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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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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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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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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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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1)

DUMMY

“꾸엉!”


“크하하하! 웅이가 생각나는구나! 그럼 어디 한번 놀아볼까!”


일행의 앞에 나타난 백곰을 보고, 퇴기는 달려갔다.


“야야야! 나 있어! 나 있다고!”


카를은 퇴기의 등 위에서 급박하게 외쳤다. 시미는 퇴기가 웃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의 어깨로 옮겨 탔다.


“으이그··· 엘르, 좀 도와줘.”


하스트와 엘르는 바람으로 퇴기와 카를을 고정한 끈을 풀었다.


“우악!”


카를은 갑자기 몸이 아래로 쑥 꺼지자 깜짝 놀랐다. 그것도 잠시, 퇴기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땅에 처박힐 걸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오, 오오?”


그러나 카를에게는 다행히, 하스트와 엘르가 바람으로 그를 곱게 땅에 내려놓았다.


“우악! 차가워!”


그러나 카를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눈이 그를 괴롭혔다.


덜덜 떨기 시작하는 카를에게 스트라가 다가섰다.


“오, 따뜻해.”


스트라가 내민 불에 손을 갖다 대며 카를은 안도했다.


“진짜 손 많이 가네.”


하스트는 찡그리며 카를을 보았다.


“너무 그러지 마라. 난 추위라는 거 처음 느껴봤어.”


일행이 지금 있는 곳은 설산이다. 주변에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엘르는 카를을 토닥거리며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이것들이 왜 이래?”


“우린 그래도 안 춥거든.”


“그래, 좋겠다. 술법 쓸 수 있어서.”


일행이 잠시 멈춘 사이, 어느새 퇴기는 백곰과 싸우고 있었다.


“쿠엉!”


“크하하하! 호쾌하군!”


퇴기는 백곰의 앞발을 어깨로 버텨내고, 그대로 백곰에게 파고들었다.


“우엉?”


백곰은 퇴기가 자신의 허릿살을 잡자 당황했다.


“으라차!”


퇴기는 백곰을 다리를 걸더니 그대로 넘어뜨렸다.


“크하하하! 이겼다!”


물론 그건 퇴기의 생각이었고, 백곰은 전혀 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앞발을 휘둘러 퇴기를 후려쳤다.


“크하하하! 그만 때려라!”


퇴기는 다시 백곰을 일으키더니, 다시 넘어뜨렸다. 그렇게 열 번을 반복하자, 백곰이 퇴기에게서 도망간다. 상처가 없더라도, 힘의 차이를 느낀 것이다.


“크하하하! 잘 가라! 다음에 보자!”


퇴기는 도망가는 백곰을 배웅해줬다.


“무식한 놈, 백곰을 힘으로 이기네.”


“크하하하! 그건 잘못된 말이다, 하스트! 방금 녀석은 전혀 씨름에 대한 감각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붙자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더군! 즉, 난 정면에서 저놈을 이긴 게 아니다!”


“그러시겠죠.”


“크하하하! 그래도 우리 마을 근처의 곰들보다 크고 강하군! 그리고 끈질겨! 우리 쪽의 곰들은 웅이 빼면 5번만 이겨도 도망가기 마련이었다!”


“여기 동물들이 다른 곳보다 좀 포악하거든. 그나저나 제발 목소리 좀 줄여.”


“크하하하! 알겠다!”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하스트가 걱정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눈사태 때문이었다.


쿠구궁.


역시나 그의 걱정대로 눈사태가 일어난다. 다행히 여기는 산의 정상이라 아래쪽에서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하스트는 눈사태에 휘말릴 동물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크하하하! 우선 정상에 도착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퇴기의 말이 있기 전부터 유키는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느 쪽이 마을인지 확인하고 있다.


“이쪽 아냐?”


그에 카를이 한쪽을 가리킨다.


“흠··· 아, 맞네요. 이쪽이에요.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그나저나 카를 씨는 굉장히 감이 좋으시네요. 정확한 이정표가 없다 보니, 저희 마을 사람들도 가끔 헤매는데.”


“아니, 그야...”


카를은 말하며 고개를 위로 올렸다. 너무나도 큰 이정표가 그곳에 있었다.


‘저거랑 상관없나? 하지만 아무리 봐도 계속 저쪽으로 가고 있는데.’


