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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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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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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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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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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네가 돌아올 곳(6)

DUMMY

※※※



밤에 피어나는 불꽃이 화려했다. 허공을 수놓는 화염의 꽃들을 보며 화율이 손목을 털었다.


아니, 본다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다라법왕공(多羅法王功)을 기반으로 한 무공은 보지 않아도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사문이 그녀에게 남기고 간 것.


맹인의 시야에서 바라보는 불꽃은 더없이 화려했다. 진동과 기감을 통해 사방을 인지하는데, 그것이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면서도 동시에 비슷했다.


“불꽃이......”


거칠면서 동시에 섬세했다. 대기중을 분연히 물들이는 화염의 검로는 반절은 변초와 환초요, 반절은 극한의 쾌와 예에 다다른 검식이었다. 그 안에 머무른 고민이 깊었는데, 겉으로 느껴지는 세월보다도 길었다.


“어려 보이는데 이상하군요.”


화율이 중얼거렸다.


환골탈태한 무인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렇다 해도 소년의 나이는 많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무공과 의술을 통해 상대방의 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있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아직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소년.


그럼에도.


소년이 다루는 뇌기와 화기에 묻어나오는 의념은 깊었다. 수십, 수백년에 달하는 거목의 뿌리처럼.


“마치......”


그녀의 사문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던 이야기들. 그녀가 듣고 자란 설화의 주인공. 세상을 오시하던 이야기속 인물이 문득 생각날 정도로.


‘무연(無緣).’


이야기속 인물의 이름을 떠올리며 화율이 숨을 내쉬었다. 뻗어냈던 내공을 회수하며 호흡 간격을 조절한다. 혹여나 저 불꽃 속에서 살아있을 교도들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앞을 수놓던 불꽃이 꺼지고.


타닥.


바닥에 백연이 구르듯 착지했다. 뒤를 힐끗 돌아보는 눈매가 날카로웠다. 언뜻 뒤에서 화율이 고양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 뒤로.


목 잘린 시체들이 즐비했다. 적화검류의 모든 검격이 적의 목을 노리고 들어간 탓이었다. 찰나 일으킨 자령안 안법으로 미리 상대의 궤적을 예측해 뿌린 검격이었다.


그 정확도가 일전 금원방주를 상대할 적보다도 더욱 증가했다. 태청신공을 익혔기 때문일까.


‘화기와 수기를 다루는 것이 더 수월해.’


그의 몸 안에서 합쳐진 두개의 기운. 뇌기를 뽑아내기 위해 합친 두 기운은 각기 따로도 여전한 힘을 발휘했다. 오히려 더욱 강해진 느낌도 들 정도였다.


무당의 검객들이 태극을 익히고도 음양을 각기 다룰 수 있다 하더니. 그와 비슷한 일인 듯 했다.


몸을 일으킨 백연이 납검하며 기운을 거뒀다. 불꽃이 흩어진 사이로 번뜩이는 뇌기가 재차 피어올랐다. 태청신공을 일으킨 채로 백연이 스스로의 몸 상태를 관조했다.


‘아직 충분하다.’


화율이 길게 쓰지 말라고 경고하긴 했으나 문제는 없었다. 적어도 이곳의 혈교도들을 전부 격살할때까지. 그의 뇌기가 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옵니다.”


들려오는 화율의 말. 백연은 가만히 기운을 내리눌렀다. 이미 기감에 잡히는 적들을 파악한 뒤였다.


‘그보다 어디있지?’


자령안을 거두며 넓게 펼친 기감이 주변을 관조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짓쳐오는 적들 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몸에 있을 미약한 선천진기라도 찾기 위함이었는데, 효용이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흑랑에게 맡겨두었음에도 그렇다. 혹시나 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해, 해랑이 죽는다 하면.


“그런 일은 없어.”


중얼거리며 백연이 검파에 손을 올렸다.


원하는 바를 확언하듯 입밖으로 내뱉는다.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라도 할 듯이.


“제가 왼편을 맡겠습니다.”


울리는 음성과 함께 화율의 공력 파동이 느껴졌다. 백연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가죽신이 오른편으로 살풋 방향을 트는 것과 거의 동시에 왼편으로 황금빛 기를 두른 신형이 스쳐 지나갔다. 법왕공을 일으킨 화율이 상체 움직임이 거의 없는 신묘한 보법으로 대지를 가른 것이다.


그야말로 불문의 부동(不動)을 형상화 한 것만 같은 보법.


직후 그녀가 손을 내뻗는 순간, 우웅 하는 진동과 함께 거대한 장법이 그대로 왼편의 건물 벽을 박살냈다. 뒤따르는 분진이 백연의 앞까지 퍼져나왔다.


