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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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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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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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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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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잔재 (4)

DUMMY

도시의 망가진 성문 밖.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복잡한 도시 안과는 다르게, 이곳은 한적했다.


그곳에는 도시를 떠나려는 인물들과 그들을 배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벌써 가는 건가. 더 쉬다가지 그러나?”


퓨지는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채로 움직이려는 일행을 걱정스러워했다.


“마냥 쉬고 있을 순 없으니까요. 이놈 상태도 회복시켜야 하고.”


하스트는 카를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나 때문에 못 쉰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럼 아니냐?”


“맞네. 미안.”


지금 카를의 상태는 최악이다.


“버리고 갈려다가 참고 있는 거니까, 얌전하게 있어라.”


“네···”


카를에게 더 이상의 전투는 무리다. 지나가는 동물들에게도 질 정도로 카를은 약화되었다.


“카를을 고칠 수는 있는 건가?”


“내가 뭔 물건입니까?”


“아, 치료할 수 있는 건가?”


카를의 투덜거림에 급하게 정정하는 퓨지를 보고 하스트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마 안 될 확률이 더 높아요. 다른 모든 전설들을 알고, 확인한 스승님조차, 그 전설에는 다가가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애초에 실존조차 확실치 않은 존재죠.”


“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냐? 내 목숨이 달렸는데?”


“희망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만약의 경우라도 걱정하지 마. 거기는 추우니까 최악의 경우 네 시신이라도 고향으로 무사히 보내줄 수 있어.”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 나 거기다 버리려고 가는 거 아니지?”


“진짜 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라.”


“네···”


카를의 육체는 엉망이다. 대장이 넘겨준 카를의 자연력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흡수할 수는 없었다. 대장의 말대로, 그랬다가는 바로 정령화다. 카를이 자신의 자연력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게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이미 무너진 그의 육체다. 하다못해 그의 육체가 멀쩡했다면 시간을 주고 천천히 정상화시킬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안 된다.


카를의 목숨이 50일도 안 남았다는 하스트의 진단은 다시 내려졌다. 이제는 아무리 길어도 1주일이 한계다.


“크하하하! 걱정 마라, 카를! 평소에 마음을 곱게 썼으면 분명 하늘도 도우실 거다!”


“하늘에서 내리는 건 비와 번개 밖에 없잖아? 어떻게 날 도와?”


“크하하하! ··· 크하하하!”


퇴기는 등에 짊어진 카를을 고쳐 메기만 했다.


“흥. 그래도 평소에 곱게 썼다고는 생각하나 보네?”


“그래도 나 정도면 착하지 않아?”


“뭐?”


“그렇게까지 정색할 말이야?”


엘르의 눈빛에 카를은 기가 죽었다.


“꺄하하하! 여기 엄청 넓어졌어요!”


자기 자리가 두 거한, 퇴기와 카를이 붙음으로 광활(?)해지자 시미는 기쁘게 뛰어다녔다. 남의 어깨 위에서.


스트라는 끊임없이 도시 안만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아저씨는 어떻게 하려고요?”


하스트는 정신없이 떠드는 일행을 놔두고 퓨지에게 물었다.


“난 여기서 더 지낼 생각이네. 전후 처리도 해야 되니까.”


“그렇군요. 왕국군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사람 한 명이 아까운 시절이지만, 죄를 크게 지은 사람은 아마 처형을 면치 못하겠지. 아무리 못해도 장시간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할 거다. 그냥 가만히 놔두기에는 사람들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말이야.”


“하긴, 용서가 전부는 아니니까요.”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러프터라는 도마뱀 수인이겠구나. 그 사람은 원체 포로들에게도 잘해주었고, 사람들에게도 평이 좋았으니까. 아마도 최소한의 벌만 받게 될 거다.”


“그 사람은 좀 부려먹으세요. 고지식한 사람이라 그래도 말은 잘 들을 거예요.”


“하하하. 그래야지.”


“그럼 그 코끼리는?”


카를의 물음에 퓨지는 고개를 저었다.


“상인은 자신을 살리지 말라더군.”


“엑?”


“왕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상인이라는 인종은 그 혼자였다는구나. 애초에 상인이라는 인종을 역사에 새기는 게 목적이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왕과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지. 구차하게 살아서 희미하게 살아갈 바에야, 악당으로서 깔끔하게 보내달라고 말했지.”


“이상한 인간이네.”


