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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님의 서재입니다.

엄참기는 못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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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0
작품등록일 :
2023.02.08 13:29
최근연재일 :
2023.03.22 10:48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1,128
추천수 :
11
글자수 :
149,807

작성
23.03.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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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9화

DUMMY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바로 손을 뻗어 신발 상자를 책상 밑에서 끌어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필름 카메라밖에 없던 시절에 인화된 사진들. 사진 한켠에 선명한 붉은 색으로 날짜가 찍힌 수백장의 사진들이 박스안에 담겨 있었다.



"1992년, 1993년..."



엄마는 어린 나를 안은 채 환히 웃고 있었다.



아마 그 사내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리라.



뒤적 뒤적 뒤적



이 많은 사진중 단 한장의 사진에도 그 사내는 보이지 않는다.



왜 우리와 함께 사진이라도 찍으면 뭐? 흔적이라도 남을까봐 걱정이 됐냐?



그러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우리 사진을 많이 찍었던 거냐?



나와 엄마가 너의 전리품이라도 된다고 생각한거냐?



"이 씨발!"



만나는 그날까지 참았어야 했는데 결국 입밖으로 터져나온 쌍욕!



감정이 터진 것이 원인일까? 갑자기 가슴이 막 뛰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오랜만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다시 용광로같이 뜨거운 열감, 파괴와 파멸의 열감이 다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안된다. 외할머니가 계신다. 여기서는 절대 안된다.



"참기야 잠이 안와? 잠자리가 불편해?"



급기야 내가 뱉어버린 고약한 소리가 외할머니의 단잠을 깨웠나 보다.



"아니에요 할머니. 제가 잠꼬대가 좀 심한 편이라서요. 죄송해요."



"잠이 안오면 우유라도 좀 데워 줄까?"



말로만으로도 따뜻하게 전해지는 저 마음.



외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그 사내에 대한 증오가 한층 더 타오른다.



"아니요. 그냥 주무세요. 저도 그냥 잘께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렇게 한동안 할머니의 숨소리가 잦아들기를 또 규칙적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나를 달래고 달랬다.



"후우~"



조금씩 그리고 느리지만 뜨거웠던 열감이 잦아드는 것이 느껴지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달의 궤도가 적당했는지 불꺼진 방안으로 훤한 달빛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바닥에 흩어진 사진들이 다시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를 오른쪽으로 안고 카메라를 향해 볼 수 있도록 각도를 틀어 서서는 밝게 웃는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나를 왼쪽으로 안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또 다른 엄마도 있었다.



엄마와 나의 복장은 여행지에서나 입을 법한 화려하거나 과한 복장이 아닌 때로는 두꺼운 겨울 패딩과 털모자에 장갑, 때로는 반팔에 반바지. 대체로 계절과 주위 환경에 충실한 평범한 복장이었다.



아마 안겨 있는 나마저 다양한 표정으로 울지 않았거나 손을 바꿔가며 쳐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배경만 바꿔서 카피 페이스트 했다고 해도 믿을 법한 비슷 비슷한 사진들.



여행 장소하고는. 이거 봐봐. 좋은 데는 갈 형편은 안됐나보지? 어디 순 바위, 산, 허허벌판 이런 데가 배경이잖아. 어디 공사현장 따라다니며 일이라도 한거냐?



다시 아빠라는 작자에 대한 실망감과 적개심에 치가 떨려온다.



어 잠깐! 여기는...



나도 아는 곳인데.



주섬 주섬



달빛으로도 또렷이 보였지만 난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확신을 하고 싶었다.



핸드폰 플레시 빛을 반사시키며 하얗게 숨어드는 반들 반들한 사진들을 달래가며 이리 저리 살피고 또 살폈다.



"저 바닷가는 올해 생일에 지하철 타러 갔다가 처음으로 오리가미 한 곳 같은데..."



다시 몇 장의 사진을 뒤적이자 더 놀라운 사진이 눈에 띄었다.



"조 피자?! 맨하탄의 그 조피자?"



조피자 앞에서 똑같은 포즈로 서 있는 엄마와 나. 그렇다면 내가 애기때, 엄마와 나, 그리고 그 인간 모두, 이렇게 미국을 갔었다고?



사진을 더 뒤적인다.



길고 커다란 다리가 가로지르는 넓은 호수를 배경으로 찍은 또 다른 사진.



"여기도 외국?"



그 사진은 다리와 호수 이외에 수백명의 외국인을 배경에 담고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거지? 무슨 돈으로 2년도 안되는 그 짧은 기간동안 해외 여행을 이렇게 다닌거지?



어디서 사기친 돈으로 엄마 혼을 쏙 빼고는 흥청망청 하다가 지금은 교도소 같은데 들어가 있는거 아냐?



생각의 진로가 바뀌니 사고의 틀까지 바뀌면서 이전에 보았던 모든 사진들의 배경이 외국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로 외국인지 국내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



끌리듯 손에 들어 버린 한 장의 사진.



다른 사진은 몰라도 이 사진 한 장만큼은 명백히 알아 볼 수 있다.



밤하늘에 또렷이 빛나는 천칭 자리아래 어김없이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자 사진.



이 사진은 엄마가 나를 자주 데리고 가던 독립문역 5번출구에 있는 안산에서 찍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저 뒤 흐릿하지만 분명히 보이는 자락길 전망대라고 적힌 표지판! 저건 거기에 있는거니까. 얼마전에도 난 봤으니까!



내겐 엄마와의 추억의 장소인 이 곳이 엄마에겐 그 인간과의 추억의 장소였구나.



씨발! 입이 쓰다.



"조시훈 전도사. 믿음이 흐려지신 겁니까?"



