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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Kiri 님의 서재입니다.

여명의 아일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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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설탕
작품등록일 :
2021.05.24 19:47
최근연재일 :
2023.05.1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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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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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 RESTORE_GHOST - EP-2 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도시에 대해서

DUMMY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다, 라는 말 아시나요? 요즘 세상에 그런 잔혹한 사람들이 누가 있겠냐만. 경제학의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나봐요. 다들 좆되고 있을 때 우산을 펼쳐 어떻게 피해보려고 하는 시기에 우산이 없는 사람은 그저 맞을 수 밖에 없는거죠. 참 잔혹한 세상이에요.


다행히도 지금 이야기의 시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에요. 창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푸른색 어둠은 사라지고 검은색 어둠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서 집들이 밝히는 주황 불빛들.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버린 누군가들을 찾기 위한 검은색을 내쫒은 하얀색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이렇게 세상은 어두워졌음에도 모두가 비를 잘 피하고 있어요. 우산 없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씌워주거나 처마 밑에서 '하하! 우리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떠들거나 뭐. 사랑을 싹트고 있겠죠. 경호원들은 다행히도 그런 분위기를 홰방놓으며 '아크라이트 메르힌'이라는 친구를 못 봤는지 묻고 있는군요. 휴.


그리고 그 친구들도 비를 피하고 있었어요. 대신 빛은 없었고 어두컴컴하게, 먹구름 근처까지 올라온 상태로 비를 피하고 있었죠. 그리고 겸사겸사 어둠의 도움을 받아 경찰의 추격도 피하고 있었고요. 이 친구들은 이 광경을 오브미의 꽤 거대한 비공정 라운지에서 창문에 늘어붙은체 보고 있었어요.


메르힌이 유리에 달라붙은체 말해요. "오브미씨 마저도 부자네요. 저희는 아까 작전에 저희의 유일한 교통 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날틀을 정부기관 열차에 꼴아박아서 거지가 되버렸는데."


하르델린은 메르힌의 옆에서 유리에 달라붙어 있었군요. 그 하르델린씨가 말해요. "아하하~ 메르힌씨~ 그거 제 날틀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카리샤는 저 옆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말해요. "일단 경찰에 안 붙잡힌 걸 다행으로 여겨야죠."


퍼티가 말해요. "그래요. 그렇긴 한데, 여기 안전한 거 맞아요? 보통 카페 주인이 지하실에 3층짜리 격납고를 만들어서 비공정을 보관하던가요."


"보통 카페 주인은 다리 옆에 비밀리에 권총을 매지도 않아요. 음. 그래요. 바 테이블 밑이면 저도 인정했겠지만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느흐 므드 븝르브게서. 므르릴." 자스민이 말했어요.


자스민의 모습은, 카리샤를 자꾸 물려고 해서 입마개를 씌웠고. 그 다음에는 수갑을 찼고. 마지막에는 발에도 수갑을 찼음에도 꽤 무서웠지만. 그보다 메르힌에게 더 무서운 건 이 비공정은 뭐하던 비공정이길래 서랍에 수갑이 절대 장난감 퀄리티가 아닌 걸로 가득한가. 였어요.


그런 메르힌의 걱정은 뒤로 하고 자스민의 말은 알렌이 번역해줬죠. "너희 모두 잘라주시겠데요. 주로 머리를."


카이디가 말해요. 와인을 한 잔 들이키고. "정말 최고의 밤이군. 이 도시의 모든 친구들은 우리를 쫒고 있고. 우리 안에 있는 친구 중 한 명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고. 게다가 다종족이기까지 하다니. 정말 평화로울 수밖에 없겠어."


그 다음에 냉장고를 봤죠. 우리의 란디는 냉장고에 고개를 파묻고 열심히 닥치는대로 드시고 계셨어요. 하지만 다들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했죠. 저 친구는 그럴 자격이 있었어요. 수십KM을 쫒아오는 날틀과 비공정에 대항해서 총알과 대포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겨우 기어왔으니까요. 냉장고 하나 쯤이야. 그리고 다들 지꺼 아니라고 신경도 안 쓰기도 했고요. 그게 더 중요했나?


그렇기에 호프너는 옆에서 란디가 먹으면 죽는 것들(파인애플 피자, 뚜껑이 열린체로 있는 탄산음료, 언제 만든건지도 모르겠는 펜케이크 믹스)을 골라주느냐 말할 틈도 없었어요. 메르힌은 그걸 보면서 완전 조련사와 동물 관계구만! 라고 생각했다가 자신의 종족 차별적인 생각에 반성은 커녕 입밖에만 안 내뱉으면 됐지~ 라고 생각하는 뻔뻔함을 보여주고 있었죠.


그 뻔뻔함을 차분히 비소리로 진정시킬 때쯤. 그리고 다들 어둠이 적응되서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뻘짓을 하고 있는지 보일 때에. 오브미의 발소리가 차분한 비소리를 상냥하게 뚫고 몇번 들리고, 다들, 무려 냉장고에 고개를 박고 있던 란디씨까지. 시선을 돌려서 다가오는 오브미를 바라봤어요.


하지만 모두들 오브미를 먼저 보지 못하고 오브미가 들고 있던 어둠속에서 붉게 빛나는 한 수정을 먼저 바라보고. 그 다음에서야 오브미의 얼굴을 바라봐요. 모두 이게 뭐냐라는 표정이었죠.


"복원 지점입니다." 오브미가 대답했어요.


카리샤가 말해요. "복원 지점?"


"네. 블라드라들이 언젠간 찾아올 죽음을 두려워하며 미리 만든 묘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이건 카리샤 아가씨 거에요." 오브미는 숨을 쉬고. "카리샤 아가씨 만의 것은 아니지만."


메르힌이 말했어요. "묘비라니. 너무 불길한데요. 그리고 카리샤씨는 잘 살아 있다고요. 왜 묘비를 살아 있을 때 만드는거에요?"


"블라드라는 몸이 마나 덩어리에요. 마나 덩어리가 살덩어리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정교하게 설계된 마정석, 블라드라들은 '의식'이라고 믿는 그것이 사람의 형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내면에 걸고 있는 마법밖에 없고요."


오브미는 복원 지점이라고 불리는 걸 책상에 있던 복잡한 기구에 넣고서 말해요.


"자스민 아가씨가 가끔 팔을 피로 바꾼다거나.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도 그 마법을 조금만 바꾸면 살덩어리가 아니라 다른 걸로 변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다르게 말하면, 그 의식이라는 게 박살나거나. 혹은 마법의 강도가 약해진다면 마나가 살덩어리일 이유도 없고. 마나는 흩어지려는 성질이 있으니."


"먼지가 되버리겠군요. 아니. 어...." 메르힌이 말했어요.


"정확힌 먼지마냥 흩어지겠구만. 끔찍하네. 시체조차 없을테니." 카이디가 말했어요.


"네. 슬프지 않나요? 수백년, 수천년을 살아도 결말은 공중에 사라지는걸로 고정되어 있으니까. 추모해야 할 사람들은 그저 사라지는 육체를 보면서 숨을 안 들이쉬려고 노력하는 게 전부에요." 오브미가 대답했어요.


하르델린이 말했어요. "정말 슬퍼요."


오브미는 기계를 설정하고. 레버를 조작한 다음, 자스민을 잠시 바라보고, 카리샤를 잠시 바라봐요. 자스민은 으르렁 거리는 걸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카리샤는 퍼티가 손을 잡아주고 있었어요. 퍼티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죠.


오브미는 퍼티를 바라보고 비웃음도 절반. 동정도 절반 섞인 미소를 지어줘요. 그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하르델린을 위로 해주기 위한 말을 하죠.


"그래도 말이에요. 그 마나 덩어리는 어떠한 의미도 없어요. 어차피 언젠간은, 대기 중에 떠돌다가 몇몇은 마정석이 될거고. 몇몇은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데 기여할거고. 몇몇은 할짓없는 마법사의 파이어볼 재료가 될 거니까요. 하지만 그걸 다들 알고 있어도 그 사람의 일부였던거니 들이마시기는 그래요. 그래서 운 좋은 몇몇은 자신을 이루고 있던 마나덩어리를 마정석으로 바꿔놓지만 그것도 언젠간 사그라들죠."


카리샤가 물어요. "오브미씨는." 한번 숨쉬고. "그랬던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마무리한 적이."


"제가 마무리요? 저는 관찰하는 것 이상으로는 못해요."


"왜죠?"


"그건 알 필요 없어요. 제가 알려드린 이유는 제가 왜 카리샤 아가씨와 캐놀라이나님의 복원지점을 두 개 모두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시켜주기 위해서 제 역활을 말씀드린 것 뿐이니까."


오브미는 전원을 연결시키고. 중앙에서 복잡한 기계장치가 작동해요. 수백개의 톱니가 맞물리며 어두웠던 방에 은은한 조명이 퍼지고 있었죠. 다들 어둠에 적응했기에 그 빛을 적응하기 위해 잠시 눈을 찌푸렸지만, 오브미는 눈을 똑바로 뜬체 말해요.


"멀리 돌아왔네요. 복원 지점은 그런 불행한 블라드라들을 위한 묘비에요. 자신의 기억과 느낌을, 생각을 누군가가 다시 되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마정석이죠."


오브미는 카리샤를 살짝 바라봐요. "카리샤 아가씨. 카리샤 아가씨의 기억을 되찾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이 상황이 왜 만들어졌는지 알아야만 하시겠다면 여기." 오브미는 기계의 빛나는 마정석 부분을 하나 내밀고는 말해요.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카리샤는 받질 않고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어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캐놀라이나님의 유산 집행인이죠."


"그럼 당신은 제 이득보다는-" "당연히 캐놀라이나님의 이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까 제 복원 지점에 무슨 짓을 해놓았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캐놀라이나 님의 복원 지점과 합쳤습니다. 두 사람의 기억이 섞여 있죠."


"왜 그런 짓을 한거죠? 이건 정말 궁금해서랍니다. 왜?"


"글쎄요. 왜일 것 같아요?"


"오브미씨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한번 쉬고. "캐놀라이나라는 사람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아닌가요?"


"너무 감성적이고 폭력적이시네요. 메르힌님."


"제가 다 그렇죠. 뭐. 그래서?"


"그것만을 위한 건 아니에요. 그 정도로 대답해드리죠." 그렇게 말한 오브미는, 말할 것이 끝나지 않은 듯 메르힌을 잠시 흘겨보다가. 카리샤에게 마정석을 넘겨준 다음 기계에서 마정석을 하나 더 꺼내 메르힌에게 내밀어요.


"저도요? 제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메르힌이 말했어요.


"친하다면서요?"


"그게 꼭 친구의 가혹했던 과거를 남의 권유로 같이 돌아봐야하는 입장에 처한 건 아니죠. 카리샤씨. 저 필요한가요?"


"... 있어준다면 고맙죠."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이네요. 좋아요. 본다고 쳐요. 그런데 지금 경찰이 쫒고 있는데. 이거 몇 분 정도에요? 빨리 복원하고 다른 주로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요."


"그에 대해서 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을래요?"


"나쁜 소식.", "몇일은 걸릴 것 같아요. 몇주일지도."


"이런. 좋은 소식은?", "지금 저 경찰들, 카틴 프라드와 엮인거죠? 그럼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답을 찾을 수 있을거에요. 그동안은 체포되지 않도록 바깥에 있는 분들이 열심히 해주셔야겠지만."


"카틴 프라드 그 싸이코 국장놈이 카리샤씨의 기억을 기어이 지우려는 이유가 있었군요. 과거에 그 놈이 책잡힐만한 게 있는거고요. 그걸로 우리는 퍼티씨에게 의뢰금도 받고, 그 국장놈을 협박해서 사례금이랑 수배도 풀 수 있을거에요!"


"메르힌. 가끔 널 보면 백마도사가 아니라 돈 때인 사채업자처럼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난 너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해. 파티 리더로써의 자질이 두둑하지." 카이디가 말했어요.


"잘 지키고나 있어요. 하." 메르힌은 오브미가 내민 마정석을 받았어요. 오브미는 그 다음에 인원들의 얼굴을 한번씩 봤고. 개중 특히 퍼티가 타오르는 눈빛으로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누가봐도 '나도 넣어줘' 표정이었어요.


그래서 말했죠. "퍼티씨는 저하고 나중에 이야기 좀 할까요? 그리고 자스민 아가씨?"


"즙끕."


알렌이 번역해줍니다. "좆까. 라고 말했어요. 제가 말고 자스민이."


"도대체 어떻게 아는 검까?" 카드레가 말했어요.


"아하하~ 어차피 또 블라드라 뭐시기일텐데 궁금할 이유가 있을까요?" 하드렐린이 말했고, 알렌이 끄덕였어요. "그냥 눈치에요. 뭔 블라드라 뭐시기겠어요?"


"알렌씨? 풀어줘요. 입마개." 오브미가 말했어요.


알렌은 자스민이 물고있던 입마개를 던져버렸고. 그 직후 자스민의 육성이 나왔죠. "오브미.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 팔을 두 쪽 다 날린 년한테는-"


"다시 씌워요."


자스민은 알렌이 다시 주섬주섬 주우러가자 세상 다 좆까라는 손짓을 한번 하고 말했어요. "...그래. 씨발. 들어나 보자."


오브미가 마정석을 내밀었어요. 이제 다들 무슨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두 사람이 반응했죠.


