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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Kiri 님의 서재입니다.

여명의 아일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씁쓸한설탕
작품등록일 :
2021.05.24 19:47
최근연재일 :
2023.05.1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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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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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쪽

52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에피소드 4.

DUMMY

조용하게 시끄러운 느낌이 어떤 이에게는 포근함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들에게는 불안감만 가중시켰죠 -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에요.


오브미는 담배불을 붙이고. 지나가는 종업원을 잡곤. "잠시 시간 좀 비우겠습니다." 라고 웃으면서 말했죠. 그런데 그 다음에는 별 말없이. 모두가 자기 입을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브미는 단지 담배를 빨아들이고, 눈을 감은체 주변의 소음을 즐기고 있을 정도였어요. 자스민에게는 거슬려 죽겠는 손님들의 즐거운 웃음과 대화. 그리고 나무 소리같은 걸 말이에요.


담배연기가 내뿜어지고. 메르힌은. "빨리 죽어요. 그러면. " 이라고 말했죠.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분명한 실례겠지만, 메르힌은 백마도사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할만한 말이었어요. 오브미도 그 복장을 보곤 몇번 웃곤. "그럼 제 삶이 줄어드는 만큼 이야기가 빨리 진행되었으면 하는데. 자스민님?"


"난 네가 왜 여기 앉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 오브미."


"안되나요?"


"안돼."


오브미는 그 말을 듣고 커피를 입에 대고, 자스민을 바라본 다음. 커피를 내려놓고. 재떨이에 담배를 지지고. 다시 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들이쉬고, 내뱉은 다음에 말했어요.


"평소라면 자스민님의 말을 들었을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카리샤 아가씨에 대한-"


"그 망할 년 이름에 내 눈앞에서는 아가씨라는 말 붙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오브미?"


자스민은 오브미를 바라봤고, 노려봤고. 죽일 듯이 봤지만. 오브미는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버린 후 말해요. "저는 캐놀라이나 씨의 유산 집행인이지. 자스민 아가씨의 하인이 아니랍니다. 제가 어떻게 부르던 자스민 아가씨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캐놀라이나씨?" 메르힌이 말했어요. "그게 사람이름이에요?" 캐놀라이나가 너의 죽음을 원한다라고 하길래 조직 이름인 줄 알았는데. 사람 이름이었다니. 그럼 그게 자스민과 카리샤의 부모 이름인가? 메르힌은 부모 이름을 그렇게 막 불러도 되나 생각하다가 자기는 '아크라이트 알렉스' 라고도 안 부르고 '그 개자식'이라고만 부른다는 걸 기억해냈어요.


음. 완벽하게 이해되네요.


메르힌의 말은 무시한 자스민이 말했어요. "그럼 더 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거잖아. 카리샤 그 년이 그 사람을 죽였는데. 내가 내 어머니를 죽인 사람의 이름 뒤에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는 것조차 못할 정도로 우리 사이가 나빴는지는 잘 모르겠고, 네가 모시던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는데."


"카리샤 아가씨의 어머니이자, 제 고용인이셨고, 그분은 저에게 유산 집행을 부탁드렸답니다. 그분의 수익이 모두 제 명의로 되어있어서요." 메르힌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해줬고.


"메르힌님이 여러분을 대리고 온 이유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곂쳐질텐데요. 자스민 아가씨. 적어도 짐작은 하고 대려오신 게 아니셨나요?" 자스민에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해줬어요.


"나는 그 년 과거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난 이 사람을 그런 일로 대려오지 않았어. 그러면 오브미.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거짓말을 한 거였어요? 메르힌님."


오브미는 메르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무언가 묻는 표정이었나요? 네. 많은 걸 묻는 표정이었고. 그저 면피성으로 벗어나려고 하는 거였다면 당신에게는 더 이상 줄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그래서 메르힌은 맞설수밖에 없었죠. "네. 맞아요. 이 친구 둘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주제였고, 저와 당신은 관심이 있어보이는 주제처럼 보였으니까."


"제가 관심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그냥 자스민씨의 친구일지도 모르는데."


"확신은 없었어요. 대신 추측할만한 근거는 있었고, 이 두 사람은 저를 협박해서 뜯어낼 생각이었기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더 괜찮아 보여서 했죠. 캐놀라이나가 상징 같은 꽃인 줄 알았는데. 그냥 사람이름이었다는 건 추측을 못했지만 카리샤 말린씨가 기억을 잊는 와중에도 남긴 꽃과, 그와 관련 있는 사람도 계속 그걸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카리샤씨의 자매인 자스민씨가 온 이 카페에서도 굳이 캐놀리아나가 언급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적어도 카리샤씨와 관련이 있을거고..." 메르힌은 뜸을 드린 후 자스민을 바라보다, 오브미를 바라보곤 이어 말해요.


"제가 알기로는 기억을 잊은 후 카리샤씨와 만난적은 없어보이니. 과거에 대해서 궁금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했어요."


"카리샤 아가씨와 친한가봐요."


"여기로 이 친절한 두분이 끌고 오기 전까지도 카리샤씨와 대화를 나눈 걸 보면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건 이제 됐어요. 다음으론... 누가 기억을 지웠는지 알아내신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나요?"


"그건-" 메르힌은 두 가지 선택지에 놓였어요. 카리샤는 자기에게 그런 부탁을 했었죠. 그래서 거짓말이 아니니까 그걸 말하면 됐어요. 하지만 카리샤는 자기에게 의뢰 대금을 주고 계약을 끝냈어요. 그러니 그 부탁도 끝난거고. 그걸 빌미로 이야기하는 건 말장난일 뿐이고. 다른 선택지는... 진심으로 말하는거죠.


진심으로 말해보기로 했어요. "카리샤씨가 저에게 부탁했지만. 저는 카리샤씨의 진실의 일부만 알아냈어요. 카리샤씨는 만족했지만, 저는 만족하지 못했어요."


"왜 만족하시지 못하셨죠?"


오브미는 더 말할 게 있지 않냐는 표정으로 메르힌을 바라봤죠.


네. 메르힌은 아직 진심으로 말하지 못했어요. 그 질문을 일부로 피해서 말한 것부터 말이에요. 오브미는 메르힌에게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게 살기 위한 임시 방편인지, 아닌지. 확신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보였어요.


"그건..." 메르힌은 커피를 내려놓고 자스민을 바라봤어요. 자스민은 메르힌에게 조만간 칼을 찌를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는데. 메르힌은 채념에 가까운. 아니면 동정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어요. 메르힌은 저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었기에 그건 자스민에 향한 것이 아닌 이 빌어먹을 상황에 대한 동정이나 체념이었죠.


왜냐고요? 여기서 저 오브미라는 사람이 원하는 걸 말하지 못하면 죽게 생겼으니까요. 도대체 저 사람은 뭘 원하기에 여기서 낚인걸까요? 관계자라는 생각은 했는데. 메르힌은 그 이상을 추측하지는 못했어요. 그냥 단순 지인이었나?


오브미는 말이 없는 메르힌을 보고는 마시던 컵을 내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실례했습니다. 자스민 아가씨. 괜한 방해를 한 것 같군요."


"나중에 카리샤랑 어떤 관계인지 들어야겠는데. 오브미."


"자스민 아가씨와 똑같습니다. 캐놀라이나님의 자식분이자, 상속자분이시고요. 마운티아에 계속 계십니까?"


"아니. 일만 끝나면 이샤라이나에 돌아갈거야." 자스민은 여전히 메르힌을 바라보고는. "무덤에서 계속 지내고 싶진 않아. 이제 이 땅은 어디에 있던 캐놀라이나가 겪었을 빌어먹을 고통밖에 안 느껴지니까." 메르힌은 그 말에 표정이 바뀌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그 분의 유산은 아무도 못 받겠군요." 오브미는 씁쓸하게 웃었어요. "이 꽃집, 참 예쁜데요."


"10년간 관리한 것처럼 계속 관리하면 될 것 같은데. 카리샤는 죽을테고. 나는 사라질테니."


"언제든지 자유롭게 사용해주시길." 그 말을 끝으로 오브미는 메르힌을 잠시 바라봤어요. 메르힌은 고개를 숙이고 찻잔을 잡은체 손을 벌벌 떨다가. 말했어요. "전 직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어요. 오브미씨."


"메르힌. 시끄러워. 총 맞기 싫으면 닥치는 게 좋을걸."


"쏘던가요. 이제 돌아가기도 지쳤으니까."


"지금 내가 못 쏠줄 알고 -"


"오브미씨. 카리샤씨는 직면하지 않았었겠죠. 지금이랑 비슷하게. 그리고 당신도 직면하지 않았을거에요, 도대체 뭐랑 직면하지 않았을지는 제 빌어먹을 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 카리샤씨는 기억에서 도망쳤고. 자스민씨는 현실에서 도망쳤고. 당신은 그둘이 그런다는 것을 방관했어요. 각자 정말 원하는 건 근처에도 안 다가가며 서로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빌어먹을 짓거리를 하면서요! 전 그 빌어먹을 짓거리에 만족을 못하겠어요. 왜냐고요? 자스민씨, 오브미씨. 왜냐고요!?" 메르힌은 일어나요.


"씨발, 닥치라고!" 자스민은 권총을 뽑아서 메르힌의 머리에 겨누고. 주변 사람들은 그걸 보고 동요해요. 하지만 메르힌은 덕분에 오브미를 설득해야만 한다는 절박함과 긴장감이 추가되어서 평소라면 안 했을 말을 오브미를 보고 소리쳤어요.


"왜냐하면 제 인생은 도망치는 데 허비했으니까! 제 이야기는 그거 때문에 끝장났는데, 당신들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비실거리는 꼬라지를 못 보겠어서 그럽니다. 망할 오브미씨. 됐어요!? 이게 제 대답이에요. 제 이야기는 글러 먹었으니까 당신들 이야기라도 잘 됐으면 하는 동정심이랑 자기위안 때문에 이 지랄을 하고 있다고요!"


알렌은 자스민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걸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하나는 이걸 보고만 있다가 이샤라이나 대사관으로 홀로 도망친 후. 이 일은 자기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일이라고 시침이 때며 남은 휴가를 더 즐기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두 번째로는 굳이, 귀찮게. 이 총격전에 관여해서 앞으로의 자기 이야기를 비참하게 관리하는 거였어요. 끔찍하겠죠. 총탄을 쏘는 건 쉽겠지만 저기 얽힌 법적 문제들은 전혀 쉽지 않을거고. 모든 게 다 행복하게 풀린다고 하더라도 의뢰가 완전히 끝나게 된다면 그 지루한 성에 다시 갇히게 될테니까요. 이 선택지는 자기의 휴가와 인생. 모두 꼬이게 할 가능성으로 가득했어요.


그래서 알렌은 지금까지 그냥 보고만 있었죠. 그런데 한 생각이 문뜩 지나쳤다고 해요. 모든 알렌들은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는거에요. 다른 알렌들도 자기와 비슷하게 꼼수를 써서 영원히 바깥에 돌아다닐 수 있었음에도 결국 자리로 돌아갔죠.


그들은 바깥을 영원히 추억했음에도요. 아버지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니까요?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단다. 알렌.'


'너가 사랑하게 할만한 것들을 발견하고, 그걸 만끽하고 나면 끝나게 될거야.'


알렌이 물었어요. 하지만 아버지. 제 이성은 아버지의 이 이야기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사랑이라니요. 이 이야기가 곧 깨질거라는 건 이성의 눈으로 명백하게 보이는데.


아버지는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그건 이성이 결정하는 게 아니란다. 본능이 결정하는거지.'


본능으로요? 그게 뭐죠? '마음이란다.'


'알렌. 너의 마음은 어떻게 말하고 있니?'


알렌이 생각해요. 저는 말이에요. 아버지. 스스로 편해질 길이 뻔히 보이고, 이걸로 결정하고 싶어요.


저는 지루해죽을 것 같은 그 곳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고 여기서 평생을 놀고 싶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선택했고. 성에서 평생을 한 사람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그리워하다. 죽었죠.


그래서 언젠간 제가 이렇게 물었을거에요. '그렇게 그리워만 할거면 왜 이 사람을 위해 평생 이 사람을 못 볼 결정을 했나요?'


아버지는 그 때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셨지만, 아마 이런 말을 하시고 싶지 않았나 싶어요.


평생을 노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전 이해가 잘 안 되요.


하지만 저도 그렇게 선택하네요. 아버지.


그래서 알렌은 자스민을 옆으로 밀쳤어요.


자스민의 표정은 일글어지며 알렌을 바라봤지만 자기 어깨가 있던 곳에 총알이 스쳐지나가는 것과, 총성이 울리는 걸 보고서는 충격받은 의문으로 표정이 바뀌었어요. 어디서 날아온거냐는 생각이었죠. 인파는 뒤로 모두 물러나며 모두의 귓가속에는 모두의 소음으로 가득찼어요.


이런 류의 범인은 주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기에 인파속으로 물러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알렌, 그리고 자스민, 총이 없는 메르힌을 빼면 한 사람만이 자스민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의 허리에 권총을 붙이고 있고, 그 총구에는 연기가 피어오고 있으며, 향하는 방향은 자스민이었던.


태연한 표정의 오브미.


자스민은 오브미를 바라보고, 오브미는 팔을 쭉펴 자스민의 다리를 조준한 다음 공이를 당겼어요. 다음 총성이 울러퍼지고, 저 멀리서는 경찰의 호각소리가 들리고, 그 다음에는 살갗이 뚫리는 소리가 들려요.


"아아악..." 알렌의 것이었죠. 자스민은 얼굴에 알렌의 피가 튀어 불쾌하고, 정신이 없었지만 이 말은 꼭 해야했어요. "오브미. 미쳤어!?" 오브미는 공이를 당기고. "전 떠날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아요." 다시 한 발 더. 피가 다시 튀었죠. "상속받을만한 사람을 위해 일하죠."


불행히도 마법은 총알의 발사 속도, 엄지를 뒤로 당기고. 조준하고. 검지를 당기고. 반동. 총성, 비명. "작작- 아아아아악!" 이 과정에 비해 준비과정부터 너무 복잡했기에 훨씬 느리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죠. 오브미는 그래서 그런 거에 신경쓰지 못하게 알렌의 다리에 남은 4발을 모두 쏜 다음 가게 안으로 메르힌의 낚아채고는 뛰어가 문을 잠궜어요.


그 때 동안 자스민은 알렌의 몸과 피를 뒤집어쓰느냐 추적할 수 없었고. 알렌은 빌어먹을 총알을 빼낸다음 신체를 복구하는데 힘을 쏟느냐 자스민을 위해 몸을 비켜줄 수 없었어요. 알렌이 괜찮아졌을 때쯤은 이번에는 경찰들이 도착했죠. 그들도 빌어먹을 권총을 들고 있었지만 그걸로 사태를 해결하기에는 경찰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자스민은 마법을 준비해뒀어요.


오브미, 그리고 메르힌은 그걸 가게 창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죠. 혹여 가게로 돌진해서 문을 박살내면 도망칠 타이밍을 잡아야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자스민은 자기 손을 피로 이뤄진 무언가로 바꾼 다음 그걸 휘둘러 경찰들의 다리를 분질러버리긴 했어도 가게로 오지는 않았어요. 공중에서도 마운티아 경찰로고가 박힌 비공정이 근처로 오고 있었기에 반대 방향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죠.


사태가 그렇게 바뀌자 메르힌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오브미의 멱살을 잡은 후. "미쳤어요!?" 라고 말했어요. 오브미는 "어머. 죄송해요. 그냥 이마에 구멍을 뚫리는 걸 보고 있을걸 그랬나요?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그랬을텐데."


"....좋아요. 고마워요. 하지만 미쳤어요?!"


"고맙다는 사람은 맞는걸까." 오브미는 손을 옆으로 넣어 앞치마를 살짝 들어올렸어요. 메르힌은 오브미의 다리에 묶고 있던 밴드에 매달려 있는 권총이 살짝 보이는 걸 보고 쫄아서 눈을 돌렸지만. 오브미는 그런 메르힌을 흘겨보고서는 옆에 있던 담배 한 개비에 손이 갔고. 그걸 물고, 불을 붙였죠. 그 다음이 웃었어요. "귀여우시네요. 메르힌님."


