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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번세(劍龍飜世)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2.06 22:14
최근연재일 :
2015.01.19 22:52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49,505
추천수 :
354
글자수 :
95,124

작성
13.02.06 22:19
조회
5,082
추천
41
글자
13쪽

1. 가짜 교주? 진짜 사형! (1)

DUMMY

“아무튼 그리 알아 두어라.”


소헌은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고 눈앞에 있는 소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면과 생사대전을 벌일 듯 면발을 응시하는 소헌의 맞은편에는 미모의 소녀가 있었다. 흑색 경장차림으로 그녀의 미모를 가린 도향이 죽 소헌을 노려보다가 문득 투덜거렸다.


“칫, 그 따위 내기만 안 했어도.....”


입이 댓발이나 나올 정도로 투덜거리면서도 도향은 이미 객잔 밖을 향하고 있었다. 약속은 약속. 그것을 어기는 일은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제발 그만해! 시끄러워서 밥을 못 먹겠다잖아!”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괴상한 사자후에 객잔 밖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던 두 검객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서 추락하듯 떨어져 내린 것은 다름 아닌 흑의경장의 여인. 열세에 몰려 상처투성이가 된 검객이 그녀를 보고는 경악하며 칼을 떨어트린다.


“맙소사, 흑무천마(黑霧天魔)다!!”


도향은 그야말로 마도의 정점을 의미하는 별호의 주인 치고는 상당히 연약한 인상을 가졌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기세만큼은 검객의 말마따나 천마다웠다.

그러나 도향은 그 별호가 마음에 퍽이나 안 드는지 대뜸 다가가서는 그 검객의 뺨을 후려쳤다.


“제발 그놈의 별호 좀 제발 집어치워! 난 그런 칙칙한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지, 진짜 천마다. 철혈검이 뺨을 맞았어.”


싸움을 구경하던 군중이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도향은 그 광경을 보면서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의 혼삿길이 막힌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기야 별호만 듣고 군중들이 도망칠 정도라면 더 이상 혼인을 논할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으어어.... 살려 줘..”


철혈검이라는 멋드러진 별호를 가진 사내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어차피 그를 상대하던 이름 모를 검객도 도망친 마당에 체면 따위를 찾을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도향은 그 검객의 멱살을 잡고 저 멀리로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다시 객잔으로 돌아왔다. 언제 도망쳤는지 객잔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주인마저도 도망가서 객잔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흠, 꽤 빨리 해결했구나.”


소헌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도향이 발끈해서 소리를 질렀다.


“닥쳐요 사형. 숙수도 도망갔으니 더 이상 소면을 주문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 먹고 출발하자고요!!”


“국물이 이만큼이나 남았다. 흠, 그런데 네 것도 먹어도 되는 건가?”


“으으, 먹어요! 다 먹으라고요!! 탁자랑 의자도 다 먹어버려요!!”


도향은 객잔이 뒤흔들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는 객잔을 나가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룡은 완전히 불어터진 도향의 소면까지 음미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진짜 저것도 사형이라고.....”


도향은 소헌의 콧노래를 들으며 화가 치밀어 객잔의 문을 걷어찼다. 낡아빠진 문은 아예 완전히 박살나서 저 멀리로 날아간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도향은, 아무도 없는 번화가에서 홀로 신경질을 부릴 뿐이었다.


“그날. 그때 쫓아냈어야 돼. 그때....”


도향은 자신의 처지를 다시 되새기면서 소헌을 처음 만났던 날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허, 허억!! 마도천하가.... 마도천하가!!!”


다 죽어가는 늙은이의 소리가 골방을 울린다.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내공을 돋워 골골대는 노인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고 그러자 노인의 발작이 조금 멎는 듯 했다.

그러나 그때 노인이 강시처럼 벌떡 일어나더나 문을 박차고 허공답보의 경공으로 산을 내려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사(奇事)였다.


“나는 마도의 하늘이자 마도 그 자체, 대천마 연청석이다! 으하하하핫!!! 정도의 잡것들을 모조리 멸하고 마도천하를 이루리라!”


소녀는 갑자기 절세무공을 선보이는 사부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냐면 그녀의 사부는 마도천하를 저버린 지 오래였고, 또한 이미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즉, 이 광경은 꿈이었다.


“꿈도 참 나쁜 꿈이잖아.....”


