 나를 상대할 힘을 낼 수 없다! 그놈들은 그저 각 마을에서 조금 뛰어날 뿐인 청년들에 불과하다! 예언자의 선택 따위 아무 의미 없다!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냐!”


“예언자의 선택이라··· 그래, 맞는 말이다.”


하스트가 나이트와 눈을 맞춘다.


“예언자의 선택에 의미는 없다. 세계는 진동했고, 예언에 없던 카를이 나타났다. 파괴자는 일찍 깨어났으며, 우리는 준비가 덜 되었었다. 그래. 예언은 깨졌다.”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계속 전해지는 충격을 버티며 나이트는 예언의 아이들을 방해했다.


“그런데 왜-”


“일찍이.”


하스트는 나이트의 말을 끊었다.


“한 남자가 있었다. 세상을 파괴한 왕국의 마수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 하나였지. 그는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세상은 술법을 잊었다. 자연력을 잊었다. 파괴자가 모두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잊지 않았다. 오직 그만이 잊지 않았다. 그는 그 힘으로 세상을 안정화시켰다. 파괴자들이 깨어나지 않도록 천천히.”


하스트는 나이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파괴자들이 깨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세상의 정상화는 곧 그들의 먹잇감이니까. 그렇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연구했다. 다시 세상을 잃지 않기 위해.”


하스트의 존재감은 이미 상인보다도 크다.


“연구는 성공적이었지만, 그 술법은 그로서도 홀로 파괴자에게 사용하기 힘든 술법이었다. 그렇기에 찾아야만 했다. 그 술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하지만 어려웠지. 그 술법은 단순한 자연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는 파괴자의 흡수를 버틸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힘을 가진 자가 필요했다.”


하스트가 카를과 나이트의 경지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그는 그 술법에 맞는 한 사람을 찾았다. 30년이 지났다. 또 한 사람을 찾았다. 80년이 지났다. 또 한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죽고 말았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겨우 찾았다 싶으면 누군가 죽었다. 겨우 찾았다 싶으면 서로의 힘이 맞지 않았다.”


나이트는 어떻게든 술법을 방해할 생각으로 쐐기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하스트의 말대로 아이들의 자연력은 술법을 위한 게 아니니까.


“포기하고 싶었다. 술법에 맞는 조각들이 완벽하게 맞는 순간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끝이니까.”


카를은 필사적으로 나이트를 막아섰다. 나이트를 압박했던 것도 잠시, 이제는 거의 끌려다니는 수준이다.


“그렇게 자신의 제자가 될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그는 수많은 마을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과 궤를 달리하는 현명함으로 훗날 벌어질 참사를 막았다. 누군가는 그를 현자라고 칭송했다.”


하스트의 눈에 현묘함이 깃들기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들과 격이 다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눈 앞에 있다. 그렇기에 다른 식으로 부르기 시작하지. 예언자라고. 나이트, 네 말이 맞다. 예언자라는 명칭은 그저 허울일 뿐이다. 현자는 한 번도 예언 같은 특별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 그저 그 지혜로 남들보다 먼 곳을 바라봤을 뿐이다.”


하스트의 말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간다.


“그렇다. 예언자의 선택이란 거짓이다. 예언의 아이들이란 거짓이다. 예언은 없다.”


그 말에 나이트는 웃었다. 그러나 하스트의 다음 말에 웃음은 다시 사라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였다. 각자의 역할을 가진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


이 곳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있다.


“파괴자가 깨어나기까지 겨우 30년밖에 남지 않았을 때,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집결속에서, 이 아이들이 동시대에 태어났다. 이들은 현자가 그 오랜 시간에 걸쳐 겨우 찾아낸 조각들이다. 격을 달리하는 세월 동안 쌓아온 지혜를 가지고도 예측하지 못했던 마지막 희망이다!”


하스트의 외침이 왕국을 덮는다. 분명히 크지 않은 외침이건만, 모두의 귀에 너무나 또렷하게 들린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예언의 아이들이 공명한다.


