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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Kiri 님의 서재입니다.

여명의 아일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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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설탕
작품등록일 :
2021.05.24 19:47
최근연재일 :
2023.05.1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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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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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쪽

50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

DUMMY

"죽이려고?"


카리샤의 눈 앞엔 칼을 든 사람이 한명이 서 있었기에 그렇게 말했어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다가 여긴 뒷골목이었는데 상태는 두통에 가득차 비틀거리며 환청을 듣고 있는 와중이었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좀 나을 거에요. 자기 전에는 많은 게 얽혀서 들릴거고요.'


'그러니 집으로 곧장 돌아가요.'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걸. 그래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할 때쯤 앞의 사람이 말했어요."당신을 죽이면 돈을 준다고 했어."


"감옥은 안가고?"


"내가 알기론 당신을 죽인다고 나를 감옥에 보낼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범죄자들에게 원한을 산 범죄자라며."


"우리 어디서 만났던가? 왜 그렇게 잘 아는거야?"


"만난 적 없어. 그냥 들은 것 뿐이야."


"그럼 뭐해? 어서 안 찌르고."


비내리는 소리.


그리고 망설이는 소리.


카리샤는 그 소리를 듣다,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바라봐요. 그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나이대에 검은 생머리에 검은 눈동자가 빗물을 맞아 눅눅했고. 카리샤를 바라본체 망설이고 있었죠. 그 사람이 말했어요.


"왜 도망치지 않는거야?"


"지쳤어."


'카리샤님. 언젠간 꼭 돌아오실거에요.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리샤님은 -' 환청을 지우기 위해 카리샤는 숨을 내뱉고. "마음대로 해."


"난 어쩔 수 없었어."


"너를 죽여야 내가 그 돈으로..."


"가족을 살릴 수 있어. 내 동생."


"그러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카리샤는 눈을 감고 뛰어드는 그 사람을 바라보다가 칼에 찔린 후. 처음으로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생각했어요.


갸엾어라.


그 다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쓰래기장이었죠.


그 때는 머리가 완전히 비어버렸고 출혈 때문에 몽롱했기에, 꿈속을 걷는 것 같이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한 곳에서 웅크려 앉아서 죽을 듯 있는 사람을 찾았어요. 카리샤는 그 사람이 왠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것 같아 그 사람에게 말했어요.


"하아. 하아아. 여기서 뭐하고 계신건가요? 비도 내리는데."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를 보자마자 뒤로 넘어지고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겠어요? "너너너..넌?"


카리샤는 옆에 차고 있던 우산을 씌워준 다음.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 카리샤가 말했어요.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래도 제가 무서워울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왜냐면 저는..."


"누구였지? 카리샤 말린. 블라드라. 그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외에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혹시 괜찮으시면..."


"안 괜찮아. 너. 너 뭐야?"


"저도 그걸 알고 싶긴 하답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두 번쯤 흔들고 말했어요. "넌 분명 죽었는데. 숨을 안 쉬는 것도 보고 복부에 칼이 찔렸는데..."


"아. 블라드라들은 남은 혈액만 충분하다면 다시 신체를 복구해서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그건 그렇고..." 카리샤는 복부에 칼이 꽂혀있고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보곤. "좀 도와주시겠어요?"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거야?"


카리샤는 고민하다가 기억이 전혀 연결이 되지않았고,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이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는 게 더 신경쓰여 말했어요. "네. 무슨 일이 있었으셨나요? 당신에겐 뭔 일이 생긴 것 같답니다."


"... 힘든 일을 했는데. 돈을 줄 사람이 죽었어." 한번 쉬고. "그 사람 근처 사람도, 모두가 오늘 죽었어. 그거 말고는 더 돈을 받을만한 일이 없었는데."


"내일까지 그 돈이 없으면 동생이 죽어. 마나가 잘못 흡수되서 그걸 빼내야 하는데 그걸 치료할 수 있는 마정석을, 오늘까지 대금을 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린데."


"그래서 나는..." 너를 죽였어. 라고 말하기 직전 카리샤가 말했어요.


"갸엾어라." 그리고 카리샤는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그 사람은 그 손을 멍하니 바라봤죠. "아. 그냥 어... 제 말 버릇인가봐요. 갸엾긴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말할 계획은 아니었답니다! 그대. 크흐음. 아무튼."


카리샤는 이 때 이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마음속 한 구석의 어렴풋한 느낌으로 남은 추억은. 비 속에서 홀로 울고 있던 자신을 누군가가 구해준 기억이 있기에. 자신이 받은 호의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카리샤 말린은 거짓말을 했어요. 당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확신도 들지 않았고, 불안이 더 컸지만.


이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기에. 자신만만한 자신을 연기하며 이렇게 말했죠.


"제 이름은 카리샤 말린. 제가 그 일을 도와드리죠. 돈이야 어떻게든 벌어드릴 자신이 있답니다."


"대신 그대가 저를 도와주시길. 제 비서가 되어주신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어요. 이 미소는 미래에 대한 기쁨이겠죠. 이 호의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서, 언젠간 저 분도 나를 구해줄거라는 것에 대한 기대이겠죠.


그게 나를 죽인 사람에 대한 기대였구나. 그리고 그대도 그 때 거짓말을 했구나. 그대는 그대만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구나.


이 과거의 풍경은 덧없이 붉은 피로 잠식되어 사라져가다가.


"아가씨."


그 말에 카리샤는 눈을 떴어요. 자기 손을 잡고, 자기를 보고있는 비서. 그 사람에게 말했어요.


"동생은 잘 지내고 있었나요? 그대."


"덕분에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그 때 그대도 그랬죠.


메르힌은 옆에서 피를 뿜고 있었어요. "아어어컬허걱"


"메르힌님은 왜 저러시나요?"


아르크는 메르힌의 치료를 다 받고 일어나서 말했어요. "협회장이 마법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써서 각혈하고 있는거라 신경 안 써도 돼! 그것보다..."


카이디가 메르힌의 왼팔을 잡곤 말했어요. "안돼! 메르힌! 거기서 칼로 아르크의 머리를 찍어버리면 다시 치료해야하는건 너야!"


카드레가 메르힌의 오른팔을 잡곤 말했어요. "그렇슴다! 메르힌넴! 메르힌넴을 위해서라도 저 분을 때리면 안됨다!"


하르델린이 힘내라 힘내라 포즈로 춤추며 말했어요. "맞아요! 메르힌님! 한번 더 날려버려요!"


"거 참. 시끄럽구만. 아무튼 카리샤. 꽤 오래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몸은 괜찮나?"


"네. 몸은 괜찮습니다. 정신도..." 괜찮은가 고민을 해요. 하지만 굳이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죠.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카틴이 말했어요. "엘리니. 걱정하고 있었어! 정말... 너 없이는 다시 어찌 살아갈지 고민뿐이었다고."


"쑥스러워요. 오빠. 그것보다.." 카리샤가 말했어요. "자스민 말린은 어디있나요?"


아르크가 말했어요. "도망쳤어. 요즘 블라드라중에 안개화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그걸 쓰고 도망치더군. 상당히 혈마법 계통에 익숙한 사람인건 분명해."


하르델린이 말했어요. "도대체 아르크씨는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나요?"


"두가지야. 백수짓하다가 할 게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이랑 놀고 있었거든. 그래서 알고 있었고. 사실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닌데 그냥 확신을 가지고 말하면 내가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말해봤어." 쉬고. "왜! 나도 우리 파티 내부에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요즘 경쟁자가 만만찮아서.."


"지옥으로 가는 편이 가치를 인정받걸거에요! 놔! 둘 다 놔!" 메르힌이 소리쳤어요.


"파티장의 히스테리가 또 시작이구만. 신경꺼도 돼."


"두 번째 질문이에요. 이건 오라버니가 말해줘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도대체 자스민씨는 어떤 사람이길래 저와 같은 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주실래요?"


그 질문에 모두의 시선은 카틴에게 쏠렸어요. 카틴이 말했죠. "나는 잘 몰라."


"오라버니?"


"정말이야. 난 자세히 몰라. 내가 연방수사요원이었을 적에 저 년을 기소해서 감옥에 처넣으려다가 이샤라이나로 도주해서 실패했다는 것밖에 몰라! 내가 입국 금지도 시켰어! 그런데 왜 저 년이 여기 있는건지 난-"


"무슨 죄였죠?"


"죄야 많지. 살인죄, 협박죄, 기물파손, 납치, 하이재킹, 공무집행방해, 강도, 청부살인, 등등등, 그런데 망할. 이제 말해뭐해? 연방수사국에 자료가 이제 남아 있지가 않는데! 다 한 줌의 잿더미로 바뀌어서 증명할 수도 없게 되었는데!"


"그런 사람에 대한 기록을 왜 소각시킨거에요? 미친 거 아니에요?"


"나라고 하고 싶진 않았어. 정부도 하고 싶지 않았을거고. 어떤 미친년이 칼 한 자루 들고 연방 수사국에 들어와서 불만 안 질렀다면 그 자료는 아직도 남아있었을거고. 이샤라이나도 우리 말을 진지하게 들어서 그 년을 송환시켜줬겠지. 그런데 다 탔어. 다 타버렸다고. 난 이제 그 망할 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데 왜 저년이 기어와서 다시-"


"그 때 제 자료도 타버린거군요. 누가 태웠죠?"


"말해줄 수 없어."


"오라버니. 그걸로 제가 납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납득하라고 한 말이 아니니까 상관 없어. 엘리니. 진지하게 그 일은 너가 기억을 잃어버리는 편이 나았고, 지금도 그건 변함 없어. 이젠 우리랑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전혀 상관 없는 일이요? 방금 습격해온 건 그럼 저희의 또다른 자매이기라도 해서 갑자기 습격해온 건가요? 저희 부모님을 저희가 죽였어요? 잠깐. 그러면..."


"엘리니! 망할, 그 말이 아니잖아!"


"저도 알아요! 그럴거면 어중간하게 속이지나 마세요! 왜 그러는거에요?"


"그래. 그래. 내가 미안해. 엘리니. 누가 태웠는지는 말을 해줄 수 없지만 왜 몰라야하는지는 말해줄 수 있지. 카리샤 말린은 자스민 말린과 한 패거리였어. 자스민은 파괴를 담당. 그리고 카리샤는 납치랑 설득을 담당하고 있었지. 너희 둘은 사적인 이득을 위해서 시민들을 괴롭혔다고."


카리샤는 믿기 힘들어하는 표정을 짓자 카틴이 이어서 말했어요.


"망할 범죄 조직이었다고. 악랄하고 잔혹한! 너를 위해서라도 그 시절 이야기를 내가 안 하는 게 낫지 않겠니? 그 사람들은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사람 수십명쯤은 그냥 죽이고 다니던 놈들이야. 그냥 잊어줘. 제발! 나도 그 망할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그냥. 그냥 이 순간을 즐기면 안 될까? 엘리니? 부탁인데?"


잠시 조용해졌어요.


카리샤는 입술이 무거웠지만 할 말은 해야했죠.


"그런데 왜 지금은 저에게 잘 대해주시는건가요?"


"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엘리니. 너는 소중한 내 여동생이야.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나도 이해해. 협조하지 않았으면 죽였을테니까. 그거면 충분해. 그것도 매일 되새길게 아니라 이런 일이 일어날때만 되새기면 되는거야."