"꽃집 주인 맞아요!? 무슨 권총이에요!? 게다가 담배요? 맙소사."


"시끄럽네." 창가를 향해 숨을 내뱉자 연기가 쭉 뻗어져갔죠. "그런 걸 따질때마다 제가 한 선택에 후회만 늘어나고 있으니까 닥치고 카리샤 아가씨의 일에 대해서나 말해봐요."


"후회를 늘려서 죄송하지만 두 가지를 먼저 물어보고 시작해야겠는데요.", 한숨. 그리고 대답. "그러시던지요."


"하나. 권총은 왜 들고 있어요? 꽃집 주인 맞아요?", "다들 꽃집 주인이 총을 쏠거라고 생각을 못하니 더 효과적이죠. 효과적이었잖아요? 자스민 아가씨의 한창 때에는 총든 수십명도 가뿐히 조졌고, 지금도 저같은 건 바로 제압하실 수 있었을텐데 총 맞을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으니 저희가 도망칠 수 있었죠. 안 그래요?"


"효과에 대한 게 아닌 걸 알고 있을텐데요. 봐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런 위기 자체가 오지 않기에 다들 평상시에 계속 들고 다니지는 않아요. 모험가는 하나쯤 챙길만 하겠지만. 그런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오브미씨는 그런 위기가 올 거라고 이미 예상을 하고 계셨기에 총을 들고 계셨던 거에요. 맞죠?", "대답이 아니라 취조에 가까운데. 죄송하지만 메르힌씨, 메르힌씨가 부탁하는 상황에서 그런 태도가 제 협조를 구하는데 어떤 이득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꺼지세요. 라고 한 마디하면 저 두 분이 다시 이곳에 메르힌님을 대려올거고. 그 때는 부탁보다는 왕년에 잘나간 암살자에게 총을 쏜 대가가 어떤 건지 보여줄텐데. 괜찮아요?"


오브미는 그렇게 말하며 실린더에 총알을 다시 넣고. 권총의 실린더를 밀어넣고, 한 번 돌린 후에 말을 이었죠. "그게 아니더라도 메르힌씨도 제 협조가 없으면 원하는 일을 못할거고요. 그걸 눈치채서 승부를 건 게 아닌가요? 뭐. 아니면 두 사람에게 납치당하는 게 쫄려서이기도 하겠지만."


"주로 후자에요. 그렇지만... 그래요. 망할. 왜 묻냐고요? 저는 이 빌어먹을 일을 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래요. 뭐하는 사람인지 이해도 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 뭘 하겠어요?"


"꽃집 주인이라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 말이겠죠."


"제가 아는 꽃집 주인들은 저런 블라드라들과도 연관이 없고요, 허벅지에 총을 차고 있지도, 그리고 꽃이 있는데 거기 담배를 피우지도..."


오브미는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끊었어요. "캐놀라이나 꽃은 강해서 이 정도로 안 시들어요." 그 다음에 말했죠. "저는 이 꽃을 볼때마다 정말 많은, 구체적인 기분이 들어서. 담배라도 안 피우면 숨막혀 죽을걸요."


메르힌은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눈을 살며시 감은 다음 고개를 살짝 숙여 말했죠. "그리고 꽃집을 캐놀라이나 꽃으로만 도배해놓지도 않-"


말하다가 뭔가 이상한 게 하나 있는거에요. 그래. 캐놀라이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했고, 그 사람이 자스민의 부모이며 카리샤의 부모라는 것도 이해했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캐놀라이나의 유산집행인이고. 캐놀라이나 꽃이 가득한 꽃집을 운영하고 있죠.


그래요.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메르힌은 머리를 집고는 말했어요. "잠깐. 왜 카리샤씨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마운티아에 계셨으면 한번쯤은 카리샤씨 이름을 아셨을건데. 비공정 정류소 간판에 하나쯤은 걸려있잖아요. 카리샤 운송."


오브미는 메르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어요. "정말 그걸 묻고 싶은 거 맞아요?"


"아니요. 아닌데.. 당신 누구에요?"


"전 이제 더 숨기는 건 없어요."


메르힌은 머리가 아팠어요. 도대체 뭐더라? 자기가 왜 그런 도박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가능성이 낮았지만 그냥 저질렀다고요. 그럼 무언가 확신이 있었을거고요. 메뉴판에 카리샤 자스민이라고 적혀있던 것만 보고 그랬던건가? 아닌데. 물론 그것도 추측의 그럴 듯한 도움을 줬긴 했겠지만.


캐놀라이나를 어디서 처음 들어봤더라? 꽃집? 1 마운티아 골드를 주면 3송이를 살 수 있고.... 이걸 왜 알고 있더라?


'그러니 이 꽃이 위해서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닐거고. 만약 그렇게 저를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까지 제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리가 없겠죠. 그리고 더욱이 처음 일어난 곳이 쓰래기통일리도 없었고. 비서분은 제가 거리를 서성이다가 우연히 만났으니까 비서가 넣어준 것도 아닐겁니다. 그리고 기억의 연결고리...'


"아."


메르힌은 언젠간 들었던 말이 기억나요. '저는 이 꽃으로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어렴풋한 느낌만 날 뿐이죠.' 메르힌은 흐릿한 기억이 복원되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말하죠. "그럼 당신은..."


아직 완전히 복원이 되지 않았지만. 한 발자국 더, 내딛어요. '어떤 느낌이요? 포근한 느낌?', '아뇨. 끔찍한 기분.', '...느낌이 구체적이지는 않았답니다.'


"카리샤씨의 과거에 대해서 궁금할 만한 사람이 아니군요. 왜냐하면..."


"물론이죠." 오브미는 담배불을 화단 옆 재떨이에 지져서 끄고는 말했어요.


"제가 직접 지웠는데 왜 궁금해하겠어요?"


오브미는 메르힌을 바라보지 않고 재떨이를 바라봤지만. 메르힌은 오브미를 똑바로 보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오. 내가 뭘 들은거지.


다른 한 편, 우리 자스민과 알렌은 지금까지 중 가장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었어요. 이 친구들이 먼저 총 맞은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 실제로 죽을 뻔 했기도 했고요. 머리에 그렇게 맞으면 블라드라라도 죽어요. ) 자기들이 먼저 총을 겨눠서 무죄도 꿈꿀 수 없고. 꿈꿀 수 있더라도 자스민은 지명수배중이었죠. 아무리 특수한 신분이라도 남의 나라 공공 장소에서 이러고 경찰에 잡혀간 다음 무사히 빠져나가는 건 꿈과 같은 일이었어요.


뭐. 더럽게 치밀한 마운티아 경찰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것도 꿈과 같은 일인 것 같지만.


귓가를 갉아먹는 소음이 들리면 둘은 앞으로 몸을 날려요. 그 다음 옆을 보면 벽에 구멍이 수백개가 뚫려 있고 그 짓거리를 한 가증스러운 비공정은 저 하늘 위에서 날아다니고 있죠. 더 끔찍한 점은 경찰들이 끔찍하게 복잡한 뒷골목의 지리를 외우기라도 한 건지 모든 길목마다 2명씩은 있는거에요.


그래서 어느 한 건물 지하에 급하게 들어갔어요. 안 들킬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간 건 아니지만, 들어갈 때조차 비공정이 아이스볼을 날려대서 얼음 파편을 뒤집어 쓰고 예쁜 드레스는 걸래짝으로 바뀌어버렸죠. 그건 상관 없지만. 비공정이 스피커를 틀고 경찰들에게 "저 건물이다! 저 건물!" 이라고 외치는 건 상관 있었어요.


망할. 알렌이 생각했어요. 망할. 망할. 망할! 머저리 같은 새끼! 도대체 거기서 왜 그런 판단을 한거야?! 그냥 두고 보다가 자스민 머리 뚫리는 걸 보고 악수하고 나왔으면 됐잖아! 알렌이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동안 자스민은 별 생각 없다는 듯 칼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죠. 알렌은 그 태평한 광경을 보고 너무 빡쳤지만, 그 빡침을 그대로 내보내기에는 부끄러웠기에.


"도대체 왜 이딴 곳에 온거에요!?" 이렇게 말했어요. 자스민도 화가 많이 난 상태였지만 알렌과 다른 종류의 화였어요. "옛날에는 경찰들이 여기까지 못 쫒아왔다고! 망할!" '나때는 안 이랬는데' 화였죠.


"그런데 여긴 어디에요? 어딘지 알고 내려온 거에요?", "오. 하늘에서 내 몸뚱이만한 얼음이 떨어져서 내려오고 있는데 여유롭게 내가 10년전 다니던 카페라도 가리? 그래. 갔긴 했지. 그리고 거기서 총... 하아, 망할! 총! 몸은 괜찮아?"


"참 일찍도 묻는다, 그죠?" 알렌은 자스민의 발쪽에 자기가 빼낸 자기 몸에 박혔던 총알들을 집어던졌어요. 6발이었죠. 그 다음 너무 화가 많이났기에 빈혈이 한번 찾아온 듯 휘청인 다음 말했어요. "이샤라이나 대사관에서 피 받아와야 하는데. 덕분에 몇 년동안 평범한 삶을 영위했으면 쓰고 남았을 피를 30초만에 다 써버렸어요. 30초! 그리고 이젠 감옥에 가게 생겼고요!"


자스민은 알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어요. "안 갈거야." 알렌이 그 자신감 있는 눈에 설득당할 때쯤 바깥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요. "너희들은 포위됐다!"


"그렇다는데요." 알렌의 눈빛은 그래서 어쩔꺼냐로 바뀌었고.


자스민의 머리속에도 그래서 어쩌지로 바뀌었어요. 바깥에 나가면 가득한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여야 할텐데 그러면 아무리 이샤라이나의 수녀회장이니 뭐니 하더라도 이샤라이나가 도와줄 가능성이 없어보여요. 잡히던, 잡히지 않던 말이에요. 시선을 잔뜩 끄는 암살도 정도가 있지, 암살은 못하고 주목만 받으면 부담스러워 자기를 버릴테니까 말이에요.


자스민에게는 애초에 수녀회장이라는 직위부터 유배에 가까웠기에 버림받는 건 상관없지만, 아직은 안돼요. 이샤라이나의 지원이 생각보다 괜찮았고. 알렌. 이 사람은 복수에 정신이 좀 나간 스스로에게 이성이라는 걸 부여해주기 적합한 인물이라는 믿음이 생겼거든요.


그러니 아직은 싸움을 피하고, 더 해쳐나가야 했어요.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옆에 있는 낡아빠진 나무문을 때려 부순거죠. 그걸 본 알렌은 이렇게 말했어요. "좋아요. 죄목 하나 더 추가. 징역 2년 이하 혹은 벌금 2만 마운티아 골드.", "처벌받는다면."


자스민이 그렇게 말하며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알렌은 이 빌어먹을 개새끼가. 라는 생각을 하고, 표정도 관리를 안 했지만. 발걸음은 그냥 따라갔어요. 자스민이 경찰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들어간 방에서는, 들어가자마자 이런 소리가 들렸어요.


"오. 안녕하세요? 벌써 돌아오셨어요? 철물점은 잘 다녀오셨고요?"


"우와! 호프너씨! 저희 인생이 이제 끝났나봐요! 그냥 이샤라이나에서 살 걸 그랬나?"


그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의자에 버둥대는, 묶여있는 두 사람이 보였죠. 호프너, 그리고 란디씨. 자스민과 알렌은 자기들이 일단 정상적인 방을, 최소한 가정집은 아니라는 확신은 얻을 수 있었어요. 그 다음 확신은, 자기들이 메르힌에게 하려고 했던 그 짓을 누가 하고 있었다라는 거였어요. 인물만 바뀌었지.


"정말 운이 기가막히네요. 자스민씨. 건물이 수백체가 될텐데 어쩜 이런 지하로 들어오신건가요? 여신이시여. 제 목숨을 걷어갈거면 좀 빨리 걷어가지 왜 이런 굴곡진 인생의 끝에서 거둬가려고-"


"시끄러우니까 닥쳐봐." 자스민도 알렌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입밖에 내놓지는 않았어요. 자스민이 추구하는 가치인 냉정 침착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죠. 자기도 자기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러니까 추구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탐탁찮은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호프너가 먼저 말했죠.


"저기, 저기요.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같으신데요. 저도 곤란을 겪고 있거든요."


하기사. 의자에 묶여있는데 곤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어. 자스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바라봤어요. 상처는 없이 말끔하고, 의원 나으리들이나 입을 법한 옷에 단안경을 끼고 있는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의자에 묶여있으면 곤란하죠. 그래서 말했어요. "그렇게 보이네."


"그렇죠. 아주 곤란해요. 저희를 여기 납치한 사람들이 까먹고 렌치랑 망치를 안 사왔다고 2시간 후에 보자고 했거든요."


란디가 의자에서 발버둥치며 말헀어요. "제 뿔을 그라인더로 갈아버린다고도 했어요!" 용족의 자부심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몸을 그라인더로 갈아버린다는 외과적인 공포에서 나온 감정이 내뿜어져 나오고 있었죠.


호프너는 그걸 보고 말했어요. "생존에 위기가 오면 학습이 빨라진다고 하는데, 란디씨의 마운티아 어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니까요? 그라인더! 그런 고급 단어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저희가 곤란하다는 것과, 여러분들도 곤란한 상황에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거. 그래서..."


호프너는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하나.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 어차피 자기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 갇힌 게 아니고, 납치의 피해자이니 그냥 저 둘은 무시하고 있으면 됐어요. 그게 가장 좋은 일이었죠.


만약 자기들이 사람이었다면 말이에요. 납치되기 전에 한 것들 중에 하나는 바로 경찰이 자기 뿔을 보자마자 권총을 갈긴 트라우마로 숲에 틀어박힌 용과 티타임이었는거든요. 그리고 애초에 말이에요. 란디와 호프너가 신문에도 난 사람인데, 무슨 짐짝 다루듯 밀실에 갇혔어요. 게다가 마지막 기억은 경찰로 보이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었기도 했고요. 걔 주머니에서 명함하나 훔쳐왔는데 나중에 꼭 봐야겠네요. 뭐. 어차피 신원이 노출되어도 권외종족 말을 믿을만한 사람 하나 없으니 그렇게 대놓고 저지른 거겠지만.


그래서 첫 번째가 문제가 많았으니, 호프너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거래하는 거 어때요?" 두 번째 생각. 뭔가 캥기는 사람들과 거래하기.


자스민은 그걸 듣다가 호프너의 눈동자가 신경쓰여 바라봤어요. 란디라는 사람은 용족이고, 호프너의 눈동자도 사람보다는 용에 가까운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 이샤라이나에서 보낸 '우리의 주적' 팜플렛에서 봤던 눈이었죠. "반인반용이구나?" 자스민이 말했어요.


"그것도 거래에 중요한 건 아니죠. 란디씨가 용족인건 중요하지만."


"우리가 왜-", 계단에서 경찰의 발자국 소리가 넓게 울려퍼져요. 호프너는 그걸 듣고 어깨를 으쓱였죠. "풀어주면 여기서 나가게 해드리죠. 이게 거래 조건인데 어때요?"


자스민은 이 거래에 본능적인 꺼림직함이 들었어요. 하지만 알렌은 달랐죠. 그런 꺼림직함도 없이 자스민에게 말도 안 하고 자기 칼로 그 친구들의 수갑을 박살내줬으니까요. "그럼 당장 뭐든 해봐요."


"알렌!", "자스민씨. 전 경찰에 잡히고 싶지 않아요. 당장 뭐라도 해보세요." 알렌은 호프너를 보고 말했고, 호프너는 란디를 바라보며 말해요. "좋아요. 란디씨.", "네! 호프너씨! 엄청 멋진 작전을 준비하셨겠죠? 뭘 하면 될까요?", "이제 마법 쓸 수 있죠? 수갑도 풀렸으니까.", "물론이죠~", "그럼 용으로 변신하세요."


