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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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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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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작성
18.06.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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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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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
21쪽

두개의 죽음(2)

DUMMY

" 응? 이게 뭐지? "

처음에는 거울에 뭐가 묻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자신의 이마, 눈썹사이 바로 위에 정확히 뭔가 그려져 있었다. 병원에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보지 못했는지 못보던 문신같은 것이었다. 그냥 봤을땐 파란색으로 찍힌 바코드 모양과 유사했다. 매장에서 파는 상품에 찍혀있는 그 태그말이다.

어제 저녁 통닭을 사들고 보금자리, 원룸에 도착한 바위는 반겨주는 형과 함께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하는 도중에 발견한 이 문신이 언제 새겨졌는지 몰라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게 병원에 입원했을때도 있었다면 왜 간호사.. 아니 반장님이 말을 안해줬지? 그럼 오늘 생긴건가? '

아무리 지우려고 빡빡 씻어도 벌겋게 피부가 달아오를뿐, 도무지 지워지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하다 화장실문의 노크소리를 듣고야 지우는것을 포기하고 샤워를 마무리했다.

" 바,바위야. 무,무,뭔 일, 이,있어? "

대충 물기를 닦아내며 화장실을 나서자 문앞에서 안절부절하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형, 고차돌.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2급의 장애판정을 받은 나의 하나뿐인 불쌍한 형이었다. 부모님이 안계신 우리 형제는 고아원에 맡겨졌고 입양이 되지 않아 스무살이 되어서 강제독립해야 했다.

당연히 우리형제는 독립을 같이했고 다행히 국가에서 장애인보조금을 지급했기에 작은 원룸을 구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고 신체 건강한 자신은 어릴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사회를 알아갔다.

가끔식 오는 사회복지사나 동사무소직원외에는 교류가 거의 없었고 가끔 가는 고아원봉사활동만이 형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유일한 가족인 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에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놀란 형은 어제 저녁에 몇시간동안 퇴원한 나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에 다짐을 하고서야 겨우 진정되었을 정도였다.

그런 형이 평소보다 오랫동안 화장실에 나오지 않는 나를 걱정했나보다. 화장실 앞에서 소아마비의 영향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불안한 행동을 보이며 서 있는 왜소한 형을 보며 바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 뭔일은.. 봐봐 이 근육을, 얼마나 내가 튼튼한데. 우리 형아. 너무 걱정하지마. "

그제서야 바보같은 웃음을 헤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는 미리 차려놓은 밥상이 있었다. 조그만 식탁에는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이랑 김치, 즉석밥과 지원받은 반찬 몇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본래 밥을 먹고 씻어야 했지만 어제 너무 늦어 그냥 잠이 든 것과 아직 형이 일어나지 않아 식탁을 차리고 먼저 씻으러 들어간 것이다. 씻는 소리에 잠을 깼는지 형이 일어나 불편한 몸으로 냉장고에서 몇가지 반찬을 더 추가한 듯했다.

" 자아. 밥먹자. 형아. 이리와 앉어. "

" 어, 어, 그.. 그래. "

예전과 다름없이 마주앉아 식어빠진 닭고기와 밥, 반찬을 떠서 한입씩 형에게 먹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부분 형이 아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유일하게 하루중에 이렇게 마주앉아 시간을 보내는 자리이기에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전히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넙죽넙죽 받아먹는 형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바위가 입을 열었다.

" 오늘부터 위험한 일은 안나가. 걱정하지 말고, 심심하면 산책이나 원장선생님에게 놀러가. 알았지? "

" 어,어.. "

일부러 서울의 외곽에 위치한 고아원과 가까운 원룸을 잡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때문에 자신의 이동거리가 확 늘어났지만 그건 자신이 조금 희생하면 될 일이었다.

