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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님의 서재입니다.

엄참기는 못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9000
작품등록일 :
2023.02.08 13:29
최근연재일 :
2023.03.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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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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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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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9,807

작성
23.03.0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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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그때 살짝 열리는 방문틈으로 튀어 나온 익숙한 목소리가 나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니까 왜 도대체 왜! 아버지가 그깟 새끼한테 이렇게 신경을 쓰는거냐고! 씨발!"



지나치며 문틈으로 슬쩍 봤을 뿐이지만 난 저 새끼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이경찬! 너 여기서 뭐하냐?



"고객님, 이 방입니다. 안에서 주 매니저님과 일행 분들이 기다리세요. 그럼 저는 이만."



그 남자가 열어 준 방안에서 김도형, 양욱, 지호영이 그리고 개 거들먹 주승찬이 날 반겼다.



"어서 들어와라 참기야. 승찬이가 이번엔 정말 뭔가 제대로 하는 것 같다."



양욱마저 이렇게 얘기를 하는거 보면 여기가 정말 베리 핫하긴 한가보다.



실껏 먹고 마신 댓가로 참을성 있게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주승찬의 스토리는 이랬다.



여기있는 우리중 아무도 모르는 그 형님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이 회원제 VIP 클럽은 고객의 대부분이 유명인이란다.



그래서 영화배우 김희수, 야구선수 이승인, 축구선수 송흔민 등 탑스타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곳이란다.



남들은 사촌의 팔촌까지 있는 인맥을 총 동원해서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들어와 보려고 애를 쓰는 곳이지만 우리는 주승찬 지덕에 거저 들어왔다면 거들먹 거들먹.



"승찬아, 니 덕에 내가 이런데를 다 와보고 고맙다. 어차피 우리한테 매출 올릴 생각은 아닐테니 괜히 비싼 양주로 무리하지 마라. 우리 마실건 내가 가져왔다."



가방에서 내 손에 딸려 나온건 대전의 '이젠 우린', 광주의 '잎새주', 부산의 '좋은데이', 경남의 '대선소주', 대구의 '맛있는 참'. 모두 지방 대표 소주였다.



물론 얘들 모두는 산지직송. 내가 오리가미로 광역도시 지하철로 이동해서 사온 것이다.



"야 이거 소주 백화점인데"



술이 몇 잔 돌자 다들 각자 자기 얘기하기에 바빴다.



"승찬아 들어오다 보니까 이경찬이 보이던데 그 새끼도 여기 회원이야?"



"봤냐? 그렇더라고. 우리 형님 말씀이 이경찬이와 같이 몰려다니는 기업 2세들이 있는데 그 모임에 꽤나 영향력 있는 집안 애들도 있다하더라고."



천하의 주승찬도 나한테 이경찬 이야기하면서는 눈치를 본다.



"아 근데 저 새끼 진짜 진상이야. 매번 오면 술처먹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지들끼리 싸우고. 오늘도 그러고 있지? 쟤 때문에 우리 형님 골치가 좀 아프다."



뭐 그래도 뾰족한 수는 없겠지. 이경찬만 찍어낼 수는 없을테니까.



"얘들아! 놀고 있어, 형님은 좀 돌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둘러보고 올께. 필요한 거 있으면 인터폰으로 이야기하고."



처음으로 주승찬이 제대로 일하는 듯 보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진짜 이 건은 맡고 싶지 않았다.



배송지가 다윗 인터 비서실이라니.



아무리 봐도 항상 내게 최선을 다하는 정진기의 수작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진기에게 바꿔달라고 이야기하기엔 지는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고 그냥 가자니 영 내키기 않고.



내적 갈등과는 달리 난 이미 다윗 인터 1층 로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비서질에 전달할 서류가 있는데요."



"이리 줘 보시겠어요?"



서류 봉투를 살펴보던 안내 데스크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 서류 직접 비서실로 가져다 주시겠어요? 지금 담당자가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하네요."



"그냥 두고 가면 안될까요? 대신 서명해주셔도 되는데..."



대답 대신 방문증이 건네졌다.



"이 옆 게이트로 들어가셔서 고층부 엘리베이터 타시고 34층으로 올라가세요."



뭐야? 한가해 보이는데 대신 서명 좀 해주면 안되나? 나 정말 저기 올라가기 싫다고.



쭈뼛대봤지만 아무도 내게 신경쓰는 이가 없었다.



점심 시간이 지난 근무시간의 텅빈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34층에 날 떨궜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거야? 안내판도 없네. 어디로 가야...



언뜻 익숙한 사람의 형태가 복도 코너에서 돌아 나오는게 보였다.



아 씨발! 내가 이럴까봐 오기 싫었던 건데.



급하게 엘리베이터로 돌아섰건만 야속한 엘리베이터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찌질한 내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나 해야 널 볼 수 있구나. 참기야 오랜만이다."



지금까지 잘 피해왔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정진기 이 개새끼!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회장실은 원래 36층 아닌가요?"



"왜? 난 34층에 있으면 안되냐? 안내 데스트에서 니가 왔다고 하길래 내가 여기로 내려왔다. 36층으로 오라고 하면 안왔을거잖니."



이 빙신아 36층은 왜 말하는건데? 회사 짱이 몇 층에 있든 니가 무슨 상관이냐고? 오늘은 빠져나가기 어렵겠다.



***



"우리 1년에 한 번쯤은 봐도 되는 사이 아니니? 더 자주보면 좋고 말이야."



회장실로 안내 된 나는 향이 좋은 차를 따라주는 이정도의 앞에서 이정란한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경찬이를 통해 니 얘기는 종종 듣고 있다. 바른 소화물에서 연속해서 이달의 사원 상을 받았다며. 하하하"



그거 말고 안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들으셨을텐데요.



