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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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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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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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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방관자 (9)

DUMMY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내가 한 말이 믿음이 안 갔나?”


“반대입니다. 아르헨님의 지식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기록에 파편이라도 있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왜 그러지?”


아르헨은 하스트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나 당신이 이야기한 것 중에는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 정보도 있습니다.”


“그렇겠지.”


아르헨은 태연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식이었다.


“그게 정말 남아있지 않은 정보인가요?”


“하하하. 그게 무슨 말이지?”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정보는 아니었나요?”


“흠~?”


“아르헨님이 하신 말씀과 우리의 말에, 용어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세월의 차이라고 해도 너무나 다른 용어죠. 자연에 분포해있기에 자연력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령이 사용하기에 정령력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에테르라고 불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 어떤 기록에도 그런 말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정령 기계가 세계를 파괴하면서 대부분의 기록은 사라졌어. 세계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고. 그런데 네가 태어나기도 전인 세계의 용어를 어떻게 확신하지?”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른 점은 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인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아르헨님은 종족이라고 불렀죠.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활발하게 서로 교류하며 지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를 종족이라고 하면서까지 구분 지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후에, 지금도 서로를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라는 틀 안에, 서로의 인종만 구분 지을 뿐입니다. 종족이라는 말은 상대를 인간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쓸데없는 의미 부여네.”


“네. 과대한 의미 부여일 수도 있겠죠. 저조차 확신이 서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멈추지 않겠지?”


하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행은 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생각이라는 늪에 빠졌다.


하스트는 일행에게 벌어진 현상이 누구의 짓인지 알았다. 다시 그와 눈을 마주친다.


“아르헨님은 소원 수리기에 대한 것도 이야기하셨죠. 그것 또한 기록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세계가 멸망한 이후에는 기록이 아닌, 사람들의 경험이 남아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그에 대한 말은 없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거라면,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떠돌아다니는 소문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없었죠.”


“세계가 멸망해서 안 나왔다고는 생각 안 하나?”


“세계가 멸망한 것은 자연력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멸망이라고 했지만, 사라진 것은 살아가는 자들의 세계입니다. 세계라는 공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죠. 그런데 세계의 일부라는 것이 세계가 부흥하는 와중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치에 안 맞습니다.”


“원래 엄청 가끔 나오거든.”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불로불사를 빌었다던, 세계가 끝날 때까지 정지해있다는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죠?”


“자신이 소원을 빈 그 자리에 있지.”


“그게 어딥니까? 전 세계의 모든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존재를 보았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자연력이 부활하며 지리가 달라진 곳도 많아. 그 아래에 깔려있을 수도 있지.”


“확언이 아니시군요.”


“나도 나이가 나이다 보니, 가끔 까먹어.”


아르헨은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하스트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나는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래. 오직 이곳에만 존재하지. 그건 나와 아우루의 힘이니까.”


“대단합니다.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는 힘을 다룰 수 있다니.”


“지금 세계에 없다는 말이니까.”


“지금 세계에는 오직 자연력만 존재한다. 그럼 예전에는 존재했다는 말이 되겠군요. 하지만 마나는 자연력과 마찬가지인 만능의 힘. 그런 것이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자연력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맞고 있어요. 자연력이 사라지면 육체도 힘을 잃을 정도로. 마나가 처음부터 있었다면,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마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있을 법도 합니다.”


“고착과 회귀의 차이지.”


“그러기에는 세계에 너무 마나가 없습니다. 이곳에는 있는데 말이죠. 마치 누군가 치워버린 것처럼.”


“세상에는 네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생겨.”


“그렇겠죠. 아르헨님의 지식과 지혜는 감히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겠죠. 그렇기에 더 묻고 싶습니다. 왜 이들을 가르쳤습니까?”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아르헨님은 세계의 눈을 피해 여기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희의 관여도 하기 싫다고 하셨고요. 그런데도 저희에게 큰 정보를 주셨습니다.”


