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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

검룡번세(劍龍飜世)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2.06 22:14
최근연재일 :
2015.01.19 22:52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9,502
추천수 :
354
글자수 :
95,124

작성
13.06.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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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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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9쪽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7)

DUMMY

도향은 소헌을 연신 힐끗거리면서 길을 걸었다. 그녀의 옆에서 열심히 해맑게 웃으면서 재잘거리는 혜연의 말은 이미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까지의 그녀로서는 화산파의 꽃을 무시한다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멀리 있는 화산파보다는 소헌이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이상한 색마를 내쫓은 소헌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은 수준을 넘었다. 말하자면 사람이 무공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구사한 것이 무공이 된 수준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도향은 교주의 직전제자로서 꽤 많은 수혜를 받았다. 심지어 그녀의 무공이 사부인 연청석을 넘어섰을 때, 사부는 그녀의 힘을 위협이라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칭찬했다. 마치 정파의 고수가 청출어람을 느끼고 흐뭇해하는 것처럼.

그래서 도향은 무공에 자신이 있었고 적어도 또래에서는 일대일로 적수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게 정파의 떨거지이든, 야비한 사파이든 말이다. 그러나 소헌의 무공은 격이 달랐다. 오히려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랐기에 그녀는 소헌의 무공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왜 그러느냐?”


양념이 배어들어 얼룩덜룩한 앞치마가 인상적인 소헌이 태연하게 묻는다. 도향은 흠칫 놀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꾸도 하지 않고 혜연과 함께 객잔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탓에 오히려 옆에 있던 혜연이 관심을 기울였다.


“동생, 무슨 일 있나요?”


도향은 무심코 속사정을 털어놓을 뻔 했다. 그러나 곧 혜연의 신분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같은 마교라도 하기 힘들 말을 명실상부한 정파인과 나눌 수는 없었기에.


“체했나 봐요. 속이 좀 안 좋네요.”


“저런, 동생처럼 강한 사람이 체할 정도면 꽤 심한가봐요. 어서 의원에 가 봐요.”


“그, 그럴까요?”


사방에 불편한 사람 투성이라니. 도향은 정말로 체기가 올라오는 것 같아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소헌이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혜연은 황급히 객잔을 나서는 도향을 바라보다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건 대협. 한가한 시간인데 이야기나 해 볼까요?”


“싫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몰랐기에 혜연은 약간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죠?”


“나는 마졸이라 정파가 싫소.”


“정파는 마교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정파를 적대시하지 않소이까?”


이 무슨 전설적인 마두나 내뱉을 말인가. 마치 홀로 정파를 상대하겠다는 말처럼 들려 혜연은 그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혜연은 소헌의 무위를 떠올리며 스스로 납득해버리고는 억지로 대화를 시작했다.


“당신은 스스로 마졸이라 주장하는군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오만.”


소헌은 빠른 손놀림으로 야채를 썰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정말로 정파가 싫은 말투다. 하지만 혜연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럴 지도요. 하지만 제 생각엔 당신은 마졸을 자처할 뿐 정말 마졸인 것 같지가 않아요. 진짜 당신은 어떤가요? 저는 당신같은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요. 검 하나로 수많은 마교를 무너트린 한 사내를. 마교의 폭거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르죠. 검룡이라고.”


소헌의 손은 계속해서 야채를 썰고 있었지만 혜연은 검룡이라는 말이 소헌을 자극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화산의 꽃이자 재녀로서, 혜연은 강호를 한차례 뒤흔든 신성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혜연은 지금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소헌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건 또 뭐요? 난 마졸이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윤혜연이라는 사람인가?”


“이상한 질문이군요. 제가 인피면구라도 쓰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건가요?”


소헌은 초식을 선보이듯 도마를 뒤집어 야채를 털어내고는 혜연이 사온 잉어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교주님과는 다르오. 그분은 당신 같은 흔한 강호인이야 모를 테고, 몰라도 될 터요. 하지만 나는 한낱 마졸인지라 한때 강호를 주유했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소. 매중화라는 빛나는 이름 아래에 가려진 당신에 대해 많은 걸 들었지.”


이번에는 혜연이 침묵한다. 손질한 잉어를 냉장고 깊은 곳에 넣은 소헌은 물을 떠서 손을 씻고는 말했다.


