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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님의 서재입니다.

엄참기는 못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9000
작품등록일 :
2023.02.08 13:29
최근연재일 :
2023.03.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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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9,807

작성
23.03.21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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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DUMMY

불현듯 요즘 누군가로부터 미행을 당한 적이 있었냐며 묻던 은하인의 말이 떠올랐다.



[네게서 무슨 특별한 기운같은게 느껴지는건 아닐까? 혹시 너 최근에 뭔가 특별한 경험같은거 하지 않았어? 초자연적인 어떤 힘 같은거 말이야.]



지호영, 이 날카로운 질문은 뭐야? 너 나한테 GPS나 도청장치 같은거 심어놓은거니?



"미친놈! 특별한 경험은 무슨... 가뜩이나 사이비랑 엮여서 찝찝한데. 끊어. 나중에 통화하자. 나 지금 버스타야 돼"



"잠깐 참기야. 혹시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힘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나한테 꼭 말해. 사이비 그거 무서운거거든"



전화를 서둘러 끊고 올라 탄 전남 진도행 우등 고속버스에는 많지 않은 승객들이 앉아 있었다.



오리가미는 너무 빨라. 난 아직 외할머니를 만나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거든.



거의 5시간에 걸려 도착한 진도 터미널은 상당히 낯설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몇 번 와 봤던 진도였지만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려오는 버스에서도 뭐라도 기억나는게 있지 않을까 싶어 진도에 관련해서 검색도 해보고 맵으로 외할머니 집 주위를 확대해 봤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외할머니한테 내려온다고 전화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괜히 터미널안을 어슬렁 거리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먹으려고 편의점에 들어가려는데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 한장이 눈에 띄었다.



"벼락 부자, 진도!"



진도에 부자들이 많다고?



나는 오래되서 빛 바랜 포스터가 부리는 신묘한 기믹에 걸려 들었다.



"전남 진도군의 옛 이름은 기름질 옥(沃), 고을주(州)로 ‘옥주’라 불리웠는데 이는 진도군의 모든 농산물이 타지역산에 비해 탁월한 맛을 지녔기 때문 ... 국내 최초로 씨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가 인정한... 이 모든 것이 잦은 벼락, 즉 번개 때문...."



이게 무슨 소리야? 번개가 많이 쳐서 농산물 품질이 뛰어나다고?



혼자 낚여서는 좀 더 읽어 내려가 본다.



"10억 볼트의 전류를 발생시키는 번개는 매년 지구 대기중 10억톤의 질소를 식물들의 생장에 필수인 질산으로 변화시켜 흙에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최대 번개발생 지역인 진도에서..."



벼락부자는 졸부가 많다는 말이 아니라 번개 많이 친다는 말이었구만. 제대로 낚였네 쩝



어쩌다 큰 돈을 얻고 나니 나도 모르게 벼락부자라는 말에 끌렸나 보다.



문득 바라본 내 손에는 성공한 외손자 코스프레라도 하려는 듯 외할머니를 위해 사가지고 온 선물 꾸러미가 들려 있다.



"이거면 될려나? 이거면 그 동안 씹었던 수많은 문자와 메세지 그리고 외면했던 전화, 그리고 엄마에 대해서 용서 받을 수 있을까?"



답은 너도 알잖아 엄참기.



어쩌면 난 이번에 벼락 부자, 진도에 와서 벼락 맞고 죽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못지켰고 외할머니도 외면했던 천벌 받을 나쁜 놈이니까.



***



5시간 내내 끙끙대며 준비한 몇 마디 말도 다 필요없더라.



낯선 젊은이였을 나를 단번에 알아 보신 외할머니.



그 앞에 선 난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함께 그냥 무너져 버렸다.



하염없이 꺼이 꺼이 목 놓아 울 수 밖에 없던 내가 했던 말이라고는 그냥 죄송해요 뿐이었다.