“보아라!”


하스트의 눈길은 이제 나이트를 보고 있지 않다. 그를 감싼 파괴자에게로 향해있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보아라, 파괴자! 너희들을 없애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온 선택의 시간을 보아라!”


예언의 아이들의 자연력이 한 곳으로 이동한다. 분명히 술법이 없는데도 자연력이 너무나 질서 있게 움직인다. 그 하나하나가 어떤 법칙에 의거하여 움직이고 있다.


그것들은 이내 하나가 되더니, 형태를 이루기 시작한다. 그와함께 하스트 앞에 회색의 구가 떠오른다.


“저건, 뭐지···?”


나이트마저도 그 안에 담긴 이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인다. 오히려 그것에 자극된 그의 영감이 그에게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스트와 자연력으로 연결된 것과 다르게, 예언의 아이들이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다. 그 끝이 어딘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것이, 아주 희미하게 보인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이트는 다음 순간에 깨달았다.


“고작 속성과 술법의 적성만으로는 선택받을 수 없었다! 이 술법을 완성할 수 없었다! 너희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말이 맞다! 우린 예언자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니다! 우리를 선택한 것은 세계다!”


예언의 아이들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회색의 구가 점점 커진다. 나이트는 느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알았다. 회색의 구가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와함께 하스트의 존재감이 나이트를 압박한다.


“넌, 누구냐···”


나이트는 하스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넌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난 하스트, 예언의 아이들의 필두이며, 그들을 이끄는 자다.”


“하! 웃기지 마라! 넌 예언의 아이가 아니다! 하스트가 아니다! 하물며 구원자도 아니다! 모두가 속더라도 난 속지 않는다!”


"그래. 난 구원자가 아니지. 난 세계를 지킬뿐이다.”


하스트의 손이 움직인다. 그에 나이트는 후퇴를 결심했다.


분명히 담겨있는 자연력의 크기는 카를이나 자신의 갑옷만큼 크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만히 맞아줄 수는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격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술법이다. 미지에 대한 공포가 나이트를 잠식한다.


그리고 아무리 대단한 술법이라도 피하면 그만이다.


덥석.


“어딜 가냐?”


“! 놔라!”


“내가 조금 있으면 죽게 생겼거든? 근데 혼자 가긴 싫지 않겠어?”


“이 망할 놈이!”


카를은 나이트를 덥석 끌어안았다. 나이트는 벗어나기 위해 온몸을 뒤틀었다.


쩌적. 쩌적.


이미 카를의 힘은 많이 약해진 상태. 나이트가 발버둥을 칠 때마다, 그 몸의 균열이 점점 커진다.


그러나 떼어놓지는 못했다. 카를을 매달고 달려보려 했지만, 어느새 땅에 박힌 카를의 발이 그것을 막고 있다.


하스트의 술법은 빠르지 않지만, 확실하게 나이트에게로 다가갔다.


그그그그!


술법의 진행경로에 따라 대지와 대기가 진동한다. 구에 닿지도 않은 대지와 대기가 구에 맞춰 밀리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구 안의 모든 것은 너무나도 평온하다.


“으아아아아!”


“크윽···”


나이트가 펼친 최후의 발버둥은 성공했다. 결국 카를은 나이트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늦었다. 회색의 구는 어느새 나이트의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방.”


나지막한 하스트의 목소리와 함께 회색의 구에 담긴 힘이 해방된다.


회색의 구가 확장하더니 나이트의 주변을 막는다. 그와함께 나이트는 무언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력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뚜렷하게 느껴진다. 마치 이곳만 세계에서 떨어져 버린 것 같은 이질감이다.


하지만 그것뿐. 다른 어떠한 효과도 없다.


“멍청한 놈!”


나이트는 하스트를 비웃으며 술법의 영역에서 벗어나려 했다.