"나보고 지금 내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다시 보기로 돌려보라고? 그것도 암살자의 기억과 섞어서? 정말 훌륭한 유산집행인이네. 너. 유산으로 날 죽이려고 이렇게나 애쓰다니." 한명은 자스민이었고.


"지금 아가씨를 수도 없이 죽이려는 미친년과 함께 오순도순 기억이나 보라고 하신건가요? 그건 미친 짓이에요. 왜. 차라리 팝콘이라도 하나 물려주던가요." 다른 한명은 퍼티였어요.


"전 상관 없어요. 자스민씨가 바란다면." 카리샤가 말했어요.


"자스민'씨'가 바란다면? 난 적어도 카리샤'씨'라고는 말한 적 없던 것 같은데. 그래. 애초에 쌩판 남이고 싶지 않는 이상 자기 부모를 죽일 자녀는 없을 것 같긴 하네. 잘 알았어." 자스민이 말했어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카리샤는 사실 히스테리 좀 작작불러요 이 미친 새끼야라고 말하려다가 힘들게 참았어요. 일단 여전히 자기는 죄인인 상태거든요. 그리고 별 다른 오해가 없었고. 정말 자기가 죽였다면. 앞으로도 죄인일테죠.


그거 우울하네요. 카리샤가 생각했어요.


카리샤가 우울하던 말던, 오히려 우울하면 자스민에게 기쁜 일이었을테니 신나게 대답합니다. "언급하지마. 그냥 공기처럼 보고 있던가. 내 결정에 신경쓰지도 말고. 왜냐하면 너의 그 잘난 결정으로 내 어머니도 잃었는데, 더 잃으면 화가 좀 많이 나지 않을까싶어?"


퍼티는 한숨을 쉬고, 그 다음에 오브미를 바라봤죠. "오브미씨. 저도-"


"퍼티씨는 저랑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이건 3명이 정원이고요." 오브미는 말을 끊었어요.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표정도 지었죠.


"저는 오브미씨랑 할 이야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군요. 전 퍼티씨랑 잘 통할 것 같은데." 그리고 오브미는 '실행'이란 라벨지가 달린 레버를 잡고는 가만히 퍼티를 바라봤어요. 퍼티는 약간의 불쾌함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오브미의 호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들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왠지 다시 상기시켜주는 듯한 자세여서 그랬죠.


오브미가 노린 것도 정확히 그거였고. 카리샤는 퍼티에게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주자 퍼티는. "... 조심하세요. 아가씨. 다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치지 마시고. 그리고요. 아가씨."


"네."


"저는 아가씨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뭘 알게 되더라도 저는 계속 좋아할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카리샤는 미소지으며 퍼티를 가만히 바라봤어요. 퍼티가 다음 말을 찾을 때까지요.


퍼티는 카리샤의 눈을 잠시 봤다가. 왠지 빠져들어갈 것만 같아서. 그리고 빠져들고 싶어서 그 눈을 계속 바라보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고.


퍼티는 속삭여요. "그래서. 저는 아가씨를 친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더라도 제가 도와줄거라고 믿어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요."


카리샤는 몇 주전, 퍼티가 말하려고 했던 게 생각났어요. 아. 이런 말이었구나. 만약 정말로 평생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카리샤가 느끼고 있는 대책없는 행복은 평생 맛보지 못했을테죠. 그래서 카리샤는.


"알겠답니다. 퍼티. 그럼 나중에 꼭 도와줘요?" 그렇게 말하고나서 퍼티의 머리를 살짝 쓰담어준 다음. 똑바로 마정석, 그리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기계를 바라봤어요.


오브미는 그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면서 자스민에게 말해요. "자스민 아가씨, 결정은?"


"내가 왜 봐야할까 고민하고 있었어.", "고민은 끝나셨나요."


자스민은 숨을 들이 쉬어요. 내뱉기 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죠. 감당할 수 있을까요? 자스민은 그게 두려웠어요. 무엇을 감당할 건지는 자기도 몰라요. 하지만 무엇이던 감당하기 힘들거에요.


10년이었어요. 10년이요. 자스민에게는 하루도 끔찍할 정도로 긴데 그걸 3650번 반복하면서 고통을 느껴요. 차라리 노화라도 와서 자기가 매번 느끼는 이 강렬한 감정이 잘려나갔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오브미가 카리샤에게 한 것마냥 기억이 잘라나갔으면. 애초에 자스민 말린이 아닌 수녀회장으로 태어났었다면.


살아남았고, 도망쳤고, 기억한 자를 위한 10년 간의 형벌을 살지 않아도 되겠죠.


자스민은 살아있었기에 죽은 자처럼 아무것도 안할 수도 없었고. 자스민은 도망쳤기에 오브미가 카리샤에게 한 것처럼 기억을 잘라내지도 못했어요. 오브미처럼 모든 진실을 아는 것처럼 굴면서 이 모든 걸 방관하는 척이라도 할 수도 없었어요.


왜냐고요. 자스민은 그럴 선택권이 없었거든요. 자스민은 어떤 것도 자신의 손으로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결정하지도 못한 체 결과만을 받아드려야 했어요. 가족이 해체되고 어머니는 죽었으며 가고 싶지 않았던 이샤라이나로 추방당하듯 도피했죠.


그래서 자스민은 고민해요. 이 선택은 고통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만에 하나. 자스민 스스로. 억지로 가치를 낮추는 한 가지의 가능성. 자기는 구원받지 못해야 정당하다고 믿기에 늘 무시하는 한 가지 가능성. 그러지 않으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기에, 이미 10년 간 빛을 못 봤기에 그랬었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가능성.


고통을 극복할 수도 있을거라는 그 두려운 희망을. 만약 내가 이 고통을 잊어버린다면 자기를 구원해주었던 그 사람. 자신의 어머니를 이젠 정말 이 세상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거라는 그 두려움에도 잊을 수 없는 그 희망을.


자스민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약간의 침묵 끝에서야 자스민은 답을 내려요.


"오브미. 카리샤. 돌아온 다음엔 각오해."


알렌은 그런 자스민을 보면서 내심 안심했어요. 현실적인 이유와 부끄러운 이유때문이었죠.


현실적인 이유: 여긴 적이 너무 많다는거였어요. 알렌은 이미 모험을 했기야 했지만, 그게 가망없는 싸움에 굳이 끼어들어야 한다는 명백한 사유는 아니었어요. 모호한 사유였죠.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그런 사유인데. 여기서 싸움 걸면 저년을 창문밖에 던지고 말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건 모호한 게 아니잖아요?


부끄러운 이유: 글쎄요. 카리샤를 지금 당장 죽여서 복수를 한다고 해요. 그 다음에는? 알렌은 그게 무서웠어요. 왜냐하면 내심 자스민이 앞으로도 괜찮게 자라길 바라는 바램이 있었거든요. 왜 그런 바램이 났는지가 바로 부끄러운 이유였어요. 아버지가 자기를 블라드라로 만들 때 말했던 '나를 이어줄 누군가를 만들려는 욕구는 종족을 넘어 있는거란다. 하하하!' 문장이 떠올랐거든요.


그래요. 아직 알렌 가의 후대를 못이었죠. 알렌은 생각했어요. 지금 상황만 보면 알렌가고 나발이고 경찰한테 안 잡히길만을 빌고. 자스민 저 미친년이 부디 생각없이 주먹을 휘둘러서 일을 더 끔찍하게 만들지 않기만을 바래야하는 어둠의 상황이지만. 원래 그런 '욕구'라는 건 그런 상황에 빛을 바래-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죠.


메르힌은 그런 알렌을 바라보며 분명 어디서 봤는데, 그리고 닮은 사람도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뭐. 비슷한 사람이 있긴한데 저런 소녀틱하면서도 파티-걸의 사람은 아니었고, 메르힌의 기억에 남은 건 그저 기품있는 척하던 허당이었으니 그냥 닮은 사람인갑다 생각했어요.


이런 여유있는 생각을 할 수 있던 이유는 저 불행한 블라드라 세 명과 다르게 메르힌은 당장은 이 행위에 대해서 내적갈등이나 뭐 할만한 게 없었죠. 그냥 몇일동안 한 사람의 이야기를 훑어보는 거 아니겠어요? 그게 뭔 문제가 될까요. 그걸로 카리샤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퍼티가 더 나은 사람...


메르힌은 퍼티를 바라봤어요. 퍼티는 카리샤의 손을 잡아주며 카리샤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메르힌을 바라보았죠.


메르힌은 그걸 보고 기뻐할 수 없었어요.


이미 더 나은 사람이 자기 눈 앞에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자기는 안 될거라고 생각한 말들로 설득한 사람이 자기는 평생하지 못할 거라고 믿은 걸 해냈으니까요.


갑자기 슬퍼지네요. 웃어야 하는데. 아. 나는 여전히 글러먹은 인간이구나. 메르힌은 스스로 생각했어요.


오브미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메르힌의 표정 변화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는 모두 준비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커피를 내려놓은 다음 말했어요. "20년 전부터 기록된 복원지점이에요. 그리고 여러분은 복원 지점이 시작되면, 그 때 캐놀라이나님과 함께 일했던 팀원분들에 빙의할거고요."


"잠깐. 빙의요? 그냥 소설보듯 쭉 보는 게 아니라-" 메르힌이 말했어요.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는거죠. 그래서 조심할 점이 있어요. 복원 지점은 남긴 사람의 흔적을 따라가려는 성질이 있기에. 여러분이 그 사람의 흔적을 바꾸려고 그 사람의 흔적을 망쳐놓으면. 복원지점은 그 전으로 여러분을 되돌려 놓을거에요." 오브미가 답변했죠.


"예를 들면?", "유명한 음모론을 예로 들까요? 만약 40년 전 총리를 쏴죽이려는 암살범의 복원지점에서 그 사람의 동료인데. 여러분이 그 암살범의 총탄을 막는다면, 막기 전으로 되돌아가요. 불쌍한 총리님이 총알을 맞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거죠."


"그럼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나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네. 그리고 캐놀라이나 님의 최후까지 따라가시게 되겠죠. 카리샤 아가씨." 물론 오브미가 답변했죠.


카리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숙였고. 자스민이 질문을 해요. "복원지점에 대해서 많이들 들어봤는데, 그걸 본 친구들은 그 물건에 의식이 있다고 믿더군. 바보같은 소리지만. 정말 그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어. 그래서 혹시해서 묻는건데-"


오브미는 눈을 잠시 감고 듣다 자스민의 말을 끊어요. "복원 지점은 캐놀라이나 님이 아니에요. 같이 말하고, 같이 들을 수도, 과거의 사건을 같이 느낄 수는 있겠지만. 같이 미래로 나아가지도, 같이 현재를 살아가지도 못해요."


"그럼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거야? 넌 그걸로 카리샤가 바뀔거라고 생각해?"


"캐놀라이나 님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제게 복원지점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으셨겠죠."


그 말을 듣고 자스민은 화가 났어요. 왜 화가 났는지는 처음엔 몰랐죠. 하지만 해답을 찾고는 말해요. "왜 항상 너와 카리샤인건데? 나는?"


오브미는 돌려 말하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비꼬는 성격도 진지할 때는 누그러졌죠. 그래서 말했어요. "캐놀라이나님이 자스민 아가씨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게 두려우신가요."


하지만 자스민은 차라리 비꼬거나 돌려말하길 바랬었어요. 그야 그걸 상상하면 버틸 수야 있겠어요? 나는 10년 동안 복수와 캐놀라이나를 추모하면서 살았는데. 그렇게 오래 기억하면서 살았는데. 정작 캐놀라이나는 그저 바라만 보던 사람과 심지어 그 사람을 죽인 사람만을 생각하고. 자스민에게는 지금까지도 가장 소중한 사람인 그 사람은, 정작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는는 추측에.


자스민은 여기서 무슨 답변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없었어요.


그저 고개를 숙이고 힘든 숨소리만 몇 번 내뱉다가 이렇게 말하는 게 고작이었죠.


".....됐어. 시작해."


오브미는 끄덕이곤. "다들 마정석과 마나로 연결하신 다음 쉼호흡하세요. 조금 놀랄 수도 있습니다."


메르힌은 끄덕였고. 카리샤는 퍼티의 손을 잡은 상태로 잠시 자스민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고. 자스민은 고개는 숙인체, 눈은 가만히 뜬 다음.


정말 사랑하지 않은거야? 그냥 귀찮은 짐덩이었어? 왜 나는... 그런 것들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자신의 의식이 점점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시야는 섞이기 시작하면서.


자스민에게는 잊을 수 없었던 꽃 내음이 먼저 느껴지다가.


그 셋은 의식을 잃었어요.


# RESTORE_GHOST

# EP-2 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도시에 대해

이 이야기는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거에요. 그러니 다들 화장실 갔다 오셨나요? 안 가셨다면 갔다 오세요. 그리고 준비운동도 해야해요. 긴장되네요. 휴. 이건 제가 시켜드릴테니 편안하게 계세요. 물리적인 준비운동보단 먼 길을 가기 전에 해야할 심리적 스트레칭에 가까워서. 좋아요. 전 준비됐어요. 준비되면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주세요.


이 문단을 읽고 계신 걸보면, 독자 분도 준비되셨나보군요. 해볼까요.


사람들은 다들 기적을 바라면서도 기적이 일어나서 바뀐 것에 대해선 시큰둥해요. 다들 기적이 마땅히 있었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요? 아뇨! 몇 년만 지나도 다들 잠제의식 저 편에 집어던진 다음에 가끔 누가 물으면. '아. 네. 기적같은 일이네요.' 라고 숙성되고 잊혀진 기적의 추억을 냄새만 맡고 다시 집어던지죠.