"하지만 그 자스민은, 자스민이라는 분은." 카리샤는 숨을 쉬었어요. "제가 그 분과... 저의 부모님을 죽였다고 말했어요. 제 블라드라로써의-."


"엘리니! 망할. 그건 가짜 가족이야. 유사 가족이라고. 기껏해야 범죄자의 역겨운 가족놀이에 불과한 그런 짓이란 말이야. 그냥 신경끄고 진짜 가족을 더 신경쓰라고. 그 미친년은 우릴 죽이려고 들었어. 걔가 울던 머리가 잘리던 우리로써는 기뻐해야할 일이야. 축제라도 열어야 할 판이지. 그러니까 잊자. 엘리니. 잊어버리자고. 나도 그 미친년은 지긋지긋해. 연방수사국에 보호 요청을 해놓을테니까."


카틴은 한숨을 쉬고.


"그냥 그대로 있어줘. 엘리니 프라드."


그 때 자스민은 휘청이며 마운티아의 뒷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목적지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끈 곳은 한 지하실이었어요.


자스민은 문을 열었고. 따스한 주황색 조명과 싸구려 초록색 벽지로 마감되어 있는 그 곳에는 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죠. 그 사람이 말했어요. '일찍도 돌아오는구나. 자스민. 상으로 내 펜케이크를 먹어줘야겠어.'


식탁에 있던 검붉은 드레스를 입은 한 사람은 식탁에 뻗어 있었어요. 그 사람이 말했죠. '먹지마. 변함없이 끔찍한 맛이야.'


'사랑하는 딸의 애정이 듬뿍 담긴 칭찬이구나. 우리 자스민, 얼굴 좀 볼까?' 그 사람은 뒤를 돌아봐 자스민을 바라봐요. 자스민은 그 사람을 볼 수 없어요. 너무해라.


'꽤 힘든 일을 한 것 같은데.' 식탁에 뻗은 언니도 자신을 바라봐요. 하지만 자스민은 역시 그 사람을 볼 수 없어요. 괴로워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죠. '괜찮니?'


그럴 때마다 자스민은 이렇게 말해요. "괜찮아요."


"저는..."


자스민은 먼지 쌓인 소파에 앉아 찢겨진 벽지, 부숴저버린 전구를 바라봐요. 달빛만이 황폐화된 이곳을 비춰주고 있었죠.


자스민은 목이 매었고, 공기 때문이라고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어요. "저는 괜찮아요."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칼에 먼지 좀 털면 되니까.' 하얀색 투성이인 사람이 말했어요.


'꽃집 차린다는 사람이 다시 칼을 들어도 되는거야?'


'죽이지만 않으면 OK아닐까? 칼등으로 패는거지.'


'그런 미친 짓을 태연하게 말하지마. 아무튼 자스민.'


자신의 언니가 말했어요.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언제든지 도와줄게.'


'사랑하는 딸아. 왜 멋진 대사는 너만 가져가려고 하니?'


'그럼 먼저 말하던가.'


자스민은 그 말들을 듣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뻐서 웃다가, 눈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왜인지 모르게 이런 말들이 나왔어요.


"잊어가는 게 두려워요."


"이 세상에 저만 있다는 게 두려워요."


"당신들을 죽인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며 세상을 살아가는데."


"저만 홀로 남아서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는게."


"힘들어요."


"그러니까 제발 둘 다 여기 가만히 있어줘요, 제발, 제발!"


그렇게 소리쳤을 때 위로 한 마디 없이 사라진 그 두 사람처럼, 그들은 사라져있었죠. 부숴지고 황폐화된 추억의 장소에 억지로 찾아와 앉아있는 자스민같이, 이 장소도 이젠 쓸쓸하고 괴로운 곳으로 바뀌었어요.


그렇기에 자스민은 멈출 수 없었어요.


다음 날, 이샤라이나 대사관까지 벌써 걸린 수배령을 피해 들어온 자스민은 곧바로 문책을 받았지만. "거기 암살 대상이 있었고. 저는 부여받은 암살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술만 먹고 여신의 시간을 낭비하던 누구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라고 말했어요.


물론 자스민은 그런 생각이 하나도 없었지만. 오면서 봤던 임무 소개서에 마침 목표가 카리샤와 메르힌과 친구들이라는 걸 보고 여신께서 복수하라고 판을 깔아준 게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 정도였어요. 원래 계획은 마운티아에 도착하자마자 탈주하는 거였는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니!


하지만 그 속셈을 모르는 외교관은 그 말에 문책은 멈출 수 밖에 없었고. 자스민은 계속 말했어요. "그 때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어 제압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만약 그 때 알렌경이 같이 있었으면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샤라이나의 복수는 우리의 적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경고하는거니."


"시내 한복판에서 그런 메시지를 남긴겁니다."


"하지만 헬린 수녀회장. 그 중에는 마운티아 고위 공무원도 있었어. 그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으면 우린 전쟁까지 갈 수 있었단 말이네."


"그들을 제압하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가 아니라 전쟁이란 말이야. 전쟁! 그냥 모험가 한 무리 정도는 감당할만한 외교문제밖에 안 되지만. 상대편의 고위 인사를 죽이는 건 전쟁이란 뜻이네. 그건 누구도 바라지 않아."


"그렇겠죠. 자중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고맙네. 그러니 이제부터 제발 이샤라이나 신성 제국과 마운티아 연방의 전쟁까지는 이어지지 않을만한 선에서 활동을 이어주길 바라네. 헬린경의 활약 자체에는 아주 다들 놀랐어! 한 명으로 그 수많은 미친놈들에 대적하다니. 그들도 똑바로 알걸세. 우리를 건들면 아주 위험하다는 걸! 두려움에 떨고 있겠지!"


그 때 메르힌과 친구들은 두려움에 떨며 다 같이 극장에서 '이샤라이나 VS 마운티아 ~마운티아 독립편~' 을 보고 있었어요. 마운티아의 군인들이 이샤라이나에게 쓰리-스핀-킥을 먹여서 여신이 와르르 무너지는 장면이었죠.


자스민이 말했어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분명 그럴거야. 아무튼 이제 정식으로 소개해주지. 수백년간의 품위를 자랑하며 테데라 데 솔의 보호자인 알렌경일세! "


외교관은 문을 향해 소개용 포즈를 했는데 아무도 안 나와서 좀 뻘줌하다가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렸어요.


"브웨에에에에엑."


"미안하네. 어제 알렌경이 샹파뉴만 10병 넘게 비워서. 그 덕분에 춤 실력이 대단했지."


"그래도 되는겁니까?"


"포교 활동이였네."


자스민은 고민하다가 말했어요.


"그래도 되는겁니까?"


"선교가 성경책 외우는 것밖에 없는건 아니네. 그리고 에어조라 교단에 비해서 우리는 건전하게 노는거야. 거기는 말로 할 수 없는 일만 잔뜩하네."


"뭡니까?"


"나도 몰라서 말을 할 수 없다네. 그런데 뭔가 하긴 하겠지."


"아아. 죄송죄송요~ 알렌! 여기 있습니다!" 반짝하는 포즈를 취하고 문을 열고 등장한 알렌씨였죠.


"광대를 고용하셨군요. 그래서 알렌씨는 언제쯤 나옵니까?"


"알렌경! 숙취는 좀 괜찮나?"


"완전 OKOK!"


"인사하게! 여기가 엘리스 헬린경."


"아아! 어제 봤어요. 자스민님~ 만나서 반가워요~"


"자스민은 뭔가?"


"애칭이라고 하더라고요! 완전완전 귀엽지 않아요!?"


"완전완전 귀엽구만."


자스민은 오랜 고민끝에 말했어요.


"다들 좀 닥치세요."


그들이 인사를 하는 동안 메르힌과 친구들은 뮤지컬의 끝부분을 보고 있었어요. 정부 지원 뮤지컬이었죠.


카이디가 말했어요. "우리 카틴씨는 작품 보는 눈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인간을 초월했지.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해를 못하는걸지도 몰라."


무대에서 주연 배우가 말했어요. "이 사악한 이샤라이나 정교회를 박살내겠어! 메테오!"


카드레가 말했어요. "그래도 저건 진짜 메테오같아서 두근거림다."


아르크가 말했어요. "그야 진짜 메테오거든. 이 연극의 묘미는 정부가 자금뿐만 아니라 법까지 지원해줬다는거야."


이샤라이나 교황 배우가 말했어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연기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비명이었죠. 진짜 메테오가 무대를 아작내고 있었으니까요. 어린이들의 함성이 귓가를 아작낼듯 울려퍼졌어요.


"음하하하하." 주연 배우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박살나버린 무대와 불을 끄려고 나온 이샤라이나 졸병들을 바라보며 웃었어요. "내 이름은 마르신! 흑마도사 협회의 아버지!"


카이디가 말했어요. "아버지라는 걸 저 때 알고 있었을까?"


"자기가 낳을 게 폭탄에 미친 싸이코패스들과 마나 신경망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서 포르노를 전국에 배포하려는 싸이코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 자기 이론을 자기 손으로 찢었겠지."


"아르크씨! 카이디씨! 좀 닥쳐요! 애들보는 뮤지컬에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애들이 지금 짜디짠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아르크가 말했어요. "카틴한테 뭐라고 해! 엘리니, 아닌가? 카리샤? 왜 이름을 두 개나 가져서 나를 햇갈리게 만든거야? 아무튼 걔랑 잠시 떠들어야하니까 우리보고 이거나 보고 있으라고 한거잖아! 난 이런 거 보고 싶지 않아. 이야기 구조가 뻔하다고!"


"뻔한 이유가 있죠! 아르크씨 같은 싸이코패스가 아니라면 보편적으로 좋아할만한 이야기니까!"


"거짓말 투성이구만! 메르힌. 우리는 손쉬운 거짓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그걸 굳이 가상 매체에서도 봐야겠어요!? 봐요! 저 주연 배우분이 저희 눈치를 살펴보고 계시다고요!"


주연 배우가 뒷정리하는 병사들을 보다가 살짝 관객석을 바라보곤. "이건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음하하하하!"


하르델린은 라이트봉을 들곤. "꺄아아아~ 멋져요~ 마르신 오빠~"


아르크가 말했어요. "하르델린마저!"


"저는 이거 펜이라고요! 어릴 적에 엄청 즐겨봤어요. 부모님이 대려다봐주신 몇 안되는 대중매체였거든요!"


"세상이 말세야. 이딴 것만 보여줬다는 아동 학대부터 마르신이 쫄쫄이복을 입었다는 가짜 뉴스까지. 거짓말한다는 걸 자랑한다고." 아르크가 말했어요.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꿔야해."


카이디가 말했어요. "굳이 바꿔야해?"


"물론이지. 어... 그냥 바꾸면 좋잖아? 그런 의미에서 방패 좀 새거 사주면 안될까?"


"예전건 어쩄어요?"


"그 저택에서 잃어버렸잖아."


"돈이 없어요, 사지가 잘렸어요? 두 개다 해당하면 사드릴게요."


"거봐. 나한테만 저런다니까."


