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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번세(劍龍飜世)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2.06 22:14
최근연재일 :
2015.01.19 22:52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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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04
추천수 :
354
글자수 :
95,124

작성
13.03.0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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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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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9쪽

2. 기억 잃은 꽃을 지키는 방법 (3)

DUMMY

도향의 온몸이 사상 최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석일은 도향이 그러거나 말거나 차만 마실 뿐이었다. 녹슨 톱니바퀴처럼 삐걱대듯 고개를 돌린 도향은 헤연에게 더듬거리며 물었다.


“화, 화산파라고요?”


“아, 말씀 안 드렸던가요? 사제의 말대로에요. 전 화산파 장문인의 외동딸이었나봐요.”


언제나처럼 객잔에 와서 혜연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향은 소헌의 숨겨진 무공에 대해 생각하다 무심코 혜연과 석일의 사문을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고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화산파라면 구파에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거대한 정도문파. 마교와는 상극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런 이들에게 정체가 발각된 지금은 객잔 일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짐을 싸서 도망가야 할 때였지.

도향은 허둥지둥 주방으로 들어가 점심시간을 대비해 한창 요리에 몰두하던 소헌을 끌어내서는 소리를 질렀다.


“바쁜데 왜 자꾸 그러느냐?”


“지금 더 바쁘게 생겼거든요? 이제 어쩔 거예요? 화산파잖아요!! 사형의 쓸데없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화산파 문하라잖아요!!”


“흠, 아직 몰랐느냐? 윤 소저와 양 소협은 화산파 문하다.”


“몰랐냐니,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도향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헌의 멱살을 쥐고는 윽박질렀다. 소헌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도향이 그의 옷깃을 착 잡아챈다.


“어딜 도망가요? 대체 언니가 화산파라는 건 어떻게 안 거죠? 말해요! 빨리 말해 봐요!!”


“진정 하거라. 나도 오늘 신문을 읽고 알았단다. 오늘 신문에 화산파 장문인의 금지옥엽이 실종되어서 행방을 찾는다는 방문이 실려 있었다. 그래서 양 노인에게 물어보니 양 소협이 화산의 문하라도 하더구나.”


주절주절 설명하던 소헌이 척하니 신문을 내보이며 화산파라는 글귀를 가리킨다. 글귀를 읽어보니 과연 매중화 윤혜연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더불어서 그녀의 수려한 미모를 그린 그림까지 곁들여 있어 지금 눈앞에 있는 혜연이 매중화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도향은 허탈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끝장이야. 이젠 이 실종사건에 우리가 엮여 들어가겠지. 매화검수들이 우릴 잡아가는 일만 남았네요.”


“흠, 매화검수가 올 수도 있겠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요? 사형이 다 말아먹은 거라고요!! 이 일을 어쩔 거예요? 매화검수랑 한판 붙어볼 거예요? 언니의 사문을 알았으면 진작 말했어야 할 거 아녜요!!”


물론 미리 알았다 해도 화산파의 손길을 피해 도망쳐야 할 것은 같았다. 도향은 소헌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어처구니없는 그의 행실에 울화통이 터졌다. 거의 울부짖듯 소헌을 윽박지르는 도향을 바라보던 석일이 헤연에게 묻는다.


“소제로선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군요. 사저, 저분들께 무슨 사정이 있습니까?”


“아, 저 두 분은 마교이신데 우리가 화산파라는 걸 알고 놀라신 것 같아요.”


단순히 놀란 게 아니라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뒤집어졌다는 표현이 적합하겠지만 아무튼 혜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석일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지른다.


“그렇군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그 와중에 일이 더 커졌다. 석일은 아예 그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혜연이야 기억을 잃었으니 그렇다 쳐도 석일이 그 사실을 안 이상 이제 마교의 본산이 박살나는 일은 기정사실이었고 단지 시간문제였다. 한껏 화를 내던 도향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터벅터벅 혜연에게 다가가서는 그 앞에서 풀썩 주저앉는다.


“이젠 틀렸어. 사부님 죄송해요. 이 못난 제자도 사부님 뒤를 따라 가겠어요. 기왕 붙잡힌다면 언니에게 붙잡히고 싶어요. 부탁해요.”


도향의 사부이자 전대 교주였던 연청석은 명성을 탐하던 한 검객에게 패하고 이어서 웬 이류 정도문파의 습격을 받아 마공이 무너졌다. 그 여파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절명한 것이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다. 그 탓에 연청석은 마교의 교주다운 패기를 완전히 잃고 마도천하의 꿈도 접었던 것이다.