불과 몇백년 전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하며 인권을 요구하면 목이 매달렸던 국가들로 가득했고.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10세 미만의 아동이 일을 못할 이유를 대봐라.' 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었으며. 돈이 없는 자들이 감히 정부의 '높으신 분들을' 뽑는 신성한 의무의 장에 더러운 발로 끼어들 수 있겠냐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심지어 '고블린은 근본적으로 악하며 열등하다' 라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죠.


아. 미안해요. 마지막 문장은 요즘도 있겠네요. 현재 진행형으로 바꿔주세요.


놀랍게도, 그 모든 개소리를 지옥으로 보낸 것은 신도 아니며. 슈퍼 히어로도 아니고. 한 사람의 위대한 과학자도 아니었고, 위대한 지도자- 허! 말이 되는 소리를! 그럼 누가 바꿨죠? 맞아요! 바로 여러분들이죠. 몇몇은 나약하기에. 몇몇은 동정으로, 몇몇은 희망으로, 몇몇은 자신의 이득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피와 눈물들로 기적들을 만들어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일어난 기적에 시큰둥하거나 기억을 못하는 사람들이 바보같다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늘 각기다른 끔찍한 문제에 직면할 위험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이미 직면하고 있죠. 이미 일어난, 심지어 우리 스스로 만든 기적에 감사하기에는 우리 삶에 기적은 너무나도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헌신적인 슈퍼 히어로가 따로 없을 정도로요.


그렇기에 20년 전 사람들에게 '이 멋진 기적을 보세요! 이제 다들 투표권도 있고, 심지어 15세 미만은 일을 못하고 학교에 가야하고. 모두 평등하다고 믿고 있잖아요! 게다가 전쟁도 방금 끝났고요. 왜 그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거에요?' 라고 말하면 이렇게 대답했던 거에요.


'다들 죽었거나 죽였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이야.'


그러다가 한숨을 내뱉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면? 그 다음에는 다시 모든 걸 잃게 되는건가?'


그러다 할 말이 없어진 20년 후 사람들을 바라보는 20년 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겠죠.


'희망찬 미래라는 건 정말 실존하는건가?'


평소라면 여러분은 '봐요! 우리가 20년 후라고요!' 말할 수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러지 못하겠죠.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걸 여러분은 평생을 거쳐도 모를 거라는 게 눈으로 보였기에. 그 눈은 지울 수 없는 공허함과 슬픔이 있었기에.


20년 전은 그런 사람들이 가득한 시대였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 할 내용은 그런 시대의 정점에 있던 그런 도시였고요.


항상 답답한 회색 먹구름이 가득하여 울적한 분위기를 만들거나 완전한 어둠에 소름끼치는 붉은색과 청색이 뒤덮히는 도시. 각 집의 현관 앞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캐놀라이나 꽃을 하나씩 내놓았고. 완전히 파괴되었던 도시의 잔해를 밟고 태어나려는 도시에는 희망과 낙관보다 추모의 꽃 향기만이 가득했어요. 씁쓸하고, 외로운 향기였죠.


그 외로운 향기를 맡으며 도시를 둘러봅시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려고 애쓰던 가장 어두운 밤에, 홀로 불을 켜서 사람들을 구하던 백마도사 협회는 완전히 소각되어 검은 벽만이 앙상하게 남아있어요. 영원불멸할 문화의 거리라는 칭호를 받은 곳은 사람의 거대한 광기속에서 영원불멸은 헛소리라는 걸 증명하듯, 아니면 사람의 광기는 그들이 가장 사랑하던 것도 참혹하게 부숴버릴수 있다는 거대하고 반복되서는 안 될 거대한 예술 작품마냥 뼈대만 앙상히 남아있어요.


전쟁 전, 화려한 대리석과 석조의 도시였던 수도 마운티아, 이 도시는 그 잿더미들 위에 기이하게 살아나갔어요. 생존 외에는 우선순위를 정할 수 없었던 이 시대의 분위기처럼 계획없이 무한정 늘어나는 판자집에. 판자집위에 판자집을. 그 위에 나무집을. 그렇게 쌓아가며 이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 되어가면서요.


석조에서 목조로 바뀌고, 그렇게나 사람이 많아지고 건물들이 난림해도 비오는 날에는 누구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았어요. 예전의 도시가 돌로 이뤄진 차가운 외관에 열정적이고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다면. 이 곳은 추잡스럽게 붙은 살덩어리와 같은 도시의 외관과 차갑디 차가운 사람들만 가득한 곳이었죠.


그렇기에 이 도시에서는 총에 날아가는 사람을 보고도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어요. 불이 나면 아무도 끄지 않고 다만 그 불이 자신의 집에 옮겨붙지 않도록 철거나 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사람들은 죽어갔고, 어느 시점에는 끔찍한 시대에 죽었던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캐놀라이나 꽃보다, 그 끔찍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데에 절망하며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캐놀라이나 꽃이 더 많이 꽂히기 시작했고.


그러던 날들 중 하나에. 먹먹한 먹구름. 그리고 항상 젖어있는 뒷골목의 어딘가에서.


캐놀라이나 말린과 그 친구들은 일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개중 드라파스라는 덩치 큰 근육질의 남성은 꾸벅꾸벅 졸다가. 긴 꿈을 꾼 듯한 머리 아픔을 고개를 저음으로써 중화시키고 말해요. "긴 꿈을 꾼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 목소리에 의외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오. 잠깐만. 남자 목소리? 그것도 40대라고. 죽이는구만. 오브미 그 개년! 날 남자로 바꿨어?! 죽여버릴테다!' 라고 내면의 메르힌이 소리쳤어요. 외면의 드라파스씨는 그딴 헛소리를 하진 않았지만. 메르힌에게는 아주 중대한 문제였죠.


다만 그런 중대한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게 있었어요. 도대체 캐놀라이나는 어떤 사람일까, 메르힌은 그게 너무 궁금했고 그래서 자기 주변에 있는 3명을 살펴봅니다.


첫 번째 후보. 은색 머리를 가지고 안경을 꼈으며 붉은 눈을 가진 회의주의자의 전형적인 패션을 대놓고 들어내는 남성. "나도." 그 남성은 그렇게 말했죠.


드라파스씨는 첫 번째 후보를 탈락시켰어요. 적어도 자스민과 카리샤. 그리고 오브미의 이야기에 의하면 캐놀라이나는 여성이었으니. 10년이나 같이 있었는데 3명이나 성별로 구분을 못하는 끔찍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배제하죠. 아니지. 어쩌면 스스로의 선입견으로 실제로 여성인데 남성이라고 착각-


드라파스씨는 거기까지 가다가 그냥 두 번째 후보나 보기로 했어요. 내면의 메르힌은 훨씬 더 많이 망상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 걸 보면 드라파스씨 성격은 자기와 끔찍하게 안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의 나날이 걱정되는구만.


두 번째 후보. 빛바랜 초록색 코트에 하얀 내의를 입은 병사군요. 그리고 여성이고요. 캐놀라이나씨인가?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는 눈썹을 두번 움직이며 집중해서 봅니다.


검은색 생머리, 가슴에는 참전 용사 기념 뱃지. 그걸 잠시 보다가. "빵 하나 값어치를 하는거나 끼고 다니는군?" 드라파스씨가 말했는데요. 오. 그런 걸 아는 걸 보면 드라파스씨는 전쟁에도 참여한 것 같아요. 훈장 시세를 알고 있다니.


그리고 내면의 메르힌이 또 깨달은 건 드라파스씨를 통제할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자기도 드라파스씨의 성격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메르힌은 저렇게 자기가 자랑스럽게 낀 훈장을 보고도 비꼴만큼 괴팍하진 않다고 믿거든요. 무우우울론 대사는 메르힌이 생각했지만요. 그걸 말할 생각은 아니었다고요.


아무튼. 그 사람이 자길 흘겨보곤 말해요. "네 쓸모없고 동작하지도 않는 가랑이 사이의 물건보다 훨씬 자랑스럽거든." 메르힌은 당혹스러웠어요. 그래서 드라파스에게 '아무 말이나 해봐' 라고 외쳤고.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드핀. 농담으로." 좋아요. 드라파스씨는 저 사람이 캐놀라이나는 아닌 걸 알고 있고, 아마 이런 시시한 농담이나 할만큼 '친한' 사이겠네요.


드핀은 답없는 무언가를 본 듯, 눈을 감았어요. "미안하게 됐네. 드라파스. 난 농담이 아니었는데." 드핀은 말했죠. 그 다음 자기 키만한 총의 볼트를 당겼어요. 클립을 넣어 총알을 장전한 다음. "그리고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농담이야? 몇 달 후면 둘 중 한 명은 되져서 안 볼 사이일것 같은데."


메르힌은 당혹스러워요. 참 아름다운 시대네요. 방금 전 마정석을 잡기 전까지의 세계에는 자스민씨빼고는 모두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주고 상냥한, 메르힌이 사랑하는 위선의 시대였는데. 이야. 그냥 예의라곤 없구만. 20년 전 어른들이란!


드라파스는 그래서 표정을 구겨요. 메르힌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죠. 음. 그래. 내면의 내가 완전 관여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통제하는 것도 아니구만. 기분이 안 좋은 것 맞았지만 이렇게 바로 표정으로 들어내는 건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 불쾌함을 참을 수 없어서 다음 후보로나 넘어가기로 했어요.


아니지. 3명이 있었으니까 인물 소개 한번씩 한거랑 차이가 없잖아. 그럼 자연스럽게 저 사람이겠구나.


드라파스가 시선을 돌린 곳엔 하얀색 긴 생머리에 긴 은색 검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이 있었어요. 긴 은색 검은 너무나도 수수했는데. 하나쯤은 달법한 문양도 없었고, 한번쯤을 철사를 꼬아서 만들법한 장식도 없었고. 그저 은색의 칼날과 손잡이만 하나인듯 이어져 있어서, 사람 죽이는 일말곤 관심도 없어보이는 칼이에요.


얼굴을 보면 눈동자는 붉은색,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군요. 오. 표정이 끔찍하게 차갑고, 카리샤와 전혀 닮지 않았어요. 가면같은 것도 없는 완전히 들어난 인격이 하나 세상에 놓여진 듯했죠. 그래서 무서웠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할지 상상이 안 갔으니까. 그래서 눈을 피해 옷을 바라봐요.


하얀색 넥타이, 검은색 내의, 하얀색 외투, 하얀색 정장 바지.


그리고 다시 위를 보면 붉은색 눈동자.


이 사람이 누구지? 드라파스? 메르힌이 말하라고 졸랐고.


"오. 캐놀라이나씨." 드라파스는 말하고, 메르힌은 자신의 가설이 맞았다는 쾌감으로 신났어요. 드라파스 표정도 그래서 신나졌고, 메르힌은 좆됐다고 생각했어요. 저 싸이코 같은 사람에게 미소를 지으면 '퇴근해.' 하면서 총을 쏘지 않을까요? 아니지. 쏜 다음에 '퇴근했네.' 라고 할 거에요!


캐놀라이나는 말해요. "드라파스! 오늘 기분 좋은가봐? (드핀은 여기서 아. 네. 뭐. 그렇죠라고 할까 싶었는데 대답따위 받으려고 한 게 아닌 듯 숨도 안쉬고 넘어갔어요.) 다들 표정 한번씩 볼까. 오. 드핀!", "캐놀라이나씨.", "우리 마운티아 군인 아가씨는 오늘 좀 어때? 몸은 괜찮고? 준비는 잘 된 것 같아보이는데! 하긴 늘 잘 되어있었지. 그리고 오늘도 말이 없는.."


드핀이 힘들게, 몰려오는 질문에 좀 당황하다가 말해요. "오늘 괜찮고, 몸도 괜찮고. 캐놀라이나씨는 장교였잖아요. 그리고 답변할 시간을 주세요." 툴툴 거렸지만 드라파스를 다루는 듯한 말투가 전혀 아니었어요. 메르힌은 저 둘의 사이가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추측했죠.


"아. 미안. 내가 사람 다루는 게 서툴다는 게 지난 7일간의 행적으로 들어난 줄 알았는데! 그리고 드핀?", "네. 캐놀라이나씨.", "탈영 장교는 군인으로 안 쳐! 난 탈영했잖아?" 그러고 캐놀라이나는 깔깔 웃었어요.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그게 웃겨서 웃는 건 아니죠?", "당연하지!" 캐놀라이나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살짝 나와서 한번 훔치고는 말했어요. "진짜 군인앞에서 무안해서 웃은거야. 아무튼 우리 귀여운..."


드라파스는 이 일행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키아닌이라는 블라드라를 바라봤어요. 아. 그래요. 블라드라. 이 팀... 팀이라고는 잘 안 불렀는데. 크류? 전혀 아니야. 아. 그래. 패거리. 이 캐놀라이나 패거리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했던 친구였죠. 그 친구는 이런 정신없는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고개를 푹 숙인체 무거운 목소리를 유지했어요. "키아닌."


"이름 안 잊어먹었어. 정말이야! 키아닌은 오늘도 우울하구나. 기운내! 봐봐. 저기 꽃도 걸려있잖아? 내 이름을 만들 때 주요 아이디어를 제공한 꽃. 꽃을 보고 살아야지 기운이 나지 않겠니!"


"저건 조화다. 캐놀라이나." 키아닌이 말했어요.