그것을 왼손 손등으로 흩어 없애는 것도 찰나. 백연의 오른발 앞코가 지면을 살포시 밀어내고.


쩌저적.


대지가 갈라졌다.


백연이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오른편 전각의 이층 창까지 한줄기 백광의 잔영이 이어졌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얼핏 공간을 뚝 잘라내 이동한 듯 보였는데, 백연의 감각에는 아니었다.


길쭉하게 늘어지는 주변의 풍경. 사고가 가속하며 그의 속도를 따라간다. 화신풍의 배에 달하는 용형보의 속도에도 점차 적응하고 있었다. 태청신공으로 상단전 신이 활성화된 영향인지.


그의 기감은 더없이 예리해져 있었다. 용형보를 내치며 여상히 휘두른 한번의 발검(拔劍) 검로가 벽면을 가르고 그대로 너머에 서 있던 무인의 허리를 양단시킬 만큼.


콰앙!


찰나 창가를 뚫고 들어간 백연의 코앞에 반으로 잘려나간 혈교도의 시체가 느릿하게 떨어졌다. 죽는 순간에도 백연을 쳐다보는 눈빛이 약간의 놀람 이외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도 못한 듯이.


‘발검 묵(墨)이 아니라 백(白)인가.’


곤륜파 무공에 아직 발검식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잠시. 전각의 안에 들어선 백연이 주변의 적을 가늠했다.


‘달려오는게 다섯. 위에 둘. 저편에 셋......’


한번 기감에 잡히는 순간 전부 머릿속에 담았다. 그의 감각이 전각 안을 축소시켜 머릿속에 구조를 나눈다. 자연스레 적의 동선을 계산하며 보법을 내딛었다.


탁월한 감각. 머릿속에서 스스로의 움직임을 미리 보고 그대로 행한다.


처음 짓쳐오는 앞의 혈교도. 구부러진 곡도를 쓰는데 그 날에 피가 묻어 있었다. 어느 누구의 것인지 알기 어려웠으나, 그것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감각이 일었다.


‘아니야.’


애써 무시하며 백연이 몸을 뒤틀었다. 낮은 자세로 용형보를 밟으며 그대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동시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곡예하듯 던지고.


휘익-!


허공을 찢으며 날아간 검이 그대로 혈교도의 목에 틀어박혔다. 직후 백연이 왼손 역수로 다시 검을 붙잡았다. 반쯤 회전하며 검을 뽑는 순간 핏물이 허공으로 터져나왔다. 일련의 동작이 더없이 쾌속했다. 머리 잃은 교도의 몸이 바닥으로 나뒹굴고.


“저기......!”


그 순간 백연은 이미 다음 적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왼손 역수로 여휘검을 쥔 채로 일보를 비스듬하게 내리찍었다. 자연스레 일어난 반동이 그의 몸을 오른편 벽으로 떠밀었다. 그대로 오른발을 벽에 디디며 반쯤 허공을 돌아나가는 신묘한 움직임.


가벼운 몸놀림이 흡사 바람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나 되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 검은 더없이 예리했다. 벽면을 두번 밟은 백연이 그대로 교도의 머리 위를 향해 역수로 쥔 검을 내리찍었다.


콰득.


두개골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여휘검의 검신이 교도의 턱을 뚫고 튀어나왔다. 머리에 완전히 틀어박힌 검.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죽여라!”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휘파람 소리가 있었다. 날카롭게 그를 향해 짓쳐오는 비도들. 교도의 시체와 함께 바닥을 구르며 착지한 백연이 그대로 시체의 복부를 걷어찼다.


한순간 시체가 밀려나며 여휘검의 검신이 교도의 안면을 반으로 가르고 빠져나왔다. 밀려난 시체는 누가 집어 던진것 마냥 쾌속하게 날아가다, 터억 소리와 함께 날아온 비도를 맞고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놈이 시체를 방패로......!”

“너희.”


시체로 비도를 막아낸 백연. 그에 비도를 날린 혈교도들이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허공의 기운이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그러지고, 다음 순간 그들의 코앞에 서 있는 것은 흑포를 두른 소년이었다.


시체를 걷어차 시야를 가리는 것과 동시에 보법을 밟은 것이었다.


태청신공의 경력 여파로 흩날리는 길다란 검은 머리칼 사이, 자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혈교도들을 눈에 담았다. 나직하게 깔린 음성은 소년의 미성이었으나, 그 안에 서린 감정은 섬뜩하리만치 차가웠다.


한순간 혈교도들의 입에 침묵을 불러올 정도로.


“아이들의 피로 술법을 펼친다 들었는데.”


정사마. 인의를 저버리고 힘을 좇으며 괴물이 되어가는 이들이 많았다. 살육을 밥먹듯이 일삼는 이들은 무림에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혈교는 가장 천시되는 대상이었다.


