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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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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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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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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월동(越冬)(4)

DUMMY

손아귀가 저릿했다. 유성의 일검을 받아낸 직후였다.


‘힘이 강해.’


백연은 생각했다.


자신이 검을 내리치고 유성이 비스듬히 올려베는 형국이었다. 검로가 겹칠때 상단세를 취한 검격이 조금이나마 힘의 우위를 가져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유성은 달랐다.


어느새 검신을 타고 분홍빛 기파가 방울처럼 아롱지고 있었다. 검격 경파가 새어나오고 있는 탓이다.


힘을 내뿜고 있다는 의미였다. 자하신공(紫霞神功)의 공력을 시작부터 끌어올린 채로.


“금안나찰을 상대하던 네 검을 본 이후 줄곧 생각했었지.”


유성이 줄기줄기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자홍색 안광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검을 사선으로 올려붙이면서였다. 백연의 코앞에 발을 디딘채로 그를 살풋 올려다보는 형세였는데, 순간 얼굴에 스친 것은 다양한 감정이었다.


“어째서 너는 놈을 상대할 수 있는데 나는 안될까.”


유성이 중얼거렸다.


어조에 담긴 고민의 흔적이 깊었다. 지금 입밖으로 낸 말을 머리속에서 한두번 반복한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을련지.


백연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답할 생각이 없었거니와, 그럴 틈도 없었다. 중얼거린 유성이 그대로 미끄러지듯 보법을 내딛는다. 올려치던 검격을 회수하는 즉시 앞으로 휘두르는 모습. 꽃잎처럼 흩어진 검격이 한순간 사람들의 인지를 뛰어넘어 가속했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바람이 세갈래 칼날이 되어 유성의 앞을 휩쓸었다.


그러나 백연은 짓쳐오는 검격을 피하지 않았다. 길쭉하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백연의 눈에 연자색 기파가 깃들었다. 동시에 짓쳐오는 세갈래의 검격도 인지 속으로 들어왔다. 일전 자하신공을 처음 봤을때에는 감각만으로 상대해야 했던 유성의 속도가 이제는 눈에 보였다. 태청신공의 힘이었다.


‘삼원검.’


속으로 뇌까리는 것과 동시에 검을 여상히 그어내렸다. 일검으로 세갈래 검풍을 한번에 맞받아쳤다. 시린 벼락이 단숨에 허공을 물들이며 연분홍빛 꽃잎들을 관통했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검풍이 연무장 위를 휩쓸었다. 한순간 지켜보던 사람들이 숨을 헉 들이킬 정도였다. 그러나 검격 여파가 걷힌 직후, 연무장 위의 백연과 유성은 제각기 호흡을 고르며 검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유성이 전보다 한걸음 물러난 채였다.


“무공 고하의 문제가 아니야. 그렇지? 섬서에서의 네 무공 수위는 명백히 나보다 약했어. 천월 사숙조는 물론이고.”

“그랬지.”


백연이 답했다.


부정하지 않았다. 금안나찰을 상대했을 때는 적양공을 막 만들어낸 직후. 적화검류를 창안했다 해도 검룡을 뛰어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물며 화산의 일대제자인 천월은 당연했다. 지금조차도 자신이 유성에 비해 커다란 무공의 우위를 지니고 있다 말하기 어렵거늘.


“그렇지만 그날 너는 어둠을 밝히는 암화(暗火)였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화산제일기재, 검룡, 검신의 직전제자......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명에 불과했으니까.”


유성이 말했다.


자책이 서린 목소리는 아니었다. 이미 그런 것을 벗어던졌다. 고민의 흔적이 새겨져 있으나, 그것이 지금까지 스스로를 붙들고 있지는 않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고민과 수련으로 몇개월을 허비하고 이곳에 와, 다시 너한테 물었을때 네가 말했었지. 스스로를 믿고 머리를 비우라고.”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는데.”


유성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투명한 미소가 햇살 아래 번졌다.


“확인해봐.”


콰악.


진각을 내딛는 가죽신의 묵직한 소음이 맑은 목소리를 뒤따랐다. 암향표 보법을 밟은 유성의 신형이 한순간 화악 커졌다. 자하신공 기파가 실린 검격을 횡격으로 내치면서였다.


실로 압도적이었다. 검에 실린 기세가 거침이 없어졌다. 일전과는 사뭇 다른 검세를 엮어낸 것이었다.


‘잡생각이 사라졌다.’


일전 유성의 검격은 정직했다. 더없이 올곧은 정파 화산의 천재. 그 품행과 성정만큼이나 곧은 검을 지녔다.


