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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

검룡번세(劍龍飜世)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2.06 22:14
최근연재일 :
2015.01.19 22:52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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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01
추천수 :
354
글자수 :
95,124

작성
13.05.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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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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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0쪽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5)

DUMMY

“정말 심각하게 늦는군. 덕분에 잉어찜보다 더 비싼 요리를 주고 말았으니 손해가 막심하겠소, 노인장.”


“네놈이 곱게 자란 소저를 부려먹은 탓이 아니더냐.”


희문이 툴툴대며 소헌를 도끼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손님이 빠진 뒤라 여유가 생긴 도향이 한숨을 쉬며 무슨 일인가 하면서 다가온다. 그리고 석일 역시 여유가 생겨 어깨를 돌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네요. 언니가 왜 이렇게 늦을까요?”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소. 혈랑대가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석일이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말한다. 이에 도향은 질겁하면서 소헌을 바라보았다. 별로 믿음은 가지 않겠지만 소헌이라도 혈랑대가 다시 찾아올 거라는 걸 부정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러나 소헌은 오늘도 도향의 기대를 저버리고야 말았다.


“음, 그런 것 같군. 잠시 나가보지 않겠소? 소저가 위험에 빠진 것 같소.”


“재수없는 소리 말아요! 그냥 길을 잃었거나 구경을 하다 깜빡한 걸지도 모르잖아요.”


도향은 소헌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소리를 빽 질렀고 소헌은 역시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만약 혈랑대가 온 거라면 지금쯤 잡혀간 지 꽤 되었을 것 같소. 윤 소저의 무공은 어떻소?”


“기억을 잃은 뒤론 사실상 평범한 소저에 불과합니다. 크으. 내 불찰이오. 내가 대신 잉어를 사러 갔다면....”


석일은 얼마나 착한 청년인지 혜연에게 심부름을 시킨 소헌을 탓하는 대신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던 희문과 도향은 괜히 열불이 치밀어 올라서 동시에 소헌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장 윤 소저를 찾으러 가거라 이놈아!”


“언니한테 무슨 일 있으면 죽을 줄 알아욧!”


“그러지.”


소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앞치마를 풀지도 않고 객잔 밖으로 나섰다. 혈랑대가 다시 왔을지도 모르건만 정말로 생선이라도 사러 가려는 듯 무성의한 태도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뒤를 부탁드립니다.”


“아, 그럼 저도요. 할아버지. 가게 좀 봐주세요.”


대수롭지 않게 혜연을 찾으러 나간 소헌이 못미더웠는지, 석일도 소헌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어서 도향 역시 같은 심정으로 소헌의 뒤를 따라 가 버린다. 그렇게 갑자기 휑해진 객잔에서 석일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원래 내 객잔인데 뭘 봐달라는 게냐? 원 참....”



시장은 본래 소란스러운 곳이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시장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고아한 퉁소소리가 유일하게 소리를 낼 뿐 조용하기만 했다. 퉁소소리의 주인인 율원은 연주를 마치고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정신을 빼앗겼을 혜연을 바라보았다.


“어떻소, 내 솜씨가.”


“제법이네요.”


놀랍게도 혜연은 율원의 음공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여인이라면 누구나 이 연주에 혼을 빼앗겨서 음탕한 모습을 보여야 했거늘 어째서인지 혜연은 방긋방긋 웃고 있을 뿐 음탕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율원이 은근슬쩍 손바닥에 맺힌 땀을 닦으며 초조함을 감추고, 부채를 꺼내들어 슬슬 얼굴에 바람을 쏘였다.


“그럼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슬슬 걱정할 것 같아서요.”


“훗, 한 번 더 기회를 주시오 소저. 내 소저를 위해 즉흥시를 지어 보이겠소.”


“어멋! 공자님이 시를 짓는대.”


“어쩜 좋아.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율원을 따라 온 계집들이 오두방정을 떠는 반면, 정작 목표인 혜연은 태연하기만 했다. 율원이 신화 속에 나오는 영웅처럼 멋들어진 목소리로 시를 읊는 것을 보며, 철백은 벌써 수천 번이나 속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그냥 냅다 납치하면 될 것을 왜 저리 공을 들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계집이란 본래 한번 눌러 줘야 말을 듣지 않던가.

철백이 한숨을 쉬며 율원을 외면하며 시장 저쪽을 바라보니 슬슬 모여들던 사람들이 후다닥 철백의 시선을 피해 도망친다. 이쯤 되면 구경거리나 다름없었다.

기어이 철백은 신음소리까지 내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화를 꾹꾹 눌러 담고 율원의 행태를 지켜보았다. 율원의 시구가 마무리되고 혜연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녀 역시 약간 심경이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것도 시라고 짓는 건가요?”


“꺄악! 공자님의 시를 모욕하다니.”


