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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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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작성
18.06.1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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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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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
18쪽

두개의 죽음(1)

DUMMY

유난히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시간.

중국 산둥성 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청도, 칭다오 맥주로 유명한 관공도시이자 쟈오둥 지구 최대 상공업 항구도시에도 노을이 지며 도시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노을사이로 뿌연 미세먼지로 둘러쌓인 도시의 외곽, 청도국제공항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팔차선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택시와 승용차들로 붐비고 있었다.

" 콜록콜록! "

공항청사를 출입하는 인원의 대다수가 미세먼지때문인지 유행하는 독감때문인지 코까지 뒤덮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움직이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지 못한 인원들은 먼지때문인지 가끔 마른 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택시나 일행을 찾는 모습들도 간간이 보였다.

그런 사람들을 헤치며 건장한 청년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 항창 붐비고 있는 공항청사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하, 시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고작 그딴 새끼들때문에.. "

청년은 안그래도 험한 얼굴을 구기며 광동어로 중얼거리며 뭔가 못마땅한듯 자신의 캐리어를 끌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푸퉁화(표준어)와 여러 사투리를 같이 사용하는 청도에는 그다지 이질적인 모습이 아니었고 그런 청년에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그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왼손에 든 여권과 그 사이에 끼여있는 비행기표가 신경질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청년은 걸음을 잠시 멈추고 위에 달려있는 시계를 힐끔보고는 주변을 살폈다.

" 아직 술시(7시반~8시반)밖에 안됐네. 도대체 흡연구역은 어딨는거야. "

이내 멀리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연기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청년도 그 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가장 이용객이 많을 시간이라 서로 몸을 부딪히며 흡연실로 향하던 청년의 뒤를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푹! 크흑!

후드티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자신의 오른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로 청년을 스쳐지나가며 찌르고 뭔가를 주입하고 떨어져나갔다. 청년도 그걸 느꼈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주변사람들이 여기저기 휩쓸려다니는 시간대라 미처 방비하지 못했다.

" 시..발.. 뭐야? 크윽! 설마? 개새끼들··· 결..국.. "

청년은 이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지고 난 후였다. 빠른 속도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청년은 주변에 있는 의자에 쓰러지듯이 걸터앉고 마지막 한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독이라니.. 미, 친것들. 크크큭.. 담배 한대 필 시간정도는 주지. 젠장.. 하, 다음생에는 절..대 이렇게 당하지 않을테ㄴ...데··· "

서서히 감겨오는 눈과 초점이 풀린 눈동자, 힘없이 쥐고있던 캐리어에서 떨어지듯이 손을 놓친 청년의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지않고 있는 가운데 그의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추고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방치된 청년의 시신을 어디선가 바라보던 눈길들도 하나둘씩 떨어져나갔고 그렇게 무심히 시간이 흘렀다.


- ··· 중국에서 시작된 괴질이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어 중국공산당 주석 장쉔차잉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도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도록 외교부가 건의를 하고···

낡은 라디오에서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는 한창 시끄럽게 공사중이었기에 누구도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쿵!쾅! 드르륵!!

서울 외곽 신도시의 한 택지에 아파트 열두동이 한창 건설중에 있었다. 주변 팬스가 높이 쳐져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만들어진 이곳안에 수십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 어이! 여기 잠시 쉬었다가 해! "

안전제일이랑 문구가 새겨진 안전모를 쓴 새카맣게 탄 얼굴의 중년 남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가 그리 멀리 퍼지지 않았음에도 곧 열댓명의 인부들이 자리를 찾아 모여드는 모습이었다. 하루이틀 같이 작업을 한 사이가 아닌듯 서로 편안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잡았다.

" 반장. 요즘 작업속도가 왜 이리 늦어?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

한낮의 열기를 피하려 그늘쪽으로 몰린 인원들중 누군가 처음 소리친 중년남자를 보며 물었다.

" 어, 태식이. 어휴.. 그게 말이지. 하긴 니들도 다 알아야 하는 일이니 말할께. 여기 건설사 사정이 좋지 못하단다. 저기 높은 분들 얘기하는 걸 슬쩍 들었는데 말이야. 잘못하면 부도날 수도 있데. "

" 뭐시여? 그럼 우리 임금은? 여기서 여섯달이 넘도록 좆뱅이친 내 돈은 어쩔꺼여? "

" 일단 여기 작업관리자에게 중간 정산 해달라고 해놨으니 연락올꺼야. 좀 기다려보자고. "

" 허, 니기미.. 갑자기 뭔 지랄이여. 카악! 퉷! "

" 참내, 그 중국에서 일어난 괴질인지 뭔지 때문에 이러는 건가? 안그래도 박반장네도 공사가 엎어졌다는 구먼. 원자재 수급이 안돼서 말이여. "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둘러보던 반장이 휘휘 둘러보며 말했다.