잠시 발자국 소리 외에 모든 소리가 멈췄다가 란디가 다시 말을 시작했어요. "아하하~ 호프너씨가 뭘 몰라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변신하면 엄청커서 천장을 통째로 박살날거에요~ 건물도 박살날 수 있다고요?", "그거 좋네요. 그걸 원했는데."


자스민은 알렌을 바라봤고, 알렌은 눈을 감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래요. 그래요. 네. 제가 또... 잘못했네요! 다 내 잘못이야! 아주!"


이 합의로부터 30초 후. 문밖의 경찰들은 드디어 마음의 결심을 했어요. "좋아. 레피드 경관. 우리는 이곳에서 도어 브리칭을 시작한다. 샷건 가져왔나?"


"물론입니다. 프라드 경관님.", "훌륭하네. 안에는 우리 마운티아 시민들이 있을 수 있으니 그건 문을 따는데만 쓰게. 브크 경관!"


흑마도사 복장을 한 경관이 말했어요. 그는 손에 빛나는 수정구를 들고 있었고 이렇게 대답했어요. "준비됐습니다! 프라드 경관님.", "그래. 도어 브리칭을 하면 곧바로 그걸 집어던져서 안에 놈들을 실명시켜버리게. 그게 터지면 내가 먼저 돌입하겠다. 돌입 후에는 내가 중앙을 맡고, 너희들은 양쪽 사이드로 빠져. 안에는 선량한 마운티아 시민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신중하게 발포하도록."


두 경관은 끄덕였어요. 프라드 경관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베테랑스러운 미소를 지어주곤. "가장 중요한 건 시민들의 목숨이다. 그렇지만 자네들 목숨도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해."


그 다음에는 베테랑스러운 슬픈 표정을 지었죠. "나는 10년 전 진압 과정중 내 동료들을 잃었네. 지금도 가슴속에 사무치게 그리워."


"경관님..."


마지막에는 베테랑스러운 극복하는 표정을 지었어요. "괜찮네. 자네들만 무사하다면 내가 하늘로 올라갈 때 그들도 나를 조금이나 덜 책망하겠지... 그러니 다들 준비됐나?"


"경관님....!"


이번에는 저 눈치없는 새끼라는 표정으로 바라봤죠. "질문이 있나보군. 뭔가?"


"혹시 말입니다." 그 경관은 천장을 바라본후, "지진이 일어나면 작전은 중지됩니까?" 미친 듯이 흔들리는 걸 잠시 바라보고 있었죠.


"아. 이건 지진이 아니네. 경관. 주로 건물이 붕괴하기 직전의 전조현상이라고 해야할까."


"그렇군요."


그 친구들은 잠시 곰곰히 스스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고민하다가 문을 다시 바라봤어요. 그 때 문짝은 작살나서 바닥에 굴러다니고 란디의 다리살이 보이기 시작했죠.


어... 좋아요. 란디의 다리살이라고 하면 이상하네요. 위대한 용의 숨막히는 표피가 경관 3명의 얼굴로 달려들기 시작했어요. 프라드 경관은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죠. "작전 시작!" 이들은 훌륭한 경관이었기에 이런 비상사태에도 당황하지 않고 샷건을 박살난 문짝에 쏜 후 몰려오고 있는 란디의 표피쪽으로 실명 마법을 집어던졌어요. 그 다음 프라드 경관은 란디의 표피를 향해 달려들었죠.


그래서 이미 박살난 문짝은 더 박살나고, 이 친구들은 튕겨져나온 실명 마법에 눈앞에 캄캄해졌고 프라드 경관은 눈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용감하게 돌진하여 란디의 표피에 가장 먼저 입을 맞췄고. 살에 그만 짖뭉개져버렸어요.


지하에 이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동안 지상에서는.


"제 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나는데요?!" 란디가 소리쳤어요. 란디는 이 때 머리가 3층 높이쯤 되는 곳에 있었고, 지붕을 모자처럼 쓰고 있었으며. 그 소리침은 전방 300미터는 족히 울려퍼져 모두의 가슴을 떨게 만들었어요. 비공정을 조정하던 친구들도 잠시 스턴을 먹었죠.


호프너는 무슨 개선 장군이라도 된것마냥 란디의 머리 위에 선체로 잠시 마운티아를 내려본 다음. "누가 멋있어서 입이라도 맞췄나봐요. 하지만 란디씨. 저희가 세상을 가지게 되었어요. 비록 몇초 못 가지겠지만." 호프너는 코를 쓱 하곤. "나름 괜찮은 기분인데. 그걸로 괜찮지 않겠어요?"


란디는 호프너의 말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어요.


"안 괜찮아요! 안 괜찮잖아요! 봐요!"


란디가 본 곳에는. 몇몇 경관들은 사진찍느냐 바쁜 곳이었죠. 이들이 언론사에 사진 팔아먹으려고 이러는 건 아니었고. '임무 실패 사유: 지하실에서 용이 솓아 올라와서' 라고 적으면 상부가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할테니 이런 거라도 남겨놔야했거든요. 다른 경관들도 이 괴랄한 상황에 머리는 안 굴러지만 일단. "어.. 용이네요! 시민 여러분. 용입니다! 빨리 도망치세요! 여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같은 훌륭한 소리를 했죠.


하지만 시민들은 "우와! 미친! 진짜 용이다! 도시에 용이야! 게다가 머리위에 사람이 타고 있어! 개쩌는데!" 라고 말하기 급급했어요. 경찰들이 앞에서 '헌신적인 희생을 준비하며 시민들에게 손짓하는' 동안 시민들은 점점 더 몰려들었죠.


호프너는 그걸 바라보며. "란디씨. 하늘은 우리 것이니. 자. 다시 우리가 납치됐던 곳으로 갈까요."


"거길 왜 또 가요?!"


"설마 납치된지 2시간만에 다시 등장할 거라는 예상을 하겠어요."


"하긴."


그렇게 떠드는 동안 자스민은 잔해에서 몸을 겨우 일으켜 호프너에게 칼을 겨눴어요. "이 씹새끼...."


호프너는 시크하게 뒤를 돌아 말했어요. "무슨 문제라도?" 알렌도 그 때 머리에 박힌 먼지들을 입으로 흡입하다가 기침 수십번을 한 후에 말했죠. "이게... 이게 탈출이에요...?"


"지금부터 시작이죠. 자! 날아라! 나의 드래곤이여!" 그러곤 호프너는 자기 양복의 겉옷을 어꺠에만 걸치고 란디의 이마 부근에 발을 올려 놓았어요.


란디는 이를 꽉 깨물고 드래곤의 묘한 표정을 짓곤 말했죠. "느증에 이야기 즘 해븨요...?" 그 다음에는 날개를 펄럭였고, 덕분에 경관들은 등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먼지마냥 대구르르 굴러다니기 시작했어요. 비공정 또한 크게 휘청이며 몇대는 지면과 키스하기 직전까지 스쳐나갔죠.


그렇게 휘말린 친구들이 다시 하늘을 볼만큼 여유가 생겼을 때쯤은, 저 멀리 사람 3명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용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죠. 그들은 그걸 보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어요. '그래. 용으로 변신하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런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비록 용이 하늘과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는 오래 전에 낭만없는 흑마도사와 소위 '마법발전' 이라는 개념이 강제로 셔터를 닫아버렸지만 사람들은 다들 그걸 여전히 마음속에나마 간직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여전히 마법사가 아니거나 손에 대드래곤 쇠뇌가 없다면 물리법칙의 대단함과 저 종족과 함께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다음 생을 이어갔던 선조들의 위대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반대로 란디, 호프너, 그리고 둘에게도 묘한 기분이 드는거에요. 비록 위에 올라탄 불행한 3명은 볼살이 바람에 갈라서 비록 외향적으로는 굉장히 멋지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다들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가 굉장히 멋지게 용의 머리 위에 서있다고 생각하는거죠. 게다가 저 수백만개의 건물들로 이뤄진 산, 수도 마운티아를 내려다보며 하찮은 미물들처럼 보이는 걸 보고. '이야. 이래서 용들이 하찮은 미물들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거군.' 이라고 다른 종족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정보도 얻고요. 기분 죽이죠.


란디에게도 사실 이샤라이나에서 이러면 용기사들이 30초 이내로 튀어 나와 목을 촥촥촥-감은 다음 댕겅~ 해서 용으로 이렇게 오래 있던 적은 처음인데요. 게다가 불행히도 이샤라이나에서는 수백년전에 지은 지하 깊숙한 멋들어진 저택은 있었지만, (란디는 요즘 애들에 속해서 둥지라고 말하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타입이죠!) 용으로 바뀔 식량은 없어서 애초에 이런 모습으로 있지도 못했는데.


마운티아에 오니 이런 미친! 돈만 주면 외형이 어떻든 식량을 퍼주는 착한 사람들로 가득찬 게 아니겠어요? 이샤라이나에서는 지저분한 암시장,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후후. 이번 달 빵이야. 힘들게 구했다고.' 하면서 금을 뜯어가는 싸이코패스로 가득찼는데. 여기는 점원에게 '이거 주세요.' 하면 '네. 고객님.' 하면서 빵을 듬뿍 주죠.


게다가 왠지 높은 사람에게 찍혀서 이제 죽었다 싶었는데. 시장에서 빵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더라고요! 너무 기뻤죠. 이샤라이나에서는 애한테 찍혀도 점원들이 총을 쏴댔는데요! 그래서 수십년동안 늘 가득했던 공복을 해결하기 위해서 퍼먹었어요. 빵 한조각 사려고 쟁여온 금 한덩이면 충분했죠. 뭘 하던!


그래서 아아. 이렇게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게 호프너씨가 바라던 세상이구나. 사랑스러워요! 호프너씨! 사랑스러워요! 어쩜 이런 멋진 세상이! 게다가 변신해서 건물도 때려부술 수 있는 자유라니! 그래서 호프너씨가 자기가 자기로서 있는 곳을 바란거군요! 아아! 이 란디 평생을 따라가겠답니다!


하면서 몸을 조금 부르르 떨었는데, 위에 3명은 휘청이면서 겨우 란디의 뿔을 잡고 버텼어요. "란디씨! 누구한테 맞았어요!?"


"아. 아뇨. 좀 추워서." 란디는 코를 쓱 했어요. 위에 있던 분들은 집체만한 팔이 앞으로 향하는 걸 보고 기겁했죠. 그로 인해 정신이 조금 돌아온 자스민씨가 말했어요. "드래곤 라이딩이라니... 이건.... 이건... 불경죄야..." 아무리 수녀회로 유배 비슷하게 쫒겨난거라도 이샤라이나 신앙을 믿는 자스민씨에게는 이런 불경에는 그만 무릎을 주저앉고 벌벌 떨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용기사마냥 독실했다면 '여신이시여! 저와 함께 용 한마리를 보냅니다!' 하면서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도 목에 창을 꽂아 넣었겠지만. 자스민은 그정도 독실함도, 그리고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두 가지 이유로 그러지는 못했어요. 그렇지만 알렌은 다르죠. 그녀는 이샤라이나 신앙의 수호자. 문건의 검토자, 성지의 관찰자. 뭐. 아무튼 멋진 타이틀은 다 가지고 있잖아요!


"드래곤 라이딩이라니.... 이건... 이건..."


알렌은 너무 혼란스럽고 무언가에 벅차오르는 표정을 지었어요. 자스민은 저걸 보고 저 미친년이 드디어 우리를 모두 죽이게 할 샘이군 이라고 생각했죠. 자스민을 보다보면 역시 자기가 한 건 기억을 참 못하는것 같아요.


그래서 자스민은 눈을 꼭 감고 추락에 대비했는데. 알렌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개쩔잖아요! 와! 란디씨라고 했나요?!"


"네! 란디에요! 누구세요?"


자기 이름이 이샤라이나 - 마운티아 대전 당시 마운티아의 시민들이 모두 이샤라이나 총대주교와 신앙간증부 장관의 이름 앞에 '악마'를 붙여 외웠던 것 같이, 용들에게 유명할거라는 짐작을 한 알렌양께서는 이렇게 말했죠. "알건 없어요! 아무튼! 턴 할 수 있어요? 턴?"


"턴이요?"


"그 왜, 한바퀴 몸 돌리는거!"


호프너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뒤를 돌아본체. "허. 미친 생각이군요. 그럼 우리는 다 떨어져 죽을겁니다."


그 다음 뿔에 몸을 기댄 다음 이렇게 말했어요. "란디씨. 턴."


란디는 신날 것 같아서 이미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네! 턴 할게요!"


이 친구들은 우리가 바닥에 멀쩡히 서 있다는 게 수많은 기적과 배려가 합쳐져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반바퀴 돌았을 때 깨달았고, 바람소리가 굉음같이 들릴 수 있다는 걸 한바퀴 돌았을 때 깨달았으며. 용은 기분이 좋으면 한바퀴 더 도는 것쯤은 무리도 아니라는 걸 한바퀴 반을 돈 후에 알았고, 피부가 구겨진다는 말이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구겨진다는 걸 두바퀴 째에 알았으며, 이제서야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사실과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는 게 정말 목이 폭발할 듯 지른다는 것도 두바퀴 반째에 알았으며. 한낯 비참한 인간들은 자연의 굉음을 뚫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저 새끼가 네바퀴 돌 때 알았고.


다섯바퀴 돌고. 란디가 꺄르르 웃는 걸 들으면서 이 친구들은 사람이 죽고 싶지 않을 때 얼마나 위대한 해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다섯번을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버틸 수 있는지 서로를 껴앉으며 울고, 인류애를 나누며 깨달았어요. 란디. 그 싸이코패스는 저 친구들이 참 재미있어서 감격해서 우는 줄 알고. "재미있었죠?" 라고 뻔뻔히 말했고.


주저 앉은 알렌은. "야이개새꺄 한바퀴라 했자나 한바퀴이이", 알렌을 끌어앉은 호프너는 "흐엉어어엉어어엉. 아버지가 하늘에서 오지 말라고 했써..", 그 중간에 하늘을 보며 뻗어있는 자스민은 "살아남았어..어떻게... 살아남았. 흐.. 흐으윽..."


이라고 말했어요. 란디는 "다들 즐거운 경험이었나보네요~ 야호! 한번 더 할까요?"


"우리가 다 잘못했다는 걸 인정할게. 그러니. 그냥. 그냥... 가자." 알렌은 눈물을 닦고, 호프너를 토닥이고 자스민이 안아달라는 포즈에 토닥이며 말했어요.


약 2시간 후, 호프너는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싶었어요. 운 건 좀 쪽팔렸지만 덕분에 저 친구들은 란디의 등에 말없이 계속 올라탔고. 그래서 스산한 안개가 우리 주변을 감쌀때도, 왠지 모르게 그 안개 사이로 공중섬들이 엄청 많아지는 와중에도. 질척이는 숲들이 바닥에 보이고 하늘을 가르는 폭포를 가진 한 섬과 반으로 반파된 듯한 섬들. 그리고 잊혀진 수백개의 비공정들의 파편이 가득할 때까지 이들은 아무말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왜냐면 알렌, 그 다음에 자스민은 이 란디라는 친구가 마음먹고 아까 행동을 1시간쯤 하면 (호프너는 입에 넣어서 돌린다면 자기 편도 살릴 수 있을 거고요.) 자기 둘은 하늘에서 가망없이 추락해서 죽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일단 어딘가 착륙을 한 후 협박이나 제안을 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기묘한 침묵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어느 고성이 있는 곳에 란디가 착지하고. 호프너가 거기서 내린 후. 란디가 인간으로 변하고, 다들 고성으로 향한 후 질척이고 피로 가득찬 내부 인테리어를 몇분 음미한 다음까지 이어졌어요.


