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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님의 서재입니다.

엄참기는 못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9000
작품등록일 :
2023.02.08 13:29
최근연재일 :
2023.03.22 10:48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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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9,807

작성
23.03.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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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0화

DUMMY

아 거참 까다롭네. 사람은 코빼기도 안보이고.



"네 저는 저희 증권사의 특별한 고객분들께만 감사 선물 배송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거라면 그냥 입구에 두고 가세요. 저희 보안팀에서 수거할테니까요"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이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전 반드시 신예진 고객님께 직접 전달해 드리고 서명을 받아가야만 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선생님. 1~2분이면 됩니다. 여기에 두고갔다가 분실되거나 파손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아 걱정마시고 그냥 거기에 두고 가세요. 저희가 바로 수거할거니까요. 그리고 찾으시는 신예진 고객님은 외출중이세요. 그러니까 그냥 두고 가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테니까요."



"아 그래도..."



아 이젠 대꾸도 없네.



벨을 한번 더 누를까 고민을 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 하시는 분이신데 출입문에 서 계신거죠?"



고급져 보이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R자 2개가 나란히 포개져 있는 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롤스로이스 저거 전기차야? 왜 저렇게 조용한거지?



"안녕하세요 전 창영증권에서 신예진 고객님께 드릴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온 엄참기라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선물 저 주시고 가시면 됩니다.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안되구요 제가 직접 드리고 받으셨다는 서명을 받아야 하거든요. 신예진 고객님 뵐 수 없을까요?"



"말을 못 알아 들으시네요. 그냥 두고 가시라니까..."



"김비서, 그냥 문 열어드려요. 오랜만에 오신 내 손님이잖아. 이렇게 밖에서 홀대하면 안되지 않겠어? 안에서 뵐 수 있게 해줘요"



롤스로이스의 뒷좌석 열린 유리창으로 병색이 완연한 나이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롤스로이스 차량이 차고문으로 사라지자 잠시후 대문이 열렸다.



대문 뒤의 건물 2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돌 계단을 오르자 노송이 군데 군데 여럿 심어진 넓은 잔디밭이 나타났다.



꽃이나 연못 혹은 야외용 다이닝 세트가 어울릴만한 잔디밭에는 초소처럼 보이는 간이 건물과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여럿 있었다.



"잠깐 대기해주세요. 신분증과 들고 계신 선물 잠깐 확인하겠습니다"



한 덩치하는 남자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민 손을 흔들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갑에서 자동차 운전면허증과 창영증권 명함을 꺼내어 들고 있던 선물과 함께 그 남자에게 건냈다.



내게서 건내 받은 물건들을 초소안으로 들고 사라졌던 남자는 5분정도 후에 다시 나타나 내 물건들을 돌려주었다.



"아 ... 이거 포장지를 이렇게 찢어 놓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포장도 선물의 일부인데요"



"내용이 뭔지 확인하려면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투시라도 하시나봐요?"



뭐지 이 싸가지는.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 만족도입니다. 아저씨는 이렇게 포장이 찢긴 선물을 받으시면 기분이 좋겠어요?"



"그건 증권사 택배 아저씨 사정이구요. 저흰 신고문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이상한 사람이나 물건 등은 절대 이 포인트를 넘어갈 수 없어요. 아셨어요?"



"이상한 사람이라니요? 무슨 잡상인 취급을 하시고..."



치익 치익



"네 알겠습니다. 들여 보내겠습니다. 어이 택배 아저씨. 준비됐다니 들어가 보세요. 용건만 간단히 하고 어서 나오세요.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마시고"



덩치 큰 사내가 손짓하자 초소 옆 바리케이트가 열렸다.



뭐 이렇게 어색하고 안어울리는 조합이 있지? 이런 집에 이런 시설이라니. 자꾸봐도 너무 드라마 세트장 같다.



투덜거리며 잔디밭을 건너 현관에 다다르자 문이 열리며 간호원 복장의 여자가 나타났다.



"여기 이걸로 손소독하시고 마스크 착용해주세요. 그리고 안에 들어가시자마자 입구에 있는 실내화 착용하셔야합니다.

그리고 신고문님 만나시면 절대 접촉은 피해주세요. 서명만 받으면 된다고 하셨죠?"



"신예진 고객님이 많이 편찮으신가요?"



목소리가 아픈 사람같더라니 좀 안쓰럽네. 내가 괜히 너무 우기면서 들어온건 아닌가?



시키는대로 손소독에 마스크와 실내화를 착용하고 따라 들어간 집안은 병원 같기도 하고 사무실 같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 가정집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아마도 바깥 채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고 안채는 신예진 고객의 공간인 것 같았다.



안내된 거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모아온 듯한 여러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는 작은 박물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탁자와 선반 그리고 장식장들에 사진과 기념품들이 알알이 들어 차 있어 하나씩 들여다 보면 주인의 일대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의 일기라도 훔쳐본다고 생각하는건지 거실 천정에 유일하게 설치된 CCTV 카메라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엄참기씨? 만나뵙게 되어 반가워요. 신예진이예요"



자신을 신예진이라고 소개한 단아한 베이지색의 홈드레스를 입은 중년의 여인이 내게 걸어왔다.



아 이런게 참 곱게 늙었다라고 하는 거구나.



병색으로 파리한 안색이었지만 이 부인이 젊은 시절 얼마나 대단한 미모의 소지자였는지 가늠이 되었다.



"네, 창영증권에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저희를 믿고 계좌를 개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제가요? 그랬던가요? 기억이 없는데? 죄송해요. 제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총기가 흐려져서..."



갑작스럽게 어두워지는 신예진의 얼굴에 난 화제를 전환했다.



