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장화와 홍련이(2)
“뭐 자다가 꿈에서 귀신이라도 봤어?”
“와.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무당집 도련님이시라 다르긴 다르시네요.”
순간 수박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서 별이 보였다.
“이 만 놈의 새끼가 제 사고 친 거 해결해 주고, 밥도 주고 재워도 줬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나 때문에 망가진 차들을 보상해주기 위해 서장님의 어머님이 올라오셨다가 아들 집에서 며칠 더 머물다 가신다고 하셨다.
“내 너, 한번 혼날 줄 알았다.”
수박 갈라지는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고, 서장님이 머리를 잡고 쓰러지셨다.
“후배 간수 못 한 니 잘못도 있어 이놈아!”
내 아들, 니 아들 구분하지 않으시고 공평하신 어머님이 참 좋다.
“잡소리 그만하고 얘기나 한번 해 봐.”
꿈에서도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사방은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전에 살던 집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지난번에 폭발로 다 날아갔을 건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꿈이다. 난 아무렇지 않다. 생각하면 할수록 울음소리는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은 극에 달했고, 그곳에서 벗어나려 뺨을 때리고, 허벅지를 꼬집고, 혀를 깨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몸도 움직이지 않았고, 서글픈 울음소리는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올 리 만무했다.
정체를 드러낸 그것이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전설의 고향에서 흔히 보아오던 긴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 눈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창백한 얼굴의 정형적인 귀신의 모습이었다.
사방은 어두운데 왜 그것의 모습은 똑똑히 잘 보이는지.
너무 놀라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데, 정신은 더 또렷해졌다.
순간 그 귀신이 내 몸 위로 올라오더니 내 목을 사정없이 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다가 겨우 깼다니까요.”
“오줌은 안 지렸냐?”
나는 심각한데, 서장님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긴다.
“저, 어머님, 비방이라도 하게 부적이라도 하나 써 주시면 안 될까요..”
그 소리를 했다가 귀신도 귀에서 피가 날 만큼 걸쭉한 어머님의 욕을 아주 배 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 개꿈이 맘에 걸리면 꿈에서 나온 그 집에 한번 가보던가.”
출근하려는데, 잘 다녀오라는 말 대신 이 말을 해 주셨다.
밖에는 봄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밤에 악몽을 꿔서인지 만물의 시작을 알리는 봄비가 나에겐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시간이 좀 남았는데, 그럼 한번 가볼까.”
나는 심각해 죽겠는데, 서장님은 모처럼 만에 아주 신이 나셨다.
불가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나의 스위트 홈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참 흉물스럽다. 비까지 와 특히 더 그런 거 같았다.
“그만 가시죠.”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냐. 혹시 또 알아, 새벽에 나왔던 귀신을 실제로 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장님의 머리를 한 대 칠 뻔했다.
비도 오는데, 한순간 홈리스가 될뻔했다.
“뭐 볼 게 있다고 그러세요. 그만 출근하시죠.”
“에, 강태혁이, 너 혹시라도 귀신이라도 볼까 봐 그러는구나.”
서장님의 말 한마디에 발끈한 내가 들어가 보자는 소리에 넘어가 버렸다.
유리가 다 깨지고 흉물스럽게 변한 아파트 단지 내로 어울리지도 않는 스포츠카 한 대가 들어섰다.
“왜. 막상 들어가려니 겁나?”
“겁은 무슨!”
호기롭게 내가 앞장섰다.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움직이지 않았다.
“저는 1층에 살았는데, 위에는 왜 올라가세요?”
“자네 집은 많이 가봤으니 다른 집도 한 번 가 봐야 하지 않겠어?”
계단을 오르는데, 서장님이 무섭게 갑자기 휘파람을 부신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향해 가고 있는데,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 어두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계단을 오르던 서장님이 4층에서 걸음을 멈추곤 그 자리에 한참을 서 계셨다.
“여기가 재밌을 거 같은데 한번 들어가 보자.”