“어차피 이미 길이 닦여져 있던 거라 그리 큰 정보도 아니지.”


“드워프의 술법은 문화마저 바꿀 수준입니다. 드워프만이 아닙니다. 아르헨님이 말씀하신 것들 전부가 무사히 안착되고, 발달된 술법과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 포괄할 수만 있다면, 세계의 문명이 바뀔 수준이죠.”


“하하하. 원래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야. 그렇게 안될 수도 있는데?”


“아뇨. 반드시 됩니다. 그 이상이 현실과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요. 이미 드워프를 제외하면 그 직전 단계까지 와 있는 상태예요. 사람들이 서로 교류만 시작한다면 바로 이룰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드워프는 술법을 완성하는 것에 굉장히 오래 걸릴 거야.”


“그렇죠. 분명 그렇겠죠. 스트라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정보의 구멍을 만드신 거 아닙니까?”


“정보의 구멍?”


“네. 다른 인종과 다르게, 드워프는 술법의 차이입니다. 현재와 가장 동떨어져있습니다. 아르헨님은 다른 인종의 술법을 비교적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드워프의 술법은 그렇지 않았죠.”


“수치에 뛰어난 것과 조각화만 알려주었어도 충분한 것 같은데?”


“어떻게 조각화를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으셨죠. 그건 그저 상상과 수치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자신 안에서 에테르를 변화시켜 밖으로 내보내는 지금의 술법과는 달리, 드워프는 외부의 것을 다시 외부로 투영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당신은 구현 능력에 대해서는 스치듯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인데도. 저에게는 마치 스트라가 지금 그 능력에 대해서 깨달으면 안된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의미 부여야?”


“드워프만이 아닙니다. 아르헨님은 지금 당장 저희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차라리 이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정보를 주고, 이들이 그것에 먼저 익숙해진 다음, 그 후의 단계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정상이죠. 하지만 아르헨님이 알려주신 것은, 현재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들, 혹은 먼 미래에 겨우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바로 다음 단계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없으셨죠. 아이들이 당장 사용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아르헨님의 지식과 지혜라면, 아이들부터 성장시키고 그들의 지식을 퍼트리는 방법을 알려주실 수도 있으셨겠죠.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려운 개념을 들이밀 필요가 없습니다.”


“날 과대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어떤 평가도 아르헨님에게는 과대평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후후후. 그래. 하지만 내게도 생각이 있었어. 너희들이 빨리 강해지면 세계가 눈치채거든. 그래서 그런 거야.”


“세계가 눈치챈다. 재미있는 말입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아르헨님은 이쪽으로 세계가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는 세계의 눈을 피하는 곳입니까? 아니면 속이는 곳입니까?”


“호오···”


“세계의 눈을 피하면, 우리는 지금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게 되겠지요. 세계의 눈을 속이는 거라면, 우리의 정보가 달라진 상태로 세계에게 향하겠지요.”


아르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더욱 짙은 웃음이 그의 입가에 걸려있을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에게 추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없어진 존재에게 미련을 두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곧 여기서 나갈 겁니다. 그렇다면 세계의 입장에서는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세계를 하나의 생물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세계가 이 사태를 그냥 지켜만 볼까요? 세계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그것이 다수의 인간이 어느 기점에서 사라졌다면? 그리고 어느 기점에서 다시 나타났다면? 무엇보다 그 인간들은 지금 세계의 역사와 가장 밀접한 인물들입니다. 추적하지 않을 리 없겠죠.”


“재미있는 추론이군.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의 눈을 속이는 거라면? 지금도 너희들의 정보를 거짓으로 꾸며내 세계에게 보내고 있는 거라면 어쩔래? 너희는 지금도 세계에 존재하고 있고, 내가 말한 것을 너희 스스로 깨닫고 있다고 속인다면?”