그리고 침묵을 깨진 곳은 좁고 긴 통로였고. 푸른 석재를 가져다 썼으며, 누군가가 켠 듯한 횃불 몇개가 벽면에 있었고. 왼쪽 벽에는 오래된 문짝이 허접하게 달려있던 곳이었어요. 호프너는 그 중 가장 앞장섰고. 뒤에는 란디가 흥얼거리며 따라 붙었으며. 자스민, 그 다음 알렌이었죠. 침묵을 깬 사람은 자스민이었고. 첫 마디는 이거였어요.


"잠깐."


호프너가 뒤를 보며 말했어요.


"왜 왔냐고요?"


"아니. 너, 누구야?"


호프너는 몇발자국 더 걸으면서 말했어요. 옆에는 불길한 소리를 내뿜는 목제문이 힘없이 덜렁이며 있었고. 안에는 끝없는 어둠이 가득해보였죠. 호프너는 그걸 잠시 바라보며 말했어요. "제 이름은 리처 호프너."


"이 세상을 바꿀 사람이죠."


자스민은 총을 빼들었고, 알렌은 벽쪽으로 붙어 자스민의 사각에서 벗어났어요. 호프너가 다음 말을 할 준비를 뇌에서 하는 동안 자스민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를 끝까지 당기고. 소음. 총성. 무언가가 박히는 소리.


그 다음으로 알렌은 자신을 피로 바꾼체, 벽을 빠르게 타고 흘러가요. 목표는 문으로. 호프너의 바로 옆이었고. 란디가 "잠-" 이라고 말할 떄쯤엔 벽에는 알렌의 모습이 튀어나오고. 칼을 들고 있었으며, 옆으로 크게 휘두르며 목을 노렸죠.


귓가를 때리는 강렬한 쇳소리.


호프너는 소리가 난 옆을 바라봤어요.


알렌은 붉은 칼날을 목에 겨누고 있었고.


호프너가 말했어요.


"반가워요. 납치자분. 너무 제가 일찍 돌아왔나요?"


사실 알렌과 자스민이 자기를 여기서 담구르려고 하는 줄 알고 속으로는 비명을 세번 지르고 피부는 죄다 곤두섰고 등에 땀은 폭포수마냥 흘렀지만, 여기서 쫄리면 저 둘이 놀릴까봐 무서워. 그 문 너머. 알렌이 목에 칼을 겨누고 있어서 쏘지 못한듯한, 호프너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있던 납치자를 똑바로 바라봤지요.


그 납치자라고 불린 남성은 검은 정장, 검은 넥타이, 검은 와이셔츠를 입었고. 오른손에는 단검을 들고 있었고. 그건 알렌의 칼에 자신의 목과 신체를 가르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어요.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 사유지 불법 침입자들. 난 여기-"


"그래요. 납치자분이라고 하면 안되죠? 직급으로 말해주는 편이 좋겠네요." 호프너는 아까 명함을 훔쳤던 걸 기억하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고 찬찬히 읽어봤어요.


"마운티아 연방수사국, 이종족대응실, 수사실장님."


호프너는 명함을 바라보다 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죠.


"제가 얼마나 하찮게 보였으면 이걸 흘리고 다녀요?"


우리 수사실장님은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이런. 국장님한테 뭐라고 말하지? 내가 왜 저걸 정리 안했을까? 거래처 갔다오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서? 하지만 진짜 이유는 어차피 저 사람 말을 아무도 믿지 않을거라는 추측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이런 안이한 생각도 큰 축을 담당했겠죠.


국장님이 다 알아서 해줄거야.


그래요. 마운티아 연방수사국의 국장.


그 사람은 이 일이 일어나는 동안 보고를 받고 있었어요. 카리샤의 비공정 라운지에 기깔난 와인을 마시며,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있는 의자에 게으르게 걸터앉아 하늘을 내려다보며 말이에요. 보고의 초입부까지는 멋들어지고 귀족 영애를 여동생으로 가지고 있는 고귀한 상속자처럼 거들먹거리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지만. 중반부터는 표정이 구겨졌죠.


정확히는, 이 부분이었죠. "...성을 조사하던 그 두 사람이 지하실을 탈출했습니다."


"오." 우리 국장님은 그런 생각이었어요. 이런. 좆됐구만. 하지만 품위가 있어서 뒷말은 삼켰죠. "조사는 했겠지?"


"저희가 그... 담당관이 말입니다.."


"친구 할아버지 병문안 때문에 퇴근했어? 잘됐네! 우리 마운티아 소방관들은 우리처럼 인간적이지 않아서 탈이라니까. 자기 몸을 태워서라도 불을 끄는데 우리는... 썅!"


"아뇨. 그게... 사용할 뺀치랑 망치가 없어서... 철물점에서 사러갔었거든요. 그래서 사고 돌아오니... 사라졌다고 합니다."


국장은 그 말을 듣고 말했어요. "허. 허... 허허허허허. 허... 에어조라이시여...." 그 다음 허벅지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잠시 숨을 쉬다가 "우리 한 해 예산이 씨발 뺸치랑 망치도 구비를 못해서 철물점을 간거니? 아니면 뭐 출근하기 전에 철물점 금지라는 사내 규칙이 있었나? 아니면 뭐.... 지랄, 지랄. 진짜 지랄하네! 진짜 궁금해서 묻는거야. 응? 왜 그랬어?" 고개를 들고 보좌관을 도끼로 찍을 듯한 눈으로 바라봤죠.


보좌관은 고달팠어요. 일을 못한 건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그런 비겁한 고달픔이 아니라, 이 새끼는 지가 사적인 용도로 공권력을 남용하고서도 부끄러움을 못느끼는 뻔뻔한 놈이며. 그래요. 뭐, 그 성에 거동 수상자가 있어서 체포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칩시다. 용이 거기서 무슨 일을 할줄 알고요. 음침하고 게다가 피도 많이 흐르는 곳이던데.


그런데 그럼 망치랑 뺀치를 그, 옆 건물에 '연방정보원/진실탐사부'에 쫄래쫄래가서 '저기요. 당신네 팀에서 나오는 진실 자동 응답기를 하나 빌리고 싶은데요.' 라고 말하면 웃으면서. '하하. 망치랑 뺀치 말씀이시죠? 그럼 여기 사유서 적어주세요' 라고 말할텐데. 뭐, 사유서에 '저희가 멋대로 체포한 사람들을 지하실에 가둬서 멋대로 고문하려고 합니다' 라고 적어요? 나중에 감사오면 누가 대응해? 아. 그냥 미리 사오면 됐다고요? .... 그럼 너가 하던가!!! 다 알면 니가 하면됐지!!! 라고 보좌관이 생각했어요.


보좌관에게 더 중요한 사실은, '게다가 내 지하실이라고! 이 멍청한 국장아!' 네. 자기가 얼마나 장부에 안 걸리는 선에서 철저하게 준비를. 특히 자기 누나한테 빌어서 누나 술집 지하실 잠시만 빌려달라고 사정사정하는 게 얼마나 고달팠는지. 수갑 하나조차도 구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데도 그 모든 걸 준비했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했죠. 네. '정말 일을 잘했다니까!' 보좌관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요. 그래. 한 가지는 인정하자고. 멍청한 국장새꺄! 미안하게 됐어. 내가 현상수배중인 블라드라가 하필이면 넓고 넓은 마운티아 연방에서, 더럽게 복잡한 수도 마운티아에서도, 그 중에서도 면적이 16km^2쯤 되는 넓은 뒷골목에서, 거기서도 수백개쯤 있는 술집들 중에서, 하필이면 내 누나 술집 지하 1층에 들어간 다음. 걔네랑 빌붙는 가능성은... 그래. 예상 못했다! 그래도 잘 했잖아! 이 개자식아! 칭찬해줘! 칭찬이라도 해달라고!'


"내 말 안 듣고 있지?"


"아. 네. 물론이죠. 아. 아니..."


"맙소사.." 국장은 다시 절망에 빠졌어요. 사실 그에게도 다른 그(이 이야기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보좌관이 남성이에요!)의 문제처럼 구체적인 사유가 있었고. 게다가 저 사람은 인생이 끝날 정도로 크게 좆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우리 국장 친구는 크게 좆될 수 있는 위기에 봉착했거든요. 그런데 저딴 얼빠진 표정이나 하면서 있었다니. 너무 우울했어요. 아아. 차라리 뛰어내려서 모든 걸 잊을-


아냐. 침착해. 내 안의 국장. 나는 누구? 마운티아 연방수사국의 국장. 내가 비록 능력이 없다고 조롱받아도 내 능력은 빌어먹을 살아남았는데 있었다고. 10년 전에도 칼날이 목끝을 노려도 살아남았는데, 뭔 용가리 두 마리가 산책좀 나왔다고 뛰어내리는거야? 재정신이야?


휴. 다시 침착하고 이성적인 국장으로 돌아왔고, 국장은 조금은 편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에게 말할 수 있었어요. "도대체 왜 그 용가리는 왜 그 쪽을 갔는지도 모르나?"


"그걸 물을 도구를 얻기 위해 철물점에서 사러갔거든요."


"사려깊게 한번은 물어볼법 했을텐데."


"아뇨. 보통 이종족대응실의 팀원들이 그... 사려깊진 않아서요. 제가 그 친구들에게 용을 체포 이후에는 상처하나 없이 대려올 것이라고 하니 화를 잔뜩 낼 정도라니까요."


"빌어먹을 싸이코패스들이랑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말해줬으면 내 지금 처지가 달라졌겠지. 개자식."


"아니요. 그러면 감사실이 알아차렸을거에요. 합법적인 절차내에서-"


"좋아. 내가 듣고 싶은 건 예, 아니오야. 몰라?"


"그래서 모른다는 결론이 나왔죠."


국장은 또 한번 더 절망에 빠졌어요. 이런 감각 오래간만인데요. 슬슬 적응이 되는 자기 자신이 싫었죠. '오래간만이라, 마지막이 언제지? 빌어먹을 10년 전이었지.' 국장이 생각했어요. "그래. 그래... 그렇구나.. 좋은 정보 존나게 고맙네."


보좌관은 자기가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저 지랄밖에 못 내뱉는 국장에 아주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토끼같은 토끼인형과 몰래 숨겨두고 있는 용 한 마리의 식비가 너무 걱정되었기에. 정제된 말로 내뱉었죠. "국장님.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그 성이 도대체 뭡니까? 저희가 그렇게 지켜야 할 가치가 있으면 합법적인 절차로 하는 게 미래에 감사실에서 저희 둘 해직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같아 보이는데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뭔지 아세요? "오늘 약먹었냐?" 이따구라니! 보좌관은 스트레스가 심하게 왔어요. 그래도 참고 말했죠. "그냥 이유가 있으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만약 떳떳한 이유였으면 이미 내가 수사실에 수사지시를 내렸겠지. 굳이 귀찮게 애들한테 휴가준 다음 '개인적인 부탁'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


보좌관은 생각했어요. 젠장. 신경질적으로 말하는데다가 잘못된걸 하고 있다고 그냥 술술 부는데. 그 말의 결론인 '머저리 같이 그걸 왜 물어'라는 결론을 반박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분한 표정을 지으며 쳇, 하고 뒤돌았던 와중. 경호원이 슬그머니 와서 말했죠.


"엘리니님이 들어오시라고 하십니다. 국장님."


"고맙네."


국장은 더럽게 많은 고민을 어깨위에 올려둔체 걷고 있었고, 그래서. 보통때라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엘리니(aka 카리샤)의 집무실로 향하는 통로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죠. 왜냐하면 국장의 머리 속에서는 저 문에 도달하기전 자기들의 질문에 답변이나 하라는 문의가 빗발쳤고, 그래서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기 때문이죠.


질문 하나. 그 성은 왜 중요했던가? 왜 내가 1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성에 연연하지? 정말 그게 큰 위협인가?


답변 하나. 그렇다. 왜냐하면 그 성은 내가 10년 전 불법적인 청탁을 했던 사건 현장이기도 하니까. 빌어먹을, 다 태워버리기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용족 새끼들 때문에 못하고 있는데. 진작 밀어붙였어야 했어.


질문 둘. 그 불법적인 청탁은 무엇인가? 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답변 둘. 그렇지. 정부 요원이 사적인 이유로 살인 청부를 했다는 게 들키고도 인생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거란 망상을 할 처지는 아니니까. 빌어먹을 청부업자 새끼들 명부는 거의 다 태웠으니까 내가 했다는 증거는 이 세상에 거의 없어. 거의 없는데... 빌어먹을 그 성은 나도 같이 갔단 말이야. 현장에 증거가 남아있으면 어쩌지?


질문 셋. 아니다. 너의 그 우려는 더 근본적인 이유에 있지 않는가? 현장에 증거가 남아있다는 걸 걱정하는게 아니라...


답변 셋. 그래. 증거를 만들어내는 게 걱정되는거지.


누군가가 카리샤 말린의 기억에 관심이 있으면 어쩌지? 그걸 되찾으려고 그 성에 간 거라면? 지금 카리샤 말린은 기억이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았어.


누군가가 카리샤 말린의 기억을 다시 살리면 어떡하지? 그럼 내 인생은 끝이야. 네 동생이 잊어버린 것들중 내 인생을 말아먹을 수 있는 게 수두룩 뺵빽하거든.


마지막 질문. 그러면 너의 행동은 이거겠구만.


마지막 답변. 카리샤 말린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야해. 되찾으려는 놈들은 죄다 감빵 혹은 지옥에 보내고.


그게 나를 위한 일이야. 지금의 카리샤를 위한 일이기도 하겠지.


국장의 눈 앞에는 문고리가 보였고, 그걸 잡아 당겼어요. 어두웠던 통로에 빛이 들어오며 잠시 눈이 부셨고. 방안에는 엘리니가 푸른색과 하얀색의 드레스를 입은체 서 있었죠.


그걸 보고 국장은 생각했어요. 아아. 나의 엘리니.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어줘.


카리샤는 들어오는 국장을 보고는 손님을 맞이할 때 쓰는 소파에 앉았어요. 국장은 그 맞은 편에 앉았고요. 먼저 말을 꺼낸건... "드레스를 바꿔 입었네? 잘 어울려." 국장이었죠.


"검붉은색만 입다보니 질려서." 카리샤가 말했어요.


"기분 전환용으로 나쁘지 않지." 국장이 말했고, 잠시 침묵이 겉돌다가. 다시 국장이 말했죠. "갑자기 부른 이유가, 말하기 어려운 게 있어서 그런 것 같네. 맞지?"


"맞아." 카리샤가 말했어요. 그 다음에는 고민을 했죠. 마지막 결단이었죠, 말해야하나? 그런 결정에 중요한 건. 지금 여기까지 오게된 이유를 다시 상기해보는 거에요.


카리샤는 비서가 떠난 이후에, 처음에는 평소와 비슷하게 악몽을 꿨어요.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악몽은 더 심해져만갔죠. 식은땀에 몸이 찌든체로 일어나는 일은 이제 거의 매일이었고요. 그런 일도 비서와 함께 있을 때에도 일어났지만 무엇보다 힘든건 따로 있었어요.


그 때는 악몽으로 깨어나면 옆에서 비서가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죠. 피곤한 눈이긴 했지만 책망하는 눈은 아니었고. 카리샤는 그걸 보고 안심한 다음, '그냥 지나가던 일이랍니다!' 라고 말하고. 비서는 '아가씨는 저희 아버지마냥 잠꼬대가 심하시네요. 거 빨리 주무세요. 전 아침밥도 해야한다고요.' 라고 투덜거린다음 이불을 다시 덮어줬죠.


카리샤는 솔직하게 생각해봤어요. 그 때는 사실 그게 별 의미가 없는 일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7일간 악몽에서 일어났는데. 어두컴컴한 방안에 비공정의 고요하고 시끄러운 웅웅대는 엔진소리가 지배하고 있고. 옆에는 차디찬 메트릭스뿐. 그러다가 방안에 차디찬 달빛이 들어오면 괴로워요. 춥다고 생각하죠. 이불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고. 아무도 투덜거리지도 않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지금까지 고통을 알아주던 친구는 더 이상 자신의 고통을 알아줄 수 없어요. 카리샤의 이 괴로움은 끔찍한 어둠속에서 홀로 견딘다음, 몇주가 지나면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죠. 아니. 몇주가 아니라 낮만 되어도 멀쩡한 척 다녀요. 카리샤는 강한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카리샤는 때때로 홀로, 창가에 서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해요. 만약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세상은 의문사라고 떠들어댈거야. 암살이라고 누가 말할지도 모르고. 음모론이 몇개 나올지도 모르겠네.


