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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님의 서재입니다.

엄참기는 못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9000
작품등록일 :
2023.02.08 13:29
최근연재일 :
2023.03.22 10:48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50
추천수 :
11
글자수 :
149,807

작성
23.02.09 12:03
조회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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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화

DUMMY

화를 참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그 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됐다는 허무함이 사내의 무릎을 꺽으며 그를 주저 앉혔다.



"음... 분명히 나아졌었는데...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



한참 넋을 놓고 앉아 있던 사내가 일어난 것은 멀리서 반짝이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저기 생존자들이 있어. 누군가 살아 있다!"



혼자 미쳐 날뛰는 자신에게서 도망이라도 치려는지 사내가 불빛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 보다 훨씬 먼 곳까지 한 달음에 달려온 사내를 반긴 것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이었다.



용케도 재앙을 버텨낸 건물의 갈라진 벽면에서부터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태이지만 사내에겐 이 건물에 들어가지 않을 명분따위는 없었다.



뭐라도 떨어질까 싶어 연신 머리 위를 힐끔거리며 실내로 들어선 사내의 눈동자가 놀람으로 확장됐다.



"여기 ... 잠깐... 헉! 어떻게... 여기가 거길 리는 없는데... 절대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이렇게 들어선 실내는 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던 장소와 너무 닮아 있었다.



한 번도 앉아 본 적 없는 짙은 갈색의 고풍스러운 흔들 의자와 그 옆 협탁 위에 올려져 있는 두꺼운 가죽 표지의 책.



바닥에 넓게 깔린 화려한 문양의 털이 짧은 자주색 양탄자, 항상 장작을 태우며 타고 있는 한번도 꺼진 것을 본 적 없는 벽난로.



결정적으로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저 방패와 칼, 그리고 균형과 조화를 상징하는 저 엠블램.



여기는 바로 그가 즐겨하던 온라인 게임 스페이스 사가의 상점,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 믿을 수 없는 동기화의 마지막 퍼즐은 카운터 뒤에서 들려 온 소리에 의해 맞춰졌다.



"어서오세요 패트릭 기사님"



"어? 너! ... 뭐야? 넌 드레이크?"



염소 수염에 붉은 머리. 검은 로브에 챙이 큰 모자를 쓴 사람중 사내의 스페이스 사가 닉네임을 아는 인물.



그런 사람은 스페이스 사가의 상점 주인 NPC, 드레이크 뿐이다.



"하하하 맞습니다. 패트릭 기사님. 제가 반가우신 모양이군요. 저 또한 기사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살가운 인사를 하는 드레이크는 이 곳 만큼이나 낯설었다.



'사무적이고 무감정한 대사로 유명한 NPC 드레이크가 이런 드립을?'



사내가 이질감으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자 어색한 정적이 상점안을 가득채워 버렸다.



이를 깨달은 사내가 필사적으로 할 말을 찾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 알약을 사겠다고 하겠는가? 아이템을 팔겠다고 하겠는가?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장작소리마져 들리지 않았더라면 사내는 벽틈을 통해 밖으로 뛰쳐 나갔을지도 모른다.



"패트릭 기사님. 거기 그렇게 계시지 마시고 이리 가까이 오시지요. 제가 기사님께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또 한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드레이크는 사내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사내가 드레이크에게 다가가자 테이블 위에 3장의 카드가 보였다.



하지만 사내는 카드에서 시선을 거둬 드레이크를 바라봤다.



"반가워 드레이크. 이렇게 실물을 영접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



스페이스 사가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NPC. 하지만 가장 존재감 없는 NPC가 바로 사내 눈앞에 서 있는 상점 주인 드레이크다.



말하자면 출입문 손잡이 같은 느낌. 자주 보고 사용하지만 그려 보라고 하면 모양이나 색상이 기억나지 않는 그런 느낌.



현실에서 마주한 드레이크는 2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거한이었다.



깊은 눈매와 강인한 턱선, 그리고 서양인 특유의 높은 콧대와 그 밑에 잘 다듬어진 염소 수염의 멋드러진 조화.