사부의 비참한 말년과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보며 도향은 훌쩍거리다 이내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 안에 소헌의 행실에 대한 원망도 일부 섞여 있음을 따로 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혜연은 그녀를 포박하는 대신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도향을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소헌이 그 광경을 유심히 보더니 문득 석일에게 물었다.


“밥은 먹었소?”


“이제 먹으려던 참입니다.”


“그럼 같이 먹읍시다.”


역시나 도통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두 사람이었다.



잠시 후 소헌이 새로 개발해낸 요리를 가져왔지만 도향은 그윽한 음식냄새에도 불구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소헌을 노려볼 뿐이었다. 반면 소헌과 석일. 그리고 혜연은 맛나게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칭찬하기 바빴다.


“음, 정말 맛있어요. 이건 무슨 고기죠?”


“여러 고기를 섞은 겁니다. 잘 다져서 섞으면 아예 새로운 맛이 나지요.”


소헌이 담담히 조리법을 설명하자 혜연이 다시 한 번 다진 고기로 만든 완자를 맛보고는 감탄했다.


“건 대협은 이름난 숙수 같군요. 천 동생. 동생도 먹어 봐요.”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도향은 자기 혼자만 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서 더욱 속이 뒤집어졌다. 명문정파인 주제에 마교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두 사람하며 정체불명 그 자체인 소헌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도향은 이젠 자포자기하고 그녀 역시 고기완자를 입에 넣었다. 육즙과 양념이 배어나오며 도향은 잠깐이지만 상심한 속을 달랠 수 있었다.


“음, 꽤 맛있는..... 게 아니라! 지금 대체 뭣들 하는 거예요?”


“바쁜 시간이 거의 지나서 늦은 식사를 하는 중이 아니더냐.”


소헌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누가 그걸 물어요? 왜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있냐는 거잖아요!! 저 사람들은 화산파고 우리는.....”

도향이 답답하다는 듯 방방 뛰면서 외치다가 주위의 눈을 의식하며 자리에 앉았다. 마교를 원망하는 이 마을에서 마교임을 밝히는 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석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기완자를 하나 집어 들고는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만, 현재 구파는 마교를 적대하지 않습니다.”


“네?”


도향이 젓가락을 떨어트릴 정도로 놀라서 되묻는다. 혜연이 석일의 말을 한 수 거들어서 설명을 덧붙인다.


“신무림이라고 들어 보셨죠? 지금 구파는 신무림과 대적하고 있어서 마교를 신경 쓸 틈이 없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마교인데....”


도향이 말끝을 흐리며 석일과 혜연을 번갈아본다. 혜연이 채소를 삶아낸 육수로 입을 가시고는 방긋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동생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어요. 원래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마교에 대한 경계를 늦추는 법은 없었죠. 하지만 최근 한 신출귀몰한 기인에 의해 유력한 마교가 우수수 무너져서 구파는 마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었죠.”


도향은 혜연의 설명은 반절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교면 마교지 유력한 마교는 또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곳의 마교는 무력한 마교란 말일까? 도향이 통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눈치 챈 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생은 마교이면서 마교에 대한 일을 잘 모르는군요. 최근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은거기인들이 몸을 의탁하는 건 알고 계시죠?”


“네. 그 정도는 조금 알고 있었어요. 사부를 해친 원수도 은거기인이었던 것 같고....”


도향은 엉망이 된 몰골로 조금 울적한 기분으로 말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워 보이는지 혜연은 난리법석을 떠느냐고 흐트러진 도향의 머리카락을 잘 정리해 주면서 말했다.


“그래요. 은거기인이 투신한 건 우리 정파 쪽만이 아니었죠. 사마세력에도 수많은 은거기인이 나타나 몸을 의탁했는데 그들은 각자 천마와 혈신 등등을 지칭하면서 세력을 규합하고 있어요. 저희를 위협하던 혈랑대도 그런 이들 중 하나에요. 원래 혈랑대는 과거 무림을 위협했던 혈교의 무력집단이었죠. 하지만 혈교의 후예가 수없이 많이 나타나며 그들은 혈랑대를 구성하고 한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건 누구죠?”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든 도향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를 재촉하는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이제 도향에게서 분노와 초조함은 보이지 않는다.


“파천혈랑 육무기. 혈교 교주의 수족이었던 절세고수에요. 오래 전에 우리 화산의 매화검선께서 쓰러트렸다고 여겼던 사람이 다시 나타난 거죠. 그래서 지금 화산은 혈랑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야기였기에 도향은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마교를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상 시골무관에 불과한 곳이기에 도향은 그런 이야기가 낯설었던 것이다. 도향의 속내를 읽었는지 혜연은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식사시간이 끝났다.


작가의말

일필휘지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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