정말 웃기고, 재미있을 것 같고, 슬플 것 같네요. 카리샤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비서가 자기에게 했던 말을 한번 상기해봤죠. 자신만만하고, 고결하고.


앞의 두개가 허풍인 게 들킬까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 카리샤는 그걸 상기해보며 자기도 비서에게 끔찍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비서의 생각보다 자기는 훨씬 약하고. 보잘것 없는데. 자기를 이루는 게 모두 거짓이거나 혹은 진실인지 확인할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늘 강한 척만 했죠. 그러다가... 한번 크게 실패했고, 지금은 해어졌죠.


카리샤는 비서를 다시 만나기 전에 그 연기를 다시 돌려놓고 싶어요.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비서와 함께 있고 싶었죠.


그러면 이제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려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카리샤는 국장을 바라보고 잠시 침묵을 이어나가다가 말했어요.


"제가 10년전, 블라드라 시절의 잊어버린 기억을 완전히 소거하고 싶은데. 혹시 방법이 있을까 해서 불러봤어... 요."


"오. 어..." 국장은 살아나갈 길이 갑자기 보인 것 같았어요. 웃음과 희열을 억지로 가슴에 삼키며 이렇게 말했죠.


"물론이지. 너를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든 찾아볼게."


국장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요. 만약 카리샤가 기억을 모두 되찾으면 카리샤에게는 아주 곤란한 일들이 몰려올테니까요. 뭐. 부수적으로는 영원히 잊혀져야 할 그 빌어먹을 기억들도 잊혀짐으로써. 우리 국장님도 좀 편히 잠들 수 있겠죠. 지금까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간폭탄 아래에서 살았는데요.


국장은 시간폭탄을 해체하는 마음으로 말해요. "연방수사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딱 네가 원하는 게 있어. 범죄 피해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아예 기억을 지워버리는 거야."


카리샤는 국장이 미세하게 기뻐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 기쁨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사적인 일을 같이 처리할 수 있다는 데에 나온 기쁨이라는 것도 알았죠.


카리샤는 마지막 결정을 해야했어요. 여기서 기억을 잊으면 무엇을 잊는걸까요? 자스민이 이제 자기를 왜 공격하는지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지금처럼 심적으로 무언가가 캥기며 가슴이 아프지는 않겠죠. 그리고 자기를 누가, 왜 블라드라로 바꿨는지도 이해하지 못할거에요.


그래요. 네. 솔직히 말하면, 그게 궁금하기는 해요. 내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고 싶은건 사람의, 혹은 생명체의 근본적이라고 카리샤는 생각했고. 기억나는 의식이 있을 때부터 성인이었으며, 가족이라는 것은 눈앞에 없었기에. 카리샤는 다른 사람들의 가족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게 가장 슬픈 점이었죠. 카리샤는 조건 없는 사랑따위는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아니면 적어도 그에 포장된 비슷한 것이라도.


그래서 지금까지 이룬 것은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위해 조건을 만든 걸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에게 인기있고, 독보적인 사람이 되며. 고고하며 넘볼 수 없으면서도 특별한 사람에게는 친절한 사람으로. 그러면 자기도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어요. 뭐. 특별한 사람은 됐죠.


하지만 자기와 비서의 관계마저도 스스로는 보상과 보답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이어질리가 없었을테고, 비서는 늘... 비서에게 화난 것도 그것때문이었어요. 버림받는 게 무섭다니. 내가...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거구나.


그렇게 보이는데 조건 없는 사랑따위가 어떻게 이뤄지겠어요? 늘 생존이 조건일텐데. 비서의 호의도 결국 짤리기 싫다는 거겠죠. 그래서 카리샤는 그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궁금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말이에요.


그것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아름다운 기억을 모조리 박살내버리고 있죠. 카리샤는 그런 것보다 비서와 함께했던 10년이 더 중요해요. 비록 그것이 실리적인 이유에다가 사무적인 이유더라도.


카리샤는 그게 행복했어요. 카리샤는 그 밑의 호의가 즐거웠어요. 카리샤는 그 나날들을 지키고 싶어요.


그래서 카리샤는 결정했어요. "좋아요."


한번 쉬고. "비서도. 비서도 대려갈 수 있다면 대려가도 될까요?"


국장은 그게 카리샤의 심적인 측면으로 도움을 주고,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을 더 높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비서도 이득을 보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물론. 네 가장 소중한 친구인 것 같던데. 하지만 빨리 하는 게 좋을것 같네. 오늘 안에 어떻게든 끝내고 싶어."


"업무가 바쁘셔서요? 죄송해요."


"아니. 내 여동생이 고통받는 걸 조금이라도 덜 보고 싶으니까." 뭐. 국장의 이 말도 맞긴 하지만 주된 동기는... 시간 폭탄을 오래 끌어안고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러니 빨리 해체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고.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좋아. 편지 쓰고 있어. 나는 보좌관에게 일정 합의하고 올테니."


"알겠어요. 오라버니." 카리샤는 만년필을 꺼내 편지를 적기 시작했고, 국장은 이 방을 떠나 보좌관에게 간 후. "2시간 안에 빌어먹을 증인 보호 프로그램중, 그 뭐냐. 그..."


"기억제거술이요. 그거 오늘 3분 이미 예약이 잡혀있는데. "


"미루던가 야근을 시키던가."


"알겠습니다. 그런데 거기가 지하라서, 비공정으로는 못 타고가고. 열차로 환승한 다음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가장 빠른게 오후 5시 50분 열차네요. 6시 30분에 도착합니다."


"지금 몇시지?"


"오후 1시입니다."


"도보나... 아니면 엘리베이터나, 계단은 없나? 터널이나? 정말 기차밖에 없는거야?"


"기억 제거 장비가 유출되면 사회적 파장이 클 것 같아서 비상대피용 계단하나와 출입용 보안 열차외에는 진입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습니다. 계단으로 가면 되겠지만.. 적어도 3시간은 걸어내려가셔야 할텐데요."


"그래. 5시 50분. 그 때까지면..."


국장은 변수를 생각해봤어요. 자기를 방해할 사람이 있을까요? 가장 신경쓰이는 건 첫째로는 자스민, 둘째로는 빌어먹을 탈출한 용들인데. 잠깐. "그런데 용들이 어떻게 탈출했다고했더라?"


"경찰의 설명에 의하면 블라드라 두 명이 난입했는데. 잠시 후 건물에 용이 솓아 오르며 하늘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술먹고 적었나 싶어서 문의해봤는데 사진도 주더군요."


"사진! 줘봐." 보좌관은 사진을 건냈어요. 국장은 잠시 보더니 빌어먹을 용가리 위에 사람 두명이 보였죠. 머리 위에도 누가 올라와있는 것 같았지만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을만큼 구대기였어요. 하지만 블라드라 두 명은 꽤 확실히 보였죠. 몸통부분에 있어서 잘 찍혔나봐요.


그 두사람은 국장도 익숙한 얼굴이죠? "빌어먹을 자스민...."


"오. 흐릿해서 잘 안 보였는데 용캐 알아보셨군요.."


"그야 이... 망할 년이 우리를 다 조질뻔 했으니까. 이런." 국장은 불길한 생각이 가득찼어요. 자스민이 비공정을 끌고 난입해서 기차를 터는 상상을 말이에요. 이 생각은 아주 확고한 근거, 지난 7일간 경호원들이 없었으면 자스민이 카리샤와 만났을거라는 사실에 근거했어요. 그 미친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용까지 꼬득여서 이 곳에 올거에요.


대비를 해야했죠. "경호원들 열차에 다 태워. 가능한 경찰 병력도 협조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언제 열차가 지하로 들어가지?"


"출발후 30분이 지난후부터 내려갑니다. 그게... 일반적인 노선이랑 곂친 부분이 많거든요."


"30분. 30분..... 적어도 30분동안은 빌어먹을 캐놀라이나가 살아돌아와서 습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막을 정도로 방어해야해. 알겠어? 빌어먹을 캐놀라이나가 지옥에서 걸어돌아와 칼 한 자루 들고 우리 본부를 다시 불태워버릴 기세더라도, 그 씨발년이 열차는 못 건드리게 해야해. 알겠나?"


국장은 거의 울부짖듯 말했고, 보좌관도 표정이 두려움에 가득찼어요. "캐놀라이나가 돌아올 정도로요? 그건 빌어먹을 군대가 필요할텐데."


국장은 보좌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곤 "그럼 씨발 군대라도 끌고오던가. 다시 그꼴 보고 싶어?"


그 꼴이라. 그 꼴이라는 말은 10년 전 캐놀라이나가 연방수사청 (이 때는 청이었어요.) 본부에 저지린 짓을 말한다는 걸 보좌관은 바로 깨달았어요.


보좌관은 그 때 당시에는 신입으로 막 들어왔던 보좌관이 첫 입사후 선배들에게 건물 설명을 듣다 마주한 정문에 권총 한 자루와 칼 한 자루. 하얀색 머리에 하얀색 양복을 입었고, 불이 안 붙은 담배를 문 체. 마치 자기가 주인이라도 된 듯 걸어들어오는 그 사람은 여전히 뇌리에 선명히 꽂혀 있어요.


처음에는 자수라도 하러 온 거냐라는 비아냥을 줬지만 몇 분 후에는 빌어먹을 재더미에서 모두가 간신히 몸만 빠져나오고. 등 뒤에는 불타는 본부 건물에 선배들은 괴성을 지르고 쓰러지고. 그 싸이코틱한 년이 저항하는 이들의 팔이란 팔은 죄다 절단내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모두의 눈에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이 가득했던. 그 날을 선사한 사람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연방 수사국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트라우마죠. 그 일로 선배들 절반은 퇴직했으니.


신입이었던 그는 억지로 버텼어요. 범죄자들의 천국이 되버린 마운티아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가득해졌죠. 연방수사국 본부마저 털릴 지경인데 일반 시민들이 겪을 비극에 대해서 오히려 더 자각했어요. 그래서 새롭게 따른 선배가 바로, 그 날 캐놀라이나를 제압한. 이 사람. 이 국장이었죠.


뭐. 이 이야기가 전설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 결단을 하자마자 마운티아의 범죄계는 이미 작살이 난 상태였고. 캐놀라이나는 마지막 불꽃이었다는 걸 1년간 '제 강아지를 찾아주세요' 류 신고를 접수하고서야 깨달았지만요. 그래서 별 볼일없는 성과를 이뤘지만. 다행히도 그 시절에 최우수 직원이래봤자 '오늘 어린애한테 사탕을 물리고 온 요원에게 박수! 짞짞짞' 정도였을 정도로 다들 별 볼일 없는 성과를 이뤘기에 결점이 아니었고. 선배는 캐놀라이나를 잡았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 누구보다도 신임받았기에 국장이 되었죠.


그렇지만 10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그 위기감을 느낀거에요. 이제서야 보좌관은 제정신을 차리고. "알겠습니다. 모든 준비를 단단히 하겠습니다."


"그래. 제발 이 작전이 성공하길 빌지. 가봐." 보좌관은 황급히 자리를 떴고, 국장은 이제 모든 변수를 준비했다고 생각했어요. 카리샤의 기억을 잊는 걸 방해할만한 사람들에 대비하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하지만 세상은 늘 사람의 인지보다 복잡했고, 그래서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 두 명이 있었죠.


메르힌과 오브미였죠. 다시 돌아갑시다.


메르힌은 오브미가 왜 카리샤의 기억을 지웠는지 처음에는 궁금했어요.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다보니까 더 궁금한 게 생겼죠. 자기는 명확하게 기억을 되찾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오브미는 자기를 자스민에게 넘기는 게 아닌, 자스민에 대항해 자기 꽃집에까지 숨겨줬어요.


왜? 그래서 물었어요. "오브미씨가 직접 카리샤씨의 기억을 지웠다고요? 제가 잘못들은 거 아니죠?"


"확실히. 뭐. 지운 게 아니라 기억을 잠군 거에 가깝지만, 카리샤 아가씨랑 이야기는 많이 해봤겠죠? 메르힌씨."


"네. 많이 해봤죠."


"이 브로치 이야기는 안 하던가요?" 오브미는 책상에 올려져있는 캐놀라이나 브로치를 들곤 말했어요.


"...했죠. 이런. 도대체 당신 누구에요?"


"상속관리인. 했던 말 또 하는 거 싫으니까 다시는 하지 마세요." 오브미는 브로치를 앞치마의 가슴 부분에 달고는. "자스민 아가씨가 이걸 보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빼고 있었는데. 뭐. 이제 없으니까 다시 차도 되겠죠."


"카리샤씨와 관련된건가요?"


"아뇨. 애도하는 사람에게 고인의 유품을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보통 보여주지.. 않나요? 그러면 서로 좋았던 기억을 나눌 수 있잖아요."


"보통 그렇죠. 자스민 아가씨처럼 장례식도 못 치루고, 10년동안 추모할 세도 없이 수녀회에 갇혀있으면서 홀로, 가슴속으로, 증오로 추모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오브미는 캐놀라이나 꽃을 매만지며. "과거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과거의 물품을 보여주는 건 폭력이에요. 그 사람도 알거든요.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과거에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자스민씨에 대해서 잘 아시는군요."


"어릴 적에도 가까이 지냈고, 캐놀리아니님의 혈육이기도 하고. 최근 10년 간에 간간히 편지를 주고 받았으니까요. 총으로 쏠 때 가슴이 좀 아팠어요?" 뒷 말은 지금 내가 무슨 결단을 하고나 쏜 건지 알기냐 하냐라는 뉘앙스였고. 표정은 그 뉘앙스를 정확하게 반영한체 메르힌을 바라보고 있어요. 메르힌은 큼큼. 한 다음에.


"좋아요." 메르힌은 이 대화를 하면서 조금 정리가 되었어요. "오브미씨는 카리샤씨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저를 도와주신거군요. 카리샤씨는..."


오브미는 고개를 두번 가로젓고, 책상에 몸을 기댄다음 꽃의 향기를 맡은 다음. 숨을 내뱉고. 그 다음에 말했어요. "카리샤 아가씨도 비슷했어요. 자스민 아가씨는 좋았던 과거에 갇혀 있었다면, 카리샤 아가씨는 끔찍한 과거에 매몰되었죠."


"왜 두 사람이 다른거에요?"


"자스민 아가씨는 사건에는 전혀 개입하지 못한체 이샤라이나로 도망쳤고. 카리샤 아가씨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거기서 오브미씨는 어떤 걸 하셨나요?"


"지켜보고, 기록하고, 침묵했죠." 오브미는 눈을 살짝 뜨고 캐놀라이나 꽃을 흘겨보다가. "그게 캐놀라이나님이 저에게 기대한 역활이니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개입했잖아요? 카리샤씨의 기억을 지우셨으니까. 왜 그런거에요?"


오브미가 말했어요. "저는 두 아가씨 모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그 분을 평생 증오로 추모할 생각이고, 한 사람은 그 분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멀쩡히 지내려는 마음에 기억을 지워달라니. 저는 그분을 평생 바라보고 관찰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작 그 분과 함꼐 살았던 두 사람은 저에게 완전히 잊어버리고 싶다고 부탁하질 않나. 저에게 그분이 남긴 유산따위는 관심이 없고 평생 과거에 매몰되어 살고 싶다고 하질 않나."


"그 분은 두 아가씨가 그렇게 되길 바라며 죽진 않았는데."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네요."


"아뇨." 오브미는 잠시 눈을 감고. "돈 받고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 죽인 사람이 어떤 사람이던 죄인이에요. 하지만..."