"아. 그렇구나. 아무튼! 사랑스럽고 사랑받아야 마땅한 우리 친구들." 캐놀라이나는 담배를 물기만 한 다음에. "오늘 일은 저 조화를 깔아주는 일이 될거야. 우리 우유 가게 사장님 경쟁업체를 제거해달라고 부탁하셨거든. 자기들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만 하는데, 저 사람들은 거기에 인신매매라는 혁신을 더했기에 그 혁신의 대가를 치루게 해달래. 그럼 준비 됐지?"


드핀이 한숨을 내쉬자. "준비 완벽한가보네. 좋아. 시작해볼까?"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아뇨. 그냥." 드핀이 말했어요. "몇 명인지는 몰라요? 주의사항은?"


"모르고, 없어." 캐놀라이나는 문에 몸을 기대고는 말했어요. "셋하면 시작할게."


"됐습니다." 드라파스가 말했어요.


드핀은 한숨을 쉬고 말해요. "...됐어요."


"됐다." 키아닌이 말했어요.


캐놀라이나가 말해요. "셋."


펑. 드라파스가 들은건 캐놀라이나의 말 이후에 들은 건 귀가 박살나는 소음이었고. 그 뒤로는 눈을 찌르는 잔해들이었어요. "진짜, 캐놀라이나씨!" 아. 드핀의 소리도 들리네요. 내면의 메르힌은 이 혼돈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생각했어요. 망할 캐놀라이나 그 미친년은 뭘 한거야?


메르힌은 답을 모르겠지만, 우리는 캐놀라이나에게 넘어가봅시다. 캐놀라이나는 칼날로 문을 박살낸 다음, 당연히 자신이 검을 휘둘렀기에 앞을 가로막는 건 없다는 확신이 있다듯 곧바로 뛰어들어갔어요. 먼지를 벗어나기 전에 느껴지는 건 몇몇 사람들의 심장소리. 불안해하는 소리.


캐놀라이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어요. 듣는 게 아니었죠.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와 심장소리가 이토록 멀리서 들릴 일은 없었을테니까. 그 느낌은 이렇게 침착하게 캐놀라이나에게 말해줘요. 2층 12M, 앞에 2명. 2층은 총이 흔들리는 소리.


고민은 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죽은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캐놀라이나는 자신을 과다할 정도로 믿었어요. 어차피 그걸 후회할 때쯤은 이미 죽었을테니 안 믿어서 나쁠 게 없잖아. 그런 생각이었죠.


캐놀라이나는 왼쪽 벽을 향해 뛰어들어요. 계단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없네요. 2층의 그 사람은 안도와 살인의 기쁨의 소리를 내는 걸 느껴요. 캐놀라이나는 발끝을 변형시켰고, 벽에 뛰어들고. 벽을 밟다가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칼은 아래로 겨누고. 아래를 향해 살짝 뛰었고.


캐놀라이나는 몸이 내려가는 것과 그 사람이 공포를 느끼고. 자신의 칼끝이 그 사람의 머리를 가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뜨거운 피가 캐놀라이나의 하얀색 정장에 묻다가도 자신의 피부에 흡수되는 걸 느껴요.


그 말은 오늘도 캐놀라이나는 안 죽었다는거고, 내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거였기에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나요.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캐놀라이나는 이 감정을 '일 때문에' 라는 사회인으로써의 의무라는 필터에 통과시켰고. 이 필터는 자기가 군인이었을때부터 잘 작동했기에.


떨어트린 총을 들고. 밑을 조준하고. 발사하고. 머리가 하나 더 터져나가죠. 그 때쯤 드라파스가 양손에 거대한 클로를 낀 체 남은 한 사람을 다진 고기로 바꿔버려요. 캐놀라이나는 그걸 보면서 총의 볼트를 당긴 다음 옆에서 계단으로 걸어오던 병사 한 명의 머리를 더 터트린 후. 터트리고, 터지고, 사라지고. 찰칵.


캐놀라이나는 총을 버리고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브릿지의 중간쯤 칼을 들고 자신에게 뛰쳐오는 사람이 자기를 노려보고. 그 다음에 달려옵니다. 눈은 분노에 가득차있었고 그렇기에 칼을 빗나가게 휘두루는 바보짓따위는 안할 것처럼 보이네요.


캐놀라이나는 보고서에 도장을 찍는 정도의 압박감을 느끼며, 자신의 몸을 피로 바꿔나가다, 그 사람 앞에서 재구축되고. 오른손으로 그 사람의 손을 밴 다음, 머리를 자르기 위해 칼을 휘둘렀어요.


도장찍는 것과 이 일의 다른 점은 죽어가는 사람을 결국에는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거였었고. 다들 공포에 질리고 후회로 가득한 표정을 해요. 적어도 캐놀라이나가 이 때까지 죽인 사람들의 표정은 말이죠.


캐놀라이나는 이게 적응되지는 않았지만 무신경할 수는 있어요. 사람은 대단해서, 이런 일이 10년에 한번 발생한다면 잊히지 않고 튀어나온 고통이 되겠지만 이런 일이 하루에 한번 이상 발생한다면. 어제와 비교했을 때 오늘이 더 아픈 이유가 없기에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거든요.


그 생각을 머리가 잘려나가는 걸 보면서 했었죠. 요리사 모자. 오. 저 방이겠구나. 캐놀라이나는 옆 방으로 들어갔고. 그 방은 사슬로 묶여있는 사람들이 충혈된 눈으로 비커에 하얀색 액체를 만들고 있는 방이었어요.


"혁신이 여기있었군."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이 의뢰를 부탁한 우유가게 사장님이 말도 안 되는 단가에 마약을 뿌리고 있다고 해서 공정 거래의 원칙에 대해 그 업체의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달라 하셨는데. 그래요. 노예 노동은 불법이죠.


캐놀라이나는 이들을 죽이라는 말은 못 들었기에 고민했어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기어다니기 시작했죠. 왜 그렇지 생각하다가 자기가 지금 피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어요.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덕분에 고민의 답은 찾았고. 옆을 보고. 버튼이 있었어요. 사슬을 푸는 버튼이었죠.


버튼을 누르자 사슬이 풀렸죠. 그 다음에 캐놀라이나는 시장에 이 마약이 풀리면 의뢰인이 피해를 볼테니 권총으로 비커와 알콜렘프를 쐈고, 불은 삽시간에 책상을 집어삼키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요. 캐놀라이나가 원하던거였죠.


그들 속에 따라가 바깥을 나서자 친구들은 여전히 총격전을 하고 있었어요. 세 명 다 오늘따라 왜인지 모르게 비실대면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죠. 캐놀라이나는 그게 신기해서 잠시 바라봤어요.


"드핀. 진짜 총 못 맞추네. 쟤네 아직도 총 쏘잖아. 어떡할거야?" 그라파스가 투덜거렸어요.


"닥쳐!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난 총 못 쏜단 말이야! 좀 맞아라! 이 개새끼들아!" 드핀과 내면의 카리샤는 분노를 쏟아내며 총알을 쐈지만, 안타깝게도 음성인식 총알이 아니라 빗나갔어요.


"꼴갑떤다." 키아닌과 내면의 자스민은 한숨을 쉬었어요. "닥쳐. 키아닌." 드핀이 한 발 더 쐈고.... 또 빗나갑니다. "이 총 이상해."


"위에서 비명이 들리는데, 뭐지?" 키아닌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2층 브릿지를 봤고. 1층에 있는, 적을 포함한 모두가 위를 봤어요. 거기에는 사람들이 탈출하고 있었고. 적들은 1분간 사람 한 명 못맞추는 친구들보단 자신들의 상품이 도망치는데에 분노해 총을 쐈고. 천장에 구멍을 뚫고, 비명은 격렬해지고.


캐놀라이나는 그 동안 아래로 넘어가 총을 아직 쏘지 않은 한 명을 먼저, 다른 한 명은 다음. 마지막에 총알을 넣고 있는 총을 쏜 사람의 목에 칼을 찌르고. 옆을 돌아봤죠. 3명은 고개를 내민체 얼어붙었고. 그라파스가 말했어요. "캐놀라이나씨. 오. 그게..."


"이야. 사이가 돈독해진 것같아 기쁘네! 너희 3명에서 같이 다니면 서로 죽이려드는 암살범 같이 조용해서 불안했거든." 캐놀라이나는 칼을 뽑은 다음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바뀐 정장에 얼굴 절반은 피로 뒤덮혀있는데도 해맑은 미소를 짓고서 천천히 다가오고.


뒤에서는 한 사람이 문을 열고 권총을 캐놀라이나의 머리에 겨눴죠. "캐놀라이나-" 그라파스가 말했고.


총성이 울려퍼지고 머리가 터져요.


"... 이번엔 맞췄어요. 캐놀라이나씨." 드핀은 캐놀라이나에게 권총을 겨눈 놈의 뒷편 벽이 붉게 칠해진 걸 바라본 다음 눈을 감고, 볼트를 당겼어요.


캐놀라이나는 드핀에게 한번 '빵야'를 해준 다음 말해요. "게다가 총도 잘 쏘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까. 다른 구역은 정리됐어? 2층은 방 하나밖에 없고. 1층은 창고고. 왼쪽 사무실은 - " 캐놀라이나는 자신에게 총을 쏘려고 했던 사람이 있던 방을 슬쩍 보곤. "정리 됐네. 오른쪽 사무실만 남았겠어." 그 다음에 오른쪽 사무실의 문을 열고, 두려움에 떠는 사장을 본 다음에. "잠깐! 내 말을-" 왼손에 들고 있던 샷건의 트리거를 당겨요.


펑.


"잘 들었습니다. 사장님. 다음에 식사나 한번 하시죠." 캐놀라이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샷건의 배럴에 탄환을 하나 더 넣어요. 질척하고 뜨거운 붉은 피는 벽면에 묻고, 미끌어져내리며. 주변은 고요해졌어요. 일이 끝났다는거겠죠.


몇 분후, 이들은 불타는 창고에서 걸어서 빠져나옵니다. 누가 봐도 불의 희생자가 아니라 불을 지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말이에요. "다들 고생했어. 어우. 오늘 다들 컨디션이 영 아닌가봐. 나도 그렇고." 캐놀리아나가 말했어요.


"오래간만에 총을 들어서 그래요. 캐놀라이나씨. 제가 평소 실력이라면 더 잘 맞춘다고요. 그리고... " 드핀이 말하다, 저 멀리서 호회 종이가 날아오기 시작했고. 드핀과 캐놀라이나는 날아오는 호회 종이를 하나 잡아요. 나머지 종이는 창고의 불길에 활활 타고 있었고요. "...그래요. 이거. 종전협상. 10달이나 협상 테이블에 앉고서야 이제서야 끝났네요."


"아. 오늘이었나?" 캐놀라이나가 말헀어요. 호회를 읽어보며. "여명의 시대를 선언한 위대한 협정. 새 희망, 그리고 새 시대를 국민과 함께 열겠습니다."


캐놀라이나는 하늘을 바라봤어요. 도시를 바라봤고요. 하늘은 꽉 막혀서 언제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고, 도시는 추잡스러운 욕망의 괴물처럼. 하지만 그 욕망의 괴물의 기저에는 살아남으려는 욕구가 잠들어 있기에 증오할 수만은 없는, 증오의 도시가 서 있었죠.


캐놀라이나는 웃으면서 말해요. "우리 일자리가 줄려나?"


"20년은 문제 없을거라 봅니다. 캐놀라이나씨." 드라파스가 묘하게 감기는 스태프를 몇번 허공에 휘두르고 말했어요.


"그러게. 저런 걸 보면 말이야."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드라파스는 캐놀라이나가 도대체 뭘 보고 말하는지 궁금했기에 캐놀라이나의 시선을 따라갔고.


그 시선의 끝에는 쓰래기통. 그리고 거기에 기댄 여자아이. 귀족의 딸이라고 생각될 만큼 이 뒷골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차림과 피부였어요. 그런 아이가 가슴에 피를 흘리고 있는체 힘겹게 숨을 내뱉고 있었죠.


"오. 이런. 캐놀라이나님. 함정일 수도 있으니 다가가.... 셨네요." 드라파스가 말하다가 캐놀라이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웅크러 앉아 눈높이를 맞췄죠. 캐놀라이나는 친근감을 표할 때 사용하는 눈웃음을 지어줬는데. 아이에게는 아마 미친년처럼 보였을거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봐도, 미친년 같았어요.


캐놀라이나는 그 아이의 가슴에 칼을 꽂은 걸 바라보고는. "이런. 많이 다쳤구나. 게다가 깊고." 손가락으로 피를 한번 만진 다음. "20분? 흐음." 캐놀라이나는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아이는 캐놀라이나의 손을 힘겹게 잡곤. "살려주세요..."


"미안하지만 꼬마야. 살아날 수 있을법한 희망이 보이진 않는구나. 안 됐어. 왜냐하면..."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그 다음 캐놀라이나는 침착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려고 왜 네가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기 위해서 잠시 고민했어요. 그리고 고민이 끝나서 손가락을 하나 들고 말을 하려던 찰라 옆에서 캐놀라이나의 머리에 누군가가 발길질을 했고. 캐놀라이나는 옆으로 쭉 미끌어집니다.


