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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님의 서재입니다.

엄참기는 못참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9000
작품등록일 :
2023.02.08 13:29
최근연재일 :
2023.03.22 10:48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047
추천수 :
11
글자수 :
149,807

작성
23.02.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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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화

DUMMY

"정진기가 제게 상을 준다구요? 그럴리가 있겠어요?"



징징징



울리는 전화를 내려다보니 받고 싶은 전화가 아니었다.



"조회도 끝났는데 전화 받지 않고?"



"이거 잘못 온 전화에요"



얼마간 울리던 전화기가 잠잠해지자 액정에 음성메세지 표시가 떴다.



외할머니의 전화는 자꾸 피하게 된다.



항상 같은 소리에 같은 걱정을 하다가 한 번 안내려오냐는 말로 마무리되는 메세지.



온통 내 걱정뿐인 메세지인데 나는 왜 항상 혼나는 것 같은건지...



왜 너만 살아 왔냐고? 내 딸은 어디 갔냐고?



***



조회를 마치자 마자 사무실 밖으로 뛰어 나온 난, 오늘 배달 일정을 확인했다.



와우 이거 보소? 이거 탄착점이 너무 산개해 있는거 아님? 이렇게 사격했다가는 얼차려가 정도가 아니라 영창행인데!



어쭈 정진기 한번 해보자는거지? 내 배송지를 수도권 동서남북 외곽 구석 구석을 꽉채워가며 기가막힌 코너웍을 구사했네. 나를 삼진 시키겠다는 거지?



배송화물 수령지와 배송지의 조합을 어찌나 잘 맞췄는지 정진기의 열정과 집요함에 리스펙트!



배송건은 적지만 이 정도 이동 거리면 밤 9시까지는 뺑뺑이 당첨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편의점의 따끈한 라면 국물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지난 주까지는 그랬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오리가미를 한다.



삑!



의정부

출근시간이라 사람 많았을텐데 일찍 오셨네요? 저희 거래처가 좀 멀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삑!



천안

와 벌써 오셨어요? 새벽에 출발하셨나봐요? 저희한테 첫번째 오신 것 같은데.. 이거 특별대우받는 기분인데요. 이거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삑!



인천대 입구

일찍 출발하셨나봐요? 덕분에 오늘내로 일처리가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바른 소화물에 주문 많이 넣어야겠는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삑!



마천

이렇게 일찍 오는 픽업은 처음이네요. 아침식사는 하셨어요? 근데 표정이 너무 좋으시다. 보는 사람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네요. 커피 한잔 하실래요? 막 내렸는데.



배송이 10시전에 마무리 됐다.



피곤하지 않은 나의 미소는 싱그러웠고 즐거운 나의 인사말은 유쾌했으며 행복한 나의 감사말은 감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듣는 건 낯간지러운 칭찬이고 보는 건 환한 미소며 받는 건 감사인사였다.



그렇지만 나는 욕심내지 않는다.



일을 더 달라고 하거나 자랑을 해서 정진기나 동료들의 이목을 끌만큼 어리숙하지 않으며



고생 한번 직사하게 해보라며 최고 난이도의 테스크를 준 직장 상사를 당황시키거나 실망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난 시키는 일을 티 안나게 열심히 하는 성실한 직원중 한 명이고 싶을 뿐이다.



***



"한 달 잠깐이네. 참 세월빨라. 내일이 대망의 이달의 사원 시상일인가?"



정진기는 월초 야심차게 발표했던 이달의 사원 선정을 위해 지난 한달간 직원들의 근태 및 실적을 파악하고 있었다.



배송지연, 오배송 그리고 파손 등에 대한 개인별 현황과 고객 불만 및 칭찬, 만족도 지수는 그가 항상 강조하는 바른 소화물인의 기초기본으로 이달의 사원 선정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이다.



"역시 이선웅씨와 박형만씨의 실적이 눈에 띄는군. 지난 주까지만해도 비슷비슷했지만... 후후후 내가 챙기기 시작하니까 차이가 벌어지잖아 . 그러길래 기회줄 때 잘했어야지."



오만한 표정의 정진기가 손가락으로 스크린 위의 박형만이라는 이름을 톡톡 두드렸다.



"그럼 초대 이달의 사원은 이선웅인건가?"



정진기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실적을 내림차순으로 재배열 했다.