"어머니가 기뻐하시겠다. 나는 아직도 정희씨를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중이다. 난 포기하지 않았다. 너처럼 말이야."



차분하던 이정도의 눈에서 확고한 집념의 빛이 비쳤다.



저건 진심으로 엄마를 구하려는 마음일까? 아니면 엄마가 돌아올까봐 두려워 하는 마음일까?



그게 뭐든 난 그의 힘을 빌어서라도 엄마를 찾고 싶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사라니? 난 지금 내 아내를 찾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건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거야. 오히려 넌 내게 왜 엄마를 빨리 찾아오지 못하냐고 화를 내야 맞는거란다."



그날 사고 현장에는 나와 엄마 단 둘 뿐이었고 이정도 당신은 없었다.



그럼 당신은 내게 내 아내는 어디에 있냐고 화를 내고 싶은겁니까?



"어쨌거나 감사한건 감사한거니까요. 서류 드렸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난 입에도 대지 않은 차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할 말이 남았으니 잠깐만 더 있어 보거라."



어정쩡한 자세로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난 여기서 더 들을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다.



출입문으로 걸음을 옮기며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참기야, 이제 그만 니가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도 같이 찾았으면 좋겠고."



손잡이를 잡은 내 손이 떨렸다.



"우리가 가족이 된지 벌써 15년이다. 그리고 사고가 난지도 10년이 지났고.

넌 그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겠지만 난 아내를 잃었다. 너나 나나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거라고.

이제 난 솔직히 두렵다. 이대로 정희씨를 영영 찾지 못할까봐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너마저 영영 남이 되어 버리면 난 정희씨를 찾아도 볼 면목이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 밖으로 돌고 날 도와주면 어떻겠니? 회사일도 그렇고 엄마를 찾는 일도 말이다.

난 아직도 너만큼 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단다.

너도 기억하지? 정희씨가 항상 말하던 참기 너와 세계를 누비며 사업을 하면 정말 멋질거라는 말 말이다"



아저씨를 만나면 애써 외면하며 깊이 묻어두었던 엄마 생각이 난다.



그래서 빨리 도망치려고 했는데. 추억에 또 뒷덜미가 채인다.



"네 말씀은 고마운데..."



잡고 있던 문손잡이가 저절로 돌아가자 난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버지, 창영 그룹 정회장 오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경찬 뒤에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 서 있었다.



"힉! 뭐야? 참기 니가 왜 여길? 딸꾹!"



엄청 놀랐는지 이경찬이 딸꾹질을 시작했다.



딸꾹질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그의 행동과는 달리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이미 나를 여러번 예리하게 베고 있었다.



"정회장님, 제가 나가야하는데 이렇게 올라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정도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노인의 손을 덮석 쥐었다.



"이 회장이 바쁘니까 나 같은 뒷방 노인네가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손님이 있으셨네."



노인이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데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나본데 내가 미안하게 됐네. 내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그때는 미리 전화라도 하고 오겠네."



"아닙니다. 어르신. 이야기 마쳤습니다. 막 나가려던 참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게 해준 고마움 때문인지 나는 맥락없이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빠져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허 이거 참. 대화를 깨놨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듣다니... 별일이구만 그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통성명이라도 하면 어떻겠나?"



"네?"



나의 반응이 재밌는지 이정도가 웃으며 나섰다



"그래 참기야 인사드려라. 너 창영그룹이라고 알지? 이분이 창영그룹 정병진 회장님이셔. 내가 오래전부터 신세를 많이 진 분이지. 그리고 이 아이는 제 둘째 아들입니다."



둘째 아들? 난 형제란 없는 외동 아들이다.



"신세가 아니라 피해를 입힌게 아니고? 안그런가? 금이야 옥이야 회사에서 잘 키웠놨더니만 그만 덜컥 사랑하는 여자를 쫓아 다른 회사로 가버린게 자네 아닌가?"



이정도가 당황한 듯 허허 웃음을 지었고 이경찬은 아까부터 계속 딸국질을 하며 독기 어린 눈빛으로 날 계속 썰어대고 있었다.



"그래 난 창영의 정병진이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구만"



"네 안녕하세요 정회장님. 전 엄참기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나의 인사말에 이정도는 웃음을 이경찬은 분노를 정병진은 재밌다는 표정이 되었다.



"너 참기 어떻게 니가 아버지 앞에서 버릇없이..."



이경찬은 이참기가 아닌 엄참기라는 나의 인사에 모욕감을 느낀 것 같았다.



"아 그런가? 엄참기군. 나도 만나서 반갑네. 자네 올해 몇인가?"



"올해 만 28세입니다"



"지금은 뭐하는가?"



"지하철 택배일 하고 있습니다."



"자네 사업인가?"



"아니요, 바른 소화물이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거기 다윗 인터 계열사 아닌가, 이회장?"



"정회장님 정말 대답하십니다. 어떻게 저희 회사 계열사 이름까지 기억하세요?"



"그냥 두루 두루 보다보면 이렇게 문득 기억나는 회사가 있지.

참기군 자네, 내가 일하나 줄테니 한번 해볼텐가?"



"네? 일이요?"



"그래, 택배일 말이야. 자네 그거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네 회사로 주문해 주시면 되는데요"



"그럴꺼면 내가 왜 지금 자네한테 이렇게 말하겠나? 자네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일이다 이말일세"



이정도가 끼어든다.



"참기야, 회장님 좀 도와드리거라. 회장님이 웬만해서는 부탁같은거 하시는 분이 아니거든. 경찬아. 니가 바른 소화물에 연락해서 참기 근태 처리 좀 해주렴."



"네... 아버지"



이경찬의 입에서 천근 바위에 눌린 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대답이 짜여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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