" 아마 내년부터는 학교에 갈 수 있을꺼야. 학비가 어느정도 마련되었거든. 하하하. 운이 좋았어. "

반장이 전해준 봉투는 생각이상의 돈이 담겨있었다. 아마 인부 아저씨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조금더 보탠 것이리라.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리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은혜가 아마도 옆집으로 이사올꺼 같아. 좋지? 그래..! 그 은혜말이야. "

올해 성년이 된 고아원 식구인 박은혜는 어릴때부터 우리 형제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지낸 유일한 아이였다. 그녀도 이번에 성년이 되면서 독립해야 했기에 고아원을 나오게 된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아원과 멀지 않고 우리형제와 가까운 이곳 원룸에 집을 구하게 된 것이었다. 여자 혼자 있으면 위험하기도 하고 서로 도울 수 있으니 좋다고 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바위는 찬성을 했고 이사까지 도와주기로 했다. 그녀가 가까이에 산다는 것만으로 형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도 그 부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끝낸 형제는 이제 각자의 할일을 할 시간이 왔다. 바위는 설거지를 시작했고 그의 형은 어제 한 빨래를 주섬주섬 개기시작했다. 어느새 이마에 새겨진 문신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띵동딩동-!

" 누구야? 이 아침에? "

새벽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부터 그들을 찾아올 사람은 없었기에 갑작스런 초인종은 의문을 들게 만들었다. 급하게 설거지하던 손의 물기를 훔치고 인터폰을 바라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 뭐야? 누가 장난치나? "

바위는 의아한 목소리로 문을 열고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 짠! 작은돌땡이 오빠! "

이렇게 큰돌, 작은돌로 부르는 사람은 은혜, 그녀밖에 없었다. 시원한 단발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귀여운 마스크를 가진 그녀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바위가 대답했다.

" 뭐야? 너, 아침부터 어떻게..? 설마 벌써 이사를 했어? "

" 흥! 다쳤다면서 어떻게 연락을 한번 안해? 내가 남이야? 원장샘도 다쳤다고만 하고 병원도 안가르쳐주고 말이야. 내가 얼마나··· "

슬슬 길어질것 같은 그녀의 투정에 바위가 손을 저으며 입을 열었다.

" 일단 들어와. 형에게 인사도 하고. "

그녀의 등장은 갑작스러웠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형의 기뻐하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형에게 있어 이성이 아니라 동네친구와 같은 개념이었다. 헤벌쭉 웃으며 그녀를 반기는 형의 모습에 흐뭇하게 바라본 바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은혜를 봤다.

" 너 어떻게 된거야? "

" 어떻게 되긴, 이 위층에 자리나서 바로 이사했지. "

" 혼자서? "

" 뭐, 어짜피 개인짐도 거의 없고.. 갑작스레 방이 비워져서 말이지. 그냥 후다닥 해치웠지. 헤헤.. 그건 그렇고 몸은 좀 괜찮아? 심하게 다쳤다며? 입원까지 할 정도면.. "

은혜는 바위가 얼마나 몸이 튼튼한지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입원할 정도면 어디 한군데 이상 부러지지 않고는 말이 안되었기에 안부를 물으면서 바위의 전신을 스캔하고 있었다. 그런데 몹시도 멀쩡한 바위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음을 던졌다.

" 아, 뭐, 괜찮아. 보다시피.. 근데 나 뭐 바뀐거 없냐? "

" 헐, 뭐래? 그건 보통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말이거든. 흠··· 뭐, 키가 더 커졌나? 허벅지가 더 굵어진것 같기도..? 아, 얼굴이 더 늙어진것 같아. 맞지? "

바위의 전신을 훑어보면서 헛소리를 내뱉는 은혜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미간에 있는 이 문신이 안보이나? 누가봐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기에 눈치빠른 은혜가 모를리 없을텐데.. 분명히 장난이나 모른척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 보자마자 이게 뭐냐고 물었을것이다.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은혜가 늦었다는 듯이 인사를 건냈다.

" 나 저번주부터 조그만 회사에 나가고 있어. 아, 좀 늦었다. 나 먼저 갈께. 같은 주민끼리 잘 부탁해. 오빠들. "

후다닥 문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내 고민을 지워버렸다. 급한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자는 마인드였다. 당장 아픈것도, 해로운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에게 안보이는 조그만한 문신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 싫기도 했다.

" 그럼 형. 나도 나갈볼께. "

" 어, 그, 그래. 조,조,심히.. 다,녀와. "

형의 배웅을 받으며 원룸을 나서는 바위는 당장 오늘해야 할 일을 찾아갔다.