게다가 로브 밑으로 언뜻 보이는 근육질의 팔뚝, 드레이크는 한번쯤 헐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미남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뒹굴기라도 한건가? 옷 상태가 영... 맨날 작은 모니터로만 봐서 내가 디테일을 놓쳤던건가?"



사내의 속말처럼 드레이크의 챙 큰 모자 위에는 꽤 많은 양의 허연 먼지가 수북히 내려 앉아 있었고



분명히 멋져 보이라고 둘렀을 로브는 여기 저기 찢어지고 군데 군데 오염이 되어 있어 그를 초라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사내를 경계하며 긴장한 듯한 묘한 느낌의 눈빛은 드레이크와 어울리지 않았다.



"흠 흠 흠!"



사내의 이런 생각을 읽은건지 아니면 그의 시선이 무안했는지 드레이크가 헛기침을 하며 사내의 주위를 흐트러 뜨렸다.



"기사님,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하하하하

잘생긴 제 얼굴은 이제 그만 보시고 테이블 위의 카드를 보시는게 어떠실까요?"



'헐... 점 점? 드레이크가 이런 말을 한다고? 너 좀 낯설다'



탁 탁 탁!



잠시 생각에 취해 멍해 있던 사내는 갑자기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페트릭 기사님, 테이블 위의 카드에 집중해 주시겠습니까? 기사님께 매우 중요한 카드입니다."



어? 이거 봐라? 테이블까지 두드리며 사내의 주위를 끌기에 여념이 없는 드레이크의 행동에 사내는 당황했다.



"지금 안고르시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부와 명예, 조직과 권력, 자유와 창의의 카드중 한 장만 선택..."



짜증나는 잡상인의 말을 짤라내 듯 사내가 손사래를 쳤다.



"아아아~ 그만!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장사질이야 장사질이! 지금 난 거래하러 온 거 아니라고! 뭐 하나만 물어 보자."



사내는 질문에 앞서 정리가 필요한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사실 오늘 내가 탄 지하철에 뭔가 부딪쳤거든. 그땐 그게 뭔지 몰랐는데 지금 보니 그게 혜성인거 같단 말이지. 그래서 서울이 다 작살이 났단 말이지."



갑자기 사내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그런데 이렇게 너를 만나고 보니 작살난 데가 서울이 아니라 스페이스 사가의 쉘터인 밸런스 시티 같기도 하단 말이야.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사내의 애절한 눈빛과 드레이크의 사무적이고 지루해 보이는 눈빛은 매우 상반되어 보였고 처음에 보이던 드레이크의 긴장한 눈빛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여기는 스페이스 사가 상점입니다."



"솔직히 말해봐. 혹시 니가 서울에 온 거 아냐? 어떻게 갑자기 내가 스페이스 사가 상점으로 올 수가 있어?"



"전 스페이스 사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 상점을 떠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상점을 찾으신 건 항상 패트릭 기사님 아니셨나요? 잊으셨습니까?"



드레이크의 대답은 반박할 수 없는 NPC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답이었다.



"너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말해 봐! 내가 마법템과 금빛 아모를 두른 금발의 패트릭으로 보이냐고?"



"하하하,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기사님을 알아보지 않았겠습니까?"



사내는 급히 자신을 손과 몸을 내려다 봤지만 보이는건 낡은 단화와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지긋 지긋한 택배 조끼, 그리고 군데 군데 까진 맨손뿐이었다.



"저도 기사님님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직도 뭐가 뭔지 어수선한 사내에게 드레이크가 노련하게 거래를 걸어왔다.



"니가? 나한테?"



"혹시 엄프 (UMP)라고 아십니까?"



"엄프? 그게 무슨 템인대? 혹시... 간밤에 새로운 패치 나왔어? "



사내의 대답에 드레이크의 눈에 이채가 띄였다.



"그럼 같이 오신 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나도 그게 궁금해. 분명히 나말고도 지하철에 사람들이 더 있었거든. 그런데 여기엔 아무도 없더라구. 넌 봤어?"