율원의 뒤편에 있던 반라의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기절한 체 다른 여인에게 안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율원은 안달이 나서 혜연의 요모조모를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무공이 출중한 건 아닌데 어째서 섭혼술이고 뭐고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혈랑대주와 접전을 벌이던 때와 비견되는 긴장감과 초조함에 율원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또한 철백과 율원의 애첩들 역시 각기 다른 의미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런 탓에 낡아빠진 앞치마를 두른 소헌이 나타나서 율원의 바로 뒤에 설 때까지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 혜연이 해맑게 웃으며 소헌에게 아는 체를 한다.

“건 대협. 죄송해요. 이분이 대신 돈을 내 주시고 계속 절 붙잡아 둬서요.”


“인기가 많아 좋으시겠소. 이만 갑시다.”


소헌은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혜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광경을 본 율원이 눈을 부라리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잠깐!”


광풍 같은 기세가 불어와 율원의 애첩들이 비명을 지르고, 율원이 자아낸 기파에 놀란 철백이 정신을 차리고 율원과 소헌의 대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경악하며 입을 쩍 벌렸다.


“그대는 누구인데 소저의 가냘픈 손을 우악스레 잡는 건가?”


율원이 부채로 얼굴의 절반을 가려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며 물었다. 예의를 갖춘 물음이었지만 은연중에 내공을 싣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 이런 음성을 받았다가는 거품을 물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소헌은 몹시 불쾌한 얼굴로 쏘아붙일 뿐이었다.


“당신 때문에 잉어찜을 하지 못했소. 난 잉어찜을 연습해야 했단 말이오.”


이건 또 무슨 개소라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 어째서 오늘은 율원 자신의 무공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만 줄줄이 만난다는 말인가. 그것도 이런 시골에서.


“미안하지만 이 아름다운 소저는 나와 볼일이 있으니 저리 가 있거라. 으음?”


율원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소헌을 따라 와서는 한껏 잔소리를 늘어놓는 도향과, 혜연에게 머리를 숙이는 석일을 본 것이다. 율원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구나. 꽃이 두 송이나 되다니.”


도향은 끈적한 시선을 보내는 율원을 향해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석일의 뒤로 숨었다. 괜히 화가 치밀어서 한 대 칠 것 같은 자신을 억제하기 위해 숨은 것이지, 결코 부끄럽거나 창피해서 숨은 건 아니었다.

이를 당연히 평범한 소녀의 반응으로 안 율원은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는 한편 소헌에게 암수를 날렸다. 독을 바른 비침을 날렸으니 이제 곧 영문도 모르고 절명하리라.


“이 무슨 짓이오. 다짜고짜 이상한 걸 날리다니.”


어째 소헌의 음성에 노기가 서려 있다. 낭패한 목소리라기보다는 어째 가소롭다는 목소리였다. 소헌은 머리카락 굵기의 비침을 들어 보이며 율원에게 들이밀었다.

율원이 흠칫 놀라서 소헌의 손가락을 잘 보았지만 어째 손가락에도 독이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분명 독을 바른 비침과 직접 닿았는데 말이다.


“하하,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뭔가 착각하는 게 아닌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율원은 다시 비침을 날렸다. 이번에는 다섯 개나. 그런게 그때, 소헌이 한숨을 내쉬더니 냅다 율원의 뺨을 후려쳤다. 턱이 단번에 부을 정도로 제대로 얻어맞은 율원은 억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고 뒤늦게 율원의 애첩들이 소리를 지른다.


“꺄악!”


“이 파렴치한!!”


“후후, 나는 괜찮다.”


율원은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턱뼈까지 아려오는 것이, 단순히 뺨을 친 게 아니라 내공까지 실린 일격을 맞은 것이 분명했다.

율원은 무슨 말을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분위기를 휘어잡을지 생각하다가 마침내 쓸만한 말을 떠올리고는 천천이 붉은 입술을 떼었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소헌은 정확히 율원이 하려던 말을 가로채서 적반하장으로 나섰다.


“감히 무슨 짓을 한 줄 아느냐?”


“무, 무엇이?”


소헌이 주위를 둘러보아 율원이 뺨을 맞자마자 마을 사람이 모두 도망친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위대한 마교의 일원을 건드린 죄를 네가 알렷다?”


“마교? 철백. 이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 보거라.”


뒤에서 그 작태를 지켜보던 철백은 자기를 아랫사람 취급하는 것에 투덜대면서도 소헌의 눈치를 살피며 율원에게 그가 아는 대략적인 정황을 설명했다. 마교라는 말에 긴장했던 율원이 피식 웃으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훗, 간이 큰 사내로군. 철백. 네가 처리하는 게 좋겠구나. 나는 저런 잡배와 어울리고 싶지 않다.”


“열시 우리 공자님이셔. 기품이 있다니까.”


얄미운 소리를 해대는 율원의 애첩을 힐끗 쳐다보고는 철백은 무거운 걸음을 내딛어 소헌에게 다가갔다. 이에 뒤에서 잠자코 있던 석일이 나서려고 하니 도향은 재빨리 그를 말리면서 눈을 빛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소헌의 무위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확한 무공의 연원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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