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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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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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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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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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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네가 돌아올 곳(11)

DUMMY

※※※



후두둑.


솔나무 끄트머리에 쌓인 눈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낭창 휘어든 나뭇가지 위로 피어난 설화(雪花)가 햇빛에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청해 옥수 곤륜산.


보기 드물게 좋은 날씨였다. 지난 며칠간 눈바람이 잦았는데, 겨울의 중순에 접어들자 귀신같이 청아한 날씨가 찾아왔다. 살을 에일것 같은 찬 공기도 떨어지는 햇빛 아래 조금 누그러진다.


그럼에도 쌀쌀한 날씨였다. 산맥 위는 더욱 그러했다. 구름을 발치에 놓고 자리잡은 곤륜의 겨울은 혹독했다. 어지간한 장정이라도 솜옷을 껴입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울 만큼.


그러나.


“삼원(三元), 제 일초(一招)!”

“하압!”


연무장에 울려퍼지는 기합성이 요란했다. 치켜든 검끝이 붉은 기파를 매달고 강맹한 기세로 떨어져 내린다. 지시에 맞춰 검법을 연마하는 무인들의 옷자락은 단촐한 백색 무복 한겹 뿐이었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당장에라도 추워서 벌벌 떨고 있을 상황이건만, 그들의 숨결은 전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검을 휘두를때마다 피부에서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김이 소년들의 몸에서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백운, 검끝이 낮다! 이결이 너는 무릎을 낮추고!”

“예, 사숙조!”


그들의 앞에 서서 목청껏 외치는 이는 더욱 심했다. 상의를 완전히 벗어던진 거구의 사내. 피부 위로 거세게 달아오른 열기가 눈으로도 보일 정도다. 열기를 내뿜다 못해 한겨울임에도 피부를 타고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재차 검을 휘두르는 백자 배 아이들을 보며 그가 씩 미소를 지었다.


“적양공......좋구나.”


신웅이 중얼거렸다. 그의 몸에서 타오르는 화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적양공(赤陽功). 불꽃을 다루는 극양의 무공이다. 백연이 만들어낸 무공은 청율의 손에 의해 차곡차곡 정리되어 무궁각에 비치되었다. 아무나 볼 수 없게 막아놓긴 했지만, 운연동공을 제대로 익혔고 신체 단련이 어느정도 된 아이들이라면 가릴 것 없이 무공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적양공의 극양의 기운이 몸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현음공(陰陰功)과 함께 배워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그 난이도가 쉽지 않았다.


처음 입문을 시작해 제대로 불꽃을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흐읍!”


신웅이 기합성과 함께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권격 끝의 공기가 휘어들었다. 나선으로 감긴 낙안권의 경파에 불꽃이 더해진다. 찰나 허공을 짧게 끊어치자 불티가 꽃잎처럼 흩날리다 이내 대기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적양공 입문에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성공한 것은 신웅 뿐만이 아니었다. 모여들어 검을 펼치는 백자 배 아이들. 개중에서도 이미 검끝에 미약한 불꽃을 매달고 검격을 펼치는 이들이 많았다.


쉼없는 수련과 단련의 결과물이었다.


성취를 이룬 아이들을 보며 신웅이 뿌듯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음? 백이결! 내가 몇번이나 무릎을 낮추라고 했잖느냐!”


우렁우렁한 신웅의 외침이 재차 터져나왔다. 여느때와 다를 바 없는 곤륜의 아침이었다.


그렇게 수련하기를 한참.


“그만! 아침 수련은 여기까지다. 이결이는 밥 먹고 따로 찾아오고.”

“알겠습니다, 사숙조.”

“그래. 고생들 했다.”


새벽부터 검을 휘두른 아이들이 제각기 흩어진다. 몇몇은 부족한 잠을 청하러 다시 운향각으로 사라지고, 대부분은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식당으로 몰려갔다.


흩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신웅도 호흡을 추스르고 들어가려던 때.


“열심이구나, 다들 춥지는 않은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그에 벌떡 몸을 돌린 신웅이 고개를 숙였다.


“장문인.”


언제 왔는지 연무장 끝자락에 조용히 선 운결. 눈처럼 새하얀 백색 도포를 껴입고 나온 참이었는데, 아이들을 바라보며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것이 여전했다.


“이른 새벽부터 열심이구나. 헌데......”


