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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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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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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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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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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네가 돌아올 곳(5)

DUMMY

※※※



미처 움직일 새도 없었다. 화율의 표정과 음성은 여전히 처음 만날때와 같이 침착했으나, 그녀의 행동은 아니었다.


“자, 잠깐......”

“제가.”


우드득.


백연조차 미간을 살풋 찡그릴만큼 섬뜩한 소리가 화율의 손아귀 사이에서 들려왔다. 황금빛 기를 두른채로 남자의 목을 가벼이 쥐고 들어올리는 모습. 필시 뼈를 부숴버리고 있는 것이 확실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기절하거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물었습니다. 어디냐고.”


검을 거둔 백연이 남자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화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것이 퍽 애처로워 보였으나 그다지 동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경추가 박살났을 것인데 멀쩡해.’


애초에 비정상적인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태청신공을 일으킨 백연의 눈은 어느새 자색으로 화해 있었다.


‘체내의 기운으로 뼈에 금이 가는 것과 동시에 수복중인가.’


남자의 몸을 타고 도는 맹렬한 기파가 감각에 선명하게 잡힌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짙은 혈기(血氣)를 느낀 백연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반면 흑랑이 보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무영방 방주 대리의 날카로운 눈이 흥미롭다는 듯이 화율을 응시했다.


“법왕공(法王功)이군. 천룡사(天龍寺)의 존자였나? 먼곳에서 왔군.”

“천룡사는 또 뭡니까?”

“네가 모르는 것도 있군. 천축(天竺:인도)의 문파중 하나다. 뇌음사와 더불어 새외의 강자들 중 하나지.”

“모릅니다. 처음 듣는데요.”


그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새외 문파중 천룡사라는 문파는 없었다. 새로이 생긴 것인지.


“언제쯤 설립된 문파인지 궁금하네요.”

“오래되었다. 적어도 천년 소림보다야 길지. 다만 그 모습을 외부에 드러내는 시기가 간헐적이다. 소란이 생길때마다 길게는 수십년씩 봉문을 하니까.”

“아하.”


백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가 모를만도 했다. 백여년 전은 한참 시끄러운 시기이기도 했으니.


그 사이 점차 강해지는 기파가 느껴졌다. 허공을 가득 채우듯이 밀려오는 법력의 물결이 묵직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기파를 드러내는 것 만으로도 남자에게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사이한 혈기를 전부 흩어버리는 힘.


불문 무공의 기세가 강렬했다. 그의 몸에서 이따금 튀어오르는 새하얀 뇌기로도 밀어내기 어려울 정도.


‘축기량이 엄청나.’


스물 중반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얼굴인데 언제부터 무공을 익힌 것인지. 대문파의 제자들은 어릴 적부터 무공에 투신해 온갖 영약과 내단을 먹으며 성장한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화율의 축기량은 많은 편이었다.


백연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화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우우웅-!


찰나, 화율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일었다.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황금빛 기파 사이로 언뜻 합장하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감각이 들었다. 직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렸다.


“끄, 끄아아아!”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불문 무공의 빛이 혈기를 먹어치우며 흩어놓는다. 목덜미를 움켜쥔 손아귀 사이로 흘러들어가는 기운이 눈에 엿보였다.


본질적으로 상극의 기운. 그것도 정순한 불문 무공의 기파다. 저런 수준의 혈교도가 버틸 수 있을리가 없었다. 뼈가 박살나는 고통에도 입을 열지 않던 남자가 토해내듯 외쳤다.


“남, 남서쪽!”

“남서?”

“끄으으......도시 남서에 거대한 전각이 있습니다. 전부 거기에......!”


화율이 고개를 돌려 백연과 흑랑을 쳐다보았다. 흑색 천으로 둘러진 눈가 아래 시선이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듯 했다. 백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확인했습니다. 가지요.”

“예.”


짧게 중얼거린 화율.


그 직후였다. 한순간 그녀의 몸에서 강렬한 기파가 재차 일었다. 한손으로 남자의 목을 쥔채로 그대로 장법을 내지르는 화율의 모습이 눈에 스쳤다.


퍼억!