허나 화산의 검은 변(變)과 환(幻)을 기반으로 예(銳)와 쾌(快)를 자유롭게 섞어내는 검식. 지나치게 화려해 요사스럽다 표현될 정도로 상대의 눈을 미혹시키는 검이다. 유성의 매화검법은 기교는 충실하게 재현했으나 거기까지였었다.


검룡이 엮어내던 변과 환은 역설적이게도 정직한 허초였으니까.


“매화검법.”


그때 불현듯 횡격으로 짓쳐오던 검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와 함께 유성이 한순간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백연조차 흠칫 놀라 기감을 확장해야 할 정도로.


‘횡격이 통째로 허초......!’


검이 사라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기세가 백연도 구분하지 못할만큼 실제와 같았던 탓이다. 검격에 실린것이 살기였다면 간파했을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지금 상황은 대련. 단순한 기세만큼은 백연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동시에 백연의 등 뒤에 옅은 바람이 스쳤다. 인지하는 순간 백연은 걸음을 비틀었다.


“매화인동(梅花忍冬).”


등허리를 따라 섬짓하게 날카로운 기세가 짓쳐들었다. 그러나 백연은 다급하게 뒤도는 대신 그대로 땅을 박찼다. 검끝을 바닥에 꽂아내리면서였다.


파라락!


소리가 울린 직후였다. 눈앞에서 땅에 붙을듯이 낮게 휘돌며 검을 휘두른 유성의 모습이 보였다. 다리를 노린 일격이었는데, 이미 백연의 몸은 허공에 거꾸로 떠 있었다. 여휘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허공에 날린 것이었다.


두번 다 허초였다. 첫번째 횡격도, 두번째로 등허리를 노리고 짓쳐들던 기세도.


순전한 직감으로 파훼했다. 그의 눈앞에서 사라진 유성이 등 뒤를 점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공간을 격하듯 움직이는 암향표라 해도 공간을 실제로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휘릭.


백연이 몸을 뒤틀었다. 낮게 회전한 유성이 솟구치듯 위로 검격을 날리는 것과 함께였다.


쩌엉!


허공에서 내친 백연의 수도가 유성의 검신 옆면을 후렸다. 짧은 초식 교환의 반동을 이용해 백연이 물러나며 바닥에 구르듯 착지했다. 반걸음 물러난 유성과 눈이 마주치는 것도 거의 동시였다.


두 소년이 동시에 씩 미소를 지었다.


“또 간다.”

“얼마든지.”


짧은 대화가 끝이었다. 직후 두 소년이 짜맞춘듯이 함께 땅을 박찼다.


백광을 이끌며 전진한 백연이 횡격을 내쳤다. 사선으로 굽이치는 뇌기가 허공을 물들였다. 그 앞에 아홉겹의 매화 꽃잎이 펼쳐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쩌엉! 쩌저정!


검격이 연이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꽃잎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안에서부터 번뜩이는 칼날이 뻗어나왔다. 꽃잎처럼 흩어지는 아홉 차례의 공격초에서 일곱의 허초를 간파하고 두번의 검격을 받아쳤다. 뒤이어 백연의 반격초가 벼락처럼 내리찍혔다.


콰앙!


일검이 더없이 쾌속했다. 자하신공의 속도를 점차 넘어서고 있었다.


‘더.’


백연이 생각했다.


청화단주와의 일전에서 그는 한계를 넘은 속도를 이끌어냈었다. 지금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다. 생사결에 임해야 그렇게 될까.


‘힘을 속도로 갈음한다.’


쾌검을 중첩시킨다. 벼락을 휘감은 검격을 그대로 한번 더 내쳤다. 종격 두차례를 한번에 겹친 것인데, 곁에서 보기에는 한번의 검격으로 보일 정도였다.


쩌어어엉!


백연의 눈에 잇새로 옅은 신음을 흘리는 유성의 표정이 엿보였다. 미간을 살풋 찡그리는 모습. 그럼에도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 짙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단순한 힘은 밀려.’


머릿속에 새겼다. 환골탈태의 과정에서 그의 몸이 무공에 맞게 짜맞춰졌기 때문일까. 힘으로 압도하는 검격은 그의 취향도, 그가 추구하는 방향도 아니었다.


상관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면 될 뿐이었다.


백연의 눈이 번뜩였다. 어느새 내리친 종격에서 벗어난 유성이 재차 짓쳐들고 있었다. 신묘한 보법으로 그와 속도를 맞춰내며 허공에 수십갈래의 검격을 그어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극히 날카로운 검로를 보며 백연은 태연히 검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유성의 검을 따라하듯 역(逆)방향으로 뇌광의 검로가 새겨졌다.