소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꿈에서 본 사부의 뒷모습은 또렷하기만 했다. 그녀의 사부는 꿈과는 달리 힘없이 죽어가다 며칠 전에 숨을 거두었다. 비루한 마공이 역류하여 노쇠한 혈맥을 파괴하는 순간 그녀의 사부는 검은 피를 토하며 절명해버렸다. 꿈에서나마 그녀의 사부가 절정의 무위로 산을 내려간 것은 힘없이 죽어간 사부에 대한 연민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녀는 약간 부은 기가 도는 얼굴을 탁탁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극히 소녀답지 않은 골방은 어느 정도 퀴퀴한 냄새가 가셔 있었다. 소녀는 그것이 싫었다. 고아였던 그녀를 거두어 길러준 사부. 그런 사부가 홀로 외로이 죽음을 맞이한 걸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사부의 흔적이 이리도 빨리 사라진다는 게 싫었다.


“하아, 춥다.”


찬공기로 슬픔을 씻어내리려는 듯 소녀는 괜히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어서 내공을 운용하여 한기를 몰아내고 밤새 눈이 쌓인 마당을 바라보았다. 아니, 눈이 쌓여있어야 할 마당을 바라보았다.


“어라? 눈이....”


어째서인지 마당에는 눈이 하나도 없었다. 저 멀리 산이 하얗게 물든 걸 보니 눈이 내린건 분명하다. 그리고 날씨가 급격히 따뜻해져서 눈이 녹은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마당의 흙은 딱딱하게 얼어 있기는커녕 봄날처럼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난데없는 기이한 현상에 소녀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이성을 되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도 그녀는 꿈 속에 있는 걸까? 소녀는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아픔은 생상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꿈은 아닌 모양이다.


“오, 이제야 일어났군.”


쾌활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녀는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당의 눈을 쌓아둔 것으로 보이는 눈덩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눈덩이를 열심히 만지작거리며 눈사람을 만드는 사내가 있었다. 소녀는 바짝 경계하며 사내에게 물었다.


“누구시죠?”


“흠, 새로 들어온 시녀인가보군. 나는 교주님의 직전제자, 건소헌이라 한다. 사부님의 전속시녀인가?”


시녀? 소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를 내는 것도 잠시 잊어버렸다. 자칭 연청석의 제자는 눈사람을 만드는 걸 그만두고 대뜸 골방으로 들어왔다. 소녀가 뒤늦게 사내를 막으려 했지만 이미 사내는 신발까지 벗고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흠, 꽤 춥구나. 불 좀 떼 보거라.”


“이봐요, 당신이 사부님을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지만 당장 꺼져요. 여긴 마교의 본산이거든요?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곳이 아니라고요!”


그러다 소녀는 아차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마교임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걸 뒤늦게 떠올린 탓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기왕 이리 된 거, 소녀는 마교인다운 표독스러움을 과시하기로 했다. 제발 저 사내가 마을에서 올라온 사람이 아니기를 빌면서.


“보아하니 저 아래서 올라오신 분도 아닌 것 같은데 당신 누구죠?”


싸늘한 물음에도 불구하고 소헌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씩 웃었다.


“하하,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요즘은 대체 무슨 마교가 그리도 많은지 원. 하지만 역시 마교의 진짜 혈통은 우리 연 교주님 뿐이시지. 흠, 그런데 사부님이라 하면, 그대가 내 사매가 되겠군.”


“사람 말이 말 같지 않나요?!”


소녀가 소리를 지르자 골방이 우르릉 울리며 먼지가 우수수 떨어진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뿌연 먼지가 떨어지는 것을 본 소헌이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쯧쯧쯧, 사부님이 자리를 비우셨다고 청소가 엉망이구나. 하는 수 없지. 내가 청소를 해 주마.”


“저, 저긴 키가 안 닿아서 안한 거고요! 아무튼 나가세요.”


소녀는 심호흡을 하면서 이성을 되찾고 언성을 낮추었다. 자칫 잘못해서 사부님과의 추억이 담긴 골방이 박살날 뻔한 것이다.

그러나 소헌은 소녀가 소리를 지른 것에 전혀 놀라지 않았는지 대수롭지 않게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 대들보에 손을 뻗었다.


“어이쿠, 먼지가 꽤 많구나. 사매는 잠깐 나가 있거라. 내가 청소를 끝내놓도록 하마.”