무대에서 메테오 잔해 청소가 끝나자 메테오 추락하는 걸 보고 기절한 교황 배우의 앞에 서서 주연배우가 말했어요. "음하하! 어린이 여러분! 마운티아 흑마도사 협회는 오늘도 승리했다!"


"와아아아!"


"하지만 아직 우리의 앞을 막는 새로운 적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건 바로. 카리샤의 앞을 막는 새로운 인물.


"그러니까 저보고 6개월동안 감금되어 있어달라는 말씀이신가요?"


"많이 요약되긴 했지만. 그래. 맞아. 엘리니."


카틴 프라드씨였죠.


"오라버니. 걱정해주시는 건 알지만 저는 제 기업을 이끌어야해요. 6개월이나 숨어지낼수는 없어요."


"엘리니. 안 돼. 자스민 그 미친년은 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미친 년이라고는 하지마요. 그냥... 그냥 자스민이라고 하세요."


"에어조라 맙소사! 그래. 너가 그렇게 부르라고 하면 불러주긴 해줄게. 자스민. 그 사람은 내가 상대한 범죄자중 두 번째로 위험한 인물이야."


"첫 번째는?"


"왜 자꾸 캐놀라이나 이야기로 흘러가는 걸까? 나는 그 사람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엘리니. 그러니까 만약 내가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면 그냥 다 캐놀라이나 이야기니까 제발 그 사람 관련해서는 묻지 말아줘. 그거 뺴고는 그냥 내가 다 말해줄게! 다! 캐놀라이나 이야기는 하지마!"


카틴은 마운티아 국립 문화예술관의 창문을 열고 소리쳤어요. "캐놀라이나 이야기는 하지마아아아아아아아아!"


"오라버니, 알겠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둬요. 미쳤어요?"


"진짜 미칠 것 같아. 엘리니. 안아줄래? 난 지금 정신이 나가 있어. 고장나있다고. 죽기 싫은데 턱끝까지 칼날이 들어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그런데 어떻게 재정신으로 있겠어?"


"알겠어요. 자." 엘리니는 팔을 벌려줬고 카틴은 꼭 안은 다음에. "진짜 너무 힘들어. 도대체 왜 이렇게 된거지? 그 때 그 새끼들은 우리를 바보같이 만들었어. 무능력한 병신들로 만들었다고. 정말 네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버텼을지 상상도 못하겠네. 이번에도 어떻게든 될거야..."


"그렇죠. 어떻게든 될거에요." 엘리니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성이라는 부분이 계속 뭔갈 물어야 한다고 소리쳐서 카리샤가 대답했어요. "잠깐. 그 때 저는 누구편이었어요?"


카틴이 말했어요. "그야 걔네들편이었지."


"복수는?" 카리샤가 말했어요. "우리끼리 복수는?"


"가끔 다른 편이더라도 협력할 일이 있는거야. 엘리니." 카틴이 말했어요. "그냥... 그냥 안아줘. 그냥 아무말도 하지 말고 날 좀 위로해주면 안 될까? 난 지금 미칠 것 같은데 너마저 나를 좀.... 미치게 만들지마! 제발!"


카틴씨의 최선의 선택지는 엘리니에게 기대는 거였죠. 카리샤는 그런 사람을 자주 상대한 적이 없었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고, 얼마 안 있어 이성이 좀 잠잠해져서 엘리니로 바뀌었어요. 비서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카틴은 숨을 좀 고른 다음 말했죠. "그럼... 엘리니. 근접 경호원이라도 붙여줄테니 그건 거부하지 말아줄래? 네 사업에 영향갈만큼은 아닐거야."


"그 정도면 괜찮아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속해줘."


"뭔가요?"


"말린, 말린. 그 망할 말린 시절의 기억은 돌아보지 말아줘. 이름마저 개명하라고는 안할게. 그냥 그 자스민이랑 그... 그...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이야기는... 잊어줘. 너무 괴로워. 내 커리어가 아작날뻔한 일들이었어. 애써 기억에서 지우려고 해도 안 지워지는 이야기야. 그걸 굳이.... 여동생한테서까지 듣고 싶지 않아. "


엘리니는 잠시 고민했어요. 이 부탁은 엘리니에게도 두려움과 궁금증 사이의 일이었거든요.


엘리니는 카틴을 만난 후로부터 이 고민의 대한 결정을 계속 미뤄왔지만 지금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어요.


무의식은 계속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어요. 이성도 무시하기에는 중요한 일들이 스쳐지나간 것 같다고 말하고 있죠. 지금까지 알아낸 과거는 자신의 과거가 끔찍했고, 그 끔찍한 과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과. 그리고 자신은 사람을 죽였다는 거였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문제에 직면해야해요. 그게 이성이 내린 결론이었어요.


하지만 마음만은 알아서 좋을 게 없다라는 이유로 홀로 반대하고 있었죠. 무의식과 이성이 그런 말도 안 되고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집어치우라고 외치지만, 시선은 비서에게 가요.


비서는 자기를 죽이려고 든 사람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죽였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자신에겐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이 사실을 알아서 좋은 점이 뭐가 있었죠? 잘 때마다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르면서 비서가 자신을 죽이는 일을 상기하는거? 그 때마다 잠에서 매번 깨고, 옆에 있는 비서를 보고 놀라고, 비서에게 예전처럼 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일들? 퍽이나 좋은 일들이네요.


10년 간 숨겨왔어요. 10년간. 지금까지는 그저 비서를 불행한 사고를 당해서 자기가 구해준 최고의 친구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아온 기억은 뭐였죠? 비서가 자기 배를 찌르고 쓰래기장에 갔다 버리던거? 그리고 그걸로 돈을 받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는데. 그 사실을 전부 자르고 나에게 불쌍한 척이나 해서 돈이나 받았다는 그 사실을 깨닫고 좋은 일이 뭐가 있었죠?


지금 카리샤의 마음은 고통스러워요. 고통스럽다고요. 저는 저 사람을 진심으로 믿었는데, 그리고 나는 저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해줬는데. 저 사람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하고 있다는 추측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이 상황에서 진실에 직면하면 버틸 수 있을까요? 내가 정말 내 부모를 죽였다는 사실에 직면하고도 버틸 수 있을까요?


과거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아파요. 그런데 왜 망할 과거에 직면해야하죠?


그 마음의 외침에 무의식과 이성은 고요해지고,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일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는 걸 받아드렸죠. 엘리니가 말해요.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오라버니."


카틴은 행복했어요. 이제 자스민만 제거한다면 이 행복한 일상은 유지될거에요.


그게 엘리니에게도 좋은 일이죠.


"고마워. 엘리니."


카틴은 그 대답을 듣곤 만족하여 연방수사국으로 복귀했어요. 명목상으로는 피해자 조사이었기에 아직 근무 시간이었거든요. 그리고 아직 뮤지컬은 진행되고 있어서 메르힌과 친구들은 나오려면 더 기다려야 했고. 이 라운지는 VIP만 쓸 수 있었는데 카틴이 보호상의 이유로 다 내쫒아서 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비서는 이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 있었죠.


"아가씨."


"말씀하시길. 그대."


비서는 카리샤가 어제 쓰러진 이후부터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예 짐작을 못하고 있었죠. 그래서 말했어요. "혹여 제가 불편하게 해드린게 있을까요."


"불편?" 카리샤가 말했어요. "불편. 불편이요. 없답니다. 그대는 평소랑 비슷하지요."


"혹시 어제 일어난 사건때문에 많이 힘드시다면-"


"힘들지 않아요. 저희는 많은 걸 해쳐왔잖습니까. 그런 일쯤으로 시무룩해지진 않는답니다."


"그럼 왜 아가씨께서는 평소와 다르신건지. 저는 짐작하기 힘드네요."


"아. 평소랑 달라보이나요."


"네."


카리샤는 창문을 바라봤어요. 지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기에 도시는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죠. 카리샤가 말해요. "그대는 제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고 생각하셔서 화가 나신건가요."


"아뇨. 상관 없어요. 거짓말을 아무리 해도."


"그렇다면 왜?"


"거짓말이라는 걸 제가 깨닫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아가씨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어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그렇죠. 말을 하지 않은거지. 그리고 왜 당신이 말을 하지 않았는지도 알 것 같아요."


카리샤가 말했어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저도 그건 알고 있어요. 게다가 10년이나 지난 일이고. 10년 간 당신은 저에게 충실히 대해주셨죠. 저도 알아요. 아는데요."


카리샤는 자기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멈춰요.


내 거짓말은 남을 위한거고, 다른 이의 거짓말은 다른 이만을 위한거였나?


비서도 만약에 그랬다면?


하지만.


"저희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받아드릴 수가 없어요."


"그런 일이 대체-"


"모르는 척 하지마요. 당신. 당신은 돈 때문에 저를 죽이려고 했었잖아요. 아닌가요?"


"아가씨."


비서는 그 다음 말을 찾을 수 없었기에 그 말을 하곤 멈춰서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엘리니는 자기의 드레스를 손을 구겨 잡다가. 고개를 숙이곤.


"오늘은 집에 돌아가시길. 당신. 내일 뵙죠."


"그냥 아무 말도 안 할테니까 적어도 돌아가시는 것까지는 제가 배웅해드리겠습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제게서 멀어져주시겠어요?"


"10년 전 일이잖습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10년 간 한 마디도 안 했다는 게 저를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거에요? 당신은 그러면 안 되는거잖아요! 그러면 안 됐다고요!"


"그러면 안 됐다고요? 지금 우리 꼴을 보세요! 10년이나 지냈는데도 아가씨가 그렇게 반응하시는데. 만약 더 일찍 아셨으면 어떻게 되셨을까요? 저는- 저는 버려졌을거라고요! 그게 무서웠어요!"


"그게 무섭다고 저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제 말이 틀렸나요? 만약 아가씨께서 미리 알고 계셨으면 저를 계속 곁에 두셨겠어요? 대답해보세요. 정말 그랬을것같아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당신."


"저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 어제 그러면 도대체 왜 제 과거에 대해서 그런 태도를 보인거죠? 과거를 일부분만 알면 안 된다면서요? 당신에게는 그 말이 적용되지 않는건가요?"


"그건 아가씨를 위한 말이었어요. 저를 위한 말이 아니었잖습니까."


"그럼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것도 당신을 위한 말이 아니라 저를 위한 말이었겠군요. 맞나요?"


"저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긴 했어요. 그건 부정하지 않을게요. 그렇지만 그건 필요한 일이었다고요!"


"필요한 일이라고요?" 카리샤는 고개를 들어 비서를 바라봤어요.


비서는 카리샤가 울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죠.


카리샤가 말했어요.


"그게 정말 저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나요?"


비서는 그 얼굴을 보다가.


"아가씨. 저는, 저는..."


"정말 지금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저는 지금 당신의 모든 게 거짓말같아요. 저를 10년간 속였다고요. 그런데 속으면 안 된다고 말하던 당신은 도대체 누구셨나요?"


"왜 제가 카틴의 거짓말들을 무시하고 있는 줄 아세요? 그 사람은 당신이랑 닮았어요. 아마 카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죠. 카틴과 당신의 차이점이라면 카틴은 저를 찌른 다음 그 사실을 제가 알아채기전까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진 않았다는 점이겠고!"


비서가 한 발자국 다가가고 말했어요.