"저리 비켜! 저건 우리거라고." 그리고 그 발로 찬 사람이 말했고, 드핀이 그를 노려보자 그 사람의 머리에 뿔이 달려있다는 게 보였죠. 두 사람이었고, 둘 다 용족이네요. 뒤에 있던 침착한 사람은 골목길에서 나와. "당신들. 그냥 조용히 지나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을거라면?" 드핀이 말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은 가슴 속에 있던 권총을 꺼내고. 펑. 머리가 조각조각 흩어지며 날아가요. 발사자는 캐놀라이나. 바닥에 누운 체 그 사람을 향해 쐈고, 안타깝게도 동료의 머리가 터진 걸 먼저 보려던 다른 사람의 머리 가슴도. 펑. 산산조각나 흩어져버립니다.


"친구들. 전략은 괜찮았는데 너무 상냥했어."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쏴버렸어야지. 이런 귀여운 꼬마애의 심장에는 칼을 꽂고는 나같이 늙어빠진 사람의 머리는 못 날렸다니. 판단력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흠." 캐놀라이나는 그 친구들의 일부였던 뿔을 들고 요리조리 만지다가 던져버렸어요.


창자나 피나, 뭐. 그런 파편들이 잔뜩 있는 곳에다 말이에요. 캐놀라이나는 잠시 자기에게 묻은 피를 먹다, 그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 쓴 체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아까 넘어질 때 성냥이 다 젖어버렸다는 사실에 슬퍼하며 꼬마와 눈높이를 다시 맞췄어요. "어우. 용족 피는 쓰네."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캐놀라이나씨. 그냥 빨리 가시죠. 위험합니다." 드핀은 역겨워서 못 버티겠다는 표정으로 말했죠. 드라파스도 비슷한 표정이고, 오직 키아닌만이 고개를 돌린체 못본척하고 있었어요.


"드핀이 지켜줄거라고 나는 믿어. 실패하면 드라파스가 주먹으로 두들겨 팰거고, 키아닌이 마지막에 그 괴물로 다른 사람들을 먹어치우겠지! 완벽한 팀이야."


"팀이라는 고급 단어를 붙이긴 좀 그런데." 키아닌은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숙인체 복잡한 마도서의 술식을 조합했고, 바닥에서부터 검은 개가 나와 그들의 시체를 개걸스럽게 먹어치웠어요. 키아닌의 눈이 조금 더 붉어지고. 그 다음에는 붉은색 앰플을 만든 다음. "나중에 피는 가져가. 캐놀라이나랑 나머지."


"키아닌이 매번 저렇게 말해도 참 상냥하다니까."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그래서. 그래. 우리 꼬마 아가씨. 어디까지 했더라? 아직 안 죽은 것 같은데. 아. 그래. 너가 살아갈 수 없는 이유. 미안하지만 백마도사들은 아직 심장 부근을 잘 고치지는 못하고 있거든. 어린이라면 더 잘 못 고치고 말이야. 쉽게 죽으니. 게다가 출혈도 너무 오래 됐어. 지금 움직이면 아마 죽어버릴걸?"


캐놀라이나는 상냥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그걸 잘 듣지 못한건지, 캐놀라이나의 손을 잡고. 힘겹게 말해요. "복수... 복수를..." 캐놀라이나는 그 아이의 눈을 바라봤고. 그 아이의 눈은 의식이 흐려가고 있음에도 증오로 가득차 있었어요. "부모님을 죽인 그 사람들한테..."


캐놀라이나에겐 이 아이의 손이 뜨거웠어요. 그 사실을 세삼스럽게 다시 깨닫죠. 지금까지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한 행동들이라고는 차가운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납탑을 던져준다거나, 칼로 머리를 자른다거나. 뭐. 기타등등. 그리고 동료들에게는 손을 안 대니 꽤 오래간만에 잡는거였죠.


캐놀라이나는 그게 흥미가 돌았어요. 이 따듯한 아이가 복수를 꿈꾸면 자신만큼 추락할까요? 블라드라가 되면 얼마나 망가질까요? 인간성이라는 게 남아있을까요?


하지만 그 호기심을 참을만큼의 인간성은 있었죠. "에이. 죽는다니까. 그냥 이 멋진 세상을 좀 더 둘러보고 행복하게 사라지는 편이 좋아. 그리고 봐봐. 지금 심장이 보이지? 보통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기 심장을 못 보는데. 그 이유는 심장을 보면 보통 죽어서 그래."


"죽어도 상관 없어요." 사라질 듯한 마지막 숨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죽어도. 내 모든 걸 잃게 만든 사람들에게."


긴 침묵. "복수하도록, 도와주세요." 그 다음에 침묵. 하지만 아직 심장은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고.


캐놀라이나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체 붉은색 눈만 조금 빛났어요.


이런. 안되는데. 너무 재미있어보여.


그러다가. "친구들. 2시간만 이 부근을 지켜줄래? 여기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그리고..." 캐놀라이나는 웃으면서 말했어요. "되도록 보지 말아줘. 부끄러우니까."


"그 아이를 블라드라로 만드려고?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군." 키아닌이 말했어요.


"좋은 말이네. 키아닌.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잖아? 나쁜 선택 몇번쯤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


"인간으로써 그 아이는 죽는다." 키아닌이 말했어요. "원하지도 않는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거야. 네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가?"


"오만하네. 키아닌. 누가 죽는 걸 원하겠어?"


"네가 망설인 이유가 그 아이가 그 아이로써의 정체성이 죽을 게 두려운 게 아니었나. 그리고 인간성도."


"됐어. 난 부탁을 받았으니까, 난 할거야. 마음껏 비난하라지."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이제 다들 경비나 서줄래? 진짜 애 죽겠어."


".... 무책임하군." 키아닌이 말하고 돌아섰어요. 캐놀라이나는 별 대꾸 없이 그 아이의 목덜미를 물었죠. 드핀도 키아닌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드라파스도 캐놀라이나와 멀어지는. 드핀과 키아닌의 같은 방향으로 갔어요. 그리고 그들은 충분히 멀어져서 캐놀라이나가 자기들의 이야기를 못 들을 쯤에서야 말했죠.


"좋아요. 좋아요. 씨이발! 저런 싸이코패스가 저희 부모님이라고요? 자스민씨? 전 인정할 수 없답니다! 뭔 저딴 인간이 다 있는거에요!?" 드핀이... 아니라 카리샤가 말했어요.


"말 함부로 하지마. 널 여기서 죽여도 살인죄가 아닐텐데, 아픈 건 비슷할거니까." 키아닌이 아니라 자스민이 말했어요.


"우와! 나쁜 놈들 머리를 깨버리는 게 이렇게 시원할 줄 몰랐어요. 현실이었으면 올라왔을 죄책감이 제 이야기는 아니라는 면책 조항에 의해 잊혀졌네요. 블라드라들은 이 좋은 걸 자기들끼리만 쓴단 말이에요? 미쳤군." 메르힌에요. 메르힌이 아닐 수가 없죠.


"자스민씨는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한건가요. 저건 시기적으로 봤을 때..." 카리샤가 말하다가 잠시 머뭇거리고는. "저인데요. 와. 진짜 이상하다. 저라뇨. 제가 저의 탄생을 보고 있는거군요."


"바로 그거야. 네가 태어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지." 자스민이 말했어요. "너가 아니라면 캐놀라이나가 죽을 일도 없었을거잖아. 게다가 내가 이 꼴인 것에... 절반정도는 네 기여 덕분이니 너가 없었으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니까."


"제가 무슨 말을 자스민씨에게 할 수 있겠어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기분 내킬때마다 그러셔도 돼요."


"진짜 너, 좆같구나." 자스민은 너무 싫어같은 우아한 말보다는 직설적인 말을 선택했어요. 자기도 좀 놀랐죠. 그리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건 진짜 좆같은거였죠. 죄책감이라니.


반면 카리샤는 사업 파트너에게 납치당해서 줄 하나 매달리고 내동댕이 쳐진 적도 있었는데 겨우 저런 비난만 들어서는아무 느낌 없었어요. 자스민과의 추억을 싸그리 잊어렸기에 자스민의 말을 타자화 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메르힌은 뒷 골목에서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치정싸움, 혹은 남매간의 혈투를 관찰하는 아저씨가 되서 불편했어요. 게다가 사이에 낀 채로 큰 근육을 가지고 안절부절하고 있었죠.


스스로 생각해보니 네. 그 행동이 가장 불편했네요. 이 거대한 몸뚱이로 왜 이런 협소한 뒷골목에서 숨어서 대화하는 걸 사이에서 지켜보고 있는거지? 그래서 뭐라도 말해야했었어요. 이 무안함을 숨기려면요.


"둘 다 사이좋게 지네요!" 메르힌은 자기가 참 대사를 잘 고른다고 생각했죠. 참 퍽이나 좋은 말이야.


"메르힌씨, 저희 사이 완전 죽여요. 한 분은 죽일 각오로 저를 보고 계시고. 저는 죽을 죄를 지어서 쭈그려 앉고 살고 있으니까 사이가 안 죽일 수 있겠어요?"


"뒤에서 누가 칼들고 서 있으면 그 때가 왔구나 생각해."


"괜찮아요. 그런 거 한 두번 겪어본 것도 아니고, 다들 그렇게 말씀했는데 그 때는 안 오더군요."


"아. 그러셔. 그게 괜찮네. 적어도 죽을 때는 우울하진 않을테니."


"왠걸요. 똑같이 말하면서 저를 공격하시던 분이 최근에도 많았는데 저는 아직도 멀쩡히 살아있는걸요? 이름이 자스민인가 그러던데. 당신과는 관계 없죠? 그냥 없다고 하세요."


"네 잘난 죄책감은 1시간을 못 가는구나?"


자스민이 그렇게 말하자 카리샤는 더 이상 자스민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이나 바라봤어요.


"이 미친 조합으로 어떻게 2시간을 때워요? 경비도 하면서? 도대체 캐놀라이나씨는 뭐하는거야. 이 빌어먹을 조합은 캐놀라이나씨가 없으면 30분 이내에 서로 총쏘고 칼들고 저는 스트레스로 다 때려부술거라고요. 한번 봐야겠어!" 메르힌이 말했어요.


메르힌은 살짝 고개를 꺾는 행동을 평소 몸의 감각대로 움직였어요. 안타깝게도 20대 청초한 메르힌씨와 다르게 이 아저씨는 거구중에서도 거구였고. 거대한 갈색 머리가 빼꼼 나왔죠. 머리는 또 좀 민머리네요. 메르힌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이 아저씨로 몇 일이나 지내야한다는 사실에 우울증이 걸릴 지경이었어요.


하지만 그러던가 말던가.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죠. 메르힌이 본 그곳에 뭐가 있었냐면. 아이가 피투성이로 소리없는 발버둥을 치고 있고. 캐놀라이나는 괴물마냥 그걸 물어 뜯고 있는 거였어요.


좋게 말해서 그렇게 말했는데. 전쟁터에서 '괜찮아요. 안심하세요. 약간 상처만 난거니까요. 아. 저기! 스미스씨! 이 분 폐 파편 언제 도착해요? 폐가 완전히 작살나서 그거 보고 만들어야겠는데요! 뭐라고요? 대포알에 관통되서 묻어있다고요? 아. 그래서 상처가 좀 크구나.' 라고 밥먹으면서 말하던 메르힌조차 토할 지경일 정도로 끔찍했어요. 그냥 그 정도로만 알아두시면 좋겠네요.


그래서 메르힌은 다시 고개를 넣고. "좋아요. 안 보는 게 더 스트레스에 도움 될 것 같네요. 블라드라들은 다 저렇게 태어나는거에요? 미친."


"저는 듣기만 해봤답니다. 경험은 안 해봤는데 어떤지 봐야겠어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안 보는 게 좋을걸." 자스민은 네가 안 보고 배기겠냐? 라고 말했어요. 적어도 메르힌씨가 듣기에는 생각과 말이 정반대였죠.


"농담아니라 진짜 안 보는 게 좋아요." 메르힌은 말렸어요.


카리샤는 두 명을 바라본 다음 당연히도, 고개를 내밀어 봤어요.


그리고 10분 정도 토를 했고. 그 다음에서야. "미친. 저를 먹고 있잖습니까? 저를..."


"번식하는거지. 인간종으로 치면 출산과 성관계를 동시에 하는건데 역겹지 않을리가 없잖아." 자스민이 말했어요.


"보통 성관계를 역겹다고 하나요? 그건 신박하네요. 저희 인간종은 그 이야기를 좀 비싸게 팔고, 다들 부끄러워하면서도 서재에 몇개는 구비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그래. 아깝게도 저건 쾌락 부분은 전부 잘라내고 고통부분만 가득한 행위라서 그 정도 가치는 없어. 이빨을 어깨에 박는것부터 아파죽겠는데, 자기 몸에 피도 뺴야하고. 피도 죽을만큼 마셔야하고. 인간은 아프다가 울며불며 물어뜯고. 피도 전부 마나를 써서 변환시켜야 하고. 대상자의 장기도 마나로 바꿔야하고.. 저러는 도중에는 취소도 못하니까, 누가 총쏘면 두 명이 같이 골로가는거지." 자스민이 말했어요. 그 다음에 잠시 쉬고. "그리고 나도 알아. 너희 종족이 어떻게 교미하는지 정도는. 애초에 모를리가 없잖아? 인생 절반쯤은 그걸로 살았고 작동은 안 하지만.... 있으니까."


"오. 그냥 즉석 외과와 내과 수술을 동시에 하는 거였잖아요. 교미가 아니라. 말을 하시지. 그리고 좋은 정보도 고마워요. 블라드라들한테 제일 궁금했던 것 중 하나였거든요. 있었구나. 결혼하면 그럼..."