“세계는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라고 하셨죠? 그것은 순간이 아닐 겁니다. 언제나겠죠. 우리의 정보가 언제나 세계에게 집약된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도 마찬가지겠죠. 그렇다면 설사 지금 세계를 속인다고 해도, 금지 밖을 나가면 우리의 기억은 세계에게 수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이 정보를 과연 세계가 신경 쓰지 않을까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우리가 보내온 정보의 차이가 너무나 뚜렷한데? 제 미천한 지혜로는 세계를 속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뭐지?”


“기억 조작. 그것도 세계가 아닌, 우리에게 행하는 기억 조작. 그러면 속인 정보와 일치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만약 기억 조작을 행할 거라면, 이것보다 더 자세히 정보를 주어도 괜찮습니다. 관여를 안 한다는 것은 저희에게 이런 큰 정보를 주면서부터 이미 파기된 행위니까요. 특히 초능력에 대한 정보는 그대로 놔뒀으면 저희의 생이 끝난 후라도 아무도 진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확률이 더 큽니다. 하지만 아르헨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훗날 도움이 되라고 한 거라면?”


“그 훗날이 언제입니까?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파괴자와 싸울 수 있는 지식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알아서 발전하게 내버려 둬도 괜찮았습니다. 세계의 위험이 없어졌으니, 인간들은 스스로 일어서며 문명을 발전시켰겠지요. 하지만 주어진 정보는 지금 당장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것들뿐. 전 아르헨님이 목적 없이 저희에게 관여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정보는 10년은 있어야 실현될 이야기.”


“그게 무슨 문제지?”


“10년이란 세월이 문제입니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글쎄? 그나저나 넌 내 이야기를 계속 여과했구나. 어떤 것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해. 무슨 기준이지?”


“전 아르헨님의 말씀을 모두 믿었습니다. 단 하나만 빼고요.”


“하나? 그게 뭐지?”


“세계가 두 분을 복속시키려고 한다는 것.”


하스트의 말에 옆에 서있던 아우루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거의 처음부터네.”


“처음부터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저 방의 정체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부터 의심하기 시작했죠. 전 세계의 중심이라고 추측했지만, 아르헨님은 아니라고 하셨죠.”


“그게 왜? 의심할 게 있었나?”


“대답하는 것에 한번 망설이셨으니까요. 저곳에는 세계의 중심을 본뜬 간이 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금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그렇다면 저 간이 핵은 이 곳의 정보를 제거, 혹은 교란시키고 그 정보를 세계로 보내는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전 봤습니다. 아이들이 그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정보를 보내기 위해서 진짜 핵과 연결이 되어있는 건 당연하지 않나?”


“간이 핵과 다가서자 아이들의 초능력이 강해졌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었습니다. 물론 질서의 핵이 저 창공 너머에 있을 수도, 땅 속 깊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를 가도 같겠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아이들의 초능력은 그쪽으로 연결되었어야 합니다. 간이 핵의 힘에 초능력이 증폭될지언정, 그곳으로 연결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니었죠.”


하스트의 눈이 빛난다.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는 아이들의 연결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뚜렷이 보인다. 평소보다 훨씬 확실하게 관측이 가능하다.


“초능력은 정보와 연결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간이 핵도 정보를 수집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세계에는 지금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 두 군데가 있다는 말이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걸 세계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의 초능력이 연결되었다는 말은, 단순히 정보의 송신만 가능한 게 아닙니다. 저 간이 핵을 통해 세계가 이쪽을 볼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만약 아이들의 초능력 기원이 저 간이 핵이라면? 진짜 핵과는 상관이 없다면?”


“그럼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금지 안에서만 초능력을 사용했다면 모를까, 아이들은 밖에서도 초능력을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가 바라볼 때, 아이들은 금지와 연결되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금지 사람들은 세계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피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게 진실이라면, 아르헨님이 아이들을 가만히 놔뒀을 리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처리했겠죠. 그렇다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말해 봐.”