"아가씨. 10년 간 잘 지냈잖아요. 저는, 저는 그거면 된 줄 알았어요."


카리샤는 두 번 멀어지고 말했어요. "이제 됐어요." 그 다음 뒤를 돌곤, 홀로 나가죠.


그래서 비서만 남았어요. 큰 VIP 라운지에 홀로.


발자국 소리만 이 곳에 울려퍼졌다가, 잠시후.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렸어요.


"뮤지컬 완전 재미있었슴다. 특히 2막에 브레스 뿜는 용은 진짜 용인 줄 알았슴다."


"그거 진짜 용이야."


"갑자기 그 장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함다. 카이디넴! 그런 농담은 그만두는검다!"


"그것보다 고증이 개판이었지. 카드레. 왜 흑마도사가 용을 타고 이샤라이나에 대항하는건데? 걔네들은 그럴 수 없어! 용은 보자마자 불태우거나 실험재료로 쓸 정신병자들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실 그 용은 이 세상을 불태우려는 사악한 화신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굳이 이샤라이나와 손을 잡고 용을 때려잡는 건 너무 종족 차별적이지 않았어요?! 아르크씨?"


"당연하지! 마운티아 정부 지원받아서 만든 뮤지컬이야 뻔하니까. 걔네는 모든 이야기의 결론을 용들은 우리와 함께할 수 없고 이샤라이나는 결국 친해져야 한다로 내릴 작가들만 지원대상으로 뽑으니. 심지어 야설을 적더라도 마지막에는 용들과 대적한 이샤라이나와 마운티아 남녀를 넣을 미친놈들만 뽑을 놈들이야!"


"좀 닥쳐요! 아르크씨! 저는 존나 재미있게 봤어요! 정석적인 영웅담이잖아요! 그리고 하르델린씨는 팬이었다면서요!"


"과거형이죠! 머리가 크고 보니 좀 그래요."


"하. 허. 호. 후. 여기서 아크라이트 메르힌씨가 딴지를 걸 줄 몰랐네! 메르힌. 거 15살쯤 적던 소설의 주인공은 어둠의 새력의 영웅 암살자 아니었나? 전향한거야?"


"나중에 전향하는 설정이라고요. 잘못을 깨우치고 히어로에게 감화되는거죠."


"메르힌! 보통 자기를 죽이려던 암살자를 용서해주는 경우는 두 개밖에 없어. 암살자를 직접 죽였거나, 아니면 정치적 목적이거나."


"아무튼! 잘 봤으니까 카틴씨랑 카리샤씨, 비서씨한테 인사나 하러 왔는데 왜 창문을 바라보며 창가로 뛰어내릴 것 같은 표정의 비서씨밖에 없는건가요?"


비서가 중얼거렸어요. "제가 죽거나 아니면 카리샤씨가 정치적 목적으로 용서해야만 제가 용서받을 수 있는거군요. 죽는 편이 더 낫겠어..."


"아르크씨. 뒤에서 이야기 좀 할까요? 제가 척추 뼈를 다시 맞춰드려야 할 것 같은데." 메르힌이 스태프로 아르크의 옷깃을 질질 끌고가며 뒤로 갔어요. "아아악! 친구들! 살려줘! 동료가 위험에 빠졌어!"


"아. 여러분들은 비서씨랑 이야기 하고 계세요~"


카이디가 말했어요. "알겠어."


카드레가 말했어요. "넴. 알겠슴다."


하르델린이 말했어요. "완전 OK에요!"


아르크가 말했어요. "동료를 팔아 버릴 새끼가 한 놈도 아니라 한 다스구나! 한 다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묵직한 소리를 배경으로 카이디가 말했어요. "비서씨. 그 실례인 건 알지만 안 물어보면 문제를 해결할 가망이 없으니까 물어볼게. 카리샤랑 카틴은?"


"으아아아악! 아아악! 내 연골! 내 연골!!!!"


"카틴님은 근무를 가셨고, 카리샤님은 집으로 퇴근하셨습니다. 저도 퇴근할까 고민중이고요."


"그래? 별일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혹시 퇴근이..."


"내 다리가 360도로 꺾였어!!!!"


"인생에서의 퇴근은 아니지? 여기 꽤 높아."


"글쎄요. 어떨 것 같습니까?"


"어우. 어. 난 농담으로 한 말이었으니까 진지하겐 듣지 말고."


"메르힌이 내 척추를 뽑고 들고 있어!!! 이건 농담이 아니야!!!!"


카이디가 말했어요. "메르힌!"


메르힌이 그로테스크한 소리를 몇 번 뿜고는. "아. 죄송해요. 카이디씨. 오래간만에 하는거라... 곧 끝나요."


"오래해도 상관은 없는데, 대화를 끊기지만 않게 해줘."


"물론이죠."


"안돼. 메르힌. 나한테 그거 물게 하지마으읍-" 소리가 묵음처리가 되었어요!


"도대체 메르힌씨는 뭐하는건지 궁금할때가 있슴다."


하르델린이 말했어요. "세상에 모르는 편이 나은 것들이 몇개 있다고 생각해요~"


비서가 말했어요. "저도 몇분 전까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게 비서씨의 문제겠구만. 말해봐."


"뭐. 말씀드리지 못할 건 없죠. 어차피 이젠 아셔도 상관 없으니까."


카이디와 친구 둘은 비서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앉았고. 비서는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술을 한잔 주문했어요. 이야기하다가 괴로우면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하지만 술잔은 없고 찻잔은 있다길래. 그래서 그냥 찻잔에 담아 달라 했어요. 알콜이 든 찻잔을 받고서야 이야기를 시작했죠.


비서는 여명의 시대의 보편적인 가난한 노동자 출신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요.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처럼 딱히 성도 없었고. 이름도 퍼티였어요. 퍼스트에서 스를 뺴고 여성형이라서 티로 바꾼거에요. 왜 퍼스트냐면 첫째였거든요. 세드랑 서드가 동생들이었죠.


비서의 어린시절은 마을 바깥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잘 없어서 주소지를 대면 대충 누군지 구별이 었기에 그런 이름이더라도 상관이 없었지만. 좀 크고 나니 마운티아 정부는 마침내 모든 이들에게 교육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그 성을 만들어 주기로 함으로써 문제가 생겼어요.


퍼티 세드 서드가 마운티아 내에 수천만명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대충이라도 분리해줘야만 했어요. 반 선생님이 '거기 퍼티!' 라고 했는데 모든 반 학생들이 '네! 선생님!' 하고 손을 드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요.


여기서 정부 공무원들의 고민이 하나 더 생겼는데 : '좋아. 성을 만들자고. 그런데 마운티아 통계상 퍼티라는 사람이 적어도 수백만에서 수천만은 될텐데. 전통적인 귀족들처럼 성을 뒤에 넣으면. 봐봐. 이렇게 될 거라고.'


'거기! 퍼티... 라고 선생님이 말하면 모든 학생들이 신경써야할거야! 이건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이름마저 바꾸라고 하기는 행정 비용이 과다 청구될테니. 그냥 성을 앞에 넣어버리는건 어때! 그럼 하우스양! 이라고 하면 하우스 성가진 애만 신경쓰면 되는거야. 그리고 모든 성을 앞에 넣는걸로 바꾸면 통일도 되고 좋네!'


뭐. 나름 멋진 생각이었는데 함정이 있었어요. 마운티아 가문이 모범을 보인다면서 비싼 돈 들여 하르델린 마운티아같이 이름이 새겨진 명함, 명패, 간판, 홍보물, 뭐. 기타등등을 마운티아 하르델린처럼 갈아버렸는데. 왕정 회원국들은 안 하겠다고 버텼죠. 이런 논리였어요.


'우리 이름 새겨진 금판, 인장, 등등 다 바꿀 비용을 내주거나. 혹은 해당 법의 예외를 추가하거나, 둘 다 싫으면 우린 연방을 탈퇴하겠음.'


마운티아 연방 정부는 그 땐 이미 학교 짓는 비용으로 돈을 다 썼기에 보상해줄 순 없었고. 연방이 시작하자마자 겨우 성부르는 순서 때문에 회원국의 절반이 날아가는 것도 원치 않아 기본적으로는 성을 앞에 쓰되, '단, 법률 재정일까지 뒤에서 시작하는 성을 50년간 유지했다면 이 규칙의 예외로 한다.' 라는 이름 부를 때마다 더럽게 햇갈리는, 비극의 시작을 여는 예외조항을 추가했죠. 마운티아 마샤는 마운티아가 성인데, 자스민 말린은 말린이 성이라는 비극이요.


아무튼. 그래서 윈터하우스 퍼티양이 되었습니다. 성이 윈터하우스인 이유는, 퍼티양의 고향은 마운티아 북부에 있었고, 거긴 추운데 나무는 구하기 힘들었어요. 게다가 집은 가난해서 남을 도울만한 형편도 아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 그래도 힘들 광산일을 마치고 한 일이 설산을 순찰하고 조난자가 있으면 집에 초대해서 보살펴준 다음 돌려보냈거였어요.


덕분에 없는 형편이 더 없었고, 그들이 구한 사람들도 비공정을 못타 도보로 이동해야하는 비참한 사람들이었기에 사례도 변변치 않아서 언젠간 퍼티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어요. "덕분에 오늘도 보리 씼은 물로 하루를 보내야하잖아. 왜 그러는거야? 우리도 살기 힘든데 매번 손해만 보고 있어."


"좀 식량 가격이 괜찮은 여름이나 가을이나, 다른 계절이면 몰라. 겨울은 우리도 살기 힘들잖아. 엄마. 아빠. 그러니까 그만 대려오면 안될까?"


아버지가 말했어요. "퍼티. 나는 네가 풍족하지 않을 때도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우리가 살기도 바쁘잖아. 좀 넉넉할 때 도와주면 안 돼?"


"그렇지. 하지만 요구조자의 대부분이 넉넉하지 않을때도 겨울이란다. 우린 우리 집이 겨울에도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는 고민하다 어머니를 살짝 바라봤고. 그 분은 눈을 마주친 다음 살짝 웃어주고, 이어서 말했어요.


"비가 안 내릴 때 우산을 씌워주다는 사람이 비 맞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런 사람들을 왜 도와야 하는건데?"


"언젠간 퍼티. 너가 비를 맞을 때가 있을거란다." 어머니가 말했어요. "그 때 누군가가 우산을 씌워준다면, 그 누군가는 빛나보일거야. 그리고 그 빛은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빛날거고."


"엄마도 퍼티, 너처럼 생각한 적이 있어. 하지만 언젠간 너도 빛나는 누군가를 본다면, 그 사람의 곁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거란다. 그리고 그 사람처럼. 누군가의 빛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거고. 너에게도 그 때가 오면 좋겠네."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고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미소지었고. 아버지는 눈을 피했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솔직히... 괴로워. 괴롭다고. 나는 지금 좋은 거 먹고 싶고, 그런데.."


그 말에는 두 분다 조용해 진 다음, 쓸쓸하게 미소만을 짓고. "미안하구나." 아버지가 말했어요.