이렇게 난 잊고 살았던 가족중 하나를 찾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할머니는 매우 건강하셨고 쾌활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감정을 추스르자 그 순간부터 본인의 친구 이야기, 요즘 보시는 드라마 이야기, 그리고 이웃 이야기 등 끊임없이 내게 말씀하셨다.



나 같으면 장성한 외손자에게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을 듯 싶지만 외할머니가 내게 물어 보신 질문은 단 하나!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먹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 그 질문 하나였다.



난 왜 할머니가 이렇게 수다스러우신지 알 것 같았다.



혹시나 본인이 이것 저것 묻다가 곤란한 질문이라도 하게 되면 다시 외손자를 멀리 쫓아 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그리고 서먹함에 자신에게 거리감을 느낄 외손자에 대한 배려.



이러한 감정들이 조손간의 다소 겉도는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게 만들고 있었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런 시작도 나쁘지 않다. 내가 잘하면 된다.



***



외할머니의 음식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서 예의상 더 먹는게 아니라 예의상 덜 먹어여야 할 정도였다.



"참기야, 더 먹지 그러니? 더 줄께. 조금만 더 먹어라 응?"



"할머니, 진짜로 더 먹고 싶은데요 더 먹으면 탈 날 것 같아요. 내일 더 먹을께요."



"참기 너 오늘 자고 갈꺼니? 난 바로 가는줄 알았더니"



좋아서 화색이 도는 외할머니의 표정에 다시 콧등이 시큰하다.



"네, 내일 일요이니까 아침먹고 올라가려구요. 그래도 되죵?"



너도 어리광 이런거 부려보고 싶었구나. 엄참기. 근데 해놓고 나니 정말 어딘가로 숨고 싶어지네.



"그럼 그럼 언제든지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면 돼"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이미 내일 아침 메뉴를 고르고 계셨다.



한사코 말리는 할머니를 회유와 협박(?)으로 설득하여 겨우 마친 설겆이 이후, 따근한 방안에서 할머니가 깎아주시는 밤과 사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와 밤 정말 달아요. 할머니. 그렇게 먹었는데도 또 들어가네요."



까놓기가 무섭게 허겁 지겁 입에 밤을 우겨 넣으며 말하는 내가 미욱스럽게 보이지도 않는지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니네 엄마도 밤 참 좋아했었거든. 딱 지금 너 하는 것 처럼 말이야"



순간 할머니는 큰 실수라도 하신 듯 당황하시더니 말 없이 밤을 집어 까기 시작하셨다.



"할머니, 엄마 어렸을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가 들은 얘기가 전혀 없어서 궁금해요"



잘못한 것도 없이 내 눈치를 살피던 할머니는 나의 말에 안도하면서 자신의 어린 딸 이야기를 구비 구비 엮어 내셨다.



외할머니의 입담이 좋은건지 아니면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재미 있는건지 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웃고 또 웃었다.



그러다 외할머니가 내게 먹일 무언가를 또 가지러 부엌으로 가신 사이, 난 오래전부터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들고 오신 감과 함께 자리에 앉자 난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머뭇거리면 묻기 어려워질 이 질문.



"할머니는.... 아빠 본 적 있어요?"



언젠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지 않았으면 했을 나의 질문에 외할머니의 표정이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결정은 빨랐고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사실 나도 사위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단다. 멀리서 한 번 뒷 모습을 본게 다니까 말이다."



이게 무슨... 혹시 난 불륜으로 태어난 혼외자 뭐 이런건가?



내 표정이 변한 것을 눈치 챈 할머니였지만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그 당시 난 이제 갓 대학교에 입학한 딸 아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게 용납이 되질 않았었단다.

그런데 니 엄마는 네 아빠가 누구인지 계속 물어도 대답도 않고... 그땐 정말이지..."



할머니가 곁에 있던 물컵의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셨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이 이야기는 여전히 외할머니를 답답하고 목타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배가 불러오던 네 엄마가 집에 와보니 보이지 않더구나. 혹시 가출한게 아닌가 싶어 서둘러 집 주변을 둘러보는데 니 엄마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서 있는게 보이지 않겠니?