신웅을 바라본 운결의 눈썹이 팍 휘어들었다.


“그 꼴이 무엇이더냐? 이래봬도 우리도 도문이다. 옷은 좀 입고 다니거라.”

“수련할때마다 옷을 하나씩 갈아입으란 말이십니까? 벗고 있는게 편합니다.”

“헛허.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어찌 보겠느냐. 화산의 자제분이 지금 없기에 망정이지......”

“아무도 신경 안씁니다. 적양공 열기가 강하니 수련하는 동안에는 이리 해야지요.”

“고집은 신자 배나 백자 배나 같구나.”


쯧, 하고 혀를 차는 운결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신웅이 무복을 걸쳐입었다. 얇은 백색 무복을 가벼이 두른 그가 어깨를 매만졌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장문인.”

“그렇구나. 며칠동안 흐리던 것이. 왠지 기분이 좋구나.”

“날도 좋은데 아이들을 모아 산행이나 할까 합니다. 산맥에 영험한 약초들이 지천에 널려있을 것인데. 실한 것이라도 하나 찾으면 하오문에게 가져가 영단으로 가공해 나눠주는 것도 좋겠지요.”

“이제 아주 거리낌이 없구나. 약초꾼이라도 하려 그러느냐.”


운결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를 보며 신웅이 씩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놔둬봤자 산짐승 밥입니다. 애들이라도 먹이는게 좋겠지요. 청율이 또 귀한 풀은 기가 막히게 구별하는데, 녀석도 데리고 가는 것이......”


말하던 그때였다. 문득 저편이 소란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웅이 고개를 돌렸다.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누가 왔나보군요. 하오문에 주문한 물건들이 오려면 아직 좀 남았을터인데.”


의아한 신웅의 목소리. 그러나 운결은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곤륜파의 정문쪽을 향하는 그의 시선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하오문은 아닌 것 같다.”


그때였다.


“사숙! 장문인!”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연푸른 도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청년. 머리를 단아하게 땋아내린 청율이 평소의 침착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눈을 반짝거리며 외쳤다.


“청율? 뭐가 그리 급하길래 그러냐. 그러다 다친다.”


황급히 달려와 멈춰선 청율을 향해 신웅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운결은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청율을 향해 운결이 조용히 물었다.


“왔구나.”


그에 고개를 번쩍 들어올린 청율이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장문인. 돌아왔습니다!”


잠시 눈을 깜빡인 신웅의 표정도 서서히 바뀌었다. 그제서야 정문의 소란이 무슨 일인지 알아챈 신웅이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그말은......”

“백연이랑 아이들이 왔습니다!”


쿠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웅이 땅을 박찼다. 재빠르게 기파를 일으켜 저편 정문으로 달려가는 신웅의 뒷모습을 보며 운결이 웃음을 흘렸다. 하늘을 슬쩍 올려다본 그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좋은 날이구나.”



※※※



청해(靑海) 서녕(西宁)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서쪽.


드넓은 청해호(靑海湖)의 외곽을 따라 황량한 벌판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칼날같은 겨울 바람이 땅을 스칠때마다 희미한 먼지가 이는 것도 잠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얼어붙은 대지 위로 말과 상행이 쉬이 오가기 힘든지라 더욱 그러했다. 봄이 오면 날뛰는 사파 무리를 감안하고서라도 이곳을 오가는 행렬이 있겠으나, 적막한 겨울의 중간에는 아니었다.


청해를 들쑤시고 다니는 마적 무리조차 겨울의 벌판 앞에서는 말머리를 돌리기 마련.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의 가장자리를 누비는 새매의 시야에도 그러했다. 들짐승이나 사냥감이 일체 보이지 않는 이곳은 잠든 땅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창공을 누비던 새매의 눈에 희끄무레하게 일렁이는 대기가 보였다. 저쪽 서편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흔적. 대기를 가르는 한줄기 선은 뛰어난 안법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포착하기 어려울만큼 미약했다.


동시에 날개깃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온기가 미미하게 따스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때.


삐이이이-


날카로운 새의 울음소리가 지평을 따라 흩어졌다. 찰나 허공을 따라 길쭉하게 치솟는 바람과 함께였다.


문득.


하늘 저편에서부터 황량한 지면까지 한줄기 희미한 선이 그어졌다. 맑은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던 구름이 멈추는 것과 함께였다.


