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적발귀는 취하여 영관전에서 자고 조천왕은 동계촌에서 호걸을 알아보다(2)
적발귀 유당이 박도를 들고 5, 6리 쫓아가니 토병들을 거느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뇌횡이 멀리 바라보였다.
유당은 가까이 쫓아가서 고함을 질렀다.
“이놈 도두야! 거기 섰거라!”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뇌횡이 돌아보니 박도를 비껴들고 유당이 쫓아오는지라 황급히 토병의 손에서 박도를 받아들고 맞받아 호령한다.
“네놈은 뭘하려 따라오느냐?”
“네가 사리를 아는 놈이면 그 돈 열냥을 내게 돌려주고 가거라. 그래야 너를 용서할테다.”
“너 외삼촌이 나한테 준건데 네놈과 무슨 상관이냐? 조보정의 안면을 생각하지 않으면 당장 네놈의 목숨을 없애버렸을게다! 염치없는 놈 같으니! 도리여 나더러 은전을 내놓으라고?”
“도적도 아닌 나를 밤새도록 달아매놓고 또 우리 외삼촌한테서 돈까지 뜯어간단 말이냐! 사리를 아는 놈이면 잔말 말고 내놓고 가거라! 그렇지 않았다가는 당장에 네놈의 피를 보고야 말테다.”
그 말에 울컥 분이 치민 뇌횡은 유당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퍼붓는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정녕 조개에게까지 누를 끼치고 말테냐?”
이에 유당은 대노하며 박도를 비껴들고 뇌횡에게 달려든다.
유당이 달려드는것을 본 뇌횡은 허허 웃으면서 손에 든 박도로 그를 맞아 싸우기 시작했다.
뇌횡가 유당이 길바닥에서 50여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뇌횡이 좀처럼 유당을 당할것 같지 않음을 본 여러 토병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싸움을 도우려는참인데 길가에 있는 삽짝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한사람이 손에 두가닥 구리사슬을 들고 나온다.
“두 호걸은 그만 싸우시오! 한참이나 구경했는데 승부가 날것같지 않소이다. 내말 좀 들어보시오.”
그 사람은 구리사슬로 두사람의 사이를 막았다.
둘은 일시에 박도를 거두고 각각 터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사람은 선비다운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둥그런 두건을 눈섭까지 눌러쓰고 몸에는 검정 변을 두른 넓은 베적삼을 입고 허리에는 갈색 띠를 띄고 발에는 비단신에 흰 버선을 신었다.
미목은 청수하고 얼굴은 희고 수염은 길었다.
이 사람이 바로 성은 오씨고 이름은 용이고 자는 학구이며 도호는 가량선생이라 불리며 별호는 지다성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지다성 오용(智多星 吳用)의 뛰어남을 찬양한 임강선 사 한수가 있었는데,
일찍기 만권 경서 읽고 평생에 마음밝고 지혜도 넓더니 6도3략 정통했네. 가슴속에 장수있고 배속에 웅병있어 지략은 제갈량도 쌍이 못되고 재능은 진평도 적수 못되네. 약간한 꾀에도 귀신이 놀라는데 자는 오학구, 호는 지다성이라네.
그때 오용이 손에 구리사슬을 들고 유당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당신은 가만 계시오! 대체 무슨 일로 도두와 싸우시오?”
그 말에 유당은 눈을 부릅뜨고 말한다.
“네따위 선비가 알바 아니다!”
이에 뇌횡이 나서며 아뢴다.
“선생은 모르시겠지만 이놈을 도적인줄 알고 잡아서 조보정 장원으로 끌고 갔더니 알고본즉 보정의 조카녀석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보정나으리 안면을 봐사 놔주니, 보정나으리가 술도 주고 예물도 주었는데 지금 이 녀석이 따라와서 도로 내놓으라는거지요. 그러니 이놈이 얼마나 엉큼한 놈인가 좀 보십시오.”
그말을 들은 오용은 속으로 생각했다.
‘조개는 나와 죽마고우로서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나하고 의논을 하였지. 친척과 친구들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런 조카가 어디서 났을가? 나이를 따져보아도 잘 맞지 않으니 여기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모양이다. 일단 싸움부터 말려놓고 다시 알아봐야겠다.’
생각을 마친 오용이 말했다.
“이보게, 자네는 공연한 고집을 부리지 말게. 나는 자네 외숙부와 극진한 사이고 또 도두와도 친한 사이네. 자네 외숙부가 이분에게 드린것을 자네가 가로챈다면 자네 외숙부의 안면이 어찌 되겠나. 그만두게.”
“선생은 모르면 가만히 있소. 내 외삼촌이 주고 싶어서 준것이 아니라 이자가 뜯어간거란 말이요. 그러니까 도로 내주기 전에는 나도 가만히 있지 못하겠소이다.”
이에 뇌횡이 말한다.
“보정이 와서 달라면 두말 않고 돌려주겠다마는 네놈에게는 못주겠다! 네 돈이 아니니까 안 준다, 안줘!”
“안 준다? 그럼 내 손에 든 이 박도한테 물어봐라!”
