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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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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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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2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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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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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다시 시작된 이변 (1)

DUMMY

북부 평원. 그 넓은 땅에서도 산맥과 가까운 평야에, 거대한 백랑이 거마와 함께 산맥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언제 교대해?”



“이제 3일 지났으니까, 4일은 더 있어야 해.”


“힝, 집에 가고 싶다~”



“나도~”


“아우!”


“히힝~!”


두 소인의 말에 두 동물이 동의를 표한다. 시간이 지나자 말은 한가로이 풀을 뜯었고, 다시 시간이 지나자 늑대는 소인과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이변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키이이이잉!


귀를 긁는듯한 이상한 소리가 세상에 퍼진다.


“으악!”


“이 소리는!”


소인들은 이 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 산맥이 술렁거린다. 소인들은 기겁했다. 마치 산맥 안에 새로운 영역이 생긴 느낌이다.


“이건, 저번 그놈의? 근데 왜 이렇게 강해?”



“지금은 궁금해할 때가 아니야!”


“아우우우!”


소인의 지시에 백랑은 크게 울부짖었다. 울음소리는 평원으로 넓게 퍼졌고, 평원에 있는 다른 늑대들 또한 크게 울부짖었다.


“이제 우리도 가야 해!”


“그런데 저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촌장님은···”


“... 그러니까 지금은 우선 달려야 해! 촌장님이 남겨주신 기회니까!”


소인 둘은 백랑, 거마와 함께 남쪽으로 달렸다.




이변으로 인한 습격 이후 마을에 들어선 짐승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언덕 위의 도시 병력들. 농경지 마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아우우우!”


변화의 시작은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의 울음소리였다. 그것이 점점 가까워진다.


“이, 이건?”


도시의 병력들은 늑대 소리를 듣고 놀랐다. 일반적으로 들을 수 있는 늑대소리가 아니다. 방향의 규칙성이 있다.


“설마?”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병력이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예상대로 여러 마리의 짐승들이 언덕 아래에서부터 뛰어오고 있다.


“그들이 온다!”


경계병들은 동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엄청난 속도로 경계병들에게 도달한 짐승들이 이내 멈춰 섰다.


“깨어났어요!”


짐승들에게서 말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싼 모두가 이제는 알고 있다. 이건 짐승들이 말하는 게 아니다.


맨 앞에 있는 짐승의 등에서 무언가 움직인다. 털 때문에 가려진 그 존재는 이내 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모두에게 다시 외쳤다.


“그 괴물이 깨어났어요!”


소인의 말에 모두가 술렁거린다. 이야기로만 듣던 존재가 마침내 깨어났다.


어느새 다가왔던 지휘관이,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명령했다.


“도시에 이 일을 알려라!”


그 말에 모두가 허겁지겁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지휘관은 다가온 소인들에게 다급히 이야기했다.


“다른 마을에도 알렸습니까?”


“네. 이 마을에 도착한 신호는 다른 곳으로 퍼져갔어요. 도시 빼고요.”


그 말대로 지휘관의 귀에도 점점 멀어지는 늑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다.


“놈이 움직이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자세히 모르겠어요. 저희도 알 수 없는 존재라...”


“만약 움직인다면 적의 숫자는?”


“그것도 자세히 알 수 없어요. 정찰을 맡은 친구들의 이상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도 힘들어서요.”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소인들의 존재를 알았을 때, 적의 용태를 자세히 살펴달라 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에게 가까워질수록 소인의 친구들인 짐승들이 자꾸만 적에게 다가가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소인들에게는, 눈이 좋은 친구들을 데리고 산맥 아래에서 대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저번에 이 마을을 덮친 동물들의 수가 천 마리는 훌쩍 넘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그 괴물의 영향이면, 그것도 본인이 직접 온다면...”


누군가 불안함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쪽으로 온다는 보장은 없어. 우리가 다른 마을로 가야 할 수도 있어. 북부에도 마을이 있다며? 거리는 그쪽이 더 가까울 테니, 여기까지 안 올 수도 있어.”


그러나 그 말에 반박하듯, 탑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건?”


지휘관은 그 해답을 소인들이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들을 쳐다보았다.


“가봐야겠어요!”


소인의 말에, 지휘관 또한 그들의 친구 중 하나인 거마를 타고 마을의 중앙으로 향했다.


소인들의 대다수는 이미 탑 주위에 몰려든 상태다.


“이게 이렇게인가?”


