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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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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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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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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방(7)

DUMMY

※※※



백철.


이미 세간에서는 거의 거론도 되지 않는 금속이다. 다룰 줄 아는 장인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인데, 그 여파로 백철 자체가 지닌 특성까지도 대부분 잊혀진 것이다.


몇몇 소수의 뛰어난 야장들만이 백철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아직 기억하고 있을 뿐.


그리고 탁 노인은 그 소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그랬기에 그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게요? 아니, 이 기운. 검이 살아있는데. 댁의 검이 맞나?”

“제 검이 맞습니다.”

“하지만......”


탁 노인이 말을 흐렸다.


이해가 되질 않는 일이었다. 그는 백철 무구의 특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금속과도 다른 독특한 성질. 무기를 지닌 주인의 진기를 받아먹고 그에 맞춰 성장하는 무기다. 살아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법한 신병이기(神兵利器)의 성질인데, 그렇기에 모순이 일어난다.


지금 세상에 백철을 다룰줄 아는 야장은 그가 아는 한에는 없다. 그렇다고 하면 저것은 과거에 만들어진 물건인데, 백철 무기는 이미 길들여진 이후에는 주인을 바꿀 수 없다.


과거 이름을 떨쳤던 백철로 된 신병이기들이 대부분 현세에 자취를 감춘 이유다. 그걸 쥔 무인들의 영성이 너무 짙게 스며들어 있기에 타인이 얻는다 해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다른이의 몸에 맞춰진 검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검이라도 의미가 없으니.


“그 검이 그렇게 좋은거냐?”

“그렇다고 말할수 있겠지요.”

“흠. 비싸겠군.”

“욕심내지 마십시오.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

“나는 검 안쓴다. 무슨.”


헌데 지금 눈앞에서 팽가의 거한과 투닥투닥 이야기를 나누는 소년의 검은 분명 살아있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흐린 빛. 그리고 물결치듯 일렁이는 기의 파동. 무인의 몸에서 나오는 진기가 오랜 시간 검에 깃들었다는 방증이다.


검의 주인이 명백히 눈앞의 소년이라는 증거였다.


“......어찌, 어찌 얻은거요? 제발 알려주시오. 이런게 또 남아 있다면.”


탁 노인이 힘겹게 입을 뗐다. 그가 백연을 향해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협께 무엇이든 해드리겠소. 천하에 빛날 명검? 만년한철로 된 보검? 아니면 이몸이 도검장이긴 하지만 저 동방의 용린(龍鱗:용의 비늘)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갑옷도 만들 수 있소. 입은지도 모를 정도로 가볍지만 고수들의 절초라 해도 한번쯤은 막을만한 물건인데.”


어느새 툭툭 내뱉던 말투도 공대로 바뀌었다.


“제발 어떻게 안되겠소?”


스릉.


그 사이 잠시 뽑혀나왔던 여휘검이 부드럽게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흐린 빛이 사라질때까지 검신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탁 노인이 손을 바르르 떨었다. 그에 백연이 선아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래?”


백연 자신이 선택할 일이 아니었다. 백철 야장은 선아였고, 그녀가 스스로의 능력을 함구하고자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자칫하면 그녀의 신변이 위험한 탓이다. 선아가 안전하게 함구하기를 택한다면 여휘검을 잠시 살펴보게만 해줘도 될법 하다. 그만큼 눈앞의 노인은 간절해 보였으니.


하지만 선아는 고민하지 않았다. 백연을 쳐다본 그녀가 맑은 눈으로 물어왔다.


“일이 터져도 네가 지켜줄거지?”

“그야 당연하지만. 위험해.”

“괜찮아. 어차피 수라궁한테 한번 추적당했던 이상 모두가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 숨길것도 아닌데.”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앞으로는 위험하니까 너랑 항상 붙어다녀야겠다.”


백연을 향해 생긋 웃은 선아가 탁 노인의 곁으로 걸어나갔다.


“탁 야장님, 백철검을 어떻게 얻었는지 알고 싶다고 하셨죠?”

“물론이지! 일평생 다룰 수 있는 금속은 모조리 다뤄봤소. 이제 이게 내 남은 삶의 목표인데.”

“백연. 검 좀.”


