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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님의 서재입니다.

엄참기는 못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9000
작품등록일 :
2023.02.08 13:29
최근연재일 :
2023.03.22 10:48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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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추천수 :
11
글자수 :
149,807

작성
23.03.0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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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2화

DUMMY

그녀의 우울증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차 간, 나 아직 할 말 다 못했어. 잠깐 있어봐!"



숨을 고른 신예진이 다시 수화기에다 목소리를 부어넣기 시작했다.



"잘들어요. 창영증권 엄참기씨. 내일까지 그림 가져가세요. 안그러면 돈 다 빼버릴테니까!"



"알겠습니다. 고객님. 내일 당장 가지러 가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것으로 교환해 드리면 안될까요? 뭐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뭐든지? 당신 돈 많아? 창영 증권이 그렇게 대단해?"



신예진이 기가 막힌듯 혀를 찼다.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기분 전환이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구해보겠다는 의미로 말씀드린거에요.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옆에서 신예진의 하는 소리를 듣던 차 간호사는 절로 고개를 흔들며 생각했다. 이젠 정말 이 여자 환자가 다 됐구나. 약이 꼭 필요한 사람이 되버렸어.



"좋아요. 엄참기씨. 그럼 뭘 가져올 수 있는데요? 말해봐욧!"



"좋았던 추억이 있는 물건중 하나를 말씀해 주시면 구해서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기분전환이 되지 않으실까요?"



"좋은 추억?"



신예진은 잠깐 생각을 하는지 말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게 하나 있네요. 맨하탄에 조 피자라고 있는데 거기 페파로니 피자 먹고 싶네요. 그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돈을 빼지 않을 것 같은데"



우와 이런 미친... 차 간호사는 신예진이 우울증을 넘어 미친게 아닌가 싶었다. 이젠 진짜 환자다. 내일까지 맨하탄의 조 피자를 사오라고. 갑질중의 갑질이 이런거 아닐까?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내일 가지고 가겠습니다.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내일 뵙겠습...."



인삿말도 없이 대화중 전화를 끊어 버리는 신예진.



이런 그녀의 모습은 차 간호사가 그간 보아오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 정도 약물치료를 받으면 있을 수도 있는 행동일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다만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차 간호사는 신예진을 거실에 남겨두고 나오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내일 신고문 방문자가 있을 예정입니다. 지난 번 왔던 창영증권 직원이구요. 네 오래 걸릴 일은 아닙니다."



뭔가 싫은 소리라도 듣는지 차 간호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네 외부인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규칙은 잘 알고 있지만... 신고문 본인이 직접 벌인 일이라..."



전화기를 들고 있는 그녀의 자세가 자꾸 숙여지며 공손해진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럴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네 경호팀에게 이야기해서 조치토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의 콧등에 땀이 맺혀 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어려운 전화였나 보다.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거였는데 미친 년이 갑자기 난리를 치는 바람에... 에이 재수 없어. 오늘 약 먹고 애 좀 먹어봐라"



거실쪽을 흘겨보던 차 간호사의 눈빛은 상당히 표독스러웠다.



***



"어떻게 됐습니까? 뭐라고 합니까? 내일 만날 수는 있는 겁니까?"



민영환은 전화를 끊는 내게 바짝 다가들어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네 내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민국장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열정 넘치는 표정의 민영환이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혹시 현금으로 달러 좀 있으세요?"



3만원 내고 피자 살 수는 없으니까.



"신사장님, 저는 자꾸 막바지에 파리가 꼬이는 느낌이 들어 신경이 쓰이는군요."



"파리라뇨? 그런 일 없습니다. 그냥 택배 하나 받는 것일 뿐이데요 뭐."



청담동의 고급 일식집 별실에 적당히 기름진 참치 뱃살과 생 새우 회가 가득찬 군침도는 상을 받고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만 나누는 사내 둘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 일이라는 건 없습니다. 적당히 넘어가려다 별 일이 되는거니까요."



이 사내로부터 갑자기 보자고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인국비료 신진서의 예감은 좋지 않았었다.



"저희 교단에서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서 신사장님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깝게는 캄보디아와 멀게는 콩고에 비료 공장 신축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계 경영 하셔야죠? 언제까지 좁은 국내 1 위로 만족하실겁니까?"



신진서는 크게 잘못한 것이 없지만 항상 이 사내 앞에서는 불편하고 불안하다.



"선친이신 신정국 사장님 돌아가시고 저에게 처음 오셔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동생분들로 부터 인국비료를 확실히 장악하게만 해준다면 저희 교단의 사역에 성심을 다하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조금씩 높어지는 사내의 목소리에는 신진서가 거역하기 어려운 뭔가의 기운이 있다.



"네 기억하고 말구요. 제가 어찌 그 서약을 잊겠습니까? 전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교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런 분이 왜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시지 않으십니까? 신예진 고문의 지분만 신사장님이 다 넘겨받으시면 일은 간단히 마무리 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변수를 만드십니까?"



신진서의 고개가 숙여지다 못해 코가 탁자에 닿은듯 보였다.



"아시다시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저희와 뜻을 함께 하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어떤 분들이신지 잘 아시지요?"



"그럼요,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인국비료같은건 비교도 할 수 없는 대단한 회사분들이라는거 잘압니다."



신진서가 코를 탁자에 찧을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들이 뭐가 아쉬워서 저희 교단에 의탁해 오셨겠어요? 그건 바로 저희 교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겠다는 순수한 마음 하나 아니겠습니까?

그 분의 사역중 하나가 동남아와 아프리카 비료공장 설립인데 그 중책을 맡으신 우리 신진서 사장님께서 일을 가볍게 보고 신중하지 못한 일처리를 하신다는게 말이 됩니까?!"