바위가 생각하고 있는 일은 편의점 알바였다. 당장 급하게 일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성격상 하루라도 쉬는걸 참지 못하는 바위는 의사나 반장의 말대로 몸쓰는 일보다는 쉽고 가벼운 편의점 알바를 구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싸구려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어제저녁에 알바어플로 검색해 놓고 신청한 편의점의 위치를 확인하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 그래. 고바위군. 군대제대하고 복학준비중이라고? "

170정도 될까하는 키에 통통한 몸매의 중년인이 대기업 프랜차이즈 편의점 안에서 고바위와 독대하고 있었다. 보통 살집이 많은 사람은 인상이 푸근한 경우가 많은데 이 중년인, 사장은 흔하지 않게 약간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 네, 명운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복학 예정입니다. "

그래도 나름 인서울 대학교였기에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층 신뢰가 가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 사회복지학과? 거긴 졸업해서 사회에 나오면 진로가 어떻게 되나?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내 자식도 곧 대학에 들어가야 하니 말이세. 허허허. "

" 일단 제 꿈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겁니다. "

" 사회복지사? 공무원인가? "

사장은 견문이 짧은지 사회복지사를 들어는 봤지만 정확히 뭔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듯이 물어왔다. 그냥 공무원이라고 답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바위는 자신이 꿈꾸는 직업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네, 기본적으로 공무원인 경우가 많지만 사회전반에 걸친 복지분야, 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등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면 그들의 욕구, 상황, 문제등을 파악해서 도움을 주고 서비스해주는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리고.. "

" 오케이, 오케이. 대충 무슨말인지 알겠어. 그 뭐야, 신문에서 말하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이란 말이지. 좋은 일이야. 그래. 그럼 밑고 맡길 수 있겠네. 열심히 해보자고. "

바위의 말이 길어지자 중간에 끊은 편의점 사장은 알바 채용 면접을 서둘러 마치며 잘부탁한다며 실무적인 부분으로 넘어갔다.

" 예전에 편의점 알바를 한 경험이 있구먼? 포스기나 상품 진열등 할 수 있어? "

" 네, 기본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

" 오, 경험자라서 편한구만.. 그럼 당장 오늘부터 가능하지? 전에 하던 알바가 갑작스럽게 그만둔다고 연락이 와서 말이야. 에잉! 요즘 젊은 것들은 근성이 없어. 쯔쯧. 어때? "

" 네. 사장님. "

당신 아들도 요즘 젊은 것이라는 말은 삼키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받아들였다.

" 그래. 저기 비품실 겸 창고에 직원용 앞치마 있으니 그거 걸치고 일하면 되고 나머지는 크게 다를 것없어. 궁금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이 전화로 전화주고. 할 수 있지? "

뭐가 바쁜지 대략적인 업무와 위치등만 알려주고는 편의점을 나서는 사장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 낮시간대로 크게 바쁜일은 없을꺼야. 야간조 오면 인수인계 잘하고, 돈통.. 시재도 빠짐없이 넘기고.. 알지? 그럼 부탁해. "

바위의 알바시간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시간대였다. 당연히 야간에는 다른 알바가 출근하게 되어 있었다. 이 편의점은 2교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려준 사장은 뭐가 그리 급한지 벌써 차를 타고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편의점 앞치마를 입은 바위는 텅빈 편의점을 둘러봤다. 나름 사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입지가 나쁘지 않았고 유동인구도 많았지만 학교, 회사에 출근하고 난 시간대에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제법 넓은 평수를 차지한 편의점은 없는 것이 없었다. 생활 필수품부터 냉동식품까지. 바위는 그런 매장의 위치를 꼼꼼히 파악하고 창고에 있는 재고품까지 파악을 마치고 나서야 직원용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손님은 세명이 다였고 멍하니 창밖의 도로를 쳐다보던 바위는 이내 이마에 새겨진 문신에 생각이 미쳤다.

' 도대체 이게 뭐지? 아, 포털로 검색해볼까? "

곰곰히 생각하던 바위는 이내 편의점에 비치되어 있던 컴퓨터를 열어 검색사이트에 여러가지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쓸데없는 666바코드, 짐승의 숫자, 휴거등 세기말적인 것들만 검색이 되었다. 중간중간에 손님을 받으면서 이곳저곳 검색을 해봤지만 뚜렷이 결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톤냉장트럭이 편의점 앞에 주차를 했다. 어제 주문한 상품들이 오늘 도착한 것이다. 트럭기사가 내려 상품배달서를 바위에게 확인해 달라고 전했다. 이미 예전에도 했던 일이었기에 빠르게 확인을 마친 바위는 택배기사를 도와 상품들을 창고로 옮기기 시작했다.