일순 귀를 저미는 섬뜩한 소리가 울리고, 사방으로 핏물이 흩뿌려졌다. 머리 잃은 남자의 시체를 지붕 위에 내던진 화율이 손을 가볍게 털어냈다. 그것을 지켜보던 흑랑이 중얼거렸다.


“천수장(千手掌)? 강하군. 문파는 어디 두고 이리 새외를 돌아다니는거지. 보아하니 고매한 존자의 직전제자라도 되는 모양인데.”

“그곳을 떠난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돌아갈 일도 없지요.”

“떠난 이유가 궁금하군요.”


백연의 물음에 화율이 고개를 살풋 기울였다. 이윽고 대답하는 음성이 여상했다.


“문파는 살업을 행합니다. 불문 문파라 해도 마찬가지지요. 저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살리고자 했습니다.”

“때문에 의술을 익혔나?”

“그런 셈이지요.”

“그럼 혈교도는 사람이 아닌가?”


물으며 시체를 흘깃 쳐다보는 흑랑의 말에 화율이 답했다.


“하오문의 무인께선 피를 빠는 벌레도 사람으로 치십니까?”

“......일리있군.”


피식 웃는 흑랑. 그들을 보며 백연이 검파를 매만졌다.


“이곳에서 감시를 하고 있었던 듯 한데. 지켜보고 있던 혈교도가 이자 하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붕 위에 자리잡고 있던 혈교도. 그 무력이 더없이 약한 말단 교도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자가 화율의 전각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였다. 여차하면 그녀도 잡아가려 했을지 모르는 일.


물론 그녀가 천룡사의 무인인 것을 몰랐기에 그랬을테지만, 그럼에도 눈이 한개가 아닐 가능성은 있었다.


“상관 있나?”


월영비도를 쥔 흑랑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손아귀에서 일어난 그림자가 진했다.


“전부 죽이면 그만인데.”

“맞는 말이네요.”

“아마 교도의 무력은 문제가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두 분 무인의 무력이라면.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


화율이 허공을 가늠했다.


“새외까지 밀려나온 혈교도입니다. 본단의 강성한 교인들이 아니니 저희 셋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아이들에겐 그것이 아니겠지요.”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술법을 준비한다 했다. 그것도 아이들의 피로.


무슨 술법을 준비하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허나 그것을 시작하게 두면 안된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술법 자체의 위력은 둘째치고 죽어갈 아이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결코 놔둘 수 없었다.


“지체할 것이 없군요. 갑시다.”


중얼거리며 한걸음을 내디뎠다. 끌어올린 태청신공의 기파를 여전히 몸에 두른채였다.


일보가 여상히 지붕의 끝자락을 밟는다. 뇌기를 실은 걸음이 옅은 끼익 소리를 남기며 기왓장을 박찼다.


찰나, 어두운 도시의 허공에 백광이 스쳤다. 남서쪽으로 향하는 별무리 같은 잔흔이 분분히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뒤이어 황금빛 경파와 바람결 같은 그림자가 뒤따랐다.


주욱 늘어진 사방의 풍경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잠시. 이어진 전각들의 지붕 위를 몇차례 짓밟은 백광은 곧 도시 남서쪽의 한 자리에 내려앉았고.


뒤이어 새하얀 장포의 화율과 그림자를 두른 흑랑이 백연의 옆에 떨어졌다.


“여기군요.”


더 찾거나 확인할 것도 없었다.


그들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전각이었다. 위로 솟아있는 높이도 높이였지만, 그 전각을 둘러싼 담장이 끝없이 길었다. 안의 공간이 넓은 것이 중원의 여타 대가문들의 전각과 다를바가 없는 크기였다.


허나 그런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기가.’


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끈적한 혈향이 더없이 진했다. 탁한 기운이 맴도는 전각은, 전체가 피 냄새로 물들어 있었다.


더없이 확실한 증거.


“역겨울 정도군. 토악질이 올라와.”