"... 한다고 들었어. 결혼하기 전에도 할거고. 이샤라이나 문화던 마운티아 문화던. 뭐... 별 의미 없지만. 내가 미친건가? 이걸 왜 말해주고 있는거지?"


"아니에요. 자스민씨. 진짜 고마워서 어째요. 백마도사 책에서는 그런 거 안 알려주거든요. 그럼 혹시..." 변태 근육질 아저씨가 되버린 메르힌이 말하다가.


"우웨에에에에엑." 카리샤는 이 대화를 못 참겠는지 또 토했어요. 자스민은 그런 카리샤를 못 마땅하게 바라보고. 메르힌은 다시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죠. "하이라이트였는데!" 그 다음 어색함이 가득해졌어요.


이 어색함의 유일한 긍정적 여파는 바로 싸움을 걸 대상 한 쪽은 기진맥진해졌고. 한 쪽은 그걸 보고 식었고. 다른 한 쪽은 스트레스가 가득차서 누가 스트레스를 늘리면 자기 주먹으로 박살낼 기세였다는 게 보여서 2시간 동안 가만히 있었다는거였어요.


그 어색함이 끝난건 하얀색 머리에 하얀색 피부에 입가에 피가 잔뜩 묻었는데 거리에 고개를 빼곰 내밀고 손을 흔드는 미친년. 줄여서 캐놀라이나라고 불리는 생명체가 등장하고 나서야 였어요. "성장했구나! 제군들! 난 솔직히 한 명은 시체로 발견된다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었는데!"


"저희 사이 좋거든요. 캐놀라이나씨." 카리샤씨가 아니라 드핀이 말했어요. 입가에 묻은 무지개색 액체를 닦곤 말이에요.


"죽이지." 자스민같은 키아닌씨가 말했어요.


스트레스에 가득찬 메르힌은 (내가 대머리라니! 블라드라들마저 머리카락을 복원하는 방법을 모르는거야?) 잠시 멍을 때리다가 말해요. "맞습니다. 죽이죠. 죽이고 싶다. 아니. 살고 싶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아. 그래. 내 아들들은 잘 지내려나." 마음에 있지도 않은 헛소리를 내뱉는 메르힌이 말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드라파스씨였죠.


"아들도 있었어? 아. 맞다. 인간 시절 부부를 지금도 하고 있다고 했지? 대단한걸. 그러기 쉽지 않은데." 캐놀라이나가 엄지를 내밀었어요. "맞죠. 캐놀라이나씨. 그게, 전 이 일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서. 용병일 하는데 블라드라가 더 대우를 좋게 받고. 치료도 잘 된다고 해서 선택한 길이라서요." 드라파스씨가 말했어요.


메르힌은 백마도사가 전세계적인 인기도 많고, 할 일도 많아 영웅이 잘 되는 길이라고 선택한 자신의 바보같은 뻘짓과 곂쳐보여 불쾌했어요. 하지만 캐놀라이나는 기분이 죽인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멋지네! 나도 이제 가족이 생겼는데. 소개해줄게! 자. 나오렴?"


캐놀라이나는 손님 맞이 웨이터같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캐놀라이나의 다른 손을 잡고 있던 아이는 앞으로 천천히 나왔어요. 몸에 피가 조금 묻었고. 눈은 붉은빛으로 맴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났을 떄보다는 괜찮아진 것 같고. 메르힌과 카리샤가 목격한 '만들어지는 과정' 중 보다는 아주 많이 나았죠.


붉은 색 눈동자, 검은색 생머리. 푸른색 드레스였지만 자신의 피와 캐놀라이나의 피로 검붉게 변한 드레스.


그리고 모든 걸 잃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눈을 가진 이 아이는.


당연하게도 카리샤 말린이라고 불렸어요.


캐놀라이나는 자세한 건 아지트에서 정하자고 했죠. 그래서 다같이 멀쩡히 잘 가다가, 캐놀라이나는 왠 싸구려 할인마트에 멈춰서 무언가를 들곤 말해요. "케이크 가게는 가면 강도인줄 알고 돈을 줄테니까. 여기서라도 케이크를 사가야겠네. 이거 어때?"


"펜케이크 믹스라. 좋군. 캐놀라이나. 아무러 너라도 펜케이크를 못만들진 않겠지." 키아닌이 흘결보고는 말했어요.


"애 생일 기념으로 펜 케이크 믹스라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더 쓰고 그러시죠." 드라파스는 낭만없이 말했어요.


"이번만은 드레파스 말이 맞습니다. 캐놀라이나씨. 저 혼자만이라도 갔다 와서 케이크 사올까요. 팬케이크라뇨. 봐요. 지금 애도 케이크 아니면 안 먹겠다는... 표정을 어디서 배웠어! 누구한테 그런 못 된 걸 배운거야! 너 정말 싸가지 없구나!" 드핀이 어린 카리샤 말린에게 말했어요.


"아니야. 그냥 펜케이크가 뭔지 몰라서 그랬어. 진짜야." 카리샤 말린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표정을 짓곤 말했어요. "그리고 내 이름은 엘리니 프라드야."


"그래! '전' 엘리니 프라드양." 캐놀라이나가 말했죠.


"내 이름은 엘-", "카리샤 말린양! 좋아. 나는 육아하려고 너를 대려온 게 아니고. 너가 내 행복한 인생에 그런 쓰잘대기 없는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수에 큰 연연이 없다는 게 좀 놀랍네. 살고 싶어서 거짓말 친거야? 응? 귀엽네~"


"거짓말 아니야.", "그러면 엘리니 프라드도 잊어! 사방팔방에 '나 아직 살아있고 10살인가 9살쯤 되는데 너희들을 죽이고 싶어요'라고 광고 하고 싶어서 원래 이름을 계속 쓰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렴. 넌 이제 카리샤-말린이야. 멋진 이름이라구. 내가 음... 뒤에서 두번째로 좋아하는 꽃이지. 괜찮아. 난 캐놀라이나 말곤 다 싫어하니까 모두 똑같은 등수니. 2등이겠네!"


".... 알겠어. 대신 복수할 때는 내 이름 쓸꺼야.", "그래. 그래. 정말 귀엽네. 누구 딸이래?" 캐놀라이나는 끌끌 웃고는. " 그리고 나머지 둘. 너희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말이야. 케이크? 다른 사람이 만든 케이크를 못 먹는 이유가 있어. 분명히 존재하지. 모르는 것 같아 내가 말해줄게."


"뭔데요?" 드핀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복합적인 한숨이었죠. "그건 바로-"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사랑이 중요한거다." 키아닌이 말했어요.

"사랑이 중요한거야. 아하하! 키아닌! 이 귀여운 녀석.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다니까?"


"됐어. 나 먼저 간다. 준비할 게 있으니." 키아닌은 자리를 벗어났고. "응? 야! 같이가! 뭐야. 엄청 빨리 사라지네." 캐놀라이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장바구니에 펜케이크 믹스를 넣었어요.


그걸 보고 있던 카리샤 말린은 드라파스에게 몰래 다가간 다음 속삭였죠. "있죠. 아저씨."


"아저씨 아니다." 드라파스와 메르힌은 힘을 합쳐 진지하게 말했어요. "하지만 너의 이야기는 들어가겠구나. 뭐니?"


카리샤 말린은 비밀스러운 걸 말하는 듯 속삭이며 "아까 저 오빠. 울고 있었어요. 벌써 내분이 일어난 거 아니죠? 저 복수해야하는데..."


드라파스는 그 말을 듣고 사라지는 키아닌을 찾으려고 했지만, 키아닌은 보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키아닌은 도망치듯 빠져나와. 그저 마음편히 자스민인체 있을 수 있는 어느 한 구석.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졌는데도 끔찍한 고독이 있는 뒷골목에 혼자 숨어 울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는 이유는 너무 많아서 알수 없었어요.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추억의 파편들이 다시 모였기에 벅차올라서 운걸까요.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이와 같은 숨을 내뱉고 같이 있을 수 있었기 떄문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기억을 잊어버렸던 건 카리샤뿐만 아니라 자스민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자각했기 떄문이었을까요.


자스민에게 과거의 기억은 아련한 추억과 그 아련한 것이 절단되며 찢겨나가는 끔찍한 고통이었어요. 아련한 추억은 너무나 일상적이었기에 기억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박살나는 건 너무나도 끔찍했기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죠. 그렇기에 자스민은 그 아픔을 준 이에게 복수하려는 것만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이 나날들이 얼마나 자스민에게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자각하며 기뻤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끝이 있다는 데에 슬펐어요. 그런 눈물이었죠.


그러다가.


"자스민씨." 자스민은 고개를 돌려서 뒷골목과 거리를 구별하는 곳에 서 있는 사람을 봤어요. 드라파스, 메르힌이었죠.


"닥쳐. 메르힌. 그리고 보고 있지도 말고. 어떻게 온거야?" 자스민은 주저 앉은 체, 굳이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에게 손짓했어요.


"..." 메르힌은 성실하게 닥쳤어요. 자기가 어떻게 자스민을 안 보이는데도 추적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멋진 설명을 준비해뒀는데 말하지 못해 우울했지만, 아무튼. 꺼지라는 말은 안 했기에 옆에 앉았죠.


"보통 문맥상 꺼지라는 것도 포함해서 생각하지 않나?"


"제가 보통 문맥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잘나셨어."


"잘났죠."


"좋아. 네 계획이 뭔진 모르겠지만, 난 네 방해가 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굳이 감시를 안 붙어도 될거라고. 카리샤가 목이 붙어있던 말던 너랑은 관계 없을 거잖아."


"자스민씨. 그냥 조용히." 메르힌이 옆을 바라봤어요. "조용히 있을테니까. 혼자 울면 좀 슬프잖아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테니 자. 울어요."


"지금 나를 뭘로 생각하는거야. 울 것 같아?" 자스민이 말했어요. "울리가 없잖아. 지금 와서 상냥해져봤자 너한테 줄만한 건 없어."


"그럼 그냥 이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자스민씨의 심리적 영향때문에 이 일을 망치고 싶지 않고. 그냥 문제가 해결할 법한 가장 빠른 방법을 선택한거에요. 위로할 마음도 없고, 위로할 말도 생각이 안 나서 그냥 모르는 척 옆에 앉아서 어깨나 내주는 이상한 사람으로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하지만 제 말 들어요. 도움 될걸요."


"왜 그러는건데?"


메르힌은 고민해요. 아까 말한 이유가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원인은 되지 못한다는 걸 메르힌도 알아요. 메르힌은 왜 이러는걸까요? 모르는 척하면...


아.


"모르는 척하면 후회할테니까요. 그거면 될까요?"


자스민은 그 말에 많은 걸 느꼈어요. 많은 것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잊으려고 애썼던 수많은... 붕괴의 진조들을 모른척했었던, 그래서 이 나날들이 영원하기를 바라던 자신을 느꼈죠.


오브미가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오브미가 왜 메르힌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도 이해하며, 자기도 따라서 말해봅니다.


"폭력적이네. 메르힌."


"요즘 그 소리 많이 듣네요."


그러고 자스민은 한숨을 내쉬고는 하늘을 바라봐요. 쌓여있는 먹구름. 캐놀라이나 꽃의 지워지지 않는 향기와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매연. 울기에도 지친 사람들.


자스민이 기억하는 이 도시는 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도시였고. 캐놀라이나는 이 때 가장 활짝 피었던 꽃이라는 걸. 메르힌의 어깨에 기대 하늘을 보며. 눈을 감고는 생각해요.


자스민은 그럼에도 이 시기를 좋아했어요. 메르힌도 하늘을 보며 혼자 버려두고 온 카리샤씨는 잘 해내고 계실까 생각했죠. 보통 말을 하는데. 나름 괜찮은 분위기를 카리샤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망치고 싶지 않아 참았어요.


메르힌의 질문에 답변해볼까요? 카리샤는 놀라고 있는데에 모든 집중을 썼어요. 저 정신나간 하얀색 싸이코의 패거리들은 방금 살인을 수십건 저지르고서는 신나게 마트를 보고 있다는데에 경악을 금치 못했거든요. 그래서 두 명이 사라지던 말던. "캐놀라이나님. 뭔 오이입니까? 펜 케이크에는 오이같은 거 안 들어갈 뿐더러 오이는 맛대가리도 없는 독초입니다! 저리 치우세요!" 라고 말하는 스스로에게 경악을 금치 못헀어요.


"건강하잖아. 성장기니까 이런 거 먹어야 하는거 아니야?" 캐놀라이나 씨는 피가 조금 묻은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말했어요. 다행히도 추가 살인이 아닌, 아직 씻지를 않아서 손에 피가 묻어져 나온 거였죠. 주민들은 거기에 큰 불만은 없었고. 점원이 "나가실 때 손 씻고 나가주세요." 라고 친절한 주의정도만 줬어요.


하긴. 뒤에는 총들고 있고 옆구리에는 칼들고 있는 사람이 강도질이 아니라 물건 사겠다는데 친절하게 해줘야지. 안돼. 카리샤. 납득하면 안 돼! 카리샤는 스스로 저런 논리를 만들어내어 합당화 했다는 데에 우울해졌답니다. 아니면 이 드핀이라는 사람의 합리화 기술이라던가. 그래요! 적어도 전 스스로 거짓말은 안 하니까요! 드핀의 소행이 분명하답니다.