“아냐! 이렇게야!”


“그러니까... 아! 이 흐름이다!”


“뭐야 뭐야? 어떻게 됐어?”


“평소의 지맥과 다른 게 하나 있어!”


“으앙!”


탑 주위의 소인들은 뭔가를 살피더니, 점점 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에 지휘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에 대한 답이 소인에게서 들려온다.


“놈이 여기를 인식했어요!”


그것은 괴물이 이쪽으로 올 것이라는 예고였다.




“놈이 여기로 오는 것은 확실한가?”


“그래. 소인들의 말에 따르면, 거대한 무리가 북부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해.”


“어디까지 왔지?”


“놈들의 선발대는 이미 강을 건넜댄다.”


농경지 마을에는 이제 짐승만이 아니라, 사람도 존재했다. 지하에 숨어있던 농경지 마을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기 때문이다.


카를의 아버지인 농경지 마을의 촌장 그리고 경비대장은, 지하에 숨어있느라 조금은 하얘진 피부와 함께 탑으로 향했다. 도시의 근위대장과 다른 마을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탑에 도착하니 소인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근데 이거 우리 마을에 있던 것과 똑같은 거 맞아?”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다르다고.”


“그랬나?”


“우리랑 반대라니까.”


“소인분들,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아, 카진 씨, 그라누 씨. 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탑?”


경비대장, 그라누는 탑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탑이 빛나니, 그날이 떠오른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마. 아무튼 그날 우리를 도운 것도 사실이다.”


“들어보니까, 완전 병 주고 약 주고 였던데, 무슨. 선조들도 원하고, 우리들도 감안했지만, 솔직히 이런 물건인 줄은 몰랐어.”


“소인분들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몰랐겠지.”


둘은 탑을 바라보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마을의 탑은 전설의 증거이자 선조들의 유산이었다. 그리고 상징적인 건축물, 그것뿐이었다.


“설마 여기에 그런 힘이 있을 줄이야.”


현자가 세웠다는 이 탑이 자연력을 세상에 퍼트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날의 이변은, 이 탑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일어난 일이었고.


“그런데 탑이 이상한가?”


“그게-”


“그 이야기는 우리도 듣고 싶군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다수의 사람들이 카인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오고 있다.


도시의 근위대장과 부대장, 그리고 다른 마을의 촌장들과 경비대장들이었다.


“모두들 오랜만입니다.”


“네. 서로 인사라도 나누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겠네요. 소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먼저겠습니다.”


사람들은 소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소인들이 그동안 베풀어준 지식은, 평범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말해주겠나?”


“우리 마을의 탑 아래에는 이상한 빈 공간이 있었거든요. 자연력조차 없어서 알아볼 수도 없는 그런 공간이요. 그런데 여기는 없네요.”


“그게 이상한가?”


“우리 마을의 탑도 자연력을 퍼트리기는 했지만, 그 빈 공간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자연력을 흡수했거든요. 마치 무언가를 봉인하려고 한 것처럼요.”


“그 무언가가 그 괴물이라니까! 우리가 괴물한테 갔을 때도 그 근처에 탑 비슷한 게 있었어!”


“뭐라고? 그 말은 소인들의 마을에 저 괴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누군가는 경악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을 순식간에 부쉈다는 괴물이다. 하나만으로도 겁나는데, 여러 대가 있다면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 그건 원래 여러 대가 있는 거니까···”


“음? 근위대장님. 저 괴물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조금 있습니다. 만약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말이지만···”


사람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인들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 있는 건, 물의 자연력을 조절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있는 건 자연력이 너무 다양해요. 세상 모든 자연력이 골고루 있어요.”


“무엇보다 땅 아래에 있는 자연력이 다른 지맥과 연결이 많이 되어있어요. 지맥의 지점이라고 해도 보통은 길 중간이 넓어지는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사방으로 뻗어있어요. 꼭, 말로만 들었던 지맥의 중심지 같아요.”


“이어진 것 중 가장 큰 것은 농경지예요.”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은 괴물에게 이어져 있어요.”


“그런데, 그런데.”


계속 떠들어대던 소인 중 한 명이 말을 더듬는다. 이에 사람들이 소인을 다독이며 격려한다. 소인은 그에 힘을 내어 말한다.


“자연력 중 우리가 모르는 자연력이 있어요. 그게 농경지와 괴물에게 이어져있어요.”