“그렇다고 가만히 풀어주기엔 그의 힘이 너무 강해. 대악당으로 역사에 남겠다고 사람들을 습격할 가능성도 있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처형하기로 했다. 아마 전후 처리가 끝나고 나서, 안정화된 다음에야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퓨지는 일행의 뒤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설녀 모녀인 유키와 미조레가 손을 잡고 있었다.


“유키 씨는 애초에 왕성에 갇혀있던 사람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더군. 침략 때도 소극적이었다고 들었고. 게다가 너희들을 돕는 거니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거다. 라슈와 라피랑 싸웠던 수인은 도시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 여자, 도망은 잘 가네요.”


시미는 투덜거렸다. 악인을 하나 놓쳤다는 것이 아쉬웠다.


“형들.”


“언니들.”


라슈와 라피는 일행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엘르는 두 동생들을 안아주었다. 시미 또한 퇴기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동생들에게 안겼다. 그 둘의 눈시울도 토끼처럼 붉어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새 정이 깊게 든 것이다.


“마을 잘 지켜.”


“네.”


그들은 이 마을에 남아있기로 했다. 파괴자와 싸우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멀고 험한 길이다.


라슈와 라피는 고향이 아니라 이곳에 남기로 했다. 그것은 토인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수인들 전부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생활하기에는 수가 너무 적어졌다.


결국 그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날이 언젠가는 올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마도 안정권에 접어들고 나서야 수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게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토인 부부와 길고 긴 포옹을 나눈 엘르와 시미가 떨어지자, 일행은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엘르는 퓨지와 포옹하며 훗날을 기약했다.


“그럼 나중에 고향에서 보자고요.”


“... 아니다. 엘르야. 난 마을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네? 왜요?”


“난 이미 마을을 버리고 도망친 사람이다.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돌아가겠니? 그리고 이번 전쟁 때문에 이 도시는 강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넓이를 생각하면 다른 작은 마을보다 위험할 정도야. 우선은 여기가 안전해질 때까지는 있을 예정이다.”


“그 후에는요?”


“그건 그때 생각해봐야지. 먼 길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아마 그렇게 안 될걸요?”


“응?”


“그전에 우리 부모님이 잡으러 올 걸요?”


“아, 아하하하.”


퓨지의 웃음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아무리 바깥이 위험하다지만, 엘프 마을의 촌장 내외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마을에는 휴가 있으니 안전에도 지장이 없다.


퓨지는 진지하게 도망갈 생각을 했다.


“도망 못 가요.”


엘르의 말이 왜 이리 소름 끼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도, 도망은 무슨? 이제 난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아.하.하.하.하.”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퓨지의 동공이 너무 흔들리고 있으니까.


“그, 그나저나.”


불신의 분위기를 눈치챈 퓨지는 말을 돌렸다.


“러프터가 카를에게 말을, 그러니까,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다.”


꼬이는 혀를 끝까지 이끌고, 그는 화제를 돌리는 것에 성공했다.


“응? 난 그 아저씨 알지도 못하는데?”


“우선 부탁을 받았으니 말해주지. 모든 일이 끝나면 우리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라더군.”


“나보고 왕을 하라고?”


“그 아저씨, 왕국을 지키려면 큰 힘이 필요하다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대답은?”


“음···”


카를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 방향에는 하스트가 있었다.


“왕은 엄청 높은 자리지?”


“뭘 당연한 걸 물어?”


“촌장인 아버지도 할 일이 많던데, 왕은 더 하겠지?”


“그야 그렇지. 게다가 마을이랑 여기는 애초에 관리해야 하는 크기가 다른데.”


“그럼 엄청 귀찮겠네?”


“그, 것도 그렇지?”


하스트는 대답을 하면서 카를의 다음 말이 예상되었다.


카를은 퓨지를 보며 대답했다.


“안 할랍니다. 귀찮은 건 질색이라서요.”


“후후후. 너무 싱거운 이유군. 알겠네, 그렇게 전하지. 어떤 반응일지는 상상이 안되지만.”


일행은 뒤를 돌았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다.


와아아아!


그 순간, 도시 안에서 수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잘 가!”


“우리를 해방시켜줘서 고마워!”


도시 전체가 일행을 배웅한다. 그 소리를 뒤로 하며 일행은 달린다.


카를은 퇴기의 등 위에서 점점 멀어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퇴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달렸다. 시미가 그 위에서 귀를 막으며 찡그리고 있다.


엘르는 퇴기 보고 시끄럽다고 소리친다. 스트라는 멀어지는 고향을 하염없이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안내 잘 부탁드려요. 유키 씨.”


“걱정 마세요. 아주 친절하게 모셔다 드릴 테니까요, 스트라.”