"저희 증권사에서는 VVIP 고객분들께 1년에 1~2회 정도 사은 선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포장지가 너덜 너덜해진 선물을 신예진에게 내밀었다.



"시큐리티 직원분이 내용물을 확인하시면서 포장지가 좀 찢어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선물이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다른 사람한테서 선물을 받아보는게..."



건네 받은 선물의 포장을 마져 벗겨내자 그 안에는 내 예상처럼 스케치북만한 크기의 액자가 들어 있었다.



순간 난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림을 본 신예진의 표정은 그대로 화석처럼 굳어 있었고 그녀는 숨 쉬는 것을 멈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서는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같은 눈물이 무성영화처럼 흘러 내렸다.



신예진은 어떠한 흐느낌도 훌쩍임도 없는 완벽한 정적의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녀가 울고 있는게 맞는가? 라는 생각에 나조차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목 마르다고 하셨죠?"



"네? 제가요?"



"네 조금 전에 목마르다고 하셨잖아요?"



난 보았다. 그녀의 저 간절함. 난 지금 목이 말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게요. 요즘 날이 좀 더워야죠? 7월말이라 그런지 물을 마셔도 마셔도 계속 목이 마르네요. 죄송하지만 물 좀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생수 한 병 가져다 드릴게요"



재빨리 눈물을 훔친 신예진이 부엌쪽으로 사라지자 난 그녀를 울린 그림을 바라봤다.



액자에는 유화인 듯한 한 소녀의 인물화가 담겨 있었다.



도대체 이 그림이 뭐길래... 고가의 그림인가? 피카소? 마네? 모네?



아는 유명 화가를 다 떠올려봐도 다 바보짓일뿐이다. 아는 그림이 하나도 없으니까.



"자 이거 마셔요."



"와, 에비앙이네요. 감사합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에비앙 한 병을 천천히 끝까지 마시며 신예진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는 내가 든 물병만을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와 시원하네요. 감사합.."



"한 병 더 마실래요? 에비앙 한 병 더 마시겠어요?"



신예진의 눈빛에 난 다시 에비앙 한 병을 더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와 흡 정말 감사합니다. 고객님. 선물은 마음에 드시나요?"



제발 이제 물은 그만요. 배부르다구요.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그녀는 내게 물을 권하지 않았다.



"네, 어디에 서명해 드리면 되죠?"



조용히 수령지에 서명을 한 그녀는 내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바로 일어났다.



그토록 간절했던 신예진과의 만남은 나만의 착각인 듯 그렇게 끝나버렸다.



나오는 길에 다시 만나게 된 덩치가 내게 물었다.



"우리 고문님께서 편찮으셔서 기분이 오락가락 하세요. 그러니 오늘 놀라셨다면 이해바랍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편찮으신데도 시간내서 만나도 주시고 친절하게 물도 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그렇게 느끼셨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어디가서 소문내고 그러지 않으시겠죠?"



***



"지점장님, 왜 갑자기 지점으로 들어오라고 하신거예요?"



"오늘 선물 배송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그러죠 뭐. 그리고 소개해 드릴 분도 있구요"



이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말쑥한 짙은 남색 정장의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공정위 카르텔 조사국장 민영환이라고 합니다."



"카르텔이요? 마약 카르텔 뭐 그런거요? 지점장님? 저 뭐 잘못한거에요?"



"하하하 아닙니다. 엄사장님. 사실 오늘 선물 여기 민국장님이 부탁하신거였거든요. 미리 말씀못드려 죄송해요. 오늘 제가 얼마나 쫄았게요. 화 나신거 아니죠?

그럼 민국장님. 두 분이 말씀하세요. 전 별로 듣고 싶지 않아서요. 뭐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전 나가 있겠습니다"



많이 알아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는 자리. 역시 지점장의 처세술은 좋았다. 지점장이 나가자 양복의 사내가 자리에 앉으며 내게 말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상세한 설명을 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 배송하시면서 보고 들으신 것 기억나는대로 모두 상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기억나는대로 상세히요? 정말로요? 오래 걸릴텐데요"



"네, 시간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다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작정하고 디테일을 살려 이야기를 시작하자 1시간이 쉽게 지나갔다.



"말씀중에 죄송합니다만 정말 놀랍습니다. 엄참기씨. 어떻게 그런 작은 부분까지 다 기억을 하시는거죠? 전 지금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입니다. 무슨 특수 훈련이라도 받으셨나요?"



"아니요. 그런 적 없어요. 그냥 기억이 나네요. 어디까지 했었죠? 어 맞다. 신예진 고객이 에비앙 생수를 가져다 주는 거예요."



아이 또 뭐야? 이 아저씨는 왜 이러는건데!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던 민영환 국장은 홀린 듯한 표정이 되어서는 나를 바라봤다.



"그림을 보고 울던 신예진씨가 뭘 줬다구요?"



"에비앙 생수요. 목 마르다고 한 적 없는데 두 병이나 주더라구요. 그런데 그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민국장은 급한 걸음으로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다가 서서는 Evian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이를 쓰는 그의 손은 한겨울 반팔입고 마트라도 다녀오는 듯 몹시 떨고 있었다.



에비앙 스펠링을 적는게 저렇게까지 떨일인가? 국장님 그 정도 스펠링은 저도 안다구요



"보세요. Evian. 이걸 거꾸로 읽으면 Naive 입니다. 나이브. 순진하다는 의미죠. 역시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군요."



"네? 뭐가 순진하다는 말씀이세요?"



"오늘 배송한 그 그림의 제목이 순진한 소녀입니다. 신예진씨가 그 그림을 기억하고 있다 이말입니다."



감격한 표정의 민국장은 화이트 보드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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