벼락같은 사내의 호통에 신진서는 정말로 쿵하며 탁자에 머리를 찧고 말았다.



"내일 저희가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제 말처럼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런데 내일 택배오는 그 남자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라면 아예 신예진 고문과 만나지 못하게 하면 어떨런지요?"



"일단 신예진 고문과 만나도록 해주세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무슨 일을 꾸미려는지 보려고 합니다. 어차피 그 남자, 자신이 있던 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테니까요."



호통치던 사내의 시선이 탁자위로 떨어지며 향한 곳에는 신예진 고문과 이야기를 나누는 엄참기와 SNS에 올라왔던 엄참기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



아침 10시부터 주문을 받는 조 피자를 사려면 우리 시간으로 밤 11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으로 맨하탄 조 피자를 확인하며 은하인으로 부터 선물받은 안약을 만지작 대고 있다.



"맨하탄이면 거리가 얼마야? 지방 두 곳만 다녀와도 완전히 퍼지는데 맨하탄 이걸로 될라나?"



아무리봐도 일회용 안약인 이 물약이 다크 매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은하인의 말이건만 계속 뒷통수가 켕기는 것은 나의 불신으로 가득찬 인간됨 때문인가? 아니면 안약에 선명하게 박힌 굴지의 국내 1위 제약사 동민제약이라는 회사이름 때문인가?



"아 이 새끼 뭘 처먹길래 머리숱이 이렇게 많냐? 이러니 스타일링이 안되는거 아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흑채라도 엎은 듯 새까만 머리숱을 보니 괜한 짜증이 일었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않겠어? 최악이라고 해야 눈깔 한번 시원하게 세탁하는거잖아"



이게 뭐라고 경건해진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다.



호기롭게 꼭지를 따면서도 혹시 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쫄렸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 쪽팔림을 한 가득 멕이듯 뭔 일 같은건 생기지 않았다.



"엄참기, 너 안약 처음 넣어보냐? 뭐 이렇게 난리를 치냐, 난리가! 그냥 쭉 짜넣으면 되는거지! 쫄보새끼야!"



고개를 젖히고 오른쪽 눈에 안약을 떨어뜨렸다.



아 시원한 청량감! 딱 거기까지다. 무슨 일 따위는 없다.



"풋, 그렇지 이건 그냥 안약이지. 뭔 생각을 한거냐, 미친 놈"



왼쪽 눈에 나머지 안약을 쭉 떨어뜨리자 성대했던 안약 투약식이 허무하게 마무리 됐다.



그래도 혹시하는 생각에 두 분을 부릅뜬 채, 거울을 통해 양쪽 눈을 번갈아 들여다 봤지만 내 눈은 매일 보던 딱 그런 엄참기의 눈이었다.



"어 이거 왜 이래? 뭐야 이거 안약이 아니라 순간 접착제야?"



갑자기 눈이 감기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눈이 감기지 않는다 이말이다.



그렇게 부릅떠진 눈의 흰자에 전에 없던 검은 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나도 몰래 세어버린 눈동자를 둘러싸며 나타난 반점들은 위쪽으로 3개 아래에 2개 이렇게 5개였다.



5개의 반점이 선명해지자 이번엔 눈동자의 색이 옅어지는가 싶더니 서서히 투명해졌다.



그렇게 투명해진 내 눈동자 속에는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언젠가 본 듯한 몇 백만 광년 떨어졌다는 먼 우주의 은하계 사진. 내 눈동자속 별들의 모습은 딱 그렇게 보였다.



"아이고 놀래라. 이제서야 눈이 감기네"



조금전 호들갑이 무색하게도 눈꺼풀은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하듯 자연스럽게 깜빡 거렸다.



그리고 투명했던 눈동자도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자 순간의 놀라움들은 착각인 듯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너무 놀라서 그런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거 같은데. 뻣뻣한 느낌인데"



고개와 어깨를 이리 저리 돌려봤지만 뻣뻣한 것 같은 기분과는 달리 별 문제는 없었다.



"전에 없이 개운하고 가뿐하긴 하네. 그럼 슬슬 조 피자로 이동해 볼까?"



빠아아아아앙 빵 빼에에엑 뺑



귀가 찢어들 것 만 같은 소리가 점점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



혼잣말도 들리지 않을만큼 큰 소음에 질려갈 때쯤 내 눈에 들어온건 복잡한 시내의 좁은 길을 달리는 집채만큼 커다란 빨간 트럭이었다.



"저런 미친 새끼가! 길 한복판에서 저렇게 크락션을 울리고 지랄이야!"



하지만 내 고함은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빨간 트럭이 내는 우렁찬 경적에 묻혀 버렸다.



그렇게 욕을 욕을 해대며 빨간 트럭을 노려보는데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저건... 소방차잖아!"



갑자기 영어로 된 간판과 낯선 번호판을 단 외제차들이 도로 한 가득 눈에 들어왔다.



툭!



익스큐즈 미.



나를 툭치고 지나치는 행인이 던지고 간 한 마디에 돌아본 거리에는 수많은 백인, 흑인, 동양인 등이 분주히 걷고 있었다.



"여기 지금 맨하탄인거야?"



내 위치를 파악하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리가 띵해질만큼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통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 가는 행인들의 대화 소리, 주변 도로의 표지판, 한번씩 훅 밀려드는 후끈한 바람, 그리고 코끝에 스며드는 각종 냄새들.



난 맨하탄 이스트 빌리지의 3번로와 동14번가의 교차로에 위치한 3 애비뉴 지하철역 앞에 서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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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23.03.07 18 0 12쪽
20 19화 23.03.06 23 0 11쪽
19 18화 23.03.03 22 0 11쪽
18 17화 23.03.02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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