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고스트
경찰서에서는 또 한 번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번 장례식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들이었다
진짜로 죽은 건 아니지만, 앞에 걸린 영정 사진을 보고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상주는 서장님의 어머님과 서 반장의 아내가 맡기로 했다.
미리 알렸지만, 두 사람은 정말 자신의 외동아들과 남편을 떠나보낸 거처럼 땅이 꺼져라. 대성통곡하고 있다.
급기야 서로 껴안고 내 아들과 내 남편을 살려내라 난리도 아니다.
“저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그럼 니가 가서 말려 보던가.”
목놓아 울고 있는 두 여인을 보고 있자니 참 못 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미안해졌다.
또 다른 한편으론 나와 동료의 죽음을 저렇게 슬퍼해 주는 이들 때문에 한 번 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울다 지친 제수씨는 멍하니 앉아 있었고, 어머님은 밖에 한참을 나갔다가 오시더니 우리 영정 앞에서 죽은 넋을 위로해 주는 씻김굿을 하신다.
아니, 그래도 어머님, 진짜 죽지도 않았는데, 그건 너무 하신 게 아닌가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 무렵, 세 명의 손님이 방문했다.
그 손님은 태은과 최 부장, 그리고 권 서장이었다.
그들은 일부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기 위한 가면도 쓰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이 맨 얼굴로 돌아 다녀도 신경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채 형사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거로 봐선 살아 있단 사실을 알았나 봐.”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태은의 모습을 보고도 태연한 채 형사였다.
우리는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들은 아주 오랜 시간 이곳 상황을 지켜본 것 같았다.
헌화한 다음, 두 상주에게로 가서 위로의 말을 전한 뒤, 그들을 식당으로 향했다.
물론 두 여인에겐 죽은 사람들이 조문객으로 올 수도 있으니 모른 척해달라고 미리 간곡히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가면으로 본모습을 감춘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는 나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보였다.
***
비밀 정보국 본부가 폭발하던 그 시각, 최 부장과 권 서장이 그들의 아지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 동료와 후배의 장례식장엔 가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강태혁, 그 녀석 썩 괜찮은 놈이었는데..”
그 순간, 대표가 있던 방문이 열렸다.
“그 장례식장에 저도 같이 가죠.”
많이 야윈 모습의 태은이었다.
최 부장은 혹시나 강 형사의 이름을 들으면 그녀의 정신이 돌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최 부장의 바람대로 거짓말처럼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를 본 권 서장이 인사를 했지만, 자신을 처음 보는 듯해 보였다. 아니 일부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장례식장에 온 그녀는 강 형사의 영정을 보자마자 덜컥 눈물이 났지만, 애써 흐르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먼 걸음 해 주셨는데, 식사는 하고 가셔야죠.”
조문을 마치고 가는 세 사람을 처음 보는 남자가 식당으로 이끌었다.
“이왕 왔으니, 그렇게 하시죠.”
권 서장의 말에 세 사람은 그가 안내해 주는 자리로 갔다.
“지난번에 초상이나 와서 먹어 보니까 이곳 육개장이 진국이더라고요. 다른 장례식장하고는 달라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셋을 안내해 준 남자는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여기 육개장 맛을 못 잊어 식당마다 찾아다녀 봤지만, 다 이 집만 못하더라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 초상났는데 와서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침 오늘 아는 사람이 초상이 나서..”
“저기요. 아저씨!”
참다 못한 최 부장이 그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끼어들었다.
“저희 아세요?”
“오늘 처음 봤는데.”
“그럼, 여기 직원이세요?”
“방금 아는 사람 문상 왔다고 했잖아.”
“그럼 저희한테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아니 난 또 문상 왔으면 고인과 둘러둘러 아는 사이니까.”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가 주십시오. 그리고 반말 거슬립니다.”
낯선 남자의 행동에 최 부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 남자는 최 부장의 눈치를 보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예정에 없던 낯선 이의 등장에 불쾌해하는 최 부장을 본 태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죄송해요. 조금 전 상황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네요.”
최 부장은 그녀가 지금처럼 웃을수만 있다면 자신은 어찌 되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야, 너 들키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다.”
“내 연기력 죽이지 않았냐?”