“당신들이 모르는 자연력이라고? 그런 것도 있나? 이 땅 안에만 있는 그런 건가?”


“그럴지도 몰라요. 그런데 친숙해요.”


“모르는데 친숙하다고?”


“그리고 땅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이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이지만 가지고 있어요.”


“우리 지역 특산 자연력인가?”


“흠··· 그러고 보니 이 마을 분들은 다른 마을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강하지. 혹시 그 자연력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지금 알게 된 건가? 원래는 알 수 없었고?”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탑이 활성화되어 지맥이 활발하게 움직이니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자연력에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가능성이 느껴져요!”


“난 이걸 알아야겠어!”


“나도!”


“나도나도!”


소인들이 앞다투어 자연력을 알아내려 한다. 새로운 자연력이라는 게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면 전투 준비를 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의 친구들은 우리말을 듣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소인들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그럼 내가 친구들이랑 있을게!”


“나도!”


“나도나도!”



누가 한마디 하면 너도나도 따라나서는 게, 어린아이들이 따로 없다. 결국 사람들이 소인들의 임무를 정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촌장들도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걱정되는군요. 괴물도 문제지만, 북부와 산맥의 동물들은 남부보다 훨씬 강합니다. 선발대에게 당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도시 말고 다른 마을의 지원은 우리가 끝입니다. 아무리 전례 없는 위기라고 해도, 마을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여유 있는 마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사실 촌장님들이나 경비대장님들도 못 오실 줄 알았습니다.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부 사람들은 자연력을 다루기는커녕, 자연력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리고 그 상태였더라면, 북부나 산맥의 동물들을 상대하기 몹시 버거웠다.


실제로 소인의 친구들과 겨뤄서 우세를 점쳤던 사람은 농경지 마을의 촌장과 경비대장인 카진과 그라누, 도시의 근위대장과 부대장 정도였다. 그 외의 자들은 모조리 패배했었다.


단 한 명, 고요의 평원 앞에 있는 동북부 마을의 경비대장인, 이노어는 패배하지 않았다. 아예 겨뤄보지를 않았으니까. 이노어는 기회가 있을 때, 포기했다.


그 상태에서 산맥의 동물들과 겨루면 어떻게 될지 뻔했다. 농경지 마을에 왔던 원숭이들만 해도, 농경지 마을의 일반 대원보다 강했다. 그보다 약한 다른 마을 사람들이라면, 간부들이라고 해도 3마리 이상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카진님의 말씀처럼, 몇 달 전이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을을 감시하던 도시 사람들의 눈에 띈 소인들은, 도시와 접촉했다. 그 후, 남부 사람들이 자연력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소인들은, 괴물과 싸워야 할 때를 대비해 그들에게 자연력을 가르쳐주었다.


“하하하. 그 말이 맞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전에 비해서 몇 배는 강해진 것 같습니다.”


남부 사람이라고 해서 자연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다루지 못했을 뿐, 그들도 알게 모르게 정수를 쌓아두고 있던 것이다.


무엇보다 타인의 자연력에 간섭할 수 있는 소인들이었기에 선생으로서 최고의 자질을 발휘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순식간에 자연력으로 인한 강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촌장들과 경비대장들이 마을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을 전체가 강해졌으니까. 동물들에게 치여서 매일매일 삶의 고비를 넘기던 마을들은 어느새 여유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대로 괴물만 퇴치한다면, 마을끼리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가장 큰 강화가 이루어진 것은, 농경지 마을과 도시 사람들이었다.


농경지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자연력이 풍부했고, 사람들도 강했다. 당연히 정수의 크기도 남달랐다.


무엇보다 이변 이후 안전을 위해서 지하에만 있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안전을 기반으로 인재를 키울 수 있던 것은 무엇보다 큰, 도시의 특징이었다. 게다가 근위대장과 부대장은 이미 의식적으로 자연력을 다룰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마을 지하에도 이 탑과 비슷한 게 있지.’


소인들의 가르침에 근위대장의 기감은 더욱 예민해졌다. 그리고 그는 도시의 지하에 이 탑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면 서쪽 끝의 마을에도 있겠군.’


근위대장이 말한 세 마을의 특징은, 저번에 이변으로 인한 습격을 겪었다.


“그나저나 도시의 그 청년은 안 보이는군요.”


“누구 말입니까?”