"전혀요. 저는 기사님과 같이 오신 분이 참 궁금합니다. 뭔가 특별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만"



"특별하다고? 아... 걔들.. 그냥 학원가기 싫어하는 고딩들이야. 근데 넌 단수, 복수 구분을 잘 못하는구나."



쿠구구궁!



갑자기 멀지 않은 곳으로 부터 큰 소음이 진동과 함께 전해져 왔다.



"아 씨발, 깜짝이야! 드레이크! 여기 무슨 큰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폭탄이라도 터졌던거 아니냐구. 밖에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어떤 미친 놈이 밸런스 시티에 폭격을 하냐고? 뭐야? 이거 새 패치에 있는 퀘스트?"



"그 질문은 같이 오신 친구분께 물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뭔 소리야? 그 고딩 둘이서 이렇게 만든거라고?"



뭔가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막막함 때문일까? 사내의 가슴으로부터 다시 열감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바닥부터 다지며 쌓아올리는 듯 자박하게 시작하여 견고하게 열이 쌓여가는 기분이 들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는 개지랄일 뿐이라는 생각에 그는 조급해졌다.



"드레이크, 여기 이상해! 나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넌 여기서 어떻게 나가는지 알고 있지?

여기가 진짜 상점이면 당연히 나갈 수 있는 거 맞잖아? 안그래?"



사내를 빤히 바라보는 드레이크가 작심이라도 한 듯 단호히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나가실 수 있습니다. 간단한 퀘스트만 완료해 주시면 말이죠."



"퀘스트? 상점에 무슨 퀘스트가 있어?"



사내의 볼멘 소리에 드레이크가 본심을 드러냈다.



"친구분! 친구분을 불러 오세요. 그리고 여기에 있는 카드를 한 장 고르시면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짜증스러운 사내의 표정에도 드레이크는 다시 한번 테이블을 두드리며 카드쪽으로 사내의 이목을 끌기 위해 애를 썼다.



"부와 명예의 카드, 조직과 권력의 카드, 그리고 자유와 창의의 카드 뭐든 좋습니다.

한 장만 선택하시면 됩니다!"



급정거하듯 말을 멈춘 드레이크, 어금니를 악물며 작심하듯 말을 이어 갔다.



"좋습니다. 이렇게 하시죠. 친구분을 모셔오세요.

그리고 서로 각자 카드를 한 장씩 고르시면 제가 선택한 카드의 능력을 기사님과 친구에게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여기서 나가는 방법도 알려드리겠습니다"



투두두툭!



사내의 표정이 이지러지며 벽 균열에서 잔해들이 떨어졌다.



"난 지금 내가 산건지 죽은건지 여기가 어딘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뭐? 파티원을 모아 오라고? 이까짓 카드 때문에?"



사내의 가슴에 쌓이던 열이 일정선을 넘어서자 그의 눈동자 색이 옅어졌다.



"그리고 뭐? 카드를 안고르면 여기서 못나간다고? 니가 지금 날 협박하는거냐?"



2미터의 근육질 상대를 향해 날 선 말을 토해내는 사내가 무척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시소라도 타는지 사내가 톤을 높이자 드레이크가 톤을 낮췄다.



"퀘스트 클리어하는거 좋아하시잖습니까?

그리고 이게 어디 절 위한 것입니까? 다 패트릭 기사님과 친구분을 위한 거 아닙니까?

무엇을 고르셔도 두 분께 무조건 좋은데 뭘 망설이십니까?

기사님을 위해 준비한 이 드레이크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진심 어린 말에 사내가 감화되기라도 기대하는지 드레이크의 눈은 희망의 빛으로 가득 찼다.



"아... 씨발, 진짜 어이없네. 깜빡 속았었네.

야 너 뭐냐? 뭔데 어디서 어설프게 드레이크 질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71 다위
    작성일
    23.04.05 01:43
    No. 1

    주인공 정신병심한가요? 현실감각이있는지도모르겠고
    태도도 오락가락해서 왜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분노조절장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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