"괜찮아 지려고는 했어요. 그게 제가 그분을 사랑했던 이유죠."


그리곤 꽃내음을 깊게 들이마셨어요. 캐놀라이나 꽃향이 숨에 가득할 때쯤 눈을 뜨곤 메르힌에게 말했죠. "카리샤 아가씨의 기억을 지워준건 딱 한 가지 기대 때문이었어요. 아가씨께서 좌초당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언젠간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올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 때는 직면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 하지만 지금도 카리샤 아가씨에 대해 그런 믿음은 없어요. 자기 마음이 편하다고 더 이상 진실을 알아내지 않으려는 사람따위에겐 그런 믿음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한번 쉬고.


"그래서 제가 메르힌님을 도운거에요. 메르힌님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제 취조 시간 끝났으면 일 이야기로 넘어가자고요."


"네.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왜 그러시는지는 알 것 같아요."


오브미는 어떤 헛소리를 뱉을까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어요. "허. 이번에는 제가 물어보죠. 뭘 것 같은데요?"


"오브미씨는 정말 그 분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 분을 두 분에게 이해시키고 싶은거라는걸요."


오브미는 그 말에 잠시 멈췄고. 주름진 표정도 조금씩 펴지고. 눈동자도 조금 커졌어요.


"오브미씨? 어.. 제가 실례되는 말을 했나요?"


영혼 없는 목소리로 오브미가 대답해요. "네. 폭력적이시네요. 메르힌님."


"어... 뭐.. 뭔가 죄송해요."


"괜찮아요." 오브미가 말했어요. "괜찮아요. 제가..."


오브미는 단어를 찾으려고 애써요. 고개를 떨구고 몇 번 뒤적이다가. 문장을 만들어 내고는 메르힌을 바라보며 말했죠.


"이 세상에 홀로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아서 기쁘네요."


메르힌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곤. "...그게 무슨 말이죠?"


오브미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몰라요. 저도. 그냥 일이나 하게 아가씨나 대려와요."


"네! 최대한 빨리 찾아올게요. 자스민... 씨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니까."


"두번쨰 오면 저도 죽일 것 같으니 빨리 찾아오세요."


"그래야..... 하는데! 그 전에 비서씨랑도 만나야 할 것 같아서요."


"날 죽일 셈이군요."


"빨리 올게요!" 메르힌은 꽃집의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어요. 오브미는 그걸 담배를 물고 바라보다가, 담배를 피다 말곤 잿더리에 지져버리며. 눈을 감은체, 담배를 빙글, 빙글 돌리다가. 손을 멈추곤 말했어요.


"이제 끊어볼까. 담배..." 그 다음에는 옆에 있던 캐놀라이나 꽃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겠죠.


"어떻게 생각해요? 캐놀라이나씨."


그 옅은 미소는 업무용이나 접대용의 공허한 표정이 아니고. 사람들을 곧 죽을 고기덩어리로 바라보는 눈도 아니었고. 그저 은은하면서도 슬픈 표정이었어요.


그러는 와중에도 메르힌은 달립니다. 달리고요. 또 달려서 다시 비서의 아파트로 돌아왔죠. 이 때는 오후 2시에서 3시쯤 됐어요. 백마도사의 체력으로 무려 몇십분을 달리고도 멀쩡히 초인종을 울릴 수 있었고. 땀이나 한번 쓱 닦았죠. 비서는 문을 열고는. "메르힌님. 후라이펜 가져오러 오셨나요." 평소에 의욕없는 표정이지만 조금 힘찬 의욕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죠. 기분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 메르힌은 안심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지랄하지마ㅅ...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 생각도 똑같은데." 비서가 말했죠. "아가씨가 직접 편지를 주셨어요. 방금. 막."


"카리샤씨가요?!"


"네. 솔직히 말해봐요. 메르힌님. 아까 이야기 할 때 아가씨, 벽에 붙어서 같이 듣고 있었죠?" 비서는 의욕없는 무표정의 바다에서 기쁨 한 방울을 탄 듯한 표정을 지었고. 메르힌은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의뢰인의 그런 변태적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모험가의 도리에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나중에 커피라도 한 잔 끓여들이죠."


"뭘요." 메르힌은 한번 쉬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비서씨." 좀 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죠.


"이 편지도 아가씨께서 중요하다고 하던데. 같이 읽어보고 그 다음에 이야기 해볼까요."


메르힌은 무언가 불안감이 들었어요. 저 편지를 읽으면 비서가 만족할지도 모르고, 자신이 말할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고요. "간단한거니까 먼저 말할게요. 카리샤씨의 기억을 되찾을 방법을 찾았어요."


"오." 비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떻게 하죠."


"몰라요. 하지만 카리샤씨의 기억을 지운 사람이 기억을 복구할 수 있다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죠."


"오." 비서는 좀 더 놀라고. "메르힌님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유능하군요. 전 10년을 쫒았는데."


"운이 좋았다고 쳐요. 아무튼. 비서씨도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어... 물론이죠.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할까요? 편지도 한 번 읽고요."


메르힌은 여기서 바로 가자고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면 비서의 의구심만 더 커지고. 애초에 카리샤가 직접 준 편지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읽어볼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 떄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비서의 집에 따라들어갔어요.


뭐. 다들 아시다 싶이 편지 내용은 메르힌이 캥기는 부분을 그대로 담았죠. 자기는 10년 전 기억과, 또 느낌을 완전히 지울거고. 그 이유는 당신과의 관계를 (여기서 비서는 한번 울뻔했죠. 그대라고 말을 안 해준 게 큰 충격이었나봐요. 메르힌은 저 둘의 관계를 범인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믿음을 더 공고히했죠.)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욕망때문이라고요. (여기서 비서는 또 울뻔했어요. 카리샤가 자기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음에도 자기가 그런 화나냈다는 게 한심하다는 둥 나는 이제 충실한 비서가 될 거라는 둥 그랬죠. 메르힌은 비서의 첫 인상과 달리 굉장히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


마지막 부분은 그대로 옮겨 드릴게요. '그러니 오후 5시 50분까지 역으로 와주세요. 직접 말하지 못하는 저를 마음껏 원망해주세요. 하지만 정말, 정말, 정말로. 그대가 곁에 있어준다면 조금은 덜 무서울 것 같네요. 친애하는 윈터하우스께. 카리샤 말린이.'


"메르힌님." 비서가 편지를 내려놓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어요.


메르힌은 싸해서 말했죠. "아무 말 하지 마세요. 비서씨. "


비서는 옆에 있던 펜을 들고 글자를 써내려가자. 메르힌은 비서의 손을 잡았어요. "쓰지도 말고요. 거 참! 초등학생도 아니고, 무슨 뜻인지 알잖아요?!"


"고도의 비꼼이라고요. 메르힌님과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 유감이군요. 저는 아가씨와 함께해야해서요."


"7일전으로 돌아가자고요?! 과거로 돌아가는거에요. 기억을 지우면. 비서씨가 그, 고통으로 얻어낸 것들을 그냥 묻어버려야 한다고요!"


"그래요. 한가지 확실히 얻었죠. 저는 카리샤 말린의 비서가 아니면 무가치하고 차라리... 차라리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쥐새끼가 더 귀여울 정도로 글러먹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확고하고. 중요한. 교훈이요. 고마워요. 굳이 이렇게 멀리 돌아올 필요는 없었던 것 같지만."


"아니에요." 쉬고, "아니에요! 비서씨. 그걸 얻은 게 아니라고요. 우리가 얻은 건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잖아요!"


"아가씨는 똑바로 보고 계시잖아요.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단절되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런 판단을 하신 걸 보면 말입니다."


"그건 그냥 도망치는거에요! 차라리 목적지라도 명확하면 말도 안 해요, 저 멀리 도망치는거라면 제가 이러지도 않겠죠! 그냥 앞에 용이 하늘에서 윙윙대면서 잡아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거 보기 무섭다고 눈깔을 뽑아버리는 머저리 같은 짓이나 하니까 제가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망할 메르힌님이나 다른 사람 인생에 작작 참견하세요! 카리샤 아가씨가 매일 새벽마다 일어나서 저를 끌어안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아가씨는 빌어먹을, 옆에 누가 없으면 이제 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시는데. 그 고통을 끝내긴 커녕 더 파해치자고요? 백마도사들은 원래 그렇게 무례해요? 그냥 제 원하는데로 하게 내버려둬요!" 메르힌에 면전에 편지를 집어 던졌어요.


메르힌은 그걸 처맞고도 비서에게 손가락 하나로 삿대질하며 말해요. "백마도사가 아니라 아크라이트 메르힌이 무례한거에요. 알겠어요? 비서씨. 그러니 똑바로 들어요. 자스민은 그거때문에 카리샤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고. 빌어먹을 국장이라는 새끼는 카리샤에게 뭔갈 숨기고 있는 와중에,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 그냥 다 잊고 하하하.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순진해요~ 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진 않길 바래요. 비서씨는 그 정도 멍청이가 아니니까."


"오. 메르힌씨 원하는데로 그 정도 멍청이라 생각하던가요."


"그럼 그만둬요. 그 빌어먹을 멍청한 짓의 결말이 뭔지 아세요?"


"뭔데요?"


"결말이 뭐냐면."


폭음이 들렸어요. 모든 게 산산조각나고, 메르힌은 먼지를 뒤집어 썼는데. 비서는 여전히 멀쩡한체. "뭔데요? 결말이." 라고 말해요.


"결말이.... 결말이."


메르힌은 소음에 옆의 창문을 바라봐요. 또 빌어먹을 환각이죠. 남부 전쟁터의 폐허속에 서류를 읽으며 쉬고 있던 자기와. 자기의 가장 친했던 친구인 레디 케드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을거에요. '메르힌. 서류 좀 줄 수 있어?'


'이거 기밀문서인 거 뻔히 알고도 말한다. 그지.' 레디 케드는 백마도사가 아니었죠. 남부 토박이였어요. 그래서 보여주면 안됐고요.


'그래도 말이야. 우리... 우리 가족이 어디로 대피할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거 기사단 군사배치도 맞지?'


'아니. 기사단의 마정석 배치도야.' 메르힌은 그 때 지루한 사무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자기와 가장 반대되는 일이었죠. 협회장은 '너가 손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서류를 보는 게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구할거야.' 라고 말했지만. 자기는 그딴 일에는 관심없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인기나 잔뜩 받을 수 있는 현장직이 더 적성에 맞았어요. 그래서 '국제 협정 준수 확인을 위한 시내 내 마정석 배치도' 따위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었죠.


이 도시는 격전끝에 다른 왕국군의 기사단이 점령하게 되었고. 레디 케드는 원래 이 도시의 주인이었던 리디시니움 공화국의 충실한 시민이었어요. 그럼에도 살아있는 이유는 백마도사 협회는 양국의 전쟁사이에서 민간인들과 부상자들의 안식처를 자처했기 때문이었고. 공화국과 왕국 모두 그들에게 목숨을 빚지는 건 둘째치고 이들이 마운티아 연방의 시민이라는 점이 합쳐져 적어도 백마도사가 보는 눈 앞에선 민간인들을 어찌 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 상황속 메르힌은 자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간인들이 부당한 피해를 입는지, 혹은 마정석으로 거대마법을 써서 도시를 날려버리는지는 않는지 감시하는 서류 작업을 담당했는데요. 그런 일을 하면서 늘 했던 생각은 바로... '폭탄이라도 하나 터진다면 거기서 멋들어지게 사람을 구할텐데. 그럼 지금 종군기자들이 자기 모습을 찍어대겠지? 내전의 영웅. 메르힌. 멋지구만.' 이었죠. 그런 생각이나 하다가 레디 케드가 말했어요.


'메르힌. 부탁이야.' 메르힌은 혀를 쯧 차고, '잘 보고 서류에 대충 끼워놔.' 사건이나 더 있나 보기로 했죠.


'고마워. 메르힌.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메르힌은 알고 있었어요.


어떤 이유더라도 군대가 백마도사들에게 믿음을 가지고 제공한 문서를 백마도사 외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는 점을.


메르힌의 의무는 현장에서 한 명의 사람을 구하는 게아닌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 있을법한 가능성들을 감시해야하는 의무가 있다는 걸.


그리고 레디 케드는 공화국의 충실한 시민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공화국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하지만 메르힌은 그걸 직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모든 걸 모르는 척하고. 그냥 빌어먹을 사진이나 예쁘게 찍힐 곳을 찾아 해맸죠. 기자들 뒤를 따라다니고, 동료 백마도사들이랑 노가리를 까고. 기사단에게 어깨를 툭툭치며 살살 좀 하라고 농담이나 하는 동안.


레디 케드는 마정석이 가장 밀집되어있는 건물에 다가가, 내부의 동지들과 함께 기사단원들을 모조리 제압했어요.


메르힌이 그 소식을 들은 건 우습게도 언론사들이 달려가길래 사진 잘 찍히려고 쫒아가다 알아낸거죠. 언론사들은 한 건물에 멈춰 엄폐를 한 다음 사진기를 설치했고. 메르힌은 건물 위를 바라봤는데.


그 위에는 레디 케드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위에는 붉은 하늘 속, 쏟아져 내려올 듯한 유성우들이 한 거대하고 어두운 구멍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어요. 메르힌은 이 건물이 서류에서 나온 그 건물. '전쟁이 거의 끝났으니, 항구 도시인 이 곳에 모은 다음 외국에 판매하기 위한' 창고라는 걸 알았어요. 7층짜리 건물이 마정석으로 가득찼죠.


메르힌은 그 건물에 달려들었고. 총탄이 빗발쳤지만 메르힌은 이 때 정말 뛰어난 백마도사였고. 빌어먹을 총탄 몇발쯤은 보호막으로 막아버린 다음 모두 무시하고. 레디 케드가 있는 옥상으로 달려들어갔죠.


레디 케드는 올라온 메르힌을 바라봤어요.


메르힌은 레디 케드를 죽일 듯 바라봤죠. "이 씨발놈이 내 커리어를 조지려고 들어? 당장 취소해!"


"미안. 메르힌. 하지만 너에게 그 커리어가 소중하듯, 나도 소중한 게 있는데."


메르힌은 다그쳤어요. "커리어... 커리어가 아니라, 그... 응? 사람들을 생각해봐. 너가 뭘 할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마정석이라면 미친 파이어볼을 쏴도 도시 하나를 태워버릴 수 있거든? 마법 잘못쓰잖아? 그냥 그만하고 내려오지?"


"메르힌."


메르힌은 부탁했어요. "아니면. 응? 제 3국 탈출을 원해? 백마도사들이 도와줄 수 있어. 그쯤은 식은 죽 먹기야. 게다가 내가 여기 지부장이잖아? 도시 탈출은 숨쉬는 것보다 쉬워."


"메르힌."


메르힌은 증오했어요. "이 씨발놈아! 뭐가 문제야? 넌 가족도 있잖아! 난 씨발 없어! 그럼 좀 씨발 살아서 어떻게 지랄 좀 해보던가, 왜 좆같은 짓이나 하는건데? 빨리 마법 취소해. 당장 취소해! 애비 없는 자식들로 만들고 싶어?!"


"메르힌."


"왜. 왜, 씨발놈아! 취소하고 말하라고!"


그는 차분한 눈빛으로 말했어요.


"내가 포기할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잖아."


메르힌은 처음으로 가망없음을 느꼈어요.


왜냐면 이 전까지는 그런 일들은 모두 피하면 됐었지만.


이젠 못 피했거든요. 그걸 깨달은 표정을 지은체 메르힌이 물어요. "도대체 뭐가 문젠데...?"


"나는 죽겠지만 공화국은 불멸해야해." 그가 말했어요. "남부의 이 공화국이 아니라면 권외종족들이 더 이상 사람답게 살아갈 곳이 없어. 왕국이 고블린과 용들, 그리고 마족들에게 어떤 짓을 하는 지 잘 알잖아."


"내가 막을 수 있어. 내가 하는 일, 우리가 하는 일이 그거라고! 사람 살리는 일!"