" 그건 그렇고. 바위는 어디 갔어? 아까부터 안보이던데? "

" 글쎄? 어이 태식이, 막내 어디 작업중이었냐? "

" 글씨요? 아까 배선작업한다고 2동쪽으로 보냈는디? "

그 말에 반장이 2동쪽 아파트로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의 눈에 뭔가 잡혔다. 외장재까지 거의 시공이 끝난 2동의 7-8층부근에서 누군가 위태롭게 매달린 모습이었다. 1동부터 10동까지 순차적으로 공사를 들어가고 있어 2동은 거의 아파트 외관이 완성단계에 와 있었다. 그래서 외관작업 강판 및 철재도 몇 개 붙어있지 않았는데 그곳에 누군가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 어! 어! 저,저거 막내아냐? "

" 저,저 위험한데? 누가 빨리 가봐야 쓰겄는디! "

태식이 소리치기도 전에 인부 몇명이 급하게 그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모여있는 곳은 10동 근처, 생각보다 2동까지 거리는 꽤 되었다. 그 순간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그림자가 툭하니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최소 15미터이상, 떨어지면서 아래에 설치된 철골구조에 한번더 쳐박히더니 빙그르 몸체가 회전하면서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콰창! 팍!

꽤나 멀리 떨어진 그들의 귀에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 뭐,뭐.. 빨리 가보자. "

급히 달려 현장에 도착한 반장과 몇몇 인부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의 짐작대로 막내, 바위가 맞았고 그가 떨어진 자리가 엉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래가 깔려있어도 중상을 못 벗어날 정도의 높이인데 딱딱하고 위험한 자재들이 널려있었던 자리여서 더욱더 위험한 자리였다.

반장은 급히 달려가 바위의 상세를 살펴보았다. 겉으로는 특별히 심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은듯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바위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 반장. 수,숨은 쉬어? 어때? "

같이 도착한 인부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물었다. 하지만 가만히 손을 대고 있던 반장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 아니. 숨이 없..어. "

" 그,그,그럼..? 이 일을 어찌하오? "

" 휴우, 잠시, 잠시만.. "

고바위, 정확히 한달전 공사잡부로 소개를 받아 들어온 막내였다. 학비? 생활비를 번다고 했던가? 군제대를 한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까까머리에 군대에서 공병이었다고 자랑하듯이 말하는 녀석의 새카맣게 탄 얼굴에 지어진 웃음이 보기 좋았던 녀석이었다.

그만큼 인부들에게 귀염을 받는 놈이었고 190에 가까운 키에 다부진 몸은 현장에서 수십년째 일하는 자신도 몇번 보지 못한 좋은 체격조건이었다. 그런 녀석이 지금 여기에 숨을 멈춘채 누워있는 중이었다.

원칙대로면 경찰에 신고하고 관리자에게 보고해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작업인부들의 6개월치 급여가 밀린 상태에서 빨리 쇼부를 보지 않으면 떼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불미스런 사건은 그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꺼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장사고를 숨길 수도 없는 노릇.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고민한 끝에 결심을 한 반장이 입을 열려는 순간.

" 커헉! 크윽. 큭. "

죽은 듯이, 아니 숨을 쉬지 않던 바위가 갑작스레 격한 기침과 함께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소리에 놀란 반장이 급히 고개를 돌려 바위를 살펴봤다.

" 이,이봐. 바위야! 막내야! "

" 야, 야! 만지지마. 혹시 어디 부러졌을수도 있으니까 위험해! "

급히 바위에게 다가가 몸에 손을 데려던 인부들이 흠칫하면서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오직 반장만 조심스럽게 다시 코에 손을 댔다. 살짝 불어오는 콧바람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쉰 반장은 급히 인부들에게 지시했다.

" 태식아. 당장 병원에 전화해서 엠블런스 보내달라고 하고.. 관리자, 아니 이건 내가 직접 말하마. 빨리 움직여! "

서두르는 반장의 모습에 급히 가까운 병원으로 전화를 거는 태식이와 관리자에게 전화를 거는 반장의 다급한 얼굴을 뒤로하고 편한 얼굴로 잠들듯 누워있는 바위가 비교되었다. 얼마후 헐레벌떡 뛰어오는 정장차림에 안전모를 뒤집어 쓴 관리자와 그 뒤로 앰불런스가 불을 밝히며 들어오는 모습이 잡혔다.

그렇게 그날의 사건이 일차적으로 수습되었다.