직후 길게 울려퍼지던 새의 울음소리가 끊어진 그 순간.


콰아아아아!


광풍이 대지를 휩쓸었다. 하늘 저편에서부터 지면까지 이어진 선을 따라서였다. 삽시간에 휘몰아친 바람이 날카로이 흩어지며 흰 구름을 깃털처럼 갈라냈다.


자연적이지 않았다. 광풍을 이끈 것은 초월적인 힘이 깃든 내공 경파였다. 전부 한 인물의 검끝에서 뻗어나온 것이었는데, 그 검조차도 철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반투명한 검신을 따라 갈라진 햇빛이 분분히 흩어진다. 쉴새없이 일렁이는 검 두자루는 전부 흐르는 바람결을 덧대 만든 듯했다.


검(劍)의 극치.


신공절학을 몸에 담은 검객이 지고한 경지에 이르러 엮어낸 검이었다. 바람을 검으로 삼은 무인. 풍백 이신이 길다란 호흡을 내뱉었다.


동시에 몸에 쌓인 열기가 한줄기 숨결로 바뀌어 허공으로 흩어져 나왔다. 호흡으로 몸에 쌓인 경파를 빼내는 것이었는데, 한순간의 움직임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단지 숨을 쉬는 것 만으로 경혈을 파고드는 강대한 내가중수법의 잔흔을 해소하는 수법.


지극히 실전적이었다. 수많은 전장을 누벼온 떠돌이 검객의 습관이기도 했다. 언제고 검을 내칠 수 있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풍백이 손에 쥔 두 자루 무형검(無形劍)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호흡을 갈무리하는 풍백의 시선이 사방을 빠르게 훑었다. 그의 옆으로 펼쳐진 청해호 위로 잔잔한 파문이 스치고 있었다. 직전 일어난 바람의 영향이었다.


“......지치는군요.”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천하오대검수. 초월적인 경지에 다다른 그로써도 우호법 화천귀제와의 전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대.


십여년 전에 그를 상대했던 현천검제조차 한 손을 잘라 패퇴시키는 것에서 그친 적이다. 다시 말하면, 며칠간이나 현천검제를 대등하게 상대하고도 도주할 여력이 있는 괴물이라는 소리.


그가 십여년이 지나 더욱 강해져 돌아왔다. 염혈신공의 열기 속에서 쉴새없이 전투를 이어나간 풍백의 힘이 상당히 소모된 것도 당연한 일.


“제때 도망가서 다행인지.”


중얼거리며 거는 웃음이 희미했다.


화천귀제와의 전투는 타의적으로 중단되었다. 갑작스레 협곡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탓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풍백은 백연과 그 일행이 잘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그 자신이 빠져 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검법과 보신경 일체의 신공절학은 그의 몸놀림을 천하에서 가장 신묘한 무인중 하나로 만들어주었고, 그 덕에 신강을 빠져나온 그는 쉴새없이 대지를 가로질러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추격은 없었다.


화천귀제 본인이라 해도 풍백이 작정하고 몸을 빼면 쫓아오지 못한다. 그를 잡을 수 있는 무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천하 무림에서 가장 걸음이 빠른 무인이 아니라면.


휘이이-


문득 풍백이 눈을 깜빡였다. 호수의 표면을 따라 일렁이는 물결이 선명했다. 이미 그가 일으켰던 바람의 여파는 전부 사라졌건만.


동시에 귓가에 들려오는 휘파람 같은 소리를 느낀 풍백이 기파를 거뒀다. 손에 들린 무형검이 허공으로 파스스 녹아내리는 것도 잠깐. 호수에서 시선을 뗀 그가 벌판 저편에 시선을 던지는 순간.


저 멀리 지평선에서부터 이어지는 한줄기 희끄무레한 분진이 보였다. 대지를 따라 일직선으로 그어지는 흔적이 더없이 쾌속했다. 안법을 돋운 풍백의 눈에도 쉬이 인지되기 어려울 만큼.


직후였다.


“내 자네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는가? 삭신이 쑤시는구먼.”


목소리가 먼저였다. 풍백의 눈 앞, 호수 가장자리에 한 노인이 어느새 걸터앉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그 뒤였다. 아직 지평선에서 이어지는 한줄기 분진은 이곳에 닿지 못했건만.