"네가 하는 일은 영웅이 되려는 일 아니었어? 신문사들의 인기인되기. 권외종족은 거들떠도 안 보는."


"닥쳐. 닥쳐. 씨발. 걔네 치료하면 그날부로 언론사가 얼마나 씹어대는지 알아? 그럼, 그럼 너는 뭐가 잘났는데, 씨발. 저..." 메르힌은 하늘을 바라봤어요. "저 유성우들이 도시에 떨어지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을거야. 난 적어도 사람 죽인 적은 없어. 썅놈아. 네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오. 대신 죽는 걸 바라본적은 있었겠지."


"입닥쳐. 그냥... 그냥 씨발 닥치고 내려오라고!"


그는 멋쩍게 미소짓다가. "메르힌."


"씨발 닥치라고! 듣기 싫어!"


그의 뒤에서는 기사단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고 총성이 울려퍼졌고. 그는 메르힌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그 총성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그 다음 단검을 꺼낸 후. 하늘 위로 뻗어 올리고. 이렇게 외쳤죠.


"압제자들에게 죽음을! 리디시니움 공화국에게 영광을!"


기사들이 외쳐요. "당장 저새끼 대가리 깨버려!"


메르힌이 외쳐요. "안돼! 씨발!" 그 다음 달려가죠.


케드가 가슴에 칼을 긋고. 자신의 피를 마나로 환원한후 하늘로 올려버려요. 그 다음 총탄이 몸을 꽤뚫고 나오며 난간에 있던 그는 아래로 추락하죠.


그는 핏방울을 하늘로 올리며 떨어져나가요.


그럴때마다 하늘은 그의 죽음에 반응하듯, 그의 증오를 대변하기 위해 유성우들을 도시 곳곳에 떨어트리기 시작하죠.


메르힌은 옆의 문서를 흘겨봤어요.


범위는 왕국내 모든 도시. 도시마다 유성우를 4개씩.


그 다음에 소음을 듣고 난간 아래를 바라봐요. 케드는 자기를 향해 미소지으며 비꼬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피웅덩이에 빠져든 그의 몸은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며 자기를 비난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를 그토록 증오하는 것 같아요. 같아요. 같아요. 같아요. 망할, 왜 빌어먹을 같아요냐면.


죽은 사람이 그럴 수 있을리가 없잖아. 하지만 메르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여요. 왜냐하면.


메르힌은 저 죽음과 이 일이 자기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놀라지 않아야 했죠. 자기 스스로 떨어지고 놀라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스스로 자살한건데요. 스스로 해야할 일을 방임한 결과가 이 친구의 죽음과, 또 수백만명의 죽음이겠죠. 스스로 자살한거라고요. 백마도사 메르힌! 백만명을 죽일 마도사였나요? 메르힌, 스스로 선택한 거잖아요!


그럼 놀라면 안 되는거라고요. 웃어야죠. 이미 다 알고 그런 거 아니겠네요? 확실히. 원하는 대로 신문에는 대문짝하게 얼굴이 박히겠어요. 축하드려요. 그래도 아버지는 두 사람의 인생만을 망쳤는데, 메르힌은 수백만명의 인생을 망치게 생겼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왜 놀라고. 비명을 지르는거에요? 왜 고통스러워 하는거에요?


그건 바로 생존을 위한 부인이었죠. 자신의 행동과 자신으로부터 격리하고, 모든 문제를 부인하고,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소리쳐요. 귀가 찢어질 정도로! 그러지 않으면 자기 자신조차 죽어버릴 것 같으니까!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외쳐야만 했으니까! 이걸 직면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게 통하겠어요? 그건 모두 메르힌의 죄책감이 되었고, 메르힌이 직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들이었어요.

하지만 영원히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없죠.


비서가 창가를 계속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메르힌에게 말했어요. "메르힌님?"


"모두 죽었어요. 제 손으로." 메르힌은 눈물이 길게 한 방울 떨어져요. "저는... 뻔히 보이는 걸 직면하지 않았어요. 귀찮다는 이유로요. 제가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때문에, 그래서 모두 죽었다고요. 빌어먹을 수십만명을 죽였어요! 그... 그 리디시니움 공화국의 도시들을 죄다 지옥으로 바꿔버렸죠. 뻔히 보이는 걸 직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건... 그건 씨발 제 탓인데."


"발렌타인에 일어났던 그 일이요? 하지만 언론에서는 수백만명이 죽을 걸 백마도사들이 살렸다고... 아. 거기서 메르힌님의 이름을 봤네요. 수백만명을 살린 헌신의 백마도-"


"제가 제 일을 똑바로 했으면 수십만명도 안 죽었겠죠. 제 몸도 정상이었을거고."


"그렇지만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수습되지 않아요. 사람이 죽으면 말이에요. 비서씨. 저는 제 일을 똑바로 직면하지 않은 걸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저는 모두에게 빛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제가 해야할 일을 묵인했어요. 세상을 지키는 건 소리없이 헌신하는 수백명의 동료들이라는 걸 알고도 그랬죠. 제가 해야하는 일이 더럽게 지루하고 관심도 못 받는 일이더라도 그걸 똑바로 바라봐야만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 빼고 모두 그러고 있었죠! 저만 그랬어요!"


"저만 직면하지 않았다고요! 그냥 빌어먹을 별처럼 빛나고 싶다는 이유로 저는 제가 밟고 있던 땅을 잃어버렸고. 잡으려는 별조차 공허하다는 걸 깨닫고 끝없이 추락했죠, 저만 그런거라면 차라리 괜찮을텐데. 제가... 제가 조금이라도 제 일에 직면했다면.... 아무도 안 죽을 수 있었어요. 제 잘못이에요."


비서는 메르힌이 왜 의뢰금이라는 의뢰금은 모두 백마도사 협회에 꼬박꼬박 받치는 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메르힌은 계속 이어말했죠. "그래서 당신들에게 신경쓰는 거에요. 뭐. 수십만명을 죽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둘의 관계는 파멸로 갈 수 있겠죠."


"...그렇게 단언할 건 없잖아요. 10년간 잘 지냈다고요."


"저도 3년동안 거기서 별일 없이 지냈어요. 그렇지만 그건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아요. 그건 내일도 괜찮을거라는 걸 보장하지 않아요. 그건 문제가 사실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보증하지 않아요. 단지 한 가지 사실 뿐이죠."


"뭐죠?"


"3년간 운이 좋았을뿐이라는 것."


메르힌은 눈물이 조금 맺혔지만,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맺힌 눈물이었고. 눈은 붉게 충혈된 상태로 비서를 바라봤어요. 비서는 그 표정을 보고 놀랐죠. "....전 무서워요. 메르힌님. 카리샤님이 이미 결정했어요."


"비서씨는 카리샤씨에게 무엇이 되고 싶나요."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죠. "... 비서요."


메르힌은 비웃었어요. "그럼 그대로 계세요. 그런데 정말 그걸 원하는 게 맞아요?"


"메르힌씨."


"윈터하우스 퍼티씨. 그걸 정말 원하는 게 맞아요? 카리샤의 비서라면 그 때 그냥 닥치고 들었어야죠. 잘못했다고 빌던가. 사장님한테 울면서 매달리던가. 그런데 당신은 그러지 않았죠. 화를 냈어요. 뭔가요? 퇴직하고 싶어서 그런거라면 참 귀찮은 방법을 썼네요."


"메르힌씨!"


메르힌은 탁자를 내리찍어버리고 말했어요. "좀 똑바로 봐요! 당신 둘이 끝장나기 전에! 기억을 지운다는 헛소리를 한번만 더 들으면 스태프로 찍어버릴 줄 알아요. 비서만으로 충분하다는 개소리를 하면 머리를 날려버리겠어요. 똑바로 말해요."


메르힌은 끔찍하게 고통스러웠기에 예의같은 건 집어치웠어요.


비서는.


"....카리샤씨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카리샤씨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럴려면 적어도 곁에 있어야하잖아요. 설령 그게 잘못된 판단이더라도."


"전제부터 글러먹었어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잘못된 판단을 할 때 뜯어 말려야죠."


"아. 아르크씨처럼요?"


"그 새끼는 빼고요. 예를 들면................................................................."비서가 메르힌님? 이라고 말했죠.".............아. 네. 말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르크 그 새끼처럼. 심심하면 때려패야죠. 아니. 그.. 잘못했으면."


"....."


".... 때려패는 건 농담이지만. 그럴 각오로 잡아야 특별한 사람이죠. 퍼티씨는 그냥 아름다운 병풍이 되고 싶은 거 아닌가요? 사랑만 받고 싶은체 가만히 서 있는. 그게 사람이라고 불릴만해요? 카리샤한테 인형이나 하나 사주지 그래요."


"...." 비서는 고민하고 있었고. 그래서 메르힌은 한숨을 쉰 다음에 말했어요.


"좋아요. 전 바깥에 나가면, 비공정을 주차한 거 끌고가서 제 친구들을 부른다음. 카리샤를 납치할거에요. 그 다음에는 오브미... 라는 분에게 카리샤를 넘기고. 카리샤의 기억을 되찾을거죠."


"폭력적이에요." 비서는 고개를 돌리고.


"친구를 위한 공권력에 대한 대응이라고 해두죠." 메르힌은 일어나 비서를 바라봤어요.


"전부 지명수배범이 될거에요. 미쳤어요? 그 열차는 정부거고, 협력자는 고위 공무원이에요. 신문에 대만짝하게 나고 싶어요?"


"그럼 그냥 바라만 보시던가요. 비서씨는 어차피 내버려둬도 카리샤씨처럼 무언가 일을 저지를 타입이 아니니. 그냥 댁에 계시던 커피나 마시던. 내 알바야."


"지금 뭐라고-", "제 말 틀렸어요? 당신이 직접 손을 쓴 게 뭐가 있는데요? 카리샤씨를 위한다면서 뒤에서 비꼬는 거?

그거 말고 뭐가 더 있죠?"


"... 나가요. 당장." 비서는 고개를 숙인체 현관을 가리켰고. 메르힌은 혀를 차고는 말했어요. "말 안 해도 나가요." 그 다음에 나갔죠.


비서는 더럽게 고통스러워서 테이블을 잡고 잠시 바닥에 엎드렸어요.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울리는 없는데, 빌어먹을 내적으로는 무언가 심각한 문제라도 생겼는지 숨쉬기가 너무 어려워진게 아니겠어요. 힘겹게 숨을 한번, 두번 들이쉬고. "망할. 망할 메르힌."


비서는 자기는 한사코 부인했지만 비서도 카리샤처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시기였어요. 늘 카리샤의 선택을 따라갔고. 오트밀을 좋아하는 것조차 아가씨가 일어나고 아침밥을 차리기 전에 간단히 먹어 몸에 활기를 돌게 할만한 게 그것밖에 없어서였는데. 이제 자기 선택을 해야 할 때에요.


그런데 단 한번도 잘된적이 없다는 걸 다들 알고 계실거에요. 비서도 알고 있어요. 가장 쉬운 건, 그리고 가장 마음이 편할건. 그냥 지금까지 그랬듯, 카리샤의 판단을 계속 따라가는거에요. 10년이나 성공했어요. 10년이나. 오늘이라고 실패하겠어요?


'그건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아요. 그건 내일도 괜찮을거라는 걸 보장하지 않아요. 그건 문제가 사실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보증하지 않아요.'


비서는 빌어먹을 머리 속 메르힌에게 닥치라고 소리쳤어요. 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은 닥칠 수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그건 메르힌이 아니었어요.


그럼 무엇이었을까요?


욕망이었어요.


어떤 욕망이었을까요?


'하지만 언젠간 너도 빛나는 누군가를 본다면, 그 사람의 곁에 가고 싶을거라고 생각할거란다. 그리고 그 사람처럼. 누군가의 빛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거고. 너에게도 그 때가 오면 좋겠네.'


"하지만 괴롭다고요. 그리고 그냥... 그냥 아가씨 곁에 있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충분한 거 아니에요?"


'상황을 직면하고, 똑바로 바라보고, 상황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걸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거에요.'


"안 부끄러워요. 저는 아가씨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정말 그렇다고요. 저는 ... 저는 쉴새없이 실패했어요. 제 빌어먹을 선택들은 다른 사람을 끔찍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고요! 제가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부인한 비서의 머리속에는 목소리가 잠잠해졌고. 비서는 쉼호흡을 크게 한 후. 카리샤의 편지를 챙기고. 옷을 입은 다음. 카리샤와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한 채비를 끝마추고는. 현관문을 잡았을 때.


등 뒤에서 이런 말이 들렸어요.


'누가 나를 잡아줘.'


'누가 나를 구해줘.'


'누가 나를 찾아줘.'


'누군가가, 나를...'


'내게.'


비서는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면 비내리는 거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블라드라 한 명이 서있어요. 그 사람은 도움을 원하고 있었어요.


비서는 저 사람의 복부에 칼을 꽂았고요.


비서는 생각했어요. 지금도 카리샤는 도움을 원하고 있었어요. 자기 곁에 있어달라는걸로요. 그래요. 메르힌의 제안을 따르는 건 다시 카리샤의 복부에 칼을 꽂는 짓이에요. 미쳤어요? 빨리 그러니 현관을 나가고, 회중시계를 보면 곧 약속시간이 가까워지니까. 빨리 나가야 해요.


그렇게 현관문을 잡고 열때쯤에는.


'문제 해결의 첫번쨰는 문제를 직면하는거에요.'


'비서씨는 카리샤씨에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 메르힌씨. 망할. 환청으로 말하지도 않았던 말을 짓껄이지 마세요."


'전 비서씨의 욕망인걸요.'


'다른 사람에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당신 때문에 내 동생이 죽을 뻔 했어." 비서는 한숨을 내쉬고는. "나는...."


"두번 실수는 안 할거야."


그러고는 비서는 현관을 나서고, 창문을 연 다음. 고개를 내밀고.


"아크라이트 메르힌!!!!!!!!"


그렇게 소리쳤어요.


건물 곳곳에서 먼저 반응이 왔죠. "어떤 미친년이 낮부터 지랄이야?!", "엄마. 저 언니 이상해.", "쉿. 연애하나봐."


하지만 그딴 반응은 신경도 안 쓴체 길거리를 바라봤고. 건물바깥을 빠져나가 길가에서 걷고 있던 메르힌은 미소를 짓고는 뒤를 돌아봤어요.


5시 45분. 열차역.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미스테리처럼 퍼져있는 정부의 비밀역. '여명의 아일란트' 역에서는 원래는 늘 한가하고, 일일 수송량이 지하에서 근무하는 흑마도사들과 공무원들을 뺴면 0명에서 3명내외일정도로 고요한 역입니다만. 오늘은 경호원들만 수십명에. 그들에게 포위된 듯한 경호 대상 두 명까지 있어서 고요한 북적북적함이 울러퍼졌죠. 다들 아무말 안 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정도 사람이 모여있으면 숨소리랑 발소리만으로도 시끄럽거든요.


카리샤는 30분에 이 역에 도착했고. 처음한 일은 역을 모두 둘러보는 거였으며. 그 다음에는 오빠와 함께 서서 3분마다 뒤를 돌아보며 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거였어요. 40분부터는 1분에 한번씩이었죠. 카리샤의 오늘 패션은 하얀색, 그리고 파란색이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옷색깔만으로도 뭔가 '흐으응~?' 할 것 같은 고고한 장난끼와 추궁이 있을법한 뉘앙스를 받았습니다만. 오늘은 더럽게 차분한 귀부인 컨셉이었죠. 이런 사람이 칼을 휘두르면 열정보다는 냉혈이 잔뜩 실어있을거고요.


그런 사람이 1분에 한번씩 뒤를 돌아보는 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렇게 냉혹한데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거야?' 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어요. 경호원들은 모두 조용하게 수근거렸죠. 40명이 조용하게 수근수근댔어요. 애인이다. 뭐다해서요. 국장도 지금 이 불안한 카리샤를 달래주기 위해서, "엘리니. 진정해. 비서가 그... 마음이 좀 아팠을지도 모르잖아. 이게 끝나고 다시 가면 원래대로 돌아올거야."