백연이 살짝 멈칫하고는 선아에게 검을 풀어 건네주었다. 그의 손에서 거의 떠난적이 없는 검이라 그런지 급속도로 옆구리가 허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여휘검을 받아든 선아가 가벼운 손짓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검법을 배운 태가 나는 무인의 동작이었으나, 동시에 검을 수평으로 놓고 가늠하는 것은 야장의 모습이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여휘검의 검신을 선아가 톡 치는 순간.


티잉.


맑은 풍경같은 소리가 대장간을 따라 울려퍼졌다.


“허, 허어......”

“이 검은, 제가 처음으로 완성한 백철 작품이에요.”

“......으응?”


탁 노인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 들은 말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듯이.


“그게 무슨 말이오?”

“제가 백철 야장이란 소리에요.”


아마도 지금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그녀가 덧붙인 말에 탁 노인은 한동안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팽악이 미간을 찌푸리려 들 때쯤 탁 노인이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저, 정말이오?”

“네. 야장께선 눈이 좋으시니 검의 상태도 잘 알아보시겠죠? 이 검은 본래 백철검이 아니었어요. 한번 부러진 것을 백철로 다시 수리한 것인데, 여기 이어지는 부분에 새겨놨네요. 제 흔적이에요.”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그도 모르고 있는 이야기였다. 선아가 자연스레 검신의 위로 기파를 실어 부드럽게 훑는 순간 떠오르는 옅은 글씨. 검신이 부러졌던 부위에 새겨진 것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인지하기도 어려운 이름이었다.


야장으로써의 흔적. 아마도 검을 수리할때 남겨두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작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말은 좀 해주지.”

“헤헤. 이런게 야장의 낭만인걸.”


선아의 귀끝이 살짝 붉게 물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윽고 그녀가 눈앞의 탁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믿으시겠어요?”


그때였다. 탁 노인이 갑자기 머리를 땅에 박을듯이 숙였다.


“야, 야장님?”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아니, 가르쳐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백철을 다루는 모습을 딱 한번이라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 일어나세요! 그거야 얼마든지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은 개념적인 것 밖에 못 알려드려요. 시간이......”


고개를 살풋 치켜든 탁 노인이 그제서야 기억난 듯이 입을 벌렸다.


“아, 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철야방의 일 때문에 오셨다 하셨지요. 제가 아는 한 힘 닿는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일이 빠르게 풀렸다. 백철 야장을 눈앞에서 마주한 탁 노인은 처음의 퉁명스럽고 깐깐해보이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일행에게 극진히 대했다.


“웃기는군. 팽가의 이름을 듣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던 놈이.”

“제가 생각해도 팽가 소가주보단 백철 야장이 중요합니다만? 심지어 저 노인은 야장이니 더욱 그럴테고요.”

“젠장. 그게 대체 뭐길래 그러는 것인지.”

“천마 아십니까? 소문으로는 옛날 그 천마의 검이 백철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흠. 저 계집......아니, 선아라는 놈은 도(刀)는 안만드나?”

“직접 물어보시죠.”


팽악과 백연이 해결할 일은 없었다. 그들이 턱을 괴고 앉아 지켜보는 사이 선아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 사이 극진한 존대를 쓰는 탁 노인을 간신히 설득해 편하게 말하라고 이르는 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장인께.”

“제가 불편해요, 야장님. 제가.”

“그, 그럼 이정도면 되겠소......?”

“훨씬 낫네요.”


일이 일사천리였다. 탁 노인의 극진한 호의를 산 선아는 노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취조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선아가 넌저시 알려준 백철의 가공 방법을 시도해보는 노인에게 조언을 하는 형국이 되었다.


“두가지 기운을 동시에 다룬단 말이오?”

“네. 수기와 화기를 한번에 엮어내야 해요. 백철의 본질은 이중적인 기운을 이용해서......”


탁 노인은 시도했고,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희열을 담고 빛나고 있었다.


필생의 목표를 눈앞에서 마주한 장인의 열정이었다. 유실된 기술의 유일한 전승자가 눈앞에 있는 것은 그한테는 둘도 없는 기연일 터.


그렇게 탁 노인의 일을 지켜본 선아는 선언했다.


“이분은 아니야.”

“허탕쳤네.”


