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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쓴것] 후스트 '천개의 로우킥'.... 파이널 우승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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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K-1 월드그랑프리는 동양인과는 인연이 없었다.
ⓒ 윈드윙


일본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K-1 월드그랑프리는 동양인과는 인연이 없었다. 초창기 K-1이 가장 믿었던 구석은 사다케 마사아키였다. K-1 출범 전 각종 가라데 무대 등에서 서양 선수들을 거침없이 넉아웃시켰던 그가 있어 주최측은 어느 정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나니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마사아키에게서 최영의, 문장규, 아시하라 히데유키의 향수를 보고 싶어했던 기대감은 일거에 사라졌다.

'동타' 무사시 정도만 주최 측의 푸시에 힘입어 결승에 2번 진출했을 뿐 아마추어 복싱 일본챔피언 출신 아마다 히로미, 수려한 외모에 훤칠한 체격을 자랑했던 호리 히라쿠, '붕붕마루' 후지모토 유스케, '일본판 초신성' 사와야시키 준이치, 트라이아웃의 스타 교타로, 거인 파이터 최홍만 등 누구도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헤비급에서 경쟁력 있는 동양권 선수를 배출하기란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경량급' K-1 맥스에서는 쁘아카오 포 프라묵, 마사토, 사토 요시히로 등 월드 클래스 파이터들을 배출했지만, 헤비급은 다르다. 선수층은 물론 여러 신체조건에서 서양 선수들에 비해 열세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제한급인 K-1은 백인들의 잔치였다. 초대 우승자 브랑코 시가틱을 필두로 피터 아츠, 앤디훅, 마크 헌트, 세미 슐트 역대 우승자들은 물론 제롬 르 밴너, 레이 세포, 마이크 베르나르도 등 정상권에서 롱런했던 선수들까지 양과 질적으로 K-1을 이끈 것은 백인파이터들이었다.

하지만 K-1은 백인들이 독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적으로는 적지만, 기량 적으로 너무 우수한 흑인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수리남출신 네덜란드 파이터들인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4회)와 '플라잉 잰틀맨' 레미 본야스키(3회)는 무려 7번의 우승을 나눠가졌으며 여기에 알리스타 오브레임까지 더하면 흑인들이 8번의 패권을 차지했다. 사실상 양분했다고 보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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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네스트 후스트와 레미 본야스키는 자신들만의 안정적인 파이팅스타일로 파이널을 접수한 흑풍의 주역들이다.
ⓒ 윈드윙


안정감 넘치던 흑왕들

후스트와 본야스키는 제롬 르 밴너나 레이 세포처럼 단발성 펀치로 화끈한 승부를 즐기는 하드펀처 타입도, 그렇다고 전성기 피터 아츠처럼 시종일관 전진과 공격만 되풀이하는 선수도 아니었다.

이들은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과 강인한 체력, 철벽 디펜스 능력 등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다른 파이터들 보다 경쟁력을 가지며 K-1의 그랑프리 시스템에 가장 적합한 타입으로 발전한 케이스다. 원체 기본기가 탄탄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처지는 선수에게는 좀처럼 이변을 허용하지 않았다.

안정감 넘치는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는 괘를 같이하지만, 파이팅 스타일만 놓고 봤을 때는 둘은 상당히 달랐다. 후스트는 아웃파이팅과 인파이팅의 '경계선'을 묘하게 넘나드는 타입의 파이터였다. 적극적으로 압박을 즐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파이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스피드하게 치고 빠지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후스트의 경기 중 대부분은 성큼성큼 상대를 압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후스트는 이른바 '타이밍 뺏기'의 귀재였다. 상대가 공격하려는 타이밍에서 먼저 자신이 반 박자 빠르게 짧은 공격을 내서 리듬을 끊어버리기 일쑤였으며 약점을 파악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후스트는 입식타격에서 가장 기본적인 발차기 중 하나인 로우킥을 누구보다도 잘 구사했다. 가장 단순한 공격 패턴을 가장 복잡하고 깊은 경지까지 끌어올린 그야말로 '로우킥 마스터'였다. 어떤 면에서는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후스트의 로우킥만 특별하게 취급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느 파이터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자세와 정상급이긴 해도 독보적인 파워도 아니다. 언뜻 보면 로우킥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다른 선수들과 뭐가 다르냐는 반문이 올 수도 있다.