속도가 여파를 앞질렀다.


“정정하신 분이 왜 그러십니까.”


풍백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


두 사람을 둘러싸고 한순간 풍백조차 눈살을 찌푸릴만큼 강렬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굉음이 귀청을 찢는것도 동시였다. 풍백이 가벼이 손을 저어 바람을 흩어내자 호숫가에 걸터앉아 있던 노인이 허허 웃음을 흘렸다.


“미안하게 됐네. 나이가 드니 걸음이 거칠어져.”


그에 풍백이 가만히 웃었다.


천하제일쾌(天下第一快). 경공 성취가 하늘에 닿은 무인.


경공으로 뛰어나다 명성이 자자한 개방 내에서도 비할자가 없는 괴물인 눈앞의 노인은, 개방주 신개였다.


“헌데, 왜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풍백이 물었다.


의문인 일이었다. 신개의 말로 보아 그를 찾아다닌 것인데, 신강쪽에 있다는 정보 하나만 가지고 그를 찾기 위해서는 제아무리 천하제일쾌라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일이다.


개방주는 그리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의 일좌. 정파 내에서 가장 거대한 조직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란 그러한 의미다.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격무에 항시 시달리고 있는 것이 개방주다.


그러했기에 주독조차도 삼매진화로 태워버리는 기예를 선보이는 것이다. 개방주의 시간은 타인의 배로 길지만, 그의 역할은 수십배로 많기에.


“바쁘신줄로만 알았습니다만.”

“바쁘지. 자네 덕에 더 바쁘고. 헌데 자네에게 말을 전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말일세.”


그에 풍백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개방주가 누구의 요청을 받아 움직인다고?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다. 무당의 장문인이나 소림의 방장이라 해도 개방주에게 요청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었다. 부탁이라면 모를까.


“거절하시지 않고요?”

“거절할 수가 없었네.”


호숫가에 걸터앉은 신개가 허리춤의 술병을 들어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유왕(裕王)께서 요청하신 일이니 말일세.”


그 말을 듣는 순간 풍백의 표정이 굳어들었다.


유왕 주재후(朱載垕).


북경 황실에 앉아있는 주(朱)씨 일가의 핏줄이자, 현 황상의 삼남(三男).


삼남이라 하나 유왕의 두 형이 이미 죽어버린 지금의 황실로써는, 적법한 후계의 위에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태자로 책봉되지만 않았다 뿐이지 실질적인 황태자의 위에 있다고 봐도 좋을 사람.


풍백 자신 또한 익숙한 인물이었다. 과거 마주칠 일이 적지 않았기도 했을 뿐더러, 그 자신이 직접 무예를 가르친 적 또한 몇차례 있었으니.


그러나 그는 이미 군부를 등진 인물이었다. 이제와서 유왕이 그를 부를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유왕께서 그대에게 시간이 되는 한 최대한 빠르게 와달라 부탁하시더구먼.”

“북경으로 말입니까? 저는 군부를 등진 몸. 환대받지 못할 텐데요.”

“대놓고 오라는 것이 아닐세. 이제는 자네 얼굴을 알아볼 사람도 없을 곳인데.”

“그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필요한 것인지 모를 일이군요.”


더 이상 유왕의 말을 들을 이유도 없었다. 과거라면 몰라도, 무림에 투신한 이후의 그는 황가의 명을 따라야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각종 금제가 존재하긴 하나, 그것을 지키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었다. 외려 유왕의 요청대로 북경에 올라가는 것이 금제를 어기는 일이 될 터.


허나 신개는 그런 풍백의 반응에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 겨울이 지나고 곧 봄이 오면, 비무제전이 열릴 것은 알고 있겠지?”

“비무제전이 열립니까?”

“......모르고 있었군. 그래. 천하비무제전이 열리네. 정파 무림의 위신을 세우고 과시하기 위함이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해 온 무림의 무인들이 모여들걸세.”

“헌데 그것과 유왕께서 저를 부르신 것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풍백의 물음. 그에 신개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유왕께서, 금번 비무제전에 참관하고 싶으시다 하셨네. 자네를 호위로.”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직후 풍백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세한건 가서 여쭤보게나. 우선 자네는.”


신개가 풍백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노 거지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새겨졌다. 왠지 모르게 고소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북경으로 뛰어가야겠군.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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