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굴

검룡번세(劍龍飜世)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2.06 22:14
최근연재일 :
2015.01.19 22:52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9,512
추천수 :
354
글자수 :
95,124

작성
13.03.05 00:58
조회
2,273
추천
16
글자
11쪽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2)

DUMMY

다음날 하품을 하며 잠에서 깨어난 도향은 방문을 열자마자 열심히 비질을 하는 소헌을 볼 수 있었다. 잔뜩 쌓인 눈을 치우는 소헌은 한 번의 비질로 정확히 빗자루가 닿은 부분의 눈을 깨끗이 치워내는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빗자루가 오간 자리는 눈이 내린 흔적조차 없어서 도향을 내심 감탄해서 소헌을 불렀다.


“일어났느냐? 물이 아직 따듯하니 그냥 씻어도 될 게다.”


“고마워요. 그런데 그거 한번 해봐도 되죠?”


도향은 빗자루를 가리키며 물었다. 단순히 무공이 높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무공이 아니면 이런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도향은 이렇게라도 소헌의 알 수 없는 무공을 측정해보기로 했다.


“흐음..... 이얍!!”


도향은 온 힘을 다해 빗자루를 휘둘러 아예 땅을 파내듯 눈을 치웠다. 당연히 마당 한가운데가 움푹 파였다. 소헌이 고개를 저으며 도향의 빗자루를 빼앗아들고 시범을 보인다. 눈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가 싶더니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평평한 마당이 드러난다.

도향은 약이 올라서 몇 번이고 비질을 했지만 마당만 움푹 파이거나 조금 살살 쓸면 눈 내린 흔적만 여실히 남은 흙바닥만 보일 뿐이었다. 소헌이 움푹 파인 마당을 메우며 말했다.


“아, 그런데 물이 얼어서 새로 떠오지 못했는데 괜찮겠느냐?”


“무슨 물이요? 아, 괜찮아요. 어차피 물도 많이 남아서 하루 정도는 걸러도 될걸요.”


예전에 시킨 얼토당토않은 짓을 아직도 하고 있던 걸까? 도향은 마음 내키는 대로 달빛을 받은 물이니 뭐니 떠들었지만 그때 소헌에게 시킨 일 줄 타당한 이유를 가진 것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낡은 지붕을 고치고 장작을 패는 일이 합리적이었을 뿐.


“사형, 사형은 무공이 얼마나 돼요?”


아침밥을 한가득 입에 물고 도향이 물었다. 밥알이 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우물거리며 물어본 것이었지만 소헌은 용케도 그것을 알아듣고 대답한다.


“아직 신공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다.”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는 됐어요. 음, 그럼 이렇게 해요. 사형은 늘 밖에서 수련하고 있죠?”


“그렇단다.


“그럼 오늘은 저도 같이 해요. 운기만 하고 있으려니 통 지루하네요.”


도향은 어느 정도 높은 경지에 올라 있어 사실상 명상만으로도 수련이 가능했다. 하지만 소헌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밖에서 수련하기로 한 것이다. 어떤 무공을 쓰는지만 알아낸다면 소헌의 정체를 추측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마교도로서 수많은 무공에 대해 공부한 것이 빛을 발할 기회였다.

마교의 가르침을 받았는지도 의심스러운 소헌이 어떻게 나올까 걱정이었지만 다행히도 소헌은 흔쾌히 도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침상을 치우고 나서 도향은 천천히 몸을 풀면서 소헌을 기다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난 소헌은 유난을 떨며 몸을 푸는 도향에게 말했다.


“뭘 하는 게냐?”


“몸을 푸는 거죠. 오랜만에 수련하는 거라 조금 몸이 결리네요. 어휴.”


반면 언제나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 소헌은 따로 몸을 풀지 않을 작정인지 곧장 수련을 시작했다. 도향은 몸을 푸는 척 하면서 곁눈질로 소헌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소헌이 펼치는 것은 도향에게도 익숙한 마교의 비전무공인 천마신공이었다. 권각술에서부터 검술, 내공심법에 이르는 방대한 마교 무공의 정수가 담긴 무공이다. 소헌이 저걸 펼치는 걸 보니 마교의 문하가 맞기는 한 모양이다.