사실 후스트 로우킥의 특별함은 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테크닉이 뛰어난 아웃복서의 잽처럼 경기 내내 로우킥을 구사할 수 있고, 강·중·약을 정확하게 구분해 어떤 자세, 어떤 상황에서도 막힘없이 기술을 펼친다. 스피드가 좋은 선수에게는 스텝의 진행 방향을 미리 막는 용도로, 힘과 주먹이 강한 상대에게는 펀치를 뻗는 순간 카운터로 사용했다.

외형적으로 후스트 다리는 타 선수들과 비교해 굵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단단하게 잘 단련된 하체에서 곡선의 궤도를 최대한 활용해 터져 나오는 로우킥의 순간 파괴력은 '채찍'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채찍'이라는 무기가 그렇듯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큰 고통을 상대에게 가한 것이다.

후스트 로우킥은 노련함과 더불어 나날이 진화했다. 특히, 정확한 펀치 공격과 함께 컴비네이션으로 적중할 때면 상대는 어디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쓸 때마다 다른 '천개의 로우킥'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로우킥이 무서운 게 아니라 후스트가 구사했던 로우킥이 무섭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결국 대부분의 선수들은 후스트에게 경기의 페이스를 빼앗겨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방으로 승부가 날 수 있는 고수들 간의 경기에서는 이른바 '수싸움'의 중요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후스트는 격투기에서 힘 못지않게 머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테크니션답게 후스트는 로우킥 외 다른 모든 기술에도 능했다. 로우킥 타이밍에서 묵직한 미들킥으로 큰 충격을 가하는가 하면, 빈틈이 보이는 순간에는 지체 없이 폭풍 같은 펀치 연타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후스트의 펀치는 한 방의 위력에서는 최상급은 아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서 매우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의 안면 급소로 날아들었다. 제대로 한 대 맞으면 이후 연타가 이어지기 일쑤였다. 이런 다양한 기술을 바탕으로 후스트는 수없이 창조적인 컴비네이션을 구사하며 상대의 방어체계 자체를 박살냈다.

후스트가 타이밍 뺏기의 달인이었다면 본야스키는 자신만의 타이밍을 고집하던 스타일이다. 본야스키는 초반부터 거칠게 상대를 공략해서 승부를 보는 타입이 아니다. 두터운 글러브로 안면 가드를 확실히 한 상태에서부터 시작한다. 워낙 바디와 하체의 맷집이 좋아 안면만 착실히 닫아놓으면 상대는 좀처럼 그에게 충격을 주기가 쉽지 않다.

웬만한 공격은 가볍게 흘리듯 맞아주면서 천천히 상대의 경기 리듬을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서서히 타이밍이 맞아간다고 느낄 무렵 공격의 횟수를 높여가면서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히고, 중반부를 넘어서 상대의 압박이나 체력이 떨어질 무렵 피치를 올린다.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본야스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맹공을 퍼붓는다. 한번 달아오른 펀치와 킥의 컴비네이션은 크로스 상황에서 압도적인 유효타를 꽂으며 상대를 그로기로 빠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터지는 '플라잉니킥(Flying Knee kick)'은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비기다. 이렇듯 본야스키는 수비와 공격을 확실히 구분하며 자신의 페이스대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스타일을 구사하며 강자들을 꺾어왔다.

파이팅 스타일은 완전히 달랐으나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자신들만의 패턴으로 쟁쟁한 강자들을 안정적으로 격파해온 후스트와 본야스키, 상대적으로 숫자는 적었지만 K-1내 '흑풍(黑風)'이 강하게 몰아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이들의 힘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문피아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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