“진짜요? 와, 드디어 이 경치에서 해방?”


엘르는 빨리 마을로 들어가고 싶었다.


처음에 설산들의 산맥에 들어왔을 때는 난생처음 보는 눈에 신기해서 방방 뛰었지만, 이내 깊숙이 들어오자 멈추지 않는 눈보라 때문에 계속 똑같은 광경만 보게 되었다.


덤벼오는 동물들이라도 많으면 화라도 풀 텐데, 동물들의 수도 적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확실히 똑같은 풍경이 지겹기는 해. 근데 엘프 마을 근처도 별 다르지 않잖아? 숲이라 나무밖에 안 보이는데.”


“야! 나무라고 해도 전부 달라!”


카를과 엘르가 티격 거리자, 퇴기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카를, 왜 그러고 있나?”


퇴기의 반응에 카를은 직감했다. 아까 하스트와 엘르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백곰과 맞붙었을 때 백곰에게 후려쳐진 것은, 퇴기의 어깨가 아니라 자신이 되었을 거라는 걸.


카를은 더 이상 엘르에게 말대꾸하지 않았다. 혹시 다음에 안 구해주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퇴기는 카를을 동여맨 보자기를 다시 어깨에 메었다. 다시 자신의 자리가 넓어진 것을 확인한 시미가 퇴기의 어깨 위로 자리를 옮긴다.


일행이 준비된 것을 확인한 유키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손에는 미조레의 손이 잡혀있다.


일행은 모녀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눈보라 때문에 한 치 앞도 보기 힘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행과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앞사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드디어···”


유키와 미조레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저건?”


“저건 눈사람이야. 눈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놓은 거지.”


“사람의 형상? 저게?”


엘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눈코입이 달려있는 것도 맞고, 팔이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동그란 눈덩이 두 개를 붙인 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사람 같지 않았다.


“저런 체형의 인간이 어딨어?”


“여보! 미조레!”


“... 있네.”


마을에서 뛰쳐나오는, 달리는 눈사람을 보며 그녀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눈사람 안에서 남자가 튀어나온다.


“킥킥. 아무리 그래도 눈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어딨냐? 그게 사람이냐? 정령이지.”


하스트는 엘르의 반응을 보며 웃었다. 엘르는 하스트를 때리기 위해 손을 들었다.


“아빠!”


미조레가 남자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유키도 그 뒤를 따랐다. 세 가족은 서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남자는 울먹이며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시미는 그 장면을 보고 눈물지었다.


“다시는 반찬 투정 안 할게!”


하지만 곧 이어진 남자의 말은 시미의 감수성을 철저하게 부숴놓았다.


유키는 남편의 반찬 투정에 화가 나, 부부싸움 끝에 미조레를 데리고 집을 나간 것이다.


일행은 유키의 일을 남편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반찬투정으로 인해 그녀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가 알게 된다면,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행은 남편의 안내로 유키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죽었다고 생각한 두 모녀가 돌아오자 크게 기뻐하며 저마다 인사를 건네 왔다.


미조레는 또래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어디 실력을 얼마나 쌓았는지 볼까!”


미조레 또래의 남자아이가 미조레를 붙잡고 결투를 신청했다.


미조레는 고개를 끄덕여 결투를 승낙했다.


“얘, 아무리 그래도 힘들 텐데.”


“놔둬.”


엘르와 시미가 미조레와 남자아이를 막으려 했지만, 하스트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리고 왜 하스트가 막지 말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얍!”


남자아이가 힘차게 술법을 사용한다. 그의 몸에 눈이 쌓인다.


“히히히! 어때? 이 멋진 몸을 보라고.”


그리고 나타난 것은 아까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눈사람이었다.


“훗.”


미조레는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그리고 그녀도 술법을 사용했다.


“짠!”


역시 나타나는 것은 눈사람이었다.


“여, 역시 미조레! 마을 밖에서도 실력이 녹슬지 않았네!”


주변 아이들이 미조레를 둘러싸고 칭찬하고 있다. 미조레에게 대결을 신청했던 남자아이는 패배에 분해하고 있다.


스트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엘르는 하스트를 툭툭 치며 저게 무슨 놀이냐고 물었다.