부모님은 이 대화로 '추운 겨울에도 다른 이들을 돕는 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고. 그 바램은 정부 공무원이 성을 써달라고 찾아왔을 때 '윈터하우스' 라고 적으므로써 좀 더 구체화되었어요. 자신들과, 자신의 자녀들도 그렇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퍼티는 이 대화로 가난을 혐오하게 되었어요. 자신에게 3개월째 형편없는 식사만 하다 결국 이딴 말을 내뱉게 만든 가난을. 부모님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든 가난을. 그렇기에 퍼티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럼 돈을 많이 벌태고. 그러면 이런 비참함따윈 겪지 않아도 될테니.


그런 퍼티양에게 학교는 기회로 보였어요.


당시 마운티아는 당장 모든 동네에 학교를 지을 돈이 없었기에, 주요 도시에만 학교를 만든 다음. 전쟁때 마구만든 수송용 비공정으로 동내마다 학생들을 끌고 오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퍼티가 배정받은 학교는 수도 마운티아였죠.


그 곳에는 엄청 많은 학생들이 있었고, 그게 비서씨는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어요. 비서는 그 때 불법적인 일을 하는 친구랑 친해졌거든요.


"전쟁이 개판으로 끝나서 무기는 넘치고, 어른들은 일자리도 없고, 우리들은 용돈은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돈을 벌수 있는 일은?"


"범죄. 제 친구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이건 기회라고요."


비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늘 일주일에 3, 4마운티아 골드만 받던 애가 한번에 100마운티아 골드를 벌 수 있다고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아시나요?"


비서는 처음에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했어요. 물건 전달이야 죄책감같은 것도 없었고. 가정에도 좀 기여하는 것 같았죠. 부모님이 어디서 돈이 났냐고 하면. "장학금이야." 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말하자 부모님이 퍼티를 자랑스럽게 보더군요.


돈은 쉽게 사라지고, 그래서 퍼티는 새로운 일이 필요했고. 그리고 학교가 있는 수도 마운티아는 일은 넘쳐났죠.


왜냐하면 정부는 당장 모든 능력을 대다수를 차지하는 계층부터 먹여 살려야 마운티아 연방이 무너지지 않을거라는 위기의식으로 취약계층 중 사람들이 쏴죽이면 뭐라하는 건 무시하고. 사람들이 쏴죽여도 뭐라안하는 건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 쏴죽였죠. 전자는 블라드라고, 후자는 권외종족들이었어요.


그렇기에 전쟁 도중 마운티아 정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은퇴한 수많은 블라드라 군인들은 연금도 돈 없다고 못 받고 시위했더니 총칼로 밀어버렸기에 그들이 살아남기위해 피를 구하려면. 뒷골목에서 주사기 들고 목에 꼽아버리는 게 가장 쉬웠어요. 그게 첫 범죄죠.


그 쉬운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피를 구해서 사람답게 살려고 보면 수배가 걸려있었으며, 마운티아는 엄벌주의를 택했기에 사회 복귀에 대한 가망은 없었고. 그래서 그냥 전쟁때 주특기를 살려보기로 했어요. 전투죠! 이번에는 시민을 대상으로요.


그렇게 최고의 군인이 최고의 범죄자가 되고. 정부는 그들에 맞서 경찰들에게 총기와 일부 흑마도사를 배치하고. 그렇게 도시는 모두의 지옥이 되어갔어요. 그리고 그 지옥에는 일이 넘쳐났죠.


퍼티는 그런 도시에서 교육받았어요. 악의는 아니고, 정부청사랑 가까우니까 관리하기 편할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도 훌륭한 학생들이 많이 나왔지만. 보통 문제는 많이 나오는 쪽이 아니라 적게 나오는 쪽에서 발생하잖아요.


그 범죄자들은 슬슬 돈이 굴려지고 경찰들이 단속을 시작하자 단속을 피할 손들이 더 필요했고, 그래서 학생들을 끌어들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똑똑하고, 의심도 덜 발는데다가 비서나 다른 친구들처럼 가난한 집안에서도 많이 왔으니 돈이 필요한 친구들도 많았죠.


해가 갈 수록 점점 더 과감한 일을 시켰어요. 퍼티에게 언제 폭탄을 하나 쥐어주곤 빈건물에 집어던지라는 일도 시켰는데, 돈이 꽤 됐어요. 퍼티는 그 돈도 가족들에게 줬고. 덕분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윈터하우스 퍼티를 자랑스럽게 여겼어요. 장학금을 이렇게 많이 타오다니. 정말 혼자서도 공부를 잘하나보구나. 네가 자랑스럽고 미안하다.


퍼티는 그제서야 그 시선에 중독되었다는 걸 깨달았죠.


아무튼. 장학금이라고 거짓말을 했으니까 실제로 성적도 잘 받아야 했었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방과후에는 폭탄을 던지고, 방과중에는 펜대를 굴렸죠.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는데요.


범죄자들도 똑똑한 사람을 좋아했기에 비서에게는 더 돈 되고 위험한 일이 갔고, 곧 학교에 들어갈 세티는 자랑스러운 누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리 배워보겠다면서 몰래 방과후에 뒤를 쫒았다는거였죠.


"그 날은 마정석 가공 공장이었어요. 그 사람들은 제게 어떤 종류의 일인지도 설명해줬죠. 인체 마나망을 통해서 일부 신경계를 마취시키는 의약품을 만드는데. 그게 자기내들 사업과 곂친다는 이유였어요. 그걸 박살내고 싶은데, 혹시 마법 아냐고 묻거군요."


"고등학교 교과 과목중에 마법도 있다는거 아세요? 더럽게 지루해요. 특히 몇번 마나가 신체에 어느 마나망을 자극해서 어떤 출력을 뱉는지 외워야 한다는거. 선생님들이 거기서 문제를 많이 냈죠. 다들 안 외워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저는 그 과목 만점 받았어요. 그래서 얼마하냐고 물었죠."


"범죄자들은 이 일에 돈을 많이 걸었고. 저는 그 때 아버지랑 어머니한테 새 비공정 하나를 사드리고 싶더군요."


"그래서 그들에게 전문가 흉내를 내며 그 약이 어떻게 작용하고, 그래서 파괴할 때 어떤 점을 조심해야하는지 설명했죠. 비말 형태로 구강으로 들이키면 폐와 기관지에 있는 필터로 걸려 적당한 마취 효과만 일어나지만. 용액이 눈에 들어가면 과다흡수 되고, 신경계가 맛이 간다고요. 그들은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맡긴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학교가 끝난 후 보안경을 끼고 그 공장에 갔어요. 그 용액 만드는 기계만 아작내면 됐기에 늘 하던데로 숨어들어간 후, 거대한 욕조에 붙어있는 기계를 손보고 있었죠."


"그러다 소음이 들렸어요. 쥐새끼를 잡아왔다는 말이었죠. 보통 그러면 경계가 강화되니 나가기 더 까다로워져서 대책이 필요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이걸 스프링쿨러랑 연동해서 뿌려버리면 다들 놀라 달아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성인은 적어도 3분이상 노출되야 심각한 장애가 오니까."


"전 못된 장난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도 생각하진 않았죠. 그냥 제 자신이 영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질렀고, 제 생각대로 효과적이었어요. 다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꼴이 얼마나 귀엽던지."


"전 욕심이 더 나서, 뿌옇고, 사람 없는 건물 안에서 부가 수입을 더 챙기려고 뒤젹였어요. 술도 한 잔 마시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약에 취했나봐요. 모든 곳이 분말형 약 투성이었으니까."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슬슬 나가려고 비틀거리며 나가다 발에 걸리는 게 있어서, 화가 나서 발로 찬 다음 모습을 봤는데."


"세드. 제 동생이었어요."


비서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기다리다가 말했어요.


"사람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는 게 비유적인 의미가 아닌 거 아세요?"


그 이후 비서는 동생을 안고 도시를 돌아다녔어요. 백마도사 협회에 가봤지만, 담당 백마도사는 약물이 신경계에 너무 많이 침투했고, 백마도사들은 주로 외상환자를 담당하기에 치유사에게 가보라는 말을 들었죠.


치유사들은 다행히도 이런 환자들을 꽤 많이 취급했기에 잘 하면 살릴 수 있다고 했어요. 대신.


"12만 2천 마운티아 골드. 그 때 아버지가 일년에 1만 마운티아 골드를 간신히 버셨어요. 제가 일년 간 번 것도 4만 마운티아 골드정도고."


"그래도 가망없는 돈은 아니었죠. 그게 가장 미치게 하는 요소였어요. 처음에는 후불로 갚아가면 안되냐고 말했는데. 마약쟁이들 돈 안 갚는 건 한 두번 보냐면서 거절하더군요. 그리고 해독용 마정석은 몇개 없으니 7일 안에 구해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간다고 했어요. 어차피 동생도 이 상태면 10일 후면 죽는데, 별 상관 없지 않냐라고 하더군요. "


"제가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어요?"


비서는 다시 그 곳으로 갔지만, 몇 시간만에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어요. 바로 보상금을 주긴 했지만 아주 바빠보였죠. 비서는 돈 될 일이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했죠.


보스는 그 말에 칼을 던져주고. 20만짜리 현상금. 그걸로 찔러. 블라드라 상대하는 방법은 알지? 라고 말했어요.


그 말에 비서는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고.


"그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뭐야. 아. 그 때 없었나? 꼬맹이. 잘 들어. 지금 모두가 한 사람의 죽음을 원해."


"카리샤 말린. 검붉은 드레스입고 네 또래쯤 되는 외모에. 범죄자라 죽여도 감옥 안 갈테니까, 그 년을 죽여. 더 묻지 말고. 시간 없어."


"그 이후로 전 7일동안 수도 마운티아 모든 곳을 찾았어요. 경찰들 눈이 닿는 곳은 다 피하면서요. 범죄자가 쓰는 길은 비슷해서 그럼 만날 줄 알았거든요."


"비공정 수십대가 도시 상공을 덮어서 건물을 박살내고, 도시에는 총격전과 난투극이 벌어지고, 연방수사청이 불타고.. 그게 7일동안 일어났어요. 하지만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올 법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 걸 신경쓸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마지막 날이었어요. 저는 죽고 싶었죠. 울면서 길을 돌아다녔는데 다행히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건 보이지 않았어요."


"저랑 비슷한 사람이 앞에 있더군요."


검붉은 드레스와 하얀색 피부에는 다른 사람의 피가 묻어 있고.


고고했었을 것 같은 눈은 회의감에 찌들어 목적을 잃었으며.


본래라면 칼이나 권총이 꽂혀 있었을 멋들어진 홀스터는 비어있던.


"카리샤 말린은 앞을 보지 않고. 비틀거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누가 나를 잡아줘.


누가 나를 구해줘.


누가 나를 찾아줘.


누가, 누가 나를...


그리고 손을 뻗고 앞을 봤을 때. 칼을 들고 그걸 바라보고 있던 비서가 서있었고. 카리샤 말린은 그 때. "죽이려고?" 라고 말했어요.


애타게 찾던 만남이 죽음이라니. 스스로도 비웃었겠죠. 도움을 청해봤자 이미 너무 많은 짓을 저지른 자신에게 올 사람은 저런 사람밖에 없다는 게 한심했을거에요.


비서가 말했어요.