“세계는 아르헨님과 적대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아군이어서 적대할 필요가 없거나, 혹은 아르헨님이 세계보다 훨씬 강해서 적대할 엄두를 못 내거나. 즉, 세계의 시선을 피해야 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간이 핵은, 진짜 세계의 중심이다.”


“재밌군. 그렇다면 내가 금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나? 그냥 밖에 돌아다녀도 되는데?”


“다른 시선을 피했겠죠.”


“다른 시선?”


“네. 바로 우리, 인간을 위시한 생명들의 시선. 이 금지는 세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그렇기에 우리와 접촉한 자들에게 혹독하게 대한 거고요.”


“내가 너희처럼 약한 놈들의 눈치를 봤단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당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 싫으셨겠지요. 무엇보다 아까 제가 바라던 것처럼, 인간들이 당신에게 기대는 것을 싫어하셨겠죠. 약자는 강자에게 기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할 때가 있지요. 노력한다면 직접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도, 강자가 더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노력의 필요성을 없앱니다. 강자는 때로, 존재만으로도 약자의 의지를 타락시킵니다.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타락을.”


“하하하. 경험담이구나. 그래, 수많은 자들이 너를 지켜봤겠지. 너에게 기댔겠지. 너만을 의지했겠지. 예언의 아이, 세계의 종말을 막을 자들. 그 필두. 그리고 세계를 지키는 자.”


“알려주십시오. 당신들은 정확히 누구입니까? 저에게는 당신이 말했던 지금 세계라는 말이 다르게 들립니다.”


“다르게?”


“시간이 아니라, 장소의 차이로 들립니다. 아르헨님이 말씀하신 것들이, 정말 이 세계의 일들입니까?”


“그런 것을 묻다니, 넌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


“아뇨.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바라왔던 적은 있지만··· 하지만 지금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창공 너머에, 수많은 별들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하스트의 말에, 아우루가 한숨을 쉰다.


“하하하. 그래, 하스트. 네 말이 맞아.


“주인님.”


아르헨은 손을 펼쳐, 아우루의 개입을 막았다.


“우린 외계에서 왔다. 세계와도 친하지.”


“역시 그렇군요. 그리고 모두가 아르헨님에게 알 수 없는 친밀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존재는 아니야. 우린 그저 외계에서 왔을 뿐이다. 우리는 방관자야. 네가 바라는 것은 해줄 수 없어. 먼 옛날의 약속 때문에 가장 합당한 카를을 살려주었지만, 그것도 이번 한 번 뿐이야.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이 있으니, 망령에게 망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거든. 망령에게 큰 의지가 있었다면 몰라도 말이야. 하지만 내가 준 것은 기회일 뿐이야.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해. 설사 그 왕에게 너희가 지더라도, 우린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아. 우린 너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니까. 강철의 술사나 근위대장이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너희를 멸하려 했어도, 난 존중해주었을 거야.”


“그럼 왜 그 지식들을 전해주었습니까?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과 상반됩니다. 무엇보다 그건 파괴자들을 상대하기 위한 지식들이 아닙니다. 그 후에 있을 일도 아닌, 그것보다도 훗날을 위한 지식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면, 스스로 발전하게 놔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째서입니까? 도대체 무엇에 대비한 지식들이죠? 그들의 편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하스트의 말에 감정이 실린다. 저 지식들이 완성되면, 제2의 파괴자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시 안 되는 겁니까? 또다시 반복되는 겁니까?”


“···”


잠시 눈을 감은 아르헨은, 하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설사 내가 그런 능력이 있어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미래를 타인에게서 확인하지 마. 너희들의 미래는 너희들의 것이니까.”


하스트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의 제 여행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게 옳은 생각인가요?”


“지금까지 네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 모든 희로애락을 버리고, 목적만을 위해 달려왔다. 그 전환점이 눈 앞에 있어. 너의 옳고 그름은 지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전환점을 넘어, 그 끝에서 네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 의도는 무엇보다도 옳다. 넌 모든 것을 지키려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만 옳은 게 아니겠죠.”