그러자 모니터에서 보이면 안될 이름이 나타났다.



"이게 뭐지? 엄참기? 고객 만족도 만점에 칭찬 전화가 하나 둘 셋... 이게 도대체 몇 통이야?"



분명히 정진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직장 상사에게 무례하고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던 엄참기에게 업무로 교훈을 내렸었다.



그의 무자비하고 졸렬한 복수는 직원들에게 그리고 특히, 엄참기에게 명확한 메세지를 전달했다고 확신했다.



나한테 까불면 뭐 된다고!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건지 정진기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말도 안되는 배송 시간과 거리에도 불구하고 1등이라니...



애먼 소팅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계속 클릭하던 정진기는 밀려오는 후회에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처음부터 엄참기의 기록을 꼼꼼히 확인했었어야 했다.



자신이 너무 안일했었고 나태했었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엄참기는 이달의 사원이 된다.



정말 자신이 강조했던 대로 엄참기는 초대 이달의 사원이 되어 회사 역사속에 남게 될 것이다.



갑자기 길길이 날뛰는 이경찬 이사의 모습이 떠오르자 소름이 돋는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자신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스템에 모든 기록이 남겨진 상황에서 정진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뭔가 있을꺼야. 분명히 뭔가가 있을꺼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정진기! 생각을..."



그렇게 모니터 앞에서 중얼대기를 몇 시간, 움직일 줄 모르던 정진기는 어슴프레 밝아오는 빛을 보며 다시 한번 좌절감에 치를 떨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자신의 머리를 여러번 쥐어 박더니 떨리는 손을 자판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뭔가를 치기 시작했다.



"이달의 사원, 엄참기"



"엄참기, 너 드디어 짤렸구나. 이 시간에 밥먹자고 연락한걸보니 말이야."



나는 분명히 한가할 김도형에게 전화를 했다.



"도형아, 넌 이 형님을 어떻게 보는 거야? 형님이 게임 딱 끊고 바짝 신경 써서 일했더니 회사에서 바로 이달의 사원상이랑 금일봉을 집어 주더라고. 그래서 점심 사줄라고 전화했지."



"오 이런 기특한 청년을 봤는가? 평상시에 좀 멕여놓으니 이렇게 귀여운 짓을 하네. 그런데 스페이스 사가를 끊었다고? 니가?"



"뭐 그렇게 됐다. 스페이스 사가는 이제 생각만 해도 소름이다. 완전 끝이다."



"엄참기가 게임을 끊다니. 이게 니가 점심 산다고 전화한거보다 더 센세이션한데. ㅎㅎㅎ 그럼 애들중 되는 애들 있는지 전화해보지 그래"



"승찬이 그 새끼는 밤새는게 사업인가봐. 받을 때까지 전화했더니 아주 개지랄을 하더만. 그래서 걍 자라고 놔줬고 우리 겸둥이 호영이는 선형대수 온라인 수업 듣는다고 안된데."



"그럼 욱이한테도 전화했었겠네?"



"당연하지. 혹시 월차라도 낼랑가 싶어서 전화했더니 부산 출장 가있더만."



"엄참기, 너 뭐냐? 내가 첫 빳따 아닌거야? 심지어 꼬래비잖아! 야 나 기분 나빠서 못나간다. 알량한 금일봉으로 너 처먹고 싶은거 다 처먹어라."



"워워워. 도형아 들어봐. 그깟 순서가 뭐가 중요하냐? 봐봐, 결국 내 옆엔 니가, 니 옆에 내가 있잖아. 이게 제일 중요한거지, 안그래?

그리고 정말이지 넌 내게 감사하게 될꺼야. 내가 너한테 극락의 맛을 보여줄 모양이니까!"



"아 이새끼 또 뭔데 이렇게 설레발일까? 무시하자니 성의가 갸륵하고 까자니 솔깃하고. 씨발, 아 이 팔랑귀!"



"문자로 장소 찍어줄테니 가슴 벅차게 숨차게 와야 한다. 만났을 때, 헐떡대지 않으면 나 많이 섭섭할꺼야."



***



혹시나 해서 당겨본 은하인의 병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에 뭐라도 보일까 싶어 기웃대 보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출입문에 비친 모자라 보이는 엄참기라는 사내뿐이었다.