하지만 그것만은 또 아니었다. 탁 노인은 알고 있는것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생각나는게 있으면 전부 이야기해주겠다며 입을 연 탁 노인에게서는 상당한 양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진서진? 그놈이 야장에 올랐다고? 놀랄만한 소식이구먼.”

“그렇습니까? 노야께서 나가신 후 이어받은 모양이던데요.”

“......흐음. 대협께서 서진이를 의심하시나본데, 놈은 그럴 인물은 아니었소. 욕심이 좀 많고 멍청하고 손재주가 부족하긴 한데, 인내심은 좋은 놈이라. 노력이 가상해서 방주가 좋게 봐줬나보구려.”


백연은 여전히 진서진에 대한 미약한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으나, 용의 선상에서는 조금 뒤로 치워놓았다. 애시당초 진서진은 무당파의 도검에 손을 대었을 수가 없기도 했다. 지금도 무구를 만드는 담당이 되기엔 실력이 부족하다고.


야장도 아니었던 당시에는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맡으셨던 야장들이 누구 누구셨는지 좀 묻고 싶군요.”

“일곱 명이었소. 용가, 상관평이, 봉가놈, 곽가, 김씨랑 이몸하고, 마지막으로 석 야장이지.”

“그렇게 일곱......”

“전부 최고의 장인들이오. 그런데 그 양반들 중에 하나가 일을 쳤다라......”


탁 노인이 턱을 매만졌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이유를 모르겠구먼.”

“의심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비교적 최근에 야장 일을 시작했다거나.”

“없소. 다 굴러먹을만큼 굴러먹은 인간들이야. 이바닥에서 한번 하자있는 물건을 만들면 훅 가는거 순식간인데. 그럴 동기가 안보인단 말이오.”

“......돈은 다들 충분히 버십니까?”


백연이 물었다.


그 또한 어떤 야장이 혼자 의도적으로 이번 일을 벌였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탁 노인이 말한대로라면 적어도 이 일을 십년씩은 넘게 한 사람들인데, 갑작스레 이런 일을 이제와서 벌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었을 가능성을 봐야 했다.


야장 하나를 꼬드기거나 협박해 수작을 치도록.


“돈? 철야방에 쌓인 돈이 산더미요.”


탁 노인이 웃었다.


“아무리 못해도 금원방에 도는 자금의 오분지 일은 철야방에서 나온 것이구먼. 하오문 칠방의 근간을 지탱하는 기둥 세개가 바로 천라방, 철야방, 금원방이지.”

“야장분들은 많이 버신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지. 다른데 가서는 야장일로 평생 이만한 돈 못 만져볼텐데......잠깐.”


말하던 탁 노인의 표정이 굳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 누가 돈을 빌린적이 있는데.”

“야장께 말입니까?”

“그렇소. 그때 나름 큰돈이긴 하지만 턱 빌려줬거든.”

“그게 누구입니까?”

“......”


탁 노인의 입매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졌다. 그가 백연을 쳐다보며 한숨을 뱉었다.


“아마 아닐거요. 얼마 안지나서 다 갚았어. 애초에 그 양반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착한 사람이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군요.”


백연이 말했다. 그에 탁 노인이 한숨을 한번 더 크게 뱉고는 입을 열었다.


“......석 야장. 그 양반께서 몇달 전에 큰 돈이 필요하다 하셨었소. 어디다 썼는지는 몰라. 빌리고 한달 정도 뒤에 바로 다 갚아서 잊어버렸었는데. 아마 별일은 아닐거요.”


백연이 팽악을 쳐다보았다. 여태껏 지루한듯 턱을 괴고 있던 그가 천천히 이를 드러냈다.


“재밌군.”

“......확인은 해야겠죠.”

“당연한걸 말하면 안지치나? 내 목숨값은 비싸다. 설령 비무제전이 시작된 이후라도 찾아야 하지.”

“그 정도입니까? 거기는 뭐 당가처럼 소가주를 바꾼다거나 하는 일은.”


눈썹을 치켜올리는 팽악의 모습에 백연이 어깨를 으쓱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보던 탁 노인이 입을 열었다.


“거, 대협께서 알아서 잘 할거라 믿소만, 그래도 너무 사람을 몰아가진 말아주시오.”

“걱정 마시지요.”

“......”


불안한 표정을 지은 탁 노인이 이윽고 선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도 일어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일이 해결되면 다시 올게요.”