“누가 눈사람 더 잘 만드는지 대결하는 거야.”


그 말에 일행은 다시 두 눈사람을 보았다.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잘 봐.”


하스트에 말에 일행은 더욱 자세히 눈사람을 관찰했다.


“미조레의 눈사람이, 조금 더 동그랗네요.”


시미의 말에 일행은 하스트를 바라보았다. 하스트는 정답이라 말한다.


“시, 신기한 놀이네.”


“크하하하하! 술법의 정교함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되겠군! 좋아! 나도 해보지!”


“그럴 시간 어딨어, 빨리 와라. 게다가 네가 저렇게 되면 카를은 숨 막혀 죽을걸?”


“크하하하!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퇴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걸으면서 천천히 술법을 완성하더니, 결국에는 완성해냈다.


“크하하하! 생각보다 어렵군!”


유키의 집 앞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돌사람이 자리 잡게 되었다. 미조레는 아이들에게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




“금지(禁地)로 가시겠다고요?”


“네.”


유키의 집에는 어느새 촌장이 자리하고 있다. 애초에 유키의 집이 촌장의 집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왜죠? 그것도 당신이 좋아하는 그 예언이라는 것과 상관이 있나요?”


“언니.”


유키는 자신의 언니인 촌장에게 눈치를 줬다. 하지만 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키를 타박했다.


“왜 그러니? 너 밖에 돌아다니더니, 저 말도 안 되는 말에 물들이기라도 했니?”


서로 관계를 맺기 힘든 것은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설산의 마을은 특히 폐쇄적이었다.


세계를 떠돌아다니던 하스트마저 이 마을에 들린 것은 손에 꼽는다.


냉기의 자연력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도, 예언의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파괴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마을로 가는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가끔 지맥이나 살피러 왔을 때 주변을 지나갔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마을 사람들에게 예언에 대해 알리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도 않았다.


예언자의 시대에는 이들도 예언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지만, 점점 관계가 뜸해지자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실체가 확실한 것도 아닌 것에 심력을 쏟느니, 마을 일에 더 열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하스트가 들린 이유도, 금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쫓겨났지. 그 후에 몰래 들어갔지만.’


“예전에 저 녀석이 금지로 몰래 들어가는 바람에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너도 알잖아.”


‘들켰네. 게다가 그놈들이 고자질까지 했어?’


그리고 이들이 예언을 안 믿는 이유는 더 있다. 이곳만은 예언자보다 더 큰 도움을 준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금지로 누군가가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음식을 나누어 받았다. 이 척박한 설산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언자가 아니라 그들 덕분이었다.


일행은 하스트가 마을에 피해를 줬다는 사실에, 빤히 쳐다보았다. 하스트는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말도 안 되는 것이 아니야, 언니.”


그런 하스트를 구원한 것은 유키였다. 유키는 드워프 왕국에서 있었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물론 자신과 미조레의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감췄다.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하지만 역시 예언이 정확한 건 아니라는 거네요.”


“언니, 꼭 그걸 콕 집어 말해야겠어?”


유키가 언니인 촌장을 째려보자, 촌장은 헛기침을 하더니 일행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네요. 꼭 금지로 가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당신이 못 하는 걸 그들이 할 수 있을 거라 어떻게 확신하나요? 혹시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겠죠?”


아무리 예언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촌장이라고 해도, 하스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가질 수 있는 합당한 의심이었다.


“제가 부탁하려는 대상은 그들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있을 거라 예상되는 어떤 존재죠.”


“어떤 존재? 게다가 예상된다니, 당신도 확실한 게 아니군요.”


“네. 하지만 그 존재가 있을만한 곳이라고는 거기밖에 없습니다.”


세상 모든 곳을 돌아다녔지만, 오직 설산의 금지 안쪽의 거대한 산만은 가보지 못했다.


‘내가 기억까지 잃을뻔했어. 분명히 그 존재가 아니더라도, 그곳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


이것은 도박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카를에게 도움이 될지는 하스트도 몰랐다.


만약 그것과 마주친다고 해도, 어떤 결과가 생길지 몰랐다. 최악의 경우, 파괴자와 마주친 것보다 더 나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스트는 카를을 보았다. 하스트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카를의 장례를 치를 각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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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관자 (1) 19.09.21 2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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