중얼거리는 흑랑의 목소리에도 짜증이 묻어 있었다. 반면 화율은 담담한 시선으로 전각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천으로 가려진 눈매가 어떤 모양으로 휘어 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냐. 이곳은 함부로 와서는 안되는......”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다. 커다란 전각의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무인이었는데, 암적색으로 물든 기다란 장포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백연은 이미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환상처럼 뻗어나가는 일보. 사선으로 내딛은 걸음의 잔영이 찰나 백광으로 화하고.


쩌저정!


검이 허공을 갈랐다. 보법의 연장선상이었다. 어느새 바람을 풀어헤치며 무인의 뒤편에 선 백연이 검을 가볍게 털어내는 것과 동시에, 무인의 머리가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시원하군. 한결 낫다.”

“흑랑. 전각의 형태와 아이들의 위치를 가늠해줄 수 있겠습니까? 제 기감은 주로 기운을 읽는 것인데, 아이들은 몸에 내공이 없습니다.”

“문제없다. 이곳은 그럼 맡기도록 하지.”

“예.”


백연이 여상히 답하며 검파를 다시 쥐는 사이, 안쪽에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적이......!”

“적습이다!”


안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수없이 많았다. 잔뜩 몰려드는 사이한 기운들. 혈교도의 기세를 느낀 백연이 숨을 그러모았다.


“찾으면 바로 돌아오겠다.”


중얼거린 흑랑의 신형이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찰나 뻗어나간 흑색의 기파가 그대로 전각의 담장을 타 넘는것과 함께, 전각의 안쪽에서 달려나오는 수십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을 마주한 백연이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화율.”

“네.”

“저들의 걸음을 잠시 묶어줄 수 있습니까? 무공 기파가 강대하던데.”

“가능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제가 말하는 순간, 한번만 묶어주십시오.”


이들에게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전각 안쪽으로 느껴지는 사이한 기파가 수없이 많았다. 지금 달려나온 이들도 한줌에 불과했는데, 안편에 있을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단축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검을 흩뿌리기에는 불꽃이 나아.’


집단전을 일검으로 상대한다. 모순된 생각. 과거라면 불가했을 일이나 지금은 아니었다.


우우웅.


곁에서 들려오는 화율의 공력 파동의 소리를 귓가에 담으며, 백연이 무릎을 살풋 숙였다. 그의 발치를 따라 흩어져 나오는 뇌기가 선명했다.


“지금.”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백연이 그대로 진각을 밟았다.


쩌억.


나직한 소리와 함께 백연이 발 디딘 지면이 갈라졌다. 막대한 반동이 무릎에 실리는 순간, 한줄기 백광이 그대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사선으로 뻗어나간 백광이 허공에서 몸을 뒤틀고.


“천신대력추(天神大力錐).”


화율의 음성이 그의 뒤를 쫓았다. 일순 퍼져나가는 파도같은 내공 경파. 직후 뒤에서 둔중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화율의 주먹이 대지를 내리찍었다.


쿠우우웅!


일순 대기가 바르르 떨렸다. 화율이 내리찍은 자리에서부터 퍼져나간 거대한 파동의 물결이 대지에 파도를 일으켰다. 진격해오던 수십의 혈교도들을 짧은 한순간 전부 그 자리에 묶어놓을 정도로.


그 순간 백연은 이미 혈교도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허공에 뜬 자세 그대로 백연이 검을 느슨하게 쥐었다. 동시에 그의 혈맥을 타고 짙은 불꽃이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적화검류.”


키이잉. 여휘검의 검신이 주인의 중얼거림에 응하듯 바르르 떨렸다. 풀려나온 적양공의 화기가 검끝에 매달리며 어둠 속에서 환하게 피어났다.


검끝을 아래로 향한채였다. 찰나 허공에 그어지는 수십의 검로가 제각기의 형태를 띄고 대기에 새겨졌다.


“낙화(落火).”


나직한 음성과 함께 허공을 물들인 수십의 검로가 일제히 불꽃의 폭풍으로 화하며 낙하하고.


콰아아앙!


직후 폭음이 사방을 휩쓸었다.



※※※



“......해랑.”

“......으.”

“일어나시오.”


번쩍.