꽈드득. 꽈득.

내 귀속에 뭔가 뒤틀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뭐지? 라는 의문보다 지금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되었다.

내 안의 뭔가 바뀌고 전혀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는, 마치 알을 깨는 것같은.. 결코 인간은 느낄 수 없는 그런 느낌과 감정들.

불과 얼마전, 아니 몇시간전 자신은 공사장 잡부로 일을 하던 도중이었다. 2동의 샤시공사가 마무리되고 배선작업만 남은 상태에서 중간 브레이크타임이 다된 시간이었다. 서둘러 마치고 쉬고 싶은 마음에 조금 무리했다.

칠층인가 팔층의 외부에서 몇가지 작업을 하던 도중 발이 미끄러졌다. 순간적인 반사신경으로 철골구조물을 잡았지만 구십키로에 육박하는 자신의 몸을 지탱해 주기에는 지구력이 조금 모자랐다. 아니 꽤 오랬동안 죽기살기로 버티며 외쳤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공사장 소음에 묻혀 멀리 전달되지 못했고 어느순간 힘이 빠져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순간 수많은 생각과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혼자 남게 될 우리 형. 불쌍한 우리 형. 누가 돌봐주지?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은 원장 선생님이 방문하니까 괜찮을 꺼야. 불과 스물넷밖에 살지 않았지만 많은 경험을 했다. 군대에도 갔다왔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슬프고 기쁜 기억등등. 마지막으로 스쳐지나가는 빛바른 사진속의 부모님들의 웃고있는 얼굴이었다.

퍼억!

그 짧은 순간 어디엔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몸이 살짝 뒤집어지며 무거운 머리가 아래로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조금 있으면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이미 바닥과 충돌하고 정신과 생각이 끊어졌다. 아픔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단지 그 순간 떠오르는 가족들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 ···. 의사 양반··· 막내 상태가··· 어떠우?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말이요. 제발··· "

흐릿하게 들려오는 반장의 목소리와 소독냄새가 아련하게 풍기고 있었다. 병원인가? 이제 몸속에서 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난 죽었나? 몸에 감각이 없다.

" 검사결과가 아직 안나왔어요. 특별히 부러진곳도 없고, 외상 흔적도 없어요. 혹시 머리를 다쳤을 수도 있으니··· "

잠시후에 손끝, 발끝부터 감각이 돌아왔다. 마치 예전에 했던 전기놀이처럼 막혀 있던 피가 돌면서 느끼는 찌릿함. 아.. 난 살아있구나. 그때서야 현실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노력한 끝에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꺼풀을 올릴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동공으로 들어온 광경은 하얀커튼과 천장에 밝혀진 형광등이었다. 하얗게 백열하고 있는 형광등을 정면으로 바라보자 이제야 현실로 돌아온 것을 직시했다.

" ...아.. 아. 아. "

마치 처음으로 말을 하는 것처럼 단음절만 내뱉으며 메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한참을 그런식으로 적응하던 내 곁으로 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가 다가와 물었다.

" 환자분? 고바위 환자분? 제말 들려요? 선생님! 여기 환자 정신차렸어요. "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몇명의 얼굴이 백열등을 가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반장아저씨와 몇몇 낮익은 아저씨들이었다. 그들 사이로 말끔한 얼굴의 안경 낀 젊은 사람의 얼굴도 있었다.

" 막내야? 괜찮아? 어디 아픈데는 없고? "

" 이거 정상인거 맞남? 영 정상 눈빛이 아닌디? "

" 자,자. 여기서 이러면 환자에게 안좋을 수 있어요. 잠시 떨어지시고 일단 환자 안정부터 취해야 해요. "

안경 낀 남자가 상황을 정리하자 떨어져 나가는 얼굴들. 그들의 얼굴에 걱정, 불안등 여러가지 감정들이 섞여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다친 사고 때문인듯 했다.

" 자, 환자분. 제 목소리 들리나요? 잠깐 볼께요. "

의사가 호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눈에 가져다 비추었다. 잠깐 밝은 빛이 들어왔다 사라졌다.

" 동공반응으로 봐서는 의식은 있네요. 일단 검사가 나올때까지 안정을 취하고 계세요. 별다른 외상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금방 퇴원하실 수 있을꺼에요. 김간호사 여기.. "

의사는 간호사를 불러 몇가지 지시를 한 뒤에 멀어졌고 그런 그를 감싸고 두런두런 아저씨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별다른 상처가 없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지금은 손까닥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스르르 눈이 감기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입원을 하고 몇일이 지났다.