"저는... 저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 때는 죽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 때는 그 사람과 저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고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퍼티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리샤의 복부에 칼을 찌르고, 시신은 쓰래기장에 한 구석에 숨겨놓은 다음 자신에게 의뢰를 한 그들에게 찾아갔어요.


찾아가려고 했다가 더 정확하겠네요. 그들은 없었고, 그들이 있었던 곳은 전소해서 덧없는 잔해에 빗방울만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지?


약속한 시간까지는 3시간이 남아있어. 3시간 안에 12만 마운티아 골드? 못 구해.


차라리 내가 죽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퍼티는 비를 맞으며 쓰래기장 인근 뒷골목에서 웅크려 앉아 모든 것을 후회했어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위험을 적당히 감수하고 있다며 자만한 것부터 글러먹었었죠.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으면.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더 살기 힘들었더라도 내 손으로 내 동생을 죽이진 않았을텐데.


하지만 이미 끝났어요. 돌이킬 방법은 없어요.


자신에게 앞으로 닥쳐올 이야기는 너무 견디기 힘들고, 무서워요.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하아. 하아아."


숨소리에 앞을 바라보면 복부에 비서가 찌른 칼이 박혀있고, 타인의 피는 씻겨져 나갔고. 자신의 피로 찌든 한 여성이 있었어요. 그 여성은 벽에 기댄체로 말했죠.


"여기서 뭐하고 계신건가요? 비도 내리는데."


그러곤 그 사람은 옆에 차고 있던 우산을 자신에게 씌워줬어요.


퍼티의 눈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그 사람이 빛나보였기에.


퍼티의 눈에는 나와 다르게 이 사람은 빛나고 있었기에.


그리고 이 사람은 - "제 비서가 되어주신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답니다." - 퍼티를 원했지만..


그렇지만.


"싫어. 어차피 3시간 후면 다 끝나는데."


희망은 너무 무서웠어요.


"바로 까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답니다. 크흠.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요. 3시간이나 남은 거잖아요?"


"그 동안 뭘 할 수 있는데?"


"은행정도야 한번 갈 수 있겠죠. 이래뵈도 저는..." 카리샤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있어보이는 자식 같지 않나요? 은행에 그 정도 돈은 있을법하답니다."


"퍽이나." 범죄자가 은행에 돈이 있을리가 없잖아. 그것도 실명으로. 비서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 갈거에요?"


"... 그래. 가보기는 하자. 돈이 있으면... 그 때 생각하고."


"정 안되면 털어버리고요."


"미쳤어?"


"아. 그 때 쓰게 제 배에 꽂힌 이 칼 좀 뽑아주시겠습니까?"


"아직 네 부하 아닌데."


"인도주의적으로."


"..."


비서는 은행에 가면서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조금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미 7일간 살릴 수 있는 희망은 모두 갉아먹혔다가, 몇 시간 전 다시 살아났고, 몇 시간 전에 다시 끔찍하게 죽었어요. 사람을 죽였는데 얻은 건 없었고. 죽은 사람의 옆을 따라가며 죽은 사람 은행 계좌, 그것도 범죄자인 사람의 은행계좌를 까보는거에요. 까봤을 때 돈이 없을 떄의 플랜 B : 두 명에서 은행을 터는거요? 참 감망있는 계획이네요.


퍽이나 희망차겠어요.


은행원이 말했어요. "34분 전에 20만 마운티아 골드가 입금되셨네요. 카리샤 말린님. 크흠. 저같은 평사원보다는 지점장님을 만나보시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12만 2천 마운티아 골드 출금 부탁드리지요. 현금으로."


"네? 하지만 저희 은행의 펀드나 상품에 가입하시면..."


"당장."


"네... 힝..."


비서는 머리가 멈췄어요. 그건 동생에게 마정석 하나만 가져다대니까 멀쩡하게 일어나서 뛰어다닐 때쯤 끝났죠. 카리샤가 동생을 쓰담다가 말했거든요.


"그래서?"


"응? 아. 네?"


"계약금은 드린거랍니다. 당신. 이제 대답하시길."


"전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아. 왜 제 배에 꽂혀있는 칼에 애칭을 부쳤는지요? 복날이라는 애칭의 유래는 복부를 찢은 날이라는 것과 함께..."


"그건 이상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비서가 말했어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저흰 오늘 처음봤고, 저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12만 마운티아 골드를 줬잖아요. 그... 굉장히 실례라서 말하기 어려운 의문만 드네요."


"괜찮답니다. 말씀하시길."


"혹시 미쳤어요? 죄송해요. 그냥... 그냥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왜 저한테 이러시는거죠? 무슨... 무슨 작전같은건가요?"


카리샤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냥 호의라는 말로는 부족한가요?"


"그게 지금 말-" 비서가 말하다가. "호의요?"


"네. 비오는 길가에서 홀로 죽어가고 있는 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답니다. 이상한가요?. 불편하시다면 나중에 천천히 갚으셔도 된답니다."


카리샤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아. 명함이 여기 있었- 뭐야. 이상한 전단지군요. 하아. 나름대로 재력가인 것 같은데 왜 쓰래기장에서 일어난거지? 혹시 알고 계시는 거 있으신가요?"


퍼티는 카리샤를 바라봤어요.


퍼티가 여기서 내가 그랬다고 말한다면 저 사람은 실망하고 나를 바라보지 않겠죠. 그럼 된걸지도 몰라요. 이미 돈은 냈고 치료는 했으니까 잊어버리고 이젠 다시 탈선할 생각은 안 하면 되요.


하지만 저 사람은 아무런 조건없이 호의를 배풀었어요.


그런 사람에게 그럴 수 없어요.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까 핑계였네요."


"아가씨에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아가씨는 정말로 매혹적으로 빛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짓말을 했어요."


"저를 위한 거짓말을 했죠."


퍼티는 잘 모르겠다고 하며 카리샤에게 도와주겠다고 했고, 둘은 몇 일을 이유를 찾아다니다 결국 찾을 순 없었어요. 범인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얻은 건 하나 있었어요. 그 둘은 생각보다 마음이 잘맞는다는 점을 찾았으니까.


그 쯤 되니 카리샤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잊어버리고. 한 카페에서 예전부터 꿈이 있던 것 같았다고. 사장님이 될거라고 말했죠.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비서가 되어달라고 했고. 퍼티는 수락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답니다. 그대."


"뭔가요? 카리샤님."


"그대는 아직 제게 이름을 알려주시지 않았다는 게 문제랍니다. 당신은 너무 딱딱해보여서 그대라고 불렀는데. 윈터하우스 씨는 너무 딱딱해보이고요."


비서는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 건 상관없어요. 그리고 전 제 이름이 그리 마음에 들진 않으니까. 그냥... 비서라고 불러주세요."


"그건 너무 막 부르는 게 아닐까 걱정된답니다. 그대."


"아니면 그대로 그대라고 불러주시면 되겠네요."


"그대는 너무... 보편적이잖습니까."


퍼티라는 이름보다는 덜 보편적이라고 생각했죠. 그건 그냥 첫째라는 뜻이니까.


퍼티는 자기 스스로 빛날거라고 이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어요. 너무 깊은 곳까지 떨어져서 그럴 희망을 잃었거든요. 그래서 자기의 마음을 죽이고 표면적으론 차가움을 유지하게 되었죠.


하지만 빛나는 사람을 더 빛나게 도와줄 수는 있을거에요. 그리고 자신의 욕망도 이 사람을 통해서 이뤄낼 수 있을거에요. 지금 모든 걸 들어내면 이 사람은 나를 무서워할거에요- 그러니. 이 사람이 나를 받아드릴 수 있을 때까지는.


그 때까지는.


"제 이름은 비밀이랍니다. 필요할 때 알려드릴테니, 그 때까지는 그대라고 불러주시길. 주로... 저만."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군요. 그대..." 카리샤는 차를 마시곤. "그럼 저는. 흐으음..."


"아가씨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왠지 귀족 영애 같아서 어감이 좋네요. 게다가 제 성도, 카리샤 말린이잖습니까? 말린이 제 성인데 성이 뒤로 오는 걸 보면. 고귀높은 귀족가의 영애였던게 분명해요."


"그런거치고 간간히 나오시는 욕설의 수준은 뒷골목의 깡패에 더 어울리실 듯한데요."


"험난한 삶을 살아온 귀족 영애분이지요. 제 로망이랍니다. 아무튼. 그래주실거죠, 그대?"


비서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어요.


"네. 아가씨.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앞으로도 잘부탁드린답니다. 그대."


"그 때 어떤 기분이었는줄 아세요? 구원받은 것 같았어요. 거짓말이 통했다는 쾌감이랑 이 사람에 대한 죄책감을 자기 멋대로 혼자 갚을 방법이 생겼다는 쾌감에 온 몸이 전율한거죠."


비서는 그 때처럼 찻잔을 만지다, 한 잔 마셨어요.


왠지 모르게 용기가 나더군요.


"잘 부탁드리긴. 무슨... "


"비서씨?" 하르델린이 말했어요.


"안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안 괜찮아서. 여기서 괜찮았으면 스스로에게 환멸감이 들어서 죽었을지도 모르겠어요 - 아니. 안 죽었겠죠. 환멸감이 안 들테니까. 그 점에 환멸감이 드네요."


"괜찮아요. 비서씨! 저희에게 말해줬잖아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에요." 메르힌이 말했어요.


"상냥한 말은 고맙지만 메르힌씨. 이건 저를 위한 거에요. 당신들이라도 저를 불쌍히 바라봐주길 바라는거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네요. 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진 않은데. 저는 이해받고 싶어요. 아가씨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데, 그게 자기를 위한 말이냐라는 질문에 그래서 대답을 못했어요. 저를 위한 말뿐이었으니까!"


"여러분들에게 이걸 모두 말한 것도 내심 이런 기대감을 품고 있는거에요. 아가씨랑 다시 예전 관계로 돌아갈 수 있게 여러분의 동정심을 사서, 여러분들을 부려먹는 걸로. 그런 생각으로,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건 쪽팔려서 이렇게 빌고 있는거에요. 제발 저를..."


메르힌과 친구들은 모두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서 비서를 바라봤지만 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저를..."


다시 기다린 다음. 속이 가라 앉은 걸 느끼고 말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먼저 실례하죠."


카이디가 말했어요. "비서씨는 많이 아픈가봐."


"그래도 걷는 건 무리가 없어요. 살아가는데도."


그 후 나가는 비서에게, 메르힌이 말했어요. "언제든지 의뢰 요청은 환영이에요~"


비서는 그 말을 듣고도 그 손을 잡을 용기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기에 극장을 나섰어요.


마운티아 국립 예술회관 출구의 6시쯤은 이제 완전히 마운티아를 떠나는 태양과, 예술을 즐기고 떠나는 사람이 서로를 걷도록 같은 방향으로 떠나도록 설계되어있고. 지평선 너머 사라지는 태양과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하는 불행한 이들의 관계를 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완전히 시야가 트였거든요.


그런데 그 앞을 제외한 모든 곳은 고층빌딩에 개발업자의 탐욕을 상징하는 2평짜리 주택가가 뺴곡히 둘러 쌓여있는거에요. 비서는 이걸 보고 이 건물의 설계자들은 못 됐다고 생각했어요. 꿈을 충분히 즐기고 내려오면 다시 무미건조한 현실로 스스로 걸어나와야 하는 걸 대놓고 보여주다니.