“하하, 너는 정말......!”


유성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휘몰아치는 꽃잎의 파도를 검끝으로 지휘하며 전진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이 더없이 치명적이었다. 백연의 검격보다 극히 찰나만큼 빨랐다.


‘좀 더.’


툭.


새하얀 무복의 소매에 연분홍빛 꽃잎 한장이 스치듯 닿는 순간이었다. 백연의 검끝이 낭창하게 휘어지며 허공에 새겨진 뇌광의 검로를 하나로 엮어내었다. 동시에 소년의 머릿속에 검로의 이름이 스쳤다.


‘뇌풍(雷風).’


파바바바박!


벼락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백연을 향해 떨어지던 매화 꽃잎을 집어삼켰다. 휘몰아치는 검격 경파가 팔방을 휩쓸었다. 태청신공과 자하신공의 진기 파동이 대기중에 파문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연무장 주변에 얕게 쌓인 눈발이 한순간 화악 흩어져나갈 정도였다.


“음......!”


지켜보던 능운이 침음성을 흘리며 손바닥을 뻗었다. 짧게 펼쳐진 면장(綿掌)이 허공에 퍼지는 기파를 한순간에 풀어헤쳤다. 잠깐이나마 그의 시야를 가렸던 경력 여파가 흩어지자 다시금 검격을 이어나가는 두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검룡이......”


능운이 중얼거렸다.


허공에 번뜩이며 이어지는 자하신공의 검격. 그 위세가 더없이 강렬했다. 검룡이 천하에 둘도 없을 기재라는 소문은 자자했으나, 그 자질이 벌써 자하신공에까지 닿았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천하를 논할 자질. 그리 말해야 옳았다. 검룡 유성이 언제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는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숫제 괴물이라 봐도 좋을 정도다.


‘무영과의 거리가 더 벌어졌구나.’


능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운룡(靑雲龍) 무영. 무당파의 기재이자 차기 무당을 이끌 인재였다. 무영의 자질은 더없이 뛰어났고, 능운 또한 그리 평가했으나 검룡은 그와도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능운은 눈앞의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이는 아니었다.


허나 문제는 검룡만이 아니었다.


“암화.”


능운이 눈을 부릅떴다.


처음 그와 손을 나눈 직후부터 자질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았다. 허나 착각했다. 능운 자신과 손을 나눈 시점에 저 소년은 전력을 다한적이 없던 것이었다. 두번밖에 출수를 받아보지 못해서였을까. 저만한 자질을 지녔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능운의 입매가 비틀렸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지금 보여주는 모습도 전부일지 알기 어려웠다. 어디까지가 전력일까.


“......장문인. 아이의 이름이 뭐라 하였소이까?”

“헛허, 우리 제자 놈의 이름 말이오? 백연이라 하오.”

“백연. 암화(暗火) 백연이라.”


능운이 나직히 이름을 새겼다.


그렇게 감정의 동요를 보이는 것도 잠시. 허공을 수놓는 백광과 매화꽃잎을 눈에 담으며 능운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혼잣말을 흘리듯 중얼거리는 것도 함께였다.


“홀로 빛나는 진주가 진흙탕에 묻혀있었구나.”


여상한 말투의 끄트머리에 실린 것은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였다. 자연히 운결이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무슨 말이시오?”

“자질이 아깝다는 소리였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구려.”


가라앉는 운결의 음성에 능운이 입매를 틀어올렸다.


“창공을 누벼야 할 새가 날개를 꺾고 사람들 사이에서 걷고 있단 말이오. 주변에 맞춰주려고.”

“검절.”

“둥지가 날개를 달아주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다만 안타까울 뿐이외다.”

“말이 지나치구려.”

“지나치다 생각하시오? 본 무인이 하나는 확언할 수 있소이다.”


쩌저저정!


재차 백광이 허공을 물들였다. 어느새 검을 맞대고 코앞에 붙어 힘을 겨루고 있는 유성과 백연을 눈에 담으며 능운이 입을 열었다.


“우리 무당의 장문인께서도, 저 아이를 보았으면 가르침을 내리고 싶어했을 것이오.”

“그런......!”


운결이 눈을 부릅떴다.


한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남존무당의 장문인. 천하에 몇 없을 절세고수이다. 신선이라 칭해지는 것을 넘어, 호북의 사람들에게는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위인.


그런이가 가르침을 내리고 싶어할 자질이라니. 달리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런 것이야말로 백연에게 날개를 달아줄 일이다. 운결 자신은 결코 행할 수 없는.


말문이 끊긴 운결을 두고 오연한 시선으로 연무장 위를 바라보던 능운이 뒷짐을 졌다.