이미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반장님은 한사코 퇴원을 말렸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휴유증이 있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 말에 수긍하면서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원룸에 남겨진 형의 소식도 어제 원장 선생님이 병원에 오셔서 전해줬기에 안심하고 몇일 더 입원하기로 정했다. 사회복지사가 몇일동안 집에 들러 형을 봐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제 예전상태로 돌아왔기에 몇일을 답답한 병원에 죽치고 있는것도 한계가 왔다. 오늘 중에 반장이 결과를 알려준다는 말에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반장은 저녁이 지나서야 병원에 왔다.

" 반장님. 저 더 이상 여기 못있겠어요. 나일롱 환자도 아니고 이제 다 나았는데··· "

육인실 병실에는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 한 남자와 자신만 있었다. 교통사고 남자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돈이 더 나온다고 말짱한 몸뚱아리를 가지고 퇴원을 안하고 있는 진정한 나일롱 환자였다. 어찌나 밖에서 담배를 피워대던지 근처에서 찌든 담배냄새가 진동을 했다. 간호사들이 몇번을 경고했지만 한귀로 흘리는 악질이었다. 왜 이 병실이 텅 비어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그래. 자식. 고생했다. 그동안 니 급여랑 보상비를 해결하느라고 늦었다. 자, 여기. "

반장이 건내는 봉투는 제법 투툼한 두께를 자랑했다. 봉투를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공사 가데기를 하루이틀한 것도 아니고 뻔히 사정을 아는 상황에서 이런게 챙겨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바위야. 나 진짜 식겁했다. 너 사고나고 죽었는 줄 알고 말야. 하아, 그때만 생각하면.. 크으. "

그 순간이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을 잔득 찌푸리는 반장을 보며 바위가 팔근육을 불끈 만들며 말했다.

" 반장님! 이것 보세요. 제가 보통 튼튼한가요. 뭐.. "

" 하지만, 분명히 너 숨을··· 하아. 됐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여튼 그동안 고생했다. "

" 그럼 그곳에는 이제 일을 못하겠네요. "

" 그렇지, 아마도. 너처럼 쓸만한 놈이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아쉽게 됐다. 하지만 너도 당분간은 험한일은 하지말어. 보통 큰 사고를 나면 시간이 지나서 골병드는 경우도 있으니까. 알았지? "

" 네, 반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 그래. 이제 언제든지 퇴원하고 병원비는 계산 끝났으니 말야. "

바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발걸음을 돌려 나가는 반장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바위도 몸을 욺직여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어짜피 더 있으라고 해도 못 지낼 장소였다.

원장 선생님이 가져다 준 사복을 갈아입고 정리하던 도중 어슬렁 거리며 나일롱 환자인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

" 어, 퇴원하네? 벌써? 공사현장 사고라며? 그거 오래 누워있으면 돈 더 받을 수 있을텐데 말야. "

어디선가 주워들은게 있는지 어설픈 조언을 지껄이던 남자는 바위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자 금방 흥미가 식었는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힐끔 그를 보고는 자신의 짐을 가지고 간호센터로 가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처리는 금방이었다. 이미 병원비까지 결제가 끝난 상황이라 바로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이미 밖은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졌고 늦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불어왔지만 그마저도 반가웠다. 마치 제대할때 그 느낌이 물씬 풍겼다.

" 후우. 역시 바깥공기가 좋아. 으아. "

왠지 굳은 듯한 몸을 바로 펴듯이 기지개를 활짝 편 바위는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다. 그전에 형이 좋아하는 닭을 한마리 사야겠다.

반장이 건낸 두툼한 봉투가 바위의 어깨를 더욱더 활짝 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까만 하늘에는 어느새 떴는지 보름달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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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Personacon 서비스
    작성일
    18.06.30 08:23
    No. 1

    일당제.일이.육개월.밀릴.수.있나요?
    돈.안받고.그렇게.버틸.수.없을텐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JaeK
    작성일
    18.06.30 15:50
    No. 2

    보통 가데기라 불리는 공사장은 알바를 선호하지 않아요.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작업을 총괄하는 십장이나 반장을 고용하면 그 건물이 완성될때까지 단기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죠. 거기에 포함된 작업인부들이 적게는 다섯에서 수십명에 이르는 전문노가다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투입됩니다. 알바는 일당제가 맞지만 전문적인 노가다꾼은 건물이 다 지어지고 돈으로 받거나 혹은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한채를 받는 경우도 있어요. 꽤나 전문적으로 돌아가ㅈㅣ만... 뭐 그렇죠. 여기서는 그런 설정이었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큰무지개
    작성일
    18.09.17 05:48
    No. 3

    요즘 누가 고바위라고 이름짓나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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