카진의 말에 부대장인 다라케스가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에 카진은 첨언했다.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교관 말입니다. 그 친구의 검술은 제가 봐도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자연력을 깨달았다면, 분명 엄청난 강자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카진의 말에 다라케스는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아쉽게도 그 친구는 자연력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도 자연력이 몸에 쌓이지 않는다는군요. 소인들의 의견에 따르면, 자연력을 거부하는 특이체질인 모양입니다.”


“그럼 설마, 그 친구가 자주 쓰러지는 이유가?”


“맞을 겁니다. 자연력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이죠.”


“이런··· 안타깝군요.”


카진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교관은 검술의 기량만으로 본다면, 카진과 동급인 그라누보다도 위다. 그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것은 근위대장이 유일할 정도다.


‘나이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친구인데··· 정말 안타깝군.’


분명 올 거라고 예상되던 강자의 이탈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역시 여기서 가장 강하신 근위대장께서 지휘를 맡는 게 옳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말을 꺼낸 다른 마을의 촌장은 카진과 그라누의 눈치를 보았다. 이 마을은 그들의 것. 지휘권을 빼앗기는 게 마냥 기분 좋을 리 없다.


“전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네?”


“산맥의 동물들 사이에 홀로 있겠다는 말입니까?”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강한 자는 근위대장이라고 말이다.


그보다 약한 부대장조차, 대다수의 촌장들은 이기지 못했다. 부대장에게 도전도 못한 사람도 있다. 동수를 이룬 사람은 농경지 마을의 촌장뿐이었다.


확실히 근위대장은 대단한 강자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무모해 보였다.


사람들은 옆에 있는 다라케스를 보았다. 근위대장의 힘을 아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대장님이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대답에 더 이상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 지휘는?”


“농경지 마을 분들이 하시는 게 가장 낫겠지요. 여기 지리를 가장 잘 아는 것도 이분들이니까요.”


“전 반대입니다.”


반대를 한 것은 카진이었다.


“지휘를 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정확히는 도시분들과 우리 마을 사람들까지 전부 지휘할 자신이 없습니다. 저희는 서로 합을 맞춰서 훈련을 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특기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분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근위부대장께서 도시 병력의 지휘를, 카진님이 농경지 마을의 지휘를.”


“그게 좋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쩌죠? 저희는 개인입니다. 각 마을의 촌장과 경비대장 둘을 묶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모두 강자시니, 차라리 모여서 별동대를 이루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적들 중에도 특히 강한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놈들의 처리를 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 산맥의 동물 중 특히나 강한 놈들이라면 마을의 외벽은 아무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앞으로의 방침이 정리되자, 모두가 분주히 움직였다.




“후우··· 후우··· 긴장되는걸?”


“나도 마찬가지야.”


말롬과 한스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적들의 선발대는 이미 예전에 강을 건넜다고 했다. 그렇다면 머지않아 눈에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곧 적의 선발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농경지 안에서 수많은 짐승의 군세가 밀려오고 있다.


“으아악! 저거 그때 그 거대 고양이 아냐!?”


“저런 맹수까지 달려오는 건가...”


둘의 눈에 띈 짐승은 북부에서 봤던 거대 고양이, 사자였다.


“얼마나 위험한 동물이지?”


주변 사람들은 둘에게 상대에 대해 물어봤다. 사자를 본 것은 카를을 따라 북부로 갔던 둘이 유이했으니까.


“나무를 손톱으로 가르던 맹수입니다.”


“나무를? 컸어?”


“네. 아주.”


한스가 손을 벌려서 나무의 두께를 알려주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낭패감을 드러냈다.


“그때는 도망가느라 바쁠 정도였습니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근처에 있어서 위험을 피하려고 한 거였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우린 강해졌다고.”


“그래, 말롬.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방심이라니, 지금 상황에 방심할 수나 있겠어?”


“그것도 그러네.”


둘은 전의를 불태웠다.


도시 사람들에게 들었다. 카를이 마을을 떠나고, 마을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상심했는가를. 그가 어떤 각오로 도시를 떠났는가를.


“우린 둘 밖에 없는 순찰대원이야!”


“그래. 그렇다면-”


그들의 눈이 한 방향으로 향한다. 그곳은 산맥. 카를이 목표로 떠났다는 곳이다.


“순찰을 마친 순찰대장님이 오실 때까지, 마을을 사수해야지.”


그들은 위험이 넘치는 북부와 산맥에서도, 카를이 잘못되었을 거라 감히 생각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본 모든 사람보다 강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둘은 기분 좋게 상상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멀쩡한 마을의 모습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말이다.