장례식장에 따로 만들어 놓은 밀실에 들어가 가면을 벗는데, 잔뜩 쫀 서 반장이 다가왔다.
“들킨 거 같은데요.”
“안 들켰어!”
채 형사의 도발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는지 아차 싶었다.
“아이고! 아이고!”
그 순간 제수씨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수씨 연기력 인정!”
“조심해! 그러다가 일이 다 틀어질 수 있어.”
다행히 그들이 있는 곳까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근데, 서장님은?”
“차에서 대기하고 계셔.”
조금 전, 난 그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도청기와 위치추적기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 부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올 것을 짐작하고 있던 우리는 그들이 지금 있는 자리 구석구석에 도청기와 초소형 카메라를 미리 설치해 놓았다.
워낙 눈치도 빠르고, 감각도 뛰어나 우리가 설치한 것들을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를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들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니, 건강은 어떻냐느니, 육개장이 짜니 싱겁다느니, 아까 그자가 우리를 사기를 쳤다느니 하는 잡다한 것들만 늘어 놓았다.
식사를 끝마친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도 그들의 뒤를 쫓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K라는 놈이 죽으면서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 주고 간 게 있었다.
그가 남기고간 선물은 다름 아닌 그의 얼굴이었다.
우리가 그를 미행하다 놓친 날을 기점으로 도로며, 상가 등에 설치된 CCTV와 블랙박스를 모조리 해킹해 그의 얼굴과 대조해 가며, 그가 타고 있던 차와 그의 행적을 조회한 끝에 놈들의 아지트로 추정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포인트들을 찾느라 정 형사, 동만이, 그리고 우식이 고생 좀 했다.
우리가 찍어 놓은 포인트들 주변으로 요원들이 잠복하고 있다가 놈들의 아지트로 확인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덮칠 것이다.
초상까지 치른 거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놈들을 잡는 데 합법적으로 하면 좋겠으나 그렇게 되면 그들을 평생 잡지 못 할 게 뻔하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고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도 이제 출발하지.”
그들이 장례식장을 나간 10분 뒤, 서장님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꽁꽁 숨긴채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몸을 실었다.
“서장님, 근데 이 차로 놈들을 쫓아갈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서장님의 애마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게 겉으로는 똥차처럼 보일지라도 속은 그 반대야. 안심해도 돼.”
이번만큼은 자신의 애마를 지키고 말거라는 서장님의 굳은 의지가 보였다. 근데 과연 그게 될까?
“우리가 떠나고 난 뒤, 장례식장은 안전할까요?”
“장례식장 안팎으로 무장한 우리 요원들이 지키고 있으니 안전은 할 거야. 제수씨와 어머니도 이미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고.”
그제야 서 반장이 다행이다며 마음을 놓았다.
“설마 서장님이 어머님과 제수씨를 위험하게 놔두시겠냐.”
괜히 서 반장의 명치를 팔꿈치로 살짝쳤다.
모니터에서 깜빡 거리는 점을 따라 우리도 출발했다.
“이거 이러다 놓치겠는데요.”
추적기를 그들과 차에 달아 놓았다고는 하지만, 일정 거리 밖으로 벗어나면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점이 깜빡이는 횟수가 현저히 낮아졌으며, 그 빛마저 잃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저희가 먼저 쫓겠습니다.”
우식의 무전이 끝나고, 어디서 많이 본 스포츠카 한 대가 빠르게 우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포츠가 안에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우식과 그 옆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동만이와 정 형사의 얼굴이 보였다.
“저거 전 세계에 몇 대 없다던 서장님 애마가 아닌가요?”
“허허. 잘 숨긴다고 숨겼는데, 저걸 어떻게 찾았지.”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서장님이 정신을 살짝 놓으신 거 같다.
얼굴은 웃고 계셨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너무 티나는 거 아냐?”
“참, 얘가 또 뭘 모르네. 미행할 땐 오히려 저런 차가 의심을 덜 받아. 니가 그러고도 형사 반장이냐.”
순간 서장님에게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느껴졌다. 더 깐족거렸다간 진짜 초상을 치를 거 같아 그 이후론 가만히 있었다.
앞서 간 차의 리드로 우리는 미행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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