“안내해주셔서 고맙소이다. 이만하면 다 봤으니 비무제전에서 뵙도록 하겠소.”

“......”

“그때는 다른 아이들의 실력도 보고 싶구려. 일인문파(一人門派)가 아닌 이상에야......”


흐리는 말끝에는 명백한 비꼼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한순간 구름같은 진기 파동이 주변을 물들이는 것도 잠시, 능운의 신형이 누군가 흩어 없앤듯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운결의 눈에는 제자리에서 녹아 없어진 듯 보였다.


능운이 사라진 자리를 보던 운결이 옅은 한숨을 뱉었다.


“날개라......”


운결이 나직히 뇌까리며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마침 두 소년이 검끝을 서로에게 겨눈채로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얼핏 닮은 듯한 미소를 각자의 입가에 건 채였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어.”


유성이 말했다.


어느새 찬 공기 너머 얕게 달아오른 뺨이 눈에 띄었다. 짧게 호흡을 가다듬은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의 노을을 따라하지 말라고.”

“바람직한 스승님이네.”

“나만의 노을을 찾으라 하셨거든.”

“그래서, 찾았어?”

“어쩌면 그런 것 같아.”


유성이 백연을 향해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검을 가볍게 거둬 납검했다.


“이 이상은 비무제전때 다시 할까.”


천천히 태청신공을 거둔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도 좋지.”

“그때는 승부를 내야 하니까.”


검을 집어넣은 두 소년이 서로에게 포권을 했다.


“고마워. 덕분에 자하신공에 더 감을 잡았어. 싸움의 방식에도.”

“피차일반이야.”


백연이 답했다.


그 또한 검법의 방향성을 잡았다. 태청신공을 기반으로 한 검격. 아직 막 뿌리를 엮어내는 단계이지만 쾌검을 중심으로 한 번개의 폭풍. 그 기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검룡과의 대련에서 얻은 것이 적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잠시 직전의 감각을 되살려 새긴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자.”


유성의 뒤를 따라 연무장을 내려오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형들이 그를 향해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보고 백연이 피식 웃었다.


“걱정마, 사형들도 곧 나랑 대련 할거니까.”

“......뭐?”

“잠깐만.”

“야, 너 얼마나 두들겨 패려고......”

“난 오래 살고 싶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당황섞인 목소리를 흘려넘긴 백연이 운결을 향했다. 분명 아까 능운이 옆자리에 있었건만, 무당의 무인은 어딜 갔는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허공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제운종 기파를 느낀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장문인.”

“......음? 무슨 일이더냐.”

“그 인간은 갔습니까?”


백연의 말에 운결이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윽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헛허, 그 인간이라니.”

“그놈이라 부를수는 없잖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그 인간이 낫겠구나.”


이번에는 백연이 눈을 깜빡일 차례였다.


자신의 저런 말투에 운결이 가만히 수긍한다고? 정상적인 상태라 보기 어려웠다. 능운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좋은 일이 아님은 확실했다.


‘처음에 때려눕혔어야 했는데.’


불만스레 입술을 비죽인 백연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랍니까? 호북에서 여기까지 기어오게.”


그의 물음에 운결이 말 없이 품에 손을 넣었다. 이윽고 그가 꺼내든 것은 옥으로 된 배첩이었다. 그것을 본 백연이 중얼거렸다.


“비무제전이군요.”

“그래. 날짜가 정해졌다.”

“참가 인원은 몇입니까?”

“배분당 열. 이대제자까지다. 그 이상은 동행이 어렵다 하더구나.”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윗 배분은 청율 사숙께서 가시면 될것 같고.”


청자 배는 숫자도 별로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지금 문파에 머물고 있는 것은 청율 사숙 한명 뿐이니 청자 배는 거진 없다 봐야했다. 그런고로 현 곤륜파에서 데려갈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백자 배 열명과 청자 배 한명.


그리고 백연은 그 백자 배 열명을 적당히 숫자만 채울 생각이 없었다.


“날짜가 언제인지요.”

“두 달 뒤라고 하더구나.”

“그러면 길게 잡아 남은 여유 시간은 한달. 한달이면 충분하네요.”


백연의 말에 운결이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충분이라니? 뭐가 말이더냐.”

“뭐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어깨를 으쓱인 백연이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백자 배 사형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연무장 주변이었다. 그와 유성의 비무를 보기 위해 잠깐 수련을 멈추고 모인 모양인데, 아직도 다시 수련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직 절박함이 부족하다 봐야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런건 그가 손수 고쳐줄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사형들이 강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죠.”


백연이 생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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