“일제히 발사!”


호령에 맞춰 화살들이 전장을 가로지른다. 동물들의 수가 많아서 대충 쏴도 맞는다.


하지만 강인함이 남부의 동물들과 비교가 안되었다. 방어를 전혀 안 했음에도 정통으로 쏘아진 화살이 가죽에 겨우 상처를 낸다.


“자연력을 담아서 쏴라! 평범한 화살로는 저놈들을 멈춰 세울 수 없다!”


원래는 자연력을 아껴 쓰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저놈들이 저번과는 다르다! 그냥 달려온다!”


저번 이변 때의 동물들은 그저 마을에 들어서려 했다. 입구가 없으면 마을 밖을 빙빙 돌기나 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동물들은 저돌적이다.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마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설사 벽에 부딪혀 죽어도 상관없다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번 적들에게는 이지라는 게 없다. 목표를 향해 그저 무조건 달려올 뿐이다.


“적들이 다가온다! 모두 대비하라!”


일부 사람들은 외벽을 손으로 받치고 있다. 무너질까 봐 그런 것이 아니다. 외벽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쾅!


맹렬한 돌격에 맞은 외벽이 충격을 머금고 땅을 울린다. 그럼에도 외벽은 멀쩡하다.


“방어 성공이다!”


탑의 활성화로 인해 자연력이 강화된 마을 사람들은, 연습 때보다 더 수월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그동안 마을의 방비를 강화한 것이 크나큰 도움이 되고 있다.


“찔러라!”


창병들이 외벽에 부딪혀 튕겨나간 동물들을 향해 힘을 담아 찌른다. 자연력이 담긴 창은 강인한 북부의 동물들에게 구멍을 선사하고 있다.


“저리 가, 이것들아!”


말롬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첫 번째 마을의 방어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북쪽에서만 적이 오는군. 이 상태라면 분산되어있던 병력을 모아도 되겠어.”


그라누의 말에 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에서 동물들이 몰려옵니다!”


“젠장···”


그라누는 자신의 경솔한 입을 원망했다.


“적의 상태는 어떻지?”


“맹공을 가하는 북쪽과 다르게, 그저 걸어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번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카진의 말에 그라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물들이 공격적이지 않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쪽도 저번과는 달랐다.


“얘들아, 여긴 위험해! 저기로 가!”


소인들이 친구들의 등에 탄 채로 주변 동물들을 어르기 시작했다. 소인들과 그 친구들의 언어에, 주변의 동물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벗어난다.


“볼 때마다 정말 놀랍군.”


아무튼 안심이다.



“모두 북쪽을 중점적으로 방어해라!”


그 덕에 병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 화살 장전!”


다라케스의 말에 궁병들이 다시 활을 들었다.


“발사!”


순식간에 마을 앞마당에 수많은 시체가 생겨난다. 카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궁병은 확실히 도시가 마을보다 우세다.


“경고! 대형동물이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말에, 카진은 시야를 멀리 두었다.


“크군.”


대형 코뿔소가 마을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처음 보지만, 딱 봐도 강해 보였다. 철갑을 몸에 두른 것 같은 생김새다.


“저건 내가 맡지.”


카진은 투척용 창을 손에 들었다. 카진의 안에서 자연력이 용솟음친다.


다라케스는 오랜만에 본 카진의 힘에 놀랐다. 자연력을 사용해야 동수를 이뤘던 그의 괴력에 당황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제 자연력까지 사용한다.


다라케스는 지휘를 하는 동시에 카진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나도 소인들 덕분에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그렇기에 보고 싶다. 그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아직도 자신과 동수인지, 아니면 자신을 뛰어넘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더 강해졌는지,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라누!”


“알았어!”


그라누가 외벽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린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놀랐지만, 적어도 카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자!”


그라누의 검에 주변의 모든 것이 조각조각난다. 달려오던 동물은 물론, 외벽에 쌓여가던 시체들도.


그라누는 그 상태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뒤로 깨끗한 길이 생겨난다.


텅.


깨끗해진 그곳으로 카진이 내려선다.


그라누는 카진이 내려선 것을 확인하자마자 옆으로 피했다.


땅에 내려선 카진의 위치에서는 코뿔소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상관없다. 적은 오직 직선으로 달려오고 있다. 위치를 파악했다면, 경로가 틀어질 일은 없다.


“흐읍!”