유당이 악이 나서 가슴을 탁 치고는 다시 덤벼들었다.
뇌횡도 손짓 발짓 크게 벼르면서 달려들었다.
오용이 가로막으며 말렸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두사람이 도적놈이니, 불한당이니 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싸우는 판인데 갑자기 토병들이 저편을 가리키며 외친다.
“보정나으리가 오신다!”
유당이 몸을 돌이켜 보니 조개가 옷을 대충 걸치고 앞자락을 여미지도 못한채 막 큰길로 달려오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
“이 망할놈아! 썩 물러서거라!”
오용이 그것을 보고 껄껄 웃었다.
“보정나으리가 친히 오셔서야 이 소동이 멎는구먼!”
“짐승같은 놈!”
가까이 다가온 조개가 유당을 먼저 꾸짖고 다시 뇌횡에게 말한다.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도두께서는 제 안면을 보아서 용서해주십시오. 일후에 댁으록 가서 사과를 하겠습니다.”
“나도 저놈이 허튼 수작을 한다는것을 모르는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저놈의 수작을 곧이듣겠습니까? 공연히 보정나으리를 이렇게 나오시게 했습니다.”
말을 마치고 뇌횡은 작별하고 돌아갔다.
이를 보고있던 오용이 조개에게 말을 했다.
“보정나으리가 친히 나오시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날번했습니다. 댁의 조카는 과연 비범한 사람이군요! 그 무예가 참 놀랍습니다. 소생이 한참 지켜보았는데 뇌도두도 대적할수가 없어서 막으며 피하기만 했고 몇합만 더 싸웠더면 틀림없이 뇌횡이 죽고말았을것입니다. 그래서 소생이 급히 뛰어 나와 말렸습니다. 그런데 댁의 조카는 도대체 어디시 왔습니까? 기왕에는 대에서 본적이 없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선생을 모시고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막 사람을 보내려던차에 이 사람이 보이지 않고 또 병기진열대에서 박도 한개가 없어졌길래 물었더니 이 사람이 들고 나가더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급히 쫓아왔는네 마침 선생이 계셔서 무사했습니다. 수고스러운대로 저의 집으로 같이 갑시다. 조용히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조개의 말을 듣고 오용은 서재로 돌아가서 구리사슬을 방안에 걸어놓고 일꾼에게 일렀다.
“학생들이 오거는 오늘 선생이 볼일이 있어서 하루 쉰다고 말해주시오.”
여기에 이런 시가 있다.
문재가 무재보다 못하지 않아
구리사슬로 박도싸움 말렸네.
의사들과 담론함을 즐겨하거니
조무래기 애들속에 어이 마음붙이랴.
새장속에 갇혔던 매 하늘에서 날개치고
놓여난 개구리때 들에서 뛰노네.
선생님의 바깥출입 잦아진 두로
학생들은 좋아하고 가장은 속태우네.
오용은 서재의 문을 닫고 조개와 유당을 따라서 장원으로 갔다.
조개는 두사람을 후원으로 안내하여 주객이 자리를 갈라앉았다.
오용이 먼저 물었다.
“보정나으리, 이분은 쉬시우?”
“이분은 강호의 호걸인데 성이 유이고 이른은 당이고 고향은 동로주랍니다. 큰 재물이 있다고 저를 찾아왔는데 공교롭게 영관전에서 자다가 공교롭게 뇌횡에게 도적으로 잡혔습니다. 이분의 말을 들으면 북경 대명부의 양중서가 그의 장인 채태사의 생신날을 경하하여 금은보화 10관어치나 동경으로 보내는데 조만가 이 부근으로 지나갈것이란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침에 선생님을 모셔다 의논하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소생도 유형이 오신것이 심상치 않아서 십중팔구는 짐작이 갓습니다. 그 일로 본다면 대단히 훌륭하지만 사람이 많아도 안되고 적어도 안될것같습니다. 지금 댁에는 일군들이 많지만 그들은 한사람도 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우리 세사람만 가지고는 일을 성사치 못합니다. 보정나으리나 유형의 솜씨가 아무리 뛰어났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고 반드시 7, 8명의 손맞는 장상가 있어야 될것입니다. 그 이상은 더 많아도 소용이 없지요.”
오용이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어젯밤 꿈에 북두칠성이 우리 집 용마루에 떨어지는것을 보았는데 혹여 북쪽에서 조력할 사람이 올지도 모르지요.”
조개의 말에 오용은 한참동안 생각하더니 별안간 눈섭을 치켜뜨며 말했다.
“응, 그렇지! 사람이 있었군!”
“선생께서 믿을만한 장사가 있다면 곧 청해다가 이 일을 성취하도록 합시다.”
오용은 천천히 두손가락을 겹쳐서 내밀며 몇마디의 말을 하였다.
이로하여 조개장원에 모인 호한들은 수를 맞추고 설간촌의 고개배가 병선으로 변하였으니, 세상을 뒤엎을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지다성 오용이 필경 어떤 사람들을 찍어 말하였는가, 하회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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