"아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럴리가 아니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지부장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가 며칠만에 퇴원에서 지부로 들어올 때, 오른쪽 눈 두덩이가 푸르둥둥하게 크고 흉하게 부어오른 조시훈을 한번에 알아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무슨 둔기에라도 맞은 듯 안구의 핏줄까지 다 터져 버린 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진저리가 나게 만들었다.



"나도 조 전도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럴리 없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다시 한번 조시훈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가에 짙은 주름이 잡힌다.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와 너무 거리가 멀어서 말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억울해진 조시훈이건만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 또한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말이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부장님.

제가 전달한 엄참기라는 사내의 행동들이 교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메시아의 기적과 흡사하다는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조 전도사!"



벼럭치든 쩌렁 쩌렁하게 울려퍼지는 지부장 도성욱의 고성에 조시훈은 말을 멈추었다.



"지금 어디서 메시아님의 성스러운 행사를 한낱 미천한 비교도의 잡술과 비교를 하는 겁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전도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도성욱의 떡 벌어진 가슴과 커다랗고 우락부락하게 부푼 둥근 어깨, 그리고 그 아래에 정신봉처럼 굵고 강인하게 뻗은 두 팔에 힘이 들어가자 그의 팔뚝을 타고 뱀같은 힘줄들이 손끝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자 그의 손이 올려져 있는 조시훈의 어깨가 금방이라도 움푹 패이며 피와 살점들을 흩뿌릴 것만 같았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때가 언제입니까? 그 때가 바로 사탄이 메시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을 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번 도성욱의 팔뚝 힘줄들이 요동을 치자 조시훈의 인상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엄참기 그자가 영적인 움직임을 가장한 뱀의 사술로 조 전도사와 교도들을 속이고 해를 입혔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도성욱이 어깨에서 손을 떼며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기자 조시훈의 입에서 조그맣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처음에 교주님께서 메시아로부터 엄참기 그자에 대한 계시를 받으셨을 때, 우리 모두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조시훈도 그 때 일었던 교단내 혼란스러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시훈 전도사 덕분에 모든 것이 명확해 졌습니다. 엄참기 그자는 메시아께서 경계하라고 지목한 자임이 틀림없습니다."



도성욱이 몸을 틀어 다시금 다가서자 조시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며 긴장되었다.



그렇게 다가 오던 도성욱이 조시훈의 엉망이 된 얼굴을 바라보며 멈춰섰다.



"제가 조 전도사의 말씀을 교주님께 전하고 다음 행동에 대한 지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조 전도사는 당분간 회개동에서 근신하며 치료와 신앙심을 바로 잡는 시간을 갖도록 하세요."



결국 회개동이란 말인가?



임무에 실패하면서 어느 정도는 예상한 상황이지만 실제로 지도를 받게되자 조시훈은 낙담이 되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도성욱의 뱀을 휘감은 듯 억센 손이 조시훈의 어깨를 다시 한번 되짚으며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엄참기의 사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시는게 좋겠습니다.

보통 사술이라는게 실제하는 경우보다는 임무에 실패한 패잔병이나 상대에게 겁을 집어 먹은 비겁한 자들의 핑계속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는게 제 생각이거든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도성욱의 손아귀는 공업용 바이스라도 되는지 그의 말에 동의 할 수 없는 조시훈을 단단하고 빡빡하게 조여왔다.



"으으읔. 음.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그럼 이제 나가 보세요. 제가 부를 때까지 회개동에서 몸 조리 잘하시구요"



힘없이 문밖으로 빠져 나가는 조시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도성욱의 눈빛에는 그를 향한 안쓰러움이나 동정따위가 보이지 않았다.



"블랙 옵스 출신의 대통령 경호원이라는 작자가 저 모양이 되도록 당하고 오다니... 저 자를 자신있게 추천했던 나만 우습게 되버렸구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도성욱의 각진 양 턱에 근육이 도드라지며 이를 악무는 것이 보였다.



"정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맞을까? 같이 있던 자들도 비슷한 소리를 하긴 했지만... 좀 더 사람을 붙여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가 창가쪽으로 다가가며 바라 본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다.



***



"여보세요? 거기 시종 여행사죠? 지하철역에 있는 광고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그 광고에 나오는 곳으로 여행가고 싶어서요"



[네, 고객님, 문의 전화 감사드립니다. 실례지만 어느 지하철역 광고를 보고 연락주신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잠깐만요 그러니까 거기가... 홍대역이요. 그 광고에 수영복 입은 여자 모델이 나오는데... 어휴. 혹시 광고 모델 이름 알 수 있을까요?"



[네? 고객님?]



"아니 그게 아니구요. 그러니까 그 광고를 본 게 작년 2월 29일이까 거의 1년 전인데요. 그 날이 제 생일이었는데요 친구들이랑 홍대에서 ..."



나도 모르게 묻지도 않은 투머치 정보를 상담원에게 업로드해 버렸다.



[아... 네... 고객님. 그러셨군요? 잠시만 대기해 주시겠어요? 잠시 확인해보고 말씀드릴께요.]



경쾌한 음악이 흐르자 현타가 온다.



언제 봤다고 쓸데없는 말을 두서 없이 주절되니? 안해도 되는 말로 상담원을 괴롭히고 있잖아. 이 빙신아



잊지 말자. 전화 상담원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것을.



잠시 기다리자 음악이 멈추며 상담원이 돌아왔다.



[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 문의 하신 여행지는 미국 LA 인근의 샌 클레멘트 해변입니다. 그럼 미국 서부 여행으로 알아봐 드릴까요?]



"어디라구요?"



[샌 클레멘트 해변입니다. 고객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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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23.03.02 21 0 11쪽
17 16화 23.03.01 20 0 11쪽
16 15화 23.02.28 25 0 11쪽
15 14화 23.02.27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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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화 23.02.14 3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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