그렇게 카리샤가 생각했고, 그래서 카리샤가 말해요. "오이는 어떤 영양성분도 없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고 향만 끔찍해지는 최악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그걸 펜케이크 위에 올린다는건. 오. 도대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시는겁니까?" 젠장. 오이가 더 싫어서 그만 오이에 대해서 말해버렸네요. 카리샤는 생각해요. 저도 오이 싫어합니다만. 원래는 이런 불합리적인 상황에 대한 다섯 문단짜리 논고를 말하려고 했답니다. 드핀님.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언니 말이 맞아. 오이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채소야." 어린 카리샤 말린이 말했어요. 드핀은 그 말을 듣고 쓰담어줬어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 뭔 그거야! 넌 편식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머리를 헝크러버리죠. 이것도 의외인데. 카리샤는 드핀이 난폭하고 자제력없으며 거짓말이나 하는 인물이었는 줄 알았기에 어린애의 얼굴에 주먹질이나 하는 인간 쓰래기라는 걸 당연시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고작 머리 헝크리기라니.


"내 머리 건들지마!" 어린 카리샤 말린씨는 얼굴이 머리카락에 다 가려질 때까지 발버둥치면서 말했어요. "언니는 형편없는 어른이야!"


"넌 형편없는 어린애야. 뭐든지 다 잘 먹어야지 네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을걸? 그런데 벌써 편식이라고. 절박하지가 않나봐?"


어린 카리샤 말린은 그르렁거릴 수 밖에 없었어요. 드핀은 그걸 보고 회복이 빠르다고 생각했죠. 적응력이 정말 죽이는 아이인가봐요. 자기는 4주간은 제정신이지 않은체로 생활했었는데.


그럼에도 갸엾어라. 블라드라가 되다니. 안 되는 편이 좋은데. 그런 동정심을 줬어요.


"너희 둘 정말 자매같구나." 캐놀라이나는 옆에 있던 식빵을 먹으면서 말했어요. "오. 이거 맛있네. 이것도 넣어볼까. 펜케이크에 발라먹으면 맛있겠는데."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싸서 먹을 계획인가요? 맛이 없을리가 없지. 아. 술도 담아주시겠어요. 그런데 잠깐. 펜케이크가 액체던가요? 그것도 놀라운 사실이네요. 그리고 네? 제가 캐놀라이나씨의 딸이라고요? 캐놀라이나씨. 제발 놀랄만한 문장은 한번에 한번씩만 써주세요." 드핀은 얼굴에 홍조도 띄웠어요. 캐놀라이나는 옆에 있는 사과도 먹으면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언니고. 카리샤 말린이 동생이고. 음. 생각해보니 좀 그렇긴 하네. 네가 나보다 더 나이 많지 않던가?"


"훨씬 적어요. 제가." 드핀은 진지하게 말했어요. 캐놀라이나는 사과를 아삭아삭씹곤. "이것도 넣어도 될 것 같네. 달아!" 그 다음에 옆에 새 사과를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어린 카리샤 말린은 그 광경에 혼돈에 빠져서. "이 가족 이상해. 원래 상점이라는 게 이런 곳이야? 내 복수는 언제 도와줄꺼야?" 라고 말했죠.


"이런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게 도움이 된단다. 카리샤 말린. 정상인처럼 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 캐놀라이나가 옆에 있는 배도 아삭아삭 먹으면서 말했어요. "이것도 맛있네. 얘도 펜케이크에 넣으면 맛있겠어." 그 다음에 새 배를 넣었고. 그 때쯤 점원이 슬그머니와서 캐놀라이나를 잠시 보다가 쫄아, 옆에 있는 드핀에게 슬쩍 간 다음 속삭였어요.


"저 혹시. 저 분 지인이신가요?"


"그런데요."


"그 진짜 실례지만 계산한 다음에 드셔주셨으면 하십사..."


"오." 드핀은 등에 있는 총을 주섬주섬 꺼내고. "그거 참 저희가 대단한 실례를 했네요."


"아뇨! 그.. 나중에 계산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종업원이 뒷걸음질치면서 말했어요.


"계산? 그러죠! 납탄으로도 될까요?" 드핀이 말했어요. "감히 지금 저희한테 말을 걸었어요? 말을?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봐봐. 카리샤 말린. 저게 바로 에티켓에 벗어나는 일이지! 드핀이 참 좋은 교육을 시켜주는구나."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언니랑 아줌마 강도야?" 카리샤 말린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어요.


"강도 아니야! 용병이라고!" 드핀이 여전히 종업원을 겨눈체 말했어요.


"벌써 아줌마 소리를 들을 때가 됐구나. 흠흠. 세월이란. 성숙해진 것 같아." 캐놀라이나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말했죠.


어린 카리샤 말린은 캐놀라이나를 바라보며 말해요. "말투가 아줌마 같아. 드핀...? 언니는 신경질적인 언니같아서 무서워."


드핀이 둘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종업원에게 말하죠. "위층에 누구 사나요? 천장은 콘크리트고요?"


"아무도 안 살고. 네. 콘크리트입니다." 종업원이 말했어요.


드핀은 스트레스 해소용 괴성을 지르며 천장에 총을 쏴댔고, 캐놀라이나는 그걸 한심하게 바라본 다음 펜케이크 믹스, 반쯤 먹은 딸기잼, 배의 줄기, 사과의 줄기, 사과, 배, 그리고 비누가 담긴 장바구니를 든체 계산대로 걸어갔어요. 카리샤 말린은 드핀에 대한 평가가 낮아진 눈빛으로 보다가 캐놀라이나를 졸졸 따라갔어요.


저번 상점에서도 털렸는데 이곳마저 강도에게 털리자 지친 시민들은 드핀에게 지갑을 던져준 다음 빈손으로 나가려고했고. 드핀은 강도가 아니라면서 지갑을 집어던지고. 종업원은 살려달라면서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고. 드핀은 누가 죽인댔냐면서 쫒아가고. 가게는 순식간에 개판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그걸 보며 캐놀라이나는 계산대의 직원과 이야기하면서 참 가게 운영하기 힘든 시기라며 웃었어요. 종업원도 웃으며 말도 마라고, 저런 손님을 제거하기 위해 샷건을 하나 사려고 하는데 요즘 어떤 샷건이 디자인이 좋냐고 말했죠. 캐놀라이나는 화장품 설명하듯 이야기를 나누다 팁도 챙겨준 다음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했어요.


그게 드핀이 상점에서, 마지막으로 본 캐놀라이나의 모습이었죠. 그로부터 2시간 후에서야 가게 안 시민들에게 왜 자신이 강도가 아니며, 천장에 총을 쏜 건 그저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한 농담이었다고 가게 문을 잠구고 총을 겨눈체 설득한 끝에 다들 납득한 걸 확인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 2시간의 포위동안 온 손님들이라곤 새로운 손님들과 털어먹으려는 다른 강도들이었죠.


손님들은 장을 보라며 안에 들여놓고는 그런데 자기는 강도가 아니라고 설득하느냐 안에 가뒀고. 강도들은 오늘 번 돈을 백마도사에게 모두 줄 수 있도록 다리 왼쪽과 팔 왼쪽을 날려버렸어요. 그 다음에 오해가 모두 풀리자 불타버린 경찰서와 자경단과 블라드라들의 혈투를 잠시 구경하다 지나가며 오늘도 참 힘든하루였다고 한숨을 쉬고. 캐놀라이나의 아지트로 돌아가다가. 지하 계단 앞에 멈춰섰어요.


"진짜 정신 나간 싸이코잖아요!" 내면의 카리샤가 드핀의 제어권을 찾은 다음 소리쳤어요. "정신병 걸린 거 아니에요? 이러다가 제 아름다운 정신도 망가지겠어요. 아아아아아...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어떻게! 퍼티가 헛소리하면 총을 겨누는 미친년이 되어있을지도 몰라요! 안 돼! 헛소리 한 번 했다고 총당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 다음 하염없이 엉엉 울었죠. 드핀이라는 이상한 사람은 저지르고 후회한 다음 다시 저지르는 이상한 사람이 틀림없다고 카리샤는 생각했어요. 뭐. 맞아요. 슬픈건 맞는 데 엉엉 울기는 카리샤의 주특기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봐요. 진짜 자기는 이 상황에서도 냉정 침착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어요. 퍼티가 눈을 뜬 자신을 바라보며 '하. 잘도 주무셨네요. 카리샤 아가씨.' 라고 말하면, 자. 카리샤. 이 때 뭘 해야하지죠?


1.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답니다. 퍼티. 오늘 아침은 뭔가요?

2. 하으으음. 퍼티. 좋은 아침이랍니다. 다시 보니 행복하네요.

3. 지금 잔다고 저 놀린거에요? 탕! 탕탕탕! 타타타타타탕! 헉. 미안해요. 머리가 남아있질 않네요.


당연히 3번이지!


카리샤는 드핀에게 오답의 대가를 주기로 했고. 대가는 문에 머리를 박는거였죠. "아아아아악!" 그런데 아픈 건 자기가 아파요. 서러워요. 눈물이 나와요. "안 돼. 안 돼 카리샤.... 그러면 안 돼!" 드핀은 문을 흐느끼며 안고서 말했어요.


"뭔가 안 돼? 언니?" 카리샤 말린이 순수한 어린이가 이상한 것을 본듯한 표정을 지은체 말했어요.


"그리고 넌 왜 우리 집 문에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요즘 체조가 그런가?" 캐놀라이나는 그런 드핀을 놀리는듯하지만 실제로 묘한 표정으로 체조 동작을 하면서 말했어요.


"뭐하는거야?" 드라파스가 말했어요.


"풉. 병신." 자스민이 조용히 말했어요. 누가봐도 자스민의 미소였죠. 자매가 이상한 짓하는 걸 부모가 봤을 때의 그 쾌감이 가득한 표정!


"뭐. 뭐라고? 키아닌? 뭐?" 드핀이 이마에 피가 조금 흐르지만 정신이 번쩍들어 말했죠. "뭐라고 했어?"


"문에서 나오라고 했다. 드핀." 키아닌이 말했어요. "4명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뭐하는거냐?"


드핀은 나머지 사람들의 눈을 봤고. 캐놀라이나는 장바구니를 한번 들고 웃어주자 더 할 말이 없었기에 비켰어요. 비참한 패배자의 심정으로요. 한 명 지나갈 때마다 패배의 감정이 증폭되어가요. 스스로에게도 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지고.


그런 비참한 드핀을 마지막으로 지나친 건 키아닌이었어요. 그 은색 남성은 기분 나쁜 승리자의 미소를 띄며 어쩔 도리 없는 걸 본듯 고개를 몇 번 돌리고 가요. 드핀은 너무 화가 나서 총을 꺼내- 안돼! 카리샤! 난 드핀이 아니라 카리샤야! 이성이 있다고!


그래서 침착하게 분노를 삭히며 이를 꽉 깨문체 소파에 누워요. 눕자마자 먼지와 오래된 가죽향이 코를 찔러서 바로 옆으로 굴러떨어지고 테이블이 그 여파로 무너지고 머리 위에 식은 커피가 쏟아지고 탕탕탕탕. 키아닌의 머리가 펑~ 아지트에 피가 철철! 치명적인 오류 발생!


좋아요. 쉬었다 가죠. 휴. 자. 쉼호흡. 휴우우.


우리 친구들도 아무것도 없는 무한한 격자 공간 위에 앉아있어요. 카리샤가 롤플레잉을 전면으로 부정하다가 그만 롤플레잉 과다로 키아닌을 쏴버렸고. 복원지점은 그런 거에 대한 답변으로 '대답 못 해' 라고 반응했고. 그래서 머리 식혀보면서 이 복원지점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보라는 그런 공간이었어요.


카리샤는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고. 메르힌은 자기 머리를 만져보고 있고. 자스민은 머리가 날아갔었기에 시체가 일어나는듯 강한 두통과 함께 비틀거리고 있었어요.


"카리샤님." 메르힌이 말했어요. "진정하세요. 저는 변태 민머리 유부남 아저씨인데 카리샤님은 장발에 총 든 침착한 여성이잖아요. 카리샤님이랑 닮았어요."


"어디가 그렇게 닮았습니까. 메르힌님...." 카리샤는 의기소침에 가득차서 웅크려 앉은체 말했어요. "하나도 안 닮았어요. 그 정신병자는 외관말고 멀쩡한 게 하나도 없고, 쉬지도 않고 광기에 가득차있답니다. 그걸 억누르려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나요. 아실 수 없겠죠."


"하. 그래요? 전 제 대머리 볼 때마다 살인 충동이 나요! 그럼 바꾸던가요! 오브미씨! 듣고 있으시죠!?" 메르힌이 천장에 대고 소리쳤어요.


"아뇨. 안 듣고 있어요." 위에서 목소리가 내려왔어요. "왜 듣고 있다고 생각해요? 머리에 커피 쏟았다고 총 뽑아들어서 자스민님을 쏘는 분과, 그 분 놀리려고 매시간 새로운 방법을 짜내는 분과. 대머리인게 슬픈 3명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를 왜 듣겠어요."


"마음이 시켰어." 자스민이 말했어요.


"이게 다 자스민씨 때문이랍니다. 보면 화가 나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이 둘 좀 몇번 죽여줄래요? 오브미씨! 그러면 닥칠지도 몰라요! 그 다음에 제가 드핀씨 할래요! 저 이 대머리 못 해먹겠어요! 적응이 안된다고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깊은 한 숨. 그 다음에. "제가 어디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손에 손잡고 화해하라고 어떻게 말하겠어요." 천장이 말했어요. "그런데 하나 알아둘 건 우리에게 시간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는... 아. 잠깐만요. 기다리고 있어봐요." 마이크가 지직이는 소리가 잠깐 들리곤.