가장 먼저 권각술인 천마무를 펼치는 소헌의 움직임은 확실히 예사 몸놀림이 아니었다. 유려하게 펼쳐지기 시작한 권각의 움직임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도향이 그렇게 소헌의 수련에 빠져들려는 찰나 두 번째 초식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째 소헌의 움직임이 돌연 괴상망측하다. 마치 춤사위처럼 덩실덩실 몸을 흔드는 소헌을 보면서 도향이 빽 소리를 지른다.


“지금 뭐해요!”


“음, 보다시피 천마무를 연마하고 있단다.”


“그게 무슨 수련이라고 하는 거예요! 잘 봐요.”


도향은 그녀가 알고 있는 천마무를 펼쳐냈다. 꽤 어릴 때부터 수련한 탓에 첫 초식을 펼치자 연달아 나머지 초식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소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복한다.


“역시 교주님답구나. 정말 훌륭한 천마무다.”


“후우, 다 봤죠? 저는 천마신공을 전부 꿰고 있으니 쓸데없이 숨기지 말고 이제 제대로 해 봐요.”


“뭘 말이냐?”


소헌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반문한다. 도향은 한숨을 내쉬며 쏘아붙였다.


“외인도 아닌데 왜 수련을 감추냐는 말이죠.”


“난 아무것도 감춘 적이 없다. 하늘같은 교주님 면전에서 내 무얼 숨기겠느냐?”


그러면서 소헌은 다시 몸을 흐느적거리며 천마무라 자칭하는 춤사위를 펼쳐낸다. 대체 어딜 봐서 마교의 무공이라는 건지. 그보다 무공이라고 하기도 낯부끄러운 움직임에 도향은 참지 못하고 소헌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으아아!! 그만 좀 해요!! 잘 봐요. 거기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거잖아요!”


도향이 패도적인 기세로 권장을 뻗어낸다. 척 봐도 마교의 무공이라는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적반하장이라고 소헌은 도리어 그녀의 수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매는 조금 이상하게 수련하는 것 같군.”


도향은 아예 기가 차서 웃음까지 나왔다. 어쩐지 순순히 일이 풀린다 했다. 소헌은 끝까지 그의 무공을 숨길 작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수련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고개를 저으며 마루에 걸터앉는다.


“어디 그럼 그 잘난 수련 계속해 봐요!”


도향은 언제까지 소헌이 웃기는 수련을 계속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도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수치심을 알고 언젠가는 제대로 된 초식을 펼치든지 아니면 수련을 그만둘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헌은 오전 내내 광대놀음 같은 권각술을 한겨울에 땀까지 흘릴 정도로 열심히 수련했다. 해가 머리 위에 뜰 때가 되자 소헌이 숨을 고르며 빙그레 웃는다.


“후우,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슬슬 객잔 일을 도울 시간이구나.”


한편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도향은 잠시 접어두었던 소헌에 대한 의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천마신공을 수련한다기에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 소헌은 그녀의 사형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정파의 인물 같지도 않은 게, 행동거지가 비상식적이고 무엇보다 천마신공을 펼치지 않는가. 정파인들은 마교에 희생된 영웅들을 기리는 의미에서라도 허투루라도 절대 천마신공을 익히지 않는다. 오히려 마교의 영향을 세상에서 지우기 위해 안달하는 것이 바로 정파이다.


“.....언니나 보러 가야지.”


결국 도향은 오늘도 소헌의 정체를 파헤치는 짓을 포기했다.



혈랑대의 대계를 위해 윤혜연을 납치하려다 소헌에게 된통 당한 우철백은 지금 기루에 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기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술과 음식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혈랑대의 서열 삼십 위에 있는 옥면혈랑 율원을 만나기 위해 벌써 이틀째 기루에서 시간을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율원과 그는 천적 같은 관계라 철백은 직접 그를 만나는 일을 피해 왔지만 아우들이 모두 반병신이 된 지금은 그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사내새끼가 얼굴만 번지르르해서는.”


우철백이 산전수전을 다 겪고서 말단대원에서 일개의 혈랑대를 도맡는 우두머리가 된 정통파 혈랑대였다면, 율원은 본래 색마로 이름을 날리다 도망치듯 혈랑대에 들어온 이른바 굴러온 돌이었다.

그러나 채음보양 덕분에 무공이 꽤 높은데다 그를 따르는 대원들이 죄다 계집들이라 사내 천지인 혈랑대에서 그를 내쫓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그저 그런 잡놈이었다면 우철백은 진즉에 율원의 계집 같은 면상을 찢어발겼을 것이다.