코뿔소를 노려 카진의 창이 발사된다. 너무나 빠른 그 궤적은 허공에 직선을 그어놓은 것 같다.


그 결과가 눈앞에 펼쳐진다.


직선에 걸린 동물들은 모두 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채 쓰러졌다. 앞에 수많은 동물들이 있었음에도, 코뿔소는 자신의 몸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구멍은 그 뒤로도 이어지고 있다. 구멍을 내는 것이 법칙이라는 것처럼, 창의 궤적에 포함된 동물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쓰러진다.


일격을 완수한 카진과 그라누는 다시 외벽으로 올라섰다.


“우와아아!”


단 일격에 마을의 사기가 올라간다. 그도 그럴게 카진이 창을 던진 그 자리만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동물이 몰려오지 않고 있다.


“하핫! 역시 우리 촌장님! 대단해! 그럼 나도-”


말롬이 투창을 준비하려 하자, 한스가 막는다.


“멍청한 짓 하지 마. 적들의 군세가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어. 투창용 창을 낭비하지 마.”


“쳇. 알았-”


잠깐 투창용 창을 내려놓으려 하는 순간, 동물 중 한 마리가 뛰어오른다.


“-엇?”


그 동물은 말롬을 물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촤악!


그리고 그 입에는 말롬의 살 대신 차가운 칼날이 들어섰다.


“우악!”


동물은 죽었지만, 달려들던 힘이 남아있기에 말롬은 그것에 휩쓸릴뻔했다. 몸을 필사적으로 뒤틀어서야 동물의 사체에 뒤엉키지 않을 수 있었다.


“방심하지 않는다며?”


목숨을 구해준 한스의 말에 말롬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입 대신 창을 놀리는 것뿐이었다.




“최대한 짐 빨리 챙겨!”


카를 일행은 허겁지겁 유키의 집으로 돌아왔다. 짐 중 일부를 여기에 놓고 왔으니까.


“무슨 일 있나요? 왜 그렇게들-”


용들의 퇴출 명령에 마을로 돌아왔던 촌장과 유키는 무서운 속도로 들이닥친 일행의 다급함을 보고 얼떨떨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죽어가던 카를이 무사하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이 지금 위험해서요!”


“네? 카를 씨의 마을이요?”


카를이 남부에서 왔다는 것은 유키도 들었다. 그렇기에 그 먼 거리에 있는 마을이 지금 위험한지 어떻게 아는지 이해가 안 갔다.


“먹을 건 대충 두고 가! 어차피 먹을 시간도 없을 거야!”


“알았어!”


“난 다 챙겼어!”


“나도!”


“크하하하! 나도 다 챙겼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


일행은 부리나케 집에서 나갔다.


“그럼 나중에 뵐게요.”


유일하게 스트라만이 집안의 두 설녀에게 인사하고 나선다.


“... 도대체 뭔 일이니?”


“나도 모르겠어, 언니.”


두 설녀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집 밖으로 나갔다. 이미 일행은 마을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근데 쟤네 여기 지리는 아니?”


두 설녀는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앗!”


두 설녀는 얼른 마을 밖으로 나가 일행을 따라나섰다. 머지않아 일행을 발견한다.


“으악! 어디로 가야 해!?”


역시나 일행은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두 설녀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 때문이지는 몰라도 이 속도라면 따라잡을 수 없다.


“기도나 하자. 그들이 무사히 내려가길.”


작가의말

 드디어 연참대전이 끝났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까지 연참대전을 3번 진행해봤지만, 하루에 11,000자 이상씩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힘드네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원래대로 월, 수, 금에 연재하겠습니다. 연참대전과 비교하면 분량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 같습니다.


 한 달 내내 움직이지도 못하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더니, 허리가 나갈 것 같아서요. 지금도 기상할 때나 책상에서 일어날 때 통증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몸을 좀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딱 200회네요. 프롤로그 포함이지만.


 그럼 수요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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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왕국의 잔재 (4) 19.09.20 27 0 13쪽
189 왕국의 잔재 (3) 19.09.20 32 0 16쪽
188 왕국의 잔재 (2) 19.09.19 9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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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나이트와 파괴자 (4) 19.09.18 26 0 14쪽
185 나이트와 파괴자 (3) 19.09.18 39 0 13쪽
184 나이트와 파괴자 (2) 19.09.17 25 0 17쪽
183 나이트와 파괴자 (1) 19.09.17 3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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