“도망갈 수 없다.”


나지막한 하스트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 듣지 못한 사람은 오직, 카를과 나이트뿐이다.


“뭐지?”


나이트는 하스트가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 주변에 소리를 차단하는 술법은 없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알았다. 이 장소가 너무나도 고요하다는 것을.


“해방.”


“윽!”


갑작스럽게 무언가 나이트를 옭아맨다.


나이트는 주변을 보았다. 어떤 것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람도, 불도, 물도, 땅도, 하물며 빛이나 냉기도 아니다. 자연력조차 아니다.


‘이건 단순히 육체를 구속하는 게 아니야!’


주변의 자연력이 정지해있다. 근처에서 쓰러져있는 카를의 자연력조차, 새어 나오는 그 상태로 정지해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광경이다. 카를의 자연력이 계속 움직이려고 박동하지 않았다면, 정말 시간이 정지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까짓!”


나이트는 그 상태에서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효과가 있다. 이 술법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이트의 이번 시도 또한 무산되었다.


“해방.”


하스트의 말과 함께 움직인다. 세상 모든 것이. 이 작은 세계의 모든 것이 움직인다.


“끄아아악!!”


나이트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다. 공중에 떠다니던 공기도, 주변을 불태우던 화염도, 적게나마 존재했던 수분도, 그리고 발과 맞닿은 대지마저도.


그 모든 게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공중에 고정된 나이트를 중심으로 모든 게.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은 해방감이 느껴진다. 어마어마한 탈력감도 같이 밀려온다. 나이트는 가까스로 버텨냈다. 이대로 정신을 잃는다면 모든 게 끝이라는 사실이 그의 정신을 육체에 붙들어주었다.


그러나 나이트의 정신력과 다르게, 사라지는 것에는 자연력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변에 가득한 자연력이 사라진다.


‘내, 내 힘이!’


파괴자에게 담겨있던 자연력도 스멀스멀 밖으로 향한다. 나이트는 검까지 없애며 필사적으로 그 자연력을 지켰다.


효과는 있었다. 나이트와 파괴자의 힘이 술법과 길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뿐. 주변에 자연력이 사라진 것을 감지한 파괴자가 정지하기 시작한다.


‘아, 안돼!’


나이트를 감싸던 충만하기 그지없던 힘이 서서히 잠든다. 공급이 끊어진 파괴자는 이제 술법의 영향이 사라지기 전까지 활동을 멈출 것이다.


나이트는 죽음을 느꼈다. 갑옷의 보호에서 벗어난다면 이 술법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갈가리 찢겨서 가루가 될 것이다.


그때, 공포에 떠는 나이트의 눈 앞에 카를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 곳은 빛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니까. 그러나 눈에 보일 듯 느껴진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카를의 존재만이 너무나 뚜렷하게 느껴진다. 이 엄청난 술법에서도 버티고 있는 그의 육체가 놀라웠다.


파괴자가 주변에 자연력이 없는 것을 감지하고도 바로 휴면 상태에 빠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카를 때문이었다.


‘저건?’


카를의 육체 안에서 불의 자연력이 모두 빠져나가자, 카를 본인의 자연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저 힘만 있으면!’


카를의 힘이라면 다시 갑옷을 작동시키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더 강해져서 이 술법을 파괴하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간 거리가 있다. 술법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만큼, 카를과 멀어진 상태였다.


나이트는 도박에 나섰다. 갑옷에 남아있는 자연력을 분출하여 어떻게든 카를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조금씩이지만, 카를에게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그 반동으로 갑옷의 힘이 점점 나이트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갑옷 안에서 핏방울이 송골송골 밖으로 빠져나온다. 나이트의 피부가 조각나고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필사의 노력 끝에, 결국 그는 카를에게 닿았다.


“으아아아아! 흡수하라!”


죽음의 문턱에서, 나이트는 파괴자의 흡수능력을 사용해서 카를의 자연력을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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