“무섭게 자꾸 왜 그러세요? 근데, 서장님, 전에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 말해봐.”
“들리는 소문에 서장님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신다고 그러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자네는 어떤가? 자네 눈엔 아직도 내가 서장으로 보이냐?”
“아이. 진짜 왜 그러세요!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서장님은 그날, 소문의 진실을 끝끝내 얘기해 주지 않으셨다.
4층을 알리는 푯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게 늘어선 복도가 무섭게 다가왔다.
마치 무언가가 툭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근데, 자네 총은 왜 꺼냈나?”
나도 모르게 너무 두려운 나머지 총을 꺼내 든 모양이었다.
복도를 걷던 서장님이 어느 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왜. 서장님 여기에 뭐 있어요?”
그 집에 호수를 확인한 순간, 마치 숨이 멎는 거 같았다.
문 앞에는 4호라 적혀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서장님은 마치 자기 집인 양 능숙하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시고, 들어가셨다.
모두의 예상대로 그 비밀번호도 4444였다.
나 역시 서장님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는데, 서장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서장님, 장난치지 마세요. 재미없어요.”
서장님이 분명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집 안 어디에서도 서장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서장님을 찾고 있는데, 등 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있던 거울로 보니, 뒤쪽에 서장님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뒤로 도는데, 서장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꿈에서 봤던 그 귀신이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 앞에 있던 그것이 꿈에서처럼 내 목을 사정없이 졸랐다.
그때, 누군가 내 뺨을 때리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쭈. 이 새끼가 상관인 나는 운전 하는데, 느긋하게 잠이나 자고 있네.”
눈을 떠보니, 서장님의 차 안이었고, 서장님은 날 한심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다 왔으니까 얼른 내려.”
서장님의 말에 차 밖을 보니 경찰서였다.
“서장님, 방금 우리 집에 안 갔었어요?”
“이게, 자다 깨더니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서장님의 말에 따르면 차를 타자마자 곯아떨어져 경찰서로 오는 내내 잠을 잤다고 한다.
“잠자리가 바뀌면 그럴 수 있어. 더군다나 어머니가 같이 있으니 그 영향 때문일 수도 있고. 이거 안 되겠구먼. 저녁때 몸보신 좀 시켜 줘야지.”
서장님의 마지막 그 말이 화근이 되어 예정에도 없던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우리 팀원들이 서장님의 집으로 몰려가 모처럼 만에 회식을 하고, 어머님은 그동안 숨겨 두셨던 당신의 음식솜씨를 뽐내셔야만 했다.
회식은 회식이고, 이날은 두 번의 악몽으로 하루 종일 찜찜하고 꺼림칙했다.
“무서워만 하지 말고, 그것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들어 봐.”
그날 저녁, 어머님이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 소리를 들어 보라고요?”
“니 직업이 뭐냐? 형사잖아. 그것들이 뭔가 억울한 게 있으니, 일면식도 없는 니놈 꿈에 나타나 자신들의 한을 풀어 달라 하는 게 아니겠어.”
어머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다.
난 자기 전, 머리맡에 성경책과 불경, 그리고 십자가와 염주까지 가져다 놓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하느님, 부처님, 오늘은 그것들이 꿈에 나타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난 자기 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김없이 우리 집이었고, 어김없이 난 잠을 자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어김없이 내 발끝에 서서 날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다만 어제와 달라진 게 있다면, 어제는 하나였는 데, 오늘은 둘이나 나를 찾아 왔다.
그만큼 내 공포도 두 배가 되었다.
그것들은 내 숨통을 조이기 위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뭣 땜에 그러는지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나에게 오던 그들이 순간 멈칫하더니,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의 원통함을 풀어 주십시오. 제발,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그 말만 수십 수백 번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무서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에이 씨. 진짜,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 원한인지, 원통함인지를 풀어 줄 거 아니야!”
뭔가를 말하려던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등장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