"오. 별일 아니에요. 마운티아 공중 경찰이 우리를 레이더로 찾았고, 우리가 항해 허락도 안 받은 미등록 비공정인 걸 알고 비공정 몇 대를 우리 뒤에 붙인 상태이며. 방금 흑마도사 네트워크에서 들어온 바에 의하면 우리는 연방수사국에 의하여 국가 기간망 파괴 혐의와 납치, 살인 미수의 혐의로 전 마운티아 대륙에 수배가 걸렸다고 하는 사소한 문제가 있네요. 여러분이 대머리고 옆 짝지가 마음에 안 들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싶은 것보다 매우 사소한 문제라서 굳이 말씀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자. 빨리 중요한 문제를 계속 말씀해주시길."


잠시 천장은 모두에게 말할 기회를 줬어요.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죠. 그걸 확인한 천장은. "잘 할 수 있죠?" 라고 물었어요.


"오브미씨. 하나만 확신을 주세요.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네.", "그럼 됐어요. 대머리일 가치가 있었다면...."


"이 이야기에 나도 나오는거지?" 자스민이 말했어요.


"네.", "나도 됐어."


자스민과 메르힌은 카리샤를 바라봤어요. "그게. 오브미씨. 이제와서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직 저는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신하지를 못하겠답니다."


카리샤가 잠시 말을 찾으려고 머뭇거렸지만, 오브미는 가만히 마이크를 잡고 듣고 있었어요. 조금 기다린 후. "차라리 잊는 게 더 나은 이야기가 있었지 않았을까요. 물론 똑바로 바라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저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답니다. 캐놀라이나는 망나니라는 생각밖에 없고. 자스민씨 인상은 더 나빠졌고. 20년 전 세상은 지옥이라는 것외에는."


"만약 이 이야기를 더 지켜봄으로써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답니다. 의미가 있을까, 더 나빠지지는 않을련지요."


"물론. 여기서 멈출 수도 있겠죠." 오브미가 말했어요. "하지만 카리샤 아가씨에게 그 두 사람은 영원히 거기서 머무를거랍니다. 그걸 원하시나요? 그럼 그 다음에는 다시 위기에 처해서, 다시 누군가가 구해주길 기다리고요? 처음엔 캐놀라이나님. 두 번째엔 퍼티. 두번이나. 운이 좋았네요. 그럼 세번째는 있을까요?"


카리샤는 당혹스러웠어요. "그 두 사람의 인상이 나쁜 것과 제가 위기에 처할 것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두 가지 요인이 있어요. 심리적 요인과 실리적 요인. 심리적으로는 아가씨는 또 한번, 다시 아가씨의 10년을 부정하려고 들거고. 그로 인해서 또 공허한 마음이 들것이며. 아가씨는 애정 결핍에 또 걸려서. 또 모든 걸 개판치겠죠. 아가씨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받아드리지도 못하는 게 부끄러워서 유지하던 신비주의 컨셉도 곧 바닥을 들어낼거고. 스스로에 대해 의문만 가득남을거고. 똑바로 바라볼 기회가 있는데도 날려버린 걸 후회하게 될겁니다. 아가씨의 뿌리를 부정해놓고 잘 자라날리가 있겠습니까."


"실리적 요인으로는. 제가 보증하죠. 이 이야기에는 제 시간안에만 도달할 수 있다면 바깥의 문제들도 치워버릴 수 있을거고." 오브미는 잠시 기다렸다가 감정이 실린, 주로 증오가 섞인 목소리로 말해요. "마땅히 했어야 할 일도 이뤄질 거에요."


자스민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하나가 있긴 했지만, 그건 카리샤의 죽음이죠. 물론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못 죽이고 있지만 오브미도 자기와 같은 생각일거라는 생각은 접었어요.


카리샤 말린은 그 말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도요. 자스민이 이 곳에 들어오기 전에 한 말처럼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과연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요? 부정은 하지 않지만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지난 10년 간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잘 이겨냈었어요.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죠.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건, 매몰되지 않았던 과거에 스스로 뛰어든 거에요.


퍼티와 메르힌의 도움으로요. 그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죠.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고요. 하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이랍니다." 카리샤가 말했어요.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듣는 건 그 사람을 부분적으로 되살리는 것과 같아요." 오브미가 말했어요. "카리샤 아가씨가 여기까지 오게 된 기억을 지웠을망정 느낌은 지우지 못했었기 때문아닌가요. 기억을 지웠다고 그간의 습관과 행적이 지워지지는 않으니. 과거는 계속 카리샤 아가씨의 주변에서 유령처럼 맴돈거겠죠.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생활 속 모든 곳에서 계속 살아나면서요."


"그리고 지금이 그 유령에 다시 직면해야할 때라고 생각해요."


"왜죠?" 카리샤가 말했어요.


"왜냐면. 카리샤 아가씨는. 그 때와 달리 이곳으로 대려와준 살아있는 친구도 두 분이나 계시고." 오브미가 말했어요. "카리샤 아가씨는 사랑했으니까요. 캐놀라이나님을."


카리샤는 인정하기는 힘들었고, 자스민도 인정하기는 힘들었어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한 가지는 동의할 수 있었죠. 어떤 걸 동의했냐면.


"좋아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잘 해볼게요."


다시 이야기로 빠져들어가는 거에 말이에요. 그 셋은 그 말 후에 눈을 잠깐 감았는데요. "잠깐만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혹시 해줄 조언 같은 거 있어요?"


"과거는 못 바꾸더라도 여러분의 과거를 어떻게 받아드리는지는 바꿀 수 있어요. 이야기는 못 바꾸더라도, 여러분이 어떻게 이야기를 느낄지는 바꿀 수 있죠." 오브미가 말했어요. "복원 지점은 그냥 일기장 용도가 아니라, 자신을 조금이나마 더 개인적으로 이해해달라는 불행한 욕구에서 태어난거니까. 그 용도로 잘 써보세요."


"좋아요. 그럼 다시 가보자고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아. 그런데 자스민씨. 자스민씨는 우리 3명? 에 빙의한 분들을 만나보셨나요?"


자스민은 무뚝뚝하게 메르힌을 바라보고. "당연하지. 그 사람들은 내 가족들이었으니까."


"어떠셨나요? 지금과 닮았던가요?"


자스민은 잠시 고민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어요. "좀 더 바보같았지만, 닮긴 한 것 같네."


카리샤는 그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잠깐. 그러면 그 분들은 어떻게-"


"시작합니다." 오브미가 말했어요.


그 직후 의식이 하얀색으로 페이드 인되고, 페이드 아웃되고, 불행한 드핀이 다시 소파에 코를 박고 먼지를 들이킨 다음 썩은 가죽 냄세를 맞고 옆으로 굴러떨어져서 머리에 식은 커피를 쏟은 다음 기묘한 표정으로 일어나요.


"정말 다 쏴버리고 싶은 하루야." 드핀이 말했어요. 그 다음 훈장에 묻은 커피를 털어냈죠.


"언니. 괜찮아?" 카리샤가 말했어요. "넌 적응력이 정말 빠르구나." 드핀이 말헀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내가 본것만... 생각해도 꽤 큰 일이었을텐데."


잘 이겨냈니? 카리샤. 드핀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부끄러워서 말하지는 못했어요. 카리샤는 드핀의 말에 표정이 점점 울먹이다가. 그냥 주저앉고 울기 시작했어요. 드핀은 놀라서 허둥지둥대고. 그라파스는. "뭐야. 드핀. 애를 왜 울려?" 라고 말했어요.


"누가 울리고 싶어서 울렸겠어!?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봤는데...!"


"다들 그렇게 말하지." 키아닌이 말했어요.


"드핀. 여자를 울리는 제주가 있구나. 그 대상이 애인거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성장하면 성숙해지겠어." 캐놀라이나가 주방에서 말했죠. 그 다음에 걸어왔는데, 캐놀라이나는 은색 대접에 펜케이크 믹스를 가득 담은 걸 휘저으면서 얼굴에 믹스 가루가 잔뜩 묻어있었어요.


드핀은 옆에 있던 담배에 잠시 손이 갔었는데 애한테 구름과자를 먹이려는 자기 상식에 머리를 잠시 박고 싶어졌어요. 내면의 카리샤는 자기가 평생 담배라고는 손도 대본적이 없기에 좋은 언니로써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드라파스가 자식한테 준 봉제 인형을 들고 카리샤 앞에서 재롱을 피우기 시작했군요.


드핀의 재롱을 보고 카리샤는 무서움과 기괴함, 어설픔의 3가지가 섞였다고 생각했어요.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여전히 좀 흐르지만 웃었죠.


"미쳤군." 키아닌이 말했어요. "그리고 캐놀라이나. 혹시 펜케이크가 살아 움직여서 죽인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그 꼴인걸 납득할 수 없군."


"응. 제압하느냐 고생을 했었지."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그래서 우리 카리샤는 왜 우는거야? 지금은 또 좀 웃고 있는데."


"그게 복잡해요. 그리고 제가 말하면 다시 울거고요. 그래. 복수 이야기나 할까?" 드핀이 말했어요. 내면의 카리샤는 이 참에 확실히 확인을 하나 받기로 했죠. "카리샤. 일단 ... 원래 이름이 뭐니?"


"엘리니 프라드.. 에요."


"아. 그... 가스 제조 회사. " 드라파스가 말했어요. "전쟁떄 많이도 썼지." 메르힌은 생각했어요. 오. 이건 모르던거였는데.


"드라파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무튼, 프라드라고 불러야 하나? 이름이 어느 부분이니?"


"엘리니가 이름이에요."


"잘 나가는 집안이니 놀라울 것도 없군." 드라파스가 말했어요. "그런데 잠깐. 프라드 가문의 딸을 우리가 대리고 있어도 되나? 그 친구들 잘 나가는데. 꼬마야. 집에 대려다 줄까?"


"...." 카리샤는 다시 울먹였어요. 드라파스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안 눈치였죠. "오... 그래서..." 복수였구나. 메르힌은 용족에 대해서 왠지 모를 혐오감이 들었어요. 가족은 다 태워죽여버리고, 꼬마애는 납치해서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다고. 대단하셔라.


"이제 남은 가족은 저 밖에 없어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키아닌은 그걸 가만히 듣다가, 말이 끝나자 커피나 내리러 갔죠. 드핀은 곰인형만 든체 할말을 찾고 있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그거... 그거 힘들겠구나." 라고만 말했어요. 드라파스는 그걸 가만히 듣다가 창문을 바라봤죠.


드라파스가 바라보는 이 도시는 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도시였어요. 하지만 비는 잘 내리지는 않았죠. 다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터져나오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 늘 쏟아내지는 않고. 그저 버텨내기만 했으니까. 어차피 슬픔을 쏟아내도 우산을 씌워줄 사람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오늘 정도는 비가 쏟아져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어두워지는 세상을 보며 커튼을 쳤어요. 그리고 몇 시간 후.


"키아닌. 드라파스. 드핀. 카리샤. 이것 좀 봐봐." 캐놀라이나가 말했어요. 그 목소리에는 평소에 찾아볼 수 없던 기대, 흥분, 그리고 저녁 시간의 열정이 모두 담겨 있었고. 4명은 캐놀라이나의 바램보다 훨씬 빨리 고개를 돌려 그걸 바라봤어요.


그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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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4화 - DESTROY_GHOST - 평화를 위한 전쟁 22.11.14 17 0 58쪽
64 63화 - DESTROY_GHOST-AFTER : 끝의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 22.08.16 19 0 50쪽
63 62화 - RESTORE_GHOST-AFTER : 동상N몽 22.07.30 25 0 71쪽
62 62화 - RESTORE_GHOST - EP-7 행복을 위한 유예 22.07.15 20 0 70쪽
61 61화 - RESTORE_GHOST - EP-6 유령들 22.07.02 18 0 65쪽
60 60화 - RESTORE_GHOST - EP-5 바라보는 것으로 바뀌는 것들 22.06.18 22 0 91쪽
59 59화 - RESTORE_GHOST - EP-4 가장자리에서 22.06.02 21 0 79쪽
58 58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4 22.05.17 21 0 89쪽
57 57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3 22.05.02 20 0 71쪽
56 56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2 22.04.14 22 0 108쪽
55 55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1 22.03.31 19 0 113쪽
» 54화 - RESTORE_GHOST - EP-2 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도시에 대해서 22.03.17 24 0 95쪽
53 53화 - RESTORE_GHOST - EP-1 복원 지점으로의 도착, 그리고 시작 22.03.04 24 0 60쪽
52 52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에피소드 4. 22.02.20 50 0 113쪽
51 51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람 22.01.29 24 0 75쪽
50 50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 22.01.16 20 0 81쪽
49 49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기억을 잃은 사람 21.12.31 20 0 67쪽
48 48화 - 그거, 당연히 말이 되죠! 21.12.17 23 0 57쪽
47 47화 - 그거 말 - 되네요 +2 21.12.07 24 0 75쪽
46 46화 - 그거 말 - 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21.11.20 23 0 87쪽
45 45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3 21.11.10 21 0 73쪽
44 44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2 21.10.23 25 0 46쪽
43 43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1 21.10.14 25 0 35쪽
42 42화 - 그거 말... - 이 되도록 해야 하는 사람들 21.10.01 23 0 52쪽
41 41화 - 그거 말... - 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PART2 21.09.15 28 0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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