“흐음, 이름 높은 패도혈랑께서 이런 곳에 어인 일이신가? 음심이라도 동한 모양이지?”


옥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반반한 얼굴을 한 사내가 붉은 장삼을 입고 부채질을 하면서 철백이 머물고 있는 별실에 들어온다. 철백을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애써 웃는 낯으로 율원을 대했다.


“그럴 리 있겠나? 서로 구멍동서하는 사이도 아닌데 계집필요하다고 여길 찾을 리 없지.”


가시 돋친 말에도 율원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철백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니꼬워서 대놓고 욕설을 퍼부으려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말을 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네놈의 수하가 필요하다. 혈랑대의 대의를 위한 일이니 협조하길 바란다.”


“하하, 농이 과하군. 내 아름다운 꽃을 왜 그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말인가?”


“크으..... 부탁하지. 다시 생각해보게.”


개자식! 철백은 그 말을 다시 한 번 삼켜버리고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철백이 남들 몰래 도움을 청할 곳은 안타깝게도 옥면혈랑 율원의 혈화대 뿐이었다. 율원은 혈랑대의 서열에 관심이 없는 자라 철백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든 무관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만, 그리고 보니 그대가 맡은 임무가 매중화(梅中花) 윤혜연 소저를 모시는 게 아니었나?”


율원이 살살 부치고 있던 철선을 착 접으며 물었다. 철백은 그의 득의만면한 웃음을 보면서 다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화산파 장문인의 금지옥엽이자 화산파 제일의 미녀로 소문난 그녀를 노리는 것이리라.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몽상이다. 혈랑대의 계획을 대놓고 무시하는 짓거리라 파천혈랑이 이를 알아챈다면 옥면혈랑은 그날로 관을 맞춰야 할 것이다. 물론 완전히 산산조각 나서 시체 없이 빈 관으로 제사를 지내야겠지만.

하지만 철백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리어 그런 전개가 반가웠다. 이 빌어먹을 기생오라비의 사지가 늑대 먹이로 던져지는 것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지. 임무에 실패하기 직전이라 조금 급하기도 하고....”


“하하, 걱정 말게. 내 풍류공자를 자칭하는 자로서 어찌 매중화를 모시는 일에 빠질 수 있겠는가?”


점잖은 척 하는 말 아래에 깔린 음탕한 생각을 읽은 철백은 율원이 정말로 정신 나간 녀석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마 중간에 매중화를 빼돌려 자칭 풍류를 즐길 생각이리라. 그러나 철백은 매중화를 어찌하든 별 관심이 없었다. 일단 급한 불인 임무를 마무리하고 덤으로 파천혈랑이 율원을 찢어버리기만 하면 더할 나위가 있을까?


“그럼 잘 부탁하네 풍류공자.”


두 사람의 동상이몽이 계속되는 가운데 마침내 혈랑대 역사상 최초로 패도혈랑과 옥면혈랑이 손을 잡았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바쁘디바쁜 2월도 끝이고 이제 3월이네요.

부디 부지런히 글을 쓸 수 있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룡번세(劍龍飜世)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 작품은 내키면 업데이트 됩니다. +2 14.02.28 848 0 -
19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10) +2 15.01.19 398 9 16쪽
18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9) +7 14.02.28 1,189 13 10쪽
17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8) +4 13.07.01 2,660 19 9쪽
16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7) +3 13.06.20 1,911 16 9쪽
15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6) +2 13.05.27 2,689 14 8쪽
14 이 작품은 내키면 업데이트 됩니다. +1 13.05.27 1,613 2 1쪽
13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5) +2 13.05.03 3,067 16 10쪽
12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4) +4 13.04.03 2,708 21 8쪽
11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3) +2 13.03.08 2,844 15 9쪽
»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2) +2 13.03.05 2,274 16 11쪽
9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1) +1 13.02.23 2,787 20 13쪽
8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8) 13.02.21 2,940 19 15쪽
7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7) 13.02.21 2,242 19 12쪽
6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6) 13.02.21 2,472 26 27쪽
5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5) +2 13.02.18 2,685 17 8쪽
4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4) +1 13.02.15 3,273 17 9쪽
3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3) +1 13.02.11 3,255 27 13쪽
2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2) +2 13.02.06 3,043 27 13쪽
1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1) +2 13.02.06 5,083 4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