내 느낌에 네 아빠라는 확신이 들지 뭐니? 그래서 조용히 다가가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눈치를 챘는지 난 뒷 모습밖에 보지 못했단다,

그게 내가 본 사위의 모습 전부란다."



"엄마가 이유같은건 말하지 않았어요? 왜 아빠가 인사하러 오지 않는지?"



"처음에는 곧 인사하러 온다고 하더니만 내가 뒷 모습을 본 그 날이후로는 어디 잠깐 갔는데 다녀오면 바로 온다고만 하더구나. 그렇게 지금 30년이 되가고 있어"



주르륵



오랫 동안 용케도 참으셨던 눈물이 외할머니의 뺨을 타고 흘렀다.



"너희 세 식구는 2년이 채 못되게 함께 살았던 것 같더구나. 너 태어난 다음 해 겨울에 니 엄마가 널 안고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말이다"

내가 과부인 것도 서러운데 생때같은 내 딸내미가 혼자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니 내가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외할머니의 떨리는 입술과 앞섶을 적시는 눈물을 보니 쥐고 있던 주먹이 저절로 떨려왔다.



"참기야, 네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할미는 아직도 니 아빠가 많이 밉단다. 미안하다. 흑흑흑"



결국 외할머니는 나에게 엎어지듯 기대며 목이 메어 울기 시작했다.



아마 이게 책에서만 보던 오열인 것 같다. 오열하는 외할머니를 붙들고 어느 덧 나도 같이 울고 말았다.



난 그동안 아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지는 않았어도 딱히 악감정도 없었었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나를 얼마나 예뻐했었는지 그리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보고 싶어하는지 끊임없이 이야기 했었다.



심지어 엄마를 통해 각인된 아빠의 이미지는 어린 시절 꼭 읽어야만 했던 위인전기에 나오는 그런 위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 난 지난 28년간 지니고 있던 그 인간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그려넣을 것이다.



인간 말종!



엄마가 돌아와서 뭐라해도, 싫어해도 별 수 없다.



쓰레기 같은...!



더 심한 욕이라고 못할까? 그건 아껴뒀다가 누군지 알게 되면 면상에 다 내뱉어 줄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하고 말 것이다. 난 이제 그럴 수 있으니까.



나의 분위기가 탁해진 것을 아셨는지 외할머니는 내 어릴 적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셨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기억하는 아주 귀여웠다던 나라는 아이는 외손자 버프와 장식을 모두 걷어 내고 냉정히 보면 이유없이 시도 때도 울고 번개만 치면 까무라치던 아주 키우기 지랄 같은 아이였다.



단 한번 콧빼기도 비치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버린 비인간적인 애비의 아들로 손색이 없는 그런 이상한 아이였다.



너무 축약된 시간 여행을 쉼없이 달려온 외할머니와 느닷없이 천하의 악인을 애비로 두게 된 나는 서로가 상당히 지쳤음을 알게 있었다. 이젠 자야할 시간이었다.



편히 자라며 엄마의 방에 잠자리를 봐 주신 외할머니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방안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여기 이런게 있네?"



방안을 두리번대던 나의 눈에 책장에 꽂혀 있던 앨범이 띄였다.



특별한 장식없이 평범해 보이는 앨범 속에는 꿈많던 10대의 수 많은 엄정희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잡쳤던 내 기분까지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사진속 엄마의 웃음은 마력이라도 있는 듯 꽤 긴 시간을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벌러덩 누워버린 바닥에서 이리 저리 몸을 뒤척이는데 책상 아래에 종이 상자 같은 것이 보였다.



나이키?



갑자기 지난 여름에 만났던 엄마의 고교동창 이정란의 이야기가 떠 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운동화 박스에 한 가득 너희 모자 사진들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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