“그래서 난 당신이 정말 매중화인지 의심스러웠소. 하지만 오늘 확실해졌소. 그렇게 산지 꽤 오래된 모양이오? 색마 앞에서 능청을 부릴 정도면.”


소헌의 말에 혜연은 약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애써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미모에 혹한 사람이라면 어영부영 넘어갈 정도로 순진한 모습으로.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기억을 잃어서요.”


그러나 소헌에게 혜연의 외모나 능청 따위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소헌은 시정잡배처럼 삐딱하게 선 채로 마졸을 흉내 내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동거지와는 달리 분위기만은 시대를 풍미할 고수의 기도를 연상케 했다.


“기억이 있건 없건 그 따위는 상관없지. 나는 그리 명석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건 따질 능력이 없소.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하는 게 좋을 거요.”


소헌이 단박에 식칼을 도마에 꽂아 넣으며 혜연에게 한걸음 다가간다. 식칼이 도마에 우뚝 서서 흉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소헌의 냉막한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혜연은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소헌이 차분히. 그러나 위협적으로 말했다.


“우리 마교의 위업에 방해가 된다면 죽는다. 명석하신 혜연 소저께선 이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나는 인정이라고는 없는 흉악무도한 마교도....”


그때였다.


“이놈아! 네가 뭔데 혜연 소저를 핍박하는 게냐? 네가 심부름을 보내서 그 난리를 쳐 놓고 누구를 탓할 생각이더냐?”


주방 앞을 지나가던 희문이 소헌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치며 일갈한다. 순식간에 소헌이 압도하던 분위기가 풀어졌고 혜연은 그 틈에 창백한 얼굴로 서둘러 주방을 빠져나갔다. 소헌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방 일을 재개했고 희문은 혀를 차면서 소헌에게 주절주절 잔소리를 시작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분명 검룡인데 왜 저러는 거지?”


혜연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나무의 둥치를 툭툭 차면서 중얼거렸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싹싹하고 순진한 소저의 가면 사이에서 혜연의 본모습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철저히 숨겨오던 모습을 조금이나마 드러낸 정도로 ,혜연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만약 검룡이 협사가 아니라면 그가 마교에 몸담은 것도 말이 돼. 그럼 검룡이 마교를 부수고 다닌 이유는 의협심 같은 게 아니었다는 말이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혜연의 머릿속에 한 마두의 한탄이 떠올랐다. 혜연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에 빠졌다.


“설마 천수천마(千手天魔)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소리야? 신무림을 상대하는 것도 벅찰 텐데 대체 어떻게 하지?”


사실 소헌 혼자서는 무림을 뒤흔들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소헌의 손에 마교가 무너진 게 아니라, 단지 소헌에게 복속되어 모습을 감춘 것 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파는 신무림과 통일되기 시작한 마교 둘 다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괜히 기억을 잃을 척 했나? 그냥 멀쩡한 척 했으면 그냥 화산파로 돌아가면 되는데. 크으, 하필 이럴 때 검룡이랑 엮여서는 .... 혈랑대 이 멍청이들. 주제도 모르고 검룡한테 ”


굳이 따지자면 혈랑대의 변란이 먼저였으니 그녀는 애꿎은 혈랑대만 탓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혜연의 발길질에 나무둥치의 껍질이 거의 다 벗겨져갈 때 쯤 저 멀리서부터 그녀의 사제, 석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그녀를 발견한 석일은 혈랑대에 납치될까봐 걱정했다는 둥 기특한 소리를 하면서 걱정을 담아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혜연은 그런 사제를 한참이나 바라보고는 다시, 착한 소저 윤혜연으로 돌아갔다.


“미안해 사제. 이제 그만 돌아가자.”


어찌되었든 그녀는 이 모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소헌에게 들켜봐야 그녀의 목적에 별다른 지장은 없을 테니까. 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다. 소헌이 누구든 어차피 상관없다. 써먹을 수 있다는 건 마찬가지이니.


작가의말

간만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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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5) +2 13.02.18 2,685 17 8쪽
4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4) +1 13.02.15 3,272 17 9쪽
3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3) +1 13.02.11 3,255 27 13쪽
2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2) +2 13.02.06 3,043 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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