" 이야. 학생 힘이 대단한데. 그걸 한번에 들고 옮기다니 말이야. 역시 편의점 알바생은 남자가 최고야. 하하하. "

트럭기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자기를 도와주는 남자알바들이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여자 알바들은 자기 할일만 하고 편의점으로 쏙 들어가 딴짓을 하거나 멀뚱멀뚱 쳐다만 보기 일쑤였기에 이렇게 도와주는 알바생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안그래도 손님도 없고 심심하던 차였기에 바위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생각보다 물품이 많지 않네요? "

음료수 박스를 두개 쌓아서 번쩍들어올리며 기사에게 물었다. 바위가 보기에 예전에 다니던 편의점의 두배정도 크기는 될듯한데 오늘 도착한 물품은 예전 편의점의 절반도 채 안되어 보였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 아, 그거., 생각보다 물량이 딸리나봐. 뭐라더라.. 그래. 중국쪽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쪽 OEM 품목들이 뚝 끊어졌나봐. 그래서 순차적으로 배분하듯이 물건들을 배달해주고 있어. 우리들이야 위에서 하라면 하는 사람들이니, 자세한 걸 알 수 있나. 여튼 학생 덕분에 빠르게 하차했어. 고마워. "

그렇게 대답을 한 트럭기사는 바쁘다는 듯이 물건을 내려주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그런 트럭기사를 멍하니 바라보다 창고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정리나 하자. "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점심은 유통기한 지난 식품으로 대체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점점 바빠지기 시작해 저녁시간대에 조금 한가해졌다. 그리고 교대할 알바가 도착을 했다.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한쪽에 귀걸이를 한 껄렁해보이는 바위또래의 남자였다. 노랑머리는 계산대에 우뚝 쏫은 바위를 보고 흠칫하더니 익숙하게 편의점 탕비실로 들어갔다. 바위는 금방 교대할 알바라는 것을 알아채고 인수인계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탕비실로 들어간 노랑머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인수인계 준비를 마친 바위는 그런 그를 보고도 별말을 하지 않고 정석대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노랑머리는 척봐도 건성으로 인계를 받고 있었다. 이런 류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바위는 별다른 제지없이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괜히 투닥되어 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현금 시재까지 인수를 마친 바위도 별다른 대꾸없이 확인하라는 말과 함께 탕비실로 들어가 퇴근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퇴근 준비를 한 바위는 편의점을 나서기 전에 계산대에 기대어 앉아 이어폰을 끼고 앉아 노래를 듣고 있는 노랑머리를 한차례 힐끔 보고는 신경끄고 밖으로 나섰다.

대략적으로 어떤 마음가짐인지 알 수 있었다. 뭐, 각자 자기 인생을 사는게 나쁜건 아니니 그냥 무시했다.

편의점의 시원한 에어컨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자 늦여름의 저녁날씨라 그런지 후덥지근한 기운이 아직도 거리에 남아 있었다. 퇴근이나 학교를 마친 학생들의 옷차림도 그것을 반영하듯이 대부분 짧게 입고 있었고 바위 역시 반바지에 흰색 반팔티만 입고 있었다.

그 옷사이로 보이는 순수한 근육들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타고난 신체스펙으로 만들어진 몸이었다. 물론 남들보다 항상 먼저 일어나 부지런하게 온갖 노동으로 단련되었지만 말이다. 한때 중고등학교때는 육상등 체육특기생으로 활동도 했지만 그건 예전의 일이었다.

길거리에서 모델제의도 받아봤고 농구 할 생각없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거나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지금 가는 곳은 알바겸 피팅모델로 가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부탁해오던 것을 이제야 시간이 나서 들어주는 것이다. 같은 보육원 출신으로 가장 잘나가고 있는 누나가 운영하는 인터넷쇼핑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옷의 피팅을 부탁받은 것이다.

편의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약간의 시간동안 걸어 도착을 했다. 출발전에 미리 연락을 해두었기 때문인지 골목을 돌아들어가자 밝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누나가 반겨주었다.

" 빨리 왔네? 알바 끝났어? 덥지? 들어가자. "

바위를 알아보고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바위의 위아래를 스캔하듯이 훑어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끌고 들어간 곳은 낡은 오층짜리 건물의 지하였다.