".... 그렇겠죠."


"물론 그렇겠지. 좋은 생각만 하자고.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뭔가요. 오라버니."


"이 역의 이름. 여명의 아일란트. 어떤 뜻인지."


"제 생각에는 그냥 시대 배경에 맞춰 지은 듯한 이름인데요. 여명의 시대의 아일란트 대륙같은 느낌으로."


"아니야. 사실 여명의 아일란트라는 표현은 이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에어조라 창세기에 처음나온 표현이거든. 이 시대가 만든게 아니라 빌려썼다고 말해야 정확하겠지."


"허어. 그렇군요." 그러시겠지라고 비꼬고 싶었지만 카리샤는 분위기를 망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우리 국장님은 예전 자기 전공이 신학과라는 걸 어필하려듯 계속 말했죠. "그렇지. 성서에서 나온 부분도 특이한데. 에어조라가 이 세상을 만든 이후, 본래 한 덩어리였던 것들이 '완전하지 않다' 라는 이유로 망치로 때려부순거야."


"신이라는 작자가 그래도 되는거에요?"


"그치. 좀 미친놈같아. 한 덩어리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걸 잘게 박살낸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성서에 적혀있어. '아일란트들아, 여명의 햇살을 받고 서로를 밝게 비추며 이 세상을 빛내라.'"


"아일란트?"


"고대 에라어로는 '파편들' 이라는 뜻이야. 그러니 자기가 만든 한 덩어리를 박살낸 후, 그 조각들에게 말한거지. 그 조각들은 일부는 사람이 되고. 일부는 마나가 되고. 일부는 동물이 되었다고 하더군. 몇몇은 지하로 흘러들어가 지하세계 종족들이 되었고. 몇몇은 하늘로 올라가 콧대높으신 드래곤이 되고... 뭐. 결국 인간들이 세상을 얻었지만."


"참 신화적인 내용이네요. 신화... 이긴 하지만." 카리샤는 곰곰히 고민하곤. "그 다음에는요?"


"그 후에는 그 파편들이 서로를 죽이려고 들고. 분란이 계속 발생하자 에어조라의 신도들이 이렇게 물었어. 에어조라이시여. 우리를 다시 하나로 만들어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어주소서. 어찌하여 우리를 이런 고난에 빠트리시나이까. 우리가 본래 있었던 형태로 돌아가면 이런 문제따윈 없사옵니다."


"답변은 뭐였나요? 낮잠 자야 하니까 닥치라고 했을 것 같은데. 요즘 세상을 보면."


"비슷해. 이렇게 말했어. 아일란트들아. 나는 너희가 서로를 빛내기를 바란다. 너희는 하나일 때 빛나는 게 아닌, 수백만, 수천만, 수억개의 파편일 때 서로를 더욱 빛출 수 있고, 모두가 더욱 빛날 수 있다."


카리샤는 국장을 바라봤어요. 조금 놀란 눈이었죠. 하지만 국장을 보고 놀란 게 아닌, 이야기를 듣고 놀란거였어요.


국장은 계속 말을 합니다.


"신자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 하지만 옆집의 아이와 우리의 아이조차도 다르고. 우리는 서로 가치관도 다르며. 우리는 서로 지능도 다르고. 우리는 생각도 다르며.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나이다. 우리는 무력하며, 부디 존경하는 에어조라이시여. 그대가 강림하여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소서. 그조차도 힘드시다면 부디 우리를 똑같이 만들어주소서. 우리가 서로 다른 모습이어서, 우리가 서로 다른 힘을 가지고 있어서 너무나도 쉽게 타인을 증오하며 미워할 수 있나이다. 주로 저의 모습으로 모든 이들을 다시 만들어주소서. 그조차도 안 된다면 모든 이들을 초인으로 만들어주소서. 우리는 어찌하여 무력한 이들도 있나이까."


"에어조라는 모두 안된다고 말한 다음, 마지막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어. 이 때 나온 말이야. '끔찍하도다. 나는 너희들을 모두 평등하게 창조하였는데도 그딴 말이나 짓껄이다니. 역겨운 너희들이 언젠간 여명에 빛나는, 서로 다른 모양의 아일란트들이 될 때에 다시 돌아오겠다.' 그러곤 낮잠을 자러 갔다고 해."


카리샤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어요. ".... 정말 귀찮은 신이네요."


"그렇지? 애초에 완전히 잘못 파악했다니까. 소위 현대 사회에 들어오거서도 서로를 '고상하게' 죽이려고 노력하는데. 몇천년전 사람들한테 말로 설득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니까. 그래서 내가 신학을 때려쳤지. 대신 현실적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걸 찾은거야."


"...." 카리샤는 사실 그 이야기를 속으로는 왠지 모를 기대로 가득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심하게 말하는 건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어요. 그 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뒤를 돌아봤죠.


한 사람이 급하게 달려오는 게 보여서 카리샤의 눈은 커지고. 계단의 끝에 발이 올라오는 걸 보고 숨이 멎을 뻔했지만.


"아아. 죄송해요~ 제가 지하철 역을 잘못내려서요."


"아니. 뭐. 휴가인데도 나와줘서 고맙지. 저녁 먹었냐?"


"아뇨. 오. 감사해요. 빵. 맛이 없을 수가 없지."


.... 보디가드인 걸 보고 한숨으로 숨이 멎을 뻔 했고,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다행히도 곧 바로 들어오는 열차의 기척 소리에 그건 묻혔어요. 국장님만이 카리샤의 분위기가 조져진 걸 깨닫고 팔을 잡고 에스코트해줬죠. 카리샤는 흘러내려가는 솜털처럼 질질 끌려갔어요.


그 둘의 좌석은 고풍스러운 나무 목제. 그리고 주황색으로 가득찬 희미한 조명이었어요. 편안한 분위기를 주면서도. 보통 이 열차를 타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 기억을 마지막으로 가지고 갈지도 모르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탔기 때문에. 끔찍하게 차분한 분위기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죠. 빛은 희미했고요. 특히 이 선로는 양옆이 모두 빼곡한 나무로 막혀 있었어요.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의 신상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연구원들도 신상이 노출되어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지만. 카리샤에게는 그저 빛도 안 보이는 가망없는 터널에 계속 갇힌 느낌이었죠. 움직이고, 아무리 움직여도 창가에도 빛이 안 들어오고. 하늘도 이미 느즉하게 해가 져버려서 색깔이 보라색이 되어버렸다고요.


힘이 없었죠. 국장은 그걸 보고 위로해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뭐. 적어도 힘이 없는 편이 기억을 지운다는 측면에서는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요. 이 열차를 설계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죠. 적극적으로 기억을 지우려고 들면 오히려 '기억을 그렇게 열심히 지우려고 했는 자신은 기억하는데 정작 뭘 지우려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 혼란스러운 사태에 빠져들어 기억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건 뭐... 더 안좋죠. 그러니 고의적으로 힘빠지는 환경을 연출한거에요.


카리샤는 그게 너무... 끔찍했죠.


천장은 막혀있어요. 하늘에는 빛이 없어요. 침식될 것 같은 끔찍한 조명들과 아무말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터널과 비슷한 숲을 지나고 있죠. 악몽에서 늘상 자기가 붉은색 액체에 천천히 담궈지는 일을 많이 겪었는데. 이젠 현실에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어요. 카리샤의 턱끝까지 액체가 올라오지만 카리샤는 채념했어요. 이 고통을 끝내려면 익사하는 수밖에 없겠죠.


그러다가 악몽에서처럼 카리샤가 마지막 숨을 쉬려고 발버둥치면서. 그렇지만 발버둥치는 것조차 못해서 채념한 표정으로 막혀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있지도 않는 빛을 그리며 손을 뻗어요. 그러곤 이렇게 속으로 말하죠. 사라질 것 같아서 손을 뻗은 나를 도와달라는 심정을 담아서요.


'누가 나를 잡아줘.' 카리샤는 발견해요. 옆에 오빠가 있지만 손을 잡아주지는 않아요.


'누가 나를 구해줘.' 카리샤는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을 대가를 바라는 사람에게 구해줄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누가 나를 찾아줘.' 카리샤는 비난해요. 자기 어머니를 죽였단 사람을 피하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테냐고요.


'누군가가, 나를...' 카리샤는 매일 기도해요.


'내게.'


'손을 뻗어줘.'


하지만 꽉 막힌 천장은... 카리샤의 그런 소원을 들어줄 수 없어요.


그래서 그 소원은 이뤄질 수 없었죠. 거대한 벽에 갇혔으니까.


카리샤는 그걸 알고 있기에 붉은색 액체에 서서히 빨려들어가며 떨어져가요.


아무런 기대도 안 했다고, 기대를 너무 많이했기에 그렇게 변명하면서. 서서히 눈을 감죠.


그래서 완전한 어둠속에 갇혀버리는거에요. 이제 모든 걸 잊겠죠.


그 다음에는 손을 내리고. 엘리니 프라드로 살아갈 걸 자조섞인 미소로 기대해요.



덜컹. 한번에 꿈을 잊고.




덜컹. 한번에 역겨웠던 자신을 잊고.




덜컹. 한번에 추억을 잊고.




덜컹. 한번에는 죄책감을 잊어요.




덜컹. 옆좌석에 국장이 말해요. "열차가 원래 이렇게 덜컹이나? 선로 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덜컹. 승무원이 말해요. "오늘 열차 컨디션이 안 좋나봐요."


덜컹. 국장이 말해요. "천장에서 왜 덜컹이는거야. 구형 기차구만."





딜컹.




덜컹. 승무원이 말해요. "나름... 최신인 것 같은데.."




덜컹. 이제 잊을 것조차 없어.



덜컹.




덜컹.





덜컹. 천장에서.



덜컹.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요.



퍼억. 국장이 말해요. "열차에서 보통 이런 소리도 나나...?"




퍼억. 승무원이 말해요. "아뇨. 그.. 어.. 이거 석탄으로 가던가? 그럼 날지도 모르는데요."



퍼억. "아닌데..."




퍼억. 국장이 말해요. "누가 천장좀-"



펑.


카리샤가 눈을 감았는데도 피부너머 푸른색 빛이 몰려와요. 그래서 눈을 떠서 보면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요. 처음으로 숨을 쉬어요. 하지만 붉은 액체로 가득해서 숨을 쉴수 없죠. 공기 방울이 위로 올라오고. 서서히 익사해가며 발버둥쳐가지만 어째서인지 죽고 싶지 않아요. 그렇기에 제발. 제발 나를 구해달라고 기다리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리고-


퍼억. 천장은 갈라지며 칙칙한 나무들에 숨겨졌던 쏟아질듯한 별빛이 보이며.


퍼억. 수백개의 파편들이 자신의 위에서 내려져 나오는데.


퍼억. 카리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퍼억. 피에 찌든 자신과는 다른 것 같아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가.


누가 나를 구해줘. 이번에는 숨에 붉은액체가 몰려오던 말던 입을 벌려 간절히 바래요.


누가 나를 찾아줘. 침식되어가는 나를 찾아달라고요.


누가 나를 잡아줘. 떨어져나가는 나를,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내 손을 잡아줘!


그렇게 하늘을 향하게 간절히 손을 뻗자.


천장은 푸른색과 섞인 따스한 노란색의 빛이 몰려들어오며 완전히 무너지고.


누군가는 자신의 손을 잡아줘요.


"아가씨!"


그 사람은 빛나고 있었어요.


# 여명의 아일란트 5장,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카리샤가 말했어요. "그대? 저는... 그대가...


# 에피소드 4. 이렇게 빛나는진 몰랐는데.

"


그 말에 윈터하우스 퍼티는 미소지으며 이렇게 말해요.


"저야 늘 빛나죠. 모르셨어요?"


카리샤는 그 대답을 듣자 숨이 막힐 것 같던 붉은 액체도 모두 사라지고. 붉은색 세상도, 꽉막힌 세상도, 불안한 조명도 없이. 그저 차가워보이는 푸른 빛 사이에서 따스한 노란색 빛을 느끼며. 숨을 들이켜 쉬고.


"알았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말한 다음, 고고한 미소를 지어줬어요.


---

다음 이야기. 6장, RESTORE(GHOST);.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작가의말

안 그래도 주기가 2주에 한번인데 무려 5일을 추가로 잠수를 탄 작가입니다.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그냥 길게 쓰고 싶어서 그럴까요. 안 그래도 길어 죽겠는 한 화가 2만자쯤 더 늘었습니다. 인기가 없어서 뭘 어찌해도 된다는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러니까 인기 없는거잖아!‘ 라는 생각도 지워버리기 힘드네요. 크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로그용으로 지각한 사유를 적으면... 오전 10시 출근, 오전 6시 퇴근을 했어서 힘이 없기도 했고. 저번주가 특히 바빴거든요. 그래서 소설 쓸 시간이 없었답니다. 참 슬펐어요. 전 이거 적는 게 정말 행복한데 그 행복한 시간이 사라지니까. 

아무튼. 이번 화는 저를 종합 선물 세트 컨셉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연출이나 구도를 잔뜩 집어넣은 한 화였죠. 여러분은 어떠셨을지, 이 중 취향에 맞는 게 하나라도 있으셨을지가 궁금하네요. 

다들 감사합니다. 아마 다음 화는 이번주에 나올 것 같아요. 2주 주기를 다시 맞춰야하니까요.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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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아일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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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52화는 이번주중 완성될 것 같아요. ;ㅁ ; 22.02.14 17 0 -
공지 분재를 가꾸는 마음으로... 21.09.10 33 0 -
공지 도망치면 안 돼! 라는 마음으로... 21.05.24 51 0 -
67 65화 - DESTROY_GHOST - 당신과 나의 끝과 시작 23.05.19 11 0 36쪽
66 65화 - DESTROY_GHOST - 캐놀라이나 블루스 23.03.04 12 0 66쪽
65 64화 - DESTROY_GHOST - 평화를 위한 전쟁 22.11.14 17 0 58쪽
64 63화 - DESTROY_GHOST-AFTER : 끝의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 22.08.16 19 0 50쪽
63 62화 - RESTORE_GHOST-AFTER : 동상N몽 22.07.30 25 0 71쪽
62 62화 - RESTORE_GHOST - EP-7 행복을 위한 유예 22.07.15 20 0 70쪽
61 61화 - RESTORE_GHOST - EP-6 유령들 22.07.02 18 0 65쪽
60 60화 - RESTORE_GHOST - EP-5 바라보는 것으로 바뀌는 것들 22.06.18 22 0 91쪽
59 59화 - RESTORE_GHOST - EP-4 가장자리에서 22.06.02 21 0 79쪽
58 58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4 22.05.17 21 0 89쪽
57 57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3 22.05.02 20 0 71쪽
56 56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2 22.04.14 22 0 108쪽
55 55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1 22.03.31 19 0 113쪽
54 54화 - RESTORE_GHOST - EP-2 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도시에 대해서 22.03.17 23 0 95쪽
53 53화 - RESTORE_GHOST - EP-1 복원 지점으로의 도착, 그리고 시작 22.03.04 24 0 60쪽
» 52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에피소드 4. 22.02.20 50 0 113쪽
51 51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람 22.01.29 24 0 75쪽
50 50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 22.01.16 20 0 81쪽
49 49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기억을 잃은 사람 21.12.31 20 0 67쪽
48 48화 - 그거, 당연히 말이 되죠! 21.12.17 23 0 57쪽
47 47화 - 그거 말 - 되네요 +2 21.12.07 24 0 75쪽
46 46화 - 그거 말 - 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21.11.20 23 0 87쪽
45 45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3 21.11.10 21 0 73쪽
44 44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2 21.10.23 25 0 46쪽
43 43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1 21.10.14 25 0 35쪽
42 42화 - 그거 말... - 이 되도록 해야 하는 사람들 21.10.01 22 0 52쪽
41 41화 - 그거 말... - 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PART2 21.09.15 28 0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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