유키는 스트라를 향해 미소 지으며 앞으로 향했다.


“우리의 고향. 설산으로.”




“갔네요.”


“갔어요.”


“그래. 갔군.”


라슈와 라피, 퓨지는 일행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아도.


“야! 거기서 뭐해! 빨리 와서 도와줘!”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라슈와 라피는 고개를 돌렸다. 여우 수인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토인 부부의 가족들이 있었다.


“이게 지금 누구 아들을 시켜먹으려는 거야!? 이 망할 여우가!”


“그럼 네가 빨리 시켜먹던지! 토끼 자식아!”


“퓨지 님! 이것 좀 봐주세요!”


“아니야, 내가 먼저야! 퓨지 님, 지금 상황이 어떠냐면요-”


“아무래도 들어가야겠구나.”


퓨지의 말에 라슈와 라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망가진 성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시 안의 소음이 더욱 커진다.


“야! 야! 그거 이쪽으로 가져와!”


“누구야! 누가 용접 이따구로 해놨어!?”


“아, 난데.”


“또 너냐!?”


도시 안은 활기가 넘쳤다. 누군가는 짐을 옮기고 있었고, 누군가는 집을 짓고 있었다.


“자고로 집을 수리하기 좋은 도구란-”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어떤 도구가 좋은 도구인지 한창 설명 중이다. 그런데 그 사람 옆에 갑자기 돌기둥이 생겨난다.


“으하하하하!”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만들면 그만이지!”


“자! 더 만듭세!”


도깨비들이 건물을 뚝딱뚝딱 짓고 있다. 도구를 설명하던 사람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야 이 인간들아! 절대 안정이라고 했잖아!”


도깨비들을 향해 드워프 아줌마가 뛰어오고 있다.


“으하하하하! 겨우 이 따위 상처로 안정이라니, 어림도 없다!”


“그렇고 말고!”


“우선은 도망갑세!”


도깨비 세 명이 자기 키의 1/3밖에 안 되는 드워프 아줌마를 피해서 도망간다. 마치 그림 같은 장면이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니 노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우우~ 노동요가 형편없다~”


“뭣이! 그럼 이건 어떠냐! 내 신곡이다!”


발끈한 한 남자는 새로운 노래를 부른다. 모두가 처음 듣는 노래였다.


“별론데?”


냉정한 평가가 내려졌다.


“하지만 가사는 마음에 드는군.”


“그럼 내 곡에 그 가사를 빌리지!”


“오! 더 좋군!”


두 악사가 합주하며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빠르게 퍼진 노래는 어느새 도시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라슈와 라피는 조용히 그 가사를 들었다. 가사의 내용은 존경과 경애. 그리고 그 대상은 예언의 아이들이다.


“야, 근데 예언 아니라며?”


“하하하.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찌 되었든 재앙을 물리치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예언은 거짓이었지만, 그것을 사실로 만들고 있다. 오히려 더 전설적이잖아?”


“오, 그것도 그렇군!”


두 악사의 노래가 조금씩 바뀌어간다. 어느새 가사에는 카를의 이름도 섞여있었다. 퓨지와 라슈, 라피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쑥스러운데···”


“나도···”


라슈와 라피는 달아오르는 열을 감추기 위해 앞으로 달렸다. 왕성의 폐허 위에 새로운 건물이 생겼다. 그들은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아, 맞다!”


달리다 말고 갑자기 소리치는 하스트에 의해 모두가 어리둥절한다.


“뭐야? 매고 있는 대장의 잔해가 갑자기 무거워지기라도 했어?”


“그런 거 아니야!”


“혹시 후추와 소금 때문에 그래? 그건 내가 챙겼는데.”


카를은 자신의 주머니를 두드렸다.


“아, 그건 잘했어. 하지만 그것도 아니야! 아오! 그놈들을 한번 더 조져야 했는데!”


“그놈들?”


“아아~ 그놈들~”


모두가 알아듣지 못했을 때, 엘르만이 알아챘다. 그리고 엘르의 말을 듣고 카를도 알아챘다.


“아직도 그런 걸로 꽁해있어? 회색 족제비?”


“마음이 좁네, 하스트 족제비.”


“크하하하!”


“...”


하스트는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중에 그들을 만나면 친히 한번 더 조지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작가의말

 드디어 드워프 왕국편이 끝났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길었네요.


 사실상 예언의 아이들의 이야기다 보니, 등장인물도 많아져서 더 길어진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소년만화 배틀물 같은 내용이었는데, 만족하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다음 무대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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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방관자 (1) 19.09.21 2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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