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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비
작품등록일 :
2024.02.01 16:18
최근연재일 :
2024.06.2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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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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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39,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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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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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9화 세례

DUMMY

69화 세례


모든 상황을 숨어 지켜보고 있던 카이삭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볼레르는 물론 자리를 차지한 성직자들의 온갖 패악질을 봐왔기에 그들을 벌하지 않는 마르지엘라 여신 따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결국은 신보다도 명예와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눈앞에 벌어진 비현실적인 상황에 카이삭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대로 주헌 일행을 살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볼레르의 뒤에는 이미 많은 세력들이 존재했고, 자칫 잘못했다간 줄줄이 목이 날아갈 판이었으니, 신벌로 죽으나 일처리를 잘못했다며 죽임을 당하나 똑같은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살 확률이 더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카이삭은 모두가 당황하여 아무것도 못하는 사이 인파를 헤쳐 나가며 여신상 앞에 있는 주헌에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검을 뽑아 높게 쳐들며, 주헌의 목을 베어버리려고 내려치는 순간.


다시금 여신상 근처의 땅이 얕게 흔들거리더니, 여신상의 눈이 뜨여졌다.


여신상의 눈빛에서는 아까처럼 붉은빛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신상은 마치 해볼 테면 해봐라는 느낌으로 멍한 눈동자로 카이삭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이삭은 그대로 검을 놓아버렸다.


쨍강.


또 한 번의 기현상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제들이 카이삭에게 달려들었다.


한번은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어도 두 번은 우연이 아니라 현실이다.


카이삭은 사제들에게 덮쳐지며 그대로 포박되었고, 정신을 반쯤 놔버린 카이삭은 혼잣말로 ‘죄송합니다.’만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카이삭이 끌려가고, 주헌 일행의 포박과 풀자, 여신상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제 끝이야! 다음은 내 차례일 거라고! 여신님께서 분노하신 거야! 아... 안 돼... 싫어... 죽기 싫어...”


볼레르의 줄을 타며 최연소 주교 서품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위급 사제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중얼거린다.


정확한 사안을 모르는 인파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림이 점차 커져나가고 있다.


“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크르노 사제님!”


말단 사제로 보이는 이가 무릎 꿇고 반쯤 정신이 나간 크르노 사제에게 물었다.


“몰라... 난 죽기 싫어... 어떻게... 어떻게 해야... 여신님의 분노를...”


“하아... 크르노 사제님 데리고 들어가~”


명령체계가 무너진 상황에 허둥지둥대던 사제들에게 한 여사제가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네... 넷! 로아나 사제님!”


정신이 나간 크르노 사제와 일부 사제들이 자리를 뜨고, 로아나는 확성 스킬을 사용해 인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끝! 해산! 다들 들어가세요!”


“무슨 소리야! 그럼, 이단들은?”


“볼레르 추기경이 신벌을 받은 건가?”


“마르지엘라 여신상의 눈을 봤잖아! 타이칸인에게는 사랑의 포옹을 추기경과 칼을 든 괴한에게는 자비없는 눈빛을 보내신 거.”


해명없이 간단명료하게 말한 로아나에 오히려 인파들의 웅성거림은 멈출 줄 모르고 더 커졌다.


하지만 로아나는 거기에 일일히 해명할 생각은 없는지, 남은 사제들에게 ‘들어가자’ 라고 말했다.


그리고.


“너희 셋은 잠깐 나 좀 따라와 줘야겠어.”


주헌 일행에게도 아무런 설명 없이 자기 할 말만 하는 로아나였다.



***



볼레르 대성당.


로아나는 주헌 일행을 데려온 뒤 무작정 고해소로 끌고 갔다.


“아까 저 남자가 당신에게 선배님이라고 하는 걸 들었어, 그렇다는 건 당신이 우두머리겠지?”


스템을 고용한 입장이기는 하니, 고용주로서 우두머리라고는 할 수 있었기에 주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쪽만 들어가~”


그런데 언제 봤다고 반말을 찍찍 내뱉는 건지, 어이가 없지만서도 겨우 살아 돌아온 입장에서 또다시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기에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고해소의 문을 여니 작은 방이 하나 나왔다. 가구라고 할 것도 없고 사방이 벽에 촛불 하나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주헌은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초 하나만 켜져 있어 꽤 어둡다.


그때 사방이 벽인데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로아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하는 얘기는 나는 물론이고 너도 바깥에 얘기할 수 없어. 마르지엘라 성국의 고해소에는 여신님의 성물이 있어서 방음도 되고 고해소에서 하는 얘기는 바깥에서 발언할 수 없는 금제가 걸리거든, 그러니까 편하게 얘기하면 돼. 아,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 그것도 금방 알 수 있으니까.”


뭘 편하게 얘기하라는 건지 주헌은 이해할 수 없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무작정 잡혀 와서 처형당할 뻔했다는 정도?


그런데 주헌이 아무 말 못 하고 고민하던 사이, 오히려 로아나가 이상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하던 이들이 추기경 녀석들에게 많이 죽었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남아있어, 이번에 추기경이 신벌을 받은 걸로 마르지엘라 여신이 우리 편임이 확실해졌으니, 명분은 생겼어. 보얀님은 안 계시지만, 수많은 형제가 있으니 이제 때가 된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저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어? 여기서 하는 얘기는 금제가 걸린다고. 그러니까 편하게 얘기하랬잖아?”


“아니, 그러니까...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로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숨소리에서 묘하게 떨림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심히 당황한 것 같았다.


“너... 볼레르에 왜 온 거야?”

여행을 왔다고 말하려다가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다는 말이 기억난 주헌은 솔직히 대답하기로 했다.