“... 아쉽게도 그렇지.”


“후··· 감사합니다. 제 질문들에 응해주셔서.”


“이 정도로 뭘.”


“주인님. 하스트에게-”


“됐어. 그건 실례야.”


아우루가 아르헨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의 제지에 아쉬운 마음을 담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아르헨의 손이 빛난다.


하스트는 각오했다. 지금 이 문답들은,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하스트도 알고, 아르헨도 안다. 이 문답들은 필요 없다.


“그전에,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뭐지? 무책임한 방관자에게 할 부탁이란 게?”


“카를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십시오.”


“뜻밖이구나. 너를 위해서인가?”


“그를 위해서입니다.”


“좋아.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아르헨의 동공이 세로로 변화한다.


아르헨의 손에서 빛나는 은빛의 마나가, 일행 모두에게 쏟아진다.


일행은 마나에 사로잡혔다. 하스트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마나는 지금까지 일행이 금지에서 얻었던 기억의 부분 부분을 삭제했다. 현귀를 만난 일. 일행과 드래곤들의 문답 중, 특히 외계나 마나에 관한 것들. 지금 세계와 전혀 연관이 없는 것들 전부를 삭제했다.


그리고 드래곤은 세계의 일에 이제 더 이상 간섭할 수 없다는 기억을 심어준다. 이 기억은 그들을 강제할 것이다. 다시는 이 금지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잠시 후, 마나가 천천히 일행에게서 떠난다.


“아우루. 약속 시간 아직 멀었지?”


“네. 저녁 때라고 우길 수 있으려면 앞으로 2시간은 더 있어야 해요.”


“그럼 난 그때까지 잠시 게임 좀 하면 되겠군.”


“그럼 전 준비할게요.”


아우루가 자리를 비운다. 일행은 눈을 감은 채로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우루의 손에는 넓고 납작한 종이 상자가 있었다.


아우루는 그 안에서 다양한 물품들을 꺼내더니, 일행을 그 주위로 옮겼다.


“끝났어요.”


“그럼 너도 시간 보내고 있어.”


아우루는 그 말에 밖으로 나가서 일을 처리한다.




“아싸!”


“크하하하! 내가 졌다!”


엘르는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퇴기는 웃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어때? 보드 게임 재밌지?”


“네!”


게임을 하고 있던 아르헨의 말에 시미가 힘차게 소리친다.


“이번엔 나도 이기고 싶어···”


스트라가 힘없는 목소리를 내었다.


“아쉽게 그렇게는 안 돼. 시간이 되었거든.”


“뭐라고요? 벌써 저녁?”


“그래.”


“그럼 벌써 질문 끝?”


“상관없어. 애초에 카를을 살리러 온 거니까. 애초에 질문할 것도 별로 없었고.”


하스트는 심드렁하게 보드 게임판을 바라보며 바로 일어났다.


‘더러운 놀이 같으니.’


스트라와 꼴찌 다툼하느라 힘들었다.


“저녁은 길잖아요. 더 놀아도 되죠?”


시미가 아르헨의 옆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우루에게 달려가서 물어본다.


“호호호. 그래도 되긴 하지만, 너희가 그럴 여유가 있을까?”


“네?”


아우루의 손 위에 하나의 영상이 떠오른다.


“이건?”


영상의 장소는 카를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소였다.


“우리 마을?”


농경지 마을이다.


카를은 잡아먹을 듯이 가까이 영상에 다가갔다.


“지, 진짜로 모두 살아있어!”


영상 속에는 그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동물들에게 올라탄 소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근위대장?”


“뭐? 그 파괴자가 또 있다고?”


“아니, 저 사람은 남부 도시의 근위대장이야.”


도시 사람들만 아니라, 다른 마을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왜 이렇게 모여있지?”


카를은 의아해했지만, 하스트는 다른 것을 생각했다.