건물지하에는 마치 옛날 옷가게의 공방처럼 작업을 위한 미싱기와 처음보는 기계들, 온갖 천쪼가리들과 마네킹들이 세워져 있었고 한쪽 구석에 하얀 커텐이 쳐져 있었다. 아마 저기가 사진을 찍는 곳이리라.

누나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커텐이 쳐진 뒷공간이었다. 그곳에 디지털 사진기를 들고 있는 또래의 여자와 남자, 두명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이내 바위와 누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어머, 언니. 이분이 그 피팅모델이야? 우와 키 크네. 몸매도 좋고. 이정도면 에이급인데? 어떻게 아는 사이야? 소개 좀 해줘봐요. "

" 아휴. 계집얘는..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작업하자. 얘 이래뵈도 바쁜 몸이야. "

바위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며 뒤돌아 빨리 작업하자며 서두는 누나를 보며 피식 웃음지은 바위는 이내 해야 할일을 듣기 시작했다. 이미 그를 위해 준비된 옷들은 옷걸이에 차례대로 걸려 있었고 빠르게 갈아입고 나와서 커튼 앞에 서면 사진을 수십장 찍고 다시 갈아입고 하는 반복되는 일이었다.

의외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쉴새 없이 움직여야 해서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누나가 계속 분위기를 띄우고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바람에 덩달아 열정적으로 모델을 서야 했다. 그렇게 전쟁같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겨우 숨을 돌린 바위는 투덜대며 말했다.

" 뭐야? 그냥 옷 몇번 입고 사진만 찍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라며? 이거 노가다보다 더 힘든거 같은데? "

" 야, 덩치는 산 만해서 이정도 가지고 엄살이야. 엄살은! 모델비 넉넉히 줄테니 좀만 더 힘내자. 응? "

" 큼, 뭐.. 그렇다면 열심히 해야지. 사장님 잘부탁합니다. "

" 어이구, 여튼.. 근데 너 요즘 운동하냐? 몸이 예전보다 더 좋아진거 같네? "

바위의 몸 여기저기를 찔러보며 감탄하듯이 말하는 누나를 보며 별거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뭐, 군대에서 공짜로 밥 먹여줘, 운동시켜줘. 그리고 최근까지 노가다도 좀 했고, 뭐 그런거 때문이지. "

" 야, 그럼 다른 남자들이 뭐가 되냐? 걔들도 군대갔다오고 공사현장도 돌면서 알바한 얘들이 한두명인줄 알아? 내가 본 얘들만 한트럭은 되겠다. 근데 걔들은 너처럼 이런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아. 물론 몸 좋은 얘들도 있긴 한데.. 넌 뭐랄까. 보디빌더 같다고 해야 하나. 그 왜 티비에서 사료같은거 처먹고 몸만 키운 사람들 말야. "

"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 근육은 보기만 좋지. 지구력이 없어서 노가다를 못뛰어. 이게 마지막 옷이지? 이제 끝난거지? "

" 그래, 그래.. 이것만 입고 끝내자. 그리고 다음에 또.. "

" 뭐 이런 알바면 어려운게 아니니까. 페이만 좋다면 언제든지 말만 해. 근데 확실히 얼굴은 안나가는거 맞지? "

바위는 이것이 제일 중요했다. 나름 유명한 쇼핑사이트를 운영하는 이곳에서 얼굴까지 팔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 걱정도 팔자다. 어짜피 넌 얼굴은 아니야. 요즘은 꽃미남들이 대세야. 너처럼 마초같은 얼굴은 쓰고 싶어도 못써. 걱정하지마. "

내 얼굴이 어때서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여기서 말꼬리를 잡으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기에 여기서 끊고 마지막 작업을 준비했다.

그렇게 두둑한 모델비까지 받은 바위는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느새 그의 머리속에는 이마에 위치한 바코드따위는 이미 지워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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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포칼립소(1) 18.06.18 1,940 26 19쪽
5 두개의 죽음(4) 18.06.18 2,122 33 20쪽
4 두개의 죽음(3) +3 18.06.18 2,365 32 22쪽
» 두개의 죽음(2) 18.06.18 2,581 37 21쪽
2 두개의 죽음(1) +3 18.06.18 3,131 32 18쪽
1 Prologue +2 18.06.18 4,261 4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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