“그게... 세례받으러 왔습니다.”


“...”


로아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저기... 나가면 되나요?”


“너, 너! 경비단에는 왜 잡힌 거야!”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할머니 아니, 대주교님의 여관에서 묵고 있었다가 이유겠죠... 그리고 실제로도 대주교님이 돌아가실 때 그 자리에 있었고요.”


“그냥 손님으로 왔다가 우연히 공격 상황에 휘말렸다?”


“예.”


로아나는 기가 막힌 우연에 거짓말이라 생각했지만, 성물에서는 거짓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뭐, 이딴!”


로아나가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는 소리가 주헌의 방에까지 울려 퍼진다.


“저, 진짜 거짓말 아닙니다.”


주헌은 흠칫하며 변명했다.


“알아! 아니까! 이러는 거 아냐! 하아... 젠장...”


“워~ 성직자도 욕을 하는군요.”


“됐고! 이 얘기는 절대, 절대, 절대~ 발설하면 안 돼! 알겠어?”


“어차피 여기 금제가 걸려 있다고...”


“하아... 됐어. 그냥 나가.”


로아나는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형제들이 위험에 처할뻔했다는 사실에 깊게 자책했다.


금제가 걸려있기는 하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던 로아나는 고해소를 나오며 동시에 문을 연 주헌을 바라봤다.


주헌은 로아나를 슬쩍 쳐다보다가 그녀의 눈빛에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빨리 여길 벗어나던가 해야지... 억울하고 더러워서 원.’


“그... 로아나님?”


“네, 말씀하세요.”


그래도 밖으로 나와서인지 말투가 다시 상냥해졌다.


“세례를 성당에서 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안타깝지만 볼레르에서 세례는 힘들 것 같네요. 추기경님도 돌아가시고... 대주교 자리도 전 대주교님 은퇴 후 계속 공석이라... 다른 지역에 가셔서 하시는 것이...”


“허억! 헉! 로아나 자매님!”


멀리서 정수리만 비어있는 백발 노인이 힘겹게 뛰어온다.


“아, 필립 주교님.”


로아나가 마중을 가며 필립 주교를 부축했다.


“헉! 헉! 추기경님이 신벌을 받았다니요?”


“그게...”


로아나가 설명하려 했지만, 주교는 헉헉대면서도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허억! 큰일입니다. 볼레르 교구를 담당하시던 추기경님도 없고, 후우~ 대주교 자리도 보얀님 이후로 공석인데 계속 비워둘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일단은 제가 임시로 맡도록 해야겠어요. 계속 비워두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필립 주교는 볼레르 추기경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대주교로 승급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수준미달. 스킬 능력이 타 주교에 비해 형편없었고 정말로 쓸데없는 스킬만을 가지고 있던 터라 늦게 들어온 이들에게 밀려 자리를 뺏기고 있었다.


그렇게 은퇴를 바라보던 사이, 볼레르 교구의 추기경 자리와 대주교 자리가 동시에 비어버리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잘 맡아 운영한다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희망에 그는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아... 예... 그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교황청에 보고를...”


“아아, 일단은 여신상의 신벌에 대한 조사를 우선으로 하고 결과가 나오면 그때 보고하도록 하지요. 그동안은 제가 임시로 맡도록 할 테니 조사를 꼼꼼하고 실수가 없도록 천천히 확실하게 진행하세요.”


“그래도 사태에 대한 보고는 해야...”


“어허! 지금 남은 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교직을 서품받은 이는 내가 아닙니까? 이리 체계가 엉망인데! 일단 정리를 하고 나서 보고를 해야지요! 내 말 들으세요. 로아나 자매!”


대주교 승급을 위해 자신의 유능함을 어떻게 해서든 어필해야 했던 필립은 보고가 최대한 늦게 올라가길 원했다. 그래야 임시직 기간이 늘어나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필립 주교님.”


로아나는 그런 주교의 모습에 혐오감이 들었지만, 어차피 썩을 대로 썩은 볼레르 교구에 별 기대도 없었기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침 잘 됐습니다. 필립 주교님. 이쪽 형제님께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하시는데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오호! 내가 볼레르 교구의 임시 담당이니 그것도 당연히 내가 해야지요! 세례에는 많은 신성력이 쓰이지 않습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허허! 이쪽으로 오시지요. 형제님.”


필립 주교가 좋다고 주헌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주교가 데려간 곳은 세례실.


세례실은 온통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오줌싸개 아기천사 형상의 분수대만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밖에서 기다려주시지요.”


엘로를 업은 스템이 함께 세례실에 들어가려 했지만, 로아나에게 제지당하며 들어오지 못했다.


세례실의 문이 닫히고.


“형제님,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주교가 분수대를 가리켰다.


“예? 물이 있는데...”


“분수대의 물은 마르지엘라 여신의 축복을 받은 성수입니다. 세례는 정화의식의 한 종류 축복의 성수로 죄를 씻고 정화된 몸으로 여신과 마주하는 일이니 무조건 들어가셔야 합니다.”


주헌은 옷이 물에 젖는 게 탐탁지않았지만, 빨리 세례를 받고 돌아가고 싶었기에 그정도는 감수하기로 했다.


주헌이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고.


“이제 아기천사님을 마주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마르지엘라 여신께 기도하십시오. 제가 눈을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 뜨시면 안됩니다.”


주헌은 주교의 말대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임시직을 맡고 첫 임무라 조금 긴장 되는구만.’


주교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오줌싸개 아기천사 분수대에 신성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진웅비 입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관심 부탁 드립니다. :)


매주 화요일, 금요일은 휴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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