어딜가나 귀애받아야 할 아이들. 그런 이들의 피를 술법에 사용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렇다. 화율이 말한대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살업을 저어해야 할 불자가 거리낌 없이 머리를 터트려버리는 악독한 괴물들.


“사실인가? 아니......물을 필요도 없네.”


문득, 백연의 시선이 그를 가로막고 있는 대여섯의 혈교도를 넘어 그 뒤편에 닿았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은 창백한 시체. 온몸의 피를 전부 뺏긴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홉뜨고 죽어 있는 것은 지학에도 이르지 못한 아이들의 시체들이었다.


“무, 무엇하나! 놈은 하나다. 당장......”

“......하나 생각이 들었어. 언제고 내가 경지에 이르면.”


나직이 깔린 목소리. 왼손으로 쥔 여휘검의 검신이 거칠게 기파를 뿜어냈다. 짧은 순간 수십으로 압축된 태청신공의 내공 기파가 검신 안에서 더없이 예리한 일격을 빚어낸다. 뇌전을 엮어 만든 이름없는 일검.


“혈교는 멸문(滅門)이다.”


후욱!


찰나 혈교도들이 제각기 병장기를 뽑아들려는 순간이었다. 백연이 왼발을 반보 내딛었다.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요동치는 근맥이 그대로 바닥에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 고정되었다. 발바닥 용천혈의 내뿜는 기파를 반대로 이용했다. 한순간 기운을 빨아들이듯 운용했는데,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동시에.


검끝이 우하단에 내려왔다. 종아리 비복근(腓腹筋)부터 허벅지 대퇴근(大腿筋)까지 이어진 힘을 태산같이 굳건한 축으로 삼으며. 허리를 거대한 반환점으로 잡은 것인데, 오른편으로 반쯤 비튼 몸이 자연스러웠다.


그와 함께 태청신공의 뇌기가 폭발하듯 세맥을 질주했다. 환골탈태로 강건해진 세맥이 일순 찢어질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잠시. 등허리부터 견갑골을 지나 왼팔 상완근(上腕筋)에 이른 기파가 하나의 커다란 회전을 이루어냈다.


전부.


한순간이었다. 태청신공의 뇌기 가속이 그대로 상체 회전에 덧붙여진다. 일검의 파괴력. 검법의 예리함은 그 무엇보다도 속도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예(銳)와 쾌(快)를 따로 논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백연의 손안에 담긴 검끝이 지금 무엇보다도 예리한 일검(一劍)으로 화한 이유이기도 했다.


찰나 시린 뇌광이 분분히 검끝에서 터져나왔다. 다음 순간 우하단에서 늘어뜨려져 있던 검끝은, 직후 시간을 건너뛴 듯이 좌상단에서 멈춰 있었다.


그 끝에 붓자락마냥 기다란 백광을 매단채로.


“......무슨?”


혈교도가 의문섞인 음성을 내뱉는 순간.


후욱.


벽의 등불이 흔들렸다. 한순간 그들을 비추고 있던 등불의 빛이 분분히 쪼개진 듯이 허공을 따라 일렁인다.


아주 잠깐이나마 검격이 빛살마저 잘라버린 듯이.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찰나의 순간이었다. 쪼개진 등불의 빛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꿈결같이 늘어진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후.


피이이잇-!


높다란 바람 소리가 일었다. 그들의 주변을 따라 새어들어오는 바람결. 그와 동시였다. 막 병장기를 꺼내들던 혈교도들의 몸이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 전체를 따라 사선으로 그어진 검흔을 따라서였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일격.


그들의 뒤편을 따라 버티고 선 벽면은 통째로 잘려나가 있었다. 사선으로 그어진 거대한 검흔이 전각의 이층 벽면을 갈라버린 것이었다.


“......하아.”


백연이 억눌린 듯한 신음을 뱉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혈교도들의 시체가 일제히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잘려나가 뚫린 벽 사이로 스쳐 들어오는 찬바람을 느끼며 백연이 잠시 눈을 감았다. 경혈에 실린 부하가 막대했다. 아직도 허공을 따라 흩어져 나가는 경파 조각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무리했어.’


굳이 쓸 필요가 없을만큼 강한 검격을 날린 것이다. 그럼에도 백연은 후회하지 않았다. 두번의 호흡으로 기파를 갈무리한 백연이 혈교도들의 시체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바닥 한 구석에 쓰러진 창백한 시체들을 향해서였다. 아이들의 시체 앞에 수그린 백연이 그들의 눈을 감겨주곤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후우욱.


주변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사람의 형상으로 화했다. 주변을 힐끔 쳐다본 흑랑이 혀를 쯧 차고는 입을 열었다.