"야 이 새꺄. 헉 헉 헉. 그 설레발을 치면서 불러온 데가 겨우 여기냐? 뭐 극락? 지금 나랑 장난까냐? 너 여기가 어딘지나 알고 날 부른거야?"



도착하자마자 속사포를 쏟아붓는 김도형은 억울하고 분해서인지 내 부탁처럼 헐떡이며 내 앞에 나타났다.



"여기가 어디긴 어디겠니. 응? 짜장의 성지지. 니가 짜장 맛을 알아?"



"야 이 빙신아! 이 건물, 우리 아버지 건물이잖아. 난 일주일에 한번씩 관리하러 여기 들른다고. 너도 고등학교때 여기 1층 피씨방에 같이 몇 번 왔었잖아. 기억안나냐?"



아 그랬었나? 어쩐지 언젠가 한 번 와 본 듯 하긴 했어. 잠깐 한 달에 한 번씩 왔었다고?



"도형아. 그럼 너 여기 세입자들 잘 알아? 그러니까 여기 여기에 있던 은하인 정신과 의사 아냐고?"



내가 굳게 닫힌 병원 출입문을 탕탕 두드리자 김도형이 기억을 더듬었다.



"이 자리가 병원 자리였다고? 아닌데. 여기가 무슨 매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어쨋든 병원은 아니야. 저기 좀 보고 말해라."



김도형의 손가락 끝으로 복도끝 창문너머의 세련되고 깨끗해 보이는 병원 밀집 상가가 보였다.



"조기 바로 옆에 병원으로 가득찬 현대식 건물이 있는데 어떤 병원이 이런 40년 된 낡은 상가에 개원을 하겠냐? 모양 빠지게."



허 이 놈 참. 니가 왜 아버지한테 여태 인정을 못받는지 이제야 알겠다.



"아냐 새꺄. 너 여기 건물 관리하는거 맞냐? 쯧쯧쯧. 내가 며칠전에 여기 이 병원에서 몇 시간 동안 상담을 했거든. 네 눈은 가죽이 모자라서 걍 뚫어 놓은거냐?"



"엄참기, 정신과는 왜?무슨 상담을 한건데. 너 또 그런거야? 졸업하고는 괜찮았잖아?"



어 흐름이 묘하다. 도형아 너의 그런 눈빛은 너와 나 모두에게 해로워. 빠른 주제 전환이 필요하다.



"그냥 요즘 잠이 잘 안와서 수면제 처방 받으려고 왔던 거야. 그건 그렇고 여기 온 목적을 이뤄야하지 않겠어? 빨리 따라 들어와!"



갸웃대는 김도형을 끌고 중국집으로 들어가면서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 같은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큰 맘 먹고 주문한 탕수육의 바삭함을 몽땅 부먹으로 작살을 내놓더니 본체만체 짜장만 두 그릇을 조지는 김도형.



"참기 니말마따나 짜장이 예술이네. 여길 그렇게 자주 왔었는데 이걸 몰랐네."



난 지금 심폐소생이 불가능한 부먹 피해자 탕수육과는 전혀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꼭 지적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고 한다. 인간 김도형에게!



"야 야 김도형! 좀 작작 해라.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냐? 왜 중국집만 오면 니 짜장 속에 단무지를 그렇게 쳐 박아두냐?"



도형이는 집에서 눈치를 많이 봐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별거 아닌걸 숨기고 꿍치는 버릇이 있었다.



"아저씨! 여기 단무지 추가요! 그 새끼 단무지 가지고 지랄은.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하면 이해라도 하는데 먹고 있는데 그냥 말없이 빼가면 기분이 어떤지 아냐?"



역시 결과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래 미안하다, 도형아. 천천히 단무지 많이 먹어라.



"그나저나 이젠 너도 건물관리하는거야? 그 동안 니네 아버지가 니 형들만 시키셨잖아?"



나의 질문에 김도형이 의기 소침해 졌다



이 새끼는 식구들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으니 무슨 말을 못하겠다.



"어, 아버지가 뭐 하고 싶냐고 물으셔서 건물 관리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한번 보시겠다고 하면서 올 초부터 시키셨어."



"그래 어때? 할만해?"



"할만하고 말고가 어딨어. 그냥 아버지 눈에 들어볼려고 안간힘 쓰는거지. 너무 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눈치도 보이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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