“부탁드리겠소.”


백철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약속까지. 선아와 탁 노인의 이야기는 이미 잘 풀린듯 했다. 비무제전 기간이 꽤 긴데, 그동안은 이곳에 가끔 오가며 일을 알려준다고.


그 뒤에는 탁 노인이 심지어 옥수로 갈 생각도 하고 있는듯 했다. 이제 자신의 평생 남은 목표는 백철을 완벽하게 다루는 것 밖에 없다면서.


곤륜파에게는 나쁠 것 없는 이야기였다. 철야방 출신의 뛰어난 야장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그렇게 탁 노인과 헤어진 이후, 일행은 철야방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가 중천을 넘어서 오후의 시간을 알리고 있는 시각.


그러나.


“석 야장? 오늘은 안나왔네.”

“......예? 어째서입니까?”

“가끔 그런날이 있네. 오늘 하루는 일이 있다고 못 나온다더군. 왜, 석 야장을 만나야 하나?”

“예. 급한 일입니다.”

“흐음, 여기로 가게. 그곳이 석 야장의 집이야. 집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철야방주가 알려준 장소는 운현의 반대편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도시 성도 바깥에 둥글게 자리잡은 자그마한 동네.


물길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모여있는 집 몇채가 하나같이 아담한 자태를 지니고 따스한 온기를 흘리고 있었다. 살기 좋은 곳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의 값비싼 집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돈좀 들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비스듬히 낮게 깔린 지붕마다 눈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느지막한 오후의 햇살에 조금씩 녹아 투명한 물방울이 처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긴가 보네.”


개중 마을의 가장 바깥에 있는 집 앞이었다. 낮은 지붕 주위로 둘러쳐진 담장도 마찬가지로 낮았다. 앞은 누군가가 열심히 눈을 치워둔듯 깨끗한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밖에 나간건가.”

“일이 있다고 했으니까, 나가신거 아닐까나?”

“그런 것 같네. 그럼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백연의 물음에 선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반면 팽악은 팔짱을 끼곤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암화.”

“예?”

“발자국이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옮기자 백연의 눈에도 무언가가 들어왔다. 눈밭을 따라 찍힌 사람들의 발자국. 평범한 듯 보였으나 거기에서 백연도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군요.”

“그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을 보니 보법을 수련한 무인들인데, 서넛 정도 되어보이고. 이 마을에 무인들이 오갈 이유가 있습니까?”

“모르지. 하지만 인지는 해둬야 할성 싶군.”


그때였다.


“......저, 누구세요?”


그들의 뒤편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속삭이듯 흩어지는 음성에 세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담벼락 모퉁이에 고개를 슬며시 내밀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자그마한 얼굴과 새까만 머리카락이 눈에 띄는 소녀였다.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도.


“왜 저희집 앞에서......”


잔뜩 경계가 어린 목소리에 선아가 조심스레 무릎을 굽혔다.


“안녕, 혹시 여기가 너희 집이니?”

“네.”

“혹시 석 야장님하고는 무슨 사이니? 야장님을 잠깐 찾아왔는데, 안계셔서 말이야.”

“......”


소녀가 한걸음 물러서자 선아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뒤적여 꺼내었다. 새하얀 빛이 반짝이는 그것은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탁 노인의 집에서 본 것과 비슷했는데, 모양만이 조금 달랐다. 새 모양을 한 조각을 손바닥에 올린 선아가 소녀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자, 여기. 선물이야.”

“그런다고......”


팽악이 퉁명스레 말하려는 순간 소녀가 천천히 선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 든 조각을 받아든 소녀가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탁 할아버지 조각.”


중얼거린 소녀가 조각을 쥐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할아버지랑 아는 사이에요?”

“응응, 어제 같이 일도 했는걸? 그런데 오늘 안계셔서 어디가셨나 했지.”


자연스레 선아와 대화하는 소녀의 모습에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백연은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허공에 느릿하게 퍼져나오는 소녀의 숨결. 거기에서부터 미묘한 한기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백연의 예민한 감각에도 간신히 잡힐 정도였지만, 그 시린 냉기는 겨울의 찬 공기와도 분명히 달랐다. 자연적이지 않은 기의 파동.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얼마 없었다.


백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아야. 걔, 아픈 것 같은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그 아이, 절맥증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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