“.....마음대로 해요.”


소녀는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청소를 해 준다니 일단 내버려두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자신은 청소를 그리 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묵은 때를 벗기고 그 다음에 쫓아내면 그만일 테니.


“어이쿠. 먼지가 정말 많구나. 아무도 청소를 안한 것 같구나 하하하!”


그야말로 수십 년 청소한 해온 날랜 몸놀림으로 청소를 마친 소헌은, 물항아리의 위치는 어떻게 알았는지 물을 떠다가 걸레까지 빨고 잘 털어서 문간에 널어 두었다. 소헌이 소녀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떠냐?”


“좀 대단하네요. 그런데 왜 청소를 한 거죠?”


“내 사문을 내가 청소하지 누가 하겠느냐? 아, 그리고 보니 이건 사매가 할 일이군. 사형으로서 체면이 영....”


“아니, 대체 왜 당신이 사형인데요? 사부님의 제자는 총 세 명이예요. 진성운 대사형, 그 다음이 사부님의 따님이신 연성아.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나 건소헌이지.”


소헌은 뻔뻔하게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소녀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내보이며 자신을 가리키고는 단언했다.


“마지막 한 명은 천도향. 바로 저거든요? 사칭을 하려면 좀 사람이 많거나 그럴듯한 대문파에서 할 것이지 제자라고는 고작 세 명인 여기서 뭘 사칭하는 거예요!”


“고작이라니. 진 사형은 천하를 오시할 검객이 되실 분이고 연 사매는 조금 차가운 성격이 흠이지만 진 사형 못지않은 도객이 아니더냐. 다들 강호무림 어디에 내놓더라도 손색이 없는 사함들이거들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당신이 세 제자 중 한명이 아니라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아니, 그보다 대체 진 대사형이나 연 사저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는 거죠?”


도향은 소헌과 대화를 하면서 점점 골치가 아파옴을 느꼈다. 소헌은 능청맞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잘 알지 않겠느냐. 동문수학한 게 엊그제 같건만.”


“으휴! 알았으니까 나가요!”


도향은 더 이상 이 괴인을 상대하기 싫었는지 억지로 소헌을 떠밀어서 바깥으로 내몰았다. 쾅 하고 닫히는 골방의 낡아빠진 문을 바라보며 소헌은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자신이 또 잘못 찾아왔나 싶었지만 사형과 사매가 있는 걸로 봐서는 제대로 찾아온 건 확실했다.


“사매, 진정하고 내 말을 좀 들어보거라.”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소헌은 방문의 고리를 몇 번이고 잡아당겼지만 어째 문이 굳게 잠긴 것처럼 옴짝달싹 하지 않는다. 아니, 잠금장치 따위는 없었으니 반대편에서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흠, 부서지겠군.”


안 그래도 낡은 문이라 부서지기 직전이기에 소헌은 일단 문고리를 통한 힘겨루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대신 소헌은 마당 청소를 마저 끝내고 앞으로의 할 일을 궁리했다.


“음, 그렇군. 식사라도 준비할까? 사부님께서 좋아하시는 돼지고기가 좋겠군.”


소헌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산길을 따라 산을 내려갔다. 한편 문틈으로 소헌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도향이 한숨을 내쉬며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문을 붙잡고 있던 경첩은 이미 무의미한 힘겨루기 때문에 이미 한계에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문이 덜렁 떨어져 나가, 도향은 깜짝 놀라 간신이 나뒹굴뻔한 문을 도로 세울 수 있었다.


“으윽.... 부서졌잖아.”


한 손에 덜렁덜렁 매달린 문을 바라보며 도향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한겨울에 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도향은 문틀에 문을 대충 끼워 넣고 저 멀리 보이는 소헌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요즘 강호에 정신 나간 사람이 많다더니 저 사람도 그런 건가?”


단순히 미쳤다고 보기에는 사형이나 사저에 대한 것에다가 사부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까지 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마교의 진전을 이은 건 세 명 뿐이고 본산에 남은 건 그녀 혼자뿐이었다. 이 사실만은 분명했기에, 도향은 금세 갑자기 나타난 미치광이에 대해 관심을 끊을 수 있었다.


작가의말

가벼운 무협을 지향합니다.

머리식힐 때 쓴 글이니 머리 식힐 때 읽어야 합니다. 꼭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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