비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떠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봐요. 그들은 웃고 있었죠. 다른 이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요. 행복해보이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 건물의 설계자는 아마 저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줬겠죠. "비록 비참한 현실로 돌아가더라도 그대, 저 곳에서 얻은 이야기는 그대와 함께하오. 감동적인 이야기야."


비서의 찻잔에 있던, 용기를 만들어주는 액체. 술의 취기가 목끝까지 올라왔어요.


비서는 비틀거리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자기 머리위에는 주연 배우용 비극의 스포트라이트가 켜져있다는 생각을 하며 옆에 생겨난 주황색으로 만들어진 자기 자신과 어깨를 걸고 말해요.


"그럼 나는 저기서 뭘 얻은거지?", "그런 거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네 스스로 꼴을 봐. 성공했잖아!"


"어떤 걸 성공한거지?", "카리샤 말린에게 거짓말 한 걸로 네 인생은 성공했어!"


"아니야! 거짓말 안 했어.", "그래. 그거야. 거짓말 안 했어! 그런 사람은 애초에 기억나지도 않지!"


"그런가? 누구라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거면 됐지."


"아니야.", "넌 누구야?", "오. 이런. 너도 딱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사악한 이성이라는 친구야. 퍼티. 너를 괴롭히는 친구지."


"맞아. 하지만 그건-", "시끄러워.", "내가 저 친구를 죽이는 확실한 방법을 아는데 말이야..."


비서는 그런 쉬운 방법이 있다는 데에 놀라 주황색 친구를 바라봤어요. 그 친구는 미소를 짓곤 비서의 몸을 조종했죠.


익숙하지만 낯선 뒷골목을 뒤적이다가 그럴 듯한 간판을 한 곳에 들어가면 언제든지 무뚝뚝하지만 친한 척 해주는 사람과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가득해요. 이성이라는 친구를 잠시 자기 머리에서 해고시킨다음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사람들이요.


비서는 한 잔. 그리고 두 잔. 그리고 세 잔! 야호! 세 잔째쯤 바텐더가 물어봤어요! "힘든 일 있으셨습니까?"


"있었다고 말해. 그리고 망할 여기서 나가. 지금 뭐 하는거야?", "그래. 나도 동의할게.", "있었는데...요! "


"어차피 그런 사람한테 바탠더가 줄 게 뻔하거든.", "그럼 아가씨. 30년이나 아가씨를 기다리게 한 사람을 만나보시겠습니까?"


"만나지마.", "만나.", "누구에용?"


"쥬니 워터 블루. 어떠십니까?"


"저를 30년이나 기다려준거에요?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죠. 한 잔에 30 마운티아 골드만 지불하시면 만나실 수 있는데요."


"겨우 그 정도로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야죠."


연한 갈색에 예쁜 유리잔에 담긴 술이 비서의 앞에 놓였고. 그 잔은 술집의 푸른색과 주황색이 섞인 빛을 블랜딩되며 비서를 난반사시켰죠. 그래서.


비서의 옆에서 성가신 파란색 비서 친구가 말했어요. "안돼. 비서."


비서의 옆에서 따스한 주황색 비서 친구가 말했어요. "마셔. 퍼티."


"다 잊어버릴거야? 비서."


"다 잊어버릴 수 있어. 퍼티."


"아직 돌이킬 수 있어. 집에 돌아가서 한숨자고 일어나."


"아냐. 너는 어쩔 수 없었잖아. 그러니 오늘은 쉬자. 버려졌는데 너가 더 뭘 어쩔 수 있겠어?"


비서가 말했어요.


"나는 어쩔 수 없었어."


윈터하우스가 말했어요.


"그러니까 이럴 수 밖에 없는거야."


타들어가는 목구멍의 느낌은 죄책감일지도 모르죠. 이성이라는 친구가 산산조각나면서 내뿜는 절규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조금 있으면 따스한 친구가 와서 위로해줘요. "그래. 어쩔 수가 없었지? 힘들었겠네." 그리고 세상을 돌아보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해보이죠.


옆에도, 다른 옆에도. 모두 다 취했어요. 조금씩 비틀거리며 서로가 서로의 위안이 되어주죠. 이 고독한 문제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믿음을 공유해요. 이 곳에서는 멀쩡한 척을 하는 사람이 적이에요. 그리고 옆에서는 따스한 손길이 어루만져줘요. "그래~ 어쩔 수가 없었어."


"잔이 비었는데요. 아가씨." 바텐더가 말했어요. "한잔 더!" 다시 액체는 가득찼는데, 이번에는 따스한 주황빛으로 가득차요. 마셔도 아프지가 않아요. 오히려 아픈 게 사라졌어요. 날아갈 것만 같은, 아니. 사실 조금 좀 떠있는 것 같아요.


이게 정말 떠 있는 것보다 기분이 더 좋네요. 아아. 아가씨는 이 때 뭐하고 계실까? "그런 사람 생각하지마. 봐봐. 마운티아는 어두워."


"어차피 너는 그 사람에게 안 보일거라고. 그러니. 자. 한 잔 더 주세요! 아저씨!"


"바텐더입니다."


비서는 조금 더 비행 능력을 가지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아아.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아요. 모두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나를 지탱해주는 것 같아요. 옆 사람에게 기대면 정말 편해요.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춰요. 행복해라. 왜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한거지? 바보였나봐요. 행복은 곁에 있었는데.


아아. 날아가요. 수도 마운티아 저 너머에 있는 것 같아요. 하늘에서 보면 그 사람이 보이겠죠. 저기 비공정을 볼까요? 바보같이 라운지에서 홀로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겠죠. 서류를 보다가. "저기 비서, 작년도 회계-" 이라고 말하다가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죠. 나는 잘 해보려고 노력했다고, 너가 걷어찬거야! 이 나쁜 새끼! 죽-


아아. 불쌍한 사람. 홀로 잠에 들면 허전한 옆자리가 눈에 띌까요? 잠을 자다가 요즘 들어 자주 꾸는 악몽에서 벗어날 때 이제 혼자겠죠. 이제 내가 없으니까. 참 좋으시겠어요. 참 좋겠다~ 아하하~, "아니야." 이런~ 푸른색 친구가 아직 알콜에 완전히 안 녹아버렸네요. 이런. 몸이 점점 추락하는 것 같아요. 이 기분을 더 느끼고 싶은데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어요.


"너는 안타까워 하고 있어."


"애초에 너는 -"


안돼. 안돼! 더 들으면 죽을거야! "한 잔 더 있습니다.", "네." 알콜의 힘은 강력해서, 이성을 깔끔히 녹여버려요.


휴. 살았어요. 다시 몸은 떠오르고 분위기 깨는 이상한 건 지옥으로 가버렸죠. 아아. 어떻게 이 기분을 잠시만 느끼고 싶어 하는걸까요? 모든 문제에서 해방되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이 기분을 왜 포기하려는걸까요? 어떻게 술을 그만 마실 수가 있는거죠?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한 잔 더 있습니다.", "더!"


아하하하. 하하. 우네요. 울어요! 그 사람이 울고 있어요! 왜 울고 있는거지? 인생이 행복에 가득차야할텐데! 그래야 할텐데. 왜냐면....


정말 그러길 원하니까.


하지만 비서가 그렇게 만들 수는 없어요. 아아. 슬픈 비극이여. 이보다 어찌 더 슬플 수 있으리오? 비서도 울어요. 후회와 변명이 메아리처럼 마운티아 모든 곳에서 울려퍼져요.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그러자 모두가 위로해주죠. "그래. 어쩔 수 없었다고."


어쩔 수 없었어! 간판이 달린 술집으로 윈터하우스가 걸어갑니다. 똑바로! 예전부터 애용하던 도피처죠. 힘 들 때마다 이쪽으로 도망쳐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거기서도. "파란색! 파란색 라벨!"


"쥬니 워커 블루 말씀이시죠? 여기 있습니다."


한 잔, 두 잔! 다시 난다! 날아오른다! "있죠! 저는 사람 한 명에게 사기쳐서... 돈을 잔뜩 땄답니다! 그리고 저한테 따지는 게 너무 화나서 막말했어요. 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죠~"


"아아아. 그렇죠~ 어쩔 수 없어요~"


다들 손에 손을 잡고 모두의 문제가 어쩔 수 없어요 도피처로 긴급하게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주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푸른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었죠! 그 사람이 도피처의 문을 박살내며 진입합니다! "다들 멈춰요."


"우릴 무슨 죄로 잡아갈거죠?!" 윈터 하우스가 말했어요.


비서가 말했죠.


"위증죄."


"어떤 걸 위증했는데? 말해봐! 난 거짓말한 적 없어! 있었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고. 정당방위였어!"


"어쩔 수 없었다고? 어쩔 수 없었어? 동생이 죽을 뻔한 것부터 이야기 해볼까? 너가 조금만 주의를 기우렸거나, 애초에 범죄를 시작하지도 않았으면 그럴 일은 없었을거야. 너의 그 역겨운 욕망들만 억제했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거고. 실제로도 마운티아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카리샤 이야기도 해볼까? 너가 조금이라도 그 사람을 걱정했다면."


"너가 여기 있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10년이나 기회를 줬는데 너는 단 한번도-"


"닥쳐! 닥쳐! 닥치라고! 내 머리속에서 나가!!!!!"


바텐더가 말했어요. "윈터하우스! 이 총을 받아!"


"이건?"


"새로운 알콜이야. 칵테일이지!"


"아하! 죽어라!" 방아쇠를 당기자 스크류드라이버에서 수백발의 탄환이 발사되면서 그 경찰관을 완전히 조져버렸어요. 형체도 알아차리지 못할정도로요!


"우리의 영웅이구만! 윈터하우스! 너가 너를 구했어! 저 이성이 너를 목매다는 것부터 구했다고!"


환호성이 들리며 위에서는 폭죽도 터집니다.


"야호! 7일간은 축제다! 축제! 모든 걸 잊고 부어라 마셔보자!"


이겼으니까 이정도는 괜찮잖아요?


하루가 넘어가요. 카리샤는 그 동안 다른 사장과 미팅을 했고. "비서씨는?" 이라는 질문에는 웃으며. "잠시 쉬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죠.


또 하루가 넘어가요. 카리샤는 그 쯤 비서가 없어도 자기 혼자 일을 처리할 수 있겠죠. 어차피 일정같은 건 거의 외우고 다니다가 자기랑 대화하려고 주제로 꺼낸거니까. 근접경호원도 이 때 붙었을거고. 카리샤는 더 높은 곳으로, 더 멀리 떠나가죠.


하루가 넘어가요. 메르힌과 친구들도 일상을 영위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겠죠. 비서도 슬프지 않아요. 축제를 즐기고 있으니까요. 카리샤는 이따금 창문을 보면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냐라는 감정의 따스한 위로의 술을 한잔 더 마셔요.


다 잊어버리고 싶어.


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내가 거짓말을 해서 다른 사람을 속였다는 것도.


애초에 그런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있을거라는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7일이 지난 후 새벽 4시. 윈터하우스는 드디어 술집에서 골아떨어졌고. 바텐더는 이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을 계속 바에 앉히기에는 이번 달 월세가 걱정됐기에 들것으로 옮긴 다음 날틀에 태웠어요. 날틀 기사가 말했죠.