“설마?”


“그래, 그 설마야. 깨어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드디어 활동을 시작했네. 소인 촌장이 필사적으로 잘 막아주었어.”


“우리 촌장님이··· 막아주었다고요? 그렇다면 그 괴물이?”


시미의 말과 함께 영상이 북쪽으로 향한다.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집단이 다가오고 있다.


“이럴 수가?”


온갖 동물들이 그곳에 있었다.


“미친, 북부 평원에 있는 동물들을 다 끌고 오는 거 아냐?”


아무도 카를의 말에 토 달지 못했다. 그 말이 진실이 아닐지언정,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짐승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수천이 넘는 짐승의 군세가 강을 건너고 있다.


목표는 농경지 마을이다.


동물들의 뒤편에는, 거대한 기계가 자리 잡고 있다. 체고가 10미터가 넘는, 마지막 파괴자다.


“파괴자가 동물들이랑 같이 있잖아?”


모든 자연력을 흡수하는 파괴자의 모습을 생각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다.


“역시 마지막 파괴자는 그인가...”


“하스트, 저 파괴자에 대해 알아?”


“알지. 모를 수가 없지. 저 파괴자야말로 옛 왕국의 중심. 국왕이야.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네. 동물들이나 사람들을 쉽게 따르게 할 수 있었다고는 들었는데, 지금 저 모습은···”


파괴자의 앞에 있는 동물들은, 정신이 망가진 것 같았다. 주위의 동료들이 쓰러져서 짓밟혀도, 뒤쳐져도, 무조건 앞으로만 향하고 있다. 파괴자에게 밟혀서 몸의 반이 사라졌는데도, 앞으로 가려고 하는 동물도 있었다.


“모두에게 존경받던 성군의 말로 치고는 슬프네. 완전히 정신을 놓았어.”


아르헨의 말에 카를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얼른 가야겠어! 아니, 그보다 왜 저 녀석 우리 마을로 곧바로 오는 거야!?”


“지맥이 큰 곳을 찾았겠지.”


“지맥이요? 이야기 들어보니까, 화염산이나 설산의 지맥이 큰 거 아니었어요?”


“크기는 화염산 쪽이 훨씬 크지.”


스트라는 그 말에 식은땀을 흘렸다. 파괴자가 언제 발걸음을 돌려 드워프 도시로 향할지 모른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익숙한 자연력은 저쪽이거든. 그래서 깨어나자마자 소인 촌장의 방해에도 저 멀리서 남부 지맥을 건드렸지. 그에 따라 탑이 활성화되었고.”


“그럼 우리 마을이나 도시에 일어났던 동물들의 이변이 역시 저놈 때문이에요?”


“그래.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


화면이 농경지 마을을 다시 비춘다. 마을의 중앙에 있는 탑이 빛나고 있다.


“설마 또?”


카를은 불안했다. 저번에도 탑이 빛날 때, 주변 동물들이 홀린 듯이 마을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설마가 아니야. 지금도 탑에서 뿜어지는 지맥의 자연력에 취한 동물들이 마을로 몰려들고 있지. 마을 안의 동물들은 소인들이 안정시키고 있어서 괜찮겠지만, 다른 동물들은 아니야. 네가 마을을 떠나왔을 때처럼 될 거다. 더 최악인 것은 파괴자가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거지. 파괴자가 근처로 오거나, 지맥을 건드는 순간, 마을 밖의 짐승들은 모두 폭주할 거다. 혹시 모르지, 위치상으로는 세계의 중간에 가까우니, 연쇄 작용으로 모든 지맥이 폭주할 수도.”


그 말에 모두는 소름이 끼쳤다. 북부 끝에서도 남부를 향해 영향력을 행사한 놈이다. 혹시 모르는 게 아니라, 거의 무조건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를 저기까지 보내줄 수 없어요? 그 신비한 술법 있잖아요!”