“한바탕 했군.”

“찾았나요?”


흑랑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던지는 물음. 그에 흑랑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 하지만 문제가 있다.”

“......뭐죠?”

“놈들이 모여 있어.”


그에 백연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욱신거리며 아파오는 왼팔을 매만진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놈들이라 하면.”

“혈교의 사도들이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혈공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놈들이야.”

“어쩐지. 이곳에 평교도들 밖에 없다 싶었는데 전부 도망가 있었군요.”


백연이 바닥에 퍼질러진 혈교도들의 시체에 시선을 흘깃 던졌다.


저들 또한 혈교도지만, 그 무위가 약하다 할 수 있는 이들. 혈공을 익힌지 얼마 안되었거나, 그 자질이 부족해 무공을 많이 연마하지 못한 이들이다. 진정으로 혈공을 사용할 수 있는 사도들과는 달랐다.


흑랑이 말한대로 사도들이 모여있다 하면 그곳이 곧 술법이 행해지는 장소.


“어디입니까?”

“이 밑이다. 땅이 깊게 파져 있는데, 커다란 동혈이 있어. 일정 구간부터는 월영신공을 쓰고도 진입할 수가 없더군.”

“......해랑은요?”

“팔영과 함께 뇌옥에 갇혀 있던 모양인데.”


이어지는 흑랑의 말에 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막 끌려갔다. 다른 아이들 몇몇과 함께.”

“젠장.”

“놈들이 술법을 시작하려 한다.”


생각한 것보다도 더욱 빨랐다. 그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알고 빠르게 움직인건지, 아니면 애초에 지금 술법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던 것인지.


‘후자겠지.’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흑랑의 말대로라면 해랑은 아직 살아있다.


아직은.


“잠깐의 여유는 있다. 운기라도 하고 가는 것도 괜찮겠지.”


그를 힐끗 응시한 흑랑의 말. 흐트러진 백연의 호흡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러나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운연동공으로 닦아낸 일련의 호흡. 들이쉬었던 숨을 천천히 뱉는 사이 이미 혈맥이 점차 원 상태를 찾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흐트러진 호흡이 삽시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윽고 눈을 뜬 백연이 중얼거렸다.


“이제 됐습니다.”


그때였다. 건물 왼편에서 쿠궁 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신형이 재빠르게 쇄도했다. 언뜻 엿보이는 황금빛 신형. 그 사이 혈교도들을 여럿 격살했는지 뺨에 핏물을 두어방울 묻히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연의 앞에 발을 디디며 멈춰선 화율이 숨을 뱉었다.


“저쪽은 없습니다. 건물 뒤편도 아니고,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군요.”

“이미 찾았다. 밑이다.”

“......그랬군요.”


화율이 백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갑니까?”

“예.”


백연이 검을 뽑아 아래를 겨눴다. 그에 흑랑이 고개를 기울였다.


“바닥을 부수고 내려가려고?”

“길을 정확히 모르니 어쩔 수 없습니다. 혹 흑랑이 길을 알고 있나요?”

“아니. 모른다. 월영신공은 길을 알려주는 무공은 아니라서 말이지.”

“그럼 이대로......”


중얼거리던 백연이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사방으로 펼쳐진 그의 기감. 찰나 무언가 감각을 잡아냈다. 한순간 느껴진 위화감에 백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백연? 왜 그러나.”

“여기.”


쿵.


나직히 중얼거리는 순간, 백연은 이미 진각을 밟고 있었다. 쾌속하게 끌어올린 태청신공의 뇌기가 번뜩이며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고, 뒤이어 그의 신형이 짧은 거리를 뛰어넘듯 움직였다.


출수는 그와 함께였다. 백광을 실은채 허공을 예리하게 가른 검격이 전각의 한 구석을 내리치는 순간.


쩌엉!


여휘검 앞으로 두 자루의 짧은 검신이 교차되어 힘겹게 검격을 막아섰다. 허공에 흩날리는 불티가 진했다.


그의 검격을 막아선 무인을 보며 백연이 뇌까렸다.


“쥐새끼가 있었군요.”

“쥐새끼라니. 말씀이 심하십니다. 하하.”


그리 말하며 웃어보이는 얼굴이 익숙했다. 일전 한번 만난 적 있는 무인.


가벼운 언행과 스스로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움직임. 그리고 동시에 백연조차도 기감을 집중해야 알아차릴 정도의 잠행술. 완벽한 살수의 표본이라 부를 만한 무인은, 일전 신강에서 마주쳤던 적 있는 얼굴이었다.


“참월대주.”

“이거,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사도 육진의 일익인 천살문(擅殺門)의 참월대주가, 백연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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