바르르 떨리던 눈꺼풀이 열렸다. 그 안에서 푸른 기운이 섞인 녹빛 눈동자가 드러났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눈이 점차 초점을 찾았다.


“......어?”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해랑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어두운 시야에 점차 익숙해지자 곁에 있던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인분?”


그제서야 팔영의 모습을 인지한 해랑이 당황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그것을 보며 팔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구려.”

“여긴 어디......잠깐만. 세상에, 괜찮으세요?”

“괜찮소.”


그렇게 말하는 팔영의 손끝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염 사이에 묻어 나오는 혈흔이 진했는데, 어느 모로 보아도 부상이 가볍지 않았다. 주름 새겨진 얼굴은 고통을 참듯 창백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경미한 부상을 입었을 뿐이오. 중요한 건 아니니 신경쓰지 말고.”


그리 말한 팔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서부터 울려오는 진동. 허공에 흐르는 기파가 있었다. 그것을 감지한 팔영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선 잘 들으시오. 여기는 혈교의 거점이오.”

“혈교요?”

“그렇소. 이들이 무언가 술법을 준비하고 있는데, 조만간 그대를 데려가려 할 것이오.”


팔영이 빠르게 중얼거렸다.


일은 그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급박하게 일어났다. 의원의 집까지 갔다가 다시 객잔으로 귀환하는 길. 해랑만을 노리고 달려든 수십의 무인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혈향을 흩뿌리는 혈교의 무인들이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찌저찌 버텨내긴 했으나 수가 너무 많았고, 결국 해랑을 지키지 못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잡혀들어오는 사이, 크게 부상을 입어 정신을 잃은 척 하며 주변을 가늠한 팔영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으시오. 이곳의 혈교는 아이들을 모아 그 피로 뭔가를 하려 하오. 그대도 그 대상중 하나고. 곧 들이닥칠 것인데, 겁내지 말고......”


쿵. 쿠웅.


멀리서 들려오는 진동을 느낀 팔영이 말끝을 흐렸다. 이윽고 그가 해랑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소년의 눈동자에 새겨진 것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오히려 단단한 눈빛.


“오고 계신거죠?”

“......그렇소. 그대는 대담하구려.”

“아니에요. 무섭긴 한데.”


어설프게 웃어보이는 모습이 팔영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행동 같아 보였다.


“달려와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


팔영이 고개를 숙였다. 한순간 그의 첫 제자가 기억에 스쳤던 탓일까.


잠시 눈을 감았던 노인이 이윽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시오. 그대는 반드시 살아나갈 테니.”


그때였다. 그들이 갇힌 뇌옥 바깥에서 급박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무리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이닥치고.


“나와라!”


암적색 장포를 걸친 혈교도들이 해랑을 잡아끌었다. 찰나 팔영의 손이 꿈틀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입술을 베어문 노인이 천천히 시선을 가라앉혔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사람들을 응시했다.


‘혈교도가 아닌 이들이 있다.’


암적색 장포의 혈교도들 사이, 길다란 장포를 걸친 무인 둘이 있었다. 흑색 장포 사이로 언뜻 내비치는 손이 가늘었다. 그들의 소매 안쪽으로 살풋 스치는 것은 붉은 글씨가 새겨진 괴황지.


그것을 팔영이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뇌옥의 문이 다시 닫히고 해랑이 끌려나갔다.


“......후.”


팔영이 숨을 뱉었다. 입술 사이로 흐르는 핏물이 진했다. 그때였다.


후우욱!


뇌옥 저편에 걸린 등불이 일렁였다. 바람이 들리가 없는 공간에서, 강풍이 불기라도 한 듯이 흔들린 불빛. 직후 그 아래 펼쳐진 그림자가 길쭉하게 늘어나며 휘어졌다.


그것을 본 팔영이 입매를 비틀었다.


빠르게 품속에서 비도를 꺼내든 팔영이 그대로 그림자를 향해 비도를 날렸다. 터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도가 그대로 그림자의 위에 틀어박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리던 그림자가 잠잠해졌다.


“......빨리 오십시오. 늦습니다.”


텅빈 뇌옥 속에서 중얼거리는 노인의 목소리만이 나직하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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