"집이 어디십니까? 손님."


"집이요? 집. 집..."


윈터하우스에게 집은 낯선 곳이었어요. 매번 야간근무 시키는 악덕 사장님 덕분이죠. 자기 방도 사장님 집, 비공정에 있는데. 집. 집이라..


고향은 너무 멀어요. 부모님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애초에 알리고 싶지도 않아요. 그 분들에게는 잘 나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면 충분해요. 예전부터 그렇게 믿었던 것 처럼요.


그럼 윈터하우스 퍼티씨.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요?


"저. 이제 집 없어요."


"술 많이 취하셨구만. 그냥 돌아갈 곳만 말해요. 아니면 주소지는 있을 거 아니야?"


그런 곳이 있던가? 지갑을 찾아보고 낯선 주소를 찾아내요. 거길 말했고. 날틀은 날기 시작했죠.


밤공기를 맞으며 마운티아 상공을 정말 나는 건 인상깊은 경험이었어요.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인상깊은 경험이 자기 인생에 몇 없었는데요. 특히 날틀과 엮인거라면. 뭐가 있더라?


구름 너머의 달빛이 잠시 비서의 머리를 내리쬐요. 어둠이 잠시간 벗겨지며 이 어둠속에서도 태양을 꿈꾸는 이들에게 태양빛을 잠시간 비춰줬어요. 누군가의 빛을 비춰주는 행성이라. 나도 저런 게 되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언젠간 나에게...


이런 적이 예전에 한 번 있었는데. 그 때 아가씨가 뭐라고 했더라?


앞으로의 10년도 잘 부탁드린답니다. 그대.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의 10년도. 아가씨."


술기운이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발굴된 말이었어요. 그로 인해서 술기운이 빠져버렸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네요.


메르힌과 친구들과 처음 만나고, 아가씨와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서 떠들던 그 날이었죠. 그 때 아가씨가 어떤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지 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억지로 서프라이즈를 맞추느냐 노력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어떤 사람이 자기 부하 직원 생일 서프라이즈한다고 일부로 일을 천천히 해서 일출 시간에 맞추나요?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게다가 그 사람도 거짓말했어요.


"나와 10년이 정말 재미있을거라는 직감으로 나를 대려왔다고? 카리샤!?"


"말도 안되는 개소리하지마! 그냥..."


"그냥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던거잖아..."


퍼티는 자리에서 일어난체 울어요.


"손님. 일어나지마세요! 그러다 죽어요!"


그러던가 말던가, 비서는 하늘에 삿대짓을 하죠.


"친애하는 카리샤씨! 당신도 거짓말쟁이잖아! 안 들켰다고 생각했겠지? 천만에! 다 알고 있었어... 너도 나한테 거짓말한거야. 너가... 너도 거짓말했다고..."


"아. 씨. 지금 날고 있잖아요! 좀 가만히 있어요!"


"카리샤 말린!!!!!"


"아아아악! 추락한다!"


그리고 추락해요. 아아. 이대로 죽으면 좋겠다. 그럼 이제 스스로를 싫어하는 것도 그만둘 수 있겠지.


눈을 뜨면 새벽 5시의 푸른 공기로 가득찬 세상과, 일년에 10번 이상 와본 적이 없는 사랑스러운 자신의 집 앞에 서 있다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래요. 계속 살아야죠. 어쩌겠어요.


이제 감정이라는 친구는 지금까지 위로를 제공해준 대가로 통증을 받아가고 있죠.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그런데 깨지는 것보다도 더 비서의 이목을 끈 건 현관 앞 우체통에 놓여진 한 장의 편지였고. 그 편지 봉투에는 카리샤의 인장이 박혀 있었어요.


심장이 멎을 것 같았죠. 하지만 보낸 날짜는 이 빌어먹을 일이 시작되기 전인, 카틴이라는 사람은 없었고. 아가씨는 7일중 5일만 가벼운 악몽을 꿨고, 자기는 옆에 있었던 행복한 시절인 3달 전쯤 보낸거에요. 봄이네요. 이제 슬슬 여름이죠.


보나마나 월급 명세서겠지. 아니면 이번년도 연봉인상은 없습니다라거나. 기대하면 떨어지는 게 더 클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편지를 챙기고 문을 열었어요.


집은 간단했죠. 깔끔하게 처리된 바닥. 그리고 깔끔하게 처리된 천장. 30평쯤 되는 표준적인 현대식 연립 주택 디자인에 침대 하나 구석에 있고. 그 외 아무것도 없음.


비서는 쓰러져서 자기 전에 씻기로 했고, 샤워보다는 욕조에 몸을 담구고 싶었죠. 술먹고 이러면 골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어디서 들었는데. 지금은 머리가 아파 죽을 것 같고. 그리고 죽으면 적어도 두통을 사라지겠네요. 그거 괜찮네.


아. 망할 편지. 더럽게 신경쓰이니까 들고. 검은색 외투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벗은 다음, 가끔 비서가 아니면 수녀회에 갔을 법한 금욕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들은 것처럼, 그런 비슷한 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걸 대충 뜨거운 물 적당히. 포근할 정도로만 온도를 맞춘 욕조에 담궈서 두통을 완화시켰죠.


하아.


"난 편지 신경 안써."


"정말이야."


머리를 잠시 뜨거운 물에 담구곤.


다시 빼고.


"정말 안 쓰고 있어."


"안 쓰고- 하아아! 망할 카리샤 말린! 도대체 뭘 보냈던거야!"


아직 술 덜 깼는지 그렇게 말하고 인장을 뜯은 다음 내용물을....


보기 전. 눈을 감고. 욕조에 등을 기댄다음, 진정하고. 고개를 하늘로 든 다음. 내용물도 높이 들고 바라봤어요.


'친애하는 그대에게.'


"역시 그냥 안 볼래. 보고 죽으면 어쩌지?"


대답해줄 사람은 없어서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어요. 윈터하우스는 그걸 가만히 듣다가.


"그래. 그래."


"그냥 보자고."


'친애하는 그대에게. 여름 휴가 계획은 잘 잡으셨나요? 그러지 않으셨길 바란답니다. 그대가 제 약속도 까먹을 만큼 야속하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으니까.'


'크흠. 농담이랍니다. 그대. 정말이에요. 다만 그대의 시간이 우연히도 제 휴가날짜와 곂치는 행운이 있다면 그대와 함께 갈 곳을 몰색했답니다. 동부 해안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거대한 바다괴물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거기의 진주라고 부른답니다. 이따금 떠오를 때마다 섬처럼 보인다고 하더군요.'


'웨비니티도 괜찮은 것 같답니다. 10년 간 국내의 일만 보기에도 바빴는데. 이번 기회에 해외를 가보는 것도 나쁘... 알아요. 이샤라이나 갔다 왔죠. 제 말은 여행목적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단 둘이서요. 그 때는 메르힌과 친구들도 있었잖습니까.'


'아무튼! 만약 그대가 가주지 않는다면 저는 이 모든 걸 홀로 쓸쓸히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를 부르라고 제 이성이 말합니다만. 제 마음은 그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제 경험적 측면도 그대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있답니다.''


'그러니 분명하게 말씀드려야겠네요.'


'저를 위해서 시간을 만들어주시길. 그대의 친구, 카리샤 말린이.'


"..."


비서는 가만히 고개를 내려 얼굴을 반쯤 물에 담궈요. 편지를 다시 읽어요. 내용이 똑같네요.


이번에는 허리를 세워서 읽어요. 내용이 똑같네요.


"그대의 친구. 카리샤 말린이."


그렇게 말하고 편지를 접어서 물이 닿지 않는 곳에 넣고. 몸을 완전히 담궈요. 머리도 끝까지. 그다음 지금까지 억제되었던 신경에서 흘러올라오는 사실들을 하나하나 강제로 곱씹어보면서. 자기가 어떤 걸 잃었는지 상기하면서 울어요. 죽을 것 같이 뜨거운 물이 목에 들어오고 숨은 안 쉬어지는데 죽진 않아요. 참 좋은 건 눈물을 아무리 흘려도 눈물을 흘리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고.


참 슬픈 건 눈물을 흘려도 봐줄 사람이 없다는거에요. 이 슬픔과 고통은 오롯이 비서만의 것이죠. 그게 괴로워서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떠보면 침대에 멀쩡히 누워서 푸른색 공기를 보고 있었죠. 참 대단해요. 이렇게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생각해도 어찌 살아지는 게 말이에요. 지금의 비서씨는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생각이 어떻든, 몸은 당장 마실 커피나 끓이러 가는거죠.


커피라. 아가씨가 커피는 제대로 드시고 계실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커피를 끓이는데,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아요? 잘 안 될때면 뭐든 잘 안되는 거 말이에요. 비서씨의 집에는 아깝게도 커피원두도 없었고. 주전자도 없었고. 침대랑 이불과 배게만 있었어요.


정말 공허한 인간이구나. 그런 감상을 남긴 후 두통이 몰려와요. 세상은 차분한데 자기는 정신이 없어서 짜증나요. 배게를 집어던지고 다시 누워요.


공허하네요.


이제 어쩌지.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비서의 현관에 차임벨이 울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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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2화 - RESTORE_GHOST-AFTER : 동상N몽 22.07.30 25 0 71쪽
62 62화 - RESTORE_GHOST - EP-7 행복을 위한 유예 22.07.15 20 0 70쪽
61 61화 - RESTORE_GHOST - EP-6 유령들 22.07.02 18 0 65쪽
60 60화 - RESTORE_GHOST - EP-5 바라보는 것으로 바뀌는 것들 22.06.18 21 0 91쪽
59 59화 - RESTORE_GHOST - EP-4 가장자리에서 22.06.02 21 0 79쪽
58 58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4 22.05.17 21 0 89쪽
57 57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3 22.05.02 20 0 71쪽
56 56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2 22.04.14 22 0 108쪽
55 55화 - RESTORE_GHOST - EP-3 마땅히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해서 PART1 22.03.31 19 0 113쪽
54 54화 - RESTORE_GHOST - EP-2 늘 비가 내릴 것만 같은 도시에 대해서 22.03.17 22 0 95쪽
53 53화 - RESTORE_GHOST - EP-1 복원 지점으로의 도착, 그리고 시작 22.03.04 24 0 60쪽
52 52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에피소드 4. 22.02.20 49 0 113쪽
51 51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람 22.01.29 24 0 75쪽
» 50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 22.01.16 20 0 81쪽
49 49화 - 과거와 오늘, 망각과 기억. 기억을 잃은 사람 21.12.31 20 0 67쪽
48 48화 - 그거, 당연히 말이 되죠! 21.12.17 23 0 57쪽
47 47화 - 그거 말 - 되네요 +2 21.12.07 24 0 75쪽
46 46화 - 그거 말 - 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21.11.20 23 0 87쪽
45 45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3 21.11.10 21 0 73쪽
44 44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2 21.10.23 22 0 46쪽
43 43화 - 그거 말 - 할 걸 그랬었나요. 저는... - PART 1 21.10.14 25 0 35쪽
42 42화 - 그거 말... - 이 되도록 해야 하는 사람들 21.10.01 20 0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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