“아쉽게도 그건 여기서만 사용 가능한 거라. 입구까지는 보내줄 수 있어.”


“그럼 설산에서 저기까지 뛰어가야 한다고요?”


“능력 되면 날아가던지.”


“이런, 젠장!”


카를은 안절부절못했다. 겨우 고향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더니, 모두 죽게 생겼다.


“더 질문 없지? 약속은 약속이라서.”


“없어요, 없어! 빨리 보내줘요!”


“그래. 아우루.”


아우루는 아르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에게 손짓했다. 순식간에 일행이 모습을 감춘다.


“엥? 왜 나는?”


하지만 카를은 남겨졌다.


“저기요? 한 사람 덜 보냈는데요?”



“아, 너한테는 전해줄 게 있어서.”


“지금 그럴 시간 없는데요.”


“걱정 마라. 금방 끝나니까. 이것도 약속이라.”


“뭐, 뭔데요?”


“언젠가 네 몸의 힘이 모두 해방될 때가 올 거다.”


진중하게 깔리는 아르헨의 목소리에 카를은 움찔했다.


카를은 심호흡을 하며, 억지로 몸을 진정시켰다.


언젠가라고 하지만, 저 파괴자와 싸울 때가 가장 유력하다. 아무리 봐도 보통의 상대가 아니다.


저번에 잠깐 봤던 옛 왕국의 근위대장보다 강하다면, 안정된 자신의 힘으로도 힘들 수 있다.


결국 억지로 쥐어짜내서, 폭주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이 육체의 모든 힘을 해방해야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를은 아르헨이 말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카를은 아르헨에게 답을 요구했다.


“그때가 오면 오직 한 가지만을 지켜라.”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아르헨이 웃으며 카를에게 고했다.


“오직 너의 육체.”


그와함께 카를의 시야가 변한다. 아르헨의 방에서 퇴출된 것이다.


‘오직 나만을 생각하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말이다. 언제나 여유가 있었기에, 언제나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었다. 특별히 정의감이 넘쳐서가 아니라, 그래도 여유가 남으니까.


하지만 드래곤은 그 반대를 말했다.


“야! 카를! 빨리 와!”


엘르의 목소리와 함께 생각이 끝이 난다. 카를은 얼른 뒤로 돌았다.


카를의 합류와 함께, 일행은 금지 밖으로 나갔다.




“아깝네요.”


아우루의 말에 아르헨은 웃었다.


“뭐가 아까워.”


“하스트 말이에요. 왜 그에게 권유하는 것을 막았어요?”


“그 녀석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너의 권유는 그 녀석에게 그만 멈추라는 말이야. 녀석은 멈춰서는 안 돼. 계속 달려야 해.”


“하지만 그는 열심히 노력했어요. 쉬어도 되잖아요?”


“쉬는 순간, 녀석은 죽어. 그런 각오로 달려온 녀석은, 진짜로 그렇게 되어버렸어. 우리의 역할은 녀석이 끝까지 달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야.”


“영혼의 기억을 소거하지 않은 건 그런 기대 때문인가요?”


“아니, 그냥 영혼 쪽은 힘이 많이 들어서 그런 건데?”


아르헨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러나 아우루는 알았다. 모르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을 같이 보내왔다.


“일부러 방문을 열어서 빌미를 주고, 정보까지 나불거리신 분이 누구죠? 그러지 않았으면, 소거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실수야, 실수. 육체가 이래서 말이야. 가끔 실수도 하는 거지.”


“네, 네. 그렇다고 생각할게요.”


그렇다면 아우루도 아르헨의 소망에 자신의 소망을 올렸다. 아이들에게 행한 기억 소거는 육체에만이다. 영혼의 기억은 멀쩡하다.


지금 당장 영혼의 기억을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들이 성장하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다. 아우루는 그들 모두가 그 행운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뭔가 대답이 떨떠름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손은 게임하느라 바쁘다.


방금까지 시끌벅적했던 방은, 어느새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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